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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정부의 관계를 다시 돌아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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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태화 교수

(백석대학교)

 

 

     최근 우리사회를 보고 있노라면 가슴이 참 답답함을 금할 길이 없다. 최태민에서부터 시작되었고, 최순실 세대에서 걷잡을 수 없이 터져 나온 사건을 방치한 대통령의 역사적인 무념무상의 행태뿐만 아니라 국민의 세금을 가지고 국정을 이끄는데 필요한 건강상의 치명적인 문제와 관련된 것도 아닌 미용주사나 맞고 있는 대통령의 행태를 보면서 고난의 현실을 살아가는 백성의 저변과는 동떨어진, 뭔가 좀 많이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기본적으로는 현실성 있는 삶을 살아보거나 행정을 통괄하는 실제적인 정치를 해보지 않은 문외한 대통령의 문제이기도 하고, 그런 속빈 권력을 중심으로 해서 서로 봐주면서 그 이익을 챙기기에 여념이 없었던 역사의식이 부재한 하부권력자들의 사욕 때문이기도 하다.

     무늬만 대통령이지 실제로는 은행을 통해서 세금을 납부하거나 김장을 해서 먹거나 아이를 학교에 등교시키거나 불필요한 과외비 문제로 고심을 하거나 결혼적령기의 청년자녀를 두고 고민하거나 월세와 전세를 전전하며 끙끙대며 살아보거나 직접 취업전선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이런저런 기관을 전전하며 사투를 벌이거나 한 경험이 전혀 없는, 일종의 진공 상태 혹은 무중력 상태에서 살아온 이에게서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게다가 아버지와 어머니의 후광을 업고 정치인 코스프레를 해 본 경험은 있지만 대화하고 타협하면서 실제적인 정치를 엮어간 경험은 거의 전무하다시피 한, 오히려 외통수 선언적 정치로 점수를 얻은 이에게 소통을 근간으로 한 정치를 기대하는 우리의 꼴이 우습기까지 하다.

     미국과 세를 나란히 형성하면서 급부상하는 중국과의 관계에서 어떤 실제적인 입지를 조성해나가야 하는 지가 국가의 미래와 깊이 연관된 관심사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40년 전 대미 외교 중심성을 벗지 못하는 성급한 정책결정을 보면서, 브레인의 부재를 절감하지 않을 수 없는 답답함을 느끼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었을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개성공단사태나 사드배치나 북핵문제나 한일군사협력과 같은 문제를 다루는 모습을 보면서, 국가적 대의나 미래 한반도의 큰 그림을 보지 못하는 정책 결정의 와중에서 이 나라가 도대체 어디로 가려는 것인지 깜짝깜짝 놀랐던 때가 없지 않았을 것이다. 이 모든 사태들이 대통령의 역사의식에서 비롯되는 통치철학의 거대담론부재 때문이라면 너무 지나친 평가일까 싶다.

 

     그런데 사실 이런 정도의 문제 분석은 3류 일간지에서조차 더 나은 형태로 접할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더 가슴이 아픈 것은 이러한 정부 혹은 국가 안에 서 있는 교회 때문이다. 이 정부가 이렇게까지 되어오는 과정에 소위 하나님과의 관계에 서기를 힘쓰고, 국가의 안위와 미래를 위하여 기도해온 교회는 과연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는가 하는 자괴감 때문이다. 국가가 이렇게 썩어서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된 것은 어쩌면 아니 거의 확실히 교회가 제 구실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교회가 정부나 국가와의 관계에서 해야 할 마땅한 역할을 수행하지 못했기에 이러한 곤경이 직면했다고 믿어지기 때문이다.

