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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금의 은혜1)


저자: 데이빗 브로지 (David Vroege, 모든 민족 기독개혁교회 목사)
번역: 박재은 목사 (Ph.D. cand., Calvin Theological Seminary)2)


테레사 수녀에 대한 글을 쓴 사람인 쉐인 클레이본 (Shane Claiborne)은 빈민가에서 오랜 기간 동안 사역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어느 날 쉐인에게 구걸하던 한 여자가 다가왔다고 한다. 쉐인은 그 당시 그 여자에게 줄 돈이 없어서 대신에 주머니에 있던 껌을 주었다. 아마도 구걸하는 여자에게 껌을 주는 것은 주는 사람에게도 받는 사람에게도 그리 흔한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여자는 껌을 보자 즐거운 미소를 지었다. 껌을 받아든 여자가 첫 번째로 한 일은 그 작은 껌을 세 등분 한 것이다. 그 다음 그녀는 한 조각을 쉐인에게 주었고, 또 다른 한 조각은 그녀 옆에 있던 다른 사람에게 주었고, 마지막 하나는 자신이 가져갔다. 

확실히 이 구걸하던 여자는 고린도후서 8장 7절 말씀을 잘 지켰다고 볼 수 있다: “남에게 주는 일의 은혜를 풍성하게 하라.” 

은혜 안에서 남에게 무엇인가를 준다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는 헌금과 예배를 어떻게 연관 지을 수 있을까? 바울은 고린도후서 8-9장에서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두 가지 방법으로 주고 있다. 

첫째, 하나님 스스로가 남에게 주는 은혜에 풍성한 분이라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고린도후서 9장의 마지막은 이렇게 끝난다: “말 할 수 없는 그의 선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여기서 바울이 말하는 선물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뜻한다. 하나님께서 스스로를 우리에게 내어주신 것은 정말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그리스도를 내어 주신 이유는 바로 고후 8:9의 말씀처럼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다. 우리의 삶을 부요케 하시려고 하나님은 스스로를 낮추신 것이다.

둘째, 만약 연보를 함으로써 은혜가 풍성해지길 원한다면, 이러한 연보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행해져야 한다. 오로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남을 사랑할 수 있고, 용서할 수 있으며, 인도함을 받고, 축복과 위로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역을 통해서 하나님과 깨진 관계가 회복되었을 뿐 아니라, 우리의 죄가 사하여졌고, 우리의 종말론적인 미래 또한 밝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러한 사실에 근거해야만 우리는 우리의 것을 남들과 나눌 수 있다.

이미 그리스도께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우리를 부요케 하셨으니 우리도 바로 이러한 사실에 근거해서 주는 은혜의 풍성함을 누려야 한다고 바울은 권면한다. “주는 것”은 단순히 그리스도의 사람들이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차원의 것이 아니다. 또한 주는 것은 “그냥 주는 것” 그 이상이 되어야 한다. 오히려, 주는 것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이 응당 해야만 하는 것이다. 또한 만약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 묶인 그리스도의 공동체가 분리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은혜롭고 자비롭게 “주는 것”은 뭔가 특별하고 신기한 행동이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이 응당 그렇게 살아야만 하는 삶의 방식이라는 사실을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강조한다.

돈을 내는 것은 단순히 돈에 대한 문제가 아니다. 흥미로운 사실 중 하나는 바울은 고후 8-9장에서 “돈”이란 단어를 언급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대신에 바울은 “은혜,” “섬김,” “나눔,” “축복” 등의 용어를 쓰고 있다. 이러한 용어들은 과연 돈이라는 실체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들에게 어떤 의미로 이해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돈은 섬김과 나눔과 축복이라는 수사학과 깊은 관계가 있다. 이러한 의미들이 바로 돈의 진정한 의미다. 바울의 고민은 단순히 “예산”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섬김과 나눔이 사람들의 실제 삶에서 어떻게 열매 맺을 것인가에 대한 문제였다.

나는 여러 해에 걸쳐서 헌금 내는 시간이 예배 중에 얼마나 중요하고 놀라운 시간인지에 대해서 늘 생각하고 있다. 문자적으로 표현하자면 하나님께서 부어주신 은혜에 대한 반응으로 우리는 우리의 동전과 지폐를 헌금 바구니에 담아 하나님께 드리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헌금을 내는 것은 그것이 문자적으로 표현되는 것 이상으로 큰 의미가 있다.

