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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은 루터가 일으킨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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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대우 목사
                                                                                                   고신대학교 교수
                                                                                 개혁주의학술원 책임연구원



       종교개혁(Reformation)은 16세기에 일어난 것으로 기독교 세계 전체를 개혁고자 한 사건이다. 따라서 종교개혁은 “기독교개혁”(Reformation of Christendom)을 의미한다. 기독교에 대한 교리적 개혁인 동시에 제도적 개혁이었고, 또한 전통과 신앙습관에 대한 총체적 개혁이었다. 중세 말기였던 16세기에는 기독교가 서구 유럽의 유일한 종교였던 점이 감안된 용어인 “종교개혁”은 오늘날과 같은 종교다원주의 시대에서는 오해의 소지가 다분하기 때문에 종종 “교회개혁”으로도 번역된다. 종교개혁이 무엇보다도 먼저 교회의 개혁이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하지만 16세기 서구 세계는 정치와 종교가 하나였던 정교일치의 기독교 세계였기 때문에 개혁의 대상이 단순히 교회에 국한되지 않고, 사회 전체를 포함하는 것이었다는 점이 고려되어야 한다. 

       과연 이와 같은 종교개혁은 어떻게 발생한 것일까? 누가 이 종교개혁을 일으킨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해 누군가 다음과 같이 간단명료하게 대답할지 모른다. ‘종교개혁은 루터가 일으킨 것이다. 교황의 전횡과 당시 로마교의 타락에 비분강개한 마르틴 루터가 용감하게 일어나 1517년 10월 31일에 95개의 면죄부 반박문을 비텐베르크(Wittenberg) 성(城) 교회 정문에 붙인 사건이 곧 종교개혁의 시작이었다.’ 이 대답은 종교개혁을 의로운 일,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다고 인식하는 사람들을 만족시킬 뿐만 아니라, 흥분시키기에도 충분하다. 그러나 과연 이 대답이 정답일까? 엄밀한 의미에서 그것은 정확한 대답이 아니다. 오히려 오답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1517년, 루터가 면죄부와 관련된 95개 조항의 토론 논제를 작성할 때만해도 “개혁”(reformatio)이라는 것을 전혀 의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95개 조항의 게재 사건, 즉 루터의 그러한 행동은 단순히 당시의 관행을 따른 것일 뿐이다. 당시 대학 교수라면 누구나 자신이 성경을 통해 새롭게 깨달은 기독교 교리를 공개 토론에 붙일 수 있었다. 공개 토론은 그것이 옳은지 그렇지 않은지를 판단하는 방법이었고 루터는 바로 이런 관행을 이용했던 것뿐이다. 
       작센(Sachsen)의 선제후 현자 프리드리히(Friedrich[=영. Fredrick] der Weise)가 1502년에 설립한 비텐베르크 대학에서 루터는 1509년 3월에 신학부로부터 신학학사(baccalaureus theologiae 혹은 성경학사 baccalaureus biblicus) 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1512년에 루터는 비텐베르크 수도원의 부원장이 되었다. 같은 해 10월 18일에는 신학박사(doctor theologiae)가 되었고, 동시에 성경 강의를 위한 성경 교수로 임명받았다. 그래서 1513-1515년 사이에는 시편 강의를, 1515-1516년에는 로마서 강의를, 1516-1517년 사이에는 갈라디아서 강의를, 1517-1518년 사이에는 히브리서 강의를 했던 것이다. 
       당시 루터는 성경을 연구하고 가르치면서 면죄부 교리와 면죄부 판매가 성경 어디에도 그 근거를 찾아볼 수 없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와 같은 자신의 발견이 참인지 아닌지를 검증하기 위해 면죄부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95개 조항으로 정리하고 작성하여 공개적인 장소에 붙인 것이 바로 1517년 10월의 마지막 날에 일어난 95개 조항 게재 사건이다. 당시에는 11월 1일이 만성절, 즉 모든 성인을 기념하는 가장 큰 축일 가운데 하나였다. 또한 그 날은 만성절이기도 하지만 당시 대학의 개학일이기도 했다. 아마도 루터는 그 때가 토론하기에 가장 적절한 시기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는 하루 전날인 1517년 10월 마지막 날을 95개 조항 게재일로 잡았으리라 추정해볼 수 있다. 

