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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기사
 

 

     지난 10월 13일부터 16일까지 독립개신교회 강변교회당에서 열린 제5회 개혁교회들의 아시아태평양 대회(Asia-Pacific Conference of the Reformed Churches. 약칭 AP-CRC, 주제: 세례와 성찬)에서 있었던 공개강연에서 발표된 유해무 목사(대한예수교장로회 고신)의 논문입니다. 주최측인 독립개신교회로부터 자료를 제공받아 개혁정론에서 소개합니다.

      개혁교회들의 아시아태평양 대회(AP-CRC)ICRC(International Conference of Reformed Churches, 국제 개혁교회 협의회, http://www.icrconline.com)에 속한 교회 중 아시아와 호주, 뉴질랜드에 있는 교회들이 각 지역별로 4년에 한 번씩 서로 교제하고 선교의 일을 논의하기 위해 모이는 회의로, 고신교회도 회원교회입니다.

 
 

How Should We Celebrate the Lord’s Supper as a Means of Grace?

- The Lord’s Supper and Discipleship

주의 만찬을 은혜의 방도로서 시행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 주의 만찬과 제자의 도


HaeMoo Yoo, 유해무

(Presbyterian Church of Korea, Koshin)

 
 


1. 서론: 어떻게 하면 우리가 성찬을 은혜의 방도로서 바르게 기념할 수 있습니까?


개혁 신자들은 개신교도로서 은혜의 방도를 두 가지로 고백하여 왔는데, 그 두 가지는 말씀과 성례입니다. 성찬은 은혜의 방도 중 하나입니다. 믿음을 통해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모든 은덕을 받는데, 이 믿음은 성신께서 복음의 강설로 우리 마음에 일으키시고, 성례의 사용을 통하여 강화시키십니다. 성례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세례와 성찬입니다(HC 제 25주일, 65&68문).1) 장로교도들은 여기에 기도를 첨가합니다.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중재의 유익들을 그분의 교회에 전달하시는 외적이고 평상적인 방도들은 그분이 정하신 모든 의식들로서, 특히 말씀과 성례와 기도이며, 이것들은 모두 선택된 자들의 구원을 위하여 유효하게 사용됩니다”(WLC 154문).2) 그렇지만 이번 강의에서 기도에 대하여서는 다루지 않겠습니다. 개혁 신앙의 전통에서는 성례보다 말씀을 더 많이 강조합니다. 개혁 전통에 속한 교회들 중에 침례파를 제외한 거의 모든 교회들이 유아세례(혹은 소아세례)를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성찬은 존 칼빈(1509-1564)이 지적하였던 것처럼 약속의 말씀에 붙어 있는 부록 같은 것입니까(4,14,3)?3) 그렇다면 분명 우리가 말씀을 은혜의 ‘가장 중요한’ 방도로 누리지 못할 경우에는 성찬이 피상적이거나 불필요하게 된다는 뜻이 될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교회의 회원됨과 성찬예식의 빈도에 관한 다른 질문들과도 상호 연결되어 있습니다. 누가 성찬상에 초대를 받습니까?4) 성찬상에 참여하는 일이 그 회원들에게만 제한되어야 합니까, 아니면 확대되어야 합니까? 성찬이 참으로 은혜의 방도라면 우리가 성찬을 지금보다, 이를테면 연 4회보다 더 자주 시행하여야 하지 않습니까? 말씀이 우리에게 영양을 공급한다면, 성찬 또한 우리가 그리스도의 제자들로서 살아갈 힘을 공급하지 않습니까? 이러한 질문들을 잘 해결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성찬이 은혜의 방도로서 갖는 성격에 대하여서는 개혁 신앙의 진영 안팎에서 늘 논의되었고 지금도 여전히 논의되고 있습니다. 미국 교회 역사의 초창기에 청교도들은 성례를 회개의 방도로 볼 것인지 그리고 성찬상을 개방할(open communion) 것인지를 놓고 토의하였습니다. 그들은 공적 신앙고백을 통한 신자의 자발적 서약에 기초하여 교회를 세우려 애썼습니다. 그렇다면 성찬은 은혜의 방도가 아니라 은혜의 인(印)이었습니다. 그러나 뉴잉글랜드의 2세대와 3세대 청교도들은 자기 부모들이나 조부모들과 동일한 회심의 체험이 없었고, 회원으로서 인정되지 않았으며, 성찬에 참여할 수 없었고 그들의 자녀는 세례를 받지 못하였습니다.5) 이러한 상황은 결국 1662년 매사추세츠만 식민지(Massachusetts Bay Colony)의 회중 교회에서 ‘절반 언약 이론’(Half-Covenant Theory)을 제창하는 상황으로 이어졌습니다. 비록 첫 수십 년간은 이 이론을 받아들인 교회가 별로 없었지만, 점차 이 이론을 수용하는 교회들이 늘어났습니다. 이 이론을 수용하면서, 원래의 사상과 순전한 교회의 이상은 청교도들 가운데서 사실상 소멸되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노스햄프턴의 탁월한 청교도이던 솔로몬 스토다드(Solomon Stoddard, 1643-1729)는, 비록 교회의 정회원이 아닌 자들이라도 외적으로 경건한 삶을 살고 사회에서 좋은 평판을 얻는 자라면 주의 만찬에 참여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견해를 내놓았습니다. 그는 성찬의 상이 은혜의 방도로서 믿음을 불러일으키게 만들 수 있고 성찬에 참여하는 일은 하나님께서 회심하지 않은 자들에게 다가가시는 방편도 된다고 주장하였습니다.6) 1677년에 그는 뉴잉글랜드에서 소위 ‘열린 성찬’을 시행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즉 정회원이 될 준비를 하는 사람들을, 그들 안에 구원 얻는 믿음이 있는지 분별하려 함이 없이 성찬에 참여하게 한 것입니다. 스토다드는 오직 중생한 회원들만 성찬에 참여할 수 있게 하는 것은 아무런 성경적 정당성이 없다고 해명하였습니다. 스토다드는 공적 신앙고백을 폐지하였고, 성찬이 회개케 하는 예식이 될 수 있다고 단언하였습니다.7)

그렇지만 스토다드의 이러한 견해에 대하여 그의 손자이자 후계자였던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 1703-1758)는 격렬히 반대하였습니다. 에드워즈는 초창기의 청교도들이 교회의 정회원권과 성찬상에 참여할 자격을 외적으로 구별된 성도들에게만 철저히 제한시키는 그런 순전한 교회를 열망하였던 것이 옳았다고 믿었습니다. 그는 ‘절반언약’ 개념을 폐기하고, 성찬상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공적 신앙고백과 은혜의 경험이 있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에드워즈는 성찬이 ‘회개케 하는 예식’이 아니며 오직 신앙을 고백하는 그리스도인들만 성찬에 참여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8)

이러한 논의의 발전으로 인해, 신세계의 청교도들은 풀어야 할 일련의 숙제들을 안게 되었습니다. 그 문제들은 일차적으로 그들이 지닌 순전한 교회의 이상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비록 이들과는 접근 방식에서 다소 차이가 있으나 이들과 유사한 이상, 곧 순전한 교회를 보존하려는 이상을 초기 스코틀랜드 기독교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스코틀랜드 칼빈주의에서는, 성찬상이 문자 그대로 울타리로 둘러싸여 있었으며, 그 울타리의 양쪽 끝에는 문이 있었습니다. 교회 회원들은 그 문을 통과하기 위해 성찬용 토큰을 제시하였는데, 그 토큰은 입장권 용도로 특별히 주조한 것으로서 지역 교회 안에서 좋은 평판을 지닌 사람들과 요리문답 시험을 통과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만 치리회가 토큰을 주었습니다. 스코틀랜드 장로교도들은 며칠 간 이어지는 축제적 성격을 지닌 성찬을 시행하기도 했는데, 그러한 것이 신세계로 도입되었고 부흥운동이 일어나는 데에 기여하였으며, 더 나아가 19세기 미국의 전도 집회들의 형성에도 기여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식으로서의 성격들은 부흥운동에서 일종의 테크닉으로 바뀌었고 결국에는 완전히 소실되었습니다(부록을 참조하시오).

미국 선교사들이 복음을 전해서 세워진 한국의 교회들에서도 ‘열린 성찬’을 시행하는 것이 관례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관례는 미국 교회사에서 있었던 제2차 대각성 운동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정통적인 장로교회가 이러한 관례를 주의 깊게 숙고해 보지도 않고 무작정 따르는 것이 합당합니까? 어떻게 성찬이 성도들(세례 받은 회원들)에게는 닫히고, 반대로 세상을 향해서는 제자도의 방편이자 세상과 죄인들을 회개케 하는 수단으로서 열릴 수가 있단 말입니까?



2. 성찬 제정과 예배


주 예수께서는 배반당하시던 날 밤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그 떡을 떼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마찬가지로 그분은 식후에 또한 잔을 드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고전 11:23-26). 유월절을 기념하던 그날 밤이 성찬의 기원이 된 것입니다. 유월절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그 종 되었던 집 애굽에서 구원하신 일을 기념하고 경축하기 위해 제정되었습니다. 유월절 음식으로는 어린양과 쓴 나물들과 누룩 없는 떡이 있었습니다(출 12:8). 그 일은 결국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의 노예에서 구원하신 일을 기념하고 경축하려는 것이고, 그분의 구원은 유월절의 성취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제정하신 성찬은 유월절과는 몇 가지 점에서 다릅니다. 유월절은 해마다 한 번씩 기념하지만, 성찬은 자주 기념합니다. 그뿐 아니라 성찬은 떡과 포도주로만 기념하고, 예수께서 죽임 당하신 어린양이시지만(요 1:29; 계 5:12) 성찬에는 어린양은 포함되지 않습니다. 유월절이 가족적인 예식이었다면, 성찬은 교회를 세웁니다. 요약하면, 예수께서 오셔서 옛 언약을 성취하시고 그것을 새 언약으로 대체하심으로써 옛 언약을 폐하셨습니다. 따라서 유월절을 기념하는 일은 이제 주의 만찬을 기념하는 일로 대체되었습니다.

