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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정론에서는 11월 13일(금)에 있었던 파리 테러를 이해하기 위해서 [파리 테러, 그 이후]라는 기획기사를 다루었습니다. 이에 파리 테러의 주범으로 알려진 IS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서, 오랫동안 터키에서 선교사역을 감당하시다가 고려신학대학원 교수로 섬기고 계신 김성운 교수의 IS에 대한 논문을 싣습니다.



  IS(Islam State)에 대한 이해:

이슬람 해석학, 이상 사회론, 구원론, 종말론을 중심으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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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운 교수 (고려신학대학원, 선교학, 전 터키 선교사)

 

    들어가는 말

 

    이슬람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폭력과 테러로 세계가 충격에 잠겨있다. 알카에다(Alkaeda), 보코하람(Boko Haram) 이라는 이슬람 무력단체들이 세계를 공포에 떨게 하더니 IS(Islam State)라는 새로운 이름의 이슬람 테러 단체가 등장하여 세계를 충격과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 1999년 알카에다의 이라크 지부로 조직된 이 단체는 이라크의 무정부 상태의 혼란 속에 세력을 키워오다 2013년 발발한 시리아 내전을 계기로 알카에다와 결별하고 IS라는 이름으로 독자적인 활동을 시작하였다. 그리고 2014 6 29일 이 단체를 이끌어 왔던 아부 바크르 알 바그다디(Abu Bakr al-Baghdadi)를 칼리프, 즉 무함마드의 후계자로 추대하며 이슬람 국가의 설립을 공포하였다. IS는 국가설립 공포 이후 무력을 통해 세력을 확장하면서 무슬림, 비 무슬림을 가리지 않고 자신들에 동조하지 않는 사람들을 잔혹한 방법으로 처형하고 그것들을 영상으로 방영하는 끔찍한 행위를 하고 있다. 올 한해만 이들에 의해 죽임을 당한 무슬림이 10만 여명에 달한다는 보고가 있다. 또한 이들은 점령한 지역의 비 무슬림 여자들과 아이들을 노예로 삼고 그들을 거래하기 위한 노예시장까지 개설했다.

    이런 행동을 저지하려는 주변 이슬람 국가들과 서구의 개입에도 불구하고 IS 2015 5월 이라크 시리아 국경을 장악하고 고대 유적도시 팔미라를 포함한 시리아 영토의 절반을 점령하고 있다. IS가 이렇게 세력을 확장하고 전 세계를 대상으로 테러를 자행할 수 있었던 것은 상당수의 이라크, 시리아 무슬림뿐만 아니라 터키, 북아프리카, 유럽에서 태어난 무슬림들과 아시아, 유럽에서 이슬람으로 개종한 사람들 가운데에서도 IS에 가세하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2]   

    IS라는 현상은 다양하게 평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일부에서는 IS가 생겨난 것은 서구의 패권주의가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그리고 시리아를 침공하여 무슬림들에게 상처를 입힌 결과라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은 이슬람 내부에 존재하는 소위 온건한 무슬림들과 문제가 확대서구의 정치 지도자들에 의해서 반복된다. 이들은 벌써부터 IS와 선을 긋고 IS가 이슬람과 상관없는 테러집단이라고 목소리를 높여왔다.[3] 이런 주장은 무슬림들에 의한 테러가 있을 때마다 반복되어 왔다. 9. 11 테러이후 이슬람 신학자 세예드 호세인 나스르(Seyyed Hossein Nasr)이슬람의 심장(The Heart of Islam)이라는 책에서 이슬람의 종교적 목적은 사람들이 평화롭게 살다가 죽을 수 있도록 평화를 확립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이슬람과 9.11 사이에 분명한 한계를 그었다.[4] 한국 이슬람 성원의 이주화 이맘역시 IS와 관련해 SBS와 가진 인터뷰에서 이슬람은 평화의 종교이며 프랑스와 호주 그리고 IS 지역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폭력적인 활동은 이슬람의 근본적인 가르침과는 상관이 없다고 주장했다.[5]

   물론 알카에다와 IS가 발생하게 된 중요한 원인 가운데 하나가 서구의 패권주의라는데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구 국가들이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를 침공하지 않았다면 최소한 지난 몇 주간 앙카라, 베이루트 그리고 파리에서 발생했던 형태의 테러는 없었을 것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슬람 테러단체의 잔혹성은 부각시키면서 서구의 침공으로 매일 죽어가는 무고한 중동 무슬림들에 대해서 무관심하거나 침묵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나 이슬람은 평화의 종교인데 서구가 조장해서 이슬람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폭력이 생겨났다는 이러한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여서도 안 된다. 그러면 이슬람 테러가 종교적, 문화적 갈등의 문제로 확대되어 자신들의 정권을 공고히 하려는 세력들에 의해 쉽게 정치적으로 이용된다. 그리고 이슬람 테러가 정당화 되고 더욱 확대되는 결과를 만들어 낼 뿐이다. 이슬람은 평화의 종교라는 외침이 더 커질수록 이슬람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테러가 더욱 잔인해지고 확대되어 가는 것도 이 때문이다.      

    IS를 바라보는 또 다른 시각은 이슬람을 테러와 동일시하는 것이다. IS가 저지르는 테러는 이슬람을 폭력적 이데올로기로, 무슬림들을 잠재적 테러리스트로 여기는 시각을 더욱 확고하게 만들고 있다. 최근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이러한 생각이 빠르게 확산되어 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이 무분별하게 받아들여지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다. 이슬람에 대한 이러한 단순한 이해는 종교 간의 갈등을 부추기고 무슬림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 자체에 대한 회의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두 가지 주장은 거부되어야 한다. 먼저 IS가 이슬람과 관계없이 외부적 환경에 대한 반응으로 발생한 문제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향해 IS도 이슬람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말해야한다. 이슬람은 평화의 종교’”라는 슬로건만 반복한다고 IS와 같은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 식으로 IS의 문제를 종교분쟁이나 문화충돌로 몰아가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왜곡하는 것이고 무슬림들이 져야 할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다.

    또한 이슬람이 IS이고 모든 무슬림이 IS대원이라는 식의 주장도 사실을 왜곡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IS의 책임을 서구로 돌리려는 시도만큼이나 종교적 마찰이나 충돌을 유발할 수 있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IS가 이슬람에서 나왔지만 이슬람 그 자체는 아니다. IS는 이슬람을 따르는 사람들이 해왔던 다양한 이슬람 해석의 한 단면을 보여줄 뿐이다. 대부분의 무슬림들은 그런 방식의 이슬람 해석에 동의하지 않는다. 모든 무슬림들이 동일하게 믿으며, 모든 무슬림들이 근본주의자인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IS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여기에 대해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IS의 출현과 여기에 동조하는 무슬림들이 행하는 실천방식이 지난 몇 년 사이에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반 기독교적이고, 적그리스도적인 이슬람이라는 종교 자체가 본질적으로 가지고 있는 성격에서 발생한 현상이다. 그리고 이슬람이라는 종교가 생겨난 이후 지금까지 계속되어온 일련의 이슬람의 해석과 실천에 뿌리를 두고 있는 지극히 이슬람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IS를 볼 때 주목해야 할 점은 잔혹성이나 테러보다 이슬람이라는 종교가 가지고 있는 기독교 진리에 대한 왜곡된 성격이다. 왜냐하면 이슬람이 가지고 있는 그러한 성격에서 IS라는 현상이 출현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다루게 될, IS의 신학과 신앙의 골격을 구성하고 있는 해석학, 이상 사회론, 구원론 그리고 종말론을 살펴보면 그러한 사실을 분명하게 볼 수 있을 것이다.


