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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기독교의 대두1)


저자: 알버트 스트라이드홀스트 목사 (Rev. Albert Strydhorst, 디모데 리더십 개발 센터 디렉터)
번역: 박재은 목사 (Ph.D. cand., Calvin Theological Seminary)2)



나이지리아 남부에 위치한 캠프에서 모임을 갖는 The Redeemed Christian Church of God (RCCG) 교회는 양적 부흥의 결과 더 이상 현재 예배당에서 모든 교인을 수용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러한 사실은 2013년 교단 감독관이었던 에녹 에이드보이 (Enoch Adeboye)의 증언에 의해 알려졌다. 놀라운 사실은 이미 이 예배당에서 50만 명이 훌쩍 넘는 인원이 예배를 드렸다는 사실이다.

RCCG 교회는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교회 중 하나이다. RCCG 교회는 1952년에 설립된 교회로서 현재 전 세계적으로 5백만에 가까운 교세를 가지고 있다. 이 교회는 신학적으로는 오순절 계통의 신학을 가지고 있고, 성경 말씀에 대한 순종을 강조하며, 기도와 금식, 기적적인 신유 사역, 물질적인 번영 등을 강조한다. 게다가, 이 교회는 세계적인 포부와 열망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전 세계의 모든 가정들이 RCCG의 일원이 되는 것이다.

RCCG 교회의 성장과 그 신학 속에서 앤드류 월스 (Andrew Walls), 레이민 세네 (Lamin Sanneh), 필립 젠킨스 (Philip Jenkins)와 같은 교회사학자들이 늘 주장해왔던 것들에 대한 증거를 찾을 수 있다. 그것은 바로 기독교의 양적 성장과 복음화에 대한 열정의 추가 지구 남쪽 방향으로 기울어져가고 있다는 것이다.

본고를 통해 나는 이러한 기독교의 이동현상을 세계 기독교의 대두라는 주제 하에서 간단하게 3가지로 그 특징을 살펴보려고 한다.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 일하심에 대한 감사를 나누길 원하며 보다 더 건설적인 논의와 행동으로의 요청을 여러분께 기대한다.

과연 무엇이 성장하는가?

교회의 현상적 성장은 가히 기하급수적이다. 이쯤 되면 도대체 왜 주님의 마지막 나팔이 아직도 울리고 있지 않은지가 궁금할 따름이다. 교회는 성장을 지속적으로 경험해 왔지만 전 세계 인구 증가만큼은 아니다. 한 세기 전만 해도 세계 인구는 18억 정도였고 기독교 인구는 거기에 약 3분의 1 정도를 차지했다. 현재 세계 인구는 72억 정도가 되고, 기독교인들은 대략 그 3분의 1인 24억 명 정도이다. 교회는 세계 인구가 증가한 비율대로 성장하지 않고 있다.

이 셈법에서 기독교인이라고 하는 카테고리는 그 범위가 상당히 넓다. 만약 기독교 안에서의 어느 한 구체적인 교단이나 신앙 공동체로 그 범위를 좁힌다면 아마도 기독교인구 비율의 계산은 사뭇 달라질 것이다. 예를 들면,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관계를 중요시하며,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으며, 기독교 신앙을 전파해야 한다고 믿는 복음주의자들은 세계인구 증가 비율보다 2배나 빠르게 성장해왔다. 모든 기독교인들 중 20퍼센트 이상이 이러한 복음주의자들이다. 

오순절 계통의 기독교는 복음주의권 기독교보다 4배나 더 빠르게 성장했다. 오순절이나 복음주의권 기독교의 이러한 성장에도 불구하고 다른 전통의 기독교가 그만큼 성장하지 못했기 때문에 여전히 세계 인구 증가의 비율보다는 기독교 인구 증가 비율이 떨어진다.

하지만 정말 주목해야 할 사실은 교회의 이러한 괄목할만한 성장만이 아니다. 오히려 이러한 교회의 성장이 지구의 북쪽에서부터 남쪽으로 서쪽에서부터 동쪽으로의 방향성을 담지한 채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남쪽으로 향해가는 기독교

기독교의 무게중심은 유럽이나 북미로 대변되는 북쪽으로부터 아프리카, 아시아, 남미로 대변되는 남쪽으로 옮겨가고 있다. 기독교인의 인구 분포로 볼 때 “세계 기독교 무게 중심”은 동, 서, 남, 북에 걸쳐 꽤 골고루 포진하고 있다. 

