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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의 논문은 남아공에서 선교사로 섬기고 있는 김영무 목사가 한국복음주의 선교신학회(12월 3일 서울 금란교회) "85차 정기논문 발표"에서 자신의 박사 논문을 요약해 발표한 것이다.

 

  

 

온정주의와 의존상태에서 동역관계와 상호의존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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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무 목사

(남아공 선교사, KPM)

 

 

  1. 서론: 논문의 전체 개요

 

 타 문화권 선교에 온정주의 위험이 항상 있다. 그리고 이 온정주의는 항상 선교지 교회 안에 의존의 문화를 낳고 있다. 이 연구는 남아공 KOSH 지역 (Klerksdorp, Orkney, Stilfontein, Hartbeesfontein)의 Reformed Churches in  Southern Afrida의 선교 사역에서 과연 온정주의가 의존의 결과를 가져오도록 특징지어졌는지 살펴 보려는데 있다. 이 지역의 선교 사역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간략한 남아공 개혁교회의 선교의 배경을 살펴보아야 한다.

 

< > 배경첫 유럽인들의 남아공 정착남아공 개혁교회 (RCSA/GKSA: Reformed Churches in South Africa)의 선교문제 제기[1]은 1960년대 후반기 이래로 맹렬하게 도전이 되어 왔다. 선교에서 의존상태는 어떤 사람이나, 어떤 또는 하나의 기관에 의존하는 상태로서 간주 되어질 있다.  그런데 리켓 (Rickett, 2008:32)은 의존 상태는 두 가지로 나눌 수 가 있다고 하며, “건강한 의존 상태”와 “건강하지 않은 의존 상태”로 구분한다[2]. 따라서 “의존 상태” (dependency) 란 용어는 긍정적 혹은  부정적인 의미로도 쓰여진다.  단지 사람을 의존 한다든지, 단지 돈을 의존하는 것과 같은 “건강하지 않은 의존 상태”와는 반대로 “건강한 의존 상태”는  다른 사람을 봉사하는 가운데 협력과 상호 사랑의 봉사로서 상호 의존을 의미한다. 온정주의는 “의존 상태”와 관계된다. 아프리카에서도 새로운 선교 활동들과 개입들에 대한 모라토리움을 강요함으로써 의존을 극복하려는 역사적 노력들이 있었다.

 

 

 

3. 선교에서 온정주의와 의존 상태에 대한 성경적 관점들

 사도행전 15장에서 누가는 예루살렘 회의의 상세한 기록을 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전체 논쟁은 어떤 유대주의자들의 주장에 의해서 유발되었다. 그 주장은 각 개인은 모세의 율법에 따라 (행전 15:1) 할례 받지 않는다면 진실로 개종되어 질수 없다는 것이었다. 야고보의 결론은 이방인의 개종에 대한 수반되는 법적의무들과 할례를 강요하는 모든 시도들은 거부되어져야만 한다는데 이른다. 그러므로 이 회의는 다른 문화로 부터 온 사람들은 선교하는 교회의 문화적 양식을 따라서 변형시키려고 강요해서는 안된다고 결정한 것이다.

타문화 선교에서 하나님의 사람들은 복음의 핵심적인 요소들과 모든 기독교인들이 유지해야하는 기독교 윤리학과 단지 문화적 전통들과 복음의 핵심이 아닌 문제들 사이에 구분을 해야 한다. 이러한 문화적 문제들이 복음의 진보에 넘어지게 하는 방해물이 될 수 있다. 예를 들면, 이방인들은 우상에게 바쳐진 고기를 먹지 않도록 했다. 왜냐하면 이것은 유대인과 이방인들의 교제에 넘어지게 하는 방해물이 되었기 때문이다.

로마서 14장에 따르면, 바울은 한쪽편을 드는 것을 거절하고 단지 각 그룹이 서로를 존중하고 사랑하기를 원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두쪽 다를 받아들이신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고, 비본질적인 문제에 대해서 언쟁하는 것을 멈추어야 한다. 우리는 주요한 교리 문제 (예,삼위일체, 그리스도의 신성과 대속)와 주요한 교리 문제가 아닌 것들을 구분해야 한다. 주요한 교리들은 교회에서 훈련과 관용없는 “영들 분별”이 요구된다. 중요한 교리 문제가 아닌 것에 대해서는 사랑의 대화와 관용이 요구된다 (Osborne, 2004:363).

성경에 따르면, 양육은 새로운 그리스도인들을 교회의 몸을 세우는데 유능하고 성숙되게 준비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몸의 각 부분이 그것의 은사들을 사용하여 전체를 전진하도록 한다. 바울은 또한 데살로니가 교인들 (살전 2:11-12)을 위한 그의 목회적 돌봄을 묘사하는데 자녀에 대한 아버지의 관심의 이미지를 사용한다. 좋은 아버지는 그의 자녀를 하나님 나라안에서 책임있는 그리스도인 청지기가 되도록 용기를 주며 안내하며 성숙으로 인도한다. 그러나 바울은 그의 영적인 자녀들에게 그의 궁극적인 권위를 주장하지 않았다. 그는 그 자신을 그들의 아버지로서 임명하지도 않았다. 또한 1세기의 세상의 아버지가 하는 것처럼 변덕스럽게 행동하지도 않았고, 그가 원하던 것을 그들에게 요구하지도 않았다. 바울의 역할은 오히려 그들의 그리스도인 아버지로서 신자들이 하나님에게 어울리는 삶을 살도록 훈련하는 것이었다.

성경은 하나님에 대한 의존을 지지한다. 그리고 그것에 의해 다음의 요소들을 강조한다: 외부의 손들을 의존하기 보다 모든 필요들을 제공해 주시는 하나님을 신뢰함 (고후 8:1-5)을 통하여 자기의존, 온정주의 보다 양육의 행위와 성육신적인 태도, 그리스도 중심

성경적인 지침에 따라, 촛점은 외부의 기부자들에게 의존하지 않아야 한다, 자급을 위한 바람 (desire)이 양육되어져야 한다; 도움이 필요한 자를 위한 돌봄, 받기보다 가난한 자에게 관대하게 주기, 일시적인 기반에서 선교를 위한 경제적 도움을 주기

 

4. 선교에서 온정주의와 의존 상태에 영향을 있는 태도, 문화와 세계관에 대한 분석

문화란 사람들의 한 그룹에 의해 나누어진 산물들과 행동의 패턴, 공동으로 참여한 상징들, 가치들, 믿음과 느낌들의 다소간에 통합된  시스템이다.  그 중심에는 세계관 즉 우주의 자연과 그것 안의 그룹 회원들의 일반적인 이해가 놓여져 있다. 따라서 사람들이 행하는 모든 결정들은 세계관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보이지 않는 세계관에 의해 보이는 행위와 태도, 문화의 산물이 형성된다.

남아공 백인들은 유럽에서 온 백인들이므로 유럽의 문화에 기원하고 있고 서구적이다. 그래서 아프리카 흑인 문화와 백인 문화는 많은 차이점이 있다. 서구 유럽 문화는 전통적으로 행함의 문화이다. 모든일이 가능한한 효과적으로 효율적으로 행해져야만 한다. 서구인들은 그들이 얼마나 성취했는가에 의해 판단된다. 그들의 정체성은 그들이 가진 직업이나 성취들에서 발견된다. 이와 대조적으로 아프리카의 흑인 문화는 존재의 문화다. 존재의 이러한 형태는 “함께 존재함” 즉 사회성이 제일 먼저이다. 그래서 삶에 대한 서구의 접근 방식은 분류되어지고 훈련되어지고 시간이 계획되어진 것이다. 반면에 흑인 토착문화는 결합, 동일,  삶에 더 여가로운 접근을 분명히 나타낸다.

서구 백인의 세계관

서구 백인은 자선적이다. 자선은 비인격적이고 계획된 것으로서 정의 되어진다.유럽인들과 미국인들은 집단적으로 수억을 자선단체에 기부한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초대되지 않고 계획되지 않은 사람에게 한 끼의 음식도 제공하기를 원하지 않을 수도 있다 (Maranz, 2001:76). 청교도 교회들은 역사적으로 자선을 임시적으로 보았고, 더 긴 기간의 도움을 요구하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인 증거가 필요로 했다. 다른 말로 하면 교회들은 열심히 일하는 것과 기독교 신앙을 통하여 자급이 되도록-의존 상태의 약화- 전환되는 것과 동일시한다. 청교도 교회는 자급하는 일과 교회 출석에 의해 예증함으로써 “바른 삶”을 통하여 현재 상태를 유지하도록 격려했다. 청교도 공동체는 자선의 공급에 지원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일반적으로 인정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많은 청교도 교회들은 음식방, 옷 뱅크, 상담과 다른 지지하는 봉사들을 제공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도움의 본질은 임시적인 것으로 계획되어졌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주요한 사회 서비스 공급자로서 새로운 역할을 유지할 수 없다 (Belcher & Tice, 2011:173).

