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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으로 보여주시던 아버님

 - 고 오병세 박사에 대한 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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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기 원장

(고 오병세 박사 맏사위, 거제교회 장로, 세계로병원 원장)


 

   고 한석 오병세 박사는 201668일 저녁 755분에 하늘의 부르심을 받으셨다. 90의 장수를 누리시다가 노환으로 큰 고생 없이 복된 죽음을 맞으셨다. 맏사위로서 40여 년간 어른의 지도편달을 받으면서 살아 왔는데 이제 기댈 언덕이 없어졌구나 생각하니 가슴 한 구석이 먹먹해 진다. 영민하지 못해 평소의 가르침을 잘 기억하지도 따르지도 못해 죄송하지만 이제 생각나는 몇 가지 어른과 관련된 생활의 단편들을 정리해 본다.

 

임자 수고했제

 

   어른은 말씀을 아주 아끼시는 분이시다. 실천을 중요하게 생각하시지 말을 앞세우는 것을 본 기억이 별로 없다. 그래서 그런지 처가 식구들도 빈말하는 것이나 발라 맞추는 말 하는 것이나 말이 많은 것에는 선천적으로 혐오증을 갖고 있는 것 같다.

   1974년 여름에 어른께서 급성 맹장염에 걸려 복음병원에서 수술을 받으셨다. 마침 2인실이 비어 있어서 장모님도 간호를 위해 같이 계셨다. 불철주야 교단 일로 분주하시던 어른께 입원기간은 장모님과 모처럼 가져 보는 단란한 휴가와도 같았다. 두 분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시다가 자연스레 미국 유학하시던 일로 대화가 옮겨졌다. 1살 된 딸을 남겨두고 만 7년을 공부하고 오신 어른께 장모님은 늘 한 가지 아쉬움이 있었다. 귀국하셔서 한 번도 어른으로부터 수고했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한 것이었다. 1961년에 귀국하셨으니 한 13년을 아무 말 않고 참으셨는데 병실에서 드디어 그 한이 고개를 내민 것이었다.

 

   “요새 젊은 사람들은 한 육 개월만 외국 갔다 와도 자기 처에게 수고했다고 난리인데 어찌 나에게는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가 없습니까?”하고 원망스레 물으셨던 것이다. 어른이 갑자기 도미를 하시는 바람에 생활대책도 세우지 못하고 떠나셔서 장모님은 친정에 얹혀 살게 되었다. 장모님은 사범학교를 나와서 초등학교 교사 자격증이 있었지만 목사 부인은 직업을 가지는 게 아니라는 당시의 통념 때문에 딸과 함께 고생을 많이 하셨다. 물론 어른은 어른대로 미국에서 엄청난 고생을 하셨지만 말이다. “내가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만 들었어도 모든 한이 풀렸을 것인데 어찌 그 말 한 마디를 안 하십니까?”하고 어른께 용기를 내어 섭섭함을 표하신 것이었다.

   그러자 어른께서 하시는 말씀이 내가 돌아 안 왔나, 그리고 박사학위 줄 때 가족에게 같이 주는 준 박사 학위증’ (PHT: Putting Husband Through)을 받아 가지고 안 왔나라고만 말씀 하신 것이다. 구태여 수고했다고 하는 소리나는 말보다 행동으로 하는 말이 더 확실한 것이 아니냐는 그런 말씀인 것 같았다. 미국에서는 박사 학위를 받으면 가족의 희생이 크다고 하여 부인에게도 준 박사 학위증을 주는데, 어른은 장모님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그것을 받아 오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돌아 온 그것이 헌신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라고 보신 것이다. 남자가 결혼 초에 미국을 가서 만 7년을 있다가 돌아온다는 것, 특히 잘 사는 선진국에서 보리 고개가 있던 한국으로 다시 돌아온다는 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가 아니고는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주님이 한국교회를 위한 초석이 되라는 사명을 주셨기에 끝까지 공부를 마칠 수가 있었고 또 귀국하실 수 가 있었던 것이다. 어른은 돌아 온 것 자체가 백 마디 말보다 더 확실한 감사의 표시라고 생각하셨음에 틀림이 없다.

 

   한 사람의 신학자를 만들기까지 장모님의 희생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어른의 도미 후 복중에 있던 아들이 태어났지만 아빠의 얼굴도 못보고 목숨을 잃는 그런 아픔이 있었고, 하나 있는 딸인 우리 집사람도 사흘들이 아파서 병원을 다녀야 했는데 치료비가 없어서 전전긍긍하던 숨 가쁜 나날들도 있었다. 그러나 장모님은 우리들에게 지나 놓고 보니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였다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정신 차릴 수 없는 풍파로 인해 7년 세월이 빨리 지나간 것 같다고 하시면서 그 고난의 세월이 없었다면 아마 견디기가 힘들었을 것이라고 하셨다. ‘이 풍랑 인연하여서 더 빨리 갑니다라는 성도의 고백이 바로 장모님의 고백이셨던 것이다.