   

    1. 이슬람 해석학

 

    IS를 이해하려면 먼저 이러한 현상을 만들어 낸 살라피즘(Salafism)이라는 이슬람 내부의 신학적, 해석학적 전통을 살펴보아야한다. 살라피즘은 선조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살라피(Salafi)라는 아랍어에서 나온 것으로, 이슬람의 가르침에 따라 신앙을 실천하고 이슬람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무함마드와 정통 칼리프 시대의 언행과 삶의 양식을 가감 없이 문자 그대로 실천해야 한다는 신학적이고 해석학적인 주장이다.[6]

    살라피즘은 쿠란과 순나(무함마드의 언행을 포함한 기록된 초기 전통)에 기록된 것 이외의 모든 교리와 해석을 비록 이슬람에서 합법적이고 정통적인 권위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인정되는 한발리(Hanbalis)를 비롯한 하나피(Hanafis), 말리키(Malikis), 샤피(Shafiis) 학파의 것이라 할지라도 인간이 만든 것(비드아: bid`a)으로 규정하고 배척한다. 왜냐하면 인간의 이성과 추론이 가미된 그러한 해석은 무함마드의 언행과 쿠란의 의미를 변질시킨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살라피즘은 이슬람의 초창기로 돌아가자는 하나의 복귀 운동이지만, 이슬람이 축적해온 전통적 해석을 따르는 것(taqlid)을 거부하고 개인적인 해석(ijtihad)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현대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살라피즘이 이슬람 초기부터 존재했던 것은 아니다. 살라피즘은 이슬람이 압바스 왕조 시대의 정점을 지나 내리막길로 접어들기 시작하던 13세기 이슬람의 회복과 재건을 추구하는 하나의 신학적 운동으로 생겨났다. 이슬람 학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살라피즘의 기원이 이븐 타이미야(Ibn Taymiyyah 1263~1328)와 그가 제시한 이슬람 해석 방법에 있다는데 동의한다.[7] 그리고 실제로 정치화한 와하비즘과 글로벌 살라피즘(Global Salafism)을 추구하는 단체들로부터 극단적인 IS에 이르기까지 현대의 살라피주의자들은 살라피즘에는 단 하나의 올바른 교리만 존재하는데 그것은 이븐 타이미아의 교리라고 주장한다.[8] 그러므로 IS의 이슬람 해석을 이해하려면 먼저 이븐 타이미야라는 인물과 그의 신학을 살펴보아야 한다.[9]

    이븐 타이미야는 1263년 현재 터키의 동남부에 위치한 하란에서 태어났다. 출생한지 얼마 후 그의 가족은 바그다드를 점령하고 압바스 왕조를 몰락시킨 몽골의 침입을 피해 술탄 맘룩(Mamluk)이 통치하던 시리아 다마스쿠스로 이주하였고 타이미야는 그곳에서 성장했다. 그는 시리아와 이집트를 통치하던 맘룩(Mamluk)왕조 치하에서 한발리 학파의 법관으로 종교적 경력을 시작하면서 동시에 시리아를 침공한 몽골과 항전하는데 전력을 기울였다. 이처럼 이슬람 신학자로서의 그의 경력은 몽골이 이슬람 역사의 황금기를 이루었던 압바스 왕조를 붕괴하고 이슬람 세계를 위협하던 시기와 때를 같이한다.

    이슬람이 위기에 처한 이 시기에 이후 이슬람 역사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게 될 서로 다른 성격을 가진 두 개의 운동이 생겨나는데 하나는 살라피즘이고 또 다른 하나는 메블라나(Mevlana)와 같은 수피종파들의 출현이었다.[10] 이 두 개의 운동은 둘 다 이슬람이 처한 위기를 극복하려는 시도에서 출발하였지만 추구했던 방향과 방법은 전혀 달랐다. 메블라나와 같은 수피주의자들은 암울한 현실에서 탈피하여 인간의 내면이나 초월의 세계로의 도피하는 방법을 택했지만, 타이미야는 이슬람이 축적해온 역사적 경험을 탈피하여 시계바늘을 다시금 정통 칼리프들의 시대로 되돌리는 방법을 택했다.

    타이미야가 그런 방법을 택한 것은 이슬람이 직면한 위기의 원인이 세월이 지나면서 축척되어 하나의 신학적 교의로 뿌리내린 잘못된 이슬람 해석 방법에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가 보기에 이슬람의 위기를 초래한 원인은 외부로부터의 이교도들의 침입이 아니라 시아파 이슬람과 정통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슬람 학파들과 그리고 수피즘의 이름으로 관행화된 잘못된 이슬람의 해석과 실천에 있었다. 그래서 타이미야는 쿠란과 순나의 가르침을 순수하게 기록된 대로 실천하지 않고 외부의 다른 종교나 철학에서 유입된 사상과 방법을 수용하여 해석하고 실천하는 것은 이슬람의 본질인 알라의 신성의 단일성(al-tawhid al-uluhiyya)과 알라의 주권의 단일성(al-tawhid al-rububiya)을 약화시키고 변질시키는 배교적인 행동이라고 비난하였다.[11] 타이미야는 서구의 철학과 사변에 영향을 받은 이슬람 신학자들이 알라의 단일성(tawhid)을 약화시키고 실천과 윤리의 종교인 이슬람을 사변화한 것이 이슬람의 위기를 초래한 원인이라고 주장하였다. 문제가 거기에 있다면 이교도들의 영향과 통치에서 벗어나 이슬람의 영광을 회복하는 유일한 길은 이슬람의 황금기였던 정통 칼리프 시대의 이슬람, 즉 살라피들이 순나를 문자적으로 적용하던 방법으로 되돌아가는 것이었다. 

    타이미야는 그러한 자신의 견해를 따라 몽골의 통치아래서 신음하며 이슬람의 옛 영광을 그리워하던 무슬림들에게 살라피 이후에 첨가되거나 해석된 모든 것(bid`a)을 버리고, 순나의 가르침을 문자적으로 따르기를 거부하는 무슬림을 배교자로 선고하고(takfir)[12] 이슬람의 법에 따라 처형해야 한다고 설교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자들과 함께 행동에 나섰다. 타이미야는 몽골과 몽골의 통치를 지지하는 세력뿐만 아니라 쿠란과 순나를 문자적으로 따르지 않는 시아파와 수피종단 더 나아가 이슬람 정통 법학파에 대해 강한 비난과 공격을 가했다. 몽골의 통치자였던 가잔(Ghazan) 1295년 이슬람으로 개종하고 이제 자신이 순니 이슬람의 합법적 수호자가 되었기 때문에 자신을 향한 항전을 중단하라고 요구하자, 타이미야는 그것을 단호히 거부하고 세 차례에 걸쳐 몽골의 통치자를 무슬림으로 인정하지 않는 파트와(fatwa:종교적 판결)를 선포하였다. 타이미야는 세 번의 파트와를 통해 몽골인들이 스스로를 무슬림이라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샤리아를 무시하고 자신들의 전통적인 법을 따름으로 이슬람을 변질시킨 악한 자들이므로 그들뿐만 아니라 몽골을 지원하는 무슬림들도 배교자로 처단되어야 한다고 선고하였다.[13]

    타이미야는 수피즘과 이슬람의 민속적 관행에 대해서도 강한 공격을 퍼부었다. 자신도 한 때 수피즘 종파에 가담한 적이 있었지만, 그는 무슬림들에게 비이슬람적인 요소를 가르치고 비도덕적 행동을 하게한다는 이유로 이븐 아라비(Ibn Arabi)의 수피즘[14]과 수피의식을 강하게 공격했다. 그는 알 무자히드 알 콰탄(al-Mujahid al-Qattan)이라는 긴 옷을 입고 다니는 수피를 불러 대중 앞에서 그의 옷을 갈기갈기 찢기고, 길게 늘인 수염과 손톱을 자르고 하디스에서 금하는 그러한 행동을 한 것을 회개하도록 만들었다. 또한 이슬람에 기독교와 유대교의 요소를 수용하고 혼합했다는 이유로 알 발라시(al-Ballasi)라는 수피를 호출하여 잘못을 시인하도록 요구했다.[15] 하지만 타이미야가 직접적으로 기독교를 비판하는 글을 남기지는 않았다.   