북쪽으로부터 남쪽으로의 기독교 운동의 방향성은 마치 시소게임을 연상시킨다. 이 시소게임의 현재 그림은 북쪽보다 남쪽으로 무게중심이 더 기울어지고 있는 그림이다. 사실 원래부터 균형 잡기를 위해서 시소의 지렛목은 남쪽으로 무게중심의 이동이 필요하긴 했다. 이러한 무게중심의 이동은 지난 세기의 세계 기독교 발전상을 볼 때 꽤 뚜렷이 관찰 되는 부분이다.

약 백 년 전만 하더라도 세계 기독교 인구의 5분의 4는 유럽인이나 북미 사람들이었다. 지금은 5분의 2 수준으로 줄었다. 백 년 전만 하더라도 아프리카 기독교인들의 숫자는 9백만 정도였으나 지금은 5억이 훌쩍 넘는다. 백 년 전만 하더라도 전 세계 기독교인들 50명 중에 한 명 정도가 아프리카 사람이었다. 지금은 4명 중 1명이 아프리카 기독교인들이다. 

2013년 아르헨티나 사람이 교황의 자리에 오르면서 세계 기독교의 남향 현상은 더 두드러졌다. 교황의 모국어는 1980년부터 이미 전 세계 기독교회의 영향력 있는 언어였던 스페인어다. 

전 세계 남쪽 지역은 전 세계 인구의 80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므로 남쪽에서의 25퍼센트 정도의 기독교인 비율은 북쪽에서의 70퍼센트 정도의 기독교인 비율과도 맞먹는다. 현재 지구의 북쪽 지역의 인구 증가율은 계속해서 떨어지고 있는 반면, 남쪽 지역의 인구 증가율은 괄목할만하게 높아지고 있다. 이 또한 기독교의 남향 현상과 관계있는 대목이다. 

14억 명 정도의 인구를 지니고 있는 중국을 생각해보자. 중국 인구 14억 명 중 약 7퍼센트 정도가 기독교인이라는 추산이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중국 기독교인 인구가 1억 명에 달한다고도 추산한다. 이는 미국, 브라질, 러시아, 멕시코 등과 함께 세계 5위권의 기독교 인구 소유 국가로 추산될 수 있는 규모이다.
 
지난 세기 동안 중국에서의 기독교 비율 증가는 아프리카의 기독교 성장과도 비견될 만한 것으로 이제는 곧 중국 기독교 성장 이야기가 아프리카의 그것을 뛰어넘을 날이 멀지 않았다. 아프리카에서의 기독교 성장은 아프키카 물활론 (역자 주: 우주 만물에 영혼이 있다는 믿음, animism)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무슬림 인구 중에 기독교로 개종하는 인구는 줄어들고 있는 형편이다.

그러나 중국의 형편은 사뭇 다르다. 30년 전만 하더라도 문화 혁명으로 인해 기독교가 중국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라는 우려 섞인 목소리가 주류를 이루었다. 그러나 현재 중국을 들여다보면 과연 기독교가 잘 살아 남았는가에 대한 대답은 여전히 불투명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 내에서의 기독교의 성장이 급속도로 진행된 것은 또한 부인 할 수 없는 사실이다. 기독교의 무게중심은 단순히 남쪽으로만 이동한 것이 아니라 동쪽으로도 이동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12억 명 정도의 비기독교 중국인들이 여전히 중국에 남아 있기 때문에 중국에서의 기독교 성장의 잠재력은 실로 대단하다. 최근 중국인 학자가 칼빈 신학교를 방문해서 한 말이 인상 깊다. 이제 머지않아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임과 동시에 선교 현장이 될 것이라는 말이었다.

보수적 신앙

급속히 성장하고 있는 세계 기독교는 그 특징이 신학적으로는 보수적이고, 성경 중심적이며 (때때로는 근본주의적인 시각 하에서) 전통적인 사회 가치와 윤리 체계와 걸 맞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보수적 신앙은 1988년 성공회 연합의 램버스 회의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비록 램버스 회의에서의 의논은 유럽과 북미의 주교들에 의해 전통적으로 주도되었지만, 회의 참석자들 중에는 비주류 계통이 많았다. 거의 3분의 1 이상의 종교 지도자들이 아프리카에서부터 온 성직자들이었고 이는 세계 기독교의 방향성 변화를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증거였다.

동성애는 이 회의에서 중대한 이슈였다. 지구의 북쪽 지역에서 온 일단의 주교들은 동성애에 찬성하는 분위기였던 반면, 남쪽지역에서 온 지도자들은 열정을 다해 동성애를 반대했다. 결국 회의의 마지막 부분에서 동성애를 반대하는 것은 “성경과 배치”된다는 주장에 대한 찬반 투표를 하기도 했다. 

