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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보에서는 서울 경기지역 SFC 대학생 수련회에서 있었던 '유신진화론 논란'에 관한 기사를 보도한 바 있습니다(관련링크 - http://reformedjr.com/xe/8496 ). 이와 관련하여 개혁신앙인들이 과학과 신앙의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 지에 대해 전문가들의 견해를 소개합니다. 이번에는 과학자로서 창조와 진화의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 지에 대해서 아래와 같이 다룹니다.




창세기 1장으로 본 과학

 

 

성영은.jpg

성영은 교수 (서울대학교)

 

 

1. 창세기 1장과 과학

 

     흔히 신앙인들은 성경, 특히 창세기 1장과 과학의 관계를 이야기할 때 세상과 인간이 언제 만들어졌느냐 하는 기원에 주로 초점을 맞추고 있고, 과학도 당연히 이 점을 아주 중요한 주제로 다루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실험적 증거를 중시하는 과학에서는 사실 이 기원에 대해서는 그다지 큰 관심이 없으며 많이 다루고 있지도 않다. 따라서 인간의 기원을 다루는 진화론에만 초점을 맞추어 과학 자체를 비판하는 태도나, 창세기 1장으로 오직 기원 문제만 규명하려는 태도는, 오히려 기원의 문제를 다루는 진화론 같은 이론의 위상을 높이는 결과를 가져다주었다. 세상과 인간이 언제 만들어졌는가 하는 기원의 문제는 사실 창세기 1장도 명확하게 언급하고 있지 않다. 따라서 신자라면 세상과 인간이 언제 만들어졌는지 기원에 대하여서는 비록 그것이 중요한 주제라 할지라도 창세기 1장에서 말하는 정도에서 멈추는 것이 지혜로운 태도일 것이다. 오히려 기원의 문제에 매달려 힘을 낭비하기보다는, 창세기 1장에 등장하는 피조물들인 시간과 공간, , 물질, 우주, 생명, 인간에 관해, 과학을 통해 훨씬 더 폭넓게 이해하고 배우는 것이 신자로서의 삶에서 더 중요한 태도일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현대 과학은 상대성 이론에 기초해 시간과 공간은 절대적이 아니라 변한다고 주장하면서, 동시에 영원한 것이 아니라 어느 시점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주장한다. 창세기 1장은 이 시간과 공간이 영원하고 불변하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피조물이라는 사실을 알려 준다. 이는 현대 과학이 밝힌 시간과 공간 개념을 더 풍성히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 영원하신 하나님이 시간을 만드시고 그 안에 피조물을 두셔서 시간의 흐름 속에 살도록 하신 것이다. 그렇지만 삼위 하나님은 피조물인 이 시간을 초월하여 계시는 언제나 현재(I am)이신 영원하신 분이시다(3:14, 41:4, 8:58, 22:13). 시간 속에 사는 우리에게 영원을 설명할 길이 없어 하나님은 자신을 언제나 현재로 계시하신다. 시간에 대한 현대 과학의 발견 덕분에 우리는 시간과 시간 바깥의 영원에 대한 개념을 좀 더 추론해 볼 수 있게 되었다. 성경에 무수히 많이 나오는 영원은 피조물인 시간과 상반되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또한 하나님은 이 우주 공간이 아무리 넓어도 피조물인 공간 안에 갇혀 계시지 않는 분이시다. 이 우주 끝까지 달려가도 하나님의 보좌가 놓인 하늘은 없다. 하나님께서는 시간 속에 예속되어 계시지 않듯 시간과 연결된 이 공간에도 예속되어 계시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분명 우리와 멀지 않은 하늘에 계시지만 이 공간 안에 그분의 보좌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하나님은 때때로 하늘을 가르고 이 공간 안에 강림하셨고(64:1) 예수님은 이 공간을 가르고 하늘로 승천하셨다. 따라서 하나님을 이 피조물인 시간과 공간 안에 제약하려는 시도는 어떤 것이든 다 불경스러운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자신이 만든 피조물인 시간과 공간 속으로 들어오신 성육신의 일은 지극히 자신을 낮추신 사건으로서, 신비 중의 신비요 사랑 중의 사랑이다. 그리고 믿는 우리에게 피조물인 시간을 넘어선 영원한 생명을 주신다는 것 또한 신비이다(3:16). 장차 우리가 피조물인 공간을 넘어 하나님과 함께 하늘나라에 거하게 될 일도 마찬가지로 신비이다. 그렇지만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믿지 않는다면 시공간에 관한 과학의 이 멋진 발견도 길을 잃고 만다. 상대성 이론 역시 과학의 일부이다. 즉 상대성 이론도 과학이라는 상대적 진리에 불과하다. 빛의 속도가 절대적이라는 전제하에서만 성립되는 과학 이론인 것이다. 세상은 상대성 이론으로 성경이 옳다 그르다 평가하지만 결코 이 이론으로 절대적 진리인 성경을 볼 수는 없다.

