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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글은 2018년 8월 목회와 신학에 기고된 글입니다. - 편집자 주

 

 

 

심방 예배(설교), 꼭 드려야 하나?
 


안재경.png

 

안재경 목사

(온생명교회)
 


가면 갈수록 심방하기가 쉽지 않다. 교인들은 자기 집 현관을 열어서 교역자를 집으로 초대하기를 원치 않는다. 집 내부를 보이기 싫어한다. 바쁘고 힘든 생활을 하는데 집까지 치워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 자신의 집을 내 보였는데 이런 저런 말을 듣는 것도 싫고 말이다. 개인주의가 팽배한 탓일까? 개인주의라고 몰아붙이기 힘든 실정이다. 로마교회에서도 사제가 교인들의 가정을 심방하는 것이 힘들기 때문에 고육지책으로 ‘가정축복예식’을 가진다. 이것은 신자의 집 현관에 서서 그 집을 축복하는 예식을 말한다. 사제가 집 앞에 서서 그 집을 축복하고는 돌아간다. 이것은 마치 사제를 불러 세워두고서는 자신의 집을 축복해 주고는 가라고 하는 것과 다를 바가 아니다. 이제는 교인의 집 현관을 들어서는 것 자체가 너무나 힘들게 되었다.

   신자들이 집을 오픈하는 것을 너무나 힘들어 함에도 불구하고 심방은 꼭 필요하다. 심방은 단순한 집 방문이 아니다. 심방은 교인들의 삶을 돌아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교인들의 형편을 돌아보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예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예배로 끝나서는 안된다. 예배한 교인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예배를 통해서 말씀을 받은 교인들이 그 말씀대로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심방이다. 그렇다면 요즘 목회 방법론으로 두 날개라는 것이 유행하고 있지만 예배와 심방을 두 날개라고 생각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심방하지 않는 목사는 교인들의 목사이기를 포기한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한국교회가 대형화되면서 담임목사는 설교만 하고 교인들의 가정을 심방하지 않고, 소위 말하는 부목사들은 설교는 하지 못하고 교인들의 가정을 열심히 심방해야 하니 이게 어찌된 노릇인가?
   심방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많은 신자들은 교역자가 가정으로 찾아와서 예배해 주는 시간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과연 그런가? ‘심방예배, 꼭 드려야 하나?’라는 질문은 이미 회의적인 시각을 담고 있다. 예배 없는 심방이 가능한지 물어보자. 아니, 예배 없는 심방이어야 하는 이유를 살펴보자.

 


1. 심방은 자유로운 분위기가 중요하다.

심방을 어떻게 할 것이냐가 문제이다. 교인들이 심방을 피하려는 것은 심방이 너무 형식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봄, 가을 대심방이라고 해서 날짜를 정해놓고 교역자를 포함하여 구역장, 권사 등 여러 사람들이 가정을 심방하는 것은 이제 피해야 하지 않을까? 이런 경우에는 심방하는 시간도 30분 안으로 후다닥 해치우고(?) 다른 가정으로 이동한다. 하루에 10가정을 방문하는 것도 흔한 일이다. 행사하듯이 해치우는 것이다. 이런 경우에는 심방 매뉴얼이 정해져 있다. 예배가 전부이다. 다 같이 둘러앉으면 목사는 예배를 인도한다. 찬송하고, 정해진 기도자가 기도하고, 목사는 성경 한 구절을 읽고 설교한다. 그리고는 기도제목이 있는지 물어보고, 그 제목을 가지고 기도하고 주기도문 등으로 마친다. 심방을 하면 예배를 해야 하고, 설교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심방할 때는 예배를 할 필요가 없다. ‘예배 없는 기독교인의 모임이 바람직한가’라고 의문을 제기할 것이다. 특히, 교역자가 교인의 가정을 심방하는데 예배하지 않는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고 말할 것이다. 예배가 없다면 인간적인 모임과 다를 바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아니다. 우리는 기독교인의 모든 모임에 예배라는 명칭을 붙이지만 사실 예배라는 명칭을 제한할 필요가 있다. 주일에 온 회중이 함께 모여 직분자의 인도를 따라 하나님께 나아가고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을 (공)예배라고 불러야 한다. 이 예배에는 은혜의 방편(말씀, 성례, 기도)이 자리잡고 있다. 이런 공예배 외에 몇몇 교인들이 영적인 필요를 따라 모이는 것은 경건활동이다. 기도회라고 부르면 되겠다. 그렇다면 심방시에 굳이 예배할 필요가 없다. 심방예배라는 말을 사용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심방이 너무나 형식적이기에 교인들이 심방하러 온 교역자에게 말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 자신들의 개인적인 문제를 내어 놓으려고 하기가 쉽지 않다. 로마교회에서는 고해성사가 있기에 사제에게 자신들의 죄를 솔직하게 고백해야 한다. 그래야 죄용서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개신교회에서는 이런 부담이 없다. 그렇기에 가정심방은 아주 형식적이 되기 쉽다. 게다가 교역자가 심방가서 ‘예배하자’고 하면 심방받는 가정에서는 할 것이 없다. 그냥 편하게 예배에 수동적으로 참여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심방은 예배 없이 자유롭게 삶을 나누는 자리가 되어야 한다.

