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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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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기획기사의 주제는 “나는 이렇게 설교한다”입니다. 설교는 교회를 세우는 중요한 방편이며, 하나님께서는 설교로 자기 백성을 찾아오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영광스러운 직무를 목사에게 맡기셨습니다. 그래서 설교는 목사의 영광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설교는 목사에게 부담이기도 합니다. 많은 목사들이 설교의 영광과 부담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고민을 함께 나누어 보려고 합니다. 이번 기획기사를 통해 매주일 성실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 애쓰는 이들의 수고를 소개하고, 그 익을 함께 누리면 좋겠습니다. - 편집장 


 

 

나는 이렇게 설교한다

 

 

손재익 목사

(한길교회 담임)

 

 

나에게 설교란

 

   목회는 종합예술이다. 목회(牧會)는 여러 활동의 총체(總體)다. 설교, 기도(행 6:4), 성례 거행, 교육, 찬송, 심방, 상담, 권징, 리더십, 관계 등 어느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다. 그 가운데 설교는 목회의 핵심이다.

   설교는 목사의 가장 중요한 직무다. 목사는 설교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전한다. 내 입을 통해 선포된 말씀으로 교회가 세워진다. “말씀으로 세워져야만 하는 교회”라는 글(http://reformedjr.com/1941177)에서 쓴 것처럼 말씀 선포는 교회를 세우는 기초를 제공한다. 교회는 오직 말씀으로 세워져야 한다(딛 1:9). 아무리 건물이 크고, 예배 참석자 수가 많아도, 바른 복음 위에 교회를 세우지 않으면 무의미하다. 이런 점에서 설교란 너무나 중요하다.

   나에게 설교란 그런 것이다. 설교를 잘하는 건 나의 목표가 아니다. 바르게, 옳게, 분명하게 설교하는 게 목표다(딤후 2:5, 15).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하는 게 내 본분이다(행 20:27). 예수님께서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는 게 내 설교의 목적이다(마 28:20). 교인들을 가르치고 지도하고 격려하고 권면하고 위로하고 훈계하고 책망하여, 바른길로 인도하려고 설교한다(딤후 2:25). 내 설교는 교회 성장이나 내 이름을 내는 도구가 아니다. 설교로 유명해 지거나, 설교를 들은 교인들이 “목사님의 설교는 너무 좋습니다”라는 말을 해 주길 바라는 게 아니라 삼위일체 하나님과 복음만을 기억하기를 바랄 뿐이다.

   그렇기에 나는 설교에 목숨 거는 목회를 한다. 사실상 설교 외에 특별한 게 없다. 나의 일주일은 설교 준비와 설교 하기로 가득하다. 35분 정도의 주일 오전 설교를 위해 30시간을 투자한다. 나머지는 주일 오후 설교나 강의, 그 외의 일로 보낸다. 그렇게 한 주간이 끝나는 토요일 밤이 되면 녹초가 된다.

 

 

나의 일상

 

   “설교자는 앉으나 서나 설교 생각” 내가 쓴 『설교, 어떻게 들을 것인가?』(좋은씨앗, 2018)에 나오는 문장이다. 나의 설교 준비 과정은 이 책에도 간략히 소개되어 있다. 길을 가면서, 딴 생각을 하면서, 가족과 대화하면서, 밥을 먹으면서도 설교를 생각한다. 설교 준비는 ‘설교를 준비해야지’ 하면서 의자에 앉아 성경 본문을 펼치면서 시작하는 게 아니다. 삶 전체가 설교 준비다. 나의 일상에서 이뤄지는 일은 대부분 설교 준비와 관련 있다.

   설교는 쓰기에서 출발하는데, 쓰기를 위해 읽기(多讀)와 묵상(多商量)은 필수적이다. 수많은 읽기와 묵상이 모여야 비로소 조금의 쓰기가 가능하다. 그래서 읽고 생각하는 삶이 일상이다. 다양한 읽기와 다양한 묵상을 기초로 한다. 평소의 성경연구, 신학서적과 신앙서적 읽기는 너무 당연하니 자세히 쓰지 않겠다.