때때로 교회는 교회에 처음 나온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곤 한다: “헌금 바구니에 돈을 내는 것은 의무가 아니랍니다.” 이런 말을 하는 의도는 충분히 공감한다. 굳이 초신자들에게 교회는 돈을 긁어모으는 곳이라고 생각할 여지를 줄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말은 자칫 잘못하면 헌금을 내는 것이 “모금”의 일종이라든지 특정 교회를 위한 “스스로의 물질적 섬김”으로 이해되게끔 만드는 위험이 존재한다. 헌금을 내는 것은 단순히 모금이 아니다. 또한 헌금을 내는 것은 단순히 우리의 자발적 섬김을 드러내기 위함도 아니다. 오히려 헌금을 내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우리의 반응이다. 우리의 이러한 반응들은 단순히 돈으로 환산되어 그 가치가 매겨져서는 안 된다. 우리는 초신자들에게 “예배 시간에 입을 벌려 찬양하는 것은 의무가 아니랍니다. 기도 시간에 기도하는 것 또한 의무는 아니랍니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이렇게 해서도 안 된다. 오히려 우리는 그들에게 예배의 순간순간에 참여하고 경험하게끔 초대해야 할 필요가 있다. “찬양을 하세요! 기도를 드리세요!” 혹은 “하나님께 드리세요! 돈으로 감사를 표현하세요!”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아마도 이런 접근은 어떤 사람에게는 새롭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어떤 사람들은 어떻게 그렇게 말하는 것이 가능하겠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나는 헌금을 드림에 있어서 고후 8-9장이 주는 교훈을 나누고 싶다.

1. 규칙적으로 드려라: 고린도전서 16장 2절에 “매주 첫 날에”라는 문구가 나온다. 한번 스스로를 점검해보라. 나는 매주 하나님께 규칙적으로 헌금을 드리고 있는가?

2. 남은 것을 드리지 말고 초산물을 드려라: 만약 재정적인 여유가 있어서 유용 자금이 생겼다면 그것을 하나님께 먼저 드려보라. 

3. 비례적으로 드려라: 하나님께 축복 받았다고 생각하는 만큼 비례해서 드려 보라. 바울은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고후 8:3)라고 언급한다. 어떤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작은 액수도 헌금을 드리기에는 힘에 부칠 수 있지만, 반면 어떤 사람에게는 그보다 더 큰 액수를 드리는데 문제가 없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4. 기분 좋게 드려라: 억지로 말고 강제적으로도 말라 (고후 9:7). 헌금을 드릴 때 최악의 마음가짐은 죄책감에 의해 드리거나, 누군가의 압박에 의해 드리는 것이다. 헌금을 드릴 때 최상의 마음가짐은 하나님께 예배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감사와 사랑을 표현하는 마음으로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내 삶에 내려주신 은혜를 생각하면서 감사함으로 드려야 한다.

5. 희생적으로 드려라: 마게도냐 사람들은 기대보다 더 많은 것을 드렸다 (고후 8:1-4). 또한 그들은 그렇게 희생적으로 드리는 것에 대해 그들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십일조”를 내 소유의 특정 퍼센티지는 하나님의 것이라는 개념으로 접근하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오히려 십일조는 얼마 정도를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가를 진지하게 고민함을 통해서 영적 유익을 찾을 수 있다. 몇 년에 걸쳐 몇몇 우리 교회 신도들이 연방 정부로부터 세금 감사를 받았다. 이유는 기부금 명목으로 잡혀진 헌금의 세금 보고가 연방 기준점보다 웃돌았기 때문이다. 소득의 10 퍼센트 정도가 캐나다나 미국의 전국 기준인데 반해 우리 교인들은 그보다 헌금 비율이 더 높았던 것이다.

교회 건물은 늘 수리, 리모델링, 임대료가 필요하다. 매년 그 예산은 늘어만 간다. 사람들은 굶주려가고 노숙자 수는 더해만 간다. 전 세계적으로 홍수나 지진 피해는 더해가고 있다. 대학생들은 학자금 대출로 힘에 겨워하고 졸업을 해서도 낮은 임금으로 괴로워한다. 실업자가 넘쳐나고 구직자는 늘어만 간다. 정규직보다는 비정규직이 더 많다. 자녀 있는 부모들에게 저축은 꿈도 못 꾼다. 가난한 은퇴자들은 늘어만 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주는 은혜”에 풍성해야 한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이 은혜를 풍성하게 누릴 때, 또한 성경의 내러티브 안에서 이러한 은혜를 발견하여 내 삶에 적용할 때 비로소 힘든 현실 삶 가운데서도 주는 은혜의 풍성함을 누릴 수 있게 된다. 또한 나의 삶 구석구석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할 때, 성령 안에서 또한 성령의 힘으로 우리의 삶을 영위할 때 우리는 주는 은혜의 풍성함을 경험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될 때 비록 우리는 아무것도 안한다고 하더라도 주는 은혜가 우리 삶 속에 풍성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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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본고는 북미 기독개혁교회 (Christian Reformed Church of North America) 공식 교단 매거진인 The Banner에 
The Grace of Giving 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글을 번역 및 게재 허락을 맡고 게시하였습니다. 저작권은 The Banner와 
저자에게 있습니다.
2) 박재은 목사는 현재 미국 미시건 그랜드래피즈에 위치한 칼빈 신학교에서 조직신학으로 박사논문 작성 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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