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테러, 왜 일어나는가?1)
론 조지(Ron George)
우리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두 가지의 측면을 동시에 바라보아야 한다. 메카시절에 마호메트가 부르짖었던 평화, 그리고 메디나 시절 정치가로서, 군인으로서 반대하는 사람에 대해서 가졌던 호전적 태도를 동시에 보아야 할 것이다. 이로써 우리는 오늘날 이슬람과 관련한 여러 현상들을 보다 정확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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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국가를 여행해 본 경험이 있는가? 그리고 모슬렘들과 만나서 교제해 본 적이 있는가? 모슬렘 친구가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그들은 베풀기를 좋아하고 친구 사귀기를 좋아하며, 인정과 의리를 소중히 여기를 사람들이다. 실제로 이러한 것들이 그들의 모습이며 문화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 1년 전 미국 세계무역센터를 비롯한 주요 시설들을 파괴했던 테러사건은 세계인의 기억 속에서 좀처럼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세계가 지구촌으로 되어가고 있는 지금 이와 유사한 사건이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이슬람 테러사건의 원인과 성격을 다시 한 번 되새겨봄으로써, 이슬람을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는기회로 삼아보자.
국제사회에 대한 오해
분명한 사실은 대부분의 모슬렘들이 미국이라는 나라 자체를 싫어하거나, 세계의 질서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오히려 많은 나라에서 그들은 스스로 상실감과 무력감에 빠져있다. 그들은 지금 거대한 국제정치와 경제적 세력 앞에 스스로 위기감을 경험하고 있다. 이러한 거대 세력의 대표적인 국가가 바로 미국이며, 미국이라는 나라는 오직 자국의 경제적 이익만을 추구한다는 생각이 팽배해 있다. 분명 그들의 생각은 한쪽으로 치우쳐 있다. 미국의 이기주의적 성향을 부인할 수는 없으나, 미국의 경제적 원조 없이는 생존을 이어나갈 수 없는 나라들 또한 적지 않다는 사실 역시 인정해야 할 것이다. 지구상의 수많은 사람들이 기아에 허덕이고 있다. 기본적인 주거시설과 교육, 의료시설이 절대 부족하며, 표현의 자유조차 부정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는 이유는 과연 무엇인가? 이러한 현상의 근본 원인을 전적으로 미국에게로 돌리는 것이 일부 모슬렘들의 생각이다.
이슬람과 무력
그렇다면 무력의 사용을 그들 스스로에게 정당화시킬 만한 이유가 있는가? 그들에게 그것을 정당화시키는 것은 바로 그들이 가지고 있는 세계관과 그들이 따르고 있는 마호메트의 모범이다. 모슬렘들은 어떠한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가? 실제로 그들이 가지고 있는 세계관이 때로는 다른 사람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게 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슬람은 세계를 두 개의 영역으로 구분한다. 하나는 이슬람의 집(dar al Islam)이고 다른 하나는 전쟁의 집(dar al Harb)이다. 이러한 세계관에 따라 세계를 이슬람의 집 안에 두고자하는 부단한 노력들이 일어나고 있다. 이러한 노력 중에 폭력이 일어날 수도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시키기도 하는 것이다.
마호메트는 모슬렘들의 삶의 모델 역할을 하고 있다. 마호메트가 메디나에서 그에게 반대하는 유태인들을 죽였다는 사실은 일부 모슬렘에게 모델이 되어, 경우에 따라서는 반대자들을 죽일 수도 있다는 것을 정당화시킨다. 가다피( Ghaddaffi)를 비롯한 일부 이슬람 지도자들이 정적을 제거할 때, 자신을 정당화시킨 도구가 바로 이것이다. 아프가니스탄에서 기독교 신앙 때문에 죽음을 당한 사람들이 허다하다. 종교적 이유로 인한 사형제도 역시 그들 선조의 전철을 밟고 있는 것이다.
