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요한 기자
조슈아 해리스, <겸손한 정통신앙>, 김재윤 역, 생명의말씀사, 2013, 120쪽.
<Yes 데이팅>, <No 데이팅>으로 유명한 조슈아 해리스는 실은 젊어서부터 미국 개혁주의 물결의 영향을 받은 칼빈주의자입니다. 그가 쓴 이 <겸손한 정통신앙>(Humble Orthodoxy)은 그 제목처럼 평이한 원리를 서술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접하는 모든 상황 속에서 이 평이한 원리가 발현되기란 쉽지 않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그 평이한 원리를 다시금 상기시킨다는 점에서 이 책의 의의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이 책의 내용은 간단합니다. “기독교인은 정통(성경적 진리)을 수호해야 한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겸손해야 한다.” 입니다. 그리고 책의 뉘앙스는 ‘겸손'에 좀 더 방점을 찍고 있습니다.
저자가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근거는, 우리가 가진 정통은 우리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나 역시 문제가 많지만 하나님께서 충만한 은혜로 채워 주셨다"(45쪽)는 사실은 정통을 가진 신자를 겸손하게 만듭니다.
길지 않은 내용의 곳곳에 스며 있는 저자의 촌철은 우리의 신앙의 한 태도를 반성하게 합니다. “당신이 진정으로 복음 안에 있는 은혜의 교리를 이해한다면,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이 우리 안에 있는지 밖에 있는지 확인하려 하지 않을 것"(47쪽), “우리는 스스로 정통신앙과 성경적 신실함을 위해 싸우고 있다고 말하지만, 미묘하게도 우리의 마음은 우리의 정체성과 정의와 순결함과 진리를 놓고 갈등한다"(49쪽) 등의 지적은 성경을 가지고 논쟁이 벌어지는 많은 곳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실수를 통감하게 합니다.
물론 저자의 지적처럼 “교만의 문제와 영역 다툼은 우리가 정통신앙을 포기해도 사라지지 않습니다"(55쪽). 저는 이것을 교만은 정통의 문제와는 다른 범주로 놓고 생각할 수 있다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통을 가졌다고 자부하는 자의 어떤 태도에 대한 변론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저자가 전적으로 ‘태도의 문제'만 지적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저자는 “오만하거나 비열한 태도로 성경의 진리를 주장하는 것도 옳지 않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명백히 보이는 것을 믿는 것에 대해 변명해서도 안된다"(57쪽)며 태도의 문제에만 경도되었을 때에 하기 쉬운 실수에 대해 균형을 지적하는 것도 놓치지 않습니다.
저자는 우리가 정통을 대하는 태도는 ‘진리는 나부터 먼저 적용하고 실천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권면합니다. “그 어느 것보다 빠르게 나의 오만함과 자기 의의 바람을 빼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내가 얻은 진리를 삶으로 실천하려고 하는 것이다”(73쪽) 라는 저자의 지적은 이따금씩 혹은 그 이상으로 자주 나타나는 타인을 향한 칼날을 거두도록 합니다.
성경은 원수를 사랑하고, 또한 하나님께서 공의를 실현하실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를 생각해 보면 신앙인 가운데서 이따금씩 나타나는 거친 모습들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모습과는 거리가 먼 경우가 많습니다. 저자는 이것을 “(이스라엘 민족의) 뻔뻔하고 사악한 반역도 모세가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것을 정당화해주지 않는다"(79쪽)는 표현으로 설명합니다.
저자는 4장의 제목을 “하나님께 인정받는 삶"으로 정하고 이와 관련한 내용을 써 나갑니다. 이는 의미 있게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저자는 정통, 우월성, 논쟁에서의 승리, 자기 정체성의 발현 등을 묶어서 설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터넷에서 흔히 벌어지는 논쟁의 일부는 인정욕구에 의해 진행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는 신앙의 언어로 표현되는 장에서도 마찬가지인데 이에 대한 저자의 지적은 다음과 같습니다. “친구여, 진리는 당신을 위한 것이 아니다. 당신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액세서리도 아니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을 위한 것이다"(94쪽).
정서나 태도의 문제는 딱부러지게 지적해서 해결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이 책의 전체 논지에 비추어 한 가지 해결의 단초를 제공받을 수는 있는데, 그것은 ‘진정한 자기 의식'입니다. 다시 말해, ‘내가 원래 어떤 상태였고, 누구(무엇)에 의해, 어떻게 구원받았는가'를 재인식하는 것입니다. 좀 더 나아가 ‘구원 이후 나는 어떤 삶을 살아가는가, 어떻게 변해왔는가'를 생각해 볼 수도 있겠습니다. 아마 이 정도만 되어도 삶의 여러 공간에서 펼쳐지는 말로 인한 거친 경우는 많이 완화되지 않을까 합니다.
이 책은 앉은 자리에서 집중해서 읽으면 한 시간도 되지 않아 다 읽을 수 있는 분량입니다. 하지만 이 책의 문제의식을 통감하고 내면화하고 삶으로 투영시키는 것은 긴 기간이 필요할 것입니다. 우릴 모두의 겸손한 정통을 위해 각자의 형편에 맞게 하나님께서 성화의 은혜를 베푸시기를 바랍니다.
※ (본문에도 조금 언급했지만) 태도에 대해 지적한다고 해서 ‘정통'을 퇴색시키는 것은 아닙니다. 최소한 저자에게 있어 내용으로서의 정통은 '전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