이 식사는 몇 가지 이름으로 불립니다. “주의 만찬”(고전 11:20), “주의 상”(고전 10:21), “참예함(코이노니아)(고전 10:16), “떡을 뗌”(행 2:42) 등이 그것입니다.9)

고린도전서 11:18에서 바울은 ‘한 교회로 함께 모이는 것’(NAS 역본으로, coming together as a church)을 언급합니다. 그리고 여기서 사용된 동사는 20절에서 ‘한자리에 모여서’(KJV 역본으로 coming together into one place) 하고 말할 때에도 다시 한 번 등장합니다. 이 두 부분을 결합하여 보아야 하는데, 그러면 교회(a church)란 ‘한자리’(one place) 곧 식탁을 둘러 있는 형태로 눈에 보이는 무리를 가리킵니다. 식탁을 둘러 있는 그곳, 신자들이 그리스도께서 하신 성찬 제정의 말씀에 순종하여 한자리에 모인 그곳에서 교회가 세워져 갑니다. 이러한 사실은 예배에서 성찬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함을 말해 줍니다. 구약 시대에는 예배가 제사였습니다. 그렇지만 신약 시대에는 희생 제물도 없고, 제사장도 우리의 대제사장이시자 ‘동시에’ 죽임 당하신 어린양이신 그리스도 외에는 없습니다. 예배의 또 다른 요소들로는 세례와 성찬 외에도 성경 낭독과 설교, 기도와 찬송이 있습니다(고전 14장; 딤전 4:13). 세례는 구원의 사역을 세례 받는 사람의 몫으로 돌리는 예식입니다. 그는 세례를 받음으로써 구원의 주님께 속하고 그분의 보호하심 아래에 놓이게 됩니다. 그리스도와의 신비한 연합인 세례는 그를 그분의 몫에 참여하게 만드는데, 왜냐하면 그는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그분과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기 때문입니다(고 2:12; 롬 6:1-11). 세례 받은 사람은 성찬에 참여할 때마다, 자신이 주님과 함께하는 몫을 그 자리에서 성례전적으로 거듭거듭 경험하게 됩니다. 세례는 일생에 한 번 경험하는 혼인 예식에 비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찬은 가능한 한 자주 시행할 수 있고, 그렇게 해야 합니다. “바울은 더할 나위 없이 현실적이면서도 오히려 영적이고 역사적인 방식으로 성찬을 이해하는데, 이러한 것은 영성주의가 성례를 그저 상징에 불과한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경우와도 완전히 다르고, 동시에 물질주의가 사물을 신성시하거나 자연을 신격화하는 경우와도 완전히 다릅니다.”10)

예배에서 설교가 진행되는 시간만큼은 세례 받지 않은 사람들도 그 자리에 있을 수 있었으나, 성찬의 자리에는 오직 세례를 받은 사람들만 허용이 되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예배에서 설교와 성찬은 말 그대로 하나로 결합되어 있었습니다.11) 그뿐 아니라 성찬은 매주일 시행되었습니다.12)

예수님께서는 정상적인 식사 중에 성찬을 하도록 제정하셨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고린도전서 10-11장과 복음서의 다른 기록들에서 유추할 수 있습니다. 이 식사는 ‘아가페’ 곧 애찬(愛餐)이었습니다.13) 그런데 고린도전서 11장을 보면 성찬은 애찬의 마지막에 시행되고 있었습니다. 부유한 자들은 애찬으로 배불렀지만, 반면에 가난한 이들은 굶주려야 했습니다. 부유한 자들이 기념한 잔치는 예수님께서 제정하신 취지와는 무관하였고, 이는 회중으로서 나아가는 데에 장애가 되었습니다. 성찬은 전체 회중이 식사에 참여하는 점을 강조하는 예식입니다! 신자들이 먹기 위해 다 같이 모이면(고전 11:33), 주께서는 각 개인을(28절) 그분의 심판과 구원 가운데서 대면하십니다. 신자는 인자(人子)의 살을 먹고 그 피를 마시며, 마지막 날에는 모든 사람이 부활할 때에 함께 일으킴을 받을 것입니다. 그 식사의 자리에 함께 참여하는 것은 많은 이들을 한 몸으로(고전 10:17), 곧 그리스도의 몸으로 연합시키고, 결국에는 장차 임할 그 나라에서 제자들이 한 무리로서 그리스도의 상에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마 26:29). 성찬은 또한 주님의 재림과 어린양의 혼인 잔치를(계 19:7,9) 종말론적으로 대망하는 가운데 회중이 하나로 연합됨을 나타내는 교제의 자리이기도 합니다. 거기에 드러나는 종말론은 신비주의나 경건주의의 성향으로 흐르는 초(超)개인주의적인 종말론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개인의 의무를 말소하는 전체주의적이고 낙관적인 종말론도 아닙니다.14)

성찬이 회중의 예배 안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는 사실에서, 예배의 다른 성격들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예배는 하나님과 새 언약 관계에 있는, 예배하는 백성의 모임입니다. 예배는 무엇보다도 그들이 하나님과 누리는 교제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신을 통하여 그들의 아버지라 불리는 분입니다. 회중은 예배 가운데서 이러한 삼위 하나님과 만나고 그분과 친밀한 교제를 나눕니다. 존 칼빈이 『기독교강요』에서 말하는 유명한 정의를 인용하는 것으로 충분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이 신실하게 전파되고 또한 신실하게 그 말씀을 듣는 것을 보게 되는 곳이라면, 그리고 성례가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 대로 시행되는 것을 보게 되는 곳이라면, 그곳이 어디든 거기서 하나님의 교회가 어떤 식으로든 존재한다는 것을 우리는 의심할 수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약속은 폐할 수 없기 때문이다”(4,1,9). 이 말을 다음과 같이 요약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예배가 이루어지는 곳은 어디든 거기에 교회가 있다.’ 설교와 성례들은 예배를 세우며, 예배와 함께 그리고 예배 가운데서 교회를 세웁니다. 그것들은 은혜의 방도이고, 그 방도들을 삼위 하나님께서 사용하셔서 회중과의 만남을 주도해 가신다는 것을 그것들은 밝히 나타냅니다. 하나님께서 주도하시면 회중은 거기에 응답하여서 찬송하고 기도하며 헌상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백성을 택하시고 아드님을 보내어 그들을 구속하시는 방식으로 일을 주도해 가셨습니다. 그리고 설교와 눈에 보이는 성례들 가운데서 이러한 하나님의 구원 사역이 반복해서 선포됩니다. 구원 사역에서 하나님께서 주도적으로 행하시므로, 하나님께서 강설의 주체시고 우리는 듣는 자들이며, 그분이 성례의 자리 특히 성찬상의 주인이시고 우리는 그 자리에 초청받은 손님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예배의 자리로 초대하시고, 우리는 그분의 언약의 자녀로서 그분의 초청에 순종하여 성신을 통해 예수님의 은혜를 받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설교뿐 아니라 성찬을 통해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써 성신을 통하여 우리에게 그분의 사랑을 베푸십니다. 요약하면, 이러한 방도들을 통해 우리는 생명에 이르고 삼위 하나님으로 채워지며 성신의 능력 가운데 그분의 은혜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게 됩니다. 우리는 우리 삶의 제일 되는 목적인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분을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일을 이룰 준비를 갖추게 됩니다(WSC 1).



3. 주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눈으로 볼 수 있게 기념하는 성찬


성찬에서 우리는 창조주이시자 또한 구속주이신 하나님과 교제를 누립니다. 따라서 성찬은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주 예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우리가 이 세상에서 그분의 형상으로 존재하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배에서 우리는 능력을 받아 그분의 제자로 서게 되고, 세상으로 보냄을 받아 거기서 그분의 제자로서 행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성찬을 제정하실 때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마 26:29). 우리는 주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성찬을 기념합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고전 11:26). 따라서 우리는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고전 11:24,25) 하신 주님의 명령을 받들어 이 성찬을 기념합니다. 떡과 잔은 예수께서 그 후에 이어서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서 자신을 주셨던 일을 우리에게 상기시킵니다. 성찬에 참여하는 것은 다름 아닌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음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그분의 죽으심만이 아니라 십자가를 지시기 전의 그분의 생애, 그리고 이후의 영광스러운 승리의 부활까지 포함됩니다! 그분의 죽으심만을 기억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에 관한 전부, 곧 예수님 전체(totus Christus)를 기억해야 합니다! 성찬에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그분의 삶과 죽음, 그리고 부활과 그 이상의 훨씬 많은 것들로부터 거두신 모든 유익을 받습니다.

성찬에서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받고, 또한 하나님께서 주신 것에 대하여 응답합니다. 예수님께서 잔을 받고 감사드리셨던 것처럼(막 14:23; 고전 11:24), 우리 또한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교제의 자리인 성찬은 우리의 응답 곧 믿음으로 드리는 감사의 응답을 배제하지 않고 오히려 포함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신 일과 우리를 그분의 형상대로 지으신 일, 우리를 부르시고 또 이 떡과 잔을 우리에게 주신 것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또한 그리스도로 인해 우리의 죄악을 사하신 일을 인하여 그분을 찬송합니다. 이미 이 땅에 도래하였고 또한 가까운 장래에 충만하게 계시될 그분의 나라 안으로 우리를 이끄심으로 인해, 우리는 그분께 감사를 드립니다.

이렇게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한편, 우리는 잔치에 참여한 자들로서 우리의 믿음을 새롭게 하고 우리 자신을 거룩한 산제물들로 드릴 것을 약속합니다(롬 12:1). 성찬에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주시는 양분을 공급받고 성신께서 주시는 능력을 받아,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그분의 영광을 위하여 살게 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와의 신비한 연합을 거듭거듭 경험합니다. 그리스도는 머리시고 우리는 그분의 몸입니다. 성찬상을 둘러선 우리는 거기서 하나님과 우리 이웃을 사랑할 힘을 받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세상에서 선한 싸움을 싸울 준비를 갖추게 됩니다. 성신 안에서 그리스도를 섬기는 일은 하나님께서 기꺼이 받으시는 일이고 사람에게도 인정을 받습니다(롬 14:18). 주인이 돌아오셔서 그들과 셈하실 때까지, 그분의 종들은 그분께로부터 받은 달란트를 가지고 일해야 하며 각 사람의 능력에 따라 주신 그 달란트를 늘여 가야 합니다(마 25:14 이하). 달란트가 아니라 능력이 종들로 하여금 주인의 명령들을 성취해 나가도록 하여 줍니다. 그러한 능력 곧 우리가 이 세상 한복판을 향하여 우리의 인생을 영위하여 갈 능력은, 바로 예배 가운데서 얻는다는 것을 우리는 믿습니다. 설교뿐 아니라 성찬도 우리가 주님이 오실 때까지 우리의 달란트들을 신실하게 사용하도록 우리에게 능력을 주는 방편입니다.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과 그분의 재림 사이의 기간에 살고 있습니다. 이 기간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제자의 도를 이루어 가야 하는 기간입니다. 그때가 언제일지 우리는 알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깨어서 우리의 달란트들을 가지고 일해야 합니다(막 13:33). 이러한 방식으로 우리는 마치 신랑을 기다리는 신부처럼 주님을 맞을 준비를 하게 될 것입니다.



4. 성찬에 관한 개혁 신앙의 관점


개혁 신앙의 관점이야말로 성경에서 가르치는 성찬의 교훈을 정당하게 대합니다. 개혁 신앙은 예배가 상호적 성격임 강조하여, 성찬이 선물이면서 또한 감사임을 강조합니다(4,18,7). 더 나아가 개혁 신앙은 성찬에서 성신의 위치와 역할을 강조하며, 로마교회의 화체설이라는 거짓 교훈과 루터파의 공재설이라는 편협한 교훈을 바르게 교정합니다. 마지막으로, 개혁 신앙은 성찬에서부터 흘러나오는 일상의 제자도를 증진시킵니다.

