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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필자 황대우 목사가 2007년 1월 22일 한국칼빈학회에서 발표한 것으로 필자의 저서 『칼빈과 개혁주의』에 수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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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대우 목사
고신대학교 교수
개혁주의학술원 책임연구원

칼빈은 에베소서 4장 11절을 주석하면서 교회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무엇보다도 먼저 그가[=바울이] 의미하는 것은 이것이[=교회가] 인간의 고안물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거룩한 기관이라는 것인데, 이유는 교회가 말씀 선포에 의해 다스려지기 때문이다.”1) 칼빈은 여기서 교회가 인간이 세울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한다. 즉 교회란 인간이 세우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세우시는 신적인 기관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오늘날 한국교회의 교회 개척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며 그것이 과연 얼마나 성경에 기초한 것인지를 다시 한 번 심각하게 질문해보아야 한다. 많은 사람들은 교회 개척을 마치 사람들이 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개척자금과 사람만 준비된다면 얼마든지 가능한 것이 교회를 세우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고, 아마도 여기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교회를 개척하는 일이란 과연 그 두 가지 요소가 가장 중요하며 그것이 갖추어지기만 하면 언제든지 할 수 있고 또 해야 하는 것인가? 그것이 그리스도의 지상명령에 순종하는 첩경인가? 칼빈은 이 질문에 과감하게 “아니요”라고 대답한다. 왜냐하면 그의 생각으로는 창조 이래로 하나님의 교회란 하나님에 의해 설립되기 시작했으며 그분은 단 한 번도 교회 설립의 주체되심을 포기하신 적이 없기 때문이다. 제네바 종교개혁가에 따르면 교회는 순수하게 하나님 자신이 친히 세우시는 그분 자신만의 고안물이요 건축물이다. 하나님의 교회 건설에 인간은 일꾼, 즉 부역자일 뿐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교회 건설에 인간을 단순한 부역자가 아닌, “동역자”로 부르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결코 교회 건설의 주체가 아니다. 그 주체는 오직 삼위 하나님 한분이시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시기와 장소에 그리스도의 거룩한 교회는 설립되어 왔고 설립될 것이다. 바로 그곳에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신 자들이 모여들며, 말씀에 순종하고 성령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이는 경건한 공동체가 존재한다.

칼빈이 정의하는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거룩한 기관”으로서의 교회란 첫 번째로 “봉사공동체”이다. 성경의 가르침대로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자신의 몸을 세우기 위해 그리스도께서는 몸의 지체들을 서로 섬기도록 은사를 주시고 직분자를 세우셔서 질서 있게 자신의 교회를 다스리신다. 두 번째로 칼빈이 생각하는 하나님의 교회는 “진리공동체”이다. 교회가 외치고 가르치는 것이 복음인 것은 그것이 진리이기 때문이다. 진리는 교회이냐 아니냐를 가늠하는 유일한 잣대이며 근거이다. 즉 진리를 소유한 교회만이 참 교회라는 것이다. 세 번째로 칼빈은 교회를 “사랑공동체”로 정의한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세워졌고 그 사랑을 받아 세상에 전하는 것이 교회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사랑은 교회를 움직이는 동력이다.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사랑의 힘 없이는 하나님의 어떤 사명도 감당할 수 없는 것이 교회라는 것이다. 마지막 네 번째로 칼빈이 정의하는 교회는 “성장공동체”이다. 개혁가는 마치 인간이 성장 과정을 가지듯이 교회 역시 성장하며, 이러한 교회의 영적 성장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멈추지 않는 것으로 보았다. 여기서 우리는 칼빈이 말하는 교회는 종말론적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즉 교회란 이 세상 속에 있지만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며, 이 순례하는 교회는 마지막 종말의 순간까지 그리스도를 닮기 위해 끊임없이 성장의 수고를 감당해 나가야 하는 공동체라는 것이다.

한 마디로 칼빈이 말하는 “그리스도의 거룩한 교회”란 마지막 심판의 나팔이 울려 퍼지는 그 순간까지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고 그리스도를 본받기 위해 하나님의 진리를 선포하며 사랑으로 섬기는 이 세상의 순례자이다. 

1. 봉사공동체

칼빈은 그리스도를 “최고의 목자(princeps pastor)”,2) “신자들의 유일한 교사(unicus fidelium magister)”,3) “최고의 통치자(summus moderator)”4)로 부른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교회에 하나의 지속적인 통치권을 세우시고 우리의 구원을 돌보도록 하셨기 때문이라는 것이다.5) 즉 그리스도께서는 승천 이후에 그분과 우리 사이에 아주 먼 거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분은 여전히 자신의 교회를 위해 구원을 베푸시는 유일한 교사, 최고의 통치자이시라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만이 좋은 목사이신데, 먼저는 자기 자신을 통해, 그 다음에는 자신의 도구들을 통해 범죄하고 허물진 교회를 보존하시는 목자라고 설명하셨다.”6) 여기서 그리스도께서 사용하시는 통치의 “도구들”이란 교회의 사역자들을 의미하며, 그분은 그들을 통해 자신의 교회를 다스리신다.7) “그러나 그분께서 이 직분을 맡기시고 사명을 감당하도록 은혜를 베푸신 사역자들을 통해 자신의 은사를 교회에 나누어주시고 분배하시는 것이 완성 방법이다. 특히 그와 같은 방법으로 친히 임재하심을 보여주시되 그것이 헛되지 않고 무용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그의 성령의 능력을 이러한 자신의 기관에 투입하시는 것이다.”8)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몸 된 지상교회를 다스리시는 방법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교회를 친히 다스리시되 사역자들을 세워서 다스리시며 그들의 수고가 헛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자신의 성령을 보내어 주셨다는 것이다. 따라서 교회의 사역자들은 성령의 은사, 즉 성령의 능력을 받지 않고서는 효력 있는 사역을 감당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인간의 봉사는 신자들을 한 몸에 연결시키는 최상의 근육이다.9) “사역자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상호간의 사랑인데, 이것을 통해 그들은 마음과 정성을 다해 하나님의 교회를 건설한다. 왜냐하면 각자가 각기 자신의 일을 하는 것과 그들 각자가 공동의 안녕을 위해 함께 노력하지 않는 것보다 더 큰 장애물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역자들이 상호 간에 형제의 교제를 존중하지 않는다면 어떤 건물을 세우기는 하겠지만 갈기갈기 찢어진 건물을 세우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럴 경우 그것은 결코 교회 건설이라 할 수 없다.”10) 교회는 오직 협력사역을 통해서만이 그리스도의 한 몸으로 세워질 수 있다. 교회를 다스리기 위해 부름 받은 자들 모두가 생각해야 하는 것은 그들이 자신들의 직분을 바르고 잘 수행하기를 원한다면 항상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11) 왜냐하면 사랑은 다른 어떤 은사들보다 뛰어난 것이기 때문이다.12)  그리스도의 교회를 건설하기 위해 모든 교회 직분들은 유일한 머리이신 그리스도 아래 성령의 은혜 은사를 통해 유기적으로 기능한다. 이런 점에서 실제적인 교회 사역의 동력은 은사를 베푸시는 성령 하나님이시다.