    타이미야는 무엇보다도 민속 이슬람의 관행들을 용납하지 않았다. 당시에 대부분의 무슬림들은 복을 빌거나 소원을 성취하기 위해 무슬림 성인들의 무덤을 참배하였다. 타이미야는 그러한 행동을 용인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러한 행위가 무슬림들을 우상숭배의 위험에 빠뜨리게 하고 쿠란에서 명령하고 있는 메카순례를 방해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타이미야는 1310년 기록한 Ziyarat al-kubur라는 저술을 통해 선지자들이나 성인들의 무덤을 방문하여 기도하는 것은 이슬람에서는 정당화되거나 허용될 수 없는 이교도적인 행위이며 무함마드의 무덤을 방문하는 것조차도 이교도의 영향을 받고 첨가된 것(bid`a)이라고 비난하였다.[16]   

    신의 단일성(tawhid)에 대한 신학과 살리피들의 신앙으로 복귀하자는 그의 호소는 몽골의 압제 아래서 실의에 잠겨있던 무슬림들의 호응을 얻어 많은 추종자들을 거느린 하나의 성전(Jihad)운동으로 발전하였다. 하지만 정통 법학파 이슬람 지도자들과 맘룩왕조의 술탄에게는 타이미야의 신학과 주장이 이슬람의 전통과 왕국의 통치를 위협하는 극단적이고 위험한 것으로 여겨졌다. 그는 결국 맘룩왕조의 술탄에 의해 7년 동안 이집트의 감방에 수감 되었다가 이후 다마스쿠스에서 다시 투옥되어 1328년 그곳에서 죽음을 맞이하였다. 

    타이미야의 죽음으로 살라피 운동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의 신학은 한 동안 이슬람 역사의 지평에서 사라진 것처럼 보였지만 그와 그의 제자였던 이븐 콰임 알 자우지야(Ibn Qayyim al Jawziyya)의 저작들은 지면 아래에서 생명을 유지했다. 18세기 이후 그의 신학과 사상은 다시 부활하여 지난 3세기 동안 살라피즘이라는 이름을 가진 다양하면서 공통적인 요소를 지니고 있는 근본주의 이슬람 운동에 영감을 주고 있다. 

    그 가운데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져 있고, 지금까지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살리피 운동으로는 1745년 압드 알 와합(Abd al-Wahhab)이 주도하여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발생한 와하비즘(Wahsbism)이 있다. 알 와합은 타이미야의 가르침에 따라 전통적인 순니 법학파의 해석의 권위를 거부하고 직접 꾸란과 순나로 돌아가라고 호소하였다. 그리고 타이미야의 알라의 단일성(tawhid) 교리를 재천명하는 알라의 단일성에 대한 책(Kitab al-tawhid)을 저술했으며[17], 무지에 빠져 수피사당이나 성자들의 무덤을 숭배하는 당시의 무슬림들을 이교도(kafir)로 정죄했다. 그를 따르는 화하비들은 쿠란과 순나에 기록된 하루 5번 이외의 모든 기도를 금했고, 성자들의 묘지와 무함마드의 출생지의 사당까지도 파괴했다. 이후 잘 알려진 인물로는 이란 출신의 자딘 알딘 알아프가니(Jadin al-Din al-Afgani)가 있다. 그는 이슬람 세계가 유럽의 식민지로 전락되어 가자 이슬람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서는 과거의 전통을 무의식적으로 따르는 것을 벗어나 쿠란과 순나로 되돌아 가야한다고 주장하면서 살라피 부활운동을 일으켰다.

    최근의 살라피 운동은 글로벌 살라피즘(global Salafism)[18]이라고 불리는데, 이 운동은 사우디아라비아 출신인 압드 알아지즈 븐 바즈(Abd al-Aziz b.Baz)와 시리아 살라피들로부터 교육 받은 알바니아 출신 나시르 알딘 알알바니(Nasir al-Din al-Albani)에 의해 주도되었다. 이들의 사상은 1980년 이후 예멘에서 살라피 운동을 이끈 무끄빌 븐 하디 알와다이(Muqbil b. Hadi al-Wada`i)와 이집트의 살라피 지하디스트 사이드 쿠틉(Sayyid Qutb), 오사마 빈 라덴(Osama bin Laden) 그리고 보코하람과 IS에 영향을 미쳤다. 현대 글로블 살라피들은 타이미야의 알라의 신성의 단일성주권의 단일성을 교리의 핵심으로 삼고 전통적인 법학파들의 해석이나 신에 대한 철학적 사색과 같은 어떤 형태의 새로운 요소(bid`a)도 거부하며, 무슬림 개개인이 쿠란과 하디스의 문자적인 적용을 통하여 이슬람이 요구하는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러한 이슬람의 실천을 따르기를 거부하는 무슬림들에 대해서는 무력의 사용도 주저하지 않는다. 이처럼 사이드 쿠틉, 엘 카에다, 그리고 IS와 같은 현대의 이슬람 근본주의 지하드 운동은 타이미야의 신학과 해석학에 뿌리를 두고 있다.[19]          

    그러나 현대의 모든 살라피 운동이 IS와 동일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살라피들은 신학적 교리의 문제에서는 의견이 일치하지만 정치적 성향이나 무력의 사용에 있어서는 세 가지 그룹으로 나누어진다.[20] 첫 번째 그룹은 순수주의자들이다. 이들은 교리의 순수성과 살라피 방식에 따른 엄격한 실천을 추구한다. 이들은 민주적인 정치를 인정하지 않지만 기존 통치 구조를 전복하는 것도 반대한다. 무슬림들에게는 나쁜 통치가 무정부 상태보다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은 정권을 전복하기 위한 무력투쟁을 거부한다. 정치를 위해 교리의 순수성을 희생한다는 이유로 무슬림 형제단과 사이드 쿠틉의 교리적 주장과 방법을 반대한 나시르 알딘 알알바니(Nasir al-Din al-Albani)가 이 그룹을 대표한다. 두 번째 그룹은 폭력의 사용은 거부하면서 정치적인 활동에는 참여하는 살리피들로 이집트의 무슬림 형제단과 그 뿌리를 같이한다. 이들은 2011아랍의 봄으로 이슬람 형제단이 집권하자 정권에 참여했지만 군부의 쿠데타로 실정을 했다. 마지막 그룹으로는 지하드 살라피(Jihadi-Salafis)가 있다.[21] 사이드 쿠틉, 엘 카에다 그리고 IS가 이 그룹에 속한다. 이들은 세속적인 민주적인 정치 거부하고 칼리프제도의 복구와 샤리아의 완전한 적용을 위해서는 폭력적 수단을 동원 하는 것을 지하드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한다.

    살라피즘은 이슬람의 원전으로 돌아가서 이슬람의 황금시대를 재현하려는 운동이라는 점에서 볼 때 과거를 지향하지만, 전통 칼리프 시대 이후 등장한 4대 법학파들의 해석과 전통을 거부한다는 점에서는 현대주의와 맥락을 같이 한다. 현대주의는 종교문제에 있어 전통적인 해석의 권위를 거부하고 자신의 판단과 경험을 전면에 내세우기 때문이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이슬람의 내부에서 살라피들이 빠른 속도로 증가한 것은 전통을 거부하는 이러한 현대주의 영향의 결과로 보인다. 현대적 교육을 받고 현대사조에 영향을 받은 무슬림들에게 전통의 권위나 전통적인 해석이 더 이상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는 것이다. 이와 같이 IS는 살라피즘이라는, 과거를 지향하지만 지극히 현대적인 이슬람 해석을 추구한다.


 

    2. 이슬람 이상 사회론

 

    IS가 공개적으로 저지르는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행동에도 불구하고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많은 무슬림들이 자발적으로 IS에 가담하고 있다. 이들 무슬림들이 많은 장애를 뚫고 IS에 가담하는 것은 이들이 단순히 테러나 전쟁에 광분한 사람들이기 때문이 아니다. 그런 시각을 가지고 IS에 가담하는 무슬림들을 평가하는 것은 IS라는 현상을 지극히 단순화 시키는 것이다. IS가 무슬림들을 끌어 들이는 것은 무슬림들이 가지고 있는 교리적이고 실천적인 신앙의 열망을 충족시켜주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IS라는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발적으로 IS에 가담하는 무슬림들의 신앙 세계를 들여다 보아야한다.[22] 왜냐하면 그러한 내면의 신앙과 열망은 IS에 가담하는 자들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무슬림들이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이며 따라서 IS문제는 단지 이슬람에서 일시적으로 발생한 예외의 경우가 아니라 이슬람이라는 종교가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성격의 한 부분임을 드러내어 주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IS가 일차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이슬람(자신들이 규정한)에 첨가 된 다른 모든 요소들을 제거하고 선조(Salafi)들이 어둠(Jahiliyya)을 몰아내고 세웠던 샤리아에 의해 통치되는 이상 사회로 복귀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칼리프의 부활이라는 전제조건이 충족되어야한다. 칼리프 없이는 이슬람의 통치가 실현되지 않는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2013 IS의 출범을 알리는 자리에서 IS의 대변인 아드나니(Adnani)는 자신들이 목표가 국경이 없는 칼리프 제도에 따른 이슬람 국가를 건설하는 것임을 천명하였고, 2014 6월 바그다디는 자신을 무함마드의 합법적인 계승자인 칼리프로 공포한 것이다.