   나는 종이신문을 받아본다. 보수 성향과 진보 성향의 신문을 각 1부씩 구독한다. 치우치지 않기 위함이다. 꼼꼼히 읽지는 못하지만, 항상 대강을 살펴본다. 신문을 읽는 이유는 “한 손에는 성경을, 한 손에는 신문을”이라는 유명한 말 때문이다. 나는 대학 진학 시 사회학과로 갔는데, 그 이유 역시 “목사는 성경도 잘 알아야 하지만, 세상도 잘 알아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 때문이었다(http://reformedjr.com/5655). 포털을 통해 신문을 읽을 수 있음에도 굳이 종이신문을 읽는 이유는 편식하지 않기 위해서다. 인터넷 기사의 경우 아무래도 내가 좋아하는, 내 눈에 끌리는 제목만 클릭하게 된다. 포털을 통한 기사는 정보를 얻는데 도움은 되지만, 고른 정보를 얻을 수는 없다. 깊이 읽기보단 대충 훑게 된다. 반면, 종이신문을 읽으면 정치, 경제, 사회, 국제, 문화, 예술, 스포츠, 연예, 건강 등 모든 분야에 대해 대략 분위기를 알 수 있다. 좀 더 진지하게 읽을 수 있다. 종이신문을 읽는 가장 큰 이유는 ‘오피니언란’이다. 내로라하는 전문가들의 글을 읽을 수 있다. 그들이 세상을 보는 방식, 그들이 사용하는 어휘, 그들의 글쓰기 실력도 배울 수 있다. 국내 10대 일간지의 오피니언을 웹브라우저에 즐겨찾기를 해 두었다.

   나는 시나 문학평론을 가끔 읽는다. 좋아해서가 아니다. 설교자는 언어를 다루는 사람이라는 의무감으로 읽는다. 시인은 언어의 전문가다. 그들의 언어는 쉽고 다채로우며 깊고 섬세하며 풍부하다. 문학평론을 읽으면 좋은 문장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시와 문학평론은 나의 설교 언어를 건조하지 않고 따뜻하게 만드는데 도움을 준다. 이렇게 어휘력과 문장력을 기른다.

   그 외에도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는다. 나는 대학에서 사회학을 공부했기 때문에 사회현상을 분석하는 책들을 좋아한다. 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적용 거리를 얻는다.

어떤 글이든 읽다가 좋은 문장, 정보가 있으면 그때그때 각각의 주제별로 분류한 폴더나 문서에 기록해 둔다. 이때 각주를 달아서 출처를 분명히 한다.

 

 

설교 준비

 

   본격적인 설교 준비는 본문 선택과 연구, 주제 정하기, 개요 짜기, 설교문 작성, 퇴고 등으로 이뤄진다. 설교는 엉덩이에서 나온다. 얼마나 앉아 있느냐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앉아 있어야 읽고 연구하고 쓸 수 있다.

   주일 오전 설교 한 편을 위해 보통 3-4일을 투자한다. 최소 3일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의자에 밀착해 있다. 아무 방해를 받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집중에 방해되는 것을 최소화한다. 자투리 시간으로는 되지 않는 일이기에 긴 시간을 앉아 있는다. 설교문 작성과 퇴고의 단계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렇게 해서 작성된 원고는 A4용지 8장 정도, 200자 원고지 기준 70~90장 정도다. 실제 설교 시간은 평균 31~38분이다. 길면 47분, 짧으면 27분 정도다.

 

 

본문 선택

 

   본문 선택은 비교적 어렵지 않다. 연속본문 강해설교를 하기 때문이다. 성경의 한 권을 정해 연속적으로 설교하는 방식이다. 지금은 요한복음 강해 131번째다. 요한복음 20장을 하고 있다. 145번 정도로 마칠 것으로 예상한다. 만 12년간 담임목회를 하면서 마가복음(총 84주), 창세기(총 83주), 출애굽기(총 53주), 갈라디아서(총 21주), 야고보서(총 25주), 유다서(총 13주) 등을 강해했다.

   2020년 8월에 시작한 요한복음 강해를 2025년 6월에도 여전히 하고 있다. 중간중간 다른 설교를 했다는 거다. 52주 중에 약 10주 정도는 다른 본문으로 설교한다. 유아세례식, 입교식, 성찬식, 결혼 허락, 정교인 허입 등의 특별한 상황에 이른바 상황설교를 한다. 그 외에도 적절하게 주제설교를 한다. 출산, 낙태, 고통 등에 대해서도 설교했다. 이글을 쓰고 있는 2025년 6월 현재, 여섯 번은 요한복음 강해설교가 아닌 다른 설교를 했다.

