아래 글은 월간고신 생명나무 5월호에 실린 글로서, 이번 주제인 '총선'과 맞아 저자와 잡지사의 허락을 받아 싣습니다.. - 편집장 주 |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권수경 목사
(고려신학대학원 초빙교수)
국회의원 선거의 의미
제21대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총선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대한민국 정부의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 가운데 입법부를 담당할 일꾼을 우리가 직접 뽑는다. 국민의 손으로 선출될 국회의원은 4년의 임기 동안 국회를 구성하여 대한민국을 운영할 법을 제정하거나 개정하게 된다.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는 것이 민주주의의 기본인 만큼 그 국민의 대표자가 모인 국회는 막강한 권한을 갖는다. 그 힘은 국민의 힘 곧 한 표를 행사하는 나의 힘이다.
전에는 국회의원을 특정 지역의 일꾼으로 보는 경향이 강했다. 그래서 지역 발전에 도움이 될 사람을 밀어주곤 했다. 지금도 시골에 가 보면 ‘이 도로는 누가 닦았고 저 시설은 아무개 국회의원이 유치했다’는 이야기를 듣곤 한다. 하지만 국회의원은 기본적으로 특정 지역이 아닌 전체 국민을 대표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총선 때는 후보자 개인뿐 아니라 정당에 대해서도 투표를 하고 정당 지지율에 따라 일정 수의 후보를 비례대표 의원으로 선출한다.
누구를 뽑을 것인가?
당연한 이야기지만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점은 인격이다. 나를 대신할 ‘사람’을 뽑는다. 지금까지의 행적을 잘 살피되 특히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지 잘 확인해야 한다. ‘말의 무게를 아는 사람인가! 말한 대로 행동하는 사람인가! 언행을 통해 드러난 사상과 판단이 일관성이 있고 지혜로운가!’ 등을 보아야 한다. 인격과 더불어 능력도 검증해야 한다. ‘올바른 법을 만들고 국가의 중대사를 결정할 정도의 지식과 판단력이 있는가! 결정한 것들을 현실 가운데 구현해 낼 실천력을 갖추었는가!’ 등을 따져보아야 한다. 하나만 가져서는 안 된다. 반드시 인격과 능력을 함께 갖춘 사람이어야 한다.
소속 정당도 보아야 한다. 그 정당의 정책과 인물이 나라를 나라답게 만들고 더욱 좋은 나라로 만들 수 있겠는지 확인해야 한다. 대개는 내가 지지하는 지역구 후보의 소속 정당과 내가 지지하는 정당이 일치하게 된다. 그렇지만 정책이나 이념보다는 사람이 더 중요하므로 꼭 일치해야 할 이유는 없다.
우리가 처한 현실
얼마 전 선거법이 개정되었다. 꽤 복잡한 이번 선거법의 골자는 독일과 닮은 연동형 비례대표제로서 국민의 지지율이 국회 의석에 제대로 반영되게 하자는 취지에서 나왔다. 전체 의석을 정당 지지율에 따라 배분한 다음 지역구에서 확보하지 못한 의석을 비례대표를 통해 보충함으로써 지지율과 의석 사이의 괴리를 최소화하려는 제도다. 취지는 나름 좋다. 군소 정당들도 혜택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법을 만드는 과정에도 파동이 많았고 이 법을 처음 활용하는 이번 선거에서도 교묘한 변칙이 등장하여 제도의 취지는 이미 사라지고 말았다.
거대 정당이 소위 위성정당을 만들었다. 기존의 정당을 이용해 지역구 의석을 차지하면서 지지율은 위성정당으로 돌려 비례대표도 최대한 가져가겠다는 것이다. 국민의 지지를 정확하게 반영하겠다고 만든 제도인데 되레 반칙을 쓰는 이들이 더 혜택을 받게 돼 버렸다. 그래서 이번의 선거는 복잡하기도 하지만 추악하기도 하다. 질서도 없고 원칙도 없고 그저 탐욕만 남았다. 정치판만 그런 게 아니다. 언론 역시 오랜 관행을 좇아 옳고 그름은 논외로 둔 채 그저 자기네들 이익을 챙기느라 분주하다. 부끄러운 현실이다.