성찬에 관한 개혁 신앙의 관점은 개혁교회의 신앙고백서와 요리문답들 가운데 공식적으로 진술되어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개혁 신앙은 로마교회의 미사를 배격하는데, 왜냐하면 거기서는 사제가 그리스도와 그분의 교회 사이의 중보자로 등장해서 산 자와 죽은 자의 죄를 속하기 위한 제사를 하나님 아버지께 드리기 때문입니다.15) 이렇게 이해하고 미사의 제사를 드리면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드리신 희생 제사의 충족성을 위협하는 것이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단번의 제사와 고난을 부인하는 것(HC 80문)이 되는 것입니다. 성찬은 우리 편에서 하나님께 드리는 화해의 제사가 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성찬의 성례에서는 “그리스도가 성부께 바쳐지는 것이 아니고, 산 자들이나 죽은 자들의 죄를 사하기 위하여 어떤 실제적인 제사가 드려지는 것도 아니며, 다만 그리스도께서 단번에 친히 자신을 십자가 위에서 한 번 드리신 일을 기념하는 것이고, 그 일에 대하여 드릴 수 있는 모든 찬양을 하나님께 영적으로 봉헌하는 것입니다”(WC 29,2). 개혁 신앙이 로마교회의 화체설을 배격하는 또 다른 이유는, 그리스도께서 식사의 자리 바깥이 아니라 그 자리 안에서 우리에게 약속하시기 때문입니다. “성례가 은혜의 방도고, 따라서 하나님께서 은혜를 전하시는 도구라면, 성례를 사용하는 것과 별개로 성례 안에 구원하는 능력이 존재한다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16) 그리스도께서는 진정 이 살과 피로써 우리를 먹이시고 양육하시며, 그분의 성신의 신비하고 불가해한 능력으로 그분의 몸과 피로써 우리를 먹이시고 강하게 하십니다.17) 하지만 이러한 실제적 임재가 루터파에서 말하는 소위 공재설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때에 그리스도의 몸과 피는 떡과 포도주 안에, 그것들과 함께 혹은 그 아래에 육적으로나 물질적으로 있는 것이 아니라……(WC 29,7).

대부분의 개혁 신앙고백서와 요리문답들은 츠빙글리의 성찬 이해 곧 성찬은 단지 기념하는 식사고 신앙고백의 행위일 뿐이라는 견해도 배격합니다. 츠빙글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의 죄를 사하시기 위해 드리신 몸과 흘리신 피를 기억하는 일은 성찬의 전체 행위가 궁극적으로 향하는 목표이자 요지다.”18) 성찬의 자리에 과거의 구원 사역이 실존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그것을 떠올리면 그 사실이 갱신되어서 구원의 사역이 “믿음을 지닌 마음에” 실존하게 된다는 것입니다.19) 이러한 고백은 정당하지 않은데, 왜냐하면 우리는 성찬에서 진실로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기 때문입니다. 츠빙글리파의 고백과 달리 칼빈주의 고백서들은, 성례를 누리는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몸이 실제로 임한다고 주장합니다. 성례는 단지 표에 불과한 것이 아닙니다. 성례의 표는 그것이 표하는 대상인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가리킵니다. “성찬에서 주님은 참으로 그분의 살과 피를 주십니다. 즉 그분 자신을 그분의 소유 된 자에게 주셔서……누리게 하십니다.”20) 그러한 성찬은 단지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를 기념하는 것만이 아니라, “십자가에 달리신 그의 몸과 흘리신 피로써 나의 영혼을 친히 영생에 이르도록 먹이시고 마시우실 것입니다”(HC 75문).

우리는 어떻게 여전히 그리스도의 몸이 실제적으로 성찬의 자리에 임한다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까? “비록 그리스도께서는 장차 온 땅을 심판하러 오실 때까지 하늘에 계시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그분이 그의 성신의 신비롭고 불가해한 능력으로 그분의 몸과 피의 실질로써 우리를 먹이시고 강하게 하심을 믿습니다.”21) 성찬은 그리스도께서 성신을 통하여 그분의 살과 피를 우리에게 먹이시는 교제를 포함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그리스도께서는 비록 그의 인성으로는 하늘에 계시지만, 성찬에 참여하는 자들에게 성신을 통하여 그분의 살과 피를 주십니다(HC 79).

따라서 그리스도의 몸을 먹는 것은 영적인 식사입니다. “주님의 살과 피는 여전히 그 본질과 특성을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영적으로 우리와 교류하고, 그 결과 우리가 양분을 공급받습니다.……성신을 통하여 영적인 방식으로 그렇게 되는데, 성신께서는 우리를 위한 주님의 살과 피의 희생으로 마련된 것을 이것들 위에 적용하고 부여하십니다.”22) 그리스도의 살을 육체적으로 또는 본질적으로 실제 입을 가지고 먹는다는 개념은 배격되어야 합니다. 실제적인 방식으로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주심으로써 우리의 생명을 보존하는 것은 바로 성신께서 하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영적으로 먹고 마시지 않는다면, 우리는 길을 잃고 영원한 죽음으로 향하게 될 것입니다. 구원을 위하여 먹고 마셔야 하는 일은 성찬의 자리 바깥에서도, 사람이 말씀을 듣고서 그리스도를 믿게 되는 것은 언제 어디서나 일어나는 일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우리는 그저 떡을 먹고 포도주를 마시는 것일 뿐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성찬의 상에서 단지 떡과 포도주만을 받는 것처럼 보인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성찬과 관련하여 핵심은 무엇보다 우리의 행위가 아니라, 성찬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손에서 나온 것 즉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받는다는 사실입니다. 성찬이 선물이라는 바로 이 성격을 강조해서 보아야 합니다. 게다가 불신자들과 경건치 않은 자들이 영적으로 먹고 마신다고 말하는 것은 절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우리를 양육하시는 분은 성신이신데, 그 살과 피는 떡과 포도주를 받는 사람이 믿음으로 받을 때에라야 그가 받고 누리게 됩니다.23) 성찬에 참여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을 받기 위해 필요한 전제조건으로서 믿음을 요구합니다.



5. 성찬에 대한 칼빈의 견해


스스로를 개혁교회라 부르는 대부분의 교회들은 칼빈이 가르친 성찬의 교훈을 따릅니다. 따라서 성찬에 대한 그의 견해를 살펴보는 것이 유익할 것입니다. 칼빈은 성례를 복음의 설교와 관련하여서 우리의 믿음을 위한 또 다른 조력 장치로 보았습니다(4,14,1). 성례는 외적인 표로서, 그것으로 주님은 우리의 양심에 우리를 향한 그분의 선하신 뜻과 관련한 약속들을 인 치시고, 그럼으로써 우리의 약한 믿음을 붙드십니다. 그러면 거기에 대하여 우리는 주님과 천사들과 사람들 앞에서 우리의 경건을 나타내 보입니다(4,14,1). 성찬은 성스러운 대상에 대한 눈에 보이는 표징이고, 보이지 않는 은혜의 보이는 형태이며, 간단히 말하면 우리의 믿음을 세우고 자라나게 하기 위한 ‘보이는 말씀’(어거스틴)입니다.24) 그는 성찬이 지닌 선물의 성격을 매우 강조하며, 또한 우리의 믿음도 강조합니다. 동시에 칼빈은 성신께서 성찬의 자리에서 일하시는 것에 대하여서도 이야기합니다. 우리 내면의 교사이신 성신께서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의 마음을 통찰하시고 우리의 정서를 움직이실 때에, 성례들은 그 역할을 온전히 이루게 됩니다. 성신께서 함께하시지 않으면, 성례들은 우리의 마음에 더 이상 아무것도 이룰 수 없습니다. 성신의 능력이 없이는 성례가 조금도 유익이 되지 않습니다(4,14,9). 성례의 효력은 외적인 요소에 있지 않고, 전적으로 하나님의 성신께로부터 나옵니다.25)

성찬은 일차적으로 떡과 포도주가 아니라 그리스도 자신과 관련이 있는데, 왜냐하면 성찬은 그 의미를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모든 성례의 내용 혹은 그 실질이십니다. 그분 안에서 성례들은 견고하게 존재하며, 그분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약속해 주지 않습니다”(4,14,16). 칼빈은 성찬에서 그리스도의 실제적인 임재를 주장합니다. 하지만 그분의 임재를 물질주의적으로 설명하는 것에 대하여서는 반대하고, 그뿐 아니라 성찬의 자리에 그리스도께서 실제로 임재하신다는 것을 순전히 영적으로만 이해하는 것에 대하여서도 반대합니다. 로마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 성찬상에 주어져서 우리가 손으로 만질 수 있고 치아로 씹을 수 있으며 목구멍으로 넘길 수 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칼빈은 이러한 견해를 비판하였는데,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몸은 모든 인간의 몸에 공통적인 한계를 지닌 채, 지금 하늘에 계시기 때문입니다(4,17,12). 그럼에도 로마교회의 법정에서는, 전에 떡이던 것이 축성을 통해서 그리스도로 바뀌며, 그 결과 그리스도께서 떡의 외양 아래 감취어 계신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부터 소위 ‘화체설’이라는 것이 나왔습니다. 그들의 설명은 떡에서 그리스도의 몸이 만들어진다는 것은 아니고, 그리스도께서 떡의 모양 아래에 자신을 감추시되 떡의 실질은 사라지게 하셨다는 것입니다(4,17,13-14). 이러한 물질주의적 해설에 맞서서, 칼빈은 로마서 8:9 말씀 곧 오직 성신만이 우리로 그리스도를 완전히 소유하게 하고 그분이 우리 안에 거하시게 하신다는 교훈을 인용하여 말합니다(4,17,12).

칼빈은 이러한 교황주의자들의 견해가 루터파의 편재설에 비해서는 차라리 봐줄 만하고 혹은 최소한 좀 더 무난한 편이라고 여겼습니다. 편재설은 그리스도의 신성이 있는 곳은 그 어디든 그분의 육체 또한 존재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인성과 신성은 연합되어 있기 때문에 따로 그분의 육체를 신성과 별개로 생각할 수 없다는 주장입니다. 그렇게 본다면 그런 연합은 신도 인간도 아닌 그 중간쯤 되는 어떤 혼합된 존재처럼 되어 버립니다. 칼빈은 이러한 견해에 대하여 짧지만 강력하게 비판하였습니다. “비록 전체 그리스도는 어디나 계시지만, 그분 안에 있는 모든 것이 어디나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4,17,30). 그러면서 그 이유는 그리스도께서 육신으로는 하늘에 계시되 심판의 날에 나타나실 때까지 그리하실 것이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편재설의 견해는 성신의 사역 곧 그리스도 자신을 우리에게 연합시키시는 그 사역에 대한 여지를 전혀 남기지 않습니다(4,17,31).