     이처럼 신앙인은 성경의 눈으로 하나님의 선물인 과학을 보면 시간과 공간 뿐 아니라 창세기 1장에 나오는 빛, 물질, 우주, 생명, 인간에 관해서도 풍부한 시각을 가질 수 있게 된다. 신자가 신앙과 과학으로 힘써야 할 일이다.

 

 

2. 창세기 1장과 인간 기원론

 

     인간의 기원을 주장하는 현대 과학은 대체로 신()다윈주의라고 불리는 진화론으로 요약될 수 있다. 창세기 1장의 관점에서 볼 때에 진화론은 그 이론이 어떻게 변형되든 성경과 명백히 다르게 설명하는 부분이 있으므로, 우리로서는 이 이론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가장 중요한 차이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셨다는 사실에 관한 것이다. 진화론은 생물이 스스로 새로운 종류로 진화할 수 있고, 오랜 기간에 걸쳐 인간까지 진화했다고 주장한다. 그 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동물에서 진화하였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동물과 차이가 없다. 그리고 자연 과학의 영역을 넘어서는 주장이긴 하지만 그들은 인간의 정신도 그 몸이 진화된 산물이라고 주장한다. 진화론적 인간에는 성경에서 말하는 영혼이나 하나님의 형상이 있을 자리가 없다.

     그럴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아니면 하나님을 알 길이 없는 그들의 형편에 대해서는 동정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또 진화론이 우리의 싸움의 궁극적인 대상도 아니다. 죄로 타락한 인간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음을 알 길이 없다. 로마서 1:23의 말씀처럼 하나님의 영광을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으니 어떻게 하나님의 형상을 알 수 있겠는가? 또 진화론의 이 주장은 세상 역사에서 새로운 것이라고 할 수 없다. 인간이 동물을 신으로까지 높여 숭배한 전력이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진화론을 대단한 과학인 양 대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 또한 중요하다. 창세기 1장은 다양한 피조물들에 대한 포괄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현대 과학은 창세기 1장의 시간과 공간, , 물질, 우주, 생명체, 인간 등 피조물들에 대하여 풍성한 과학적 결과들을 내놓았다. 그럼에도 창세기 1장에 나오는 세상과 인간의 기원에 관해 과학이 할 말은 사실 많지 않다. 과학적 증거를 내놓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진화론은 하나의 이론으로서 인문학적(철학적) 성격이 강하다. 사실 진화론은 과학 안에서도 그 비중이 높지 않다. 생물에서 한두 장(chapter) 다루어지는 정도이다. 그래서 우리도 진화론을 대할 때 과학에서 다루는 만큼만 대응하고 멈추는 것이 좋을 것이다. 과학이라기보다는 철학에 가까운 이론에 불과한 진화론을 과학의 주류인 양 과하게 대하는 것은 그 이론에 필요 없는 과학적 위상과 권위를 부여하는 일이 될 수 있다. 사실 진화론의 과학적 위상을 높여 준 것에는 기독교의 과도한 대응이 큰 역할을 했다.