오직 성령 한 분으로부터 다양한 은사들이 흘러 나온다.13) 성령은 모든 은혜 은사의 “시초 혹은 기원(principium vel origo)”이실 뿐만 아니라, 그것을 “만드시는 분(author)”이시다. 성령의 인도하심과 안내하심 없이는 하나님의 교회가 존재할 수 없다.14) 칼빈은 교회 사역자들을 “성령의 도구들(organa spiritus sancti)”이라 부르는데,15) 그 이유는 그들이 다른 사람들 보다 뛰어난 은사를 받은 자들이기 때문이다.16) 교회 직분들은 은사와 동일시된다. 성령의 은사 없이는 어떤 교회 직분도 봉사도 없다.17) 이런 이유 때문에 바울은 은사 대신에 직분을 논한다. 왜냐하면 교회 직분은 필수적으로 은사와 연관되기 때문이다. 종종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부르실 때 그러한 은사를 교회 사역자들에게 주시는데, 그 은사 없이는 그들이 받은 직분의 기능을 발휘할 수 없다.18) “만일 그리스도를 통해 형성되고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아무도 그렇게 빛나는 직분에 적격이거나 어울리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복음의 사역자들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은 그분의 은사이고 그들이 필요한 은사들 가운데 뛰어나다는 것도 그분의 은사이며 그들이 자신들에게 맡겨진 직분을 감당하는 것 역시 그분의 은사이다.”19) 각기 다른 은사를 받은 모든 교회 사역자들은 각기 서로 다른 사역에 종사하지만 일심으로 교회 건설이라는 공동의 사역에 몰두한 사람들인데, 이러한 교회 사역은 우리 모두가 믿음이 하나 될 때까지, 하나님의 아들을 아는 지식이 충만할 때까지, 온전한 사람이 될 때까지, 그리고 그리스도로 충만한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지속되어야 한다.20) 모든 교회 직분자들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건설하기 위해 섬긴다. 이것이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교회에 직분의 질서를 세우신 가장 중요한 목적이다.21) 여기에 항상 선행하는 것은 성령의 은사들이다. 은사 없이는 교회 내에 어떤 공적인 직분도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을 하나님과 화해시키시는 유일한 제물 그리스도를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 왕적 사제직을 가지는데 그 목적은 각자 자신뿐만 아니라 자신에게 속한 모든 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바치도록 하는 것이다. 즉 찬미의 제사를 드리기 위한 것이다.22) 이 만인제사장직은 그리스도의 한 몸 안에서 일어나는 교제를 통해 그 기능을 발휘한다. 우리가 받았던 은혜를 유익하게 사용하는 것은 오직 교제를 통한 교회 건설을 위해서이다.23) 교회 속에 유익하지 않은 지체는 단 하나도 없다.24) 아무런 유익도 주지 못할 만큼 하찮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모든 지체들이 각자 아무런 구분 없이 동일한 분량으로 은사를 받는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교회봉사의 질서가 요구하는 것은 교회 속에 서로 다른 다양한 기능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상이함이 성도 상호 간의 일치와 갈등을 일으키는 것은 아니다.25) 그와 같은 다양성이 방해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신자들 사이의 하나 됨을 품고 강화하기 위해 유익하다.26) 즉 교회의 통일성 때문에 은사의 다양성이 제거되는 것은 아니다.27) 오히려 이러한 다양성으로부터 교회의 통일성이 든든히 구축되는데, 그것은 마치 음악에서 다양한 음이 조화로운 멜로디를 형성하는 것과 같다.28) “한 몸의 지체들이 다양한 재능들을 가지고 있고, 그들 모두가 서로 다른 것처럼, 그러나 동시에 모든 재능들을 지닌 지체도 없고, 다른 지체의 직분을 자신의 것으로 삼는 지체도 없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또한 그와 같이 우리에게 다양한 은사를 나누어 주셨다. 이러한 구별을 통해 그분이 세우시려고 한 것은 우리 가운데 질서를 보존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인데, 이것은 각자가 자신의 재능에 따라 적당히 행하고 다른 사람들의 일에 간섭하지 않도록, 그리고 한 사람이 모든 것을 동시에 가지려는 욕심을 부리지 않도록, 또한 자신의 위치에 만족하고 다른 사람에게 허락된 자리를 찬탈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다.”29)

은사 상호간의 교류를 통해 신자들은 서로 함께 연결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은사는 각자가 자신의 은사를 자기 자신을 위해 사용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돕도록 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30) 교회를 건설하는 일은 각자 독립적으로 서로 다른 은사를 받은 모든 신자들이 상호 동역하는 것을 통해서만 일어난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재능(facultas)을 자기 자신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건설하도록 다른 사람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31) 이 교회를 우리는 은사공동체라 부를 수 있는데, 거기서는 은사의 선행(先行) 없이는 교회를 세우는 어떤 직분적 봉사도 기대할 수 없다.32) “실로 하나님께서는 은사들이 스스로 공공의 안녕에 이바지할 경우에 온 몸에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지 부족함이 없도록 그와 같이 각 지체에게 자신의 성령의 은사들을 분량에 따라 나누어주셨다. 하지만 교회의 재능은 항상 이와 같이 저 최종적인 완전을 위해서는 부족한 것이 많다.”33)

2. 진리공동체

교회란 그리스도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신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교리 위에 세워진 것이다.34) 그리스도께서는 교회 교리의 모퉁이 돌이실 뿐만 아니라 또한 자기 자신의 학교에서 훈련받는 모든 제자들의 유일한 교사이시다.35) 이 학교에서 하나님의 진리는 교회의 봉사자들을 통해 계시되고 보존되고 교육된다. 그러므로 성경이 가르치는 것처럼 교회는 “진리의 기둥과 터(columna et firmamentum veritatis)”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 즉 교회는 진리의 교두보라는 뜻이다. 교회가 진리의 교두보라면 교회 밖에서 구원을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하나님께서 천국 문을 열고 닫을 수 있는 권능의 열쇠를 교회에 맡기신다는 말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칼빈은 과감하게 진리공동체인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extra ecclesiam nulla salus)”고 가르치는데,36) 이것은 교부 키프리안의 사상과 일맥상통한다. 하지만 교회 밖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구원을 받지 못한 불신자로 취급되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오늘날 밖에 있는 자들도 내일은 교회 안에 접붙여질 수 있으며, 그리고 그들의 죄악이 개선됨으로써 지금 그들에게 없는 하나님의 은사들에 참여하는 참여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37)

칼빈에 따르면 이 하나님의 진리는 교회 안에서 말씀 선포 즉 설교의 봉사를 통해 보존되는 것이다.38) 하나님께서는 이 설교의 합법성을 교회에 주셨는데, 우리가 이 세상의 순례자인 한 우리는 항상 하나님께서 우리를 가르치시는 이 학교로 와야만 한다.39) 교회는 하나님의 진리의 학교이다. “하나님의 진리가 이 세상에서 소멸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교회는 그 진리의 신실한 보호자가 되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교회의 봉사와 사역을 통해 그분의 말씀의 순수한 선포를 유지하시기를 원하셨고 자신을 우리에게 가장으로 보이시기를 원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의 순수한 선포를 통해 우리에게 영적인 양식을 먹이시고 우리의 구원에 필요한 모든 것을 보호하신다.”40) 진리를 보존하고 가르치는 것은 교회의 어머니 되심의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41) 세상의 창조 이래로 교회는 항상 “진리의 보호자”였으며 세상 끝 날까지 영원토록 그럴 것이다.42) 칼빈에게 있어서 교회가 진리의 수호자라는 것은 교회가 세상을 향해 진리를 선포하여 죽은 자들을 생명의 길로 인도하는 기능뿐만 아니라, 교회 내의 신자들을 이 진리의 말씀으로 가르쳐 그들의 믿음을 강화하는 기능도 동시에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상의 모든 교회들은 두 가지 사명, 즉 전도와 양육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부름 받았다.