   강해설교를 12년 하면서 느낀 건 너무 좋다는 거다. 설교자 본인에게 엄청난 유익이 있다. 성경이 무엇을 말하는지 더 잘 알 수 있다. 본문의 의도를 바르게 이해할 수 있다. 강해설교는 자연스럽게 앞뒤 문맥을 살피기 때문이다. 오랜 강해 설교의 경험에 따르면, 그동안 잘못 알고 있던 본문이 얼마나 많은지를 알게 된다.

   본문을 촘촘히 선택한다. 성경이 얼마나 풍요로운지를 연구하면서 느끼기 때문이요, 회중들도 그런 식의 설교를 통해 말씀의 풍성함을 경험한다. 요한복음 17장의 경우 10주를 설교했고, 18장의 경우 11주를 설교했다. 이렇게 하면 교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정말로 심오하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닫는다. 뿐만 아니라 내용을 확실히 기억한다. 현재는 ‘승천’이라는 ‘주제설교’를 하는데 6주를 지나고 있으며, 14주 정도를 계획하고 있다. 이렇게 하면 교인들은 ‘승천’이라는 주제의 의미를 어지간해서는 잊어버리지 않는다.

 

 

본문연구

 

   대부분의 설교자처럼 성경을 읽음으로써 본문연구를 시작한다. 관련된 서적들도 읽는다. 나는 내가 가진 책을 다 읽는 편이다. 요한복음 강해 중인 지금 10권 정도의 요한복음 주석, 해설서를 읽는다.

   읽고 연구하면서 가장 염두에 두는 것은 ‘본문이 무엇을 말하는가’(What It Meant)다. 본문이 말하는 교리, 주제, 교훈을 찾는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설교를 잘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바르게, 옳게, 분명하게 하기 위해서다. 혹여나 잘못 전하지 않을까 싶어 분별하면서 자세히 살핀다(벧후 1:20). 본문을 통해 성령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찾는다(고전 2:13). 유명하다는 설교자들을 보면 ‘본문이 무엇을 말하는가’를 건너뛰거나 ‘본문이 무엇을 말하는가’에서 출발하지 않고 ‘내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가’(What I want to say)에서 출발해 본문의 의미를 바꾸는 경우가 많다. 나는 설교자의 양심을 따라 그렇게 하지는 않는다. 설교는 나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어야만 한다.

   내 의도가 아닌 성령님의 의도를 찾는 작업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아니 너무 힘들다. 괴롭다는 말이 더 정확하다. 고도의 집중력이 요구되고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본문이 말하는 바가 무엇인지 분명해 지면 그와 관련된 책을 찾아서 연구를 보충한다. 예를 들어, 최근에 요한복음 20장을 연구하다가 승천을 말한다는 걸 발견하고는 승천에 관한 책들을 읽었다. 서재에 구비된 책을 읽고, 인터넷 서점을 통해 관련 책을 서치해서 구입해 더 읽었다.

   나의 오랜 목표는 성경신학과 조직신학의 통섭(Consilience)을 이루는 설교다. 그래서 내 설교는 철저히 성경 주해에 근거한 강해설교지만, 그러면서도 교리에로의 적용을 겸한다. 예를 들어, 요한복음 15장에서 포도나무 비유를 설교하면 그 본문의 의미를 다루면서 자연스럽게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다룬다. 나아가 세례를 다룬다. 나의 강해 설교 10편 중에 3~4편에는 반드시 신앙고백서나 요리문답이 언급된다. 이를 통해 우리 교인들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대소요리문답이 우리의 신조라는 사실을 설교를 통해서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본문을 연구하면서 읽은 책에서 수많은 문장들(materials)을 발췌하고 워드프로세서에 열거해 놓는다. 설교 준비는 작성하는 작업과 지우는 작업을 모두 하니, 나중에 지우더라도 일단은 다 써둔다. 참고한 주석, 관련 책에서 읽은 문장, 읽다가 내가 생각한 문장 등등을 일단 다 써 둔다. 그렇게 열거하다보면 자연스럽게 본문의 주제, 논리, 구조가 잡히기도 한다.

