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강림절, 어떻게 충만할 것인가?
안재경 목사
(온생명교회)
성대한 부활 절기 이후의 날들, 이후의 주일들을 어떻게 지내는 것이 좋을까? 고대 교회는 부활주일 이후의 날들까지 부활의 기쁨을 확대하기를 원했다. 부활 이후의 50일간으로 확대했다. 우리가 50일이라고 하면 흔히 오순절, 즉 성령강림절을 머릿속에 떠올리지만 고대에는 50일째 하루만을 생각한 것이 아니다. 부활 당일로부터 시작되는 50일간의 매일 매일을 축하하고 기뻐했다. 이렇게 부활일로부터 50일을 큰 기쁨 중에 보내었기 때문에 이 날들을 ‘기쁨의 50일’The Great Fifty Days이라고 부르곤 했다. 고대 교부들은 이 50일의 날들을 단 하루의 날처럼 생각하여 주일과 동일한 의미를 부여하기까지 했다.
기쁨의 50일
왜 부활 후 50일을 기쁨의 날들로 잡은 것일까? 너무 길지 않은가? 50일이 어디로부터 온 것일까? 기독교회의 부활절(파스카)이 유대교의 유월절과 관련을 맺고 있듯이 부활 이후의 50일은 유대교의 오순절과 관련이 있다. 교회가 부활 이후의 50일을 축하한 것은 유대교의 오순절에서 힌트를 잡았다고 볼 수 있다. 유대교의 오순절은 성경에 의하면 맥추절 다음 날이다. 맥추절은 무교절로부터 시작되는 7주간을 가리킨다(출 23:16; 34:22). 그래서 칠칠절Feast of Weeks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칠칠절 다음 날이 바로 50일째이기에 오순절이라고 부른다(레 23:16). 이 오순절은 무교절로부터 시작된 봄 추수(보리수확)로부터 7주간이 지나 하곡 추수(밀수확)가 절정에 이른 것을 축하하는 절기였다.
오순절은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절기가 아니라 그 명칭을 통해 분명하게 드러나듯이 50일째의 날이다. 그 시작은 무교절, 즉 유월절이다. 유월절로부터 오순절까지의 기간, 즉 일곱 주간이 바로 맥추절이다. 이렇게 오순절은 봄과 여름의 곡식인 보리와 밀을 추수하고 난 다음에 하나님께 감사하며 축하하는 절기였다. 보릿고개가 끝났으니 얼마나 기뻐할 일인가. 유월절로부터 땅에서 나는 소산을 먹기 시작하여 오순절에까지 이르면 이웃과 더불어 나눌 만큼 풍성함을 누릴 수 있다. 봄과 여름에 거둔 보리와 밀로 가을까지 넉넉하게 보낼 수 있다. 그 곡식이 떨어질 즈음에 가을걷이가 시작되고 하나님의 백성들은 장막절, 다른 말로는 수장절을 지키면서 넉넉한 마음으로 한겨울을 날 수 있다. 이렇게 유월절, 맥추절, 장막절이 다 추수와 관련이 있다. 먹을 것이 풍성한 오순절, 먹을 것을 나누면서 같이 기뻐하던 오순절은 그리스도의 부활과 성령님의 오심으로 인해 더 크게 풍성할 수 있었다.
유대인들은 오순절에 먹을 것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뻐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들에게 율법을 주신 것을 기념하는 날로 삼았다. 이스라엘 백성이 유월절기를 지키면서 출애굽하여 시내산에 이르러 하나님으로부터 율법을 받았는데, 그 율법을 받은 날이 바로 오순절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오순절에 율법을 받았다는 관점에서도 신약교회는 구약교회보다 더 큰 풍성함을 누릴 수 있다. 구약의 오순절이 돌판에 새긴 율법을 받은 날이라면 신약의 오순절은 성령님을 통해 율법을 마음에 새길 수 있는 복을 받았기 때문이다.
성령강림주일
부활 후 50일의 마지막 날은 부활절 여덟째주일인 성령강림주일이다. 오순절이 부활절 여덟째 주일이라는 것이 의미심장하다. 고대교회가 주일을 제8일이라고 불렀듯이, 또한 파스카팔부의 여덟 번째 날을 성대하게 축하했듯이 부활절 여덟째 주일을 ‘주일 중의 주일’, ‘큰 주일’이라고 불렀다. 서방교회는 부활절 전야에 미처 세례 받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성령강림주일에 세례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부활절의 의미가 성령강림절까지 이어진다는 것을 보여주는 셈이다. 사실, 세례 받는 것은 물로만 세례 받는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세례 받는 것이기에 성령강림주일에 세례 받는 것이 이상한 것이 아니다.
고대 교회는 성령강림주일을 크게 축하했다. 부활 전야제처럼 성령강림 전야예배를 드렸다. 이 전야 예배 때는 구약의 네 본문을 읽었다. 이 네 본문은 오순절 성령강림의 신비를 잘 포착하여 드러내어 주는 본문들이다. 첫째 본문은 창세기 11장으로, 오순절 성령강림이 죄로 인해 수없이 분열되어 있는 인간모임을 하나로 만드는 사건임을 보여준다. 둘째 본문은 출애굽기 19장인데, 오순절 성령강림으로 인해 주님의 교회에 새로운 법을 선포해 주신 것을 축하한다. 셋째 본문은 에스겔 37장인데, 성령께서 오심으로 죽었던 자들 가운데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이 일어나는 것을 보여준다. 넷째 본문은 요엘 2장인데, 오순절 성령강림 때 사도 베드로가 인용했던 바로 그 구절이다. 이제는 말세가 되었고,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복된 시대가 펼쳐졌다는 것을 선포한다.