     로마 가톨릭 교회의 진화론에 대한 수용이 그 예이다. 로마 교회는 교회가 해야 할 본연의 일들을 제쳐두고 교황이 앞장서 진화론을 지지하는 문서를 발표했다. 1996생명의 기원과 진화라는 주제로 열린 교황청 과학원 총회에서 생명의 기원과 그 진화에 관한 연구와 교회라는 제목으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진화론 지지 담화를 발표한다.

 

……인간과 인간의 소명에 대한 신앙 교리와 진화 사이에는 아무런 대립도 없다……인간의 육체가 그 이전의 생물체에 기원을 두고 있다 하더라도 그 영혼은 하느님께서 직접 창조하신 것이라……

 

       로마 교회는 인간의 육체는 진화에 의해 이루어졌지만 영혼은 하나님께서 주셨다는 이원론으로 진화론을 정당화하려고 한다. 로마 교회의 이러한 태도는 결국 하나님의 나라보다 세상이 크게 보이기에 세상이 지지하는 진화론도 대단한 것처럼 생각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로마 교회의 진화론 지지는 진화론의 과학적 위상을 쓸데없이 높여 주었을 뿐 아니라 과학의 권위를 교회가 인정한 셈이 되었다. 권위를 부여받은 과학이 과학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성경의 내용들을 거짓이라거나 상징이라고 깎아 내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유신진화론 등 신앙으로 진화론을 수용하려는 일부 신자들의 주장도 마찬가지이다.

     일부 개신교도들이 주장하는 창조 과학(혹은 창조론)도 진화론의 과학적 위상을 높여 준 면이 있다. 창조 과학에서 주장하는 내용은 아래의 질문에서 보듯이 신앙의 내용이라고 보기도, 그렇다고 과학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하나님의 창조는 강조하면서 인간의 죄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은 소홀히 다루고 있지 않은가? 하나님의 창조의 풍성함을 과학의 영역으로 제한하고 있지 않은가? 과연 성경이 말한 만큼 말하고 성경이 멈춘 곳에서 멈추고 있는가? 창조 과학에 관해 우려가 되는 이런 의문들을 살펴볼 때 이 역시 과학의 권위를 높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성경을 과학으로 만들어 성경의 권위가 아닌 과학의 권위로 진화론이라는 또 다른 과학을 공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창조론은 진화론이 정당한 과학인 양 그 위상을 높여 주고 말았다. 최근 창조 과학의 대안으로 지지하는 지적 설계론도 그 내용을 더 살펴보아야 하겠지만 적어도 우리는 성경을 과학으로 만들려는 시도는 어떤 것이 됐든 과학에 필요 없는 권위를 부여할 수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3. 창세기 1장으로 본 과학

 

     창세기 1장은 현대 과학의 문제이기 이전에 믿음의 문제이다. 이 믿음은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했다(11:1-3). 하나님께서 창세기 1장을 우리에게 주신 것은 우리의 믿음을 세워 주시려는 것이다. 창조의 사실을 과학적으로 증명하시기 위해 주신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창조가 사실이라는 것은 믿음으로 받을 일이지 과학으로 받을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과학이 하나님과 무관하다는 말은 아니다. 과학은 하나님께서 주신 아름다운 선물이다. 현대 과학은 상대성 이론, 양자론, 원자론, 우주론, 유전자 이론 등을 통해 하나님의 창조 세계를 정교하게 잘 규명하였다. 우리는 시편의 시인들이나 신약 시대의 교인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이런 풍부한 과학적 지식을 가지고 하나님의 창조 세계를 보고 하나님을 찬양한다. 이것은 이 과학 시대를 사는 신자가 누리는 특권이다.

