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한 것들을 택하사
정용균 목사
(부산장애인전도협회)
월요일 오후, 비가 오지만 장애인들과 독서모임을 가졌습니다. 책을 읽고 나눔을 할때입니다. 아내가 이런 말을 합니다.
“요즘 한 장애인과 주일에 영상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어요. 예배 때마다 그가 특송을 하는데, 전화하여 물어보곤 해요. 이 노래 아느냐고. 그것을 함께 부를 때마다 불쑥불쑥 그 노래를 통해 하나님이 신앙을 고백하게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요. 그래서 함께 찬양을 부르면서 은혜를 누리곤 해요.”
그 말을 들으며 문득 생각났습니다. 다음의 말씀이.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고전 1:27-29)
S씨. 그의 주변에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그는 제 것에 대한 집착이 강합니다. 자기 뜻대로 일이 되지 않으면 화를 내고 자주 생떼를 부립니다. 그런 그를 좋아할 사람은 흔치 않습니다. 그래서 그는 혼자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가 자주 시간을 보내는 곳은 집 앞 정자입니다. 그곳에서 그는 많은 시간을 보냅니다.
그 정자 밑에서 그를 만났습니다. 그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에 어떤 사람이 다가와 그가 다른 사람과 다툰 사실을 알려줍니다. 왜 싸웠는지 그에게 물었습니다. 뭐라 뭐라 하는데 알아듣기가 힘이 듭니다. 짐작하기로 아마도 마스크 문제로 다툰 것 같습니다. 그가 마스크를 쓰지 않고 있으니 누군가 그것에 대해 지적을 했는데, 그는 그것을 참지 못하고 화를 내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그에게 나무라듯 몇 마디 했습니다.
그때 한 아주머니가 다가와 그에게 반가이 인사를 합니다. 뜻밖입니다. 그가 자리를 비웠을 때, 그 아주머니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아주머니가 말을 합니다.
“관계는 상대적입니다. 상대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존중하면 존중하는 만큼 달라집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S씨가 사람들과 자주 다투는 것, 맞아요. 사람들과 자주 다투어요. 그런데 따지고 보면 그에게만 문제가 있는게 아니고 상대에게도 문제가 있어요. 제게는 그냥 착한 동생이에요. 사람은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달라져요.”
그때 S씨가 다가오더니 커피를 내밉니다. 자판기 커피입니다. 뜨거울까봐 컵 받침대를 받쳐 가져왔습니다. 저를 대접하기 위해 자판기가 있는 곳까지 휠체어를 몰고 굳이 다녀온 것입니다. 그가 가져온 커피를 물끄러미 보며 조금 전에 아주머니가 했던 말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반성합니다. 평소 몰아붙이듯 그를 나무라기만 했던 것은 아닌가 하고.
누군가 그랬지요. “밉게 보면 잡초 아닌 풀이 없고, 곱게 보면 꽃 아닌 사람 없다”고. 그 말을 되새깁니다.
시들어가는 꽃을 보면, 놀라지 않게 조심스럽게 다가가, 입술에 닿는 깃털의 촉감 같은 목소리로 “아직 햇빛이 반할만하오”라고 속삭여 주어야지.
박총의 <내 삶을 바꾼 한 구절>이라는 책에서 본 황선하의 ‘시든 꽃에 반하다’라는 시입니다. 박총 작가는 한국의 많은 여인들이 날마다 이울어 간다고 안타까워하며, 여성이 꽃이라고 믿는 이라면 평소보다 조금은 더 다정하게 이렇게 속삭여보자고 합니다.
“아직은 반할 만하다고.
적어도 나에게만큼은”
그런데 여자만 꽃이던가요? 이 땅의 모든 이가, 모든 사람이 꽃이지요. 고된 삶에 지쳐 시들어가는 꽃처럼 힘없이 늘어져만 가는 사람에게 나지막이 속삭이고 싶습니다. 적어도 저에게라도 이렇게 속삭이고 싶습니다.
“아직 멋있다고.
아직 반할만하다고.
그러니 힘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