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는 전 고려신학대학원 원장을 지내신 허순길 박사와의 대담을 옮긴 것입니다. 본 대담은 지난 3월 19일(목) 오전에 성희찬 목사의 인도로 이루어졌고, 이 자리에는 마산제일교회 교역자들이 함께 참석하였습니다. 이미 아는 대로 허순길 박사는 화란 캄펜 신학대학교를 졸업하시고(1972) 호주 자유개혁교회의 목사로 목회하셨으며(1978-1987), 고려신학대학원에서 교수 및 원장(1972-1977; 1988-1999)으로 봉사하셨습니다. 허순길 박사님과의 대담은 총 3회에 걸처 등재 예정입니다.
I. 정체성의 회복 - 강단의 회복과 교리교육
성희찬 목사(이하 '성'): 교수님, 귀한 시간 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요즘 건강은 어떠십니까?
허순길 박사(이하 '허'): 그냥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나이가 점점 많아지니까...
성: 혈색은 좋아 보이십니다.
허: 그렇게 좋은 건 아닙니다. 아무래도 심장 수술을 해 놓은 상태이다 보니, 크게 무리를 안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성: 교수님께서 간간히 책도 내 주시고, 여러 주제로 글도 써 주셔서 목사들은 물론이고 교인들에게도 참 좋은 영향을 끼치시고 계신 거 같습니다. 비록 교수님께서 은퇴는 하셨지만 늘 가까이 계셔서 강의를 듣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허: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세계 교회 역사 이야기’ (『어둠 후에 빛: 세계 교회 역사 이야기』셈페르 레포르만다)를 썼습니다. 교인들이 세계 교회든, 한국교회든 간에, 교회 역사에 관심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로 인해 교회의 정체성도 사라지고 있는 거 같습니다. 이런 안타까운 형편 때문에, 젊은 사람들이 교회사를 읽어야 하겠다는 생각으로 책을 썼습니다. 쉽게 쓴다고 썼는데,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성: 아주 좋았습니다. 교회사적으로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사건들을 군더더기 없이 잘 엮어 주셨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교수님께서 쓰신 한국교회사에 관한 책(『한국장로교회사: 고신교회 중심』 두돌비서원)도 읽으면서 한국교회 내에서의 고신 교회의 위치와 하나님께서 한국교회를 어떻게 이끌어 가시는가에 대한 그 관점에 크게 동의 했습니다.
이렇게 찾아 뵌 김에 교수님께 몇 가지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우선은 교수님께서는 한국교회 전체를 어떻게 보고 계시고, 어떤 위치에 서 있고, 더 나아가서 이런 한국교회 현실 속에서 고신 교회가 어떤 사명과 과제를 가지고 나아갈 것인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허: 사실 제가 지금은 한국에 있지만, 사실 한국에서 교회에 깊이 관여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제가 보는 것이 피상적이지, 따라서 말하기가 조심스럽습니다. 제가 은퇴한 지가 16년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현실과 거리가 있을 수 있습니다. 깊이 알면 말을 할 수 있겠지만, 그럴 형편이 아닙니다. 멀리서 느끼는 것 밖에 없습니다.
그래도 몇 가지 말을 하자면, 기독교계 전체를 봐도 그렇고, 고신을 봐도 그렇고, 제가 느끼는 것은 ‘정체성이 사라진 것’이 심각하다고 생각합니다. 요즘은 소위 종교 다원주의 시대입니다, 교회도 다원주의를 거의 수용하고 있습니다. 그 증거로 교파에 대한 인식이 흐려졌습니다. 자기 교회, 교단, 교파에 대한 지식이 없고 자부심도 없어져 버렸습니다. 이나저나 다 똑같아져 버렸습니다.
교회 다원주의와 상대주의가 이제는 교회 안에 거의 보편화 되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에 대해 목회자들이 느끼는 것이 도무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냥 시류를 따라서 흘러가면 된다고 여기지, 달리 생각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것이 제일 큰 문제가 아닌가 라고 느낍니다.
다른 교회에 설교하러 가지 않으면 가까운 교회에 예배드리러 가는데... 비평하는 것은 아니지만, 예배에서부터 정체성이 없는 것을 봅니다. 현재 교회에 외부 강사를 초청하는데 그 권한을 총회에서 제한을 두는 것이 아니고 당회의 재량에 맡기고 있습니다. 이렇게 해 놓으니까 목사의 취향대로 청하고 있습니다. 강사를 청하는데 도무지 한계가 없습니다.