    이슬람의 전통에 따르면 칼리프가 선출되었다는 것은 무슬림들이 칼리프의 통치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IS에 가담하는 무슬림들은 새로운 칼리프가 추대되고 그가 통치하는 이슬람 국가가 세워졌기 때문에 칼리프의 통치를 받아들이고 그에게 순종하는 것을 자신의 의무로 받아들인다. IS에 합류하려다가 실패하고 본국으로 송환된 호주 무슬림 제란토니오(Cerantonio)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이 그러한 사실을 잘 보여준다. IS에 합류하려고 한 이유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이 호주 무슬림은 칼리프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그의 통치를 받지 않는 것은 알라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통치를 받지 않는 것과 동일한 것이라고 대답한다.[23] 이처럼 IS에 합류하는 자들은 무슬림들은 국가와 국적을 가지지 않으며 샤리아에 의해 통치되는 이슬람의 영토에서 무슬림 공동체의(umma) 일원으로 살아야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칼리프의 통치에 의한 이슬람 국가가 세워지기 전까지는 세속 국가의 통치 아래 어쩔 수 없이 살아왔지만 이제 이슬람 국가가 세워졌기 때문에 칼리프의 통치를 받기 위해 IS에 합류하는 것이 당연한 의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터키 국경을 통과하여 IS가 통치하는 시리아에 도착한 프랑스, 영국, 호주 국가 출신의 무슬림들이 제일 먼저 자신의 여권을 불태우는 행동은 바로 그러한 신앙을 공개적으로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24]  

    제란토니오와 같은 많은 무슬림들은 샤리아에 따라 통치되는 이상적인 이슬람 사회에 살고자하는 열망을 가지고 IS에 가담한다. IS가 샤리아에 따라 통치한다는 것은 배교자로 낙인찍은 사람들을 참수하고 비 무슬림들을 살해하고 여자와 아이들을 노예시장에 내다 파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슬람의 샤리아는 형벌을 주거나 사회를 통제하기 위해서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샤리아는 교육과 생계 그리고 의료와 같은 사회의 제반 분야에 적용된다. 외부에서 보는 IS의 모습은 테러와 전쟁과 폭력의 모습이지만, 내부로 들어가면 외부사람들이 잘 보지 못하는 IS의 또 다른 모습이 있다. IS는 샤리아를 따라 무슬림들에게 무상으로 교육과 의료혜택을 보장하고 기본적인 생계비까지 제공한다. 더 부유하게 살고자 하는 사람들은 노력을 통해 그것을 얻을 수 있다. 샤리아에 의해 통치되는 이러한 사회는 무한 경쟁과 불평등이 만연하는 자본주의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그러한 체제에 신물을 느끼며 살아가는 무슬림들에게 매력적으로 보일 것이다. 그래서 IS를 선전하는 인터넷 영상들은 그런 점들을 부각시킨다.

    IS에 가담하려다 제지를 당하고 돌아온 서구 사회의 무슬림들을 대상으로 한 인터뷰가 그러한 점들을 보여준다. IS에 합류하려 시도하다 여권을 압수당하는 바람에 뜻을 이루지 못한 48세의 츄다리(Choudary) 32세의 압둘 무히드(Abdul Muhid)라는 영국 무슬림은 IS에 가입하려는 이유를 묻는 질문에 IS가 교육, 의료, 생계와 같은 사회적, 경제적 정의를 실천하는 진정한 이슬람 사회이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25] IS가 이라크의 유전지대를 점령하고 고대 문화재를 암거래거나 인질로 잡은 사람들의 보석금으로 천문학적인 금액을 요구하는 것도 이러한 통치자금을 확보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IS가 그러한 방식으로 자금을 조달하여 무슬림들의 기대를 계속 충족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비록 일시적이고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IS가 초기 이슬람 사회로의 복귀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이 외세의 간섭과 전쟁으로 지친 중동의 무슬림들과 서구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무슬림들을 끌어들이고 있는 것이다. 

    IS가 추구하는 이상 사회로의 복귀는 이슬람 내부의 혁신으로만 이루어 질 수 없다. 그것은 이슬람 공동체가 외부적 환경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상적인 이슬람 공동체를 추구하는 무슬림들은 세계를 이슬람화 시키지 않고는 이상적인 이슬람 사회라는 궁극적인 목표에 이를 수 없다고 주장한다.[26] 그래서 이슬람 공동체에 대한 이상은 세계가 이슬람을 받아들이도록 지하드를 수행하는 것으로 직결된다. IS가 세계의 이슬람화를 위해 지하드를 사용하는 것은 살라피들이 어둠(Jahiliyya)에 있던 사람들에게 이슬람을 전파하기 사용했던 방법이 바로 지하드였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해 쿠란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불신자들에게 말하라. 만일 그들이 불신을 단념한다면 그들의 과거가 용서되리라. 그러나 그들이 불신을 지속한다면 이전과 같은 벌이 있으리라. 박해가 없어 질 때까지 그리고 종교가 온전히 알라만의 것이 될 때까지 싸우라(8:39-40).

 

   쿠란이 말하는 것처럼 이슬람에서 지하드는 방어적이거나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알라의 권위가 전 세계에 확립되고 이슬람의 법이 전 세계에 적용될 때까지 계속되어야하는 명령이다. 그래서 추다리(Choudary)는 지금까지는 칼리프가 부재했기 때문에 자신의 신앙을 지키기 위한 내부적인 지하드를 수행해 왔지만 이제 칼리프 제도가 회복되었으므로 칼리프의 통치의 확산을 위해 싸워야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27] 그의 동료인 아부 바라(Abu Baraa)는 여기에서 더 나아가 칼리프가 통치하는 IS가 자신의 영토적 한계를 설정하고 국경을 인정하는 것이나 지하드를 중단하고 휴전을 하는 것은 무함마드의 가르침에 의하면 배교 행위로 규정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그는 하디스에 따라 IS가 일시적으로 휴전을 하고 지하드를 잠시 중단 할 수 있지만 그 기간이 10년을 넘어서는 안 되며, 휴전 중이라고 하더라도 매년 한 두 번은 지하드에 나서야 한다고 덧붙이고 있다.[28] 


 

    3. 이슬람 구원론




    IS에 가담하는 무슬림들이 가지고 있는 또 다른 동기는 순교와 구원에 대한 열망이다. IS 대원들과 인터뷰 기사를 보면 이들은 마치 이슬람의 전사로 싸우다 죽는 것을 목표로 삼은 사람들처럼 보인다. 이미 언급한 것처럼 IS에 가담한 무슬림들은 쿠란의 가르침에 따라 이슬람 사회의 내부와 외부에 존재하는 반 이슬람적인 그룹들을 무력으로 저지하기 위해 지하드에 참여하는 것이 알라에게 순종하는 길이라고 믿고 있다. 앞에서 인용된 쿠란 8:39-40 외에도 쿠란과 하디스의 여러 구절들은 지하드를 명령하고 있다. 하디스에 익숙한 무슬림들은 무함마드가 알라께 가장 사랑받는 행동은 알라를 위해 지하드에 참여하는 것이다고 말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29] 이처럼 이슬람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지하드는 알라와 무함마드의 명령에 따라 무슬림들이 수행해야 할 의무이다.

    무슬림들에게 지하드는 의무이지만, 동시에 지하드에 참여하는 자들과 지하드에서 순교하는 자들에게는 낙원의 풍성한 행복이 보장된다. 쿠란은 믿음을 갖고 이주하여 알라의 길에서 그들의 재산과 생명으로 성전하는(jihad) 자들은 알라로부터 가장 큰 보상을 받으니 그들이 승리한 자들이라고 약속하고 있다(9:20). 하디스는 지하드를 하다가 순교를 하면 자신이 어떻게 될 것인지를 질문한 한 남자에게 무함마드가 낙원에 갈 것이다고 대답했으며,[30] 지하드를 수행하는 사람에게 알라께서는 그에게 낙원에 들어오도록 보장 한다고 말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31] 무슬림들은 이슬람의 전승에 따라 지하드에서 죽는 자들은 순교자로 인정되어 낙원에서 72명의 처녀들의 시중을 상으로 받는다고 믿고 있다.