     벨직신앙고백서와 같은 개혁교회의 신앙고백서들이 밝히 말하듯이, 교회와 국가는 상호 체크 앤 밸런스의 구조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국가는 정상적인 교회가 자유롭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환경을 보장해주어야 하고, 교회는 그러한 국가의 건강한 통치를 위하여 중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교회는 국가의 권력 혹은 정부가 하나님에게서 위임받은 권력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하나님의 권한을 위임받은 정부나 국가는 국민의 안녕과 복지를 위해서 힘을 다하며, 고와와 과부가 학대를 받거나 소외되지 않도록 선정을 펼쳐야 한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섬기는 방식은 고아와 과부를 섬기는 것에서 일차적으로 찾아져야 하고, 이것이 세속정부에서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최대의 기대치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큰 흐름에서 벗어난 권력의 실행이 눈에 보일 때는 교회는 그런 왜곡된 권력을 향하여, 단호하게 “아니오!” 라고 외쳐야 한다. 뿐만 아니라, 큰 맥락에서 국가의 시책이 창조세계 그 자체에 반영된 하나님의 말씀에 반하는 동성애라든가 이혼이라든가, 낙태라든가 하는 것을 합법화하는 시도들에 대하여는 교회가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그런 정책들이 입안되지 않도록, 혹은 그런 정책을 채택함으로써 교회의 권리가 제한되지 않도록 하는 일에 특별히 주목하면서 국가나 정부의 정책을 감독할 필요가 있다. 남북이 대치하는 상황에서 교회의 정책은 보수내지는 진보적인 국가나 정부에 편향되지 않도록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에 입각해서 자신의 입장을 분명하게 고지하고 실현될 수 있도록 정책 실현의 과정에서 감시와 감독의 직무를 의식적으로 실행해야 하는 것은 불문가지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회는 특별히 객관적인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자신의 삶을 세워가야 한다. 무엇보다도 하나님과의 교제를 친밀하게 유지해야 한다. 오늘의 이런 사태를 보면서도 교회는 자신의 역할을 다하지 못한 것에 대하여 부끄러움을 느껴야 한다. 특별히 국가나 정부가 이런 사태에 직면하게 된 것은 교회의 지도자들의 부패와 영적으로 깨어있지 못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말씀을 읽고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과 교제의 깊이를 더해가면서 교회는 국가의 권력의 동향들을 예리하게 분석하고 주시하여 하나님의 뜻을 따라 권력이 실행될 수 있도록 설교해야 하기 때문이다. 국가나 정부에게 위임된 권력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실행되고 있는지를 확인해야 하고, 또한 감시해야 하는 책임이 교회에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실제로 교회의 삶은 어떠한가? 교회가 과연 국가와 그 권력을 올바르게 노정하거나 혹은 책망할 수 있을 정도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싶기 때문이다. 교회가 앞장서서 부를 증식하여 세습하고, 목회 자체를 세습하고 있지 않은가 싶기 때문이다. 교회가 고아와 과부를 돌아보기는커녕 자신의 몸집 불리기에 여념이 없지 않았는가 싶기 때문이다. 국가와 그 권력을 감시하고 계도하기보다는 오히려 그들의 필요에 부응하면서 함께 기득권을 누리는 일에 마음을 빼앗기기 않았는가 싶기 때문이다. 주님의 이름으로, 혹은 하나님의 말씀의 옷을 입혀서 부를 찬양하고 부자가 되도록 고무하는 일에 마음을 빼앗기지는 않았는지 싶은 것이다. 신앙의 이름으로 프라다를 추구하는 삶을 고무하지 않았는가 싶기 때문이다.

 

