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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로 임직에 관하여 (2부)1)


저자: 더글라스 까위퍼 (미네소타에 위치한 개신개혁교회 목사)
번역: 박재은 (Ph.D. cand., Calvin Theological Seminary)2)



“. . .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 (행 20:28)


우리는 지난 호에서 장로 임직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를 했다. 살펴본 바대로 직분자의 임직이라고 하는 것은 직분자로 선택 받은 자가 교회의 권위 하에서 공식적으로 직분을 맡는 것을 뜻한다. “임직”과 “취임”은 함께 쓰이기도 하지만 특별히 목사직과 관련되어서는 구분이 필요하다는 것도 살펴보았다. 또한 임직과 취임은 반드시 공적 예식 하에서 진행되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번 호에서는 과연 “왜” 그렇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살펴볼 것이다. 왜 임직과 취임이 필요한 것인가? 왜 임직과 취임은 공적인 예식 하에서 진행되어야 하는가?

일반적으로 이러한 질문에 대한 대답은 성경적 예나 원리 가운데서 내릴 수 있다. 구약의 제사장들이나 왕들은 공적인 자리에서 그 직분에 취임했다. 사도행전 6:6이나 14:23에서 살펴볼 수 있듯이 사도들도 공식적인 자리에서 집사나 장로에게 직분을 수여했다.

좀 더 구체적으로 2가지 정도를 생각해볼 수 있겠다. 첫째는 직분을 맡아 임직하는 자의 관점에서 볼 수 있고, 둘째는 직분자들이 섬겨야 할 일반 교인들의 관점에서 살펴볼 수 있다. 나는 왜 장로의 공적 취임이 중요한지에 대해 첫 번째 관점을 견지하며 본고를 진행해 나갈 것이다. 이러한 내용은 우리 교단의 교회 질서법 “장로와 집사 임직 (혹은 취임)에 관한 형식”에 구체적으로 잘 나타나 있다. 지금부터 “취임”이란 단어는 “임직”과 “취임” 둘 다를 동시에 포함하는 단어로 상정하여 논의를 진행할 것이다.


교회 스스로가 장로의 부르심을 확증한다

직분자가 공식적인 임직식 하에서 장로로 취임해야 하는 첫 번째 이유는 다음과 같다. 그 공적인 임직식을 통하여 부름 받은 한 사람이 직분자로 세워졌다는 것을 교회가 확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교회는 객관적으로 그 사람을 직분자로 세웠다. 추천의 과정을 통해 혹은 당회의 결의 하에서 이미 교회의 구성원들은 그 사람이 직분자로서 교회를 섬길 것이라는 사실을 표현한 것이다. 즉, 그 직분 후보자는 “합법적으로 하나님 교회의 직분자로 부름 받은 것”이다.

그가 직분자로 취임함을 통해, 교회는 이 직분자가 교회를 섬기면 좋겠다는 요구에 대해 다시금 확증하는 것이다. 공식적인 공적 예배 가운데서 그가 취임함으로 말미암아 교회 전체는 이러한 요구에 대해 공적으로 다시금 확증하는 것이다.

이러한 교회의 공적인 확증이 필요한 이유는 장로로 부름 받은 자가 자신의 부르심에 대해 의심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거의 그렇지 않다. 예를 들면 만약 어떤 사람이 직분자 후보로 올랐다고 가정해 보자. 근데 일부에서는 이 사람이 직분자가 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 만약 당회가 이 후보자의 소문에 대해 철저히 조사한 뒤 사실 무근이라고 생각되면 교회는 이 사람의 직분에 대해 다시금 명확하게 확증할 수 있다. 만약 그 후보자가 실제로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면 교회는 당연히 그 사람의 취임을 연기해야 한다. 이런 경우, 문제를 지적당한 당사자는 과연 교회가 계속해서 자신을 직분자로 유지시킬 것인지가 궁금할 것이다. 직분자로 섬기기에 문제가 되는 사항들이 다 해결된 후에 비로소 그는 취임할 수 있고 그의 부르심은 교회에 의해 다시금 확증된다.


