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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전검사와 낙태, 그리고 장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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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성 목사

(유성광명교회 협동목사)

(고신대 기독교윤리학 박사과정 중)

 

 

1. 전통적인 장애 인식

 

        전통적으로 기독교는 레위기 21장에서 레위인들 중에 제사장이 될 수 없는 부정함의 항목들 속에 다양한 장애의 형태들이 포함 되어 있는 것을 근거로 장애는 죄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는 입장을 취해 왔다. 이는 유대교적 전통을 그대로 이어 받은 것으로, 기원전 1세기 무렵 사해 사본을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쿰란 공동체가 남긴 문서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이들은 장애인들은 하나님의 나라에 참여 할 수 없다고 생각하여 자신의 공동체에 장애인들을 포함시키지 않았다. 이러한 입장은 상당히 경건하고 합리적인 입장을 취하는 바리세파들도 동일하였으며, 대부분의 이스라엘 사람들이 공유 했던 당시의 장애에 대한 상식이었다. 세계적으로 보았을 때, 불교 문화권에서도 장애는 과거의 업보(죄)의 결과로 보았으며, 유교는 장애를 수치스러운 것으로 보아 숨기는 것을 미덕으로 생각하였다. 일부 나라에서 장애를 하늘의 축복으로 인식하는 문화도 있지만 이는 매우 예외적인 경우이다.

 

 

2. 장애를 제거하기 위한 현대적 시도

 

        이렇게 장애를 죄, 수치, 부끄러움으로 이해하는 일반적인 문화는 과학과 의학의 발전과 발마추어 그 형태를 변형하여 현대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산전검사를 통한 장애 판별과 이에 뒤따르는 낙태이다.

        산전검사의 종류는 크게 침습적 방법과 비침습적 방법으로 나뉜다. 침습적 방법이란 산모의 자궁 안에서 양수나 체세포를 채취해서 유전자 검사를 행하는 것이다. 이에는 양수검사, 융모막생검(CVS) 등이 있다. 비침습적 방법은 초음파 검사와 같이 자궁 외부에서 장비를 통해 영상이나 소리로 태아의 상태를 판별하는 것이다. 이 중 양수 검사는 1~2%정도의 자연 유산 위험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1) 이같이 다양한 산전검사 기법을 통해 감별된 상당수의 장애아들은 부모의 따뜻한 눈길 한번 마주치지 못하고 낙태로 사라지고 있다. 2010년 보건복지부 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 한해 약 17만 건의 낙태가 시행되고 있는 데, 그 중 16.3%, 약 2만 건 이상의 낙태가 태아의 건강 때문이었다. 이 조사를 신뢰한다면 이들 대다수는 산전검사를 통한 낙태임이 분명하다.

        과거 산전검사가 어려웠던 시기에는 비록 장애에 대한 사회의 차가운 시선과 이를 감당해야한다는 본인과 가족의 고난이 있다하여도 최소한 생명으로서 살 수 있는 기회라도 주어졌다. 하지만 이제는 상당수의 장애를 지닌 태아들이 생명의 기회조차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박탈당하고 있는 형편이다. 이에 대해서 메일렌더는 현대 산전검사와 유전자검사가 ‘사생활’과 ‘선택’이라는 언어와 결합하였다고 지적한다2). 그러므로 정부는 결함이 있는 태아의 낙태를 정부의 공적인 판단의 대상에서 제거하여 사적이며 개인적인 선택의 대상으로 여긴다는 것이다. 이는 달리 말해 태아를 독립된 존재가 아닌 산모에 기생하는 산모의 소유물로 여긴다는 뜻이다. 비록 과거와 같이 장애를 죄라고 이야기 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을 지라도 여전히 장애는 부모와 장애 당사자의 고통을 유발하는 제거되어야할 상태이다.