얼마 전에 근처 교회에서 외부 강사를 초청 했는데 목사가 아닌 사람을 초청해 놓고, 그 교회 담임목사가 사회를 보면서 “강사님께서 간증 설교를 하시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색소폰으로 찬송가 한 곡을 연주하고 간증을 시작했습니다. 간증을 약 1시간 반 정도를 하는데, 끝까지 참기는 했지만 견디기 어려웠습니다. 그 교회 담임 목사님을 괜찮게 생각했는데, 그런 모습을 보면서 크게 실망했습니다. 그나마 괜찮게 생각하고 나갔던 교회인데 이 정도라면, 아마 다른 교회들도 비슷할 거라 생각합니다.
이런 면에서 고신 교회의 미래가 걱정이 됩니다. 장로교라는 그 정체성, 장로교 안에서도 ‘고신’이라는 정체성이 이전에는 조금 있었는데, 그것이 사라졌습니다. 그것이 가장 큰 문제인거 같습니다.
성: 한국교회, 특별히 장로교와 고신 교회의 가장 큰 문제가 ‘정체성’의 문제라는 교수님의 지적에 크게 동감합니다. 혹시 정체성의 문제 외에 또 다른 문제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허: 두 번째로는 정체성이 없는 것과 동시에 한국교회가 개인주의와 개교회주의로 완전히 흐르고 있는데 큰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목사들이 자기 자신의 위치와 자기 교회의 발전 부흥에만 집착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한 가지 예로 얼마 전 어느 교회에서 예배를 드린 적이 있는데, 성도 수는 200명 정도 밖에 안되는데, 예배당 건물은 500명 짜리 건물을 지어 놓은 것을 보았습니다. 자리가 절반 넘게 비어 있으니까 그것을 채워야 겠다는 관심과 압박감만 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개그맨 출신 서세원 목사를 고신교회 집회 강사로 초빙하는 것입니다. 그 개그맨 출신 목사가 안수 한다고 다니고 하는 모습을 보면서... 고신 목사로서 많이 부끄러웠습니다. 자리 채우기 위해 그렇게 하는 거라고 밖에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사람을 어떻게 모으느냐? 빈 자리를 어떻게 채우느냐? 이것이 가장 큰 과제가 되어 버렸습니다. 이런 정신... 이것을 누가 교정할 수 있겠습니까?
강사 청빙을 개교회 당회에 맡긴 것은 개교회주의로 흘러가도록 만든 것이라 생각합니다. 교파를 중요하게 여기고, 정체성을 중시 여기는 것이 사라졌기 때문에 자유를 주라는 식으로 흘러가 버렸습니다. 순복음도 좋고, 침례교도 좋다. 사람만 많이 모으면 된다. 이런 의식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총회라고 하는 것도, 정체성과 지도력을 상실한 것이라 봅니다. 자기 정체성을 지켜 나가고자 하는 아무런 사명감이 없습니다. 이름만 장로교이지, 장로교라는 이름이 아무 소용이 없어 졌습니다. 이것이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또 다른 예로 지금 한국에서는 감리교도 장로를 세우고 있습니다. 세계 어느 나라에도 감리교회에 장로를 세우는 경우는 없습니다. 침례교에도 장로 안 세운다고 하다가 이제 세우기 시작했습니다. 기존에 안수 집사를 장로로 부르기로 했다는 것입니다. 전부다 평준화가 되어 버리고 있는 실정입니다. 정체성이 없습니다. 그 사람들(감리교, 침레교)도 사람 잃지 않기 위해 하는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결국 이것은 인간 중심이라고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성경 중심이라는 것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물론 약간씩 다르기는 할 것입니다. 아무래도 감리교는 목사 중심이니까, 목사가 교권을 행사하는 식일 것입니다. 그런 점은 다르겠지만 결국은 평준화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이런 때에 정말 정체성을 찾으려고 하면 장로교면 장로교, 고신이면 고신의 정체성을 찾는 운동이 제대로 이뤄져야 합니다.
성: 그렇다면 장로교로서, 그리고 고신교회로서의 정체성을 회복하기 위해, 또 개인주의와 개교회 중심주의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좋을지, 교수님의 의견을 여쭙고 싶습니다.
허: 정체성을 살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현장에 있는 사람들의 과제이지만 가장 먼저는 정체성을 잃었다는 것과 찾아야 겠다는 의식과 소명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누구에게도 이것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구체적으로는 무엇보다 강단의 회복이 제일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강단을 통한 정체성이 먼저 세워져야 합니다. 지금 고신 안에서 설교 하는 것 보면 거의가 번영신학입니다. 번영신학, 치유 등을 강조하는 형편입니다.
어느 교회에 갔더니, 설교가 끝나고 나서 중재와 치유의 시간을 가지는 것을 봤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있어서 치유라고 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속죄로 말미암은 속죄의 치유지.. 다른 치유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이런 일들이 고신교회 강단에서 행해지고 있습니다.
가장 급한 과제가 강단의 회복인데, 이것이 단기적으로 이뤄질 수 있는 일은 아니라 봅니다.