시간의 사용 (미래를 위한 계획)

서구의 시간 개념은 상품으로 본다, 또한 추상적이고 일상적인 삶으로부터 독립된 어떤 것으로 시계에 의해 측정되고 결정된다. 이런 개념은 사람들이 시간에 노예가 되게 하기 때문에 사람의 질을 저하시킨다. 과당 경쟁과 인간관계를 긴장시키고 서로를 소원하게 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그것은 계획을 하고 꽉찬 스케줄들을 통해 시간엄수를 산출한다. 과거를 존중하고 강조하는 아프리카와는 달리 서구인들의 눈은 미래로 방향지어져 있다 (Van der Walt, 2001:67). 미래를 지향함으로 그들은 미래에 대한 상세한 계획을 만들 필요가 있다. 그들이 그렇게 할 수 없을때, 그들은 당황하게 된다 (Maranz, 2001:93; cf. Nyirongo, 1997:90). 어떤 면에서는 서구인들은 시간을 우상화하며 시간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알지 못한다 (Van der Walt, 2001:67).

서구의 태도로서 우월의식

19 세기 유럽인들은 자신들을 법없이 살아가는 열등한 종족에 대해 우주적으로 우월한 종족으로 보았다. 토착인들은 분간 할 수 없었던 기술진보와 자본주의 시대에 근대 발전과 함께 문명의 대표자들로서 자신들을 이해하였다. 따라서 유럽인들은 물질주의와 토착민들이 동일화 할 수 없는 기술의 진보의 시대에 근대 발전과 함께 문명의 대표자들로써 이해했다 (Pakendorf, 1997:257). 서구 문명은 아프리카인과 동양의 문명들에 비해 우월한 것으로 보였다. 유토피아로 발전 될 수 있는 세계의 낭만적인 비전과 유사한 것은 교육 되고 문명화 되어져야 할 “가난한 야만인들”에 대한 견해이었다. 이러한 목표를 이루는 수단들 중의 하나는 선교사의 활동이었다. 그러므로 선교는 때때로 서구 문명과 발전을 이루기 위해 지원 됐다. 이런 점에서 많은 선교에 있어서 이러한 역할이 복음 자체의 메시지를 전하기 보다 더 중요한 것으로 말해질 수 있다 (Pretorius, 1987:179).

서구의 물질주의

Hiebert (1991:115-116)는 서구 백인들은 그들이 소유한 것에 의하여 사람들을 판단한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관점은 사람이 소유하고 있는 물질적인 상품들의 양에 의해 주로 성취와 성공을 측정한다. 서구 사람들은 지적이고 영적인 얻음보다 물질적인 부와 물리적인 복지를 더 행복과 동일시한다.

서구의 물질주의는 한편으로는 사람들의 삶을 황폐하게 만들 수 있다 (딤전 6:9-10). 그러나, 또 다른 면으로는 서구의 물질주의 관점은 발전에 공헌한다 (Maranz, 2001:32).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구의 물질주의 때문에 선교의 상황에서 하나님 보다 물질적인 것들을 의존하도록 잘못 인도 되어질 수 있는 실제적인 위험들이 있다. 돈이 참되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자리에 한 신이 된다. 왜냐하면 그들의 필요들을 채우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기 보다 사람들이 돈을 신뢰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경고하신다.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하나님께 그들의 소망을 두며…” (딤전 6:17) (O’Donovan, 2000:123).

서구로부터 아프리카에 가장 영향을 미친 것중에 하나가 성장하는 물질주의이다.  돈과 물질주의 복지가 사람들에게 하나의 반신(a semi-god)이 되었다. 경제적 활동, 성공 또는 물질의 획득이 그들 자신의 목적이 되었다. 그로인해 나라와 교회들에 막대한 부패를 가져왔다. 사람들은 경제적 목적을 위해 사람들을 착취하고 예속시킨다. 물질주의와 소비주의는 전통적인 그리고 기독교적인 도덕 둘 다를 침식시킨다. 예수께서 사람이 돈과 하나님 두 주인을 섬길수 없다고 경고하셨다. 물질주의는 우상이다. 그러므로 물질주의는 선교에 있어서 참된 동역관계를 세우는데 방해가 된다. 선교에서 물질주의는 선교사와 내국인 사이에 우월과 열등의 태도들의 충돌을 야기한다. 선교 상황에서 돈을 나눠주는 것은 온정주의와 의존상태를 야기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물질주의는 선교에 있어서 참 동역 관계를 불가능하게 한다. 그러나 사람들이 모든것이 속해있는 하나님을 의지할 때, 물질주의 태도는 복음을 통하여 깨뜨려 질 수 있다.

서구의 개인주의

문예부흥으로 인해 이성을 높이게 되고, 과학의 발전과 개인 자신의 자치의 감각이 높여졌다. 개인주의는 한 공동체에 대한 구성원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정신 활동에 의해 한정되어 진다. 그러므로 사람의 개인적인 면을 과대 평가하고, 공동체의 관계들을 과소 평가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리스도인의 궁극적 목적은 기독교 개인주의가 아니고 상호의존하는 한 몸으로서 교회이다.

아프리카 문화는 자연주의적이라기 보다는 영적이고, 개인주의적 이라기 보다는 공동체의 그룹 중심이고, 낙관적이라기 보다는 운명적이고, 현재나 미래 중심이 아닌 과거 중심적이다. 이러한 아프리카 흑인의 기질이 동역관계 세우기 쪽으로의 진보를 방해 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미래 발전에 촛점을 두고 있지 않아 선교에서 의존 상태를 야기 할 수 있다.

또한 아프리카의 그룹을 향한 공동체적 충성의 태도의 결과로서 아프리카인들은 조화, 사회의 균형, 평등과 개인 경제 수행에 대한 연대감을 더 선호한다. 이것은 경제발전에 넘어지게 하는 방해물이다. 서구의 감각에서 발전의 필수적인 개인의 개시를 억압하기 조차한다. 이러한 세계관은 자기 유지 가능성의 부족을 야기하고 교회안에서 의존상태로 인도할 수 있다. 그러나 공동체주의는 대인 관계에 대한 아프리카의 강조의 경우에는 긍정적으로 평가되어진다. 이것은 대안으로서의 공동체인 교회와 언약의 집단 공동체적 특성의 성경적인 가르침에 연결될 수 있고, 그것 때문에 대인관계에 대한 한 긍정적인 강조점을 가지고,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교회안에 하나의 사랑하는 그룹 정체성을 창조한다.

아프리카인들은 사회적인 상호 작용에 많은 시간을 보낸다 그래서 시간이 경제적으로 사용되어지지는 않는다. 이런점에서 아프리카 사람들은 그들 자신의 즐거움을 위한 과도한 양의 자유시간을 보낸다. 제한된 미래 관점때문에 계획을 거의 하지 않는다. 경영, 조직과 유지 보수가 어렵다. 아프리카의 과거에 대한 향수는 발전에 대한 자극을 부여하지 않는다. 교회들에서 이것은 종종 빈약한 계획과 교회 재산의 불충분한 유지 보수로도 이끈다.  

아프리카인들의 부와 가난에 대한 세계관은 또한 지속할 수 있는 발전에 대한 넘어지게 하는 방해물을 야기한다. 아프리카인들은 서구인들과는 풍요함에 대해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다. Sizoo에 의하면 “아프리카의 가난의 개념은 물질적인 수단의 부족을 우선으로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회적 관계를 가지지 못하는 ‘사회 고아’를 의미한다” (1995:15).  그래서 부자라고 하는 것은 동료 인간들과 생산적인 사회 관계를 가지는 것을 의미하고, 그러한 관계에 돈을 투자하기 위해 준비되어진 상태를 의미한다. 아프리카인의 세계관의 이러한 면이 사람들이 미래를 위해 돈을 모으는 것을 멈추게 하고, 오히려 그들이 가진 모든 것을 사회 관계들을 위해 써 버리게 한다. 이것은 교회안에서 재정의 부족을 경험하게 하고, 외부 자원들에 계속적인 의존의 결과를 초래한다.

