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의의 드라마:
십대 청소년들을 위한 교리문답 부활의 필요성[1]
저자: 레오나르드 판데르 지 (Len Vander Zee)[2]
번역: 태동열 (미국 칼빈 신학교 조직신학 박사과정 중)
필자는 북미 기독개혁교단(Cristian Reformed Church)에 있는 목사들과 장로들로부터 거듭 반복해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공적인 신앙고백에 나서는 청소년들이 점점 감소해 가는 것처럼, 너무나 많은 이들이 기독교의 기본적 교의(敎義)에 대한 일반적인 무지함을 드러내고, 개혁주의 신앙에 대해서는 훨씬 더 무지하다. 그들은 자신들이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자신들의 신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분명히 설명하지 못한다.
자신의 책, 『자기 탐구: 미국 십대 청소년들의 종교적 & 영적 삶』 에서, 크리스천 스미스(Christian Smith)는 교회 안에 있는 대다수 십대들의 종교적 신앙을 “도덕적 치료적 이신론 (理神論)”으로 묘사한다. 그 신앙은 이렇다:
1. 세상을 창조하셨던 어떤 하나님이 존재하시고 그분이 세상에 질서를 주시며 이 세상에서의 인간의 삶을 감찰하신다.
2. 성경에서 가르치고 대부분의 세상 종교들에서 가르치는 것처럼, 하나님은 사람들이 선하고 친절하며 서로에게 공정하기를 원하신다.
3. 인생의 주된 목적은 행복해 지는 것과 당신 자신에 대한 좋은 감정을 갖는 것이다.
4. 하나님은 어떤 문제를 해결해야 할 필요가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어떤 사람의 인생에 구체적으로 관련될 필요가 없다.
5. 선한 사람들이 죽으면 천국에 간다.
기독교의 이런 변형은 성경이나 기독교 신앙과는 거의 관련이 없다는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필자는 그것이 CRC 교회의 십대들 다수가 살아온 신앙을 실제적으로 묘사하는 것이라고 거의 확신한다. 교회가 교회의 많은 청소년들에게 기독교 신앙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도록 가르치는 데 실패해온 것 같다.
항상 그래왔다는 건 아니다. 우리들 가운데 많은 이들은 목사가 종종 가르친 주중 교리문답 수업에 가야했던 것을 기억한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우리는 개요서(The Compendium)라 불리던 작은 약술(略述) 교리문답을 배웠다. 늙어가면서 우리는 적어도 하이델베르그 교리문답의 몇 가지 문답들은 기억했다. 도덕적 치료적 이신론이라는 진부한 종교에 대한 예방 접종을 할 수 있었던 어떤 기본적인 신학적 토대를 우리는 가지고 있었다.
우리들 대부분은 때로는 지루하던 그 수업들과 그 기계적인 암기를 또다시 시작하기를 원치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그대신으로 해왔던 것은 훨씬 더 나쁘다. 지난 이 십 여년이 지나도록, 다수의 교회들은 교리문답 수업을 완전히 그만뒀고 부모들은 십대 자녀들을 위한 신학적 교육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많은 교회의 (종종 성경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만으로 구성되어 있는) 주일학교와 (자주 문화활동과 선교여행들로 특징 지워지는) 청소년 모임은 어린이들과 십대들을 위해 제공되는 유일한 교육이다. 다른 교회들은 설교를 들을 수 있거나 예배라는 극적인 사건에 참여할 수 있는 공예배에 어린이들과 십대들을 제외시킨다. 그들의 또래모임에 보내 버림으로, 우리는 예배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메시지를 그들에게 전한다.
교회의 신학이나 교의를 십대들에게 가르치는 것은 선택사항이 아니다. 신학은 기독교 신앙에 대한 이해를 위해 성경과 나란히 본질적인 것이다. 교의는 성경의 보물을 여는 열쇠이다. 달리 표현하자면, 교의는 우리에게 종종 혼란스럽고 발자국이 없는 성경이란 지형(地形)을 통과할 수 있는 지도를 제공해 준다.
이것이 우리의 신앙고백들과 신조들과 교리문답이 왜 그렇게 중요한가에 대한 이유이다. 우리로 하여금 성경에서 우리가 만나는 그 하나님이 이 세상과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을 창조하신, 원형이고 영원한 사랑의 공동체로서의 삼위일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이해하도록 돕는 것은 바로 신학이다. 우리로 하여금 인간 반역의 중죄와 그 심각성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제정하신 은혜언약을 이해할 수 있게 하는 것도 신학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그렇게 되길 의도하셨던 새로운 인간 (the new human) 이고,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은 새창조에서 하나님나라의 도래를 알리며, 이 세상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될 것이라는 진리를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 또한 신학이다.