부름 받았다는 사실에 대한 확신을 갖는다

공개적으로 임직식 혹은 취임식을 해야 하는 두 번째 이유는 자신이 직분자로서 교회를 섬기게 되었다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또한 공개적으로 다른 이들에게 알리게 되는 기회를 제공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장로 후보자는 교회법에 나온 질문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당신의 마음 안에서 하나님의 교회,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 스스로에게 직분자로 부름 받았다는 사실에 대해 확증합니까?”

여기서 말하는 부름 받았다는 표현은 “주관적”인 부르심을 말하는데, 즉 한 사람이 교회를 섬길 직분자로 부름 받았다는 사실에 대한 개인적인 확신을 뜻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개인의 마음 상태에 대한 질문이다. 일반적으로 그 마음 상태에 대한 개인적 확신에 대해서는 후보자 스스로가 공개적으로 표현하지 않는다. 교회도 이에 대해 물어보지 않는다. 어쩌면 마음 깊숙한 곳에서 직분에 대해 개인적인 확신이 없을 수도 있고 나 말고 다른 사람이 장로로 선출되길 바랄 수도 있다. 그러나 일단 장로 후보로 뽑히고 나면 취임식 전에 하나님의 뜻에 대해 깊이 고민해보아야 한다. 그 이후에야 비로소 이렇게 고백할 수 있게 된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직분에 대해 하나님으로부터 부름 받았다고 확신합니다.” 혹은 성경이 말하는 것처럼 “성령이 저를 교회의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음을 확신합니다” (행 20:28)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목회자도 마찬가지다. 물론 목사 후보자는 교회의 부르심을 원하고 확신한다. 그러나 일단 모든 것이 결정되고 난 후 후보자는 혹시 나 말고 다른 사람이 더 목사직에 어울리지 않을까를 고민한다. 그러나 일단 부르심을 받아 진지하게 고민한 후에 교회 앞에서 목사직을 받는 사람은 둘 중 하나를 고백해야 한다. “나는 내 마음 속에서 하나님께서 나를 목사로 부르지 않으셨다는 사실을 느낍니다” 혹은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셨다는 사실을 내 마음 속 깊숙이 느낍니다.”


신실하게 사역 할 것을 약속한다

왜 장로는 자신의 부르심에 대해 확신을 가져야 하는가?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확실하게 장로 직분자로 부르셨음을 확신하는 자만이 자신의 직분을 신실하게 섬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공적인 임직식이 필요한 세 번째 이유는 선출된 장로가 공개적으로 신실하고 성실하게 자신의 직분을 다하여 교회를 섬길 것이라는 것을 공개적으로 서약하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장로는 교회법 형식에 나온 질문들에 대한 대답을 해야 한다. 첫 번째 질문은 이미 살펴본 대로 부르심에 대한 개인적 확신에 대한 것이고, 두 번째 질문은 성경만이 유일한 “하나님의 말씀이며 구원에 대한 확실한 교리”라는 사실을 고백하는 것이고 “모든 잘못된 교리”를 거부한다는 것에 대한 약속이다. 세 번째 질문은 “전심과 전력을 다해 모든 결의사항들을 지키겠다는 약속”이다. 이러한 결의사항들이 다 채택 될 때야 비로소 장로는 공식적으로 장로 직분을 시작하게 된다.

이러한 결의사항은 하나님 앞에서의 “서약”이다. 장로는 이러한 서약을 교회 앞에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하는 것이다. 공적인 교회 임직식 하에서 공개적으로 이러한 서약을 하는 이유는 교회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곳이며 교회가 바로 이러한 신실한 직분자들의 사역의 열매를 누리는 곳이기 때문이다.