 

 

설교문 작성

 

   연구가 끝나면 작성이 시작된다. 연구와 작성은 구분되면서도 분리되지 않는다. 연구하면서 작성하고, 작성하면서 연구한다. 연구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쓰게 되니 작성이요, 작성하다보면 연구한 내용이 좀 더 분명해 진다. 어떤 저자는 잘못 해석했고, 어떤 해석은 좀 더 생각해 볼 문제고 하는 게, 이 본문의 의미는 이런 것이다 라는게 작성을 통해 드러난다. 작성을 통해 본문의 내용이 더 명확해진다.

   본격적인 작성을 시작하면 구조를 쓰는 게 선행된다. 설교문 작성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구조다. 서론, 본론, 결론이든 기승전결이든 구조를 갖춘다. 구조가 명확하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내용이라도 잘 전달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잘 짜인 구조는 들리는 설교가 된다. 본문 연구를 통해 구조가 잡히기도 하고, 설교문을 쓰면서 구조를 잡기도 한다. 한 번 정했다가 다시 고치기도 한다. 본문이 구조를 말해주기도 하지만, 청중의 이해에 적합하도록 구조를 바꾸기도 한다. 여러 차례 수정한다. 좋은 구조는 좋은 설교의 기초다. 우리교회는 어린아이들도 함께 예배드리는데, 7~8살 정도 되는 아이도 설교를 이해한다. 그렇다고 설교 내용이 수준 낮거나 평이하지도 않다. 그럼에도 어린이들이 설교를 이해하는 이유는 구조 덕분이다.

   내 설교는 하나의 주제를 향해 나아가는 형태의 설교다. 귀납식 설교라고 할까? 원 포인트(one-point) 설교다. 많은 내용을 다루기보다 하나의 주제를 강조하는 설교다. 대지 설교는 거의 하지 않는다. 서론에서는 설교의 주제를 환기시키고, 본론에서는 본문 해석을 통해 설교의 주제를 제시한 뒤, 적용에서는 그 주제에 근거한 도전, 적용, 실천, 복음초청 등을 한다. 결론에서는 지금까지 말한 내용 전체를 요약하고 정리한다.

   본론만큼이나 서론을 중요하게 여긴다. 서론을 통해 본문과 설교에 관심을 끌게 한다. 어떤 날은 서론을 쓰는데만 8시간이 걸렸다. 설교의 서론은 설교의 모든 내용을 함축하되, 그렇다고 본론의 내용을 다 보여주진 않는, 그러면서도 청중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듣도록 유도하는 그런 내용으로 채운다.

   설교문을 작성할 때는 항상 회중을 머릿속에 그린다. 설교를 열심히 듣는 A, 교회를 다닌지 얼마 안 된 B, 안 듣는 척하면서 다 듣고 있는 중학생 C, 아직은 어린 초등학생 D, 최근에 어려움을 만난 E, 영적침체를 경험하고 있는 F, 얼마 전 어떤 교리가 잘 이해 안 된다고 물었던 G 등등을 다 생각한다.

   다양한 청중을 떠올리면서 어려운 표현이나 어린이에게 적합하지 않은 표현이 없는지 신중하게 생각한다. 성경과 신학 언어에는 한자어(漢字語)가 많다. 성육신(成肉身), 부활(復活), 승천(昇天), 세례(洗禮), 예배(禮拜), 삼위일체(三位一體), 보혜사(保惠師), 창세기(創世記), 성막(聖幕), 유월절(踰越節). 어느 것 하나 한자어 아닌 게 없다. 교회생활에 익숙한 사람은 다 알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이 청중 가운데 많다. 그래서 간혹 의미를 설명한다.

   성경은 어렵다. 갸우뚱하는 내용도 많다. 교인들이 마치 내 서재에서 함께 성경을 연구하는 듯한 느낌을 주도록, 의문점들, 의아한 점들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거기에 답하는 식의 형식을 넣기도 한다. 교인들이 평소에 자신의 책상에서 성경을 읽을 때 그렇게 하라고 도움을 주는 것이다. 청교도 설교에서 힌트를 얻은 방식 중에 “예상되는 질문에 대한 답”이라는 형식이 있다. 설교를 듣다가 누구나 가질 의문에 대해 교인들에게 미리 답을 해 주는 형태다. 간혹 그런 단락을 쓰기도 한다.