이럴 때 등장하기 쉬운 것이 소위 ‘정치혐오론’이다. 다 썩었고 다 더러우니 아예 관심을 끊어 버리자 하는 태도다. 실제로 자신은 무척이나 깨끗한 양 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은 이 점에서 성경적 냉철함을 가져야 한다. 부패한 세상 바로 그 자리에서 빛을 드러내기를 하나님은 기대하신다. 어렵든 더럽든 소위 정치라는 곳에서 모든 중요한 결정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부패한 정치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이 국민의 무관심이다. 우리는 두 눈을 부릅뜨고 무엇이 옳고 무엇이 틀렸는지 살펴야 하고 바른 것을 추구하는 이들에게 지지를 보냄으로써 나라를 바로 세워가야 할 책임이 있다.
쉽지 않은 정치 참여
열심히 참여해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녹록치 않다. 올바른 사람을 뽑고 올바른 정책을 지지하는 일은 많은 지식과 판단을 요구하는데 우리는 정치 전문가가 아니다. 그래서 언론이나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여 보지만 현실은 답답하기 짝이 없다. 정보는 넘친다. 그렇지만 나쁜 정보, 가짜 정보도 많다. 어느 정보가 사실인지 가려내고 어떤 것이 좋은 것인지 설명해 주는 일은 아무도 하지 않는다. 아니, 모두가 자기 말이 옳다고 주장한다. 주지하다시피 우리나라는 언론 신뢰도가 바닥을 치고 있고 많은 사람이 가짜 뉴스, 카더라 통신의 지배를 받고 있다.
곳곳에서 소위 전문가들이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 신문에 글도 쓰고 방송에 나와 자기주장을 그럴 듯하게 편다. 학력이나 경력을 보면 대단한 분들이고 들어보면 말도 정말 잘한다. 유튜브에도 그런 대가가 많다. 경제 지표를 들먹이고 여론조사 같은 것도 언급하니 권위도 있어 보인다. 하지만 파고 들어가 보면 똑같다. 자신의 정치적 입지나 성향을 그럴듯한 논리로 포장할 뿐이다. 결국 말솜씨 경연대회가 되고 만다. 믿을 사람이 없는 시대, 믿을 게 없는 세상에서 우리는 선택을 해야 한다. 그것도 바른 선택을.
방법은 무엇인가?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 수밖에 없다. 우선 인간은 전적으로 부패했다는 성경의 가르침을 마음 깊이 새겨야 한다. 각종 매체에 등장하는 이들의 감언이설에 속지 않도록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신문이나 방송도 여러 개를 비교해 봄으로써 뒤에 숨긴 의도를 파악해 내야 한다. 모두가 동의하고 확신할 때도 합리적인 의심을 거두어서는 안 된다. 어려운 일이다. 시간도 노력도 많이 든다. 그렇지만 대안이 없다. 그럴듯한 논리로 포장한 사람들의 탐욕에 넘어가지 않으려면 그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두 가지 프레임
어느 선거든 두 개의 세력이 대립을 벌인다. 권력을 가진 쪽과 권력을 빼앗으려 하는 쪽의 다툼이 일반적인데 이번의 총선도 예외는 아니다. 서로 자기에게 유리한 논리를 만들어 유권자를 설득하려 한다. 이런 작업에는 프레임이 활용된다. 이런 프레임에는 사실에 대한 왜곡이나 거짓된 내용도 상당 부분 포함된다. 어느 것이 참인지, 어느 것이 유익한지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으므로, 아니, 모두가 저만 옳다 우기므로, 결국 투표하는 본인이 책임을 져야 한다.