아프리카인의 여성에 대한 세계관에 따르면, 여성은 모든 부분에 남성에 비해 두번째 지위를 가지고 있고 하위에 속한다. 여성들이 남성에 의해 종종 억압 받을 뿐만 아니라, 일반적으로 다양한 형태의 폭력을 당한다. 아프리카 대륙의 반 이상의 사람들에게 대한 이런 태도가 발전의 길에 문제가 될 넘어지게 하는 방해물을 형성하게 한다. 전통적으로 남자와 여자 사이에 관계는 불평등으로서 받아 들여졌다. 이러한 경향이 종종 선교에서 동역관계의 잘못된 형태를 야기한다. 성경적인 개념은 남자와 여자는 평등하지만 역할에 있어서 다르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프리카의 교회들은 여성에 대한 아프리카인의 세계관을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변화 시키도록 가르쳐야 한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 남성과 여성이 참된 동역 관계를 경험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

아프리카 전통사회에서 노인들은 단지 그들의 나이나 지혜 때문에 존경받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이 공동체에서 수행해야 할 종교적 역할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조상들과 그 공동체의 젊은 사람들 사이의 중재자로서 봉사하기 때문에 주요한 권위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현재에 도시화 된 사회에서는 이러한 역할들이 변화되어지고 있다. 노인들은 종종 비생산적이고 현재 사회에서 그들의 경제적 역할을 소진한 것으로 여겨진다. 선교사들은 선교에서 참된 동역관계를 세우기 위해 세대차이를 완화할 필요가 있다.

죄와 형벌에 대한 아프리카인의 세계관에 따르면, 죄는 개인들이나 협력한 그룹들에 의해 범해질 수 있다. 잘못된 행위나 죄에 대한 형벌은 그룹이나 혈연 공동체 안에서의 의무이다. 회개와 용서는 늘 의식들(rituals)을 동반한다. 그러한 의식들은 정상적으로 공공의 도덕적인 행위들을 수반한다. 이러한 세계관 때문에 사람들은 그들의 죄나 잘못한 행위에 대해 개인적인 책임을 지지 않는다. 그들은 오히려 그들의 범죄를 공동체 탓으로 돌린다. 이러한 세계관은 사람들의 책임을 피하게 한다. 그래서 선교에 있어서 상호 책임을 수용함으로서 세워지는 참된 동역관계를 세우는 것을 방해한다.

아프리카인들의 영의 세계에 대한 믿음은 “우리는 우리의 운명에 대해 아무런 것도 향상시킬수 없다” 라는 운명적인 태도와 두려움을 야기한다. 조상신 숭배는 가치있는 시간과 돈을 낭비하게 한다. 이러한 관습은 개인의 책임을 파괴한다. 왜냐하면 불행에 대한 비난은 항상 누군가 다른 사람에게 전가시키기 때문이다. 강력하고 무소부재의 영의 세계는 사람들의 일상의 삶에서 나눌 수가 없다. 대부분 아프리카인들은 영의 주최를 두려워하며 살고 있다. 이러한 두려움이 전형적인 운명론적 태도를 야기한다. 이러한 태도가 건강한 영적인 기초위에 선교의 동역관계를 세우는데 어렵게 만든다.

하나님의 개념에 대한 아프리카인의 세계관에 따르면, 하나님은 인간의 경작에 대해 무관심하고 멀리 떨어져 있다고 인지한다. 아프리카인의 종교적인 삶은 하나의 신에 촛점을 맞춘 하나의 고립된 경험이 아니다. 그것은 그들 공동체 삶의 하나의 통합된 부분의 형태를 이룬다. 그 공동체는 살아있는 인간 존재들뿐만 아니라, 또한 반신들, 조상들, 산 죽은자의 영의 세계를 포함한다. 이미 죽은 사회의 중요한 구성원들은 실제로 죽은 것으로 간주되지 않는다. 그들은 죽은후에도 계속해서 씨족이나 부족의 구성원들의 삶에 결정적인 역할을 계속한다. 신도 아니고 반신도 아닌 조상들은 공동체의 모든 사람들의 복지를 보장하므로 공경받아져야 한다. 주술사들이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는데 산자와 죽은자의 연결을 제공한다. 그러므로 아프리카인들은 하나의 신에 촛점을 맞추지 않는다. 그들의 종교적인 삶은 그들 공동체의 삶에 통합된 형태를 이룬다. 여전히 흑인 기독교인들도 그들이 어려움을 직면하면 하나님을 의지 하기보다 여전히 영의 세계의 중재자를 더 의존한다. 이러한 세계관은 성경의 하나님을 의지하고 순종함으로 동역관계를 세우는데 방해가 된다.

남아공 KSOH지역의 흑백 개혁교회들의 선교에서도 참된 동역관계를 세우기 위해 서로의 태도, 문화, 세계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백인들의 문화와 흑인들의 문화에 대해 어느것이 옳고 어느쪽이 나쁘다고 주장할 수 없다. 두개의 문화는 서로 다르며 각자는 그것의 강점과 건강한 면들이 있다. 그러나 둘다는 또한 죄에 영향을 받아왔고, 많은 점에서 왜곡되었고 죄와 혼합되고 파괴적인 요소들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아프리카의 전통주의와 서구의 진보적인 태도로부터 두쪽의 사람들을 자유하게 할 수 있다. 성경은 과거의 좋은 상태뿐만 아니라, 아담과 하와가 죄에 떨어진 사실 또한 인정하고 있다. 그것은 현재에 있어서 우리의 책임을 가르친다. 또한 성경의 메시지는 미래의 유토피아에 대한 기대에 대하여 경고하며, 미래에 대한 독특한 관점을 나타낸다.

따라서 각 문화는 강점과 약점이 밀접하게 엮여 있다. 그러므로 각 문화는 성경적인 세계관의 렌즈를 통해 반영되고 성경적인 원리들에 따라 변화 돼야 한다.

선교에서 동역자들의 배경에 대해 상호 이해와 소통이 극도로 중요하다는 것을 고려하여 보건데, 남아공 KOSH 지역의 백인 교회들이 충분히 흑인들의 세계관을 충분히 연구하고 이해한 것 같이 보이지 않는다.

 

5현장 연구 (field work)로서 KOSH 지역의 남아공 개혁 교회들의 케이스에서 선교, 온정주의와 의존상태에 대해  나타난 결과들

GKSA(남아공 개혁교회) 총회의 선교 정책에 대한 연구

GKSA총회의 선교 정책들의 원리들은 성경적이다. 그러나 정책의 실제적인 지침이 KOSH지역의 선교를 도우는데 충분하지 않다. 총회의 결정이나 정책이 교회들에 충분히 소통되지 않는다. 각 교회 정책 위원회에서도 총회의 결의된 사항들을 읽고 연구하여 그것을 자신들의 의무를 수행하는데 대한 노력도 충분하지 않다. 따라서 총회 차원에서 행정 업무를 위한 훈련이 자주 그리고 먼 지역에 이르기까지 지역교회들에 확장되어 실시 되어질 필요가 있다.

총회의 부조 기금은 흑인교회의 현재의 필요들을 만족할 만큼 충분하게 공급하지는 못한다. 흑인교회는 백인교회들로 부터 더 지원이 없이는 현재 유지하고 지켜나갈 능력이 없다. 만약 백인 교회가 흑인교회를 지원하는 것을 갑자기 끊어버린다면, 흑인교회들은 백인교회가 자신들을 저버린 것으로 느낄것이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의 하나됨이 깨질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흑백교회들 사이의 가족으로서 관계는 지원이 계속 되어져야한다. 흑인교회가 경제적으로 더 독립적이고 자급 되어지기까지는 이웃하는 백인교회들이 흑인교회의 부족한것에 대한 짐을 져야한다. 따라서 백인교회들의 흑인교회들에 갑작스런 경제적 지원 중단은 흑인교회가 백인교회로부터 교제를 거절 당했다고 느낄수 있게 된다. 총회 결정에 의해서 규정된 시스템을 흑인교회가 이해하고 알고 진행하는데는 시간이 걸린다. 그러므로 KOSH지역의 흑인교회들이 총회의 결정된 사항을  적응하는데는 여전히 훈련이 필요하다.

GKSA는 그동안 흑인교회와 백인 교회가 나뉘어진 총회 모임을 가져왔으나, 2009년 1월 총회 이래로 공식적으로  흑인교회와 백인교회간의 하나의 총회가 되었다. 총회의 부조 기금  정책은 다른 문화와 상황에 대한 이해가 부족함을 보여준다. 백인개혁교회와 흑인 개혁교회간의 선교에 있어서 평등 동역관계를 형성하게 하는데는 언어, 문화, 정치, 태도등의 장벽들이 존재한다. 그러므로 두 교회들은 선교에 있어서 동등한 동역관계를 이루는데 이러한 장애들을 극복해야 하고, 그리스도인의 교제에서 일반적인 짐들을 나눌 필요가 있다.