    이슬람은 기독교와는 달리 사람은 죄인이 아니라 선한 존재로 태어나며, 따라서 사람은 자신의 노력과 의를 통해 구원을 이룰 수 있다고 가르친다. 그래서 이슬람에서는 인간의 구원에 있어서 신적인 은혜는 거부된다. 죄는 아담의 것이라 할지라도 단지 하나의 잘못된 행위라고 보기 때문에 예수님의 대속적 죽음과 부활은 불필요하고 더 나아가 그것을 주장하거나 믿는 것은 하나님의 공의를 무시하는 행위로 정죄된다.[32] 이슬람은 인간에게 잘못된 행위가 있다면 그것을 선행으로 상쇄하고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가르친다. 구원과 심판, 지옥의 형벌과 천국의 상급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쿠란의 구절들은 인간의 구원의 여부는 심판 날에 있게 될 저울질로 결정될 것이라고 말한다.

 

저울눈이 무거운 자, 이들은 번영하리라, 저울눈이 가벼운 자, 이들은 스스로 영혼을 황폐하게 하였으니 이들이 살 곳은 지옥 이니라(23:102~103).

 

    쿠란에 의하면 인간의 영원한 운명을 가늠할 저울의 기울기를 결정하는 것은 선행이다. 이슬람에서 믿음이 중요하다. 그러나 인간의 구원을 결정하는 것은 믿음이 아니라 선행이다. 그리고 선행은 사람의 행위에 달려있다. 그래서 저명한 이슬람 신학자인 이스마일 알 파루키(Ismail al-Faruqi)이슬람에서 인간은 구원의 대상이 아니라 구원의 주체이다. 라고 말한다.[33] 만일 사람이 구원의 주체가 되어 선행을 통해서 구원을 얻어야한다면 구원의 소망은 있지만 구원이 보장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그 어떤 무슬림도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 없게 된다. 알 파루키는 그 사실을 정의의 저울눈은 정해져있지 않고 그 어떠한 무슬림도 마치 호주머니 속에라도 있는 것처럼 천국을 소유하고 있다고 말할 수 없다. 모든 사람들이 노력하고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욱 노력한다. 그러므로 종교적으로 의롭게 되는 것은 무슬림들의 영원한 소망이다.라고 설명한다.[34] 이슬람에서는 그 누구도 심판대 앞에 설 때까지는 구원을 확신할 수 없다.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를 믿음으로 받아들임으로서가 아니라 자신의 행위로 구원을 얻어야 하고 그 누구도 마지막까지 자신의 구원에 대해 확신 할 수 없다면 남는 것은 불안과 두려움밖에 없다. 그래서 신실한 무슬림일수록 심판에 대한 두려움과 그들의 선행이 낙원에 이르는데 부족할지 모른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히기 쉽다. 용서받지 못할 심각한 죄를 저질렀다고 생각하거나 자신의 공로가 낙원에 들어가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무슬림들은 절망감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그런 상태에 있는 무슬림들에게 지옥의 고통을 면하고 낙원에 들어가 알라로부터 최고의 보상을 보장받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지하드에 참여해서 순교자가 되는 것이다.

    무슬림들의 대부분은 이슬람에서 명령하고 있는 다섯 가지 의무를 수행함으로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보충할 다른 방법들도 있다. 그러나 어떤 무슬림들은 더 급진적이고 극단적인 방법으로 신의 호의를 얻고 낙원에 자신의 자리를 확보하려고 한다. IS는 그러한 사람들에게 자신들이 행하고 있는 지하드에 참여하여 순교의 특권을 가지라고 선전한다. 그런 선전은 자신의 구원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거나 낙원에서 신이 준비해둔 보상을 기대하는 무슬림들에게 상당한 호소력을 가진다. 그렇지 않다면 많은 젊은 무슬림들이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 시리아를 향하여 발걸음을 옮기지 않았을 것이다. IS에 가담했다가 체포되어 재판을 받은 터키계 한 독일 청년이 무슬림들이 가지고 있는 그러한 신앙의 전형을 보여준다. IS에 가담한 이유를 묻는 판사에게 그 독일 청년은 순교해서 72명의 처녀를 상으로 받기 위해서라고 대답했다.[35] 지하드라는 이름으로 테러와 자폭까지 불사하는 IS의 사례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없이 신을 만족하게 하여 자신의 구원을 이루려는 무슬림들이 도달할 수 있는 종착점이 어디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4. 이슬람 종말론

 

    무슬림들이 IS에 가담하는 또 다른 중요한 동기 가운데 하나는 종말에 대한 신앙이다.[36] 무슬림들의 순교에 대한 열망은 종말론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외부에서 IS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쉽게 간파하지 못하지만 IS살라피즘을 따르는 무슬림들이 가지고 있는 종말에 대한 신앙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37] 여기서 살라피 무슬림들이라고 지칭한 이유는 IS에 가담하는 무슬림들이 가지고 있는 종말론은 쿠란보다는 광범위한 하디스의 전통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에서 언급한 호주 무슬림 제란토니오는 자신이 IS에 합류하려고 했던 중요한 이유가 IS의 활동과 지상의 종말이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38]  

    이슬람은 메시아적인 성격을 지닌 하나의 종말론적인 운동으로 시작되었기 때문에 이슬람 초기부터 무슬림들은 종말과 종말의 시기에 대해 큰 관심을 가지고 이었다. 하디스에 기록된 종말과 관련된 수많은 전승들은 초기 무슬림들이 가지고 있었던 종말에 대한 관심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보여준다. 이슬람의 종말론은 유대교와 기독교의 종말론으로부터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기독교 종말론과 많은 유사성을 가진다. 그런 이유로 무슬림 학자들은 종말의 때와 관련된 하디스에 대한 해석을 할 때 종종 다니엘서7-12장과 계시록 그리고 마태복음 24장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종말의 징조들이 인용하기도 한다.   

    무슬림들이 가지고 있는 종말에 대한 지대한 관심과는 달리 쿠란은 종말에 대한 언급을 거의하지 않는다. 종말은 사람들이 방심하고 있을 때에 갑자가 임하게 될 것이며(45:33), 그 때는 알라만 알고 있다(7:187, 31:34, 43:85)는 정도가 쿠란에서 언급하고 있는 종말에 대한 내용의 전부이다. 그래서 이슬람의 토대를 쿠란에만 두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소위 쿠란주의자들은 하디스에 기록된 종말에 대한 가르침을 기독교나 다른 종교에서 영향을 받은 이교적인 것으로 일축한다.[39]

    그러나 쿠란주의자들의 그러한 주장에도 불구하고 하디스에 근거를 둔 종말론은 이슬람 신학과 무슬림들의 신앙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다른 종교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이슬람의 종말론 역시 무슬림들이 어려운 상황에 처할 때 더욱 관심을 끌고 영향력을 발휘한다. 특히 지난 수십 년 동안 무슬림들 가운데 종말에 대한 관심은 더욱 커졌는데, 그 이유는 이스라엘의 독립과 3차에 걸쳐 일어난 중동전에서의 패배, 미국의 아프간, 이라크 침공과 새로운 천년의 시작 등 임박한 종말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키는 여러 상황이 조성되었기 때문이다.[40] IS라는 현상은 이러한 임박한 종말에 대한 관심과 기대가 집결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들 가운데 IS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은 이슬람력으로 1500년인 서기 2076년 종말이 임하게 된다는 주장이다. 2076년 종말설은 1591년 잘랄 알 딘 알 수유티(Jalal al-Din al-Suyuti)라는 신학자가 쓴 Kashf an mujawazat hadhihi al-umma al-alf라는 글에서 처음 등장하였는 데 1996년 이집트의 저명한 신학자 아민 무함마드 자말 알딘(Amin Muhammad Jamal al-Din)이 이것을 다시 들고 나왔다. 자말 알딘은 수유티의 주장과 종말에 관련된 하디스의 구절들을 기초로 2076년 종말이 임할 것이라는 6가지 근거를 제시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 칼리프의 죽음이 종말이 시작될 징조라는 주장이 포함되어있다.[41] 자말 알딘이 제시한 근거는 바그다디가 8번째 칼리프이며 12 번째 칼리프와 함께 종말이 온다고 믿는 IS의 종말론과 많은 부분 일치한다.[42]    