오순절은 성령께서 강림하신 날로, 이 날에 신약교회가 세워졌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제자들이 성령님을 기다리며 기도하고 있었고, 성령님이 임하자 제자들이 방언을 하기 시작한다. 각국에서 오순절기를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왔던 유대인들과 경건한 이방인들이 제자들의 입에서 자기들이 사용하던 말이 터져 나오는 것을 보면서 깜짝 놀랐다. 이것은 구약시대 바벨탑 사건으로 나누어졌던 언어가 통일되는 굉장한 사건이었다. 성령께서는 제자들의 무리, 즉 교회를 통해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셨다. 이스라엘이라는 구약교회가 하지 못했던 복음전파의 사역을 새로운 이스라엘, 즉 신약교회가 수행하기 시작한 것이다. 오순절 성령강림으로 인해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교회가 출현했다.
성령께서는 창조의 영이셨고, 구약시대에도 활동하셨지만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하늘 아버지께 요청하여 이 땅에 오셨다. 이제 성령께서는 교회를 통해 일하신다. 상령께서는 믿는 이들에게 은사도 주시고, 능력도 베풀어 주시지만 교회를 통해 역사하신다. 그래서 사도신경에도 ‘나는 성령을 믿사오며’라고 고백한 후에 성령께서 수행하시는 첫째 사역이 ‘거룩한 공교회를 세우시는 것과 성도의 교통을 이루시는 것’이라고 고백한다.
성령강림절 영성
성령강림절이 가까워지면 강단장식이 화려(?)해진다. 계절이 봄을 지나 여름을 향해 달려가기 때문에 다양한 꽃들로 강단을 장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부활 후 50일간에 부활초를 켜 놓았다. 부활의 빛이 온 땅을 밝히 비춰주실 것에 대한 기대이다. 성령강림절에는 붉은색 꽃들로 마치 불꽃이 일어나는 것 같은 장식을 하기도 한다. 부활 후 50일간 독서는 사도행전과 요한복음이 주로 사용된다. 예를 들어 부활주일에 요한복음 서론(1:1-18)을 여러 언어로 읽으므로 이후로는 요한복음에 대한 전체 독서를 시작한다.
부활은 충만한 절기이다. 그래서 단 하루만이 아니라 부활 이후 성령강림주일에까지 이르는 50일간을 축하한다. 성령강림절에 이르면 충만도 절정에 달한다. 부활과 성령강림을 통해 우리는 충만이 무엇인지를 체험할 수 있다. 세상적인 결핍속에서도 영적인 충만을 누릴 수 있다. 성령강림절은 우리가 성령님을 체험해야 하는 날이기 이전에 그리스도께서 모든 우주만물위에 높아지신 것을 묵상하는 복된 절기이다. 승천하신 그리스도께서 하늘 아버지께 요청하셔서 성령님을 보내어 주셨다. 높아지신 그리스도께서는 멀어지신 것이 아니라 자신의 분신(?)인 성령님을 보내어 주시므로 가장 가까이 다가오셨고, 가장 충만해 채워주신다. 떠나가신 분이 항상 함께 하시면서 교회를 채우신다.
성령강림절기에 다음과 같이 기도하면서 ‘주일 중의 주일’이요 ‘큰 주일’을 마음껏 누리고 충만 가운데 찬양하자. “하나님 아버지, 부활승천하신 그리스도께서 하늘 아버지께 요청하여 성령님을 보내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으시고 다시금 우리 가운데 찾아오심을 감사합니다. 제자들은 육신의 주님을 뵈었고, 함께 했지만 저희들은 영이신 주님을 항상 모시고 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이제 저희들은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하신 말씀이 빈 말이 아님을 압니다. 독수리가 그 새끼를 품에 품듯이 천지만물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영이 수면을 운행하셨고, 이제 바로 그 성령께서 아들의 영으로 주의 백성을 꼭 품어주시니 감사합니다. 이 땅의 신자들이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지만 그들이 성령의 언어로 한 주님을 고백하게 하여 주옵소서. 오직 성령의 교통 가운데 저희들이 성도의 교통을 온전히 누리도록 도와 주옵소서. 오, 성령님 간구하오니 교회를 가득 채우실 뿐만 아니라 온 땅을 가득 채워 주시옵소서. 성령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모든 장벽이 허물어지고 모든 차별이 철폐된 것을 알아 땅 끝까지 평강을 전하게 하옵소서. 시리아와 이라크에서 고난당하는 믿음의 형제들을 돌아보시고, 성령께서 악한 영들을 축출하여 주시고, 악한 나라들을 무너뜨려 주시기를 구합니다. 성령님으로 다시 찾아오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위 글은 RE Vol. 37에 기고한 글의 일부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