 

   그 후 어른이 임자, 그 때 정말 수고했제라는 말씀을 하셨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두고두고 장모님의 수고를 기억하시는 것을 보았다. 교단 일로 연유하여 한 때 온 가족이 진통을 겪는 파동이 있었다. 그 때 한 말씀도 가타부타 않으시고 장모님에게 말없는 지지와 격려를 보내주시던 것을 보면서 그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말이 풍성한 시대이다. 재치와 유머로, 인격을 드러내는 말이 아니라 포장하며 발라 맞추는 말의 홍수 시대에, 침묵과 진정의 가치가 어떠한지를 어른의 삶과 인격을 통해서 배우게 되었다.

 

축의금 장부

 

   신혼여행을 다녀와서 처가에 며칠 머물고 있을 때였다. 어른께서 하루는 나를 2층 서재로 부르셨다. 보통은 응접실이나 안방에서 만나지만, 특별한 일이 있을 때는 꼭 서재로 부르시기 때문에 바짝 긴장이 되어서 올라갔다. 그 때 어른께서는 까만 대학생 가방과 노트 한 권을 내어 놓으셨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는데 알고 보니 그 가방은 결혼 축의금을 넣어 둔 가방이고 노트는 축의금을 정리하기 위한 것이었다. 옹서(翁婿) 간에 앉아서 축의금을 정리하자는 말씀이었다. 그런데 축의금을 정리하는 방식이 좀 특이하였다. 일단 봉투에서 돈을 꺼낸 뒤 봉투에 금액이 얼마인지를 기록하고 봉투는 가나다 순으로 분류하였다. 그리고 분류된 각 항의 봉투를 다시 사전 순서로 재배열하여 그것을 노트에 순서대로 기입하는 것이었다. 장모님은 옹서 간에 축의금 정리하는 것이 보기 좋다면서도 그냥 노트에 적으면 되지 복잡하게 사전식으로 배열할게 뭐 있습니까?”라고 하셨다. 그러자 어른은 이렇게 해야 편하지하시면서 양보를 않으셨다.

 

   그 후 그 가방과 노트는 세 명의 사위를 더 보고 막내인 처남을 장가들일 때도 계속 사용되었다. 단순한 가방과 노트가 아니라 그 속에는 하나님의 은혜와 성도의 교제와 격려와 지지가 담긴 기념비적인 돌이라고 한다면 좀 과장된 표현일까? 결혼식이 있을 때마다 우리는 무더기로 서재에 불려가서 장부 정리를 하곤 하였다. 물론 첫째인 나는 동서들이 늘어날수록 일이 수월해졌음은 말할 것도 없다. 어느 집에 결혼식이 있다 하면 어른은 얼른 서재에 올라가셔서 장부를 찾으신다. 사전식으로 배열되어 있으니 오죽 찾기가 수월하셨을까. 그리고는 어느 집에서 얼마를 했네 하시면서 꼭꼭 인사를 차리셨다. 예수 믿고 은혜로 구원받았다고 기뻐하며 아무렇게나 덤벙덤벙 사는 것이 아니라, 인간관계 속에서도 꼼꼼하게 살필 것은 살펴야 하는 것이 신자된 도리인 것을 삶으로 배우게 되었다.

 

목사의 선택

 