백인교회의 온정주의

KOSH지역의 백인교회들은 경제적으로 흑인교회들을 지원 한것이 아마도 흑인교회들이 자신들을 지원하기 위한 전체 책임 (full responsibility)을 받아들이지 않는 데 공헌한 것 같다. 하나의 예로써, 흑인교회들은 경제적 지원을 요청했다. 그리고  Klerksdorp West, Klerksdorp, Orkney, Stilfontein and Klerksdorp North Reformed Church 들이 흑인교회들을 경제적으로 지원했다. 이 교회들이 흑인 교회 목사의 생활비, 교회 부지에 대한 세금, 전화세등을 지출하였다.

그러나 KOSH 지역의 백인교회들의 교인들이 우월의 태도를 가졌다는 견해에는 동의하지는 않았지만, 대부분의 흑인교회 교인들은 백인교회가 우월의 태도를 가졌다고 응답했다 (설문의 72%가 그렇다고 답변함). 그러므로 KOSH 지역의 백인 교회들은 흑인교회들에 대해 경제적인 도움을 넘어서 존경과 사랑의 종으로서의 지도력을 보여 주는데는 성공하지 못했다.

흑인 교회의 의존 상태

KOSH (Klerksdorp, Orkney, Stilfontein, Hartbeesfontein) 지역의 흑인교회 교인들은 그들의 교회가 왜 가난한지에 대한 그 이유들중의 하나로 인종차별의 영향 때문이라고 하였다. 이와 대조적으로, 백인교회들은 흑인교회들이 가난한 이유는 인종 차별의 유산 때문이 아니라고 답했다. 그리고 다른 중요한 이유들로 흑인들이 장례식, 죄 씻음 의식들, 비석 세우기, 무당과의 종교적인 상담등에 너무 많은 돈을 쓰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이와 대조적으로 대부분의 흑인교회 교인들은 이에 대해 동의 하지 않았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그러한 전통적인 종교적 것들에 관련하고 있다고 답했다. 그러므로 이것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부족하고 영적인 연약함을 지적하는 것이다. 문제는 흑인 교회 교인들이 그러한 종교적인 행사에 여전히 과소비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것이 가난으로 의존 상태로 이끌지도 모른다. 흑백간에 굉장한 차이가 나는 견해의 이러한 발견점은 의존 상태의 전체 이슈가 단지 몇가지 간단한 대답으로 해결될 수 없는 복잡한 이슈라는 것이다.

백인교회와 흑인교회의 교인들은 흑인교회가 가난한 이유중의 또 다른이유로는 십일조와 헌금을 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견해를 나타내었다. 백인교회의 대다수와 흑인교회는 흑인 교회가 아직까지 스스로 유지 할 수 없기 때문에 백인 교회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견해를 나타내었다. 흑인 교회가 경제적으로 독립되기에는 시간이 걸리는데 이유는 그들이 백인교회에 오래동안 의존 되어 왔기 때문이다. 흑인교회가 이러한 “받기만 하는 사고방식” 을 변화시키고 관대하게 주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되기까지는 의존 상태일 것이다.

백인 교회와 흑인교회들의 동역관계

KOSH (Klerksdorp, Orkney, Stilfontein, Hartbeesfontein) 지역의 모든 교회들은 평등의 원리에 강하게 동의한다. 그 원리는 그들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한 몸을 형성하고 인종의 벽들을 넘어서 함께 선교 사역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동일한 동역자들로서 함께 일할 수 있겠는가 하는 질문에는 다르게 답변했다. 대다수의 백인 교회 회중들은 긍정적으로 답변했으나, 대다수의 흑인교회들은 부정적으로 답했다. 이것은 흑인 교회들이 여전히 장애물로써 백인교회들이 우월의 태도를 가지고 있다고 인지하는 것을 나타낸다. 따라서 두 교회들은 참된 상호간의 동역 관계를 세우기 위해서는 백인 교회에 대한 의존상태와 백인 교회의 우월 태도라고 하는 두 대립을 깨뜨려야 한다.

흑백 교회간의 연합예배에 대하여는 백인 교회 회중들은 부정적으로 흑인 교회 대다수의 회중들은 긍정적으로 답하였다. 또한 그들 예배에 자원 봉사자들로서 책임을 감당하는 부분에서는 두 교회들이 긍정적으로 답하였다. 이것은 두 교회들 회중들이 교회 상황에서 자발적 봉사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이다. 흑백 두교회 모두 백인 교회가 경제적인 지원외에도 다른 방법으로 흑인 교회들을 지원할 수 있다는 것에 동의하였다. 하나됨을 이루는데 백인 교회 대다수는 언어, 문화, 태도들과 정치의 장애물들을 지적하였으나, 흑인 교회들의 경우는 이러한 것이 장애물이 된다는 답변이 백인 교회들에 비해 훨씬 적었다. 그러나 흑백 두교회들은 그들이 여전히 서로 불신한다고 답했다 (설문 참여자의 50%). 결과로서 두교회들은 서로의 다른 문화, 태도, 세계관을 이해할 필요가 있고, 하나님 백성들 사이에 진정한 교제와 하나됨의 성경적인 원리에 일치되도록 변화될 필요가 있다.

선교 사역에 대한 개념

두 교회들은 선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해하고 있다:  그들의 지역안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 그들의 신앙을 다른 사람들에게 증거하는 것, 그들의 지역 공동체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나아가는 것, 지역 공동체를 위해 기도하는 것, 도움이 필요한자 (가난한자, 병든자, 과부들과 고아들)들을 도와 주는 것, 그러나 응답한 많은 사람들이 선교 사역은 단지 설교의 은사를 가지거나 훈련받고, 선택된 목사들이나 선교사들 같은 특별히 선택된 사람이 하는 것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변혁적인 선교 개념은 하나님의 변혁하는 은혜의 복음을 말하고 보여주면서 말과 행위로 하나님 나라의 확장에 대해 언급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교회들의 선교 사역에 대한 이해는 단지 복음을 전하므로 뿐만 아니라, 그들의 행위와 말을 통하여 지역 상황을 초월하는 세계 안에서 깨어짐에 대한 전체적인 관점을 따라 가도록 변화되어져야 한다.  이런 면에 있어서 단지 선택된 선교사들이나 목사들뿐만 아니라, 두 교회들의 모든 교인들은 선교의 책임을 받아들여야 한다.

 

6선교의 동역관계와 상호의존에 대한 주요한 성경적 선교학적 관점들

선교에 있어서 동역관계와 상호 의존에 대한 주제의 성경적인 관점들을 연구할때, 다음과 같은 결론이 도출 된다.

동역관계의 정의

동역 관계는 하나의 믿는 관계를 형성하는 두개 또는 더 많은 그리스도인의 자치적인 몸들의 연합으로서 그들의 상호간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보충적인 힘과 자원들을 나누므로 동의한 기대들을 성취하는 것으로 정의한다.

만약 기독교인들이 선교에서 그리스도를 위해 효과적인 일을 원한다면, 그들은 함께 일해야 한다. 목회에서 동역 관계는 보충하는 은사들을 그 관계로 가져 올때 가장 효과적이다 (Bush & Lutz, 1990:62). 성경은 선교에서 동역관계와 상호의존을 강조한다.

성경에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이라고 말씀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함께 일해야만 한다. 성경에는 동역자(Partner)를 몇가지 의미로 사용한다. 그것이 결혼의 동반자로서 배우자(말 2:14; 벧전 3:7), 동료 또는 동역자 (고 후 8:23; 고전 3:9; 몬 1:17), 동류 또는 함께 하는자 (잠 28:24; 엡5:7)로 일반적인 연합을 언급한다.

 건강한 상호의존은 그리스도의 몸의 모든 회원들을 위한 명령이다. 고린도 전서 12장은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상호의존에 대한 주요한 구절이다. 목회 사역에서 한 모델 동역자의  성경적 실례인 바울은 로마서 12:5절-6절을 상기 시키면서 다른 은사들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바울은 빌립보서 1장 3절-5절에서 동역관계(partnership) 이란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빌립보 교인들에 대한 그의 특별한 사랑을 나타내었다. 바울과 빌립보 교인들은 복음을 위하여 동역관계로서 함께 일하였다. 바울이 빌립보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들었던 문제들을 다루기 시작하면서 빌립보서 2장 1절에서 그들의 승리의 자원은 성령안에서의 그들의 교제라는 것을 상기시킨다. 성령안에서의 동역관계는 쉽게 끊어질 수 없는 삼겹줄로써 표현되어 질 수 있다. 성령님은 그들 모두에게 내주하신다. 그러므로 인도하시고, 힘과 지혜와 위로에 유효하다. 성령님께서 그들이 바른 결정을 하도록 도우시고 관계를 정화시키신다.