도로시 세이얼스 (Dorothy Sayers) 는 한 때 복음은 “이제까지 말해진 가장 위대한 드라마이고…하나님께서 희생자이시고 주인공이신 두렵고 떨리는 드라마이다” 라고 썼다. 복음주의 신학자 케빈 벤후저 (Kevin VanHoozer) 는 이것을 자신의 책 『교의의 드라마 (The Drama of Doctrine)』로써 얘기한다. 신학은, 교회가 성경이라는 대본을 취해서 교회와 세상이 보도록 그것을 무대에 올릴 때, 교회가 행하는 바라고 그는 말한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즐거움과 영감을 위해 시청하는 드라마를 능가한다; 그것은 우리 또한 매일 배우들인 드라마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세계에서의 생(生)의 드라마이다.
기독교 신학의 드라마는 세상의 이야기에 대척되는 이야기 (a counter-story) 이다. 그것은 우리가 세상에서의 우리 위치를 어떻게 인식할 지에 변화를 주고 우리가 어떻게 살 지를 개조한다. 성경은 실화(實話)의 기초로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대본이지만, 성경의 이야기를 모든 시대에 생생하게 하는 것은 수 세기에 걸쳐 쓰여졌고 모든 세대에 새롭게 말해졌던 신학이라는 드라마이다.
16세기의 하이델베르그 교리문답은 감동적인 제 1 문답의 문구로 성경의 이야기를 소생시킨다: “나는 … 사나 죽으나 몸과 영혼이 모두 나의 신실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것입니다.” 이어서 그 교리문답은 우리가 어떻게 그리스도의 소유로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강력한 개요 – 죄, 은혜, 감사 – 를 제공해 준다. 예를 들어, 당신은 지금껏 하나님의 율법이 감사의 항목에 포함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율법과 복음은 연합하고, 순종은 자유가 된다. 이것은 교의가 줄 수 있는 중요한 통찰력이다.
우리는 최근에 심지어 더욱 생생하게 기독교 신학의 드라마를 말해주는 또 다른 보물 – “우리의 세계는 하나님의 것이다” 라는 현시대의 증언 – 을 CRC 안에서 갖고 있다. 감동을 주는 시적인 언어로, 그것은 하나님께 속한 이 세상에서의 생(生)의 드라마로서의 성경 이야기를 전해준다.
그 현시대적 증언에서 우리는 하나님은 저 멀리 떨어져 있는 어떤 자비로운 신이 아니라 그분이 창조하신 세상과 직접적으로 깊이 연관된 사랑의 신적 공동체(a divine community of love)로서의 삼위일체 하나님이심을 발견한다. 죄란 어떤 불행한 실수가 아니라 우리의 창조주에 대항한 급진적 반역 행위이며 우리 삶의 모든 측면에 영향을 미친다. 구원은 단순히 예수가 우리 죄를 위해 죽었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인간의 형제로서의 예수가 성령을 통해 자녀로 입양된 우리를 우리의 아바 아버지와의 교제로 인도하는 것이다. 지금 주와 왕으로서 보좌에 앉아 있는 예수 그리스도는 그의 구원의 사랑의 메시지를 전하도록 그리고 삶의 모든 영역으로 그의 왕국의 변혁시키는 능력을 가져 오도록 우리를 부른다. 그리고 아무리 악의 힘이 번창하는 것 같이 보일지라도, 우리는 죄와 불의와 고통과 죽음이 없는 새하늘과 새땅을 바라보는 소망의 백성들이다.
이것이 흥미롭고 변혁적인 기독교의 드라마이다! 이 드라마는 우리의 마음에 도전을 주고, 우리의 영혼을 먹이며, 우리의 가슴을 따뜻하게 하고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이 신학적 드라마가 우리의 십대들에게 실제적인 것이 되도록 만드는 새로운 방법들을 발견하는 것이 CRC의 업무이다. 우리의 최근 총회는 신앙 형성 위원회(Faith Formation Ministries)에 새로운 커리큘럼 자료들의 실행가능성에 대해 보고하도록 요청하였다. 이것이 교리문답과 관련된 자료들도 포함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 중요한 과업을 성취하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새로운 도구들 – 디지털 기술과 인터넷 – 을 가지고 있는 이 때에, 우리는 이 일을 할 수 있다. 상상력이 뛰어나고 매력적인 교육 자료들을 교회와 집으로 전달할 수 있는 다양한 매체들에 우리는 접근할 수 있다.
우리는 십대들을 흥분시킬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드라마를 가지고 있고 모든 교회와 가정에 그것을 전달할 기술적 도구들을 가지고 있다. 이제 남은 문제는 우리의 청소년들이 그들의 영적 유전자에 있는 그 교의의 드라마를 소유하게 되기를 기대하는, 또한 그 일이 일어나도록 하기 위해 재정적 교육학적 자원들을 공급하는 부모와 교회의 헌신이다.
[1] 북미 기독개혁교단 (CRC) 교단지인 The Banner 2016년 9월호에 “The Drama of Doctrine: Why We Need to Revive Catechism for Our Teens”라는 제목으로 실린 내용으로 번역 및 게재의 허락을 받고 게재합니다. 저작권은 The Banner와 저자에게 있습니다.
[2] CRC 은퇴 목사; 현재 미국 미시건주 그랜드래피즈시에 있는 Church of the Servant CRC 임시 설교자.
< 저작권자 ⓒ 개혁정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