칼빈은 복음 선포 즉 복음 전도를 “어머니(mater)”라고 부르며, 믿음은 바로 이 복음 선포의 딸이라고 지적한다.43) 이유는 모든 신자들은 오직 “유일한 복음의 어머니”로부터 태어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칼빈에 의하면 이 복음의 어머니란 바로 가르침, 즉 “교리(doctrina)”이다.44) 교리 없는 기독교는 존재할 수 없다. 바른 교리가 있는 곳에 신자들의 모임과 통일성과 교제가 있다.45) “말씀의 가르침(doctrina verbi)”은 모든 신자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교회 통일성, 즉 교회 연합의 잣대요 시금석이다. “왜냐하면 교리는 우리 사이에 형제적 교제의 끈이기 때문이다.”46) 여기서 우리는 교회 연합의 가장 중요한 원리를 발견한다. 그것은 기독교의 근본적인 교리 즉 말씀의 교리가 일치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교회가 서로 형제인지 원수인지를 판단하는 잣대는 오직 복음의 핵심 교리, 즉 진리뿐이라는 것이다. 진리가 있는 곳에 교회도 있다. 따라서 진리가 발견되는 교회들 상호간의 연합만이 진정한 교회 연합이다. 교회 일치 운동은 하나님의 진리(veritas Dei)가 존재하는 곳에서만 가능하다. 칼빈은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하나님의 순수한 진리 외에 다른 일치의 띠를 요구하지 않는다(non aliud quaerere concordiae vinculum quam puram Dei veritatem).” 칼빈에게 있어서 교회의 평화는 “순수한 교리 안에서의 일치(consensus in puram doctrinam)”를 의미한다. “일치의 끈인 하나님의 순수한 교리를 가지고 있는 교회로부터 분리되는 것을 우리는 두려워해야 할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먼저 열성적으로 주의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의[=하나님의 순수한 교리의] 교제 밖에는 구원이 없기 때문이다.”47)

3. 사랑공동체

칼빈에게 있어서 교회는 설립부터 완성까지 성부, 성자, 성령 삼위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사랑의 연합 사역이다. 칼빈은 “교회의 근원과 기원”을 “하나님의 은혜로운 사랑”으로 정의한다.48) 즉 교회는 하나님 사랑(caritas Dei)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랑으로 자신의 자녀들을 낳으시고 기르신다. 마치 신랑이 지극히 사랑하는 신부를 그렇게 하듯이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교회를 은혜로운 사랑으로 품어주신다.49) 하나님은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복종하신 자신의 독생자 그리스도, 그래서 교회의 머리가 되신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몸인 교회에 자신의 사랑을 베푸신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사랑하시는 이 “사랑의 원인과 기원(causa et origo amoris)”은 오직 그리스도뿐이시다.50) 즉 사랑의 원리는 그리스도의 희생에 놓여있다.51) 죄 없으신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을 위해 십자가를 지신 희생이 하나님께서 죄인인 우리를 사랑하신 사랑의 원리이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신의 사랑 속에 받아주셨고 자신의 성령을 통해 이 은혜를 우리 속에 강화하신다.52)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연합하게 하시는 수단은 성령의 사랑인데, 그의 성령은 우리를 하나로 묶는 일치의 끈이시기 때문이다.53) 칼빈의 판단에 따르면 고린도 후서 13장 13절에서 바울 사도가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동시에 성령의 교통하심을 함께 묶은 것은 성령의 교통하심 없이는 누구도 하나님의 부성적인 은혜와 그리스도의 선행을 맛보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에 의해 생성된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성령을 통해 우리 마음 속에 부어진 것이다.54)

이 하나님의 내리사랑의 원리가 교회의 생명력이다. 이것이 교회를 움직이는 동력이다. 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교회의 각 지체들은 자신만을 위해 살아온 이기적인 불신앙의 삶을 청산하고 더 이상 자기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을 위해 사는 삶, 즉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사는 자들이다. 성도의 교제 즉 한 몸으로서 교회는 하나 됨과 사랑 없이 성립될 수 없다. 이러한 기독교의 교제, 즉 한 몸 속의 교제와 사랑은 일반적인 형제 사이의 일치와 사랑보다 훨씬 더 강력하다.55) 칼빈에 의하면 성도의 교제는 하나님께서 죄 용서의 “권능(potestas)”을 맡기신 지상 교회의 본질적 요소이다.56) 따라서 제한적인 모임을 독립적으로 구성하기 위해 이 신자들의 교제로부터 자신을 분리시키고 그 분리를 지속적으로 고집하는 모든 자들, 그들에게서는 구원에 대한 어떤 소망도 발견될 수 없다.57) 이 성도의 교제가 의미하는 것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모든 선행들을 서로 나누기 위해 그리스도와의 교제에로 모여드는 것이다.58) 하나님의 모든 자녀들은 형제 연합의 끈을 통해 상호 연결되어야 한다.59) “하나님께서 그들 모두의 아버지라고 고백하고, 그리스도께서 그들 모두의 머리라고 고백하는 자들은 자신들이 소유한 모든 것을 서로 나누는데, 이유는 그들이 서로 형제 사랑을 통해 연합되었기 때문이다.”60) 그리스도의 몸에 붙어 있는 모든 지체들은 한 형제자매로서 이 “상호교제(mutua communicatio)”를 통해 서로를 도와야 한다. “만일 우리가 누군가를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한다면 우리는 반드시 그를 형제로서 사랑해야 한다.”61)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우리 모두의 머리 아래 한 몸으로(sub communi nostro capite in unum corpus)”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62) 그러므로 우리가 사랑의 봉사를 통해 서로를 의지하지 않는다면 살아갈 수 없다.63) 칼빈에게 있어서 사랑은 성경이 가르치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몸을 성장시키는 최고의 은사와 최상의 방법이다. 그리고 사랑은 “신자들과 하나님의 자녀들의 참된 온전함(la vraye perfection des fideles et des enfans de Dieu)”이다.64) 즉 신자들의 온전함은 사랑에 있다는 것이다.65)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사랑으로 완전하게 된다.”66) 이 사랑의 최고 모범은 바로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당하신 죽음과 고난 속에서 발견되는 것이다.67)