성경에는 동역관계와 관련된 많은 이슈들을 발견할 수 있다:

동역관계 안에서 도움이 필요한 자들을 위한 사랑의 관계, 화해 안에서 동역관계, 용서 안에서 동역관계, 코이노니아=교제=나눔, 상호관계와 상호 의존으로서의 동역관계, 성령의 자원과 헌금을 가지고 상호의존, 평등으로서의 동역관계, 정의 안에서 동역관계,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동역관계, 하나됨 안에서의 동역관계, 청지기직 안에서 동역관계, 행정의 은사 안에서 동역관계, 바울의 성육신적인 태도로서 동역관계, 예수님의 성육신한 태도로서 동역관계 (빌 2:5-11), 책무 안에서의 동역관계, 서로를 봉사하기 위한 동역관계, 자기 의존과 자기 결정 안에서의 동역관계

따라서 성경 안에서의 동역 관계의 모델은 바깥으로부터 통제하거나 의존관계를 만들어 내기 보다는 교회를 향상 시킨다.

 

 7. Partnership (동역 관계) 원리와 선교와 목회사역에서 가능한 함정들

필자는 7장에서 세계 도처의 선교와 목회 사역에서 동역관계와 상호의존의 몇개의 원리들과 가능한 함정들을 조사하였다.

좋은 동역관계는 사랑, 하나됨, 공동의 목표를 나눔, 평등의 태도, 실수와 성공과 실패를 포함한 열린 소통, 청지기직, 신뢰와 책무, 각 동역자의 역할의 분명한 이해, 주인의식, 헌신, 계속된 돌봄과 평가, 함께 놀기, 타문화 이해와 전체적 선교 정신 이다.

동역관계의 많은 모델들은 살펴본 것처럼, 좋은 동역관계에서는 이익들과 시너지 효과들이 나타남이 분명하다. 그러나 동역을 방해하는 장애물이 존재한다. 참된 동역관계에 많은 장애물들은 그 과정을 느리게 하였다. 예를 들면, 우월의 태도, 운명론, 소수민족 주의, 기부 정신, 의존 상태와 반 하나됨등이다. 토착 모델같은 동역관계는 많은 함정들을  가진다. 이것은 문화간 동역관계에서 만들어진 가장 일반적인 실수들에 대한 안내를 제공한다. 이것은KOSH지역의 개혁교회의 동시대의 후 아파르테이트 남아공에서 선교의 하나의 전체적 변혁모델로서 동역관계와 상호의존의 발전시키기 위한 가능성들의 비판적인 분석과 관련되는 데 공헌 할 수 있다.

 

8남아공의 post-apartheid 세대의 흑백 남아공 개혁교회들 사이에 통전적 변혁 동역관계를 위한 성경적 모델과 실제 지침들

8.1.성경적 동역관계의 모델

8.1.1하나됨의  동역관계-성경은 믿는자들이 하나됨 가운데 함께 일하기를 요구한다 (요 13:35; 요17:11; 고전 12:4-17; 엡 4:1-16, 엡1:27). 흑인교회와 백인 교회가 효과적인 동역관계를 세우기 위해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들의 하나됨을 깊게 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선교의 목표는 홀로 일하는 고립된 교회들을 세우는게 아니기 때문이다.

8.1.2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동역관계

온정주의를 피하는 바울의 방법들 중 하나는 그의 사역에서 그의 동역자 (συνεργός)로서 교회에 있는 다른 사람들을 볼 때 그의 돌봄이었던 것처럼 보인다 (롬 16:21; 고후 8:23; 빌 2:25; 4:24; 빌 1:24; 롬 16:3, 9; 골 4:11; 고전 16:16). 선교에서 우리 모두는 동료들이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동료들이요.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는 동료들로 세계적인 규모이다 (Van Engen, 2001:26; 시 133:1; 고후 8:23; 고후 6:1; 고전 1:9; 고전 3:9; 빌 1:5; 살전 3:2). 흑인 교회와 백인교회는 하나님의 선교의 부분이 되기 위해 서로의 짐을 져야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리스도의 몸 안에 있고 함께 세워야 한다. 상호의존의 선교적인 함의가 추구되어져야 한다.

8.1.3 상호간의 그리스도인의 사랑의 관계로서 동역관계

사랑은 인류를 향한 그리스도의 태도안에서 중심에 서 있다. 이 사랑은 그리스도인들의 태도에서 보여져야만 한다 (마 10:8).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 앞에서 그들의 삶의 부분으로서 모든 사람들에게로 사랑을 실천하고 추구해야한다. 믿음과 함께 사랑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명의 특성이다 (Vorster, 2007:81). 흑인 교회와 백인교회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서로 사랑할 때, 그들은 건강한 관계를 이룰 것이며, 참된 동역관계를 세울 것이다. 백인 교회들은 가난한 흑인 교회들을 도우되 그들이 스스로 설수 있고, 걸을 수 있도록 돕는 목표를 가지고 책임적인 방법으로 도와야 한다.

8.1.4 화해로서 동역 관계

하나의 원리와 기준으로서 화해는 그리스도 안에서 구속의 효과적인 축복들이다. 구원의 신적인 열매들은 우리의 부패하고 왜곡된 세상에서 회개, 용서, 사랑, 은혜, 평화, 정의와 화해 안에서 나타난다. 주요한 성경적인 화해의 이야기는 로마서 5:8-11; 에베소서 2:11-18; 골로새서 1:19-22 그리고 고린도 후서 5:18-21에서 발견된다. 그리스도 안에서 화해는 인간을 다시 하나님에게 가져간다. 그러나 인간의 세계와의 관계와 그의 동료와의 관계를 새롭게 한다 (Vorster, 2004:273). Schreiter은 정의없는 화해는 거짓 화해라고 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억압받는 자들의 고통을 무시하려고 하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한다 (1992:18-25, Langmead, 2008:8 인용).

화해는 죄의 인정, 자신의 겸손함, 후회, 그리고 손해 보상을 의미한다. 이것이 구약에서 어떻게 적용되었는가 하는 것이다 (신 22:19; 출 22:4, 22:16; De Vaux, 1988:160).  변상이 없는 화해는 내용이 없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백인 교회는 흑인교회와 함께 인종차별의 유산의 이슈에 관해 화해를 해야 할 필요가 있다. 반면에 흑인 교회는 과거에 잘못한 것에 대해 백인들을 용서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용서하신 것처럼 (엡 4:32) 서로 용서하지 않는다면, 실제적인 화해와 하나됨은 일어나지 않는다.

8.1.5 코이노니아, 교제, 나눔으로서의 동역관계

 코이노니아 (κοινωνία)는 믿는 자들의 모임인 신약 교회에 사용된 용어이다. 그것은 이전 관계를 변형하는 서로에 관계된 완전히 새로운 방식을 의미한다 (갈3:28). 평등한 관계의 이러한 종류는 항상 사도행전 2:42-45와 4:32-35의 “재산의 공유” 본문들 안에서 하나의 강한 동기를 발견하게 된다. 복음은 지역적으로 지구촌적으로 다양한 사람들의 함께 함으로써 불평등의 상황 안에서 코이노니아 (κοινωνία)를 가지는 가능성에 대한 것이다 (Funkschmidt, 2002:570-571).

헬라어인 코이노니아 (κοινωνία)는 빌립보서에서 동역관계에 대하여 사용되었는데, 종종 신약성경에서 교제(fellowship)으로서 번역되어졌다. 그러나 그 의미는 교제 그 이상이다. 단지 서로에 대한 좋은 느낌들 안에서의 교제가 아니라, 자원들 뿐만 아니라 필요들에 대한 실제 나눔이며, 물질적인 재산과 연결될 뿐만 아니라 다른 짐들까지를 포함 하는 것이다. 빌립보서 3장 10절에 “그의 고난에 참여하는 교제”를 말한다. 따라서 물질적인 것과 영적인 것을 포함하는 공유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바울은 고린도 후서 8-9장에서 돈이란 단어를 언급하지 않고 있다. 그에게 있어서 도움이 필요한 그리스도인들을 돕는 것의 기준은 은혜의 나타남이다. 헌금의 모금은 하나님의 은혜의 결과이라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서로의 관계에서 나타나져야 한다. 동료 그리스도인들을 돕기 위해 우리의 자원들을 나누기 위한 바울의 간청의 기초는  예수그리스도의 성육신이다 (고후 8:9). 흑백교회간에도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그 은혜에 기초한 코이노니아 (κοινωνία)의 형제애적인 관계가 나타나져야 한다.