▲ 허순길 박사와 성희찬 목사가 대담 중이다. ⓒ 염덕균
성: 정체성의 회복을 위해서는, 우선 정체성 회복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과 사명감을 갖는 것이 필요하고, 그리고 가장 시급한 과제로 강단의 회복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때 강단의 회복은 강단의 기능과 권위 모두가 회복 되어야 한다는 말씀으로 생각됩니다. 아주 중요한 지적이라 생각합니다. 혹시 강단의 회복 외에 한국교회가 힘써야 할 또 다른 부분이 있을까요?
허: 지금 한국교회가 회복해야할 것은 첫 째로 강단이지만 그 다음으로 교리 교육이 필요합니다. 현재 고신교회 내에 교리 교육이 거의 사라졌다고 생각합니다. 세계 장로교회 역사에서 이렇게 교리 교육과 무관한 장로교회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한국장로교회의 역사를 살펴보면, 역사적으로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국에 장로교회가 설 때에 바른 장로교회의 터 위에 세워진 것이 아니라 모래 위에 세워 놨습니다. 12신조 위에 떡하니 세워 놓은 것입니다.
1969년(성: 선교 85년 만입니다.)쯤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들을 받기는 했지만, 형식으로 받았을 뿐이지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았습니다. 그때 총회가 장로교로서의 어떤 사명감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받은 것입니다. 목사나 장로나... 여기에 대한 중요성이나 사명감이 없었습니다.
세계 장로교 역사 속에서 너무나도 중요한 것인데, 이걸 잃어버렸습니다. 우리 자신이 공부해서 가르쳐야 겠다라는 사명감이 있으면 좋은데. 통과만 시켜놨고, 형식만 있었지... 아무런 결과가 없었습니다. 이런 표준문서들 가르치는 교회가 있다는 말을 별로 못 들어 봤습니다. 교회 청소년이나 장년부나... 이런 것에 대해 공부를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는 이전부터 항상 전도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남자나 여자나 교회 내에서 모임은 전부 ‘전도회’라 부릅니다. 아직도 7~80년대 명칭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이제는 그런 때가 지났습니다. 이제 다른 이름/명칭을 사용할 때입니다. 지금 ‘전도회’라 해가지고 나가는 것은, 과거 7~80년대 교회의 신학적 관심에 집착하는 것입니다. 이제는 ‘전도회’가 아니라, ‘교육’과 ‘양육’ 모임이 되어야 합니다. 앞으로는 명칭을 완전 바꿔서 교육.양육 그룹으로 바꿔야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개혁교회에 있으면서 청소년 교리교육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깨달았습니다. 지금 개혁교회에서는 장년층들이 목사를 존경하는데, 그 이유가 목사의 교리교육 때문입니다. 개혁교회 성도들은 목사를 존경할 줄 압니다.
이전에 호주 개혁교회에 있으면서 십대들을 가르친 적이 있는데, 지금 50대가 되어 장로가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내게 하는 말이 “목사님 설교 듣고 자랐습니다.”가 아니라, “목사님 저희가 목사님께 교리문답을 배웠습니다.”라고 말을 하는 것입니다. 또 캐나다에서 목회를 하고 있는 목사들이 있는데 그 목사들도 저를 만나면 항상, 저에게 교리문답 배운 것을 말합니다.
이런 것이 제자입니다. 이것이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현재 한국교회는 내면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교리적인 터가 없어서는, 설교만 한다고 변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피상적인 교육 밖에 되지 않습니다. 정체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이것이 필요합니다.
성: 강단의 회복과 함께, 교리적 토대가 든든히 서야 한다는 말씀이 크게 와 닿습니다. 현재 저희 교회에서도 부족하지만 교육부서에서 교리문답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한국교회 내에서도
최근에 신천지 같은 이단과 직면하면서, 교리교육에 대한 관심과 실천이 급증하고 있습니다. 이전에도 교리문답 공부들이 69년도에도 있었고, 80년대에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다만 이런 것이 하나의 ‘유행’으로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교리교육도 바르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바른 교리교육을 위해 교수님께서 제안해 주실 것이 있겠습니까?
허: 목사들이 직접 교재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소교리문답과 웨스트민스터 신조는 사실 너무 간단하게 축약되어 있습니다. 하이델베르크문답과 비교하면 더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개혁교회에서는 일반적으로 교리문답 교재로 웨스트민스터 대소교리문답보다는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을 채용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대소교리문답을 하이델베르크문답과 조화를 잘 시켜서 교안을 만들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을 위해 연구하고 글을 쓰는 사람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개혁교회에 가면 그런 연구들이 굉장히 풍성합니다. 교리교재를 만드는 전통이 있어서. 목사 개인이 만든 것과 신학자들이 만든 것,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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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순길 박사님과의 대담" 두 번째 이야기는 4월 2일(목)에 등재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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