   설교문 작성은 창작이면서도 창작이 아니다. 성경이라는 텍스트(Text)를 토대로 써야 하기 때문이다. 마음대로 해서는 안 된다. 그러면서도 그냥 그대로 할 수도 없다. 설교는 성경낭독이 아니기 때문이다. 성경구절만 열거할 수 없다. 텍스트에 근거한 창작(?)이 필요하다. 그야말로 고된 작업이다. 바르게, 옳게, 분명하게 전하려는 작업이다보니 진땀이 난다. 설교문 작성 내내 썼다 지웠다 썼다 지웠다를 반복한다.

 

 

퇴고(推敲)

 

   설교문 작성이 어느 정도 이뤄지면, 퇴고(推敲)를 한다.

   퇴고란 글을 다듬는 작업인데, 그 기원은 당나라 시인 가도(賈島, 779~843)가 僧推月下門(승퇴월하문)이라고 할지, 즉 “스님은 달 아래 문을 미네”라고 할지, 아니면 僧敲月下門(승고월하문), 즉 “스님은 달 아래 문을 두드리네”라고 할지 고민하던 중 유명한 시인 한유(韓愈, 768~824)를 만나 敲(고), 즉 “두드리네”로 고친 일화에서 비롯되었다. 글과 말은 단어 하나도 중요하다.

   퇴고라는 말의 기원처럼 나는 퇴고 작업에서 단어 하나 문장 하나를 고민한다. 소설가 김훈은 『칼의 노래』의 첫 문장을 쓰면서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라고 할지 “버려진 섬마다 꽃은 피었다”라고 할지 엄청나게 고민했다고 하는데, 그처럼 조사 하나를 놓고도 고민한다.

   문장도 다듬다. 중점적인 일은 문장을 짧게 하는 거다. 이미 작성할 때도 그렇게 하지만, 퇴고 작업을 통해 좀 더 그렇게 한다. 복문을 피하고 단문을 지향한다. 주어, 목적어, 서술어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려고 한다. 얼마 전 서울에 5주간 체류하는 동안 우리교회에 출석한 분에게 마지막 5주째에 질문을 했다. “제 설교는 어떤 특징이 있는 것 같습니까?” 그분이 이렇게 답했다. “문장이 짧습니다.” 짧은 문장은 설교에 리듬감을 주고, 회중이 집중하는데 유리하다. 짧은 문장을 만들기 위해 좋은 소설이나 수필을 참고한다.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른바 ‘난쏘공’)은 짧은 문장을 잘 사용한 대표적인 책이다.

   문장을 짧게 할 뿐 아니라 대구(對句)와 각운(脚韻)도 넣는다. 설교할 때 리듬감을 줄 수 있다. 아래는 이러한 특성이 반영된 최근 설교문 중 일부다.

 


   승천은 그리스도의 일입니다. 강림은 성령님의 일입니다. 승천(昇天)의 승은 오를 승(昇)입니다. 강림(降臨)의 강은 내릴 강(降)입니다. 오르신 이가 예수님이요, 내리신 이가 성령님입니다만, 예수님이 오르시면서 성령님을 내려주셨습니다. 승천은 강림을 위해서요, 강림은 승천의 결과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셨기에 성령님이 강림하셨습니다. 승천하신 그리스도께서 성령님을 강림케 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승천을 생각한다면, 반드시 성령님의 강림을 생각해야 합니다.


 

   이 외에도 어려운 단어가 있다면 해설을 추가하고, 적절하지 않은 단어 삭제, 오해될 문장 삭제 등등을 한다. 다 알다시피 작성도 중요하지만 빼는 것도 중요하다. 빼야 할 것은 과감히 빼 버린다.