 

 

3. 장애와 불필요한 고통

 

        이에 대해서 푸르디(Laura M. Purdy)는 Genetics and Reproductive Risk: Can Having Children Be Immoral?에서 태아를 가능성 있는 인간(possible human)이라고 정의하고 그 아이가 태어났을 때, 과연 어떤 결과를 가져올 지 미리 예측해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만약 태아의 출산이 유전병인 허팅턴 질명(Huntington’s Disease)3)처럼 불필요한 불행을 가정에 가져다주고 당사자도 그러한 결과가 당연히 예측 된다면 낙태를 심각하게 고려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근거로 그는 출산의 목적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질문한다. 그는 “자녀를 원하는 이유는 가정의 삶을 경험하기 위한 것이다. 이는 사랑하고 동반적 감정, 아이가 성장하도록 돌보고, 고통과 성취를 나누고, 다음 세대의 구성원을 형성하는 것을 돕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이러한 근거로 그는 입양이나 산전검사와 같은 새로운 출산 기술이 유전적 결함을 후 세대에 물려주지 않도록 돕는 좋은 도구라고 주장한다. 여기에는 미리 예측되는 고통은 불필요한 고통이라는 전제가 있다. 그러기에 이러한 고통을 미리 제거할 수 있다면 이를 제거 할 수 있는 가능한 방법을 개인이 선택하여 사용하도록 해 주는 것이 윤리적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 메일랜더는 현대인을 지배하는 두 가지 핵심 덕목(cardinal virtue)이 있다고 말한다. 바로 공감(compassion)과 인정(consent)이다. 상대가 남에게 피해를 주지않는 한 상대의 고통을 무조건 공감해 주고 인정 해 주어야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태아는 가능성 있는 인간(possible human)일 뿐 아직 인간이 아니기 때문에 불필요한 고통이 예상 될 경우, 낙태는 부모 개인의 고통에 공감하고 인정하는 것이며, 윤리적인 선택이라는 주장이다. 그렇지만 푸르디가 주장하는 ‘불필요한 고통’이란 어쩐지 종교적인 언어인 ‘죄’라는 말과 매우 유사한 말로 들린다. 종교에서 죄란 제거되어야할 대상이며, 인간의 행복을 가로 막는 고통을 유발하는 근본 원인이기 때문이다. 비종교화, 세속화 시대인 현대에서 이를 지칭하는 용어는 달라졌지만 그 본래의 의미는 여전히 살아서 유전되고 있다. 그러면 기독교도 일반 종교와 동일한 의미로 죄를 이해라고 있을까?

 

 

4. 장애와 죄

 

        기독교는 ‘죄’란 단어를 일반적인 종교와 다른 의미에서 사용한다. 또한 이를 해결하는 방법에 있어서도 확연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기독교의 죄란 단순한 윤리적, 도덕적 행위의 어긋남이라기보다는 인간이 하나님처럼 되려는 욕망으로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가 단절된 상태를 의미한다. 현상이나 행동이 아니라 상태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은 선행을 통해 자신의 죄행을 속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의 무한한 속죄를 믿는 것이다. 이는 인간의 힘으로 불가능하며,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서만 죄에서 구원 받을 수 있다는 의미이다.

        이를 볼 때, 기독교의 죄 개념은 인간의 속죄를 통해 죄를 제거할 수 있다는 타 종교의 죄 개념이나, 불필요한 고통을 개인의 선택과 인간의 의학적 기술을 통해 제거 할 수 있다는 주장과 결을 달리 한다. 기독교는 ‘불필요한 고통’을 제거할 수 있는 분은 유일하게 성자 예수님뿐이라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또한 기독교에서는 특정한 사람만이 아닌 모든 인간은 죄, 곧 불필요한 고통 속에 있다. 단지 장애는 그 다양한 현상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 현상은 근본적으로 제거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현상을 제거 한 것처럼 보이나 이는 오히려 더 큰 재앙을 불러드리기도 한다. 몸속에 박테리아를 제거하기 위해 항생제를 사용하지만 결국 더 치명적인 슈퍼박테리아가 예기치 못하게 발생하는 것처럼 말이다. 특히 장애를 제거하기 위해 생명을 죽이는 낙태를 합리화 하는 것은 더욱 그렇다. 이에 대해서 스콧 래와 폴 콕스는 “장애 태아가 참으로 인간이라면 장애를 이유로 임신중절을 하는 것은 가장 사악한 형태의 차별이다.”라고 말한다(생명윤리학, 196). “장애우는 더 적게 차별 받아야하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보호를 받을 가치를 지닌 존재”이기 때문이다. 장애는 제거 대상이 아니라 배려의 대상을 구별하는 기준이다. 더 사랑 받을 가치가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메일랜더도 산전검사를 통한 장애 태아를 낙태하는 것을 거부하는 것은 전 인류를 향해 “당신은 존재해서 좋습니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고 주장한다(기독교 관점에서 본 생명윤리, 91).