그렇지만 칼빈은 또한 성찬에 대한 순전히 영적인 이해에 대하여서도 반대하였습니다. 츠빙글리의 성례관에 대하여 암시적으로 언급하면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에게는 먹는 것이 단지 믿기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제가 말하려는 것은, 우리가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살을 먹는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살은 믿음으로 우리의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먹는 것은 믿음의 결과이자 효력입니다.……우리를 위한 구원은 그분의 죽으심과 부활을 믿는 믿음에 있습니다.……그분께 참되게 참여함으로써, 그분의 생명이 우리에게로 침투하고 우리의 소유가 됩니다. 마치 떡이 음식으로 우리 몸에 들어가면 몸에 활력을 주는 것과 같습니다”(4,17,5). 칼빈은, 오직 성신에 참여하는 자들이 되는 것만 이야기하고 살과 피에 대하여서는 망각하는 관점을 배격합니다. 심지어 그는 우리의 몸이 떡과 포도주에서 양분을 받듯이, 그리스도께서 하늘로부터 그분의 살로 우리 영혼을 먹이신다고 하면서, 그리스도의 살이 우리 안으로 들어와 우리의 양식이 되셨다고 말합니다(4,17,24). 이러한 면에서 칼빈은 그리스도께서 성찬의 자리에 실제적으로 임재하심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실제적 임재를 물질주의적으로가 아니라 영적으로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칼빈은 그리스도를 떡 안에 가두는 견해를 배격하고, 반면에 “우리의 견해는 그 방식을 영적인 방식으로 보는데, 왜냐하면 성신의 신비한 능력이 우리를 그리스도께 연합하게 하는 끈이 되기 때문이다”(4,17,33)하고 말하였습니다. 참으로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로 그분의 깊은 실체에 참여하는 자들이 되게 하시고, 그럼으로써 전에는 서로 멀리 떨어져 있던 그리스도와 우리를 결합시키시는 그의 성신의 불가해한 능력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그분께 연합시키십니다. 성찬의 실체에 참여하려면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영광 가운데 계시는 하늘에까지 높이 들어 올려야 합니다.26) 칼빈은 그리스도를 육체적으로 어떤 요소들 안에 가두려 하거나 그리스도를 하늘에서부터 끌어내리는 개념을 배격합니다(4,17,31). “비록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서 육체로는 떠나 계시고 그분의 몸으로는 하늘에 올라가 계시지만……그분은 그분의 살로 우리를 먹이시고, 그의 성신의 능력으로 그분과의 교제를 내려 주십니다. 이렇게 해서 그리스도의 살과 피는 성례 가운데 우리 앞에 주어집니다”(4,17,18). 하지만 우리는 비유적인 표현으로, 그리스도께서 외적인 상징과 그의 성신으로써 성찬 가운데서 우리에게 내려오신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리스도께서 이렇게 오심은, 그분을 하늘에서 끌어내려 물질적인 요소들 안에 가두어 놓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몸이 떡 안으로 내려와야만 그분의 몸과 교제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분이 우리를 하늘에 계신 그분께로 들어 올리시는 방식에 대하여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4,17,16). 다만 칼빈은 자신이 이러한 사실을 완전히 설명하기는 불가능함을 솔직히 고백합니다. “자, 만약 누군가가 내게 어떻게 이러한 일이 일어나는가를 묻는다면, 나는 부끄럼 없이 이렇게 고백하겠습니다. 그 비밀은 너무도 고상하여서 내 마음이 다 이해할 수도 없고 내 말로 다 표현할 수도 없습니다. 좀 더 단순하게 말하면, 저는 그것을 이해하기보다는 경험합니다”(4,17,32).

하지만 믿음은 또한 절대 없어서는 안 될 요소입니다. 주께서는 그분의 말씀과 성례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자비하심과 또 그의 은혜의 보증을 내려주십니다. 말씀의 효력이 성례 가운데서 밝히 드러나는데, 그 말씀을 선포하는 데서가 아니라 그 말씀을 믿는 데서 밝히 드러납니다(4,14,7). 칼빈은 성례에서 믿음을 분리시키는 것을, 몸에서 영혼을 분리시키는 것에 비교합니다. 성례들은 마술적으로나 자동적으로 작용하지 않습니다. 말씀과 성례는 하나님의 편에서 오는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약속들이 구현되기 위해서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믿음은 성신의 선물입니다.

그런데 칼빈은 성례의 또 다른 중요한 면에 대하여서도 설명합니다. 그는 성례 안에서 전에 인류의 타락이 낳았던 결과들이 치유되는 일도 일어난다고 강조해서 말합니다. 즉 하나님과 또 이웃과 소원해졌던 데에서 치유된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칼빈에게는, 그리스도와의 이 우선적인 ‘수직적’ 교제는 항상 이웃들과의 수평적인 교제와 연결되어 있습니다.”27) 칼빈에 따르면 우리가 다른 이들과 연합하려면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형제들 가운데 계신 그분을 사랑하지 않고는 그리스도를 사랑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28) 성찬은 죄인들이 성신으로 그리스도께 참여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삶에 참여하기 위해 나아오는 통로가 되는 물질적인 표징입니다.29)



6. 성찬에 대한 루터파의 관점 vs. 개혁교회의 관점


개혁교회의 신앙고백서들은 성찬에 대한 루터파의 견해를 비판합니다. 위에서 언급한 대로, “그리스도의 몸과 피는 떡과 포도주 안에, 그것들과 함께 혹은 그 아래에 육적으로나 물질적으로 있는 것이 아니라(WC 29,7)고 말합니다. 이러한 비판은 루터의 소요리문답에 있는 다음과 같은 구절을 떠올리게 합니다. “성찬의 떡과 포도주는 성례전적 연합에 의하여 그리스도의 몸과 피입니다. 그분의 말씀이 지닌 능력에 의하여 그리스도께서는 성별된 (축사된) 떡과 포도주 안에, 그것들과 함께, 그 아래에 그분의 몸과 피를 주십니다.”30) 여기서 사용된 세 개의 전치사는 성찬의 요소들이 실제로 그리스도의 몸과 피임을 확증하기 위한 표현이며 그 전치사들의 공간적인 의미가 어떤 중요성을 띠는 것은 아닙니다. 루터파 사람들은, 개혁교회의 성찬에 관한 해석들이 그 떡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아니라고 가르치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루터파가 보기에는, ‘단지’ 상징적, 기념적, 혹은 영적 관점이라는 것들은 그리스도의 몸의 임재를 분명히 말하지 않는 것들이므로 용납할 수 없는 견해였습니다.31) 그들에 따르면 그리스도의 진짜 몸과 피를 단지 믿음이나 영혼으로만이 아니라 실제 입으로 받는 것이고, 믿음이 있는 자들만이 아니라 믿음이 없는 자라도 실제로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게 된다고 합니다.32) 그들은 개혁교회의 신앙고백들에서 말하는 ‘단지’ 영적인 관점을 배격합니다. 이러한 면에서 그들은 로마교회의 미사와 견해가 일치합니다.

따라서 루터파 사람들은 소위 ‘칼빈주의를 넘어서’(extra Calvinisticum)라는 교리를 반대하였습니다. 그들은 성례들 가운데서 창조주께서 피조물과 하나가 되신다고 주장합니다. 예수께서 떡과 포도주로 오시는 이 성례전적 연합은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육신을 취하신 성육신 사건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간 것입니다. 그들이 주장하는 ‘속성의 교류’에 관한 교리를 보면, 비록 그분의 인성이 신성의 특성들을 자신의 소유로 취하는 일은 결코 없지만, 그럼에도 구속의 일을 하실 때에 그분의 위격 안에 있는 인성이 신성에 속한 특성들을 구체적으로 발휘하시는 방식으로, 그리스도의 위격 안에서 신성과 인성의 교류가 이루어진다고 주장합니다. 요한네스 브렌츠(Johannes Brenz, 1499-1570)나 야콥 안드레아(Jakob Andreae, 1528-1590) 같은 일부 루터파들은, 그리스도의 인성이 그분의 신성의 특성들 중에서 전능하심과 전지하심뿐 아니라 편재하심(ubiquitas)까지 공유하신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따라서 팔츠의 칼빈주의자들은 그들을 가리켜 ‘편재주의자’(ubiquitists)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마틴 켐니츠(Martin Chemnitz, 1522-1586) 같은 사람은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인성에 충만한 권능(the genus maiestaticum)을 부여하셨다고 믿었습니다. 그는 주장하기를, 두 본성이 한 위격으로 연합한 가운데 인성은 신성의 특징들을 발휘하는데, 그 특징들을 소유함으로써가 아니라 그보다는 신성과 나뉠 수 없이 연합됨으로써 그렇게 한다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속성의 교류에 관한 편재적 이론은 비텐베르크에서 멜란히톤의 후예들이 격렬하게 반대하였습니다.33) 그럼에도 이 이론은 결국 루터파 교회들의 공식 교리가 되었고, 일치신조의 제7항과 9항에 개혁교회의 견해를 반박하는 조항으로 삽입되었습니다.

개혁교회들은 여전히 다음과 같은 원칙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유한한 것은 무한한 것을 소유할 수 없다(finitum non capax infinitum).’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떡과 포도주에 육체적으로 임재하신다는 루터파의 편재 교리를 따르지 않습니다. 개혁교회는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신 후에 장차 다시 오실 때까지 하나님 우편에 좌정하여 계심(extra Calvinisticum)을 믿으며, 루터파의 편재 교리는 예수님의 위격적 연합을 바르게 이해하는 데에 적합하지 않다고 여깁니다. 그런데 개혁교회는 루터파가 그들에게 가하는 비판을 기독론적으로만이 아니라 성신론적인 방식으로 풀어 나갑니다.

루터파에 대항하여서, 피터 마터 베르미글리(Peter Martyr Vermigli, 1499-1562)는 성찬에 관한 개혁교회의 관점을 더 향상시키는 데에 기여하였습니다. 그의 견해에서 주된 발상은 그리스도와의 연합 개념입니다. 그는 하늘에 계신 그리스도의 몸이 지상의 성례적 요소들과 친밀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강조합니다. 이 성찬의 요소들은 단지 기념물이나 상징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훨씬 넘어서는 것들입니다. 그는 그리스도께서 성찬의 자리에 육체적으로 실제 임재하심을 믿었지만, 루터파처럼 그것을 오직 기독론적으로만 설명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베르미글리에 따르면 우리는 성찬에 참여할 때에 그리스도의 몸을 물질적으로만이 아니라 영적으로 받는다고 합니다. 이러한 영적 실체화는 우리에게 믿음을 주시는 성신의 내적 사역을 통하여 이루어집니다. 비록 성찬의 표징들은 문자 그대로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기적적으로 바뀌지는 않지만, 그것들은 참으로 그리스도의 몸의 성찬이 되고 따라서 우리를 위한 신령한 자양분으로서 역할을 감당합니다.

베르미글리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세 가지로 설명합니다. 첫째는 성육신과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인성에 동일시하신 일에 근거합니다. 둘째는 신자와 그리스도 간에 점진적으로 교제가 발전해 가면서 성화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셋째는 신비한 연합으로서, 신자가 그리스도의 몸에 영적으로 연결되는 가장 친밀한 연합입니다. 그리스도와의 이러한 깊은 교제는 신자를 변화시키는데, 그가 주의 만찬에 참여할 때에 그러한 일이 일어납니다. 이것이 성례 예식의 목표입니다. “베르미글리는 성례가 근본적으로 하나님께서 신자들에게 주시는 것이지, 신자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고히 믿었습니다. 이것이 그의 성찬론의 근본 토대를 이룹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그 수단(하나님의 말씀, 그리스도인의 믿음, 성신)뿐 아니라 목적(신비한 연합)이 모두 그 기원을 하나님 자신에게서만 찾는다는 중심 사상을 강조하여 주기 때문입니다.”34) 하나님의 선물인 그리스도는 성례들과 믿음과 성신의 신비한 사역을 방편으로 하여 그분의 백성에게 주어집니다. 그 선물의 열매는 그리스도와의 신비한 연합입니다. 베르미글리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성례의 요소들 가운데 실제로 임재한다는 것을 주장한다는 면에서 가톨릭과 루터파와 같은 입장에 있는데, 다만 그 일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하는 면에서는 차이가 있습니다. 베르미글리는 또한 그리스도께서 육체적으로가 아니라 영적으로 임재하신다는 면에서는 울리히 츠빙글리(Ulrich Zwingli, 1484-1531), 하인리히 불링거(Heinrich Bullinger, 1504-1575), 칼빈과 같은 입장이며, 다만 떡과 포도주가 단지 표징에 불과하다는 개념은 그 어떤 것이든 배격합니다.