 

 

설교 제목

 

   제목은 중간 중간 수정 작업을 거친다. 설교문을 쓰기 전에 가제(假題)를 정한다. 처음 정한 제목이 마지막까지 가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여러 번의 수정을 거친다. 설교 주제의 핵심이 제목이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몇 자 안 되는 제목이지만 몇 시간이 걸려 정하기도 한다. 간혹 설교하려는 성경 본문의 단어나 문장에서 가져오기도 한다. 지나치게 현대적인 제목이나 자극적인 제목을 사용하지 않는다. 제목도 철저히 복음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최근 몇 주의 제목을 보면 “승천과 성찬”, “승천과 성령”, “안식 후 첫날”, “승리자 그리스도의 외침”, “하늘에서 하늘로, 영광에서 영광으로” 등이 있다.

   설교를 시작하면서 “저는 요한복음 3장 11-15절을 본문으로 OOOOOO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겠습니다.”와 같은 표현은 사용하지 않는다. 이미 주보에 실려 있는 걸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군더더기라고 생각한다. 대신 설교 중에 제목을 그대로 사용해서 적절한 수사 장치로 사용한다. 예를 들면, “승리자 그리스도께서 외치셨습니다.”라는 식으로 클라이맥스에서 제목을 활용한다. 설교 제목을 일종의 적용 호소로 사용하기도 한다.

 

 

그 외 주안점들

 

1) 각주: 개혁정론에 수차례 올린 설교문(http://reformedjr.com/1928035)과 나의 설교문을 엮은 책 『우리가 성경을 오해했다』(세움북스, 2023)에서 보듯이 나는 설교에 각주를 단다. 각각의 문장이 어디에서 왔는지, 내 설교가 말하는 바(?)의 근거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하기 위해서다. 무엇보다 내 설교는 나의 개인적인 생각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성경의 가르침에 충실하며, 보편교회가 믿어온 내용임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다. 바르게 옳게 분명하게 설교하려는 목표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해서다. 이러한 작업은 어쩌면 시간 낭비요, 불필요한 작업 같지만, 신학대학원 시절부터 지금까지 내가 해 오던 방식이다.

2) 반복: 중요한 핵심은 반복한다. 한번 말하고 넘어가면 잊어버리기 쉽다. 그러나 중요한 단어, 표현, 문장은 반복한다. 그렇다고 지나치게 반복하진 않는다. 중요한 표현을 설교문 전체에 골고루 배치한다.

3) 마무리 방식: 설교의 마지막 문장을 간혹 질문으로 마치는 경우가 있다. “여러분은 과연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있습니까?”라는 식으로 마쳐 버린다. 이런 수사방식은 대학 시절 부목사님으로 계셨던 오승균 목사(현, 마산성산교회 담임)께서 설교하시면서 하는 방식이 독특하고 와닿아서 차용하고 있다. 좋은 설교란 집에 가서도 생각나는 설교라는 나의 신념에도 부합하는 방식이다.

 

 

강단에 올라가

 

   이렇게 준비된 설교문(文語)은 강단에서 그대로 전해진다(口語). 설교원고는 설교가 아니다. 강단에서 나의 입에서 나와 회중의 귀에 들릴 때 비로소 설교다. 설교는 원고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거의 100%가 원고에 있는 말이라고 보면 된다. 불필요한 말을 하지 않는다. 원고 그대로 하는 이유는 원고의 완성도를 높여두었는데, 괜한 첨가는 오히려 완성도를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원고에 있는 내용의 논리적 구조가 있는데, 다른 말이 들어가면 논리가 흐트러지기 때문이다. 즉석에서 생각난 말을 해 버리면 불필요하거나 바람직하지 않은 단어를 사용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시선을 원고로만 향하지 않는다. 내용을 어느 정도 숙지하고 있기 때문에 청중과 원고를 번갈아 보면서 회중의 상황도 항상 파악한다. 언약의 자녀들이 설교를 잘 듣고 이해하고 있는지도 은연중에 살핀다.

   유아를 돌보는 아기 엄마들을 위해 설교문을 나눠준다. 출산 이후 아이가 성장하기까지 자매들은 신앙에 있어서 가장 취약한 시기다. 아기를 돌보다 보면 설교에 집중하기가 어렵다. 그러한 형편을 위한 작은 배려다.