 

 

5. 구원과 장애(요한복음 9장)

 

        요한복음 9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날 때부터 소경된 자를 고쳐 주신 사건이 나온다. 길을 지나가던 예수님에게 제자들이 다음과 같이 물어 본다.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2절) 제자들이 이 같은 질문을 한 이유는 8장에서 유대인들과의 대화 가운데 자신을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었다”(8:58)고 말한 것과 연관이 있다. 또한 8장 52절에서 예수님은 자신을 영원 가운데 있는 존재로 소개한다. 이것은 자신이 성자 하나님이라는 것과 인간에게 영생을 줄 수 있는 유일한 존재라는 것을 밝히신 것이다. 이러한 예수님의 자신에 대한 소개와 연관하여 제자들은 예수님에게 소경이 날 때부터 소경 된 이유를 질문하고 있다. 후천적으로 소경이 되었을 경우 그 원인이 분명하게 있는 데, 선천적인 소경은 그 원인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그 원인은 영원 속에 계시는 하나님만이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이 질문은 예수님이 창세전부터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란 사실을 드러내고 있다. 그렇지만 실제로 제자들이 그러한 심오한 뜻을 알고 이런 질문을 하였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다만 베드로가 예수님에 대해서 고백 했듯 자기도 모르게 성령님이 이러한 질문을 하게했다는 것이 더 이해하기 쉬울 수 있다.

        이러한 제자들의 질문에 예수님은 단호하게 부모의 죄도, 소경 자신의 죄도 아니라고 답하신다. 예수님은 소경이 선천적으로 소경이 된 이유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고 말씀하셨다. 이 답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일까? 이에 대한 설명은 다음 절인 4~5절에 나온다.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 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란 바로 예수님을 통한 낮과 빛의 사역이다. 요한복음은 낮과 밤, 빛과 어둠 등의 다양한 대비가 나온다. 이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인 죄에서 인간을 구원하는 사역을 설명하는 단어이다. 9장에는 낮과 밤, 빛과 어둠, 장애인(소경)과 정상인(바리새인)의 대비가 나온다. 이를 통해 일차적으로 예수님이 말씀 하시고자하는 것은 구원은 그 외모의 부족함이나 결함이 있는 자들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을 위한 것이라는 점이다. 오히려 스스로 완전하다고 생각하며, 정상이라고 말하는 자들의 교만함이 구원의 복음을 받아들이기 어렵게 만든다(39~41).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맹인이 되게 하려 함이라 하시니 바리새인 중에 예수와 함께 있던 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이르되 우리도 맹인인가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맹인이 되었더라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요한복음 9:39-41)

 

        이후에 예수님은 소경의 눈을 고쳐주셨다. 그런데 왜 예수님은 소경의 장애와 죄가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다고 말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고쳐 주셨을까? 이는 사회적이며 신체적으로 가장 약하며, 차별 받는 소경을 고쳐 주심으로 구원의 보편성, 누구나 구원을 받는 데 어떤 조건도 요구 되지 않으며, 하물며 안식일이라 하여도 구원이 필요한 자들에게 구원을 베푼다는 것을 보여주시는 예표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바리세인들과 유대인들은 구원도 율법적이며, 사회적인 관습 가운데 이루어져야한다고 생각하면서 예수님의 구원을 완강히 거부하였다. 그러니 예수님께서는 차라리 이들이 소경이었다면 자신의 죄의 상태를 인정하지 못하게 만드는 율법과 사회적인 인정으로부터 자유 했을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소경은 예수님의 치유를 받고 눈을 떠 보았지만 실제로는 예수님을 본적이 없었다. 하지만 소경은 본적 없는 예수님을 하나님에게서 온 존재라고 믿었다. “창세 이후로 맹인으로 난 자의 눈을 뜨게 하였다 함을 듣지 못하였으니 이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아니하였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으리이다”(32~33) 이미 예수님이 말씀하셨듯 그에게 “보지 못하고 믿는”4) 복이 임했던 것이다. 그러나 바리세인들과 유대인들은 그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네가 온전히 죄 가운데서(ἐν ἁμαρτίαις σὺ ἐγεννήθης ὅλος) 나서 우리를 가르치느냐 하고 이에 쫓아내어 보내니라”(34) 이들에게 소경은 자신들이 만든 하나님 나라에서는 제거되어야하며, 쫓아버려야 할 ‘불필요한 존재(고통)’였던 것이다5). 이러한 상황은 여전히 지금도 우리 가운데서 자행되고 있다. 그것도 은밀하고 은폐된 가운데서, 또한 너무나 뻔뻔히 합법적으로 말이다.