루터파는 가톨릭의 화체설을 기독론적으로 배격하지만, 개혁 전통에서는 그 두 견해의 오류와 약점들을 성신론적인 방식으로 극복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개혁 진영의 방식이 가장 뛰어난 해답임을 확신합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설명하는 신비한 연합이 우리를 일상생활 가운데서 그리스도의 제자들로 살아가도록 이끕니다.

7.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교회들과 주의 만찬


해외 선교사들이 들어오기(1884) 전에, 이미 한국에는 성경의 일부를 번역한 한국인들이 있었고 또 교회들도 이미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선교사들은 한국 교회에 주일예배 의식을 도입할 때에 성찬을 포함시키지 않았습니다. 이 점은 이해할 만한데, 왜냐하면 선교현장에서는 새로운 회심자들을 얻는 일이 급선무였기 때문입니다. 그 외에도, 한국에 들어온 선교사들 대부분이 무디(D.L. Moody, 1837-1899)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었는데, 무디는 제2차 영적 대각성 운동과 찰스 피니(Ch.G. Finney, 1792-1875)의 열정을 이어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들은 야외 부흥집회에 친숙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미국에서 잘 알려진 첫 야외 집회는 1800년에 있었는데, 그 집회의 인도자는 제임스 맥그리디(James McGready, 1758-1817)라는 스코틀랜드-아일랜드계 목사였습니다. 스코틀랜드 고지대에서는 종교개혁 이후로 성찬 절기(Communion Season)라는 풍습이 흔히 이루어졌습니다(부록 참조). 초창기 야외 전도 집회에서는 그 모임의 중심에 성찬을 받는 일이 있었습니다. 장로교도들과 감리교도들은 서로를 자신들의 성찬에 받아들였는데, 침례교도들은 폐쇄적인 성찬을 고수하였습니다. 점차 시간이 흐르면서 전도 집회들은 교단의 벽을 허물게 되었고, 선교협회 같은 일종의 초교파적 자원(自願) 운동을 점차 추구하게 되었습니다. 처음 이러한 전도 집회를 조직하였던 장로교도들은 이러한 일들을 이내 금지하였지만, 감리교도들과 침례교도들은 이러한 집회를 계속 이어갔습니다. 대체로 후대의 부흥운동은 찬송과 설교를 회개의 방편으로 사용하였고, 집회의 마지막에는 성찬 대신에 새로 회심한 사람들에게 세례를 베푸는 의식을 행하였습니다. 제2차 영적 대각성 운동의 신학은 이전의 부흥운동 전통과 달랐습니다. 조나단 에드워즈나 휫필드 같은 1740년대의 제1차 영적 대각성 운동 지도자들은 죄인이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다는 점과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에 담긴 선한 기쁨을 강조하였습니다. 하지만 제2차 대각성의 신학에서는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그리스도께 다가갈 수 있는 능력을 이미 부여하셨다고 생각하였습니다.35)

미국 교회에서 성찬에 비해 설교를 과도하게 강조하는 경향은 역사적으로 또 다른 깊은 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잉글랜드 성공회의 예전(liturgy)에 맞서서 청교도들은 예전을 간소화하였으며 성찬보다 설교를 강조하였습니다. 심지어 개혁자들에게도 예전 전체를 개혁하는 일보다는 설교를 강조하는 일이 더 쉬웠습니다. 그 결과는 예전의 간소화였고, 이러한 흐름은 청교도들을 거쳐서 미국의 부흥운동들과 더 나아가 한국의 교회에까지 이르렀으며, 한국 선교단체들이 운영하는 선교현장들에까지도 그 여파가 미치고 있습니다. 결국에는 성찬에 대한 칼빈의 견해 대신에 츠빙글리의 견해가 점점 더 우위를 점하게 되었습니다. 성찬을 덜 존중하는 이러한 흐름은 아시아-태평양 지역 안의 짧은 역사를 지닌 다른 교회들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성찬에 대한 이해와 실천에서도 성경적이고 개혁신앙적이 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성찬을 경시하던 우리의 태도를 넘어서서 성경의 교훈 자체로 돌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우리는 현 상황에서 성찬을 잘 실행하면서, 개혁자들이 행했던 논의에 빠져 있기보다는 그보다 더 나아갈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공교회가 실천하였던 것과 같이 성찬을 성경적으로 시행하는 것이 무엇인지 재검토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원래 제정하셨던 대로 성찬을 회복하는 일을 제안합니다. 성찬은 설교와 비록 모든 면에서는 아니더라도 동등하게 취급되어야 합니다. 성찬은 칼빈이 말했던 것처럼 설교에 부속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로마의 미사는 성찬에 대하여 정당하게 해석하지는 않았지만, 미사에서 성찬을 시행한 빈도 면에서는 개신교회의 관습보다 낫습니다.

우리로서는 역사상 등장하였던 여러 다른 견해들 외에 칼빈의 견해를 잘 붙잡고,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 곧 죽음에서 부활하셔서 지금 살아 계신 그분과 친밀한 교제를 누리고 또한 그분 안에서 다른 그리스도인들과도 친밀한 교제를 누리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예수께서 제정하신 성찬은 설교와 똑같이 은혜의 방도이고, 그 안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성부께로부터 보냄을 받은 분으로서 그분 자신을 주셔서 그의 성신 안에서 우리의 참된 양식과 음료가 되게 하십니다. 성찬의 자리에 전체 그리스도가 임재하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성찬을 제정하신 것이 사실이지만, 그분은 성찬의 자리에 죽은 자로서가 아니라 영영히 살아 계시는 구원주로서 임재하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현재일 뿐 아니라 우리의 미래도 되십니다. 성찬에서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의 재림을 약속하시며, 우리를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초대하십니다(계 19:9). 이러한 잔치에 초대받은 ‘우리’는 복된 자들입니다! ‘복되도다’ 하는 말은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신 팔복의 교훈을 떠올리게 하는데, 이러한 복있는 자들은 다름 아닌 그분의 제자들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삶은 ‘핍박’이라는 말로 가장 잘 요약할 수 있습니다. “나를 인하여 (사람들이)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마 5:11-12). 우리는, 특히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모인 우리 교회들은, 우리 사회에서 소수이며 ‘밖으로는 다툼이요 안으로는 두려움’에 직면하여 있습니다(고후 7:5). 세상은 우리를 ‘까닭 없이’ 미워합니다(요 15:25). 그런데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니고, 미워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요 15:18). 예수님께서는 그분의 제자들과 오늘날 우리들을 위로하시고 힘 주십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요 16:33).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세상을 이기셨습니다. 그런데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그분은 다시 살아나셨으며 지금도 살아 계시고, 장차 다시 오셔서 우리를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초대하십니다. 그때까지 우리는 이 세상에서 핍박을 견디며 그분의 청지기들로서 살아가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주인이 와서 깨어 있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으리로다”(눅 12:37). 그분과 함께 앉아서 그분과 함께 하나님의 나라에서 포도주를 마시기 위해, 우리는 이 세상에서 그분의 증인들로서 참된 제자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그분은 참된 음식과 음료가 되십니다. 설교에서만이 아니라 성찬에서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 거할 때에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 그분을 떠나서는 우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참조 요 15:4-5). 설교의 말씀에 귀 기울이고 성찬에 참여함으로써, 우리는 우리의 믿음을 고백할 뿐 아니라 또한 우리의 구원을 위해 우리가 삼위 하나님께 의존함을 고백합니다. 설교와 성찬은 우리의 고백과 믿음에 선행하는 은혜의 방도들입니다. 미국 선교사들과 그들의 신학이 끼친 영향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에 그 자리를 내어 주어야 할 것입니다.



결론: 은혜와 제자도의 방도인 성찬


주께서 가르치신 기도에 나오는 “일용할 양식(매일의 떡)”이라는 표현을 가지고, 종종 어떤 이들은 성찬을 매일 기념해야 하는 것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36) 앞서 살펴본 것처럼, 성찬은 예배와 분리해서 존재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성찬이 시행되는 곳은 어디나 교회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중세에 화체설이 공식화한 이후로 그리스도인들은 성찬에 참여하는 일에서 뒤로 물러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것은 종교개혁의 교회들이 성찬을 매주일이 아니라 정기적으로, 이를테면 3개월에 한 번씩 시행하게 된 한 가지 이유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개신교도들이 성찬을 정기적으로 받는다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까? 성찬이 은혜의 방도라고 말하는 것이 정당하다면, 얼마나 자주 성찬을 시행하여야 합니까? 성찬은 매일 제자로서 살아가는 것과 어떻게 연결이 됩니까?

성찬은 잔치입니다. 식사 중에 제정되었고, 그런 점에서 활기 넘치는 잔치로 지켜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기독교 역사 전체를 놓고 보면 사실은 그렇지 못하였습니다. 그 한 가지 이유는 아마도 성찬이 예수님의 고난 기간에 제정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덧붙여서 성찬에서 그분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것이 관례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앞서 언급한 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죽으심만이 아니라 그분의 전체 유익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비록 예수님께서 이 만찬을 그의 죽으심 직전에 제정하셨지만, 성찬의 자리에서 우리는 죽임 당하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기념하는 것이 옳습니다. 우리가 성찬에서 전체 그리스도를 기념한다면, 또한 그 자리에서 우리는 그분의 재림과 어린양의 혼인잔치도 바라보게 됩니다(계 19:7,9).

대체로 사람들은 개신교회들이, 개혁교회를 포함하여, 성찬을 중시하지 않는다고 여깁니다. 개혁자들은 미사를 쇼로 여기고 혐오하고 정죄하였습니다. 그 대신에 그들은 듣는 설교를 강조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성찬의 중요성을 간과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성찬은 주께서 친히 제정하신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께서는 열한 제자에게, 가서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하고 그들에게 세례 베풀 것을 명하셨습니다(막 16:15-16; 마 28:19-20). 예수께서는 배반당하시기 전에 친히 성찬을 그분을 기념할 예식으로 제정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친히 제정하신 것을 우리는 멸시하지 말아야 합니다.

성찬을 예배의 자리에서 매주 시행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매우 중요합니다. 개혁교회의 예배는 중세의 정오 기도모임에서 유래하였고, 따라서 성찬이 없습니다. 기억해야 할 것은, 성찬이 결여된 예배는 예배라 부를 만한 자격을 갖추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오랫동안 지속된 이러한 역사는 바뀌어야 합니다. 개신교회의 신자들은 성찬을 매주 누릴 권리가 있습니다.37) 은혜의 방도인 성찬은 설교의 부록이 아닙니다.