1998년 램버스 회의는 남쪽의 기독교 교회나 보수주의가 전 세계 기독교 안에서 수적 우위를 점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던지는 중요한 회의였다. 2013년 교황 선거는 이러한 면과 연속성을 가지고 있다. 보수 신학의 관점과는 차이를 가지고 있는 교황의 동성애에 대한 회유 정책은 로마 가톨릭 교회뿐만 아니라 아르헨티나 교회로부터도 이해를 얻기 힘들 것이라는 주장이 일각에서는 나온다.

은사적 (charismatic) 신앙

은사적 혹은 오순절 기독교 신앙은 기독교인의 일상 삶 속에서 하나님의 기적적인 능력을 체험하길 원하는 사람들이 추구하는 대단히 열정적이고 개인적인 신앙관이다. 방언이나 신유, 그리고 예언 등으로 대변되는 성령의 은사를 강조하기도 한다. 

오순절주의 (Pentecostalism)라는 용어는 때로 우리에게 혼란을 일으킨다. “오순절파” (Pentecostals)는 역사적 오순절 교파에 속한 기독교인들을 뜻한다. “은사파” (Charismatics)라는 용어는 성령의 은사의 드러냄을 강조하는 그룹의 사람들에게 더 많이 쓰이는 용어이다. “쇄신파” 혹은 “갱신파” (Renewalists)는 보다 더 포괄적인 단어로 오순절 신앙과 은사적 신앙 둘 다를 내포한다.

은사적 혹은 오순절 기독교의 성장은 실로 주목할 만하다. 1906년 로스 엔젤레스의 아주사 거리에서 시작된 이 운동은 전 세계 기독교의 4분의 1을 차지할 만큼 교세가 확장되었다. 가장 괄목할 만한 성장은 40년 전부터 시작되었다. 1970년에는 약 5퍼센트의 기독교인들이 은사적 기독교인들이었다.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에서의 기독교 성장은 오순절 운동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특히 남미 기독교의 반 이상이 오순절 기독교와 관련 있다.

값을 치루는 신앙

폴 마샬 (Paul Marshall)이 주목하는 것처럼, 기독교인들은 현재 전 세계에 걸쳐 가장 많은 박해를 받는 종교인들이다. 이러한 박해에도 불구하고 어떤 지역은 여전히 교회가 성장하고 있다. 물론 심한 박해로 인해 아예 교회가 사라져버린 지역 또한 있다. 이라크의 경우 인구 대비 35퍼센트로 추산되던 기독교인 비율은 현재 2퍼센트 이하로 줄어들었다. 

그러나 박해로 인해 교회가 사라져가고 있는 지역에서도 놀라운 증언들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최근 이집트에서의 21명의 콥트 교인들에 대한 대량 처형은 기독교에 대한 이집트의 많은 폭력 중 일 부분일 뿐이다. 그러나 이러한 기독교에 대한 박해와 폭력 속에서도 세계 기독교는 성장하고 뭉치고 있다는 것이 놀랍다.

박해는 교회를 연합시킨다. 교황은 처형된 이집트인들에게 “모든 기독교인들의 순교자”라고 지칭했다. 그는 부연하길 “그들이 로마 가톨릭 교도든, 정통교인이든, 콥트 교인이든, 혹은 개신교도이건 간에 중요한 건 그들의 피가 그리스도를 고백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다시 돌아가기 

세계 기독교의 무게 중심은 남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바뀐 무게 중심 추는 갖가지 주목할 만한 방법으로 다시 북쪽으로 그 방향성을 곧추 세우고 있다. 4천만이 넘는 외국인들이 미국에 살고 있다. 물론 거의 4분의 3 정도가 기독교인들이다. 그들은 지구의 남쪽에서 경험했던 믿음과 신앙의 삶의 모습을 미국에 가지고 들어와 살고 있다. 

또한 거의 백만 명에 가까운 지구의 남쪽 및 동쪽에서 온 국제 학생들이 미국에서 현재 공부 하고 있다. 대략적으로 25만 명 이상이 중국에서 온 학생들이다. 여기서 우리는 12 억 명 이상의 중국인들이 비기독교인임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그들이 중국에 있을 때보다 미국에 있을 때 그리스도를 주로 영접할 가능성이 훨씬 더 높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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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국 칼빈 신학교 Forum 2015년 겨울호에 Emerging World Christianity라는 제목으로 실린 내용으로 번역 및 게재 허락을 맡고 게재 합니다. 저작권은 Forum과 저자에게 있습니다.
2) 박재은 목사는 현재 미국 미시건 그랜드래피즈에 위치한 칼빈 신학교에서 조직신학으로 박사논문 작성 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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