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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신 교회 정체성을 부인하는 ‘명예 집사(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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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희찬 목사

(작은빛교회 담임)

 

 

   이번 헌법개정위원회(위원장 김세중 목사)가 내놓은 개정안 초안을 보면 놀랍게도 “집사와 권사에 대한 명예직은 헌법정신에 의거 세우지 않는 것이 원칙이나 특별한 사정상 사역을 위하여 만 65세 이상 된 자에게 당회의 2/3 이상의 결의로 세울 수도 있다”라는 내용이 나온다. 참으로 믿기지 않는 대목이다.

 

 

1. 기존과 개정 초안의 비교

 

기존

개정 초안

비고

제36조(집사와 권사의 선택과 임직 권한)

 

2. 집사와 권사에 대한 명예직은 성경과 헌법정신에 의거 세울 수 없다

제36조(집사와 권사의 선택과 임직 권한)

 

2. 집사와 권사에 대한 명예직은 헌법정신에 의거 세우지 않는 것이 원칙이나 특별한 사정상 사역을 위하여 만 65세 이상 된 자에게 당회의 2/3 이상의 결의로 세울 수도 있다

목회 차원에서 교회를 위해 평생 헌신한 분을 존중히 여기는 것은 성경 정신이며 교회의 큰 유익을 줄 수 있기에 세우도록 하는 것이 합당하다.

 

 

2. 개정 초안은 무엇이 달라졌는가?

 

1) 기존에서 집사와 권사의 명예직을 세울 수 없다고 제시한 원칙인 “성경”이라는 문구를 삭제했다.

 

   기존은 ‘집사와 권사에 대한 명예직’이 “성경”과 “헌법정신”에 의거 세울 수 없다고 하였다,

   그런데 개정 초안을 보면 원칙으로서의 “성경”과 “헌법정신”이 변질이 된다. “집사와 권사에 대한 명예직은 헌법정신에 의거 세우지 않는 것이 원칙이나.” 즉 기존 조항에 있는 “성경”이라는 문구가 사라진 것이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성경이라는 문구를 삭제할 수 있을 정도의 확신할 일이 있었던 것일까?

개정 초안이 집사와 권사에 대한 명예직을 특별한 사정에 의거 세울 수 있다고 하는 수정을 단행하면서 “성경”이라는 원칙을 삭제한 것은 다분한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왜 그랬을까? “성경”이라는 문구가 왜 걸렸을까? 집사와 권사에 대한 명예직을 세울 수 없다는 것이 성경에 나오지 않는 원칙임을 진짜 확신해서일까? 명예직을 세울 수 없는 것이 성경에는 나오기는 하지만 혹시 다른 의도가 있어서 이를 삭제한 것일까?

 

   과연 집사와 권사에 대한 명예직은 단지 ‘헌법정신에 의해서만’ 세울 수 없는 것일까? 성경은 명예 직분을 세우는 것에 관해 침묵하거나 긍정적이라도 한 것일까? 교회에서 명예 직분을 세워도 될 수 있다거나, 혹은 절대로 세워서도 안 된다는 것에 가타부타 성경이 명확하게 말하고 있지 않다는 것일까?

 

2) 개정안 초안의 비고란으로 이동한 “성경” 문구

 

   개정안 초안에서 삭제한 “성경”은 도대체 어디로 사라졌을까? 아, 사라지지 않았다.

   놀랍게도 집사와 권사의 명예직을 세울 수도 있다고 하는 해설, 비고란에 있는 해설로 이동했다.

   “목회 차원에서 교회를 위해 평생 헌신한 분을 존중히 여기는 것은 성경 정신이며 교회의 큰 유익을 줄 수 있기에 세우도록 하는 것이 합당하다.”

 

   그렇다면 위 문구의 뜻은 무엇일까? 위 말을 다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헌법개정위원회가 생각하는 “성경” 혹은 “성경 정신”은 ‘집사와 권사의 명예직을 세울 수 없는’ 것이 아니라, ‘특별한 사정에 따라 집사와 권사의 명예직을 세움으로 교회를 위해 평생 헌신한 분을 존중히 여기는 것’이 오히려 “성경의 정신”이라는 점이다!

 

   “성경”이라는 말을 삭제 혹은 이동함으로 지금 우리 앞에는 기존과 전혀 다른 결론이 도출된다. 우리는 지금 서로 양립할 수 없는 두 개의 명제 앞에 서 있다. 하나는 성경에 의거 명예 집사와 권사를 세울 수 없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성경의 정신에 의해 집사와 권사의 명예직을 세워서 교회를 위해 평생 헌신한 분을 존중히 여겨야 한다는 것이다.