    이슬람이 생겨난 직후부터 무슬림들은 종말의 때와 이와 관련된 징조에 대한 다양한 논쟁을 해왔다. 그러나 아직까지 종말의 징조와 시기에 대한 일치된 견해는 존재하지 않는다.[43] 그러나 대부분의 무슬림 신학자들은 종말의 징조를 크게 작은 징조(the Lesser Signs)큰 징조(the Greater Signs) 두 가지로 구분한다.[44] 작은 징조는 혼란과 무정부 상태, 도덕적 타락, 광범위한 살육과 살인, 알라의 존재를 공개적으로 부인하는 것 등이다. 이런 징조는 이미 이전부터 있어왔고 전 세계적으로 그리고 무슬림들 가운데서도 광범위하게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종말의 분명한 징조는 아니다. 세상의 종말이 임박했다는 더 분명하고 큰 징조는 일련의 사건들의 연속과 관련되어 있다. 그러한 일련의 사건들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에 대한 시나리오는 무슬림 학자들에 따라 많은 차이를 보인다. IS의 종말론을 다룬 윌리엄 맥칸트(William Mccants)의 책[45]IS에 가담한 자들과의 인터뷰 내용을 통해 종합해볼 때 IS주의자들은 다음과 같은 종말에 대한 신앙과 시나리오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1. 2014 6월 바그다디가 8번째 칼리프로 추대됨으로 종말이 임박했다. 왜냐하면 12번째 칼리프 시대에 종말이 오기 때문이다.[46]

    2. 로마(서구)의 군대가 시리아 북쪽, 다비크(Dabiq)에 진격하여 이슬람 군대와 격전을 벌일 것이다. 무슬림들이 권위 있게 받아들이는 하디스의 구절은 무함마드가 로마군이(미국이나, 다른 서방 세력을 의미하는) 무슬림들을 공격하기 위해 시리아의 다비크(Dabiq)를 공격하면 종말이 시작된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하디스에 의하면 로마군의 공격으로 다비크에 집결한 무슬림들의 1/3은 패배를 당하여 흩어지고 1/3은 죽임을 당하여 알라의 복된 순교자로 인정받게 된다.[47] 그러한 이유로 IS는 시리아에 있는 한 평범한 평야인 다비크에 중요한 의미를 부여한다.[48] IS는 외부에 있는 지지자들에게 수시로 다비크의 상황을 알리고 종말이 시작되는 것을 볼 날이 아주 가까웠다고 선동한다. 젤카비(Zerkavi)라는 한 IS대원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이라크에서 이미 종말의 불씨를 보고 있고, 그 불씨가 갈수록 크게 번져갈 것이다. 다비크에서 군대를 불태울 때 까지라고 말한 것은 바로 그러한 종말에 대한 신앙을 표현한 것이다.[49] IS는 바로 그 다비크를 점령하고 이제 로마라는 적군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IS 한 전사가 시리아에서 구호활동을 하다 납치되어 2014 11 26일 참수당한 피터 카시그(Peter Kassig)의 머리를 보여주며 로마군이 오기를 기쁘게 기다리고 있다고 말하고 있는 장면은 바로 임박한 종말에 대한 그러한 믿음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CNN 방송이 전하는 그 비디오 화면의 상단에는 DABIQ라는 로고가 선명하게 나타나 있다.[50]

    3. 다비크에서 이슬람 군대가 전멸하기 직전 마흐디(Mahdi)[51]라는 인물이 등장하여 남은 1/3을 이끌고 로마군을 물리치고 난 후 그들을 이끌고 콘스탄티노플(이스탄불)을 재점령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난 후에는 서구를 비롯한 전 비 무슬림 세계를 정복하게 될 것이다.     

    4. 마흐디의 출현으로 이슬람이 세계를 정복하지만 이것이 끝은 아니다. 이슬람이 승리를 거두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다잘(Dajjal)이라고 부르는 존재가 나타난다. 다잘은 시리아어 daggala라는 말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이며 미혹하는 자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52] 하디스의 많은 구절은 다잘의 존재와 그의 활동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하디스는 다잘을 예수님의 재림 이전에 무슬림들을 유혹하여 믿음에서 멀어지기 하고 타락하게 만드는 적그리스도와 같은 존재로 묘사한다. 이 다잘은 유대인들 가운데 나타날 것이며, 동쪽 호라산 지역에서 나타날 것이며, 자신의 능력을 사용하여 자신이 신적인 존재이며 주라고 주장하여 무슬림들을 미혹하여 참 믿음에서 멀어지게 하고 자신을 따르지 않는 무슬림들을 박해할 것이다.[53]

    5. 그 때 위기에 처한 무슬림들을 구원하기 위해 예수가 시리아 다마스카스의 동쪽에 있는 하얀색 모스크 첨탑 아래로 재림하여서 다잘을 팔레스타인에 위치한 루드(Ludd)라는 곳에서 죽일 것이다.[54] 그리고 예수는 십자가를 부수고 기독교인을 이슬람으로 개종시킬 것이며, 남은 무슬림들이 다잘에게 협력한 유대인들을 물리치면 예수가 그들을 위로하고 그들을 낙원으로 인도할 것이다.[55]     

    IS는 이러한 종말의 시나리오가 이미 시작되었고 믿는다. 칼리프가 다시 선출되었고 종말의 서곡이라고 할 수 있는 다비크에서의 전쟁이 임박했기 때문이다. 이제 하디스에 예언된 대로 로마, 즉 서구의 군대가 다비크를 공격하면 종말이 시작될 것이다. 이런 종말론을 가지고 있는 무슬림들은 시리아 다비크에서 로마(서구)와 전쟁을 치르며 종말이 시작되는 것을 목격하고 그 현장에서 순교하고자 하는 열망을 가지고 IS에 합류한다. 그래서 터키 국경을 통해 시리아로 밀입국을 한 무슬림들은 감격에 겨워 흐느껴 울기까지 한다. 세상의 종말이 시작되고 알라의 심판이 내리는 땅에 도착하였다는 감격 때문이다.[56]

 

 

    나가는 말

 

    IS의 문제는 이슬람의 문제이다. 이것을 서구의 팽창주의가 만들어 낸 문화적, 종교적 충돌의 결과로 돌리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왜곡시키는 것이다. 이슬람이 가지고 있는 문제를 그런 식으로 외부적인 환경의 요인으로 돌린다고 해서 그것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무슬림들과 서구인들 사이에 상호적인 불신감과 적대감만 증가시킬 뿐이다. 이슬람은 평화의 종교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이슬람의 경전인 쿠란과 하디스가 폭력을 허용하지 않는데 무슬림들이 자의로 이슬람을 해석해서 IS와 같은 단체가 생겨난 것은 아니다. IS가 이슬람과는 상관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쿠란과 하디스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IS가 가지고 있는 폭력성은 해석학, 사회론, 구원론 그리고 종말론과 같이 이슬람 신학과 신앙의 중추를 이루고 있는 핵심적인 교리에서 나온다. 그 누구도 IS와 같은 방식으로 이슬람의 경전을 해석하고 자신들의 신앙을 실천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온건주의를 표방하는 무슬림들이 IS가 해석한 이슬람을 이슬람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권리는 없다. 정통 이슬람만 아니라 민속 이슬람과 신비주의 이슬람이 이슬람이듯이 온건한 이슬람만이 아니라 폭력적 이슬람도 이슬람이다. 문제는 온건주의 살라피즘을 따르는 미국인 이맘인 압둘라(Abdullah) 고백하는 것처럼 이슬람에는 IS에 이념적인 대안이 있지만 두 견해를 조화시킨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데 있다.[57] 그래서 IS는 언젠가 사람들의 시선에서 사라지겠지만 다른 이름을 가진 또 다른 단체가 다시 등장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이슬람이 가지고 있는 어두운 면이고 해결할 수 없는 딜레마이다. 