 

 

6. 낙태에서 빛으로

 

        “죄 가운데” 이것은 현대에 “불필요한 고통 가운데”라는 말로 바뀌어 우리 사회의 문화와 관습, 윤리적 규율 가운데 자리하고 있다. 비록 태어난 장애인들을 위한 여러 복지 정책과 사회적 인식이 인권이라는 차원에서 개선되고 있지만 과거보다 더 많이, 은밀하게 장애와 장애인은 사회로부터 제거당하고 있다. 태어날 권리조자 부여되지 않기 때문이다. 바리세인들은 눈에 보이는 외모와 현상을 보면서 누구는 죄인, 누구는 의인으로 구별하여 구원이 선별적이라고 생각하였다. 인간다운 삶과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의 삶을 외형과 사람이 정한 구분짓기(정상의 범주)를 통해서 결정했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눈에 보이지 않는 죄가 인간의 근본적인 악이며, 절망이고 고통이라고 말씀하신다. 이를 제거하지 않고 보이는 존재와 현상을 제거하는 것은 오히려 더 큰 죄악을 만들 수 있다고 경고하신다. 그러므로 오늘날 이루어지는 산전검사와 이로 인한 공식적인 낙태가 바로 합법이란 태두리 안에서 은폐되고 합법화 된 인간이 만든 더 크고 추악한 죄이다. 지금도 예수님은 장애인과 장애를 대하는 신자의 태도를 통해 세상을 향해 외치신다. 은폐된 죄를 낮의 밝은 빛 가운데 드러나게 하라고… 그리고 누구든지 어떤 조건에 있든지 하물며 보이지 않고 부모로부터도 거절당한 자궁 속 장애 태아라 할지라도 “당신은 존재해서 참 좋습니다.”라는 말을 들을 귀한 존재라고…, 구원이 필요한 존재라고…. 이렇게 외칠 때에야 비로소 우리가 믿는 복음이 생명을 위한 위대한 구원의 이야기이며 진리라는 사실이 우리 안과 밖에 분명하게 나타날 것이다. 복음은 단순한 사상이나 이론이 아니라 진리이기 때문이다.

 

 

 


1) 스콧 래와 폴 콕스는 산전검사를 일반은총의 측면에서도 이해해야 할 것을 주장한다. 원래 양수 검사의 경우도 낙태를 위한 것이 아니라 태아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도입된 것이다. 이들은 태중의 아이에 대한 정보를 얻어 출산 후에 아이의 건강을 지키기 위한 의료진을 준비하기 위해 산전 검사를 이용하는 것은 이를 일반은총의 차원에서 허용되며 도덕적으로 합당하다고 주장한다(의료윤리, 197).

    이에 반하여 메일렌더는 다양한 산전 검사가 결국은 부모 자신을 기만하는 도구로 사용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기술은 부모가 갖춰야 하는 무조건적인 헌신을 준비시키는 것이 아니라 유한한 존재로서 반드시 거부해야할 책임을 강요하는 것이다. 임신기간은 주어진 자녀를 사랑하기를 배우는 데 쓰여야 할 시간이지 아이의 능력을 평가하고 분석하기 시작하는 시간이 아니다.”(기독교적 관점에서 본 생명윤리, 98) 메일렌더는 아무리 선하게 사용할 것이라고 주장하여도 막상 기대하지 않은 결과가 나왔을 경우 기술이 결국 윤리적으로 바르지 않은 선택을 하도록 강요할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인들이 산전검사를 거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2)  Gilbert Meilaender, "On The New Frontiers Of Genetics And Religion." First Things 58.(1995): 26.

3)   이는 유전병으로 발견되면 약 50%가 30~40대에 발병하게 되며 약 15년 정도의 투병 생활 이후에 죽게 되는 심각한 질병이다. 이는 최근 산전검사와 유전자검사를 통해 허팅턴 질병을 유발하는 유전자를 정확히 찾을 수 있게 되어 유전자 검사에 대한 생명윤리 논의에 주요 쟁점이 되는 주제이다.  