 

   도대체 무엇이 성경의 정신인가? 적어도 헌법개정위원회는 명예직을 금한 기존 조항이 성경의 정신과 배치되었다고 보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지금이라도 성경의 정신을 따라서 특별한 경우에는 명예직을 세워서 이분들을 존중히 여김으로 바로 잡겠다고 하는 것 같다.

 

   도대체 성경과 성경의 정신은 이 사안과 관련해서 무엇이라고 말할까?

 

 

3. 성경은 명확하게 명예 직분을 금한다.

 

그 근거는 다음과 같다.

   첫째, 교회의 모든 직분은 봉사이다. 모든 봉사가 반드시 직분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모든 직분은 반드시 봉사여야 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친히 직분자로 이 세상에 보냄을 받아 봉사의 길을 걸었기 때문이다. 세상에 오신 그리스도는 “인자가 온 것을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 10:45)고 하셨다.

따라서 이 세상에 세움 받은 교회의 모든 직분자는 지상에 있는 그리스도의 교회에서 그리스도를 섬기도록 부름을 받은 종에 불과하다. 그래서 신약성경은 직분을 가리켜 ‘사역자’ 혹은 ‘종’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데는 큰 뜻이 있다(고전 3:5).

   교회 직분자가 그리스도의 종의 자리를 떠나고 그분의 말씀을 벗어날 때는 직분으로서의 특성과 권위를 잃는다. 성경은 신자들도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라고 부른다(살전 1:9, 롬 12:11, 14:18, 골 3:24, 벧전 2:16).

   그렇기 때문에 봉사가 아닌 명예를 위해 직분을 세우는 것은 그리스도의 길이 아니다.

 

   둘째, 성경은 모든 교회가 항상 신실하게 시행해야 할 공적 직무 혹은 공적 사역이 있고, 여기서 해당하는 직분이 나오고, 그리고 그 직무에 적합한 은사와 능력을 받은 특정한 사람이 그 직분으로 부름을 받는 것을 순서로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성경은 ‘교회의 공적 직무→ 직분 → 사람’의 순서를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제시하는 교회가 신실하게 시행할 공적 직무는 어떤 것일까? 저명한 개혁교회 법학자 바우만(H. Bouwman)은 이렇게 말했다.

 

   “그리스도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그의 교회를 가르치기 위해 최고의 선지자와 교사로, 그의 교회를 구속하기 위해 유일한 대제사장으로, 그의 교회를 다스리고 돌보시기 위해 영원한 왕으로 세움을 입은 것처럼, 그리스도는 가르치는 직분(목사)을 통해 자기 교회를 가르치시고, 감독직(장로)을 통해 그의 교회를 인도하시며, 집사직을 통해 그의 자비의 풍성함을 나타내시기를 원하신다.

 

   구약시대 이스라엘 교회에 선지자ㆍ왕ㆍ제사장 세 직분을 세우셔서 그의 백성을 돌보신 주님은 신약시대의 그의 교회에 말씀 봉사자(목사)ㆍ장로ㆍ집사를 세우셔서 그의 교회를 돌보시기를 기뻐하신 것이다.

 

   스코틀랜드 교회의 개혁가 앤드류 멜빌이 작성한 『스코틀랜드 제2권징서』(1578년)는 교회의 공적 직무를 ‘교리(doctrine), 권징(discipline), 구제(distribution)’, 이렇게 셋으로 말했다. 여기서 교리는 설교와 성례(성찬, 세례)와 연관된다. 바로 이 공적 직무에서 목사ㆍ장로ㆍ집사 직분이 나오며, 이를 위해 부름 받은 자들은 모두 교회의 사역자라고 하였다.

 

   종교개혁 당시 교회 정치에 큰 영향을 끼친 개혁가 요한 아 라스코(1499-1560) 역시 독일의 엠던, 영국 런던 등에서 사역할 때 교회의 4대 공적 사역 즉 설교와 성례 시행, 구제, 권징을 제시하고 또 이를 신실하게 시행하기 위해 네 직분을 말하였다.

 

   이러한 정신에 따라 『웨스트민스터 교회정치』(1645년)는 목사, 장로, 집사 직분을 가리켜서 “통상적이고 영구한”(ordinary and perpetual) 직분이라고 하였다. 바로 여기서 “항존(恒存) 직원”이라는 말이 나왔다. 즉 설교, 성례, 권징, 구제는 교회라면 언제나 갖추어야 할 공적 직무이자 공적 사역이면서 또 통상적이고 영구한 직무,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직무이다.