   복음병원에서 근무한 지 1년이 채 안되어서 내가 수련 받았던 부산 백병원으로부터 전임강사로 와서 일하면 좋겠다는 요청이 왔다. 기분이 아주 좋았다. 그곳에 가면 학회도 빨리 진출할 수 있고, 유학도 빨리 갈 수 있고, 무엇보다 병원 사정을 잘 아니 일하기가 수월하였다. 통고 겸 의논 겸 어른께 상의를 드렸다. “부산 백병원에서 오라고 하는데 어쩌면 좋겠습니까?” 젊은 생각에 당연히 잘 되었네하실 줄 알았는데 대답은 정반대셨다. “만약 교회 두 곳에서 청빙이 오면 목사는 양심상 조건이 나쁜 쪽으로 간다고 하셨다. 숫제 가지 말라고 붙잡는 것보다 더한 말씀으로 느껴졌다. 실망감으로 아무 말도 못하고 있는 것이 딱하셨던지 어른이 덧붙이셨다. “꼭 가지 말라는 것은 아니고, 한 열흘 정도 기도해 보고 결정하면 후회가 없으니까 그렇게 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하셨다. 할 수 없이 울며 겨자먹기(?)로 한 열흘 기한하고 새벽기도를 시작하였다. 하지만 안 하던 기도가 갑자기 잘 될 리도 없었는지라 반쯤은 졸고 반쯤은 기도하는 형편이었다. 생 용을 쓰면서 기도 한다고 엎드려도 하나님으로부터는 응답도 없으시고 내 맘에서도 백병원에 대한 미련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구일 째 되던 날 새벽으로 기억이 된다. 이상하게도 기도하는 중에 부산 백병원으로 가면 모든 조건이 다 좋은데 신앙생활은 하기가 힘들겠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그런 분위기 속에서 지내면 신앙을 지켜 내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복음 병원의 여건이 조금 못할지는 모르지만 신앙생활을 위해서는 백병원을 포기해야 되겠다는 결심이 섰다. 비로소 마음이 평안해졌다. 다음날 어른을 찾아뵙고 말씀을 드렸다. “모든 조건이 백병원이 더 좋지만 신앙을 위해서 포기를 하겠습니다.” 어른께서는 매우 흡족한 표정을 지으셨다. 그렇게 흐뭇해하시는 것을 뵌 적이 그 후로도 몇 번이 안 되는 것 같다. 부끄럽지만 나로서도 이 일이 주를 위해 나의 것을 포기한 첫 경험이었다. 그때까지 나는 언제나 선택의 순간이 오면 나의 욕심을 따라 주의 뜻을 포기하곤 했었다.

   돌이켜 보면 사실 나는 아무런 기본 자격도 없이 오 박사의 맏사위가 된 셈인데,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주의 종을 통해 나를 위한 훈련을 시작하신 것이었다. 주를 위해 처음으로 나의 것을 포기했다는 성취감에 나도 이제는 참된 주의 제자가 되었구나하는 그런 우쭐한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나의 자아도취와는 달리 그 걸음은 주님이 나를 훈련시키시기 위한 광야학교의 입문과정이었음을 훨씬 후에야 깨닫게 되었다. 그 후 나는 혹독한 훈련과정을 거치면서 하나님을 진정으로 만나는 은혜를 체험하였다. 그리고 장로가 되고 총장도 되고 선교하는 일에 헌신해서 세계로병원을 세우는 일에 관여하면서 원장도 되었다. 인생의 갈림길에서 바른 신앙의 지도를 해 주신 어른으로 인해 내 인생의 방향이 새롭게 설정된 것이다.

 

   사람이 살면서 늘 당면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선택의 문제이다. 선택의 기로에서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뜻을 찾을 수 있을까? 그 후에도 몇 번 유사한 상황에서 어른의 지도를 받았던 기억이 난다. 그 때마다 한결같이 말씀하시기를 성경에 기록되어 있으면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뜻이니까 그대로 순종하면 된다. 그러나 성경에 명확하게 명시되지 않은 것은 기도하면서 깨달아야 한다. 기도 중에 드는 생각은 하나님의 뜻일 가능성이 많은데 그때는 마음에 기쁨과 평안이 함께 오는 경우가 많다. 그래도 하나님의 뜻을 잘 모르겠으면 신앙이 좋은 분들에게 상의를 하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하셨다.

 

   지금도 목사는 조건 나쁜 쪽으로 간다고 말씀하실 때 느꼈던 충격이 내 가슴에는 생생하다.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의지할 때 우리는 비로소 이런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외적인 조건에 연연하지 않고, 하나님의 선하신 인도를 신뢰하면서, 제자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참 제자가 되기를 오늘도 다짐해 본다.

 

남편된 죄

 

   내가 부산 백병원 소아과 전공의 1년차 때의 일이다. 당직 근무를 하고 있는데 장모님께서 전화를 하셨다. 내일이 고신대학교 영문과 교수 채용을 위한 원서 마감일인데, 집사람이 거기에 지원원서를 내 보면 어떻겠느냐는 것이었다. 집사람은 그때 당시 야간 고등학교 교사로 있으면서 낮에는 대학에서 시간강사를 하고 있었다. 사전에 장모님은 어른에게 큰딸이 고신대학교에 지원 원서를 내보면 어떻겠느냐고 의논을 하신 모양인데, 어른께서는 구체적인 이유는 밝히시지 않으신 채 분위기가 도저히 불가능하니 내지 말라고 하셨던 모양이다. 그러나 장모님의 생각은 어른과는 좀 달랐다. 자식이 자격이 없으면 모르지만 자격이 있는데 아버지 때문에 못 내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신 것이었다. 장모님 말씀은 아버지 덕을 보려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 동등한 권리를 누리게 해 달라는 것이었다.