8.1.6 우애와 상호의존으로서의 동역관계

선교하는 교회는 늘 가르치고, 주고, 선교받는 교회는 늘 받고 배우고 하는 불균형적인 견해가 역사적으로 나타났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이 제 삼세계의 출신이든지 서구 출신이든지  평등한 중요성의 많은 부분으로 구성된 그리스도의 한 몸이다. 모든 구성원들이 적당한 역할을 수행한다면 적당하게 역할을 할 수 있다. 의식적인 상호의존의 관계는 온정주의에 대한 하나의 해독제이며 복음 전도하려는 두 부분들을 자유롭게 한다. 어떤 프로젝트의 성공을 위해서도 교회들은 서로가 평등한 것으로 간주하고, 상호 의존을 깨닫고 함께 일해야 한다.

8.1.7 평등으로서의 동역관계

이러한 평등의 기초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인간을 창조하였다는데 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서 평등하다. 이 원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심판이 모든 사람들 위해 비추인다는 교리에 의해 더 펼쳐진다. 평등은 유사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그들의 은사들이나, 달란트들, 언어, 문화, 성에 있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양함은 평등을 파기하지 않는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의 부분인 한에서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고 차별하는 대신에 그리스도의 희생이 우리를 하나로 만드는 것을 인식함으로써 교회들은 서로 존경해야 한다.

8.1.8 청지기 직무와 책무로서 동역 관계

청지기직무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자원들을 관리하는 책임을 보아야만 한다는 것으로 부터 온 성경적인 입장이다 (마25:14-30). 창조에 대한 성경적인 관점은 인간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에게 속한것 (레 25:23; 출 19:5; 겔 46:18)에 대한 청지기로 만들어 졌다는 것이다.  인간 존재는 “경작하고 지키라”는 창조안에 두어졌다. 그래서 부드러움과 감각과 동정심을 가지고 그것을 돌봄으로 동물을 포함하여 모든 살아있는 존재들이 충분히 생산하게 한다. 청지기는 그들의 주인들의 뜻을 이루기 위해 충성해야만 한다 (고전 4:2).

상호 책무는 청지기직무의 하나의 통합된 면이다 (고전 4:2; 롬 14:2). 책무는 건강한 기독교의 고유의 한 부분이다. 책무는 하나님이 우리를 감찰하고 있고, 주목하고 있고, 심판의 날 우리가 행한 모든일과 우리가 말한 모든 것과 우리가 어떻게 자원을 사용했든지 그 모든 결정에 대해 계수해야 하는 것을 우리 모두에게 상기시킨다. KOSH (Klerksdorp, Orkney, Stilfontein, Hartbeesfontein) 지역의 선교에서도 참된 동역 관계를 이루기 위해서는 흑백 교회간에 책무가 필요하다. 책무가 없이는 서로 신뢰할 수 없고 좋은 관계를 가질 수 없다. 그러므로 교회가 의존적이지 않기 위해서는 성경적인 청지기 직무에 대한 가르침이 필수불가결하다.

8.1.9 성육신의 태도로서의 동역관계

바울은 빌립보서 2:5-11절에서 지구상에 성육신하신 그리스도를 소개했다.    동역관계는변두리에 있는자들과 예수님과 동일화를 통해 사회의κοινωνία를 성취하기 위해 kenotic (ἐκένωσεν: 자기 비움, 자신을 하찮은 존재로 만듦; 빌 2:6-8)이다.  그의 이러한 불명예의 결과로서 종의 형체를 가졌다. 종으로서 사용된 단어는 노예(δοῦλος)에 대해 사용된 단어와 같다. 바울도 또한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성육신의 태도를 가졌다. 고린도 전서 9:19에서 모든 사람에 대해 스스로 종이 되었다고 말한다.

바울과 예수님의 본보기들은 문화에 대해 존경하고, 메시지를 듣는자보다는 복음 전하는 자가 바뀌어야 하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리스도의 메시지가 한 문화 시간과 공간의 배경안에서 상세히 설명되어져야만 한다고 지적한다. 그리스도는 많은 문화 형태안에서 성육신 되어졌음에 틀림없다. 바울도 이방인들에게 이르기 위해 자신이 그리스도의 성육신 형태를 취하였다 (Bjork, 1997:29). 그리스도인들은 화해하기 위해 자기의 우선권 그리고 지위와 소유까지도 내려 놓아야 한다. 따라서 흑백교회들도 선교에서 조화와 평화를 누리기 위해서는 그들의 지위와 주장들을 내려놓아야 할 것이다.

8.1.10 선교동역의 목표

선교 동역자들로서 우리는 함께 성장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그래서 우리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 자라가기 때문이다. 흑백 교회는 선교 동역에 이룰 목표와 목적을 세워야 한다. 그 목표는 흑인 교회들이 자급하고 선교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목표는 두 교회들에 알려져야하고 품어져야하며, 그 목표를 이룰 실제 목적들과 대상들을 가져야 한다.

8.1.11 자립 (자급 자족)과 자기 결정으로서 동역관계

여기의 자급 자족과 독립이 혼동되어서는 안된다. 여기의 자급 자족은 이기주의가 아닌 개인의 책임이다. 자급 자족한 조직체는 성장하고 발전하는데 왜냐하면 그것 자체의 가능성을 통하여  자체적인 필요를 채운다. 자립(자급자족)은 더 큰 그리스도인 공동체와 함께 협동하고 교제하기 위해 필요하다. 도움이 주어지면 자기 결정은 침해된다. 그것이 순수하게 주어졌던지 강압적으로 동역자에게 주어졌던지 사실이다. 기부 동역자가 제공하는 것이 자체 사역의 많은 수입에 해당하는 것을 제공할 때, 그것을 거부하는 것은 관계를 위태롭게 한다고 느낀다면 동역 사역은 도움을 받는 것이 강요되어진다고 느낄 수 있다. 이런 관계에서는 기부 동역자는 절대적 거부권의 힘을 가진다.

경제적인 자급의 측정은 외부의 기부에 대한 내부의 기부의 비율에 달려있다. 자급의 이슈는 사역에 제공되는 돈의 양에 있지 않고, 외부의 수입에 대한 내부의 수입의 비율에 달려 있다. 대부분의 지원이 자기 지역내에서 올때 상호의존의 건강한 정도를 나타낸다. 소유권을 부여한다는 것은 지역민들이 자신들의 재능과 잠재력, 그들의 상황을 바꿀수 있는 능력과 힘을 깨닫게 되도록 안내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들에게 필요한 자기 결정과 정보를 주는 책임과 변혁의 과정에 대한 방향이 주어져야만 한다 (Van der Walt, 2006:77).

KOSH (Klerksdorp, Orkney, Stilfontein, Hartbeesfontein) 지역의 흑인교회와 백인교회의 선교에 있어서 목표는 외부로부터 경제적 도움없이도 성장해 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8.1.12 통합적인 선교로서 동역관계

예수님의 사역은 단지 복음을 전하는 것만을 의도하지 않았다. 그의 사역은 눈 먼자를 눈을 뜨게 해주고, 죄수들을 풀어주며, 압제받는 자를 자유케 하는 것도 포함되었다. 그러므로 그의 사역은 말씀과 행위가 조화를 이루었다. 이 원리를 적용함 있어서, KOSH 지역 선교에서도 복음을 전하는 것과 연결하여 병든자와 도움이 필요한자를 위한 돌봄의 행위를 포함해야 한다. 사회적 선한 행위 (마 5:16) 와 영적인 차원을 함께 하는 통전적 선교 개념을 실행해야 한다. 이를 통해 하나님은 영광받으실 것이며 하나님 나라가 확장 될 것이다. 두 교회들이 KOSH 지역에 변혁적인 동역관계의 모델을 세울 수 있을 것이다.

8.2통전적 변혁 동역관계를 세우기 위한 실제 지침들

이 연구의 결과로서 통전적 변혁 동역관계를 세우기 위한 실제적인 지침들이 제안되어진다.

8.2.1 선교 동역관계의 목표를 정해야 한다.

선교의 동역관계를 세우기 위해서는 분명하고 차이를 만들 수 있는 성취가능한 목표를 세울 필요가 있다. 그리고 전체 교회들에 알려지고 실제적인 동역관계가 이루어져야 한다.

8.2.2 교인들에게 전도하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도록 제자 훈련을 해야 한다.

모든 교회들은 제자 훈련을 통하여 성숙하게 하는 과정을 겪어야 한다. 흑백교회들의 교인들은 복음 전도하는 예수님의 제자들로서 준비되어지고 훈련받을 필요가 있다. 두 교회들 교인들에게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모든 말씀을 가르치고 그 말씀을 순종하도록 훈련해야 한다.

8.2.3 서로 도와야 한다.

