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에서 부산, 대구까지
안재경 목사
(광주은성교회)
경상도 출신 목사가 작년부터 전라도 광주에서 목회하고 있다. 만 1년이 다 되어간다. 광주에서 목회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 정도로 전라도, 그리고 광주는 경상도 목사에게 낯선 곳이다. 100명이 넘는 신대원 동기 중에 전라도에서 목회하는 동기가 한 명도 없다는 것이 그것을 반증한다. 처가와 본가를 종종 들러야 하기에 요즘 88고속도로, 남해안고속도로를 종종 타지만 광주에서부터 신학교가 있던 부산, 그리고 광주에서 과거에 목회하던 대구까지의 거리가 너무나 멀게 느껴진다. 언어를 포함해 각 지역의 고유한 문화와 정서가 있기 때문에 당연한 것이라고 하겠다.
최근에 소위 말하는 정치적 설교 때문에 큰 논란이 일어나고 있다. 정치의 좌경화를 비판하면서 선지자적 설교를 해야 한다는 주장부터 시작하여 설교단이 정치구호가 난무하는 선전장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양 극단의 주장이 대립하고 있다. 요즘과 같은 정치상황에서는 선지자적 설교를 하는 것이 성경적인 설교라는 주장과 선지자적 설교라고 주장하지만 복음을 정치에 종속시키고 있다는 주장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어느 쪽이든지 목사라면 누구나 자신의 설교가 성경적이라고 말할 것이다. 정치적인 상황을 바라보는 입장이 다를 뿐이다.
경상도 출신 목사가 전라도에서 목회하기 시작하면서 제일 걱정스러웠던 것이 바로 이것이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한다고 하는데 교인들은 목사가 자신의 정치적인 입장을 선전한다고 느끼면 어떻게 할까 라는 걱정이었다. 이것은 아무리 설득하려고 해도 안되는 문제이지 않을까? 이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어떤 신대원 동기가 말했다. 경상도 목사가 전라도에서 목회하니 그나마 낫겠다는 것이다. 전라도의 교회, 교인들은 거의 다 동일한 입장을 가지고 있으니 크게 문제될 것이 없지 않냐는 것이다. 경상도에서는 교인들이 다양한 생각을 하고 있으니 설교하기가 너무나 어렵다는 것이다. 정치를 설교하면 설교한다고 소리치고, 안 하면 요즘 같은 시국에 왜 정치에 대해 설교하지 않냐, 나라 걱정을 하지 않냐고 볼멘소리를 한다는 것이다. 그 동기 역시 경상도 목사이기에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경상도 출신 목사가 전라도에서 목회할 때 어떻게 설교해야 할까? 정반대의 경우는 또 어떤가? 경상도에서 하는 설교와 전라도에서 하는 설교가 달라야 할까? 지역에 따라서 설교가 달라질 수밖에 없는가? 설교는 무엇보다 지역정서를 잘 고려해야 하는가? 복음은 보편적인 것이고, 어떤 지역에 세워진 교회라도 동일한 복음을 전해야 하지 않는가? 그렇다. 당연히 목사는 정치를 설교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설교해야 한다. 물론, 복음에 정치적인 측면이 있다는 것도 불문가지의 사실이다.
문제는 경상도에서도, 전라도에서도, 그 외 어떤 지역에서도 목사라면 자신이 복음을 전한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다른 것이 아닌 복음을 전한다는 것을 어떻게 검증할 수 있을까? 교인들의 반응만 가지고 판단할 수는 없다. 우선, 우리는 성경봉독과 설교의 관계를 잊지 말아야 한다. 예배 때 성경봉독이 있다. 그 후에 설교가 따라온다. 설교는 성경봉독에 매인다. 목사는 설교할 성경본문을 자유롭게 정할 수 있지만 설교는 자유롭게 정하여 낭독하는 그 성경봉독에 매인다. 목사는 자유로우면서도 매여 있다. 목사는 오직 말씀에 매여 있다.
말씀을 맡은 목사는 전라도에서나 경상도에서나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해야 한다. 전라도에서 하는 설교를 경상도에서는 할 수 없는가? 경상도에서 하는 설교를 전라도에서 해서는 안되는가? 어디에서든 동일한 것을 전할 수 있어야 그것이 복음의 가까운 것이라고 하겠다. 복음은 모두를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한쪽에서는 설교를 듣고 그것이 복음이라고 하는데, 다른 쪽에서는 그런 것은 복음일 수가 없다고 한다면 복음을 제대로 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내가 지금 전라도에서 하는 설교를 경상도에 가서 할 수 없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한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의 특정 이념을 설교한 것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나는 내가 복음을 전했는지, 나의 생각과 이념을 전했는지를 판단하는 스스로의 기준을 가지고 있다. 나는 우리 교회 교인 중에 대기업 회장이 있고, 비정규직 노동자도 있다고 가정한다. 내가 설교했는데 한쪽이 ‘오늘 말씀은 진짜로 복음이었습니다’라고 감격해 하는데, 다른 쪽은 ‘그것은 복음이 아니라 하나의 이념입니다’라고 분노한다면 나는 복음을 전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반면, 두 분이 와서 한꺼번에 ‘오늘 복음을 들었다’라고 하든지, 아니면 양쪽이 다 나를 향해 ‘그것은 복음이 아니다’라고 하면서 합세하여 돌(?)을 들어 치려고 한다면 복음을 제대로 전한 것이 아닐까?
또 하나, 나 자신이 복음을 제대로 전했는지 아닌지를 검증하는 기준으로 생각하는 것이 있다. 우리 교인 모두가 특정 정당원이기만 하다면 우리 교회는 교회라기보다는 정당에 가까워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교인들을 한 색깔로 통일시키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정치적인 입장을 용납하는 것이야말로 교회에 가까운 모습이지 않을까? 교회는 누구나 올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목사는 복음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고 하는데 교인의 양심을 고통스럽게 할 수 있다. 참으로 두려운 사실은 목사인 나 자신이 복음이 아니라 정치적이고 경제적이고 문화적인 특정 입장을 설교하므로 하나님이 보내주신 이들을 쫓아낼 수 있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내주신 교인을 생각해 본다. 하나님이 교회에 보내시는 이들은 특정한 정치입장을 가진 이들이 아니라 구원받아야 할 죄인이다. 교회는 구원받은 죄인들이 모여서 생활하는 곳이다. 교회는 교인들만이 아니라 온 세상을 향해 구원의 복음, 복음이신 그리스도를 전해야 한다. 목사가 복음을 전해야 전라도에 사는 경상도 사람도 교회에 나올 수 있고, 경상도에 사는 전라도 사람들도 교회생활을 할 수 있다. 이것은 어디에서나 마찬가지다. 광주에서 부산 대구까지, 부산 대구에서 평양을 넘어 베이징과 워싱턴과 모스크바까지 동일한 복음이 전해지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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