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3년 10월 7일 팔레스틴 가자지구 하마스는 이스라엘에 대대적인 공격을 감행했다. 그들은 수백명을 죽이고 백 수십명을 인질로 잡아갔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온 세계가 전쟁통을 겪고 있는데, 중동에 새로운 전쟁이 발생할 상황이다. 이스라엘은 곧장 대대적 반격을 가했고, 가자지구를 봉쇄하고 곧 지상군을 가자지구로 투입할 기세다. 개혁정론은 오랜 갈등과 전쟁의 진원지인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를 어떻게 봐야할 것인지 집중해서 살펴볼 계획이다. - 편집장 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 어떻게 볼 것인가? 6]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신앙적으로 접근하기
신성윤
(구약학 박사, 한국외국어대학교 특임강의교수)
현재 심각한 양상으로 진행 중인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의 무력 충돌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5년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철수한 이래 2008년과 2012년과 2014년에 그리고 작년에도 충돌이 있었다.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이후의 세월 전체가 팔레스타인과의 충돌과 갈등의 시간이었다. 하지만 극단적 규모의 이번 하마스의 테러 공격과 이스라엘의 강력 응징은 지난 75년 사이에 벌어진 무력 충돌 가운데 가장 극심한 사태가 되었다.
팔레스타인 누구의 땅인가?
무력 충돌이 벌어지고 있는 이 땅이 팔레스타인으로 불리기 시작한 것은 AD 2세기 중엽 이후였다. 가나안이나 이스라엘 또는 유대 땅으로 불리던 이 지역이 팔레스타인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 것은 로마 통치 때문이었다. 타 피지배 민족들과 달리 지속적으로 로마 식민 통치에 반항하면서 두 차례나 대규모 반란을 일으키자(AD 67, 132), 로마제국은 유대인들을 그 땅에서 완전히 추방하고 그 땅의 이름도 지우고자 했다. 그래서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이스라엘 민족의 고대 역사에서 오랫동안 그들의 적이었던 블레셋의 이름을 따서 ‘필리스티아’라는 새로운 지명을 부여했다. 거기에서 오늘의 팔레스타인이 나온 것이다.
유대인들에게 팔레스타인이라고 불리는 이 땅은 그들의 고토(古土)다. 이스라엘 건국선언서는 이곳에서 유대민족의 정치적인 공동체와 역사와 문화가 형성되었고 이곳에서 민족적이며 인류 보편적인 문화유산인 구약성경이 기록되었다고 그 첫 부분에 기록한다. 팔레스타인이 유대민족의 땅이라는 것이다.
반면에 아랍인들 입장에서는 유대인들에게 그런 역사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는에 상관없이 팔레스타인은 자신들이 대대로 살아왔던 아랍인들의 땅이다. 지난 세기에 어디에서 갑자기 굴러온 돌이 박혀있던 돌을 밀어내었다고 굳건히 믿는다.
이 민감한 주제는 객관적으로 확인될 필요가 있다. 팔레스타인 지역의 인구 동태를 연구했던 학자들의 견해에 의하면 오랜 기간 팔레스타인은 많은 인구가 거주하지 못했던 지역이다. 16세기부터 19세기 후반에 이르기까지 팔레스타인 거주민은 수십만을 넘지 못했다. 19세기 후반 유대인들이 핍박을 피하여 동유럽 지역에서 본격적으로 이주하기 전까지 전체 팔레스타인 인구는 30만 명이 되지 않았고 그 인구는 무슬림과 기독교인과 유대인의 순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지금 같은 지역을 살고 있는 유대인들과 아랍인들의 인구가 1,500만 명임을 고려하면 팔레스타인은 수백 년 동안 버려진 땅이었던 셈이다.
하나의 고유명사가 한 영토나 한 국가나 한 민족이나 한 문화의 정체성을 표현하려면 일단 그 용어는 그들이 구사하는 언어에서 파생된 고유의 어휘이어야 할 것이다. 자신들을 팔레스타인 사람이라 부르며 팔레스타인을 자기 땅이라고 주장하는 아랍인들은 이 용어 팔레스타인(Palestine)을 자신들이 구사하는 언어로 정확하게 발음할 수 없다. 28개의 알파벳으로 이루어진 아랍어에는 [p] 소리를 낼 수 있는 자음이 없다. 그 대신 [f]나 [b]를 사용하여 팔레스타인을 발음해야 한다. 팔레스타인이 자신들이 조상 대대로 살아온 고토이기도, 자신들의 고유한 영토이기도 힘든 이유가 될 수 있는 부분이다. 실제로 팔레스타인 아랍인들은 한 번도 그 땅에서 자신들의 국가를 이루어 본 적이 없었다. 이미 3,000년 전에 이 지역에 다윗과 솔로몬 왕국을 이루었던 역사를 가진 유대인들의 목소리가 더 클 수밖에 없어 보인다.
