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초 프랑스 파리의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의 사무실에서 테러 사건이 발생했다. 칼라시니코프(AK-47) 소총과 로켓발사기로 무장한 테러범들은 편집국에 난입해 편집회의 중인 기자들을 향해 무차별 사격을 가했고, 10여명의 사상자가 났다. 드러난 이유는 이 신문이 이슬람의 무함마드를 풍자했다는 이유 때문이다.
이에 파리 시민들은 희생자에 대한 추모 집회에서 ‘나는 샤를리다’라는 슬로건을 외쳤다. 샤를리 에브도에 대한 테러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며 테러로 인해 표현의 자유가 남용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샤를리 에브도가 표현의 자유를 남용했다며 ‘나는 샤를리가 아니다’는 슬로건도 등장했다. 표현의 자유는 절대적인 권리가 아니며 한계가 있다는 주장이다.
도대체 이러한 테러가 왜 발생하는 것일까? 어떤 이들은 테러의 배경에 대해 문명과 가치관의 충돌이라고 말들을 한다. 정말 그런 것일까?
이번 사건은 다종교 다문화 사회에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다음과 같이 몇 가지 중요한 교훈을 준다.
첫째, 다종교 사회에서는 어떤 종교든지 설사 내 종교와 다르다고 해서 다른 사람의 종교를 비평은 할 수 있지만 조롱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종교는 결코 조롱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상대방의 종교를 존중할 수 있어야 한다. 심지어 이슬람 종교가 왜 그토록 사람의 매력을 끄는가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왜 모슬렘들이 IS에 가입하는가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대학에 입학하고 직장에 들어가는 것으로 채워지지 않는 공간이 그들 마음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겠는가?
물론 종교를 조롱하지 말라는 말은 우리가 다른 종교를 비평할 수 없다는 뜻이 아니며, 기독교의 교리가 다른 종교의 교리와 차이가 없다는 뜻은 더구나 아니다. 기독교와 복음과 이슬람의 교리는 오히려 상충되기까지 한다. 기독교의 복음 핵심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이슬람은 근본적으로 송두리째 부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비록 종교를 조롱할 수는 없다고 할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나 사상이 담고 있는 내용과 관련하여 비평을 하는 표현의 자유는 전적으로 온전하게 보장되어야 한다. 어떤 사상가는 ‘사람을 서로 연대하도록 만드는 것은 그들이 무신론자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 모두 종교를 비판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것에 있다’고 하였다. 프랑스 대혁명 이후 교회는 모든 특권을 박탈당하였고 이후 모든 종교는 비평의 대상이 되었다. 존 스튜어트 밀(1806-1873)은 ‘자유에 대하여’에서 생각과 토론의 자유를 강조하였다.
이런 배경에서 유럽은 종교를 비판하는 문화에 아주 익숙하다. 그런데 종교 비판의 주요한 표적은 이슬람이었다. 유럽인들이 이슬람을 향하여 비판 조롱, 모독을 한 것에는 아주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는 최근 20년 동안 더욱 증가되었다고 한다. 이번 프랑스 파리의 테러를 두고 여러 진영에서 논쟁을 벌이는 배경에는 프랑스를 비롯한 율법 각국이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는데 있어서 이중적 잣대를 적용한다는 지적이 존재한다. 예를 들면 프랑스, 독일, 벨기에 등 유럽 주요 국가는 반유대주의 표현을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고, '홀로코스트 부정 금지법‘이 제정되어 있어 이를 위반할 경우 사법처리 대상이 된다. 반면 반(反)이슬람주의 표현에 대해서는 특별한 규제가 없다. 표현의 자유가 종교, 인종에 따라 차별적으로 적용된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나아가 테러범들이 표현의 자유에 대한 이중 잣대 속에서 잉태되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종교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는 공평하게 온전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셋째, 종교의 내용을 비평하는 데는 제한이 없다고 할지라도 비평하는 ‘표현의 방식’에는 한계가 있다. 말하는 내용 못지않게 ‘말을 하는 방식’ 역시 중요하다. 특히 종교를 대하는 방식이나 이에 대해 표현하고 비판하는 방법은 인간적이어야 한다. 금번 테러는 다른 종교나 다른 문명, 다른 가치관에 대한 테러가 아니다. 테러만이 야만이 아니다. 종교를 조롱하거나 모독하는 것 역시 비린 짓이다. 모독과 조롱은 비열한 방법이다. 이것은 마귀에게서 온다. 우리 시대만큼 역사에서 복음을 대적하는 조롱이 극에 달한 적이 없다. 18세기, 19세기에는 독일과 프랑스의 철학자들이 조롱의 칼을 휘두른 적이 있다. 지금은 소수가 아니라 보통 사람들도 종교를 조롱한다. 어떤 이는 종교를 이렇게 모독하고 조롱하는 것에 대해 한 사회의 집단적인 판단 기준이나 교양이나 상식, 예의가 사유화되고 개인주의화가 된 결과라고 비판하였다.
넷째, 종교인이나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 즉 사람을 모독해서는 안 된다. 사람은 사랑해야 한다. 그가 모슬렘이든 불교 신자이든 상관이 없다. 그들 역시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자들이며 구원을 받아야 할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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