코란의 기록에 관해서 두 시대에 근거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메카 시대(622년이전)에 기초한 코란 구절과 메디나 시대(622-632)에 의거한 코란의 내용이 그것이다. 메카에서 마호메트의 추종자들은 소수에 불과했다. 자연히 코란의 기록들은 평화 지향적이고 비폭력주의였다. 오늘날도 그들이 한 국가의 소수를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이와 같은 평화지향적인 메카에서의 기록들을 즐겨 사용한다. 미국과 영국을 비롯한 유럽 국가들에서 볼 수 있는 현상이다. 그렇지만 마호메트가 단순한 선지자의 모습에서 통치자의 모습으로 변모한 메디나에서의 구절들은 상당히 호전적이다. 그는 실제로 무리를 메카에 보내어 그를 반대하는 자들을 약탈하고 살해하도록 했다. 이슬람이 주류를 이루는 사회에서는 이러한 성향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는 ‘이슬람은 평화적이다’ 혹은 ‘이슬람은 호전적이다’라고 단적으로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이슬람에서 평화적인 측면과 호전적인 측면 두 가지를 동시에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불의에 대항하는 싸움과 낙원의 약속
이슬람에서 찾아볼 수 있는 또 하나 중요한 특징은, 순니 이슬람이나 시아이슬람을 통틀어 ‘불의에 대항해서 싸워야 한다’라는 덕목을 매우 중요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이스라엘에 대한 투쟁이다. 그들의 시각에서 이스라엘은 ‘불의’ 그 자체이다. 그리고 미국은 그 불의한 것을 끊임없이 지원하는 존재인 것이다. 그 지원세력을 약화시키는 것은 바로 불의에 대항하는 방법인 것이다.
코란에 명시된 바에 의하면, 이슬람의 적들과 대적하는 중에 죽으면, 비록 그 과정에서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이 목숨을 읽는 한이 있더라도, 여자와 음식이 풍성한 완전한 세상 곧 낙원으로 곧바로 옮겨진다고 약속되어 있다.
한 모슬렘에 따르면 “테러를 범한 모슬렘은 그 것이 지하드(聖戰)의 일부이기 때문에, 미국, 이스라엘, 혹은 유럽에서 기인된 ‘불의’에 대항하는 그러한 행위를 주저하지 않고 반복할 것입니다.”라고 한다. 그러한 과정에서 비록 목숨을 잃더라도 천국이 약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유태인을 대항해서 싸우는 팔레스틴을 보라! 그들에게서 두려움이란 찾아볼 수 없다. 이슬람을 위해서 싸우는 것이 바로 낙원으로 가는 길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사랑과 평화만이
이제까지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극단적인 현상의 원인에 관해서 살펴보았다. 무엇을 느낄 수 있는가? 분명한 것은 세계의 주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의 구상, 즉 미사일 반격, 경제보복, 국제사회에서의 소외 등의 방법으로는 이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슬람 세계를 향해서 사람들이 바라는 것들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성경이 말하고 있는 평화, 소망, 믿음, 사랑의 교훈에 의지하는 수 밖에 없다. 이 세상에서 거대한 끈으로 묶여 있는 교회는 바로 이러한 성경의 원리들로 준비되어야 하고, 그리스도의 사랑과 자유의 메시지를 모슬렘들에게 전해주어야 한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사랑과 그의 돌보심을 그들에게 선포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만이 더 이상 이러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유일한 방법인 것이다.
지난 20여 년간 우리들의 교회는 알게 모르게 이슬람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아왔다. 많은 교회와 선교단체들은 이슬람이 평화적인 종교라고 단언하기에 이르렀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두 가지의 측면을 동시에 바라보아야 한다. 메카시절에 마호메트가 부르짖었던 평화, 그리고 메디나 시절 정치가로서, 군인으로서 반대하는 사람에 대해서 가졌던 호전적 태도를 동시에 보아야 할 것이다. 이로써 우리는 오늘날 이슬람과 관련한 여러 현상들을 보다 정확히 이애할 수 있는 것이다. 이제 그들은 한쪽에서는 이슬람으로부터 공허함을 느끼고 또 다른 한쪽으로부터는 서구문명으로부터 공허함을 느끼고 있다. 그렇지만 분명한 사실은 비록 느리지만 서서히 문이 열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스스로 질문해 보아야 한다. 테러를 일으키는 사람들을 위해서 교회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교회는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그들에게 다가가려고 노력했는가, 아니면 교회건물을 증축하기에만 애써왔는가? 교회에서 선교는 과연 얼마만큼의 비중을 차지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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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글은 2005년 11월 선교지평에 기재된 글을 다시 등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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