 

   장모님은 전화로 내게 말씀하시길 자격이 있는데 원서를 못 내어서야 되겠는가? 그러나 나는 남편의 입장을 뻔히 아는 아내로서 도저히 남편에게 그 말을 할 수가 없다.”고 하셨다. 그러나 사위로서는 말할 수 있으니까 어른께 전화로 원서를 내겠다는 말씀을 드리라는 것이다. 어른의 입장을 아는 나로서도 도저히 그런 말씀을 드릴 수가 없었다. 원서를 내면 뭔지는 모르지만 곤란해지실 사정이 뻔한데 말이다. 오죽 하셨으면 딸의 지원을 막으셨을까.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남편으로서 아내가 저렇게 발버둥을 치는데 가만있는 것이 미안했다. 결혼 한지 3년째인데 집사람은 아직도 시간강사 신세였다. 고등학교 야간 3년을 눈물로 지새는 게 너무 안스러웠다. 우리 집에 시집와서 잘되면 좋을 터인데 일이 풀리지를 않으니 미안하기도 하고, 무능한 남편인 것 같아 움츠러들기도 하였다.

 

   “그래 남편 된 죄로 전화를 드리자.” 뭐라고 전화를 드렸는지, 또 뭐라고 말씀을 하셨는지 정확한 기억이 지금은 없다. 단지 말씀을 드리니 전화를 통해 어른이 길게 한숨을 쉬시던 한숨 소리만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그 일이 있은 지 18년쯤 지나서 장모님으로부터 들은 얘기인데 그날 밤 어른께서는 서재에서 한 숨도 못 주무시고 밤을 꼬박 세우셨다고 하였다.

 

   집사람과 장모님이 교수직에 그렇게 연연하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어른이 미국 가고 안 계실 동안 장모님이 우리 집사람을 딸겸 친구겸 해서 키우셨는데 딸에게는 지속적으로 대학 교수가 되면 좋겠다는 꿈을 심으셨던 모양이다. 집사람도 은연중에 대학교수가 되는 것을 인생의 꿈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꿈이 잡힐 듯 하면서도 잡히지를 않으니 애가 타는 상태였다. 어른은 어른대로 어릴 적부터 곁에서 딸에게 사랑을 베풀어 주지도 못했는데, 자격 있는 딸의 지원까지 막으려고 하니 온갖 생각이 다 드셨을 것이다.

 

   그 해 집사람은 지원할 후보지가 네 군데가 생겼는데 설마 한 군데는 되지 않을까 하는 은근한 기대가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저런 이유로 하나씩하나씩 희망이 사라져 갔다. 그 네 곳 중에서는 신라대학교가 가장 조건이 좋은 학교였으나 가능성은 거의 전무했다. 하루는 버스를 타고 신라대학교 앞을 지나가는데 집사람이 말이 저 학교가 제일 좋은데, 나는 불가능하다면서 자조적인 웃음을 지었다. 얼마나 마음이 아팠던지 모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때부터 내 마음에는 소망이 생겼다. 지금 생각해도 참 신기한 일이었다. 인간이 생각할 때 전혀 가망성이 없으니 이제 하나님께서 손을 써 주시지 않겠는가하는 막연한 기대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은 우리 삶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일종의 계시였다. 그 때 집사람이 신라대학교에 지원하게 된 동기는 지금 생각해도 어처구니가 없다. 여동생의 친구가 서무과에 근무하고 있었는데 그 아이 말이 자기가 서무과장을 잘 알아서 부탁 해 볼 수가 있으니까 원서 한 번 내 보라는 강청에 지원을 했던 것이다. 이사장 줄을 붙잡아도 시원찮을 판에 서무과 아이 말을 듣고 지원했으니 우리의 다급함은 그 정도였다. 그런데 그 해 한 명을 채용하기로 한 학교 방침이 갑자기 바뀌었다. 영문과 교수 한 분이 개학 직전 다른 학교로 영전해 가는 바람에 갑자기 두 명을 채용하게 된 것이다. 그 덕에, 사실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이지만, 집사람이 신라대학교에 들어갈 수 있었다. 돌이켜 보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인도였음을 부인할 길이 없다. 그러면서 또한 생각되어지는 것은 딸 때문에 한 밤을 지세우신 주의 종이 얼마나 간절하게 하나님께 기도하셨을까 하는 것이다. 종의 간절한 기도를 긍휼이 많으신 우리 하나님이 들어 주셨음에 틀림이 없다. ‘무슨 일이 있으면 간절히 기도하는 것’, 이것은 어른의 철칙이었기 때문이다. 자식들은 주의 종의 기도를 통해 이루어 놓은 열매를 먹고 산다고 해도 그것은 조금도 과장된 표현이 아니라고 나는 지금도 생각한다.