백인교회들은 흑인 교회들이 자급 자족하고 그들 자신이 책임을 가질때까지 도와 주어야 한다. 그 도와주는 것은 지혜와 주의가 필요한데, 계속적인 지원이 되지 않아야 하고 함께 공동으로 운영하며 상호 동의된 과정을 거치며 그 기간이 단계적으로 정지되어야 한다. 교회들이 함께 매년 지원의 비율을 줄여나가는 계획을 할 수 있을 것이다.두 교회들은 단지 경제적 수단들 이상을 의미하는 상호지원에 의해 참된 동역 관계를 발전하게 해야 한다. 교회들이 건전한 동역관계를 세울 때에 그들은 경제적인 것 외에 재능과 같은 다양한 자원들을 나눌 수 있다.

따라서 백인 교회들은 단지 돈을 주는 것으로 부터 (기부자 정신; donor-mentality) 다른 자원들도 나누는 태도로 변화를 해야 한다.  흑인 교회도 백인 교회로 부터 단지 재정적인 지원을 받으려는 태도에서 백인 교회로부터 기술도 배우려는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흑인교회도 그들의 강점들 (언어, 노래부르기, 공동체 협력과 여가로운 삶의 태도 등)을 살려 백인 교회와 선교에 건전한 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하며, 참된 동역 관계를 세워나가야 한다. 흑백교회들이 자신들의 독특한 은사들과 재능들을 가지고 서로 돕는다면, 더 강한 동역 관계를 세울 수 있을 것이다.

8.2.4 책무에 대한 헌신이 있어야 한다.

흑백교회들은 투명성과 책무에 대한 헌신을 발전시켜야 한다. 동역자들은 신뢰와 책무를 나타내어야 한다. 실수할 경우에는 사과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선교에 있어서 신뢰와 좋은 동역관계를 유지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흑인 교회가 백인 교회들로 부터 도움을 기대할 때, 개인적으로 또는 구두로 약속하지 않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성취되지 않았을때 그들 서로가 신뢰를 잃어 버릴 수가 있고 관계에 틈을 야기하며, 선교에서 참된 동역 관계를 세우는데 방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흑인 교회들은 교회 통계, 교회 역사, 재정등에 대한 모든 기록들을 지켜야 한다. 그리고 그들 자신의 예산을 준비하고, 그것을 분명히 나타내며, 그것들의 지출에 대해 책임을 가져야 한다.

8.2.5 관대하게 헌금하고 십일조하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

흑인교회들은 교회의 사역을 지원하기 위해 관대하게 헌금하고 십일조를 올바르게 하지 않기 때문에 여전히 경제적인 독립을 즐기지 못한다. 이들 교회들의 교인들은 성경 연구를 통하여 성경적 제자들로서 십일조를 드리는 것과 헌금을 관대하게 드리는데 대해 일깨우며 가르칠 필요가 있다. 특히 흑인교회에 교회 교인으로서 매달 얼마씩 내는 “ticket fee”로 인해 헌금을 내지 않는 경향이 있는데, 헌금이 무엇인지를 가르침으로 이에 대한 오해를 바로 잡아야 한다.

8.2.6 교회 대 교회의 관계를 세워야 한다.  

두 교회들은 세상에 대한 연합 선교의 동역 관계 안에서 교회 대 교회 관계를 세울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교회간 건강한 관계를 세우는 것이 동역관계 안에서 선교 사역을 하는 데 중요하다. 이를 위해 교회간 장로 집사들과 선교 위원회의 상호 방문, 나눔은 교회간의 좋은 관계를 이루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만약 교회들이 소통하고 서로를 이해하는 더 많은 기회들을 만들어 간다면, 그들이 서로에게 더 가까워 질 것이며 건강한 동역관계안에서 함께 선교 사역을 할 수 있을 것이다.

8.2.7 지역 교회들에 선교부나 선교 위원회를 설치해야 한다.

지역 교회들이 이웃 교회들과 함께 자신들의 선교부나 선교위원회를 설립 할 수도 있다. 이러한 선교회는 구성원들을 선출하고, KOSH지역의 새로운 지역이나 미전도 지역에 선교 사역을 위해 함께 계획을 세울 수 있다. 이 선교회는 규칙적인 모임(월별, 두달에 한번)을 가지므로 선교의 목표나 비전에 관계된 기대하는 것들을 함께 나누어야 한다. 서로 상의 없이 일방적인 결정을 하지 말아야 한다. 특별히 새로운 회원들 경우에는 동의된 것들에 대해 철저히 익숙하도록 해야 한다. 기록된 것을 보내어 주고, 연합 사업들이나 선교회의 일들, 긴급한 소식들이나 필요들의 진보에 대해 각 자에게 말해야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주인 의식과 헌신이 참여자들에게 자극 되어 질것이다.

선교회의 구성원들이 그들 교회의 회중들에게 선교 활동들에 대해 동기부여할 수 있다. 함께 선교 아웃리치, 선교주간을 통해 자신들의 교회의 교인들에게 선교나 선교 일들에 대해 가르 칠 수 있다. 때때로 이 선교회가 선교사들을 초청하여 선교사역을 나눌 수도 있다. 지역교회 선교회는 그들이 필요하면 총회에 도움을 요청 할 수 있다. 또한 총회의 선교회는 지역 교회들이 선교 사역을 하도록 동기 부여 한다거나, 규칙적인 선교 컨퍼런스, 선교 포럼이나 세미나, 전도를 위한 아웃리치나 선교 여행등의 적용 가능한 프로그램들을 조직할 수 있다.

8.2.8 평등의 태도를 발전시켜야 한다.

동역자들은 서로를 존중하고 서로에게 듣고 배우는 평등의 태도를 발전시켜야 한다. 두 교회들은 서로 다른 문화, 세계관을 성경적 원리들을 통해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흑인 교회들이 백인들의 서구식 문화와 세계관에 대해 배우는 것 보다,  특별히 백인 교회들이 흑인들의 문화와 세계관에 대해 더 알 필요가 있다. 두 교회들은 상대방에 대해 지배하려는 태도를 피해야 한다. 참된 동역 관계를 세우기 위해서는 흑인교회는 “받으려는 정신(a receiving mentality)”에서 오는 태도를 피해야 한다. 또한 그들이 과도한 지출을 피하고 경제적으로 독립되려면 전통 종교신앙, 무당과 상의하는 관습, 정교한 장례 의식과 정결 의식들을 제거해야 한다. 백인 교회들은 우월감과 주려고만 하는 정신 (a donor mentality)을 부여하는 온정주의 태도들을 제거해야 한다. 그러므로 두 교회들이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평등하다는 건전한 성경적 정신을 가지고 우열과 열등에 대한 비성경적 요소들을 깨뜨리게 될 때,  하나님 앞에서 평등한 동역 관계를 즐길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8.2.9 하나된 가운데 열린 소통을 만들어가야 한다.

효과적인 동역관계는 하나된 가운데 열린 소통을 요구한다. 그러므로 두 교회들은 민감한 문제에 대해서 서로 소통하고 기도하기 위한 규칙적인 모임들이 필요하다. 더 친밀한 대화를 나누기 위해 때때로 사역을 떠나 교제하고 여가 시간을 가지도록 한다. 가능하다면 때때로 그리스도안에서 참된 하나됨을 기념하기 위한 성찬식과 예배에 함께 참여할 필요가 있다. 만약 선교회가 연합 예배를 계획한다면 흑백간에 다른 예배 스타일에 대해서도 고려해야 한다.

8.2.10 장애물들을 깨뜨려야 한다.

KOSH (Klerksdorp, Orkney, Stilfontein, Hartbeesfontein) 지역에는 언어, 문화, 태도, 세계관, 정치학과 세대 갈등과 같은 많은 장애물의 도전들이 놓여 있다. 이러한 장애물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동역 관계를 방해한다. 백인 교회들이 흑인교회들보다 이러한 장애물들에 대한 설문에 더 부정적으로 반응했다. 그러나 두 교회들 모두는 여전히 서로 불신한다고 답했다 (250명의 참여자의 절반 정도). 백인 교회들은 자신들이 우월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답한 반면, 대다수 흑인 교회 교인들은 백인교회가 백인이라는 우월의식의 태도를 가지고 있다고 답했다. 이것은 백인 교회가 재정적으로는 흑인 교회들을 지원했지만, 재정 이상의 지원과 사랑을 보여 주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흑인교회의 다수의 교인들은 백인들이 두려움과 흑인 환경에서 안전을 느끼지 못하는 것을을 의식하지 못하는 것 같아 보인다. 그러므로 흑백교회들은 다른 문화, 세계관 , 두려움과 태도들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성경적인 원리에 따라 의식적인 사랑과 돌봄의 태도로의 변혁이 필요하다. 이러한 주제에 대해서는 총회, 노회와 지역 교회의 목사들 장로들 집사들 성도들에게 뿐만 아니라, 신학교의 학생들에게도 가르쳐지고 토론 되어져야 한다.