이번 선거에서 부각된 프레임은 친일청산과 정권심판이다. 친일청산은 주로 여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구호다. 친일 부역자 세력이 아직도 돈과 권력을 휘두르고 있으므로 서둘러 과거를 청산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경제개혁이나 적폐청산 또는 검찰개혁도 그런 틀의 일부다. 반대로 정권심판은 야당이 주로 사용하는 논리다. 현 정부가 경제 정책에서 실패하였으니 권력을 빼앗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최근 들어서는 현 정부가 자유 민주주의 국가를 사회주의 국가로 바꾸려 한다며 국가 정체성 문제까지 들먹이고 있다.
누가 옳은가?
판단은 내가 한다. 그리고 책임도 내가 진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나라 백성이면서 동시에 지상 나라의 백성이다. 이 땅의 백성으로 책임을 다하되 하나님의 나라 백성으로 한다. 하나님은 공의를 세우고, 약자를 보호하고, 안정된 삶을 유지하기 위해 이 땅에 국가라는 좋은 제도를 주셨다. 이 점을 우선 분명하게 한 다음 정당이나 후보자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파악해야 한다. 정보도 정확해야 하지만 올바른 성경적 원칙이 없을 때 정당이나 후보를 제대로 골라 지지하기 어렵다.
교회를 향한 도전
교회가 선한 영향력을 많이 잃은 요즘 총선은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지금 전 세계적으로 양극화가 문제가 되고 있다. 빈부의 격차가 갈수록 심해지는 가운데 그 문제를 해결하려는 방법도 양극으로 달린다. 정치, 사회, 경제 모두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대화는 사라지고 싸움 소리만 들려온다. 이번의 총선도 그런 싸움의 연장이다. 그런데 교회마저 그런 싸움에 휘말려 혼란스럽다. 사랑으로 하나가 되어 세상을 밝혀야 할 교회가 세상의 싸움 때문에 어지럽다. 안타깝게도 그런 일에 앞장서는 목회자도 있다. 이번 선거를 계기로 그런 우리의 모습을 바꾸어 볼 수는 없을까?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상을 향해 흠이 없고 순전한 빛 비추기를 시작해 볼 수는 없을까?
그런 변화를 위해서는 목회자들의 역할이 절대 중요하다. 특정 정파의 사상을 말씀으로 포장해 전하는 관행을 우선 중단해야 한다. 나는 확신에 차 설교하지만 정반대로 말하는 사람도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설교로 선거운동을 하는 대신 성경의 원리를 올바르게 가르쳐야 한다. 국가가 무언인지, 정당의 존재목적은 무엇인지, 올바른 후보자의 자질은 무엇인지, 위정자들을 향한 교회의 책임은 무엇인지, 그리스도인은 어떤 방식으로 정치에 참여할 수 있고 또 해야 하는지, 거짓이 난무하는 시대에 교회가 할 일은 무엇인지 등을 바로 가르쳐 성도들로 하여금 성숙한 선택을 할 수 있게 도울 수 있다면 멋진 시작이 될 것이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하나가 되는 공동체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주가 되신다는 것보다 중요한 사실은 없다. 그런데 정치 성향의 차이 때문에 교회에서 마찰이 생긴다. 지지하는 정당이나 후보가 다르면 성도의 교제에도 금이 간다고 하니 보통 일이 아니다. 그래서 이번 총선을 계기로 실험을 해 볼 것을 제안한다.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각자의 차이점을 있는 그대로 내놓고 대화해 보는 실험이다. 누구를, 어느 당을, 왜 지지하는지 터놓고 말해보자.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의 의견에도 똑같이 귀를 기울여 보자. 예수 안에서는 인종, 성별, 신분의 차이가 다 사라져야 옳다. 입 다무는 것이 평화를 유지하는 유일한 방법일 정도로 우리가 가진 신앙이 무기력하지는 않을 것이다. 정치적 입장이 정반대인 사람들마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사랑으로 하나가 될 수 있어야 교회다운 교회가 아니겠는가.
그리스도인의 정치 참여, 정말 중요하다. 나라의 발전과 번영도 아주 중요한 주제다. 그런데 우리 코가 석 자다. 바뀐 선거제도를 연구하고 지지할 후보나 정당을 정하는 일도 좋지만 그 모든 일을 성도답게, 교회답게, 주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답게 하지 않는다면 이 모든 일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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