4)      요한복음 20장 29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는 나를 본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5)      장애와 관련하여 두 권의 책, 『장애신학』(김홍덕, 대장간)과 The Bible, Disability, and The Church(Amos Yong, Eerdmans)을 참조할만하다. 논지는 모두 장애에 대한 편견을 버리라는 것이지만 먼저 김홍덕의 책은 많은 분량에 비해 신학적 사색과 깊이에 있어 아쉬운 점이 많다. 그리고 간혹 비약이나 무리한 명제들이 신학적인 정확한 논증 보다는 보수 신학계와 한국교회에 대한 서운함이 앞서는 것처럼 보인다. 또한 김홍덕의 “하나님이 장애인을 창조하셨다.”는 식의 접근은 심정은 이해하고 의도는 알겠지만 충분한 설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위와 달리 풀러 신학교의 Amos Yong의 책은 그야 말로 구약과 신약에 나오는 장애에 대한 성구들을 정확하고 영감 있는 해석을 통해 명확한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백성의 관점을 제시하고 기존의 전체주의 국가의 국민 개념이 투영된 우리들이 지닌 하나님의 백성 개념에 포탄을 던지는 듯 한 충격을 주고 있다.

        위와 관련하여 가장 흥미로운 점은 부활 육체가 어떤 육체인가라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연속성을 주장하지만 그 연속성을 정상인이라는 범주 속에서만 이해하고, 장애는 불연속적이라는 관점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러면서 예수님의 못자국과 창자국을 예로 드는 데, 이를 구속적 표증으로 이해하여 예외적인 경우로 설명할 수도 있지만, 이는 여전히 우리의 약함이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와 능력을 나타내는 표증으로 하나님 나라에서도 동일하게 우리 몸에 남아 있을 수도 있다는 여지를 두게 만든다. 이러한 논증은 부활의 육체에도 정상이라는 표준의 프레임이 있을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단지 정신적인 자기 인식의 차이의 다양성만이 아닌 외적인 육체의 다양성과 개별성도 하나님 나라에서 발견 할 수 있지 않겠냐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이해는 창조, 타락, 구속이라는 신칼빈주의적 기독교 세계관에 약간의 이의를 제기한다. 구속의 완성은 창조의 회복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아담은 인간의 표준이라 할 수 있고, 여기에서 장애는 제거되어야할 악으로 이해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활을 창조의 회복으로만 설명하기에는 부활과 재창조는 더 크고 포괄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장애신학의 접근은 손상이라는 타락한 세상의 상태를 어떻게 접근해야할지 더 넓은 이해를 제공해주는 좋은 자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이 책은 정상이라고 칭하는 사람들을 바로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정상이란 범주 안에서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하는 정상 아닌 정상인이 얼마나 많은가. 그리고 정상 안에서 벗어나는 것을 두려워하면서 수치를 죄책감으로 착각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또 얼마나 많겠는가. 그런다고 모두가 장애를 가지고 있다고 일반화 하는 것도 잠깐 심리적 위로는 될지 모르지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바른 인간관이 필요한데 이에 도움이 될 만한 책이다.

        대체로 장애신학에서는 장애를 해소되어야한 요소가 아니라 인간의 다른 모습으로 이해한다. 그렇다고 장애의 치료를 불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예를 들어 만약 장애가 하나님 나라에서 제거되어야 할 것이라면 산전검사로 장애로 판명된 태아를 낙태하는 것의 빌미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아모스 영은 지적한다. 장애는 불편이며, 이는 누군가의 환대를 통해 해소 되어야 할 것이지 장애 자체가 죄는 아니다. 그러므로 만약 하나님 나라에서 이 땅과 같은 소외가 없고 온전한 환대가 이루어지는 곳이라면 장애인들은 더 이상 결핍이나 손상으로 인식 되지 않고 단순한 인간으로 이해 될 것이다. 그 곳에서 장애의 흔적은 하나님의 은혜의 자국으로 남을 것이다. 그렇다고 장애가 육체적으로도 이 세상과 동일한 모습일 것이라고 상상할 필요는 없다. 부활 육체는 장애의 흔적을 지니지 그자체가 장애는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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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사, 겸손, 위로, 그리고 참된 교회에 대한 열망 - "효력있는 부르심"에 대하여 황원하 목사 (산성교회 담임)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10장은 ‘효력 있는 부르심’에 대해서 말합니다. ‘효력 있는 부르심’이란 하나님이 그분의 경...
    Date2017.03.08 By개혁정론 Views6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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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기고]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설교의 중요성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설교의 중요성 우병훈 교수 (고신대, 신학과)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여러 가지 수단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개인 성경 묵상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수 있습니다. 기도나 성도의 교제나 신앙...
    Date2017.03.02 By개혁정론 Views3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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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하나님과 거룩한 삼위일체’와 우리의 삶