성찬을 회개케 하는 예식의 방편으로 이해하고 사용할 수 있습니까?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82문을 예로 들면, “자신의 고백과 생활에서 믿지 않음과 경건치 않음을 드러내는 자에게도” 성찬이 허용되는가를 묻고는,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언약이 더럽혀져서 하나님의 진노가 모든 회중에게 내릴 것입니다.” 하고 말합니다. 교회의 지도자들은 이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행하고 “그러한 자들이 생활을 돌이킬 때까지 성찬에서 제외시킬” 의무가 있습니다. 신뢰할 만한 신앙고백을 행하고 윤리적인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만 성찬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주의 식탁에 참여하는 것은 사랑하는 자와 사랑받는 자 간의 교제에 참여하는 것으로서 오직 이미 그리스도께 속한 자들만이 감당할 수 있습니다.38)

대체로 미국 기독교 역사 초창기의 청교도들은 교회 회원의 순전함을 보존하기 위해 자신들의 회중 밖에 있는 죄인들에 대하여서는 무시하고 지나갔습니다. 비록 그들은 설교가 하나님께서 인간을 회심시키시는 주된 방도임을 인정하였지만, 목사들은 죄인들보다는 성도들을 향해 설교하였고, 그들의 설교는 믿음의 씨를 심기보다는 이미 자라나는 믿음에 자양분을 주려는 데에 더 치중하였습니다. 우리는 성찬을 폐쇄적으로 시행하는 일과 새로운 성도들을 찾는 일을 설교를 통해 결합시킬 필요가 있으며, 가능하다면 (앞서 말한 스코틀랜드의 풍습인) 성찬 절기 같은 방식으로 성찬을 시행함을 통해서도 그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교회는 세상 밖으로 회심한 자들끼리 모일 필요도 있지만, 계속하여 세상에서 아직 회심하지 않은 이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모일 필요도 있습니다.

앞서 이야기한 스코틀랜드의 성찬 절기에 대하여 관심 있게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 절기에는 여러 번의 설교와 금식, 찬송 기도가 있고, 그것들은 성찬에 이르러 절정에 다다르며 마지막에는 감사의 예식으로 마칩니다. 그와 같은 집단적인 성찬 절기 모임은, 개인주의가 지배적이고 공동체에 대한 존중이 교회에서조차 찾아보기 힘든 사회에서는 권장할 만한 풍습입니다. 일 년에 한두 차례 이러한 절기 모임을 갖는다면, 신자들이 좀 더 공동체적인 교제를 누리고, 권징의 영역을 확인하게 되며, 매일 제자의 삶을 살아가도록 하는 좋은 격려가 될 것입니다.

결국에는 말씀이 은혜의 주된 방도이자 믿음을 일으키는 주요 방도이며, 성례들은 다만 그것을 보존합니다. 그러나 그 두 가지는 모두 은혜의 방도들로서 우리가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몸으로 드러나도록 하여 줍니다. 성찬은 예수께서 제정하신 은혜의 방도로서 우리로 하여금 이 세상에서 그분을 따라 살도록 능력을 주는 면에서 말씀보다 조금도 못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말씀을 들을 때만이 아니라 그분의 성찬에 참여할 때에도 그분을 먹고 마십니다. 우리가 매 주일 성찬에 참여할 수 있게 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성신께서 우리를 그리스도께 참여하게 하시는 그 능력을 입게 된다면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께서 다시 오시고 삼위 하나님께서 영영히 만물을 충만케 하실 때까지 그렇게 해야 합니다!

 

 

<부록>


거룩한 회합 혹은 성찬 절기39)


중세에는 성찬을 매우 진지하게 시행하였으며, ‘그리스도의 몸으로 변화된 떡과 포도주’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매주 미사에 감히 참여하지 못하는 신자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미사 외에도 성찬과 관련한 다른 절기들이 있었는데, 예를 들면 성체축일(Corpus Christi)과 성체 숭배 및 사육제가 그러한 절기들이었습니다. 종교개혁은 이러한 절기들만 폐지한 것이 아니라 주일 외에는 중세 때의 다른 축일들도 폐지하였는데, 이를테면 성인 숭배, 죽을 자들을 위한 기도, 마리아 예배, 성물, 성지순례, 수도회 등이 해당되었습니다. 그 결과 개신교도들은 성찬을 매우 드문드문 시행하게 되었고, 매주일 시행된 개혁교회의 예배는 극도로 절제되고 단정한 방식으로 드려졌으며, 마치 설교가 은혜의 유일한 방도인 것처럼 주요 위치를 차지하였습니다. 이러한 것은 예배를 풍요롭게 하기보다는 빈곤하게 하였습니다. 이러한 면은 개혁교회의 예전에서 개선이 필요한 부분입니다.

이러한 빈곤함에 대한 반응으로서, 또한 성찬의 축제적 성격을 이어받는 의미로, 17세기 초에 스코틀랜드 교회에서는 한 가지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이것을 성찬 절기(communion seasons) 혹은 거룩한 회합(holy fairs)이라 부릅니다. 이러한 관습은 장로교회가 미국의 일반적인 종교생활에 기여한 주목할 만한 부분입니다. 스코틀랜드와 이후에 북아일랜드에서는 장로교도들이 성찬을 기념하는 독자적인 방식을 발전시켰습니다. 그들은 일 년에 한두 차례 모여서 며칠에 걸쳐 일련의 설교들을 행하였습니다. 스코틀랜드 장로교에서는 성찬절기 혹은 때로는 거룩한 회합이라 불리는 이 모임이 매해마다 일주일 동안 축제로 모였는데, 그 축제의 하이라이트는 성찬이었습니다. 그 축제는 대개 목요일에 금식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금요일은 ‘질문하는 날’로 알려져 있는데, 그날에는 “그 사람들”이라 불리는 평신도들인 요리문답반 교사들이 목사가 고른 성경 구절들에 대하여 해석하였습니다. 그들은 때로는 지역적인 부흥운동에서 은사주의적인 지도자들로 부상하기도 하였습니다. 토요일은 준비하는 날이었습니다. 클라이맥스는 안식일에 성찬을 시행하는 일이었는데, 종종 야외에서 원형경기장 모양으로 생긴 지대에서 시행되곤 하였습니다. 월요일에는 감사의 예배를 드렸습니다. 설교들은 회개와 그 특별한 징표를 제시하는 일을 강조하였습니다.40) 거기 모인 많은 사람들은 큰 식탁으로 나아가 거기서 빵과 포도주를 나누어 먹었습니다. 장로교도들이 이러한 ‘성찬 절기’를 신세계로 가지고 들어갔을 때, 그들은 종교적인 경험을 발산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였는데 이러한 것은 특히 변경 지역에서 중요하였습니다. 1790년대와 그 이후 미국 부흥운동의 핵심으로 발전한 ‘전도 집회’는 많은 경우에 이러한 초창기 성찬 절기들에서 직접 이어진 것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시간이 흐르면서 이 집회들은 점차 원래의 장로교적 특성들을 잃어버렸고, 초기 장로교도들이라면 절대 허용하지 않았을 ‘열린 성찬’을 시행하는 데로까지 나아갔습니다.

스코틀랜드 개혁자들은 예식의 중심을 희생 제단에서 성찬상으로 옮겨왔고, 성찬의 요소들을 받을 때에 무릎을 꿇던 것을 바꾸어서 앉아서 받도록 하였습니다. 식탁에 앉은 참여자들은 성찬의 요소들을 집어서 빵과 포도주를 옆 사람에게 건네주었습니다. 개혁자들은 누룩 없는 성체 대신에 누룩 있는 빵 덩어리들을 사용하였습니다. 그들은 성찬상 둘레에 울타리를 쳐서, 신자들과 불경건한 자들을 분리시켰습니다. 그들은 로마가톨릭 신자들이 성체축일에 성체를 받아서 함께 행진하는 축제를 거행하는 것을 경멸하여 폐지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옛적의 여러 방식들에 대한 애착이 당연히 남아 있었으므로, 경건생활에 변화를 주려는 그들의 구상과 충돌하였습니다. 그들은 옛적의 방식들 대신에 지속된 치리와 경건생활을 마련하였습니다. 개혁자들은 가톨릭의 축제 행렬을 그만두고 그 대신에 매일의 삶을 그리스도와 누리는 영속적인 축제가 되게 하려고 힘썼습니다. 그렇지만 그러한 축제들이 사라짐과 함께 종교는 일반 사회와 친밀했던 관계가 좀 소원하여지게 되었습니다. 개혁 신앙은 그 옛적 맞수보다 더 사적인 색채를 띠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복음주의자들은 성찬을 중심으로 하는 어떤 공적 행사를 성대하게 마련하려고 힘쓰기도 하였습니다. 스코틀랜드 장로교도들은 ‘보편교회 신자들’(가톨릭)로서 계속하여 성찬을 기독교 예배의 가장 숭엄한 행사로 보았습니다. 그들은 이 특별한 행사를 위하여 금식과 기도와 묵상 같은 회개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들은 행사의 장엄함을 나타내기 위해 아름다운 천으로 성찬의 요소들과 성찬을 기념하는 장소를 덮었습니다.

로마 가톨릭의 부활절과 성체 축일에서처럼 스코틀랜드 고지대의 장로교 연례 성례 행사는 수많은 대중을 매료시키려 하였고, 신앙심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도록 크게 장려하였습니다. 그 행사는 여름과 초가을에 열렸으며, 성찬은 연례 축일들의 경우처럼 공개적으로 환호 속에 맞았습니다. 그것들과 함께 장로교도들은 옛적 가톨릭의 관습들과 유사한 축제를 만들어 냈습니다. 이러한 성찬 행사들은 1620년대와 30년대에 제임스 6세의 지지를 등에 업은 감독교회파에 대하여 장로교도들이 저항할 때에 생겨났으며, 원래 교구적인 행사이던 것이 대형 복음주의적 모임으로 변화되었습니다. 1610년에 왕은 잉글랜드의 예배 의식을 재정비하고 스코틀랜드에 감독제 교권을 수립하였으며, 부활절 성찬 기념을 지시하였습니다. 1618년에 그는 성찬을 무릎 꿇고 받도록 요구하였고, 개인적인 성찬과 세례를 허용하였으며, 성(聖) 금요일과 오순절, 성탄절 같은 성일들을 다시금 제정하였습니다. 수많은 장로교도들이 경건한 가운데 거행되는 성찬을 찾아서 도처로 옮겨 다녔습니다. 회개를 촉구하는 설교가(conversionist)들이 한 회중이나 혹은 대형 집회 장소에서 설교하고 나면 성찬이 이루어졌습니다. 성찬 이전에 예배가 이루어졌으며, 사람들은 각기 자기를 살폈고, 성찬상에 울타리를 세심하게 둘렀으며, 성찬용 토큰, 야외 설교, 광범위한 지역에서 사람들이 대거 몰려드는 현상, 긴 철야기도들, 회심과 입교, 3일 이상 지속되는 장기적 행사를 위해 대중적인 목사들이 협업하는 일 등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성찬과 각성 운동이 결합된 양상의 집회는 1590년의 로버트 브루스(Robert Bruce, 1630)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습니다. 그는 존 낙스의 후계자로 에딘버러의 세인트 자일스(St. Giles) 교회 및 인버네스(Inverness) 지역의 목사였습니다.