그리스도께서 하나이신 것처럼 그분은 우리 모두가 그의 몸에서 하나가 되기를 원하시며, 심지어 각자가 자신의 이웃을 섬기는 조건으로 하나가 되기를 원하신다.68) 하나님께서는 이 상호간의 사랑 안에서 우리의 경건을 위해 우리를 훈련시키시는데, 이것이 바로 요한이 말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그의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는 계명이다.69) 사랑이란 “교회의 통일성을 유지하기 위해(ad conservandam ecclesiae unitatem)” 필수적인 것이다.70)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랑을 유지하기 위해 심지어 믿음까지도 희생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71) 왜냐하면 믿음은 사랑의 근원과 기원이요, 스스로 하나님의 사랑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72) “사랑을 통해 역사하는 믿음 외에는 결코 의롭게 하지 못하지만, 의롭게 하는 능력이 사랑의 효력에 달린 것은 아니다.”73) “그러므로 사랑의 교제는 믿음의 일치에 달려 있는데, 후자[=믿음의 일치]는 전자[=사랑의 교제]의 시작과 끝이요, 요약하면 전자의 유일한 규범이어야 한다.”74) “사랑의 모든 직분(onmia caritatis officia)”은 이 두 용어 “일치와 건설(concordia et aedificatio)”로 요약할 수 있다.75) 즉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됨(unio in Christo)”과 “그리스도 몸의 건설(aedificatio corporis Christi)”을 의미한다.

4. 성장공동체

칼빈은 교회를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소유로 보았다. “교회는 자연적인 수단들이 아니라, 천상의 능력과 은혜로 태어나고 성장하는 것이다.”76) 교회 설립이란 특별한 것인데, 그것은 비록 이 땅에 기초를 두고 있지만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통해 하늘 위에까지 성장하는 것이다.77) 장자들로서 유대인들은 다른 사람들과 연합하되, 그들 모두가 한 몸과 한 교회로 성장하기까지 그렇게 하는 것이지만 유대인들이 감사하지 않음으로써 잘려나가고 이방인들이 그들의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다.78)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 모두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며 연합되는 것은 그들이 한 머리에 의존하고 있고 또한 한 몸이 될 때까지 성장하기 위해서이다.79) “왜냐하면 우리 밖에 계시지만 우리 안에 거하시는 그리스도께서 끊어질 수 없는 교제의 끈으로 우리와 연합하실 뿐만 아니라, 그분이 온전히 우리와 하나가 되실 때까지 놀라운 연합을 통해 하루하루 점점 우리와 한 몸으로 성장하시기 때문이다.”80)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의 몸에까지 성장할 때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합당한 성숙과 완전이다.81) 이것은 성숙한 한 사람으로 성장하는 것과82)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으로 한 마음과 한 영혼이 되는 성장을 의미한다.83) 하지만 우리는 아직까지 충만하고 완전한 힘을 얻지 못했으므로 죽을 때까지 계속해서 자라가야 한다. 몸인 교회의 성장 목표는 교회의 유일한 머리이신 그리스도뿐이다.84) 이 성장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순종(subiection de nostre Seigneur Iesus Christus)”의 결과물이다.85) 칼빈에게 있어서 교회의 성장은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에 의해,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가는 것이다. 한마디로 교회성장의 방법과 과정과 목표는 오직 그리스도뿐이다. 세례 요한처럼 자신은 쇠하고 그리스도는 흥하기를 소망하며, 그리스도처럼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위해 죽기까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순종하는 길이 곧 교회 성장의 바른 길이며 지름길이라고 칼빈은 말한다.