    ‘하나님과 거룩한 삼위일체’와 우리의 삶 황원하 목사 (산성교회 담임) 하나님에 관한 지식은 성경을 읽는 근본적인 목적이며 신학 본연의 주제이다. 즉 우리는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배우며, 신학이라는 학문을 통하여 하나님...
    Date2017.01.30 By개혁정론 Views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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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기고] 성숙한 시민의식과 성숙한 교인의식

    성숙한 시민의식과 성숙한 교인의식 황대우 교수(고신대 개혁주의학술원) 2016년 대한민국 최대의 화재거리는 단연 ‘촛불’과 ‘탄핵’이다. 최순실의 국정농단이 밝혀지면서 민심은 ‘광화문 촛불’로 봉기했다. 주말마다 봉...
    Date2017.01.22 By개혁정론 Views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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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작은 거인, 허 순길 박사님

    작은 거인, 허 순길 박사님 -눈물로 부르는 思師曲 이운연 목사 (여수충일교회 담임) 무슨 사연인지 자세히 알지 못하지만 제가 학교에 입학할 때는 호주에서 목회하고 계셨습니다. 신대원 1학년 가을 학기에 들어오셔서 첫 경건회를 인도하시는데, 와아.. 그...
    Date2017.01.11 By개혁정론 Views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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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개혁신학자 허순길 박사님을 회고하며

    개혁신학자 허순길 박사님을 회고하며 유해무 교수 (고려신학대학원 교의학) 허순길 박사님께서 2017년 1월 10일 오전 3시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작년 6월 말 폐 기능이 약화되면서 산소호흡기의 도움을 받으며 지내시던 중 성탄 직전에 넘어지는 사고...
    Date2017.01.11 By개혁정론 Views27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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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허순길 교수님을 추모하며

    허순길 교수님을 추모하며 이상규 교수 (고신대 신학과) 방금 허순길 교수님의 별세 소식을 듣고 애석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또 한 사람의 고신교회 지도자를 잃게 되었고, 필자 개인으로는 또 한 사람의 은사를 잃게 되었다. 일생동안 고신교회와 고신대학...
    Date2017.01.10 By개혁정론 Views9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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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기고] 종교 개혁의 칭의론과 성화론

    종교 개혁의 칭의론과 성화론 우병훈 교수 (고신대 신학과) 2017년 새해가 밝았지만, 교회적으로 국가적으로 문제가 많은 시점에서 새해를 맞이하기에 마음이 무겁다. 특별히 올해는 루터의 종교 개혁이 일어난 지 500주년이 되는 해이기 때문에 좀 더 진중한...
    Date2017.01.05 By개혁정론 Views3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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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기고] 교회와 정부의 관계를 다시 돌아봄

    교회와 정부의 관계를 다시 돌아봄 유태화 교수 (백석대학교) 최근 우리사회를 보고 있노라면 가슴이 참 답답함을 금할 길이 없다. 최태민에서부터 시작되었고, 최순실 세대에서 걷잡을 수 없이 터져 나온 사건을 방치한 대통령의 역사적인 무념무상의 행태뿐...
    Date2016.12.08 By개혁정론 Views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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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기고] 이신칭의는 개신교의 교리적 면죄부인가?

    이신칭의는 개신교의 교리적 면죄부인가? 황대우 교수 로마서 1장 17절에 근거한 이신칭의(以信稱義)란 “믿음으로만 의롭게 된다”는 교리이다. 이것은 루터의 종교개혁을 한 마디로 정의하는 결정적인 교리이기도 하다. 이후 모든 개신교도들은 ...
    Date2016.12.01 By개혁정론 Views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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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기고] 교회와 사회의 개혁을 위한 미가의 외침

    교회와 사회의 개혁을 위한 미가의 외침 (미가서 6:10-16) 우병훈 교수 (고신대학교) [10] 악인의 집에 아직도 불의한 재물이 있느냐 축소시킨 가증한 에바가 있느냐 [11] 내가 만일 부정한 저울을 썼거나 주머니에 거짓 저울추를 두었으면 깨끗하겠느냐 [12]...
    Date2016.11.08 By개혁정론 Views45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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