    이슬람이 가지고 있는 이러한 딜레마는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성경의 진리를 뒤틀어 왜곡시켜 버렸기 때문에 발생한다. 우리가 보았듯이 이상주의 사회론이 그렇고 구원론과 종말론이 또한 그러하다. 이들 교리의 핵심에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그리고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철저히 배제되어있다. 이슬람은 그리스도를 배제하고, 그리스도 없이 이 모든 것을 이루기 위해 고안된 프로젝트처럼 보인다. 그래서 무슬림들에게는 더욱 참된 복음이 필요하다.  

    IS가 온 세계를 테러로 위협하고 있지만 그것이 무슬림들이 복음에 마음의 문을 여는 기회를 제공한다. IS는 무슬림들에게 이슬람이 가지고 있는 어두운 면과 거기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직시하도록 하고, 성경이 제시하는 참된 평화와 구원의 길에 관심을 가지도록하기 때문이다.[58] 최근 이집트, 터키와 같은 곳에서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에게 나아오는 무슬림들의 수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현상은 무슬림들 사이에 확산되고 있는 이슬람에 대한 실망감과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IS는 또한 이슬람을 전혀 몰랐던 그리스도인들조차 이슬람에 대해 관심을 갖게 만들고 있다. 그러한 관심은 무슬림들이 막연한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누구보다 복음이 필요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설명하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데 동참할 것을 호소하는 기회로 사용되어 질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슬람이라는 종교의 참 모습을 바로 알고 무슬림들에게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노력이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1] 본 글은 『복음과 선교』 제 31집에 이슬람 선교의 걸림돌로서 IS에 대한 연구-해석학, 이상 사회론, 구원론, 종말론을 중심으로라는 제목으로 발표된 논문을 일부 수정한 것이다.  

[2] 터키 정부의 말을 인용한 조선일보의 보도에 의하면 2015 7월 마지막 한 주 동안에만 IS에 가담하기 위해 터키 국경을 통해 시리아로 밀입국하려다 터키 정부에 체포 된 사람의 수가 700명에 달했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8/06/2015080601740.html, 2015. 8. 6.  

[3] 한 예로, 옥스퍼드 대학 교수이며 현대 이슬람을 대표하는 학자 가운데 한 사람인 타리크 라마단(Tariq Ramadan)은 알 자지라(Al Jazeera)와 가진 인터뷰에서 IS의 이슬람 해석과 행동방식은 이슬람과 상관없는 집단이라고 주장한다.

   http://tariqramadan.com/english/2014/10/13/talk-to-al-jazeera-tariq-ramadan-isis-actsare-un-islamic/, 2015. 6. 30.

[4] S. H. Nasr, The Heart of Islam, (San Francisco: harper, 2002), 221.

[5] http://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2775583&plink=COPYPASTE&cooper=

   SBSNEWSEND, 2015. 8. 8.

[6] 살라피즘이라는 용어를 대중화 시킨 사람은 천주교 신학자 루이스 마시농(Louis Msssignon)으로, 그는 자말 알딘(Jamal al-Din), 알 아프가니(al-Afgani), 무함마드 압두(Muhammad Abduh) 그리고 라쉬드 리다(Rashid Rida)의 이슬람 해석을 표현하기 위해 이 용어를 사용하였다. 오늘 날 이 용어는 이븐 타이미야에 사상적인 뿌리를 두고 쿠란과 함께 하디스를 절대시하는 일련의 그룹을 지칭하는데 사용되고 있다. Henri Lauziere, The Construction of Salafiyya: Reconsidering Salafism from the Perspective of Conceptual History, International Jounal of Middle East Studies 42 (2010), 369-389.  

[7] Yossef Rapoport and Shahab Ahmed, ed., Introduction, Ibn Taymiyya and his Times,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2010).

[8] Roel Meijel, ed., Global Salafism: Islams New Religious Movement, (London: Hurst, 2009). 

[9] 이븐 타이미야의 신학과 사상에 대한 상세한 내용을 알기를 원하면 Jon Hoover, Ibn Taymiyyas Theodicy of Perpetual Optimism, (Leiden: Brill, 2007)을 보라.   

[10] 메블라나 젤라레띤-이 벨히 루미(Mevlana Celaleddin-i Belhi Rumi: 1207-1273)는 현재의 아프가니스탄에서 태어났지만 몽골의 침입을 피해 이주한 가족을 따라 터키의 콘야(Konya)에 정착하여 메블라나 수피 종파를 세웠다. 신의 사랑에 기초한 초월적인 경험의 추구를 강조한 메블라나의 가르침은 몽골이라는 강력한 이교도들과 승산 없는 싸움을 하는 것보다 초월적이고 인간 내면의 문제를 추구함으로 위안을 얻으려는 무슬림들 사이에 빠르게 수용된 것으로 보인다. 김성운, 『형제의 나라 터키 이슬람 들여다 보기(서울: 글마당, 2013), 94-96.      

[11] al-tawhid al-uluhiyya(신성의 단일성)은 알라만이 유일한 신이며 경배를 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과, 따라서 알라 외에는 어떠한 대상도 사랑과 헌신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하며, al-tawhid al-rububiya(주권의 단일성)은 알라만이 유일한 창조주이며 인간의 존재와 생명의 근원임을 의미한다. 타이미야는 신성의 단일성이 주권의 단일성에 우선한다고 보았다. 더 자세한 내용은 Jon Hoover, Ibn Taymiyyas Theodicy of Perpetual Optimism, Chapeer 1을 참조하라.  

[12] 이슬람법에 의하면 한 편에서 다른 한 편을 takfir(배교자 선고)라고 하면 둘 중의 하나는 알라의 뜻을 어기고 배교를 했다는 의미이므로 둘 중 하나는 이슬람법의 규정에 따라 반드시 처형해야한다. IS는 시아파나 외세와 협력하는 자 그리고 민속적인 이슬람의 관행을 실천하는 자들을 배교자라 선고하여(takfir) 그들을 학살하는 것을 정당화한다.  

[13] Denise Aigle, The Mongol Inventions of Bilad Al-Sham by Ghazan and Ibn Taymiyahs Three Anti-Mongol Fatwas, Mamluk Studies Review 11.2(2007), 89-120.

   http://mamluk.uchicago.edu/ Mamluk Studies Review Volume XI no. 2, 2007. pdf,2015. 7. 22 

[14] Ibn Arabi(1165-1240), 오늘 날 스페인에서 출생하여 당시 이슬람의 중심지였던 다마스쿠스, 바그다드, 메카를 방문하여 당대의 이슬람 학자들에게서 수학했다. 그는 신에 대한 참된 지식은 인간의 이성으로가 아니라 신비적인 영감을 통해 얻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가 이후 수피즘에 미친 영향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존재의 하나됨(wahdat al wujud)에 대한 사상이다. 이 개념은 신플라톤주의의 존재론과 유사한데, 존재하는 모든 것은 신의 자기표현으로 설명될 수 있다. 창조주 신과 피조물 사이의 구분을 두지 않는 범신론적, 혹은 만유재신론적인 성격으로 인해 이슬람 내의 근본주의자들로부터 끊임없는 비난을 받아왔다.                

[15] 이븐 타이미야가 수피즘에 가한 비난에 대해 더 상세한 내용을 알기 원하면 Alexander D. Knysh, Ibn Arabi in the Later Islamic Tradition: The Making of a Polemical Image in Medival Islam, (Albany, New York: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Press, 1999), 87-111을 보라.  

[16] Henri Laoust, Ibn Taymiyya, Encyclopaedia of Islam, Second Edition, 에서 재인용.

   http;//referenceworks.brillonline.com/entries/of-islam-2/ibn-taymiyya-SIMm3388, 2015. 7. 24. 

[17] 이 책에서 와합은 이븐 타이미야의 가르침을 따라 알라의 신성의 단일성주권의 단일성 그리고 이름과 속성의 단일성가운데 신성의 단일성이 다른 단일성에 우선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래서 그는 샤하다(알라 외에 신이 없고 무함마드가 알라의 메신저이다)를 고백한다고 무슬림이 되는 것이 아니라 알라의 신성의 단일성을 고백하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겨야 무슬림이 된다고 주장하였다.   

[18] Roel Mijer, global salafism: Islams New Religious Movement, 이 책의 서론에서 저자는 글로벌 살라피즘을 참된 무슬림은 이슬람의 움메트(ummet) 이상에 따라 국가를 초월해 초국가적 이슬람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아야하며, 이븐 타이미야의 가르침에 따라 쿠란과 하디스의 내용을 문자적으로 실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신학적 교리를 가진 일련의 이슬람 운동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하고 있다.     