8.2.11 통전적인 선교 개념을 따르도록 해야한다.

흑백교회는 선교가 단지 주고 받는 것에 대한 것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곳에 하나님의 일을 나누는 것임을 이해해야 한다. 예수님은 눈먼자를 고치시고, 결박된자를 놓임을 받게 하며, 억압받는 자들을 자유케 하셨다. 예수님의 사역에서도 그분의 말씀과 사역은 통합되어져 있었다. KOSH (Klerksdorp, Orkney, Stilfontein, Hartbeesfontein) 지역 교회들도 이 원리를 적용하여 복음을 전할 뿐만 아니라, 가난한 자, 도움이 필요한자, 병든자를 돌보는 사역을 해야 한다. 이를 통하여 더 많은 사람들이 주님 앞에 나아오며, 하나님 나라를 확장해 갈 수 있을 것이다.

8.2.12 하나님을 의존해야 한다.

흑백교회들은 동등하게 하나님을 의존해야 한다. 만약 두 교회들이 하나님을 참으로 신뢰한다면, 이러한 태도는 그들의 재정적 상황을 다르게 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만약 그들이 온전히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열렬히  기도한다면, 흑인교회들은 전통 종교의식들과 무당과의 상담등과 관련된 비용에 의해 야기된 가난과 백인 교회에 대한 재정적 의존을 극복 할 수 있을 것이다. 백인 교회들도 흑인 교회들에게 백인 교회가 아닌, 하나님을 온전히 의존하도록 격려 할 수 있다. 이러한 것은 소그룹 성경 공부 모임, 기도 모임, 제자훈련등을 통해 교회 성도들의 영성과 경건을 기를 수 있다.

8.2.13 상호 격려하고 기도해야 한다.

흑백교회들은 실제적 그리스도인 동역 관계의 생명적인 부분으로서 상호격려와 기도를 제공해야 한다. 기도 모임을 조직하여야 하는데 아침이나 저녁 기도회, 주중 여성 기도 모임, 가정 소그룹 모임중 기도등을 예로 들수 있다. 두 교회들은 중요한 문제들을 위해 기도하도록 격려하고, 교회의 설교자들과 교회 성도들, 지역의 도전들과 국가를 위해서 기도하도록 격려 할 수 있다. 월별, 분기별, 기도제목을 나누며 모임들에서 중보 기도 할 수 있다. 때때로 그들이 함께 교회들의 필요들과 교인들 그리고 국가와 목회자들, 해외 선교와 선교사들을 위해 기도하는 모임을 가질 수 있다. 이러한 행사들을 통하여 교회들은 참된 동역 관계에서 공동의 기도 사역을 할 수 있다. 이렇게 서로를 위해 선교를 위해 함께 기도함으로 선교에 있어 주님의 건강한 동역관계를 세울 수 있다.

8.2.14 백인지역으로 이주한 흑인들을 전도하며, 다인종 예배를 백인 교회가 제공해야 한다.

KOSH (Klerksdorp, Orkney, Stilfontein, Hartbeesfontein) 지역의 백인교회들은 다른 지역에서 이미 일어나고 있듯이 백인 지역으로 이주한 흑인들을 전도할 필요가 있다. 백인교회들이 다민족, 다문화 예배를 제공할 수 있다. 다 인종을 위한 영어 예배 또는 부족(쓰와나) 예배를 가지고 필요시 영어로 통역을 한다. 백인 교회가 다인종 회중을 위한 예배를 한다면 흑인 교회들과 함께 동역 관계를 이루면서 할 수 있다. 흑인 교회들에게 이러한 예배가 소개되어지고 광고 되어지면, 자기 친척이나 친구들을 보낼 수가 있다.  그러므로 흑인 교회도 백인교회의 그런 다인종 예배나 쓰와나 부족 예배를 위해 사람이나 자원들을 공급할 수 있다.

8.2.15 다음 세대 청소년들 신앙을 위해 투자해야 한다.  

KOSH 지역의 백인 교회들은 흑인교회들 보다도 청소년과 어른 간의 더 큰 소통의 간격을 가지고 있음을 추정할 수 있다. 이러한 청년과 어른 사이의 간격은 교회를 떠나는 백인 청년들로 인해 위기를 야기한다. 후에 백인 교회 노인들과 흑인 교회의 젊은이들은 선교의 동역관계와 하나됨의 창조를 방해할 수 있는 소통의 간격을 직면 할 수 있다. 따라서 백인 교회들은 다음 세대인 청소년들을 지원하고, 세우며 그들과 소통하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투자하고, 흑인 교회와 백인 교회의 청소년들이 서로 더 알아 가도록 기회를 촉진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됨을 경험하도록 해야 한다.

 

9. 간단한 요약 진술

GKSA (남아공 개혁) 교단은 2009년 1월 남아공 포체프스트룸에서 개최된 총회를 시점으로 흑인교회와 백인교회가 합쳐져 하나의  총회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백인 교회들과 흑인 교회들 사이에 관계에 있어서 여러면에서 온정주의와 의존상태는 계속되고 있다. 그래서 GKSA (RCSA) 교단은 온정주의와 의존상태를 극복하기 위해 선교의 새로운 전략이 필요하다. 이 연구는 그것에 대한 일보가 될 것이다. 이 연구의 실제적인 지침들은 더 좋고 더 강한 동역관계를 형성하기 위해 GKSA(RCSA)교단 산하의 흑인교회들과 백인 교회들을 동기부여 할 수 있다. 흑백교회들이 실제적이고 성육신의 동역관계로 하나가 될 때, 흑인 교회들도 선교에 자급 자족하고 책임을 가지게 될 것으로 본다. 또한 두 교회들은 아프리카와 세계 도처에서 함께 선교 사역하며 하나님 나라를 확장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GKSA (남아공 개혁) 교단 교회들의 흑인 백인 교인들이 참으로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하나됨을 최후까지 유지 한다면, 세상은 그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로서 인정할 것이고, GKSA 교단은 선교에 신실한 하나의 좋은 모델이 되어질 것이다. 우리는 계속해서 흑인 교회들과 백인 교회들 사이의 참된 동역 관계를 세우도록 그리고 GKSA (남아공 개혁)의 부흥을 위해 계속해서 기도할 필요가 있다. 성령께서 모든 장애물들을 깨뜨리시게 될것이며 그로 인해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에서 즐거워 할 것이다 (롬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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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P.T. Bauer 같은 초기의 선-자본주의 경제학자들에서 마르크스 주의 저술가들에 이른다.

 [2] 건강한 의존 상태는 각 자가 독립성을 가지면서, 수정과 거절에 대해 수용을 유지한다.  쉬와르쯔 (Schwartz, 1998b:1)의 경우는 “피할수 있는 의존 상태”와 “피할수 없는 의존 상태”로 구분한다. 예를 들어 피할 수 없는 의존의 경우는 장애인이 전적으로 가족의 도움을 입는 경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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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로교회 예배당 폐쇄 조치를 접하며 3
[사설] 총회(노회)가 모일 때 온라...
총회가 졸속으로 진행되지 않으려면
[사설] 누가 고신교회의 질서와 성...
공적 금식과 공적 기도를 선포하자
칼럼
왕처럼 살고 싶습니까? 왕처럼 나누...
푸틴의 머릿속에 있는 그림
백신 의무 접종과 교회 (3부)
백신 의무 접종과 교회(2부); 교회...
백신 의무 접종과 교회 (1부)
우리 악수할까요?
두려움으로부터의 해방 (Peter Holt...
관심을 가지고 보십시오.
동성애 문제에 대한 두 교단의 서로...
하나님께서는 역사의 잘못을 통해서...
기고
직분자 임직식에서 성도의 역할
죽음을 어떻게 맞을까를 잠시 생각하며
제73회 총회가 남긴 몇 가지 과제
전임목사는 시찰위원으로 선정될 수...
고신교회와 고재수 교수; 우리가 왜...
왜 고재수는 네덜란드에서 고려신학...
제73회 총회를 스케치하다
신학생 보내기 운동에 대한 진지한 ...
명예 직분 허용이 가져다 줄 위험한...
[고신 70주년에 즈음하여 9] 고신교...
논문
송상석 목사에 대한 교회사적 평가 ...
송상석 목사와 고신 교단 (나삼진 ...
송상석 목사의 목회와 설교 (신재철...
네덜란드 개혁교회 예식서에 있어서...
제7차 헌법개정초안(2022년 6월) 분...
제7차 헌법개정초안(2022년 6월) 분...
제7차 헌법개정초안 예배지침 부분...
제7차 헌법개정초안(2022년 6월) 분...
SFC 강령의 “전통적 웨스트민스터 ...
지역교회의 적정 규모(規模 size)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