 

   이같이 교회 직분을 교회에 항존(恒存)하는 기능을 따라 구분하고, 그리고 직분을 가진 자가 자기 직분에 고유한 직무에 전적으로 헌신하도록 한 것은 종교개혁의 유산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점에 비추어 볼 때 명예 권사(집사)는 공적 직무나 사역과 상관없이 명예를 위해 직분만 가진 것이기에 이는 결코 성경적이 아니며, 나아가 종교개혁 정신과 교회정치에 역행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성경은 사람보다 직분이, 직분보다 교회의 공적 직무가 우선이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4. 총회 결의에서 금지한 명예 직분

 

   성경과 개혁주의 신앙문서뿐 아니라 고신 교회 제32회 총회(1982년)는 공로장로와 함께 명예권사가 헌법정신과 위배 됨을 확인한 바 있고, 제56회 총회(2006년)에서 이를 재확인하였으며, 마침내 2011년에 개정된 교회정치 36조 2항은 “집사와 권사에 대한 명예직은 성경과 헌법정신에 의거 세울 수 없다”고 규정하였다.

 

 

5. 고신 교회의 정체성과 역사의식을 부정하는 명예 직분

 

   교회의 공적 직무를 위해 직분을 가졌다 할지라도 직무를 신실하게 행하지 않음으로 실제로는 직분이 이미 명예화된 것이 결코 작은 일이 아니지만, 그런데 아예 노골적으로 순전히 교회에 기여한 헌신을 기리고 존중한다는 명목으로 순전히 그의 명예를 위해 명예 직분을 주는 것은 더욱 심각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이는 고신 교회의 태동이 되는 조선예수교장로회의 역사에 대한 비판적인 역사의식의 부재에서 나왔다고 말할 수 있다.

 

   직분의 명예화는 역사적으로 한국교회가 국가주의에 굴복하고, 마침내 1938년 제27회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가 신사참배를 공식적으로 가결하는 중요한 배경이 된다. 박용권 박사는 『국가주의에 굴복한 1930년대 조선예수교장로회의 역사』(박사 논문, 2008년)에서 1930년대 다수 교회는 이미 1920년대부터 영적으로 썩어 있어서 신사참배를 통한 국가주의 요구에 저항할 수 있는 능력을 잃어버린 상태였다고 하였다. 또 당시 장로교회의 성찬 참여 교인 중 약 1/4이 교회 직분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들 모두가 일하기 위해서 직분을 맡은 것이 아니라 직분 자체가 중요하고, 교회의 사명보다는 교회의 직분이 앞서는 일이 이미 30년대를 전후로 생겨났다고 하였다. 1930년대 교회는 직분이 봉사가 아니라 명예직이 되어버린 예를 수없이 찾을 수 있는데, 교회 직분자들이 기념식을 하느라 바쁘게 지냈다고 하였다. 장로 20주년, 30주년 근속을 기념하는 일이 많았으며, 이를 계기로 기념비를 세우고 기념예배당까지 세웠다고 하였다.

 

   쉽게 말해서 위에서 말한 논문에 따르면 제27회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가 공적으로 ‘신사참배의 합법성’을 결의한 것은 선교 50년을 전후로(1884년 선교사 첫 내한 이후 1934년이 바로 선교 50주년이 된다) 오래전부터 교회들 안에서 사람들이 직분의 명예를 추구한 것에 그 기반을 두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 고신 교회는 이러한 신사참배를 반대하고 옥고를 치른 일부 출옥 성도들과 이에 함께 회개 운동을 벌인 성도들이 주님의 섭리로 세워진 교회다. 개혁주의 신학과 생활, 바른 교회정치 확립과 함께, 회개 운동이 고신 교회의 출발이고 정체성이다. 이 회개 운동은 직접적으로는 “나 외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는 제1계명을 염두에 두고 신사참배에 대항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이 계명의 근본적인 출발이 되는, 특별히 직분에서 명예를 탐하고자 하는 ‘욕망’을 회개하고 겸손히 예수님의 본을 따라 섬김의 길을 걷고자 함이 아니던가? 교회에서 직분의 명예를 탐하는 욕심을 부인하는 것이 바로 신사참배 반대 정신이 아니던가?