[19] John L. Esposito, Unholy War: Terror in the Name of Islam,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2003), 45.     

[20] Quintan Wiktorowica, Anatomy of the Salafi Movement, Studies in Conflict & Terrorism 29(2006), 207-239. 

[21] 지하드 살라피들과 이들 사이에 존재하는 견해의 차이에 대해 알기를 원하면 Roel Mijer, global salafism: Islams New Religious Movement, 3Jihadi-Salafism을 참조하라.  

[22] 그래미 우드(Graeme Wood) IS에 가입하거나 가입을 시도했지만 중도에서 저지당한 무슬림들과 가진 아래의 인터뷰 기사는 IS를 추종하는 무슬림들의 신앙세계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준다. Graeme Wood, What ISIS Really Want, http://www.theatlantic.com/features/ archive/2015/02/what-isis-really-wants/384980/, 2015. 5. 30.

[23] Graeme Wood, What ISIS Really Want.

[24] IS의 선전기관에서는 자신들을 활동을 홍보하기 위해 이러한 종류의 동영상이나 인터뷰를 인터넷 매체를 통해 배포하고 있다. IS가 선전하는 내용을 보기를 원하면 http://twitter.com/isis_med에 들어가 보라. http://twitter.com/isis_med, 2015. 8. 2.

[25] Graeme Wood, What ISIS Really Want.

[26] Sayyid Qutb, 『진리를 향한 이정표, 서정민 역, 169-174.

[27] Graeme Wood, What ISIS Really Want.

[28] Graeme Wood, What ISIS Really Want.

[29] Abu `Abd Allah Muhammad Al-Bukhari, 1:300; 10.5.505. Phil Parshall, Inside the Community, 김대옥. 전병희 역,『무슬림의 생활 지침서 하디스를 읽다(서울: 죠이선교회, 2014), 145에서 재인용.

[30] Abu `Abd Allah Muhammad Al-Bukhari, 5:260; 59.16.377, Phil Parshall, 『무슬림의 생활 지침서 하디스를 읽다, 김대옥. 전병희 역, 162에서 재인용.

[31] Abu `Abd Allah Muhammad Al-Bukhari, 9:413; 93.28.549,  Phil Parshall, 『무슬림의 생활 지침서 하디스를 읽다, 김대옥. 전병희 역, 161에서 재인용.

[32] 죄의 개념에 대한 기독교와 이슬람의 차이에 대해서는 김은홍, 기독교 선교와 이슬람 장벽-성경과 꾸란의 비교연구, 「복음과 선교10(2008), 79-82를 참조하라.   

[33] Ismail al-Faruqi, On the Nature of Islamic Dawah,

    http://www.ismailfaruqi.com/articles/on-the-nature-of-islamic-dawah/, 2015. 6. 30.

[34] Ismail al-Faruqi, Islam, (Beltsville, Maryland: amana publication, 1994), 5.

[35] http://www.radikal.com.tr/dunya/el_nusraya_katilan_turk_amacim_72_bakire_huriye_kavusmakti- 1332591, 2015. 4. 25.  

[36] 전호진, 이슬람 원리주의 도전과 이슬람 선교, 「복음과 선교」제8(2007), 54. 이 논문에서 저자는 이슬람 세계로 하여금 서구세계와 충돌을 일으키도록 만드는 원인 가운데 하나가 이슬람의 종말론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그것을 음모론으로 일축하며 구체적인 내용은 다루지 않고 있다.

[37] William Mccants, The Isis Apocalypse: The History, Strategy, and Doomsday Vision of the Islamic State, (London: Palgrave Macmillan Trade, 2015).    

[38] Graeme Wood, What ISIS Really Want

[39] http://www.kurandakidin.com/2011/10/20-kiyamet-alameti-uydurmalari-islam-mehdiler/,

    2015. 3. 31.

[40] Jean-Pierre Filiu, M. B. Debevoise Trans., Apocalypse in Islam, (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2011), Prologue. 

[41] Jamal al-Din, Umr ummat al-Islam: Qurb zuhur al-mahbi alyhi al-salam, (Cairo: Maktaba al-Tawfiqiyya, 1996)에서 종말의 시기를 2076년으로 제시하는 6가지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그 내용은 David Cook, Contemporary Muslim Apocalyptic Literature, (New York: Syracuse University Press, 2005), 91-97에 인용되어 있다. 

[42] Graeme Wood, What ISIS Really Want

[43] 종말의 시기에 대한 무슬림 학자들 사이의 논쟁에 대해서는 David Cook, Contemporary Muslim Apocalyptic Literature, Chapter 4를 보라

[44] David Cook, Contemporary Muslim Apocalyptic Literature, 8-10.

[45] William Mccants, The Isis Apocalypse: The History, Strategy, and Doomsday Vision of the Islamic State

[46] Graeme Wood, What ISIS Really Want 

[47] 아부 알 후사인 무슬림(Abu al-Husayin Muslim)이 편집한 하디스는 부카리(Bukhari)가 편집한 하디스와 함께 무슬림들 가운데 가장 권위 있는 것으로 인정된다. Muslim, Sahih, 4:2221, Jean-Pierre Filiu, Apocalypse in Islam, 16에서 재인용.    

[48] Dabiq는 기독교의 종말론에서 아마게돈(Armageddon)이 가지는 것과 유사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IS가 발행하는 잡지와 방송의 이름이 Dabiq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49] Graeme Wood, What ISIS Really Want

[50] http://edition.cnn.com/2014/11/17/world/meast/isis-kassig-beheading-analysis/, 2015. 8. 3.

[51] 마흐디(Mahdi)는 시아파 이슬람 신학과 신앙에서 절대적인 위치를 가지는 존재인데 하디스를 통해 순니 이슬람의 종말론 속으로 편입된 것으로 보인다. 이슬람 종말론에서 마흐디라는 존재와 관련된 논쟁과 의미에 대해서는 Jean-Pierre Filiu, Apocalypse in Islam, chapter 3을 보라.    

[52] David Cook, Studies in Muslim Apocalyptic, (Princeton: The Darwin Press, 2002), 93.  

[53] 이슬람 종말론에서 다잘(Dajjal)이 차지하는 위치와 의미에 대해서는 David Cook, Contemporary Muslim Apocalyptic Literature, chapter 9장을 보라.

[54] Muslim, Sahih, 4:2252; 4:2253, Jean-Pierre Filiu, Apocalypse in Islam, 17, 18에서 재인용. 또한 대부분의 이슬람 신학자들은 쿠란 3:55절이 종말직전 예수께서 재림할 것을 예언한다고 해석한다.   

[55] Abu `Abd Allah Muhammad Al-Bukhari, 3:233-234; 34.104.425,  Phil Parshall, 『무슬림의 생활 지침서 하디스를 읽다,김대옥. 전병희 역, 241에서 재인용.

[56] Nick Patton Walsh, The Secret Jihadi Smuggling Route Through Turkey,             http://edition.cnn.com/2013/11/04/world/europe/isis-gaining-strength-on-syria-turkey-border/index.html, 2015. 5. 29.  

[57] Graeme Wood, What ISIS Really Want.

[58] 크리스천투데이가 폭스뉴스의 기사를 인용하여 보도한 바에 의하면 독일에 거주하는 무슬림 난민 가운데 상당수가 세례를 받고 기독교로 개종하고 있는데, 개종의 이유를 과격 이슬람에 대한 실망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http://www.christiantoday.co.kr/view.htm?id=285723, 2015. 9.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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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생 보내기 운동에 대한 진지한 ...
명예 직분 허용이 가져다 줄 위험한...
[고신 70주년에 즈음하여 9] 고신교...
논문
송상석 목사에 대한 교회사적 평가 ...
송상석 목사와 고신 교단 (나삼진 ...
송상석 목사의 목회와 설교 (신재철...
네덜란드 개혁교회 예식서에 있어서...
제7차 헌법개정초안(2022년 6월) 분...
제7차 헌법개정초안(2022년 6월) 분...
제7차 헌법개정초안 예배지침 부분...
제7차 헌법개정초안(2022년 6월) 분...
SFC 강령의 “전통적 웨스트민스터 ...
지역교회의 적정 규모(規模 size)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