웨스트민스터 대회에서 스코틀랜드인들은 잉글랜드 청교도들에 맞서서, 성찬을 받는 사람들이 식탁으로 나아가야 하고 받지 않는 사람은 그 의식을 지켜보아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반면에 잉글랜드인들은 그것보다 더 폐쇄된 방식의 성찬을 선호하였습니다. 즉 그 자리에 오직 성도들만 참여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1650년대에 언약도들(그들 중에도 특히 찰스 1세에 저항하는 자들)이 처음 대중적인 성찬을 시작하였을 때에, 성찬에서 시행되는 설교의 수가 지역 목사들의 수만큼 증가하였으며, 주중 금식일들은 갈수록 증가하였습니다. 그뿐 아니라 원고에 매이지 않고 즉석에서 드리는 기도와 설교에 대해 강조하는 것이 당연한 일로 고착되었습니다.41) 부흥운동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에는, 성찬은 가장 가까운 지역에서 온 장로교도들이 시행하였습니다. 회중의 울타리에 있다가 더 넓은 영역으로 온 신자들에게 그러한 모습은 매력적이었습니다. 1660년에 찰스 2세가 왕위에 복귀하면서 항의자들에게는 재앙이 닥쳤으며, 그들의 목회자가 내쫓기게 되면서 언약도들은 대부분의 회합을 가정집에서 가질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왕과 의회는 이러한 비밀집회소에 모여 예배하는 사람들을 어떻게든 탄압할 수가 없었습니다. 1670년대 중반에 이르면 그들은 다수를 이루게 되었고 들판에서 수천 명이 모이는 것이 드문 일이 아니게 되었습니다(38). 1688년의 명예혁명에서부터 1750년까지 이러한 성례 행사는 스코틀랜드 장로교회의 부흥운동이라는 오랜 역사와 발달된 전통에서 점점 더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이 성례 행사는 회심주의자들의 설교와 성찬의 관습이 복음주의적으로 조합된 형태를 띠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부흥운동들은 신자와 불신자, 구원받은 자들과 죄인들 모두를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왜냐하면 이 장로교인들에게는 구원과 성례가 밀접하게 연결된 것이었고, 심지어 분리될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전통에서는 회심과 성례가 함께 이루어졌습니다.”42) 그런 다음에는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제자들로서 세상으로 파송되었습니다.

스코틀랜드 장로교회가 아메리카 식민지에 이식되고 1706년에 첫 장로회가 조직되면서, 성례 행사도 곧 이어 대체로 농경 사회이던 아메리카의 산재된 지역들 안에 새로 만들어졌습니다. 식민지의 이 장로교도들은 다음 세대가 발전시켜 나갈 토대를 잘 닦아 놓았습니다. 성례 행사는 서부 펜실베이니아에서부터 아래로 켄터키를 거쳐 버지니아와 캐롤라이나에 이르기까지 부흥운동이 일어나는 근본 토대가 되었습니다. 목요일의 금식과 토요일의 사전 집회, 긴 안식일 행사들, 그리고 월요일의 감사 예배에 이르는 이러한 기본적인 형태들은 분명하게 그대로 보존되었습니다. 장로교 목사이던 제임스 맥그리디(James McGready, 1763-1817)는 1797년에서 1800년 사이에 켄터키에서 18회의 부흥운동을 이끌었는데, 그중 16회는 성례의 의식들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동료이자 후에 그리스도의 제자 교회(the Disciples of Christ Church)를 설립한 바톤 스톤(Barton Stone, 1772-1844)은 그의 사역 초기부터 장로교 전통에 입각한 부흥운동을 이끌었는데 1801년에 케인 릿지(Cane Ridge)에서 2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과 더불어 부흥운동을 할 때에도 그러하였습니다. “몸짓을 동반한 설교, 성찬상들, 천막, 계속되는 음식들, 서로를 돕기 위해 모인 수많은 목사들, 장로의 역할 같은 것들이 모두 스코틀랜드 전통을 떠올리게 하는 것들이었습니다.”43) 종교적인 황홀경들, 이를테면 환상이나 기절하는 일 같은 것들은 장로교 전통에서 매우 흔한 것이었지만, 영적 대각성 운동에서의 성례 행사들은 그 범위나 황홀경의 행위들의 빈도 면에서 이전의 성찬 집회들을 훨씬 능가하였습니다. 그뿐 아니라 집회에 참석하는 사람들은 점차로 그 지역 사람들의 호의에 기대기보다는 야영을 하였습니다. 이러한 대규모 야영 기술은 성찬 절기로 지키던 것들의 상당수를 성례 야영 집회로 바꾸어 놓았고, 감리교도나 컴벌랜드의 장로교도들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 사이에 전격적인 야외 집회의 길을 열어 놓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전통적인 장로교적 성례 모임들에 끼친 감리교와 침례교의 영향은 분명하였습니다. 옛적의 의식과 관습들, 성찬상의 울타리, 성찬의 토큰, 활기찬 스코틀랜드 시편찬송, 예비 모임들, 금식일, 감사 예배, 설교, 긴 린넨으로 덮인 식탁에 앉는 것, 수많은 군중들, 장막에서 이루어진 야외 설교 같은 것들은 많은 경우에 1820년대와 30년대까지, 일부에서는 그 훨씬 이후까지도 지속되었습니다. 성찬 절기는 미국 장로교도들을 스코틀랜드 전통에 오래도록 묶어 두었으며, 그러면서 동시에 변화와 새로운 형식의 등장을 촉발하였습니다. 거주민들이 드문드문 산재하는 지역들은 옛 성찬 풍습을 시행하기 위한 좋은 터전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행사들은 신자들 서로 간에 사랑과 연합의 끈을 마련하는 데에 도움이 되었고, 또한 자비와 상호 관계를 다지는 축제가 되었습니다. 한 회중으로 모여 금식하고 기도하며, 일제히 일어서고 앉으며, 함께 듣고 보는 것들은 그들이 집단적으로 행하던 또 다른 사례이며, 성찬 예식은 계속하여 그 중심에 있었습니다. 신자들은 성찬상의 둘레에 앉았는데, 이것은 스코틀랜드 장로교회 사람들의 전유물과 같은 관습이었습니다. 그들은 성찬의 요소들을 자신들 가운데 나누어 배치하였습니다.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식탁에 초대하시는 동등한 손님들이었습니다. “성찬의 상에 울타리를 치는 것은 복음주의의 도덕성을 확증할 뿐 아니라 그것을 공고히 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였습니다.”44) 그러나 이러한 전통에는 어두운 면들도 있었습니다. 축제로 거행된 이 성찬들은 종종 논쟁으로 얼룩졌고, 논쟁의 당사자들은 서로를 성찬상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렇게 이루어진 성찬들을 보면, 성찬에 배제된 사람들이 참여하는 사람들보다 훨씬 많은 경우들도 생기기도 하였습니다. 성찬을 통하여 공동체가 형성되기도 했지만, 때로는 다툼과 불화, 파벌이 생기기도 하였던 것입니다.45)

1820년 이후에는 스코틀랜드와 미국에서 전통적인 예식들이 장로교적인 문화를 더 이상 붙들지 않게 되었습니다. 성찬 절기 동안에는 그리스도인들이 서로 교제하고 성찬을 축제로 즐기는 일이 함께 이루어졌고, 그러한 모습은 한동안 혹시 게으름을 부추기고 과도하게 유흥을 조장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샀습니다. 실제로 과도한 음주와 성적인 문란함이 보고되기도 하였고, 격렬한 비판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실제로 근대 초에 장로교도들은 음주와 신앙의 교제가 공존하는 상황을 용인하였습니다. 따라서 1830년대부터 1880년대로 이르는 동안에 성찬에서 포도주를 제거해야 한다는 절대론자들의 운동은 폭넓은 지지를 끌어 모으게 되었습니다. 이들의 운동은 ‘거룩한 주간’(holy fair)이 게으름을 부추기고 무절제한 음주와 부도덕함을 조장한다고 생각하였고 따라서 이러한 행사를 중단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무엇보다도 전통적인 성찬 절기는 당대의 새로운 시대정신에 어울리지 않는 것이 분명하게 보였습니다. “계몽주의는 스코틀랜드와 미국의 문화에 깊이 스며들면서 여러 다양한 면에서 이러한 성찬 절기들의 종말을 가져오는 데에 크게 기여하였습니다.”46) 이에 더하여 자본주의 경제 체제가 점차 득세하면서 이 역시 성찬 절기의 퇴락에 기여하였고, 종교적인 축제는 더욱 그 터전을 상실하여 갔습니다. 19세기 사회의 경제적인 현실도 이렇게 한 주 동안이나 길게 이어지는 복음주의 축제를 비실용적이고 받아들일 수 없는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신자들은 비록 이 야외 행사들이 자신들의 교회에서는 맛보지 못하던 장엄하고 숭고한 어떤 것을 즐기게 만들어 주었지만 그럼에도 피로감을 점차 느끼게 되었습니다. 1840년대에 이르면 이러한 성찬 절기 행사는 완전히 소멸된 것은 아니더라도 전체적으로 볼 때 종언을 고하였으며, 결국 성찬은 실내로 되돌아왔습니다. 신앙이 이렇게 사유화되면서 성찬 예식에도 변화가 생겼습니다. 성찬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그 성찬의 요소들을 받을 때에 자신의 회중석에 그대로 앉아서 받는 경우들이 늘어났고, 따라서 이전의 긴 성찬상은 점차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복음주의적 가치 체계와 그 종말론을 성대하게 드러내는 행사도, 울타리 친 식탁을 통해서 성찬의 회원권을 나타내는 일도 없게 되었습니다. 성찬 절기의 그 시끌벅적한 무리들에서 벗어나, 현대의 장로교 예배는 근대초의 전통에 비해 좀 더 정제되고 질서정연하여졌습니다. 성찬 축제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무게가 나가는 성찬의 잔을 같이 사용하면서 배불리 마셨습니다. 많은 이들이 보기에 이러한 음주의 관습은 사람을 타락시키는 위험스러운 것이었습니다. 이제는 작은 잔들을 개별적으로 사용하게 되었는데, 이것은 성찬의 지위가 감소한 것을 단적으로 나타내는 상징이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옛적 성찬 축제는 우리에게 좋은 유산을 남겼습니다. 스코틀랜드 교회의 당시 경건서적들은 아직도 계속 재출간되고 있습니다. 성찬들은 다양한 부류의 부흥운동들에 대한, 가장 분명하게는 야외 전도 집회들에 대한 헌사였으며, 새로운 부흥주의 운동의 방법론들 이를테면 ‘열망의 의자’(anxious benches)나 ‘결단의 자리’(seats of decision) 혹은 장기 집회 같은 것들을 평가할 만 한 배경을 일찍이 제공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새로운 부흥주의운동은 옛 전통을 잘 보존하지 못하였습니다. 칼빈주의적인 유산이나 장로교적 성찬과는 거의 관련이 없습니다. ‘열망의 의자’나 ‘결단의 자리’로 나아가는 것이 새로운 부흥주의운동에서는 성례전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고, 성찬은 이전의 중심적인 위치에서 쫓겨났습니다. 전도 집회는 감리교회가 팽창하는 거대한 동력으로 작용하였습니다.47) 따라서 부흥주의는 언약 백성으로서 참여하는 성찬의 핵심에 있는 기본 전제들 중 하나를 훼손하였습니다. 게다가 부흥주의는 스코틀랜드적인 배경을 지닌 장로교도들이 혐오하던 공개 성찬으로 가는 길을 열어 놓았습니다. 심지어 그 지도자들은, 늘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성찬을 회개케 하는 예식으로 사용하기도 하였습니다. 이 모든 것들을 가지고서 부흥주의운동은 사람들의 회심과 선교를 목표로 삼았을 뿐 아니라, 더불어 시민의식을 갱신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나아갔습니다. 그렇지만 점차로 성찬은 이들의 집회에서 사라졌습니다. 미국의 대다수 장로교도들이 종교개혁이나 웨스트민스터 대회를 되돌아보면, 그 사이의 역사는 그저 이것저것 첨가되고 배교했던 역사로만 비쳐졌습니다. 때로는 그러한 탄식에서 옛 전통의 부활을 주장하는 목소리들이 나오지만, 성찬과 관련하여 자신들의 고유한 전통을 개선시키고 갱신하기 위해 되돌아보는 일은 결코 하지 않습니다.