팔레스타인 영토 문제의 핵심 이슈는 예루살렘이다. 유대인들에게 예루살렘은 3,000년 전에 다윗이 도읍했던 유다왕국의 왕도였다. 하나님의 성전이 있었던 곳이고 유대민족의 심장과 같은 곳이다. 이스라엘 애국가는 이 예루살렘에서 자유민으로 사는 것이 유대민족이 2,000년 동안 가져왔던 희망이라고 노래한다.
7세기 초반에 사우디 반도에서 일어난 이슬람교가 예루살렘을 점령한 것은 AD 638년이었다. 무슬림 아랍인들에게도 예루살렘(알꾸드스)은 이슬람교 3대 성지인 알악사 사원과 더불어 선지자 무하마드가 승천한 바위가 있는 황금돔 사원이 있는 곳으로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곳이다.
가장 민감한 이 부분도 한번 객관적으로 관찰되어야 한다. 유대교의 경전인 구약성경에 예루살렘은 약 1,000년의 세월을 거치는 동안에 669회 언급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무슬림은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의 연관성을 부인한다. 예루살렘에 유대인들의 성전이 있었다는 것에 대해서 알지도 못하고 인정하지도 않는다. 7세기 중반에 완성된 것으로 알려지는 이슬람교의 경전 코란(꾸란)에 예루살렘이 단 한 차례도 직접적으로 언급되지 않는다는 것도 생각해 볼 문제이다. (예루살렘이 유대인들의 도시가 될 수 없다면 독도는 영원히 한국 땅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왜 민간인을 기습 공격했는가?
하마스는 1987년 요단강 서안에서 시작된 ‘이슬람 저항 운동’이라는 수니파 단체의 아랍어 명칭에서 세 단어의 첫 알파벳으로 만들어진 두문자어다. 아랍어로는 ‘열정’이라는 뜻이지만 같은 어근의 히브리어로 하마스는 ‘폭력’이라는 뜻이다. 하마스가 선량한 이스라엘 민간인들을 기습 공격하여 학살하고 납치한 것은 무장 정파 하마스의 정강과 관련이 있다. 하마스의 목표는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이스라엘의 궤멸이고, 다른 하나는 팔레스타인 땅에 샤리아법이 통치하는 이슬람 국가의 건설이다. 하마스 입장에서 이스라엘은 국가가 아니고 멸망시켜야 할 불법적인 대상인 것이다. 이스라엘 정부가 요단강 서안을 장악하고 있는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 파타흐와 협상 테이블에 앉는 것은 기본적으로 파타흐가 이스라엘 국가의 존재를 인정하기 때문이다. 하마스가 현재의 정강을 변경하지 않는 이상 이스라엘은 하마스와 공식적인 협상을 진행할 수 없다. 납치된 인질 석방 문제와 관련하여 주변 국가들이 중재하며 나서야 하는 이유가 거기 있다.
흥미로운 부분은 하마스와 이란의 관계다. 레바논 남부의 시아파 무장 세력 히즈불라가 이란의 통제 아래에 있는 것은 자연스럽다. 하지만 하마스는 수니파 무장 정파임에도 불구하고 이란의 지원을 받는다. 이슬람교는 대략 85%의 수니파와 15%의 시아파로 나누어지는데 이 두 이슬람 종파는 오랫동안 갈등해 오고 있다. 예멘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태는 수니파와 시아파의 두 종주국인 사우디와 이란 간의 대리전 양상을 띤다. 무하마드의 정통성을 잇는 후계자 문제로 이슬람교 초기에 시작된 양측의 적대적 대립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그런데 시아파 이란이 수니파 하마스를 돕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이란과 하마스가 공동의 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적의 적은 친구인 셈이다. 이들이 공유하는 정치적 군사적 목표는 이스라엘의 파멸이다. 이미 여러 차례 이란의 정치적 지도자는 공식 석상에서 이스라엘을 지도상에서 지워버려야 한다고 공언한 적이 있다. 이것은 이스라엘 입장에서 이란의 핵무장을 결코 용인할 수 없는 이유가 된다.
왜 기어코 가자로 진입하는가?