       그러나 루터가 그 토론 조항들을 게재할 당시만 해도 개혁의 의도는 조금도 없었다. 즉 95개조 토론문을 작성하고 게재할 때 루터는 그것으로 교회나 사회를 개혁하고자 하는 생각을 전혀 갖지 않았다. 그것은 단지 루터 자신의 깨달음이 당시 로마교의 가르침보다 더 성경적이라는 확신에서 비롯된 평범한 행동이었을 뿐이다. 비텐베르크의 종교개혁자는 자신의 행동이 중세의 기독교 세계 전체를 통째로 날려버리는 태풍의 핵, 역사의 페러다임(paradigm)을 바꾸는 전환기적 사건, 즉 종교개혁이 되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종교개혁은 종교개혁자 루터가 전혀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루터를 통해 일어난 신비로운 사건이다. 
       95개 조항 토론문 사건으로 인해 1518년 4월 하이델베르크(Heidelberg)에서 어거스틴 수도원 종단회의에서 공개토론이 벌어졌는데, 루터는 어거스틴 수도원 소속 수도사였기 때문이다. 루터는 자신의 잘잘못을 규명하는 이 공개토론에서 로마교의 신학을 “영광의 신학”(theologia gloriae)으로, 자신의 신학을 “십자가의 신학”(theologia crucis)으로 정의하여 두 신학을 극명하게 대조시켰다. 작센의 선제후 현자 프리드리히는 1518년 8월에 개최된 아욱스부르크(Augsburg) 제국의회에 참석했는데, 거기서 그는 교황의 특사로 제국회의에 참석한 추기경 카예탄(Cajetan)으로부터 루터가 아욱스부르크로 출두해야 한다는 명령을 전달받았다. 
       당시의 정치적인 역학관계는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즉 황제 막시밀리아누스(Maximilianus)가 노병으로 죽기 직전이었다. 그가 죽으면 그의 뒤를 이을 황제를 선출해야 하는데 누가 황제가 되느냐하는 것은 당시 교황 레오 10세(Leo X)에게 매우 중요한 문제였다. 교황은 힘없는 종이호랑이 같은 사람이 황제가 되기를 간절히 원했고 그 대상으로 그는 작센의 선제후를 지목했다. 특히 교황은 가장 강력한 권력을 가진 두 사람, 즉 스페인의 왕 카를로스 1세(Carlos I = 황제 칼 5세)와 프랑스 왕 프랑수와 1세가 차기 황제로 선출되는 일만은 필사적으로 막고 싶어 했다. 하지만 일은 교황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루터는 1520년 한 해에 자신의 3대 종교개혁 논문인 [독일귀족에게 고함]과 [교회의 바벨론 포로]와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발표했다. 루터는 마지막 논문을 교황 레오 10세에게 헌정하면서 온갖 미사여구로 구애하는 장문의 편지와 함께 그 논문을 교황에게 보냄으로써 교황의 마음을 되돌려 보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이 모든 시도는 결국 헛수고였다. 
       자신의 할아버지 막시밀리아누스 황제를 이어 1520년에 새로운 황제로 등극한 칼 5세가 가장 먼저 해야 했던 일은 루터의 문제를 처리하여 교황을 자신의 편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그래서 칼 5세는 1521년 1월 27일에 보름스에서 제국회의를 소집했으며, 3월 6일에는 루터를 소환하여 직접 심문했다. 이 회의는 루터를 정죄하기로 미리 예정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현자 프리드리히를 포함하여 루터를 아끼는 모든 지인들은 한결같이 보름스로 가려는 루터를 만류했다. 하지만 루터는 용감하게 그곳으로 갔다. 그리고 당당하게 황제 앞에서 심문을 받았으며 카예탄 앞에서처럼 자신의 입장을 철회할 의사가 없음을 분명하게 밝혔다. 
       루터는 보름스 제국회의 석상에서 1520년에 출판된 자신의 책 세 권을 철회하라는 명령을 받았을 때, 하루 동안 고민한 후 다음과 같이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저는 제가 인용한 성경에 의해 사로잡혀 있으며, 저의 양심은 하나님 말씀의 포로가 되었습니다. 저는 저의 주장을 철회할 수도 없으며, 또 그럴 생각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양심에 반하여 행동하는 것은 안전하지도 현명하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 다음 “나는 달리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내가 여기 서 있사오니, 하나님이여, 나를 도우소서. 아멘”1) 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고 한다. 
