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민스터 교회정치 규범 (The Form of Presbyterial Church-Government, 1645)
이성호 신학교수
(고려신학대학원)
웨스트민스터 총회에서 작성된 4가지 문서(신앙고백서(confession), 교리문답(catechism), 예배 지침(directory), 교회정치 규범(form)) 중 교회정치 규범은 거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대표적인 예로 다른 문서들과 달리 여기에 대한 해설서는 거의 발행되지 않았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정치 규범은 오늘날 거의 적용되기 힘든 부분들이 많기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또한 우리나라의 장로교는 스코틀랜드로부터 직접 영향을 받기보다는 미국장로교 선교사들에 의해서 세워졌다는 것도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가 될 것이다.
이 글의 목적은 교회정치 규범에 대한 몇 가지 중요한 특징들을 살펴보는 것이다. 일단 제목에 주의해 보자. 제목에 따르면 이 문서의 명칭은 다음과 같다. The Form of Presbyterial Church-Government and of Ordination of Ministers; agreed upon by the assembly of divines at Westminster, with the assistance of commissioners from the Church of Scotland, as a part of the covenanted uniformity in religion between the churches of Christ in the kingdoms of Scotland, England, and Ireland. 제목이 상당히 긴데 참고로 이 당시에 생산된 문서들의 제목은 오늘날과 달리 엄청나게 긴 경우가 많다. 어떤 경우는 한 페이지가 넘기도 한다. 우리에게 어느 정도 알려진 '공동 기도서' 역시 원래는 상당히 긴 제목이다. 공동 기도서를 기도문을 모아 둔 것이라고 이해하기 쉬운데 엄밀히 말해서 공동 예전서라고 하는 것이 훨씬 더 적절한 표현일 것이다.
일단 이 문서는 “form”이라 불린다. 번역하기가 쉽지 않아서 일단 form이라고 했는데 뜻으로 보았을 때 규범에 가장 가까운 단어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위한 규범인가? 두 가지인데 하나는 치리회적(presbyterial) 교회정치에 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목사임직을 위한 것이다. 나머지 문구들은 모두 이 두 가지를 설명하는 것이기 때문에 문서의 제목에 대해서는 이 두 가지만 기억해도 되리라 생각한다. 교회정치뿐만 목사임직도 매우 중요한 주제라는 것을 잊지 않도록 하자. 임직을 다루는 분량이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에 교회정치라고 해도 큰 잘못은 아니지만 교회정치로만 이해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이 문서의 겉표지 하단에는 “form”의 의미를 이해하는 중요한 실마리를 발견하게 된다. 그 실마리는 표지에 인용된 성경구절이다. 책 표지에 성경구절이 인용되는 것도 그 당시 관습 중의 하나이다. 인용된 구절은 다음과 같다.
“만일 그들이 [이스라엘 족속] 자기들이 행한 모든 일을 부끄러워하거든 너는 이 성전의 제도와 구조와 그 출입하는 곳과 모든 형상을 보이며 또 그 모든 규례와 그 모든 법도와 그 모든 율례를 알게 하고 그 목전에 그것을 써서 그들로 그 모든 법도와 그 모든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라.”(겔 43:11)
여기서 성전의 “제도”, 그리고 모든 “형상”은 히브리어로 같은 단어이고 영어성경(킹제임스 성경)에서 “form”이라고 번역되어 있다. 따라서 이 형상은 하나님의 집으로서의 성전의 본질을 나타내는 외양이라고 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이 형식 역시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웨스트민스터 총대들은 성경에 따라 규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 다음에 제목에서 사용된 중요한 어구는 “covenanted uniformity(언약적 통일)”이다. 이것은 역사적 배경을 알아야 이해되는 문구다. 찰스 1세와 대적하기 위해서 잉글랜드 의회와 스코틀랜드 의회는 “엄숙 동맹과 언약”이라는 문서를 통하여 하나가 되기로 하였다. 이를 위해서 반드시 교회도 하나가 되어야 했다. 단지 신앙고백만 같을 것이 아니라 교회 정치의 “form”도 하나가 되어야 했다. 이전의 찰스 왕은 주교제도를 통해서 하나의 교회를 세우기를 원했다면 총회회원들은 치리자들의 회를 통하여 하나의 교회를 세우려고 하였다.