각주

1) CO 51(에베소서 주석 4장 11절), 196: “Primum significat, non esse hoc inventum humanum, sed sacrosanctam Christi institutionem, quod regitur ecclesia verbi praedicatione.” 칼빈은 교회를 불가시적인 교회와 가시적인 교회로 구분한다. 하지만 이 구분은 몇몇 학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이데아 세계와 현상계에 대한 플라톤의 이원론에 근거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 칼빈에게 있어서 이 구분은 교회가 인간 인식 능력의 한계 범위를 벗어나는 신적 기관이라는 점을 감안한 것일 뿐이다. 즉 교회는 사람 앞에(coram hominibus) 있지만, 동시에 하나님 앞에(coram Deo) 있다. 하나님 앞에 있는 교회는 시공간 속에서만 인식되는 사람 앞에 있는 교회와는 달리, 시공간을 초월하는 측면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칼빈은 이 구분으로 결코 교회의 두 실체를 말하지도, 이데아 세계에 존재하는 교회의 실체와 지상 세계에 존재하는 교회 실체의 그림자 즉 현상을 말하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교회에 대한 칼빈의 구분은 존재론적인 것이 아니라, 인식론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칼빈에게 있어서 이 세상에 실현되지 않는 어떤 교회도 인간 편에서 인식불가능하다. 그러므로 불가시적 교회와 가시적 교회에 대한 칼빈의 구분을 플라톤의 이원론에 대입시키는 것은 불편부당한 평가이다.
2) CO 55, 286 ([베드로전서 주석] 5:4)
3) OS V, 45 (= CO 2, 779. [강요] IV.3.3.)
4) CO 48, 149 ([사도행전 주석] 7:35-36).
5) CO 48, 3 ([사도행전 주석] 1:2): "...: nam quod perpetuum in ecclesia regimen constituit, hoc documento ostendit, se velle saluti nostrae consultum." 
6) CO 47, 241 ([요한복음 주석] 10:11): "Se unum esse bonum pastorem profitetur Christus, qui per se imprimis, et deinde per sua instrumenta ecclesiam sanam et incolumem praestat." 참고. OS V, 44 (= CO 2, 778. [강요] IV.3.2.): "...: tum vero etiam indicat, non aliter incolumen servari Ecclesiam posse quam si his praesidiis fulciatur in quibus salutem eius reponere Domino placuit." 
7) CO 7, 37: "Christum gubernare ecclesiam per suos ministros." CO 51, 553: "..., puis qu'il veut que son Eglise soit gouvernee par le moyen des hommes."
8) OS V, 44 (= CO 2, 778. [강요] IV.3.2.): "Haec autem implendi ratio, quod per ministros, quibus officium hoc mandavit, et muneris obeundi gratiam contulit, sua dona dispensat ac distribuit Ecclesiae: seque adeo ipsum praesentem quodammodo exhibet, Spiritus sui virtutem in sua hac institutione exerendo, ne inanis sit vel otiosa." 
9) OS V, 44 (= CO 2, 778. [강요] IV.3.2.): "... hominum ministerium, quo Deus in gubernanda Ecclesia utitur, praecipinum esse nervum quo fideles in uno corpore cohaereant: ...?"
10) CO 47, 349 ([요한복음 주석] 15:17): "requiri mutuam inter ministros dilectionem, quo ecclesiam Dei cum cordis studio aedificent. Nullum enim maius impedimentum quam dum seorsum quisque laborat, nec in commune singuli operas suas conferunt. Nisi ergo fraternam inter se societatem colant ministri, fieri poterit ut aliquas erigant moles, sed dissipatas: nullum interea erit ecclesiae aedificium." 
11) CO 47, 452([요한복음 주석] 21:15): "Meminerint ergo qui ad regendam ecclesiam vocantur, si munus suum rite probeque exsequi cupiunt, initium sibi esse faciendum a Christi amore." 
12) CO 49, 515 ([고린도전서 주석] 13:13): "..., caritatem reliquis donis praestantiorem esse: ..."
13) OS III, 128 (= CO 2, 102. [강요] I.13.14.): "... unus est est Spiritus a quo profluit omne donorum genus." CO 25, 176 ([민수기 주석] 11:28): ", diversa quidem esse dona, sed unum spiritum a quo fluunt, " 
14) OS V, 441 (= CO 2, 1070. [강요] IV.19.6.): "Adhuc certe adest populo Dei Spiritus sanctus: quo nisi ductore et directore consistere nequit Dei Ecclesia." 
15) CO 55, 347 ([요한일서 주석] 4:1); CO 24, 274 ([신명기 주석] 18:17): "...: sed tantum ut [pastores] spiritus sancti essent organa."
16) OS V, 144 (= CO 2, 853. [강요] IV.8.11.): "... qui exellentioribus gratiis prae aliis donati sunt:... " 
17) 참고. CO 47, 439 ([요한복음 주석] 20:22): "Iam vero notandum est, quos ad munus pastorale vocat Christus necessariis etiam donis ornare, ut pares sint exsequendo muneri, vel saltem non inanes nudique accedant." 
18) COE 16, 228 (= CO 51, 196. [에베소서 주석] 4:11-14): "Caeterum mirari quis possit, cur Paulus, quum de Spiritus sancti donis esset sermo, nunc officia donorum loco commemoret. Respondeo, quoties a Deo vocati sunt homines, dona necessario coniuncta esse officiis. Neque enim Deus Apostolos aut Pastores instituendo larvam illis duntaxat imponit, sed dotibus etiam instruit, sine quibus rite functionem sibi iniunctam obire nequeunt." 
19) COE 16, 229 (= CO 51, 196-197. [에베소서 주석] 4:11): "...neminem fore idoneum aut parem tam praeclaro muneri, nisi qui a Christo formatus et factus fuerit. Quod ergo Euangelii ministros habemus, eius est donum; quod excellunt necessariis donis, eius est donum; quod[197] munus sibi commissum exequuntur, similiter eius donum est." 
20) OS I, 243 (= CO 1, 214. [강요] 1536): "Dedit enim apostolos, prophetas, doctores, pastores, qui omnes diversis quidem ministeriis, sed uno animo in communem ecclesiae aedificationem incumberent, donec occurramus omnes in unitatem fidei et agnitionis filliDei, in virum perfectum, in mensuram aetatis plenitudinis Christi." 참고. COE 16, 229 (= CO 51, 197. [에베소서 주석] 4:11): "Quum his nomen unum et munus, illis autem aliud assignat, semper hoc ad illam diversitatem membrorum refertur, ex qua tamen universi corporis integritas constituitur,..." L. Goumaz, Het ambt bij Calvijn, 15-30. 
21) 참고. COE 16, 232 (= CO 51, 199. [에베소서 주석] 4:12): "Requiri ministerium Paulus docet, quia ita placet Deo. Pro eo, quod dixerat: 'constitutionem sanctorum', mox subiungit: 'aedificationem corporis Christi', eodem sensu." 
22) 주목할만한 것은 루터와는 달리 칼빈은 처음부터 신자들의 만인 사제직을 교회 직분적인 개념으로보다는 성례전적인 개념으로 생각했다는 것이다. 참고. OS I, 158와 210 (= CO 1, 137와 184. [강요]. 1536): "Ab hoc sacrificandi munere, regale sacerdotium nuncupamur omnes Christiani, quod per Christum offerimus hostiam laudis Deo, "와 "In ipso omnes sumus sacerdotes, sed ad laudes et gratiarum actiones, nos denique nostraque Deo offerenda; illi uni singulare fuit, sua oblatione Deum placare et peccata expiare (1 Petr. 2. Apoc. 1)." OS V, 432 (= CO 2, 1063. [강요]. IV.18.17.); CO 49, 234-235 ([로마서 주석] 12:1): "Iam etiam habemus quae sacrificia commendet Paulus christianae ecclesiae. Unico enim sacrificio per Christum Deo reconciliati ipius gratia facti sumus om[235]nes sacerdotes, ad nos nostraque omnia Dei gloriae dedicanda."; CO 48, 279 ([사도행전 주석] 13:2): "Quare aliud est Christianae ecclesiae sacerdotium, ut scilicet quisque se et sua Deo offerat: publici autem ministri spirituali evangelii gladio animas sacrificent, " 다음의 베버 주장을 반대함. O. Weber, Die Treue Gottes II, 31: "Calvin benutzt diesen Begriff [= das allgemene Priestertum der Glubigen] kaum, "  
23) CO 51, 543: "..., que nous taschions de faire profiter les graces que nous avons receus pour l'edification commune de l'Eglise, ?" 