       황제의 계획대로 1521년 5월 26일에는 제국의 이름으로 루터를 정죄하는 황제의 보름스 칙령이 공포되었고, 이미 교회로부터 파문된 루터는 이제 제국 내의 어느 곳에서도 발붙이고 살아갈 수 없게 되었다. 생존권조차 박탈된 것이다. 1521년은 루터 생애에 획기적인 전환점을 기록한 해였다. 이때부터 루터는 공개적으로 교황을 향해 칼을 뽑아들었고 공격의 포문을 열었기 때문이다. 16세기의 역사 시계는 마치 루터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모든 역사적 정황은 루터를 종교개혁자의 자리로 밀어 넣고 있었다. 

       네덜란드 출신으로서 중세와 종교개혁 연구 분야의 세계적인 전문가 헤이코 오버르만(Heiko Oberman)에 따르면 “루터는 자신을 개혁가라고 말한 적도 없고, 자신의 일을 종교개혁으로 표현한 것처럼 보인 적도 없다. 이런 용어 사용은 개혁이란 하나님의 궁극적 행동이었다는 사실과 부합한다.”2) 오버르만은 “종교개혁”을 “하나님의 궁극적 행동”으로 정의한다. 즉 종교개혁이란 인간에 의한 인간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한 하나님의 일이라는 것이다. 루터 자신도 개혁에 대해 이렇게 설파했다. “교회는 개혁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개혁은 한 사람, 즉 교황의 일이라거나 혹은 많은 사람들, 즉 추기경들의 일이 아니다. 이것 둘 다 가장 최근의 교회공회에 의해 증명되었다. 반대로 개혁은 기독교 세계 전체의 일이다. 그렇다. 그것은 하나님 한분만의 일이다.”3)
       16세기 종교개혁 사건은 그 배경과 원인을 밝히기 위해 수많은 전문가들에 의해 다방면으로 연구되어 왔다. 하지만 아직까지 종교개혁의 직접적인 원인이 무엇이었는지 분명하게 밝힌 학자는 없다. 풀리지 않는 미궁이요 미제다. 아마 앞으로도 종교개혁의 원인이 학문적인 연구로 밝혀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종교개혁은 시작부터 인간의 일이 아닌, 하나님의 일이었기 때문이다.  교회의 개혁, 신앙의 개혁, 나아가 기독교 세계 전체의 개혁인 종교개혁은 한 위대한 인간이나 뛰어난 집단에 의해 이루어진 사건이 아니라, 삼위 하나님 자신이 계획하시고 의도하신 대로 그분의 때에 그분 자신에 의해 이루어진 역사적 사건이었다. 그 하나님의 계획에 종교개혁자 루터는 첫 단추를 끼는 일을 감당했고 다른 개혁자들은 나머지 단추를 끼는 작업을 돕는 하나님의 도구들이요 동역자들이었다. 루터는 종교개혁을 계획하지도 의도하지도 않았으나 어느새 자신은 이미 종교개혁의 선두에 서 있었다. 그를 그 자리에 세우신 분은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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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Ich kan nicht anderst, hie stehe ich, Gott helff mir. Amen.” Heiko A. Oberman, Luther: Mensch zwischen Gott und Teufel(?: Severin und Siedler, ?), 216에서 재인용. 이 유명한 문장의 현대 독일어는 “Hier stehe ich, ich kann nicht anders, Gott helf mir, amen.”이고 이 문장의 영어번역은 “Here I stand. I can nothing else. God! Help me. Amen.”이다. 
2) Oberman, Luther, 84. 참고. 한글번역. [루터], 123.
3) James M. Kittelson, Luther the Reformer: The Story of the Man and His Career(Leicester: Inter-Vasrsity Press, 1989), 114에서 재인용. 참고. 한글번역. 제임스 M. 키텔슨, [개혁자 말틴 루터], 김승철 역(서울: 컨콜디아사, 1995), 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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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재수 교수의 생애
10월 27일, 어떻게 모일 것인가?
논문
송상석 목사에 대한 교회사적 평가 ...
송상석 목사와 고신 교단 (나삼진 ...
송상석 목사의 목회와 설교 (신재철...
네덜란드 개혁교회 예식서에 있어서...
제7차 헌법개정초안(2022년 6월)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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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차 헌법개정초안 예배지침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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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C 강령의 “전통적 웨스트민스터 ...
지역교회의 적정 규모(規模 size)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