 

   이제 주의 종은 더 이상 우리와 함께 이 땅에 계시지는 않지만 삶과 인격으로 보여주신 그 값진 교훈들은 우리 자녀들 가슴 속에 생생하게 살아있다. 공과 사를 엄격히 구별하시고 학교와 교단을 위해서라면 희생을 마다 않으시던 그 종의 자세가 감사하고, 철저히 기도로 하나님 앞에 매어 달리시던 신본주의 신앙의 교훈이 감사하다. 더 오래 사셔서 배후에서 기도해 주시고 인생길 막힐 때마다 자녀손들의 귀한 길잡이가 되어 주시기를 바라지만, 하나님께서는 이제 주의 종을 영원한 안식의 자리로 부르셨다.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시고 믿음을 지켰으니 의로우신 재판장께서 의의 면류관 주시려고 주의 종을 부르신 것이다.

 

   장례식을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잘 마쳤다. 은혜로운 입관예배, 위로예배, 발인예배와 하관예배, 각 예배를 집례해 주신 주의 종들과 교회들과 총회장을 비롯한 임원들, 감격어린 고신대학교 총장의 조사, 큰 사랑과 성도의 교제를 표해 주신 애정 어린 문상들, 그리고 영광스러운 구원의 은혜, 이 모든 사랑과 은혜에 감격하면서 머리 숙여 깊은 감사를 드린다. 고인의 장례를 통해 우리 주님 홀로 영광을 받으시기를 기도한다.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할까.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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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혁신학자 허순길 박사님을 회고하며 유해무 교수 (고려신학대학원 교의학) 허순길 박사님께서 2017년 1월 10일 오전 3시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작년 6월 말 폐 기능이 약화되면서 산소호흡기의 도움을 받으며 지내시던 중 성탄 직전에 넘어지는 사고...
    Date2017.01.11 By개혁정론 Views27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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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허순길 교수님을 추모하며

    허순길 교수님을 추모하며 이상규 교수 (고신대 신학과) 방금 허순길 교수님의 별세 소식을 듣고 애석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또 한 사람의 고신교회 지도자를 잃게 되었고, 필자 개인으로는 또 한 사람의 은사를 잃게 되었다. 일생동안 고신교회와 고신대학...
    Date2017.01.10 By개혁정론 Views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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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기고] 종교 개혁의 칭의론과 성화론

    종교 개혁의 칭의론과 성화론 우병훈 교수 (고신대 신학과) 2017년 새해가 밝았지만, 교회적으로 국가적으로 문제가 많은 시점에서 새해를 맞이하기에 마음이 무겁다. 특별히 올해는 루터의 종교 개혁이 일어난 지 500주년이 되는 해이기 때문에 좀 더 진중한...
    Date2017.01.05 By개혁정론 Views3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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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기고] 교회와 정부의 관계를 다시 돌아봄

    교회와 정부의 관계를 다시 돌아봄 유태화 교수 (백석대학교) 최근 우리사회를 보고 있노라면 가슴이 참 답답함을 금할 길이 없다. 최태민에서부터 시작되었고, 최순실 세대에서 걷잡을 수 없이 터져 나온 사건을 방치한 대통령의 역사적인 무념무상의 행태뿐...
    Date2016.12.08 By개혁정론 Views5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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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기고] 이신칭의는 개신교의 교리적 면죄부인가?

    이신칭의는 개신교의 교리적 면죄부인가? 황대우 교수 로마서 1장 17절에 근거한 이신칭의(以信稱義)란 “믿음으로만 의롭게 된다”는 교리이다. 이것은 루터의 종교개혁을 한 마디로 정의하는 결정적인 교리이기도 하다. 이후 모든 개신교도들은 ...
    Date2016.12.01 By개혁정론 Views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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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기고] 교회와 사회의 개혁을 위한 미가의 외침

    교회와 사회의 개혁을 위한 미가의 외침 (미가서 6:10-16) 우병훈 교수 (고신대학교) [10] 악인의 집에 아직도 불의한 재물이 있느냐 축소시킨 가증한 에바가 있느냐 [11] 내가 만일 부정한 저울을 썼거나 주머니에 거짓 저울추를 두었으면 깨끗하겠느냐 [12]...
    Date2016.11.08 By개혁정론 Views45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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