     그런데 악한 자는 우리 시대의 가장 인기 있는 과학을 이용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공격한다. 로마 가톨릭교회나 자유주의는 과학에 권위를 부여함으로써 성경의 권위를 과학 같은 상대적 권위로 낮추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 일부 개신교회가 진화론을 부각하여 창조 과학으로 맞서 보려고 하지만 이 역시 과학에 권위를 부여하는 일이고, 이것은 하나님 나라의 전투를 혈과 육의 전투로 오해하게 만드는 일이 될 수 있다. 과학을 이용하여 창세기 1장을 공격하는 악한 자의 그 싸움은, 믿음의 싸움임을 잊지 말고 늘 주께 구하여야 한다. 그 창조의 현장에 계셨고 그것들을 창조하신 예수님께서 우리의 머리로서 친히 싸우시는 싸움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런 문제에 대해서도 교회는 오직 복음을 전하는 본연의 일에만 힘써야 함을 배운다. 성경으로 과학을 보는 것만이 과학으로 성경을 보는 이 시대를 이기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저자 소개: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화학생물공학부 교수, 미국 일리노이 대학교 이학박사

대학시절 남서울교회(고신)를 다니며 SFC 활동을 하였고 현재는 안양강변교회(독립개신교회)에 출석하고 있다.

 

저서:

케플러-신앙의 빛으로 우주의 신비를 밝히다, 성약, 2011.

창세기 1장으로 본 과학(공저), 성약,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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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기획기사는 장로입니다. 직분명이 교회의 명칭이 된 유일한 경우가 바로 장로입니다. 승천하신 주님께서 지금도 교회를 직접 다스리시는 방편으로 주신 직분이 장로이지만 장로직에 대한 원성(?)이 높아가는 것이 사실입니다. 몇 편의 글이지만 장로직의...
    Date2016.02.03 By개혁정론 Views4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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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기사

사설
[사설] 성찬상을 모독하지 마라
[사설] 제7차 개정헌법 헌의안, 총...
[사설] 총회장은 교단의 수장이 아...
[사설] 명예집사와 명예권사, 허용...
[사설] 총회가 계파정치에 함몰되지...
[사설] 최근에 일어난 고려신학대학...
세계로교회 예배당 폐쇄 조치를 접하며 3
[사설] 총회(노회)가 모일 때 온라...
총회가 졸속으로 진행되지 않으려면
[사설] 누가 고신교회의 질서와 성...
칼럼
왕처럼 살고 싶습니까? 왕처럼 나누...
푸틴의 머릿속에 있는 그림
백신 의무 접종과 교회 (3부)
백신 의무 접종과 교회(2부); 교회...
백신 의무 접종과 교회 (1부)
우리 악수할까요?
두려움으로부터의 해방 (Peter Holt...
관심을 가지고 보십시오.
동성애 문제에 대한 두 교단의 서로...
하나님께서는 역사의 잘못을 통해서...
기고
직분자 임직식에서 성도의 역할
죽음을 어떻게 맞을까를 잠시 생각하며
제73회 총회가 남긴 몇 가지 과제
전임목사는 시찰위원으로 선정될 수...
고신교회와 고재수 교수; 우리가 왜...
왜 고재수는 네덜란드에서 고려신학...
제73회 총회를 스케치하다
신학생 보내기 운동에 대한 진지한 ...
명예 직분 허용이 가져다 줄 위험한...
[고신 70주년에 즈음하여 9] 고신교...
논문
송상석 목사에 대한 교회사적 평가 ...
송상석 목사와 고신 교단 (나삼진 ...
송상석 목사의 목회와 설교 (신재철...
네덜란드 개혁교회 예식서에 있어서...
제7차 헌법개정초안(2022년 6월) 분...
제7차 헌법개정초안(2022년 6월) 분...
제7차 헌법개정초안 예배지침 부분...
제7차 헌법개정초안(2022년 6월) 분...
SFC 강령의 “전통적 웨스트민스터 ...
지역교회의 적정 규모(規模 size)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