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운 교수
고려신학대학원 선교학 교수
교회 역사를 통틀어 오늘 날 만큼 선교라는 말이 일반화된 때는 없었을 것이다. 교회나 그리스도인의 거의 모든 활동이 선교라는 이름으로 행해진다. ‘지역선교’, ‘어린이선교’, ‘청소년선교’, ‘학원선교’, ‘실버선교’, ‘문화선교’, ‘교도소선교’, ‘다문화선교’, ‘찬양선교’, ‘단기선교’ 등 등, 그 예를 열거하자면 한참을 더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교회 내의 부서도 남, 여 ‘전도회’에서 ‘선교회’로 바뀌었다. 이것으로는 부족해서인지 이제 ‘가는 선교사’와 ‘보내는 선교사’로 양분하여 모든 신자를 선교사로 만들어 버렸다. 드디어 모든 그리스도인의 선교사화(化)가 눈 앞의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그런데 이게 정상적인 것일까?
혹자는 선교사 출신으로 세계 복음화를 위해 교회에서 선교 동원을 하고 신학교에서 선교학을 가르치는 필자가 이런 현상을 두고 기뻐하고 감사해야지 무슨 시비를 거느냐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이런 식으로 선교와 전도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교회가 하는 모든 것이 선교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모든 그리스도인이 선교사가 되어버리면 그 무엇도 선교가 아닌 것이 되어버린다. 모든 것이 선교면 아무것도 선교가 아니다. 이것만큼 선교를 불분명하고 혼란스럽게 하는 것도 없다. 오늘 날 우리 교회가 하는 선교에 문제가 있다면, 그 문제를 만들어 내는 원인 중의 하나는 선교라는 용어의 무분별한 사용에 있다고 말해도 틀림이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바른 선교, 성경적 선교를 하려면 우선 선교라는 용어를 어떠한 의미로 사용할 것인지를 정해둘 필요가 있다. 거두절미하고 필자는 선교를 ‘타문화권에서 복음을 전파하는 사역’으로, 선교사를 ‘선교를 위해 교회의 파송을 받은 사역자’라는 의미로 사용할 것임을 밝혀둔다. 이런 정의가 이 글을 읽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너무 당연하고 평범하게 들리겠지만, 어떤 사람들은 수긍하기 힘들 것이다. 그 이유는 어떤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정의가 시대에 뒤떨어진 전통적이고 협의적인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래도 물리적인 거리를 의미하는 ‘다른 나라’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고 문화적인 거리를 의미하는 ‘타문화권’이라는 용어를 사용했으니 완전히 시대에 뒤떨어진 것은 아니다. 우리가 경험하는 것처럼 세계화의 진전으로 ‘타국=타문화권’이라는 공식은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다. 우리 주위를 잠시만 돌아보라,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타문화권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주님의 명령을 따라 복음을 들고 교회가 가야하는 곳이 더 이상 지리적인 거리와 동일시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선교에 있어서 물리적인 거리는 여전히 중요한 고려의 대상이다. 하지만 물리적 거리만큼 문화적인 거리도 고려의 대상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 ‘땅 끝’은 더 이상 저기 먼 어느 곳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곁에 있을 수도 있다. 타문화권 사람들이 저 멀리 있던 ‘땅 끝’을 우리 곁으로 가져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멀리 있는 타문화권 뿐만 아니라 바로 곁에 있는 타문화권에서 복음을 전하는 사역을 선교로, 타문화권을 대상으로 복음을 전하는 사역자를 선교사로 정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타문화권에서 사역한다고 해서 모든 활동이 선교이고, 모두가 선교사라는 의미는 아니다. 유학이나 사업 이민과 같이 외국에 나가서 살면서 전도를 하거나 한국에 들어온 외국 사람에게 전도를 한다고 해서 선교라고 부를 수 없다는 뜻이다. 선교와 선교사가 있기 위해서는 반드시 파송이 전제되어야 한다. 우리가 선교(mission)라고 부르는 말은 ‘보내다’ 또는 ‘파송하다’는 의미를 가진 신약성경의 ‘아포스텔로(αποστελλω)’ 와 ‘펨포(πεμπω)’의 라틴어 번역인 미토(mitto)에서 나왔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임무를 부여하여 그들을 세상으로 보내실 때 사용하신 단어이다(요17:18; 20:21). 선교(mission)는 예수님께서 친히 세우신 교회가 예수님께서 맡기신 “임무”(mission)를 완수하기 위해 사역자 보내어 그 일을 수행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의 파송이 없는 선교나 선교사는 있을 수 없다. 임무(mission)를 부여하고 보내는 주체가 없는데 임무가 존재하고, 그것을 수행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말이 되는 일인가? 이것은 교회로부터 목사로 임직 받지 않는 사람을 목사라고 부르고 그가 목사 직분을 수행한다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그런데 오늘날 ‘선교’, ‘선교사’라는 용어가 얼마나 무분별하고 무의미하게 사용하고 있는지! 선교, 선교사라는 용어와 직분에 대한 바른 이해와 사용 없이 바른 선교, 성경적 선교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