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기획기사는 장로입니다. 직분명이 교회의 명칭이 된 유일한 경우가 바로 장로입니다. 승천하신 주님께서 지금도 교회를 직접 다스리시는 방편으로 주신 직분이 장로이지만 장로직에 대한 원성(?)이 높아가는 것이 사실입니다. 몇 편의 글이지만 장로직의 영광을 누리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연재합니다. - 편집장 주 -
“차라리 뽑지나 말든가”: 어떤 사람을 장로로 선출해야 할 것인가?
이성호 교수 (고려신학대학원)
한국교회에서 장로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말이 필요 없을 것이다. 목사들은 이구동성으로 “정말 장로 잘 뽑아야 해!”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이 말은 역설적으로 자기 교회의 장로들에 대하여 불만을 적지 않게 가지고 있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실제로 목사들의 모임에 가보면 장로들에 대한 성토를 많이 들을 수 있다. 마찬가지로 장로들의 모임에서는 목사들에 대한 불만이 쏟아져 나온다.
항상 그렇듯이 말과 행동은 다를 수 있다. 장로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입으로는 많이 말하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실천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정말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 교회마다 좋은 장로들이 많이 선출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질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장로직에 대한 교육이 제대로 그리고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일반 목사들이 생각하는 좋은 장로란 어떤 사람일까? 실제로 이런 말을 자주 듣는다. “우리 교회 장로님들은 너무 좋아요. 그냥 제가 하자고 하면 다 따라 합니다.” 아마도 이것이 목사들의 보편적인 정서가 아닌가 생각한다. 목사들에게 좋은 장로는 그냥 군말 없이 목사의 뜻에 따라 오는 사람이다. 목사가 교회를 가장 잘 알고, 교회를 가장 염려하고, 교회를 가장 사랑한다고 착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연 장로들은 여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할까? “만약 그렇다면 장로는 왜 필요한가? 그냥 목사 혼자서 다 알아서 결정하면 되지?”라고 반문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사실 이와 같은 이유 때문에 감독정치를 따르는 교회들은 장로직을 따로 두지 않는다.
모든 것이 다 그렇지만 장로 선출에서 실패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기본이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장로는 직분이다. 직분론에서 기본 중의 기본은 직분은 직무를 위해서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한국교회는 가장 기본적인 부분에서 실패하고 있다. 장로가 정확히 “무엇을 하는 자”인지 제대로 인식되어 있지 않다. 장로 스스로도 잘 모르고, 성도들도 모르고 심지어 목사들도 잘 모른다. 이 기본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다보니 장로 선출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가 없다.
장로라는 말의 그 통상적 의미는 나이가 많은 자를 의미하지만 공식적 의미는 다스리는 자, 즉 교회의 치리자를 의미한다. (반대로 집사의 뜻은 섬기는 자이다) 즉 장로의 임무는 교회를 다스리는 것이다. 그런데 이 치리는 교회에서 당회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이것이 장로의 직을 이해함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사실이고 이것을 정확하게 이해를 해야 제대로 된 장로를 선출할 수 있다.
만약 장로가 치리자를 의미하고 이 치리는 당회를 통해서 이루어진다면 어떤 장로가 좋은 장로인가? 너무나 당연하게도 다스리는 일을 잘 하는 사람이라고 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 사람이 잘 다스리는지 못 다스리는지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여기에 대해서 바울 사도는 아주 중요한 지침을 우리에게 준다. “사람이 자기 집을 다스릴 줄 알지 못하면 어찌 하나님의 교회를 돌아 보리요?”(딤전 3:5) 여기에서 우리는 가정을 다스리는 것과 하나님의 교회를 다스리는 것은 본질상 동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적어도 장로가 될 사람은 자기 가정을 잘 다스려야 한다. 또한 교회 안에서 작은 모임을 잘 다스릴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장로를 선출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다음으로 중요한 고려 사항은 당회이다. 장로는 혼자 교회를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당회를 통하여 다스린다. 그렇다면 좋은 장로는 어떤 장로인가? 당연히 회의를 잘 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이것은 당회를 운영하고 있는 목사들은 뼈저리게 경험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 회의를 잘 하는 사람인가? 여기에 대해서 디도서 1장 7절은 중요한 자질을 제시하고 있다. “자기 고집대로 하지 아니하며” 이것은 당회원으로 다스리는 장로의 자질 중에서 너무나 중요한 자질이다.
교회의 모든 회의는 자기의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확인하기 위해서 모인다. 만약 자기의 뜻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굳이 당회로 모일 필요가 없다. 따라서 좋은 장로는 자기의 뜻이 정말 하나님의 뜻이 맞는지 그렇지 않는지를 늘 성찰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자기의 뜻이 관철되지 않더라도 당회가 정한 뜻을 존중하는 겸손한 태도가 장로의 자질에 필수적이다.
앞에서 말한 이런 자질들은 하루 아침에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평소에 부지런히 성도들은 장로의 역할과 자질을 잘 이해하고 장로 선출을 할 때 분별력을 발휘하여 투표에 임하여야 할 것이다. 하지만 정작 투표할 때 어떻게 투표하는가? 자기와 친한 사람? 자기와 생각이 비슷한 사람? 자기 말 잘 들어 줄 수 있는 사람? 헌금 많이 하는 사람? 교회 봉사 열심히 하는 사람? 똑똑한 사람?
이런 어설픈 기준들을 가지고 장로를 선출하니까 당연히 장로의 직무를 잘 하지 못하는 장로들이 선출될 수밖에 없다. 그렇게 선출하고 나서 뽑힌 장로들에 대해서 불만을 쏟아 놓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차라리 뽑지를 말든가?” 그 교회의 장로의 수준은 결국 그 교회 성도들의 수준이다. 즉, 성도들도 무작정 비판만 하지 말고 일부 책임을 져야 한다는 뜻이다. 물론 가르치는 목사의 책임이 가장 크다.
참고: 목사도 가르치면서 다스리는 장로이기 때문에 장로와 동일한 자질(가정을 잘 다스리는 것, 자기 고집대로 하지 않는 것)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목사는 말씀을 맡았기 때문에 위의 2가지 자질에 더하여 말씀의 은사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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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
너무너무 옳으신 말씀입니다.
하지만,
장로들도 진심으로 교회공동체를 위해서 수고하고 헌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분별력과 리더십이 부족한 가운데
열심과 충성심만 있기 때문에 더 문제가 되는 같습니다.
아무쪼록 문제를 알았으니
해결방안도 강구해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