24) CO 49, 505 ([고린도전서 주석] 12:27): "..., ne quod sit inutile in ecclesia membrum." 
25) CO 7, 266: "Requirit ordo, ut sint distinctae functiones, et hoc concedimus: verum coniunctioni distinctio non repugnat." 
26) COE 16, 223 (= CO 51, 192. [에베소서 주석] 4:7): "Nam illic [Paulus] docet tantum abesse, ut talis diversitas concordiae noceat fidelium, ut magis ad eam fovendam et confirmandam valeat." 
27) OS V, 5 (= CO 2, 748. [강요] IV.1.3.): "Quo tamen non tollitur gratiarum diversitas: ..." 
28) COE 16, 228 (= CO 51, 196. [에베소서 주석] 4:11-14): "..., ex ista varietate confici in Ecclesia unitatem, sicut varii toni in musica suavem melodiam conficiunt." 
29) CO 49, 237-238 ([로마서 주석] 12:4): "... ut distinctas habent facultates membra unius corporis, distinctaque omnia, nullum vero membrum aut omnes simul facultates tenet, aut aliorum munera ad se trahit: sic et nobis varias dispensavit dotes Deus: qua discretione quem inter nos ordinem servari volebat, instituit: ut secundum facultatis suae modum sibi quisque temperet, neque in[238] alienas se ingerat partes: neque unus omnia simul habere expetat, sed sorte sua contentus libenter ab alienis vicibus usurpandis abstineat." CO 49, 497-498 ([고린도전서 주석] 12).
30) CO 49, 501 ([고린도전서 주석] 12:12): "...: hic vero fideles [Paulus] hortatur ut mutua donorum collatione inter se cohaereant: neque enim a Deo illis collata esse, ut suo quisque seorsum fruatur: sed ut alius alium iuvet." 
31) CO 49, 238 ([로마서 주석] 12:6): ": atque suis donis in ecclesiae aedificationem conferendis sic oportere intentos esse singulos, " 참고. OS IV, 155-156 (= CO 2, 510. [강요] III.7.5.): "Nullum membrum suam facultatem sibi habet, nec in privatum usum applicat: sed ad socia membra transfundit: nec[156] ullam inde utilitatem capit nisi quae ex communi corporis totius commoditate procedit. Sic pius vir quicquid potest, fratribus debet posse: sibi non aliter privatim consulendo quam ut ad communem Ecclesiae aedificationem intentus sit animus." 
32) CO 49, 506 ([고린도전서 주석] 12:28-31): "Atqui hic est ordo naturalis, ut dona ministerium ipsum praecedant." 
33) OS V, 144-145 (= CO 2, 854. [강요] IV.8.12.): "Sic quidem singulis membris distribuit Deus dona Spiritus[145] sui ad mensuram, ut corpori universo nihil desit necessarium, ubi dona ipsa in commune conferuntur. Verum tales sunt semper Ecclesiae divitiae, ut multum desit ad summam illam perfectionem?"
34) OS V, 31 (= CO 2, 767. [강요] IV.2.1.): "Ecclesiam fundatam esse super doctrinam Apostolorum et Prophetarum, ipso Christo summo angulari lapide."
35) 이런 점에서 칼빈은 종종 교회를 “그리스도의 학교(schola Christi)”라 부른다. 참고. CO 36, 244와 391 ([이사야 주석] 11:9, 23:9); CO 41, 163 ([다니엘 주석] 9:20-21); CO 47, 52, 54, 84, 91와 363 ([요한복음 주석] 3:1, 3, 4:19, 25와 16:14); OS IV, 175 (= CO 2, 527. [강요] III.9.5.)
36) 참고. OS I, 402 (= CO 22, 58. l.t. CO 5, 342): "..., et que nulle remission des pechez nest donnee dailleurs ne par autre moyen, ne a autres: attendu que hors ceste Eglise et communion des sainctz il n'y a point de salut." OS I, 92 (= CO 1, 78. [강요] 1536): "Quando extra hanc ecclesiam et hanc sanctorum communionem nulla est salus."
37) CO 52, 427([디도서 주석] 3:3): "... posse cras inseri in ecclesiam qui hodie extranei sunt, et correctis vitiis posse fieri donorum Dei participes, quibus nunc destituuntur."
38) OS V, 146 (= CO 2, 854. [강요] IV.8.12.): "Ecclesiam ipsam esse columnam ac stabilimentum veritatis. Quid autem aliud sibi volunt haec verba, quam in Ecclesia conservari Dei veritatem, praedicationis scilicet ministerio?"
39) CO 51, 568: "que quand Dieu a mis ce regime en son Eglise, que sa Parole se presche, c'est  fin que cependant que nous sommes en ce pelerinage terrien, tousiours nous venions  l'escole ou Dieu nous enseigne:..."
40) OS V, 15 (= CO 2, 755. [강요] IV.1.10.): "..., ne intercidat veritas Dei in mundo, Ecclesiam esse fidam eius custodem: quia eius ministerio et opera voluit Deus puram verbi sui praedicationem conservari, et se nobis ostendere patrem familias, dum nos Spiritualibus alimentis pascit, et quaecunque ad salutem nostram faciunt procurat."
41) 참고. CO 37, 13 ([이사야 주석] 40:9): "Quo sensu etiam vocatur a Paulo columna et firmamentum veritatis (1. Tim. 3, 15). Etsi enim Deus per seet absque hominum ministerio regere nos posset, has tamen ecclesiae suae partes mandavit, et apud eam deposuit inaestimabilem verbi sui thesaurum. Qua etiam ratione alibi dicetur piorum omnium mater."
42) OS V, 21 (= CO 2, 760. [강요] IV.1.17.): "..., nullum fuisse ab orbe condito tempus, quo Ecclesiam suam Dominus non habuerit: nullum etiam fore ad consummationem usque seculi, quo non sit habiturus." CO 38, 652 ([예레미야 주석] 31:7): "...aeternam fore ecclesiam,..." CO 42, 578 ([요엘 주석] 2:32): "... ecclesiam fore aeternam:..." 참고. H. Berger, Calvins Geschichtsauffassung, 111sqq.
43) 참고. CO 50, 151 ([고린도후서 주석] 13:5): "Primum enim ostendit relationem, quae est inter fidem populi et ministri praedicationem: nempe quod haec sit mater, quae generat et parit: illa sit filia, quae originem suam non debet oblivisci."
44) COE 16, 108 (= CO 50, 237. [갈라디아서 주석] 4:24): "Doctrina enim mater est, ex qua nos Deus generat."
45) 참고. W. Nijenhuis, Calvinus oecumenicus, 225.
46) CO 48, 58 ([사도행전 주석] 2:42): "Doctrina enim vinculum est fraternae inter nos communicationis,"
47) CO 7, 34: "Ab ea ecclesia ne excommuniemur, quae unitatis suae vinculum habet, purum Dei doctrinam, non tantum magnopere timendum, sed praecipuo etiam studio cavendum est. Non enim est salus extra eius communionem. (Ies. 2, 3; Ioel. 3, 5)."
48) CO 31, 439 ([시편 주석] 44:4): "Et certe hic fons et origo est ecclesiae, nempe gratuitus Dei amor: ..."
49) CO 44, 72 ([스바냐 주석] 3:16-17): "... ad gratuitum Dei amorem, quo ecclesiam suam complexus perinde eam fovebit atque maritus uxorem suam, quam tenerrime diligit."
50) 참고. CO 47, 388 ([요한복음 주석] 17:23): "Unus enim Christus est, in quem competit elogium dilecti."
51) CO 50, 71 ([고린도후서 주석] 5:19): "...principium amoris in Christi sacrificio statuitur."
52) CO 6, 39 (l.t. OS II, 89 = CO 6, 40): "Dieu nous a receu en dilection, par le moyen de Iesus Christ, et conferm en nous ceste grace par son sainct Esprit."
53) CO 49, 282 ([로마서 주석] 15:30): "Dilectio autem spiritus vocatur, in qua nos Christus coniungit: quia non carnis est nec mundi, sed ab eius spiritu, qui vinculum est unitatis nostrae."