     교회는 예배와 신령상의 일을 통하여 한 나라의 시민이자 하나님 나라의 시민인 백성들을 일깨우는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눈에 보이는 삶이 전부가 아니라고, 보이지 않지만 사시고 참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켜보시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야 한다는 말이다. 주님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기 때문에, 또한 주님의 마음이 가난한 자와 과부들을 향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그들을 섬기며 사회적 불의에 저항해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야 하는 것이 교회의 사명인 것은 외면할 수 없지 않은가 말이다. 그런데 교회가 그런 안목을 상실하고 말았거나 혹은 오히려 안목의 정욕, 육신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솔선해서 부추기면서 부와 명예와 권력을 추구하도록 설교에서 자극하고 있으니, 도대체 사회적인 불의를 누가 감시할 수 있다는 말인가 싶은 것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예배가 예배의 본질을 상실하는 지경에까지 이른 것이다. 예배는 이러한 고민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치유되는 현장이기도 하고, 이러한 죄를 지은 사람들이 회개를 통해서 바른 삶을 새롭게 견지하는 기회를 얻는 일이 일어나는 순간이기도 하다. 하나님 앞에 한 영혼이, 그리고 한 영혼의 삶이 온전하게 드러나게 될 때, 설교를 통하여 그 영혼과 그 영혼이 형성한 삶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선명하게 드러날 때, 그 영혼은 회개하거나 혹은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 의탁하는 영혼의 부흥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과거의 삶을 끊어내고 새로운 삶을 시도하는 삶의 갱신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이런 일들이 매주일 일어나는 교회여야 하고, 이러한 일들이 실존적으로 일어나는 예배가 교회에서 경험되어야 한다.

 

     이 일은 무엇보다도 목회자의 책임과 깊은 관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회중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 회중의 삶을 이해하고 파악하기 위하여 애를 쓰는 하나님의 사람이 바로 목회자다. 하나님 앞에서 회중의 생사간의 사정을 살펴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사람, 하나님의 뜻을 구할 수 있는 사람, 그 일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목숨까지도 위기에 빠트릴 수 있는 사람이 바로 목회자이기 때문이다. 목회자는 세상의 근심과 슬픔과 절망을 짊어지고 말씀 안으로 걸어 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 하나님의 뜻을 찾아 그것을 들고 회중 앞에 서야 한다. 하나님의 임재의 증거와 함께 회중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들려줄 수 있어야 한다. 어떤 권력이나 재력이나 명예에 굴종하지 않고서 말이다.

 

     오늘의 대한민국의 현실에서 사실 교회는 촛불을 들고 평화의 행진에 동참하는 것도 외면해서는 안 되지 싶다. 오히려 동참하는 것이 시대적인 불의에 대하여 목소리를 내는 제자도의 한 방식이라고 말해야 옳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행렬에 참여하는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은 단순히 국가나 정부의 통수권자의 무능과 실정에만 초점이 맞춰져서는 곤란하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행렬에 동참하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교회는 교회로서 자신의 부족한 모습을 직시하고, 국가나 정부를 향한 자신의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에 대하여 뼈저리게 회개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단순히 저 어떤 인물을 힐난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부끄러워하고 자신의 행위를 돌이키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교회가 그 책임을 다하지 못해서 나타난 결과를 직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마음으로 그 행렬의 어느 한 지점에 서서 눈물을 흘리며 한반도의 미래를 하나님께 부탁하는 기도를 올려야 할 것이다.

     그리고 보다 깊은 차원에서 교회가 한반도와 그 가운데 살고 있는 백성들을 섬길 수 있는 길이 무엇일까 고민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도성(Civitas dei)과 세속의 도성(Civitas mundi) 사이의 행간을 읽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옛적 우리의 선배 아우구스티누스가 이런 긴장 구조 속에서 근원적인 문제를 끌어안고 고민하여 답을 모색했듯이, 이 시대의 교회가 보다 깊은 측면에서 이 시대를 살아가며 통과해가는 하나님의 도성이 수행해야 할 시대를 향한 도전이 무엇인지 다시 새롭게 인식하면서 그 삶을 노정하려는 담대한 시도들을 전개해야 하지 않나 싶은 마음이 저 밑에서부터 올라온다. 사도 요한이 성령에 이끌리어 바라보았던 하나님의 종말론적인 비전을 다시 확증하면서 교회로 하여금 세속도성에서 두 증인의 삶을 살도록, 왕적 제사장(Kingly priest)의 삶을 살도록 도전하며 격려했듯이, 우리도 그런 삶을 살아내는 교회가 되도록 지혜로 삶을 지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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