 



1)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HC)의 영역본은 다음의 책에서 인용하였다. Book of Praise of the Canadian Reformed Churches (Winnipeg, Manitoba: Premier Printing LTD, 1998)

2)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WC’로 줄여 표기하고, 대요리문답은 ‘WLC“, 소요리문답은 ’WSC’로 표기한다.

3) 여기서 인용하는 칼빈의 『기독교강요』 영역본은 F.L. Battles의 것(Philadelphia: Westminster Press, 1975)으로서, 이 글에서 ‘4,14,3’이라고 하면 제4권 14장 3항을 가리킨다.

4) 세례는 청교도들 가운데서 성찬만큼 배타적인 예식으로 여겨진 적이 결코 없다. 성찬에 그 교회의 회원들만 참석하게 한 의도는 언제나, 성찬상에 부적합한 자들을 배제하려는 데에 있었다. 다음을 보시오. E.S. Morgan, Visible Saints: the History of a Puritan Idea (Ithaca and London: Cornell University Press, 1963), 133.

5) S.E. Ahlstrom, A Religious History of the American People (New Haven and London: Yale University Press, 1972), 159.

6) D.P McDowell, Beyond the Half-Way Covenant: Solomon Stoddard’s Understanding of the Lord’s Supper as a Converting Ordinance (Eugene, Oregon: WIPF & Stock, 2012), xxiii-xxiv, 36, 41, 60, passim; D. Sweeney, “The Church” in S.H. Lee, ed., The Princeton Companion to Jonathan Edwards (Princet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05), 187.

7) Morgan, op.cit., 146-151; Everett Emerson, Puritanism in America 1620-1750 (Boston: Twayne Publishers, 1977), 144.

8) J. Edwards, The Works of Jonathan Edwards, Vol. 1, (Peabody: Hendrickson, 2004), 502ff; cf. J. Edwards, The Great Awakening, C.C. Goen, ed., (Yale University Press, 1972), 12-17, 76-78.

9) 성찬은 교회사에서 ‘유카리스트’(eucharist, 감사절)이라고도 불린다. 이러한 용어는 우선적으로 성찬의 한 부분인 감사의 기도를 지칭하고, 다음으로는 그 요소들을 지칭하며, 마지막으로는 성찬의 전체 활동을 지칭한다.

10) J. Behm, “kla,w”, TDNT, 3,740.

11) 예배의 이러한 패턴을 고린도전서에서 볼 수 있다. 먼저 10:14 이하에서 성찬을 이야기하고, 11:2 이하에서 설교를, 다시 11:7 이하에서 성찬을, 12:1 이하에서는 설교를 말한다.

12) Didache, 14,1; Justinus, Apologia 1, 65 & 67.

13) “What Paul describes here is an agape meal”, R.H. Finger, Of Widows and Meals: Communal Meals in the Book of Acts (Grand Rapids: Eerdmans, 2007), 61.

14) G. Wainwright, Eucharist and Eschatology (London: Epworth Press, 1971), 148.

15) “The Scottish Confession of Faith, 1560”, Ch. 22, in A.C. Cochrane, ed., Reformed Confessions of the Sixteenth Century (Philadelphia: Westminster Press, 1966), 182.

16) Rohls, 228; WC, 29,6.

17) “The French Confession of Faith, 1559”, Art. 36, in Cochrane, op. cit., 157.

18) “Züricher Bekenntnis 1545”, in E.F.K. Müller, Die Bekenntnisschriften der reformierten Kirche (Leipzig: Möhme, 1903), 156,14-17.

19) Müller, 156,31.

20) “The First Helvetic Confession, 23”, in Ph. Schaff, Creeds of Christendom 3 (61931), (Grand Rapids: Baker Book House, 1990), 225.

21) “The French Confession 1559”, 36, Schaff, op. cit., 380; “The Scotch Confession of Fatin 1560”, 21, Schaff, op. cit., 468.

22) “The Second Helvetic Confession 1566”, 21, P. Jacobs, ed., Reformierte Bekenntnisschriften und Kirchenordnungen (Neukirchen: Moers, 1949), 234.

23) WC, 29,7; WLC, 170 & 174.

24) Augustinus, In Ioann. 80,3 (J 15:1-3), PL 35, 1840.

25) “Calvin’s Geneva Catechism, 1541”, 313, in Th.F. Torrance, ed., The School of Faith: the Catechisms of the Reformed Church (Pasadena: WIPF & Stock, 1996), 62.

26) “Calvin’s Geneva Catechism, 1541”, Q & A 353-355, in Th.F. Torrance, op. cit., 62.

27) J.T, Billings, Union with Christ: Reframing Theology and Ministry for the Church (Grand Rapids: Baker Academic, 2011), 113.

28) Calvin, Commentary on the 1 Corinthians (on 10:16).

29) Billings, 114.

30) Luther’s Small Catechism with Explanation (St. Louis: Concordia, 2006), 235.

31) “The Saxon Visitation Articles of 1592”, in R. Kolb & J.A. Nestingen, ed., Sources and Contexts of the Book of Concord (Minneapolis: Fortress Press, 2001), 259; cf. P.E. Engle, ed., Understanding Four Views on the Lord’s Supper (Grand Rapids: Zondervan, 2007), 88.

32) “The Augusburg Confession”, Art. 10, in Th.G. Tappert, ET. & Ed. The Book of Concord (Philadelphia: Fortress Press, 1959), 34.

33) R. Kolb, “Martin Chemnitz”, in C. Lindberg, ed., The Reformation Theologians (Oxford: Blackwell, 2002), 144-145,149.

34) F.A. James III, “Peter Martyr Vermigli”, in C. Lindberg, ed., The Reformation Theologians, 208.

35) Noll, op. cit., 170.

36) Cyprianus, De oratione dominica, 18, MPL, 4, 549A.

37) L.J. Vander Zee, Christ, Baptism and the Lord’s Supper (Downers Grove, Illinois: IVP, 2004), 193.

38) O.D. Crisp, Retrieving Doctrine: Essays in Reformed Theology (Downers Grove, Illinois: IVP Academic, 2010), 202.

39) We summarize and quote from the following book: L.E. Schmidt, Holy Fairs: Scotland and the Making of American Revivalism (Grand Rapids: Eerdmans, 2001); cf. B.L. Kimberly, The Eucharistic Theology of the American Holy Fairs (Louisville, KY: Westminster/John Knox, 2011).

40) Cf. G.F. Hill, “Token”, in J. Hastings, ed., Encyclopaedia of Religion and Ethics, 12 (Edinburgh: T &T. Clark, 1921), 359.

41) L.E. Schmidt, Holy Fairs, 33.

42) Schmidt, 49-50.

43) 64.

44) Schmidt, 112.

45) 113.

46) 183.

47) Hudson, 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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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목회계획] 목회계획, 이렇게 세웠다

    이번 기획기사는 목회계획입니다. 올 한 해를 정리하는 것도 버거운데 벌써 새로운 한 해에 대한 계획을 세우기에 분주합니다. 주님의 교회는 인간적인 아무 계획도 세우지 않고 그때그때마다 성령님의 인도를 받아야 하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
    Date2015.11.06 By개혁정론 Views3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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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통합, 그 이후] 고려교단의 형성과 분열 (2)

    이번 기획기사는 '통합, 그 이후'입니다. 지난 제65회 총회에서 고신총회와 고려총회가 역사적인 통합을 이루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통합은 개교회 차원에서 교류를 시작하면서 서로의 고백과 신앙을 확인하다가 통합에 이른 것이 아니라 총회 임원회를 중심...
    Date2015.11.04 By개혁정론 Views5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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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통합, 그 이후] 고려교단의 형성과 분열(1975-2015) (1)

     이번 기획기사는 '통합, 그 이후'입니다. 지난 제65회 총회에서 고신총회와 고려총회가 역사적인 통합을 이루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통합은 개교회 차원에서 교류를 시작하면서 서로의 고백과 신앙을 확인하다가 통합에 이른 것이 아니라 총회 임원회를 중심...
    Date2015.11.02 By개혁정론 Views5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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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No Image

    주의 만찬을 은혜의 방도로서 시행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 유해무

    지난 10월 13일부터 16일까지 독립개신교회 강변교회당에서 열린 제5회 개혁교회들의 아시아태평양 대회(Asia-Pacific Conference of the Reformed Churches. 약칭 AP-CRC, 주제: 세례와 성찬)에서 있었던 공개강연에서 발표된 유해무 목사(대한예수교장로회 ...
    Date2015.10.27 By개혁정론 Views3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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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세례와 복음 - 덕 반 가더른

    지난 10월 13일부터 16일까지 독립개신교회 강변교회당에서 열린 제5회 개혁교회들의 아시아태평양 대회(Asia-Pacific Conference of the Reformed Churches. 약칭 AP-CRC, 주제: 세례와 성찬)에서 있었던 공개강연에서 발표된 덕 반 가더른 목사(뉴질랜드개...
    Date2015.10.26 By개혁정론 Views27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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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기사

사설
[사설] 총회가 계파정치에 함몰되지...
[사설] 최근에 일어난 고려신학대학...
세계로교회 예배당 폐쇄 조치를 접하며 3
[사설] 총회(노회)가 모일 때 온라...
총회가 졸속으로 진행되지 않으려면
[사설] 누가 고신교회의 질서와 성...
공적 금식과 공적 기도를 선포하자
[사설] 어느 교회의 교단 탈퇴를 보며
[사설] 고신언론사 순환보직시행, ...
[사설] ‘표현’ 못지않게 중요한 것... 2
칼럼
관심을 가지고 보십시오.
동성애 문제에 대한 두 교단의 서로...
하나님께서는 역사의 잘못을 통해서...
페이스북을 떠날 때인가?
성찬은 오히려 우리의 육체성 때문...
더 나은 가정 심방을 위한 제안
가정 예배: 청교도로부터 배우기(2)
가정 예배: 청교도로부터 배우기 (1)
우리는 실천적 아르미니우스주의자...
[해외칼럼] 편향된 선지자, 제사장, 왕
기고
케임브리지와 바젤에서 바라본 로테...
고신은 개혁할 것들이 보이지 않는가?
[고신교회 70주년에 즈음하여 7] 고...
[고신교회 70주년에 즈음하여 6] 고...
[고신교회 70주년에 즈음하여 5]  ...
[고신교회 70주년에 즈음하여 4] 고...
청년 사역자의 눈으로 본 교회 청년
[고신교회 70주년에 즈음하여 3] 고...
[고신교회 70주년에 즈음하여 2] 총...
예수님께서 바닥에 쓰신 글 2
논문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교회 위협세...
바른 교리와 이단 개론: 이단의 뿌...
고신교회 제7차 헌법개정의 방향과 ...
뇌과학이 본 인간 이해 (박해정 교수)
인공지능기술의 현황과 전망 (김상...
현대생물학과 하나님의 창조 (박치...
빅뱅 천문학과 하나님의 창조 (성영...
고통의 신약적 이해
고통의 신학적 의미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미래목회 (권...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