54) OS IV, 3 (= CO 2, 395. [강요] III.1.2.): "Christi gratiam et Dei charitatem , simul annectit communicationem Spiritus [2. Cor. 13. c. 13], sine qua nec paternum Dei favorem, nec Christi beneficentiam quisquam gustabit. Sicut etiam alibi dicit, Charitas Dei effusa est in corda nostra per Spiritum sanctum qui datus est nobis [Rom. 5. a. 5]."
55) 참고. CO 51, 523: "...: car Jesus Christ veut bien communiquer son nom  toute la compagnie des fideles, et c'est  fin de nous attirer tant plus  ceste affection de cheminer en concorde et fraternit, voire en telle union que nous soyons plus que freres, c'est  dire unis comme les doigts de la main ensemble: ..."
56) 지상교회의 열쇠권능에 관해서는 다음 참고. OS V, 25 (= CO 2, 763. [강요] IV.1.22.).
57) CO 6, 41 (l.t. OS II, 90-91 = CO 6, 42): "... tous ceux qui se separent de la communaut des fideles, pour faire secte  part, ne doyvent esperer salut, cependant qu'ilz sont en division." 여기서 특이한 것은 “신자들의 교제 혹은 공동체(la communaut des fideles)”라는 용어가 라틴어로는 “그리스도의 몸(corpus Christi)”으로 번역되었다는 사실이다.
58) OS V, 5 (= CO 2, 747-748. [강요] IV.1.3.): "... aggregari sanctos in societatem Christi, ut quaecunque in eos beneficia Deus [748] confert, inter se mutuo communicent." 참고. OS I, 401 (= CO 22, 57. l.t. CO 5, 341): "La derniere particule explique encores plus clairement quelle est ceste Eglise, cest ascavoir que tant vault la communion des fideles que, de quelconque don de Dieu que un deulx ait receu, tous en sont faictz aucunement participans: combien que par la dispensation de Dieu ce don soit peculierement donne a un et non pas aux aultres. Tout ainsi comme le membres dun mesme corps par quelque communite participent tous entre eulx de toutes choses quilz ont, et toutefois ilz ont chascun a part soy peculieres proprietez et divers offices. Car (comme dict a este) tous les eleuz sont assemblez et formez en un corps."; CO 6, 39 (l.t. OS II, 89 = CO 6, 40): "Et ce qui s'ensuit de la Communion des Sainctz qu'emporte-il?  Cela est adioust pour mieux exprimer l'unit qui est entre les membres de l'Eglise. Et aussi par cela nous est donn  entendre, que tout ce que nostre Seigneur faict de bien son Eglise, est pour le profit et salut de chacun fidele: pource que tous ont communion ensemble."
59) CO 31, 150 ([시편 주석] 16:3): "... omnes Dei filios fraternae coniunctionis nexu inter se devinctos esse oportet, ..."
60) OS V, 5 (= CO 2, 748. [강요] IV.1.3.): "Neque enim fieri potest, si vere persuasi sint Deum communem sibi omnibus patrem esse, et Christum commune caput, quin fraterno inter se amore coniuncti, ultro citroque sua communicent." 참고. OS I, 91 (= CO 1, 77. Inst. 1536): "...; sed huc spectat fidelium communitas, quod omnia huiusmodi bona tum spiritus tum corporis, quatenus aequum est quantumque usus postulat, benigne et qua debent caritate, inter se communicant." 여기서 칼빈은 “신자들의 모임(la congregation des fideles)”과 다른 종류의 모든 교제, 예를 들면 방종파 교제, 재세례파 모임, 수도원 생활  등과 같은 교제를 구분한다. 참고. CO 7, 217-218; CO 48, 59sq ([사도행전 주석] 2:44).
61) CO 55, 75 ([히브리서 주석] 6:10): "Denique ut quemque agnoscimus Dei filium, ita fraterno eum amore amplecti decet." 
62) CO 31, 212 ([시편 주석] 20:10).
63) 참고. CO 51, 733.
64) CO 51, 520.
65) COE 16, 159 (= CO 51, 148. [에베소서 주석] 4:14): "... perfectionem fidelium in charitate sitam esse."
66) OS IV, 279 (= CO 2, 611. [강요] III.18.8.): "... charitate nos coram Deo perfici:..."
67) 참고. CO 51, 767: "... nous avons une image de l'amour qu'il nous a portee en sa mort et passion, laquelle surmonte tout ce que nous pourrons avoir."
68) CO 51, 626: "...: comme il est un, aussi veut-il que nous soyons unis tous en son corps, voire et ceste condition, que chacun serve  ses prochains: ..."
69) CO 24, 722 ([신명기 주석] 10:12): "...: Deus in mutua caritate ad pietatem praestandam nos exercet. Hinc colligit Iohannes, mandatum nobis dari, ut qui diligit Deum, diligat et fratrem suum (1 Ioh. 3. 11)."
70) CO 49, 510 ([고린도전서 주석] 13:4).
71) 참고. CO 5, 171-172 (= Zimmerli, W. 편집, Psychopannychia, 18): "Esse ergo hoc caput conservandae caritatis, ut fides nobis sancta atque integra maneat."
72) CO 24, 721 ([신명기 주석] 10:12): "..., quia fides quae illic vocatur fons et origo caritatis, dilectionem Dei in se complectitur."
73) OS IV, 204 (= CO 2, 550. [강요] III.11.20.): "..., non aliam fidem iustificare quam illam charitate efficacem [Galat. 5.a.6]: sed ab illa charitatis efficacia iustificandi vim non sumit."
74) OS V, 36 (= CO 2, 771-772. [강요] IV.2.5.): "..., hanc charitatis coniunctionem sic a fidei unitate[772] pendere, ut haec illius initium, finis, unica denique regula esse debeat."
75) CO 49, 267 ([로마서 주석] 14:19).
76) CO 23, 347 ([창세기 주석] 25:19): "... coelesti virtute et gratia non modis naturalibus ecclesiam nasci et crescere."
77) CO 31, 523 ([시편 주석] 52:20): "...: sed peculiaris est ecclesiae erectio, quae admirabili Dei virtute, in terris fundata, supra coelos attollitur."
78) CO 40, 394 ([에스겔 주석] 16:61): "..., ut Iudaei qui erant primogeniti, alios sibi adiungerent in societatem, ut ita coalescerent in unum corpus et in unam ecclesiam. Sed quia Iudaei sua ingratitudine resecti fuerunt, ideo fit etiam mentio , quod scilicet gentes succedent in locum ingrati populi, ..."
79) OS I, 86 (= CO 1, 72. [강요] 1536): "... verum electi Dei sic omnes in Christo uniuntur ac coadunantur, ut,quemadmodum ab uno capite pendent, ita in unum velut corpus coalescant; ..." 참고. OS V, 4 (= CO 2, 747. [강요] IV.1.2.): "Quin sic electi Dei omnes in Christo sunt connexi, ut quemadmodum ab uno capite pendent, ita in unum velut corpus coalescant, ea inter se compage cohaerentes qua eiusdem corporis membra: ..."
80) OS IV, 35 (= CO 2, 418. [강요] III.2.24.): "...: quia Christus non extra nos est, sed in nobis habitat: nec solum individuo societatis nexu nobis adhaeret, sed mirabili quadam communione in unum corpus nobiscum coalescit in dies magis ac magis, donec unum penitus nobiscum fiat."
81) COE 16, 232 (= CO 51, 199. [에베소서 주석] 4:12): "Nam illa est legitima nostra integritas et perfectio, si coalescamus omnes in unum Christi corpus."
82) COE 16, 221 (= CO 51, 191. [에베소서 주석] 4:5): "..., ita ut quodammodo in unum hominem coalescamus omnes."
83) OS I, 489 (= CO 5, 416): "...: ut ita uno eius verbo ac spiritu in cor unum et animam unam coalescamus."
84) COE 16, 236 (= CO 51, 202. [에베소서 주석] 4:15): "Et tamen quia nondum adepti sumus plenum et iustum robur, proficiendum est usque ad mortem. Finem profectus demonstrat, ut solus Christus inter nos emineat:..."
85) CO 51, 5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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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논문] 온정주의와 의존상태에서 동역관계와 상호의존으로