부족한 자를 하나님께서 준비시킬 것이라는 것을 믿는다

공개적으로 임직식을 해야 하는 네 번째 이유는 이를 통해 장로들은 하나님께서 직분을 감당할 수 있는 힘을 주실 것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사역은 늘 무게가 있으며 압도적이다. 교회를 위한 그리스도의 사역을 생각할 때 더욱 더 큰 경이로움이 느껴진다. 사도 바울이 했던 말을 기억해야 한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 (고전 2:16). 과연 죄 많은 인간이 어찌 거룩한 하나님 교회의 직분자로 서겠는가? 하나님 앞에서는 모두 다 부족하다.

그러나 장로 임직식에서 장로들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부르셨고 그가 감당할 힘을 주실 것이라는 것을 확신한다. 이러한 확신은 첫 번째로 “하나님께서 세우신” 교회에 의해 직분자로 임명 받았다는 사실에 근거한다. 교회의 성도로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 선한 일을 도모할 때 하나님께서 풍성한 은혜를 주신다는 사실을 믿는 것이다. 둘째는 “하나님의 대리자”인 목회자가 이렇게 선포하기 때문이다.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고로 신실하게 사역하여 많은 열매를 맺으실 것입니다. 아멘.” 이것은 단순히 기도가 아니다. 또한 단순히 희망 섞인 작은 소망 정도가 아니다. 오히려 이것은 예배 시작 시 목회자들이 하는 감사의 기도 혹은 선포이다. 그리스도께서 목회자들을 통하여 그의 장로들에게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가 그들을 강건하게 할 것이고 풍성하게 할 것이라고 말이다.


교회가 장로들을 위해 기도한다

마지막으로 임직시 하에서 교회는 장로들을 위해 기도한다. 이 기도를 통해 교회는 하나님 보좌의 존전에 나아가게 된다. 이것은 아름다운 기도이다. 직분자들의 필요에 대한 기도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전해진다. 이 기도의 궁극적인 목적은 “집사와 장로의 사역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와 그 의가 더 확장되는 것이다. 비록 임직식에서 하는 기도는 일 년에 한 차례 정도 밖에 하지 않지만 그 기도 내용의 본질은 매 주일 예배 가운데 흘러넘칠 것이며 성도의 실제 삶의 부분 부분에서도 그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다. 장로들은 단순히 교회가 나를 위해 “기도 했다”라는 사실 뿐 아니라, 계속적으로 나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 2회에 걸쳐 나눴던 모든 내용은 반델렌 (VanDellen)과 몬스마 (Monsma)가 쓴 책인 『교회법 주석』에 나온 질문 “왜 적절한 취임식을 해야 하는가?”에 대답하기 위한 것이다. 그들은 이렇게 기록했다. “직분 후보자들은 공개적으로 자신들의 선출에 대해 받아들여야 하며, 공개적으로 자신들의 책임감을 표현해야 하고, 하나님 앞과 그의 교회 앞에서 공개적으로 충성과 봉사를 약속해야 하며, 이 모든 과정이 다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인정해야 한다. 또한, 교회는 직분 후보자들의 마음의 상태를 살펴서 그들에게 직분자 천거를 해야 한다. 그렇게 될 때 하나님의 은혜가 새롭게 뽑힌 직분자들에게 넘치게 될 것이다.”


이번 호에서는 장로의 공개적 임직식 혹은 취임식의 유익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제 또 살펴볼 내용은 교회의 중요성에 대한 것이다 (추후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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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신개혁교회 (Protestant Reformed Churches)에서 발행하는 공식 매거진인 The Standard Bearer에 실린 글을 번역 및 게재 허락을 맡고 게재 합니다. 저작권은 The Standard Bearer와 저자에게 있습니다.
2) 박재은 목사는 현재 미국 미시건 그랜드래피즈에 위치한 칼빈 신학교에서 조직신학으로 박사논문 작성 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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