탈무드에는 ‘누가 너를 죽이러 오거든 네가 먼저 그를 죽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이것은 살인을 금하는 십계명 제6계명과 상충되지 않는다. 유대교에서 인간의 생명은 가장 존엄하다. 그래서 자살이 금기시된다. 자신에게 주어진 가장 고귀한 생명을 스스로 방어해야 할 율법적 의무가 있음을 탈무드가 설명하는 부분이다. 죄 없는 누군가의 피를 흘린 적이 없는데 누군가가 나에게 그 핏값을 요구한다면 그를 막아야 한다. 이유 없는 공격자로 하여금 피를 흘리게 하더라도 그를 제압함으로써 내 생명을 지켜야 한다. 이것은 자기방어의 원리이다. 이 원리는 개인에게도 적용될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의 국가 안보적 차원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 피에는 피가 중동 문화의 기본적인 삶의 원리이다. 하마스가 죄 없는 1,300여 명의 이스라엘 국민을 학살하고 납치했다. 율법을 근간으로 하는 유대 국가 이스라엘은 선량한 자국민의 피를 보수해야 할 율법적인 의무를 지닌다. 국가 지도자가 이 일을 감당하지 않으면 직무유기로 해석된다. 국제사회의 반이스라엘 여른이 어떻게 악화되든, 가장 가까운 우방이 어떤 압력을 행사하든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해야 할 의무를 이번에도 수행하게 될 것이다. 우리 측의 민간인이 희생당했기 때문에 상대측의 민간인을 공격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 이스라엘 군은 최대한 민간인의 희생을 피하려고 노력한다. 특정한 지역에 대한 공격이 결정되면 그곳 민간인들이 피하도록 사전에 경고하는 절차를 지킨다. 이것은 하마스가 자국민들을 인간 방패로 동원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마스가 이번 같은 테러 공격을 다시는 할 수 없도록 조치하고 난 후에야 가자에서 철수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하마스 같은 세력이 다시 부상할 것도 확실시된다. 그것은 단지 시간의 문제일 뿐이다.
이스라엘 하마스 무력 충돌의 본질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과 충돌은 여러 관점에서 볼 수 있다. 거슬러 올라가 구약성경 안으로 들어가면 양측 모두가 아브라함의 후손들이다. 이스라엘과 그의 형이었던 에서와의 인간적인 갈등, 그의 삼촌이었던 이스마엘의 후손들과의 갈등을 그 시작으로 볼 수 있다. 사실 유대인들과 팔레스타인 아랍인들은 자신들을 ‘브네이 도딤’ 곧 사촌지간이라고 표현한다. 사촌지간의 갈등으로 본다면 이 갈등은 민족적 갈등이다.
구약성경 안에는 이 두 민족 간의 영토적 갈등도 이미 암시되고 있다. 시편 83편에는 이스라엘 땅을 노리는 주변 민족들에 대하여 아주 흥미롭게 묘사가 나온다: “저희가 말하기를 우리가 하나님의 목장을 우리의 소유로 취하자 하였나이다”(시 83:12). 2,600년 전 남유다 왕국이 바벨론 제국에 멸망 당한 후 유다 남쪽 지역으로 에돔 족속이 이주해 온 것도 부정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로마 통치 때 유다 지역을 다스렸던 헤롯 대왕은 그렇게 들어왔던 이두메 곧 에돔의 후손이었다.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하지 아니하는 그리스도인의 관점에서 이스라엘-하마스 무력 충돌은 영적인 전쟁으로도 이해된다. 하마스 무장대원들이 지속적으로 외쳐대던 구호가 있다: ‘알라후 아크바르’. 알라가 가장 위대하다는 뜻이다. 이것은 기독교인들이 사용하는 ‘할렐루야’에 상응하는 이슬람교의 찬양 표현이다. 그들은 이스라엘 민간인들을 학대하고 학살하면서 알라신은 가장 위대하다고 외쳤다. 반면에 가자지구 작전에 투입되는 많은 이스라엘 군인들은 ‘전투에 나가기 전의 기도’를 암송할 것이다. 그들의 하나님 야웨(여호와)의 보호와 도움을 구하는 기도이다.
이 무력 충돌이 알라신과 야웨 하나님의 전쟁으로도 비쳐질 수 있는 부분이 없지 않다고 이야기한다면 선을 넘은 것일까? 요 며칠 사이에 하마스 지도자가 아랍어로 공언했다는 내용도 생각난다. 지금은 우리가 유대인들과 싸우지만 다음 상대는 기독교인들이라고. 적어도 이 인식에 근거한다면 이것은 외적으로는 종교 전쟁이요 내적으로는 영적 전쟁으로 볼 수 있겠다.
어떻게 볼 것인가?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을 우리는 어떻게 보고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눈에 보이는 부분은 보이는 대로, 눈에 보이지 않는 영역은 보이지 않는 대로 볼 수 있어야 한다. ‘지혜자는 그 눈이 머리에 있다’고 했다(전 2:14 히브리 원문 직역). 보고 생각하되 치우치지 말고 제한하지 말고 자신의 이해와 경험을 절대시하지 말면서 보아야 한다.
가자지구로 동원된 같은 믿음의 유대인 형제자매들, 가자지구 안에 갇혀 있는 주의 아랍인 형제자매들을 기억하자. 그들을 위해서 중보할 뿐만 아니라 생사의 기로 가운데 상상할 수 없는 고통에 처한 모든 이들을 기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