    아래의 논문은 남아공에서 선교사로 섬기고 있는 김영무 목사가 한국복음주의 선교신학회(12월 3일 서울 금란교회) "85차 정기논문 발표"에서 자신의 박사 논문을 요약해 발표한 것이다. 온정주의와 의존상태에서 동역관계와 상호의존으로 김영무 목사 (남아...
    Date2016.12.14 By개혁정론 Views5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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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논문] 서신서 연구 70년, 회고와 전망: 고려신학보, 고신신학, 개혁신학과 교회를 중심으로

    서신서 연구 70년, 회고와 전망: 고려신학보, 고신신학, 개혁신학과 교회를 중심으로 주기철 교수 (고신대 신학과 신약학) 들어가면서 본 글의 목적은 2016년 고신 교단 설립 70주년에 즈음하여 그간 교단 내에서 발간 된 ‘고려신학보’, ‘...
    Date2016.12.13 By개혁정론 Views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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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논문] 고신영성의 특징과 개혁주의 신학적 조명과 평가

    아래의 글은 지난 10월 27일 고려신학대학원 대강당에서 있었던 신대원 개교 70주년 기념 학술대회에서 발표된 글입니다. 고신영성의 특징과 개혁주의 신학적 조명과 평가 김 순 성 교수 I. 들어가는 글 금년은 고려신학대학원 개교 70주년을 맞이하는 해이다...
    Date2016.11.28 By개혁정론 Views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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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No Image

    [논문] 복음서와 사도행전 연구: 고신 신약학의 특징적 요소에 관한 연구와 함께

    복음서와 사도행전 연구: 고신 신약학의 특징적 요소에 관한 연구와 함께 김영종 교수 (고신대 교양학부 조교수, 교목) 서론 이 논문의 목적은 고신대학교 설립 70주년을 기념하여 복음서와 사도행전 연구에서의 고신신학을 회고하고 전망하는 것이다. 이런 ...
    Date2016.11.17 By개혁정론 Views10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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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논문] 고신교회와 신학 70년의 회고와 전망

    아래의 글은 지난 10월 27일 고려신학대학원 대강당에서 있었던 신대원 개교 70주년 기념 학술대회에서 발표된 글입니다. Ecclesia semper reformanda: 고신교회와 신학 70년의 회고와 전망 유해무 교수 (고려신학대학원 교의학) 1938년 제 27회 대한예수교장...
    Date2016.11.15 By개혁정론 Views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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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논문] 가시적 교회와 불가시적 교회: 칼뱅이 본 교회의 구조

    아래의 글은 지난 10월 27일 고려신학대학원 대강당에서 있었던 신대원 개교 70주년 기념 학술대회에서 발표된 글입니다. 가시적 교회와 불가시적 교회 : 칼뱅이 본 교회의 구조 미셸 조네 박사(Dr. Michel Johner) 프랑스 엑상프로방스 장칼뱅대학 학장 A. ...
    Date2016.11.15 By개혁정론 Views10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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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논문] 고려신학대학원 70년 역사 회고와 기대

    아래의 글은 지난 10월 27일 고려신학대학원 대강당에서 있었던 신대원 개교 70주년 기념 학술대회에서 발표된 글입니다. 고려신학대학원 70년 역사 회고와 기대 허 순 길 박사 (고려신학대학원 은퇴교수. 전 원장) “터가 무너지면 의인이 무엇을 하랴!...
    Date2016.11.15 By개혁정론 Views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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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구약학 교수진의 박사학위 논문 소개와 평가

    구약학 교수진의 박사학위 논문 소개와 평가 최윤갑 교수 (고신대 신학과) 고신대학교가 개혁주의 신앙의 정통과 생활의 순결을 겸비한 하나님 나라의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지난 70년의 세월을 달려왔다. 우리는 지난 70년의 세월 속에 고신대학교와 함께 하...
    Date2016.11.11 By개혁정론 Views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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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고신신학 70년, 구약학의 회고와 전망: 주석방법론을 중심으로

    아래의 논문은 고신대학교 기독교사상연구소(소장 송영목 교수)가 개교 70주년을 맞아 발표한 논문 중 하나이다. 본보는 논문을 순차적으로 게재할 예정이다. 고신신학 70년, 구약학의 회고와 전망: 주석방법론을 중심으로 신득일 교수 (고신대 신학과 구약학...
    Date2016.11.10 By개혁정론 Views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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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개혁신학과 기독교인의 공적 역할

    아래의 글은 지난 10월 27일 고려신학대학원 대강당에서 있었던 신대원 개교 70주년 기념 학술대회에서 발표된 글입니다. 개혁신학과 기독교인의 공적 역할 (Reformed Theology and the Public Role of Christians) Roel Kuiper 박사 (캄펀 신학대학교 총장, ...
    Date2016.11.08 By개혁정론 Views36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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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논문] 세 동방박사의 대화

    <span style="font-family: Arial, Helvetica, sans-serif;">세 동방박사의 대화</span> <!-- p.HStyle0 {style-name:"바탕글"; margin-top:0.0pt; margin-bottom:0.0pt; text-align:justify; text-indent:0.0pt; line-height:160%; font-size:10.0pt; font-f...
    Date2016.08.06 By개혁정론 Views2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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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논문] 수도권 개척/미자립교회 자립방안

    지난 6월 14일(화) "수도권 고신교회의 사명과 나아갈길"이라는 주제로 열린 제5회 서울포럼에서 발표된 발제문과 논찬문을 아래와 같이 싣습니다. -편집장 주- 수도권 개척/미자립교회 자립방안 최한주 목사 (푸른숲교회) 수도권 개척교회 협의회를 통한 개...
    Date2016.06.29 By개혁정론 Views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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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논문] 지방 유학생들과 성도들의 수도권 고신교회 정착 및 딜레마에 대한 질적 연구

    지난 6월 14일(화) "수도권 고신교회의 사명과 나아갈길"이라는 주제로 열린 제5회 서울포럼에서 발표된 발제문과 논찬문을 아래와 같이 싣습니다. -편집장 주- 지방학생들과 교인들의 지방 유학생들과 성도들의 수도권 고신교회 정착 및 딜레마에 대한 질적 ...
    Date2016.06.24 By개혁정론 Views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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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논문] 고신교회가 수도권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가?

    고신교회가 수도권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가 지난 6월 14일(화) "수도권 고신교회의 사명과 나아갈길"이라는 주제로 열린 제5회 서울포럼에서 발표된 발제문과 논찬문을 아래와 같이 싣습니다. -편집장 주- <발제문> 고신교회가 수도권에서 경쟁력을 가질...
    Date2016.06.17 By개혁정론 Views16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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