여기서 우리는 신앙고백서(confession)와 교회정치 규범(form)의 관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신앙고백서는 교회에 대해서 우리가 반드시 믿어야 할 것들을 충분히 다루었다. 여기에는 교회의 본질이 무엇인가, 참 교회를 어떻게 분별해야 하는지, 권징이 무엇인지, 공의회가 필요한 이유가 무엇인지 등이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신앙고백만으로 구체적으로 교회를 세우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교회를 세우게 되면 그 교회가 어떻게 하나의 공교회가 될 수 있겠는가? 이를 위해서 총회는 교회정치 규범도 제정하여 목사들이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가 아니라 성경이 정한 대로 교회를 세우도록 하였다. 신앙고백이 본질(being)이라고 하면 교회 정치는 안녕(well-being)이라고 할 수 있다. 칼빈의 표현을 빌리자면, 신앙고백과 교회정치는 뼈와 근육의 관계이다.
교회를 다루는 신앙고백서 제30장 1항은 이렇게 진술한다. “교회의 왕과 머리이신 우리 주 예수님은 국가 위정자와는 구별된 교회 직원들의 손에 의한 정치(government)를 정하셨다.” 교회정치 규범은 이 조항에 대한 해설 및 보충 설명이다. 결국 교회 정치란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라는 것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것이다. 신앙고백이 믿음이라면 교회정치는 행함이고 이 둘은 분리될 수 없다. 신자들은 입술로만 막연하게 예수님이 교회의 머리라고 고백할 것이 아니라 자기의 교회가 정말로 그것을 실천하고 있는지를 잘 분별할 필요가 있다.
교회정치규범은 크게 다음과 같이 구성되어 있다. 1) 서문, 2) (가시적 공: visible catholic) 교회, 3) 교회의 직원, 4) 개체교회, 5) 치리회, 6) 목사임직.
서문과 가시적 공교회는 신앙고백에서 이미 다룬 내용들을 간략하게 요약 및 설명하고 있다. 서문은 이사야 9장 6-7절을 인용하면서 왕으로서의 그리스도를 장엄하게 선포하는데 이 서문은 교회 정치의 핵심을 정확하게 보여준다. 서문에 이어서 왕의 통치 대상인 교회에 대해서 다루는데 가시적 공교회와 개체교회들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다룬다. 하지만 신앙고백서에서 언급된 불가시적 교회는 여기에서 다루어지지 않는다.
교회정치규범이 가장 많이 다루는 부분은 교회의 직원이다. 이 중에서 목사가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 이것은 장로교회에서 목사의 비중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나타내 준다. 반면 집사는 4-5줄 정도 아주 간략하게 다루어져서 아쉬움이 남는다. 오늘날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교사 혹은 신학교수에 해당하는 직분이다. 처음부터 장로교회와 개혁교회는 3중 직분이 아니라 4중 직분을 채택하였다는 것은 장로교회가 신학교수를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였는지를 알 수 있다.
신학교수가 4중직에서 제외된 결과 오늘날 에베소서 4장에 나오는 교사는 주일학교 교사로 이해되는 경우가 빈번하다. 전통적으로 이 구절은 이단에 대해서 교리를 변증하는 신학교수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비록 신학교수는 시간이 흐르면서 3중 직분에는 제외되었으나 교회의 특별한 직분으로 교회정치에서 매우 중요하게 다루어졌는데 고신을 포함하여 한국 장로교 헌법에서 신학교수는 아예 제외되었다. 교회정치에서 신학교수 항목이 사라지자 신학교 및 신학교수의 직무에 대해서도 교회가 무관심하게 되었다. 신학교육과 현장의 분리는 자연스러운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1645년에 작성된 교회정치 규범에서 우리가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은 목사 임직에 대한 지대한 관심이다. 이 부분은 오늘날 너무나 간략하게 다루어지고 있다. 누가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할 수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대하여 대교리문답 158문답은 “은사가 있을 뿐 아니라 합당하게 인허를 받은 자”라고 답하고 있다. 교회정치규범은 “합당한 인허”에 대해서 상세하게 다루고 있다. 결국 교회정치의 원리도 잘 이해해야 하지만 교회의 직원을 세우는 과정과 절차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참고로 이 임직 규정에 따르면 아마 대부분의 한국 장로교회 목사들은 임직받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 당시와 오늘을 단순 비교할 수 없더라도 적어도 장로교회 성도들은 목사에 대한 기준을 높일 필요가 있다.
교회정치규범의 핵심 원리는 간단하다.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만이 교회의 머리라는 교리이다. 우리 주님께서 “제자를 삼으라”고 명령하셨는데, 이를 위해서 우리 주님은 세례를 제정하셨고 제자들에게 말씀을 맡기셨다. 이 성례와 말씀에 수종드는 사람이 바로 목사다. 결국 교회정치규범은 그리스도의 대 사명에 대한 교회의 순종이다. 이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기 위해서는 교회정치 규범에 나타난 직원들의 직무를 잘 이해하고 그 직무를 신실하게 수행할 사람들을 직원으로 세워야 할 것이다. 이 일을 잘 수행할 때 그리스도는 진정으로 교회의 머리와 왕으로서 영광을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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