   평소 나는 재미있는 사람이지만, 강단에서 내려오면 교인들과 즐겁게 웃고 떠들지만, 나는 평소 교인들과 대화할 때는 재미있는 농담도 하지만, 강단에서는 진중하다. 설교 시간은 진지하다. 절대 의미 없는 표현이나 웃기는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원고에 없는 표현을 사용하는 일은 없다. 그 이유는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강단은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좌소다. 성경에 농담이 없듯, 설교에서도 그런 건 없다. 교인들로 하여금 예배의 경건성, 설교의 중요성,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심어주기 위함이다. 말씀 앞에 경외하는 자세를 갖게 하는 것도 설교자의 중요한 책무라고 생각한다.

   “훌륭한 설교자가 훌륭한 청중을 만들고, 훌륭한 청중이 훌륭한 설교자를 만든다.” 내가 쓴 『설교, 어떻게 들을 것인가?』(좋은씨앗, 2018)의 문구다. 나는 설교를 통해 청중을 훌륭하게 만들려고 한다. 그들이 결국 나를 훌륭한 설교자로 만들거라 믿는다.

   내 설교는 나를 형성한다. 내 설교의 비교 대상은 내 설교다. 나는 항상 지난 주일보다 더 잘하려는 마음을 갖는다. 그게 엄청난 부담과 스트레스인 것도 사실이다. 지난 주일에 설교를 못 하면 그다음 주는 너무 힘들다. 지난주보다 잘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 주일에 설교를 잘해도 그다음 주가 너무 힘들다. 잘한 것보다 더 잘하거나 잘한 만큼은 잘해야 하기 때문이다.

 

 

강단에서 내려와

 

   강단에서 내려와서는 교인들과 더불어 친하게 지낸다. 점심식사 자리에 번갈아가며 같이 앉고, 그들과 대화하며, 교제 시간에도 웃고 떠들고, 오후예배 마치고도 삼삼오오 함께 할 때 언제나 곁에서 지낸다. 가족 단위로도 만나고 개인으로도 만난다. 교인과의 인격적 교제를 중요하게 여긴다. 그렇게 라포(rapport)를 형성할 때 강단과 회중석의 거리는 가까워진다. 나의 양무리들과 이야기하면서 생활하는 가운데 그들에게 가장 필요하고 적절한 것이 무엇인지를 발견한다(웨스트민스터 예배모범).

 

 

마치며

 

   설교는 해도 해도 어렵다. 아무리 해도 늘지 않는 건 테니스와 비슷하다. 20년째 설교자이지만 자주 절망한다. 설교에 있어서는 여전히 신학생이다. 한두 편의 설교로 매번 바뀌는 청중에게 설교하는 건 쉬운 일이지만, 매주 동일한 청중에게 매주 다른 설교를 하는 건 그야말로 고역(苦役)이다. ‘돌아서면 설교’라는 말처럼 끝나지 않는 프로젝트다.

   이 막중한 일을 피하고 싶지만, 주님이 주신 영광이다(설교자의 영광). 이 부담되는 영광을 감당하기 위해 나는 지금도 오직 성경(Sola Scriptura)과 전체 성경(Tota Scriptura)에 근거하여, 꺼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다 전하며(행 20:27),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전념한다(딤전 4:13).

   서두에 밝힌 것처럼, 설교를 잘하려고 하지 않는다. 잘하지도 못하고 잘할 자신도 없다. 설교를 잘하는 건 나와는 거리가 멀다. 나는 입이 둔하다(출 6:12; 고전 1:17). 다만, 바르게, 옳게, 분명하게는 하고 싶다. 그렇게 하려고 지금도 엉덩이를 의자에 밀착시키고 있다.

   마지막으로 내가 목회하는 한길교회 소개 책자에 실려 있는 글 중 일부를 옮긴다. 한길교회 교인들은 모두 이 내용을 숙지하고 있다. 내 회중은 내 설교를 듣는 이요 동시에 내 설교의 선한 감독자다.

 


우리는 교회의 기초가 선포되는 말씀에 있음을 믿는다. 그렇기에 말씀을 맡은 목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고도 분명하게 깊고도 풍성하게 선포해야 한다. 목사는 ‘오직 성경’과 ‘전체 성경’의 원리에 근거하여 하나님의 모든 뜻을 남김없이 선포해야 한다(행 20:27). 회중은 그 말씀에 기초하여 교회와 자신을 세워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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