 

   따라서 이번 헌법개정위원회가 개정안 초안에서 특별한 사정이 있으면 명예 집사(권사)를 세울 수 있도록 한 점은 어떤 의미에서 1930년대 말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의 공적 신사참배 가결과 대부분 교회와 성도들이 신사참배에 참여한 것에 대한 비판적 역사의식과 성찰이 부족한 것이라 할 수 있고, 고신 교회의 회개 운동에 관해 안목이 다소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6. 명예 직분을 수여하는 방법으로 교회를 위해 평생 헌신한 분을 존중히 여기는 것이 과연 성경의 정신인가?

 

   과연 이 방법 외에 다른 방법은 없을까? 교회를 위해 이름 없이 평생 수고한 분을 귀히 여기고 존중히 여기는 일이 성경의 정신이라는 데 동의한다. 그런데 명예 직분을 줘서 그렇게 하자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다. 도리어 명예 직분을 주는 것이 당사자에게는 모독일 수 있음을 생각해야 한다. 직분을 맡지는 않았으나 지금까지 이름 없이 겸손하게 주님과 주님의 교회를 봉사한 것을 기쁨으로 여기며 살아왔는데, 성경에 금한 명예직을 줘서 자신을 존중한다고 할 때 과연 이것이 그에게 기쁨이 될까? 그런 분을 존중히 여길 목적이라면 명예직을 주는 방법 외에 얼마든지 더 좋은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7. 이번 수정안의 진짜 문제는 어디에 있을까?

 

   이번 수정안의 문제점은 성경이 금지하는 명예 집사(권사)를 우리가 허용하는 것에만 그치지 않는다.

 

   더 큰 문제는 명예 집사(권사)를 허용하면서 기존 조항에 있던 “성경과”를 임의로 삭제한 데 있다! 그래서 명예 집사(권사)를 세우는 일이 마치 믿음과 생활의 절대적 법칙인 성경과는 상관이 없고 단지 헌법의 정신에는 맞지 않는 것일 뿐이라는 인상을 주고 있다. 나아가 “성경의 정신”이라는 말을 임의로 사용하여, 특별한 경우에는 명예 집사(권사)를 세움으로 교회에 기여한 분을 존중하는 것이 “성경의 정신”이라고 담대하게 말하는 것에 있다!

 

   ‘성경’이라는 말을 임의로 사용하여, 그 결과 성경을 왜곡되게 인용하고 해석하며, 혹은 성경을 삭제하고 첨가하고 변질시키는 것이 정말 문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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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임목사는 시찰위원으로 선정될 수 없는가? 성희찬 목사 (작은빛교회 담임) 이번 주간에 정기노회가 열렸다. 그런데 여러 노회에서 시찰위원 선정을 두고 논란이 있었다. 시찰위원 선정을 할 때 이번에 공포된 개정헌법이 이전과 다른 기준을 제시하기 때문이...
    Date2023.10.11 By개혁정론 Views10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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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 고신교회와 고재수 교수; 우리가 왜 그를 기억하며 그리워하는가?

    본 글은 월간고신 생명나무 2023년 10월호에 기고한 것을 허락을 얻어 게재함을 밝힌다. - 편집자 주 고신교회와 고재수 교수(1948-2023) - 우리가 왜 그를 기억하며 그리워하는가? - 성희찬 목사 (작은빛교회 담임) 고신교회의 신학교인 고려신학대학원(고려...
    Date2023.10.06 By개혁정론 Views1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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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 왜 고재수는 네덜란드에서 고려신학대학원 교수로 왔나?

    왜 고재수(N. H. Gootjes)는 네덜란드에서 고려신학대학원 교수로 왔나? 임경근 목사 (다우리교회 담임) 들어가며 2023년 8월 20일 고재수는 향년 75세로 캐나다에서 하나님의 품에 안겼다. 어떤 사람은 그의 이름을 보고 한국 사람으로 알지만, 네덜란드인이...
    Date2023.10.06 By개혁정론 Views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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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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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제7차 개정헌법 헌의안, 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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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총회가 계파정치에 함몰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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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에서 부산, 대구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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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회 헌의위원회는 총회 상정 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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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재수 교수의 가르침과 우리의 나...
고재수의 신학과 고신교회
동료로서 본 고재수 교수의 고려신...
고재수 교수의 한국 생활과 사역
고재수 교수의 생애
10월 27일, 어떻게 모일 것인가?
논문
송상석 목사에 대한 교회사적 평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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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상석 목사의 목회와 설교 (신재철...
네덜란드 개혁교회 예식서에 있어서...
제7차 헌법개정초안(2022년 6월)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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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차 헌법개정초안 예배지침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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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C 강령의 “전통적 웨스트민스터 ...
지역교회의 적정 규모(規模 size)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