   심방은 교인들의 형편을 돌아보는 것이기 때문에 교역자가 일방적으로 예배를 인도하고 설교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 심방시에는 간단하게 기도로 시작하고서는 그 교인 가정의 가정상황이나 삶의 문제를 진솔하게 나누는 것이 좋다, ‘요즘 어떻게 지냅니까?’라는 질문으로 시작하여 자연스럽게 삶의 문제를 나누는 것이 좋다. 교회생활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가정생활은 어떤지, 요즘 직장이나 사업에서 어려움은 없는지 자유롭게 나누는 것이 좋다. 꼬치 꼬치 캐묻기 보다는 자연스럽게 삶의 문제를 나눌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가정심방 때에는 꼭 예배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버려야 한다.

 


2. 개인이 아닌 가정을 심방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심방은 가정심방이다. 가정방문이다. 옛날에 초등학교를 다닐 때 교사가 가정방문을 하지 않았는가? 교사가 학생의 가정을 찾아와서 부모와 대화하면서 자녀에 대해 나누곤 했다. 심방도 이와 같다고 보면 된다. 교인의 가정을 방문하는 것이 심방이다. 부모는 자녀와 함께 심방을 받는 것이 좋다. 교회는 언약의 가정을 심방할 책임이 있다. 특히, 목사와 장로는 언약의 가정을 심방할 책임이 있다. 교회는 자녀에게 유아세례를 베푼 것을 기억해야 한다. 부모는 자기 자녀에게 유아세례를 받게 하면서 서약한 것을 명심해야 한다. “그대들은 부모로서 이 아이가 성장함을 따라서 그대들의 힘을 다하여 주님이 교양과 훈계로 이 자녀를 교육하고 교육받게 하며, 또한 친히 사람의 본분을 이 아이에게 보이기를 힘쓰며, 이 아이를 위해 기도하고 함께 기도하기로 약속하십니까?” 이 서약의 내용을 확인하는 자리가 심방이다.


   심방은 온 가족이 함께 모일 수 있는 시간에 심방하는 것이 좋다. 낮 시간에 집에 있는 여성도를 방문하는 심방을 바꾸어야 한다는 말이다. 문제는 온 가족이 함께 모이기가 힘들다는 사실이다. 현대사회의 가장 큰 문제 중에 하나이다. 한 주간 내도록 가족들이 식탁에서 함께 식사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인데 어떻게 가족 전체가 한 자리에 모일 수 있을 것인가? 온 가족이 함께 모이는 날과 시간을 잡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말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 가족이 함께 있는 시간에 심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가정심방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온 가족이 모일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온 가족이 함께 있는 시간에 심방을 하면 가족들이 할 말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할 것인데,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서로의 이야기를 할 수 없다면 심방의 효과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심방은 가족이 평상시에 할 수 없었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 교역자의 이야기를 일방적으로 전하고 돌아가는 시간이 되어서는 안된다. 충분히 시간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하루에 10가정까지 심방하는 일을 삼가야 할 것이다. 하루에 한 두 가정을 심방하는 것으로 족하다. 저녁시간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주말이어야 하기 십상이다. 주중에, 그것도 낮에 매일 10가정 가까이 심방하는 방식을 재고해야 한다는 말이다.

   특히, 가정심방이기 때문에 온 가족이 있는 시간에 심방을 하면서 가족들이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좋다. 아빠는 아이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자녀들은 부모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야 한다. 아마도 긴장이 될 것이다. 가정에서 부모와 자녀가 함께 기도하고 말씀을 나누고 있는지 물어보면 거짓말을 할 수도 없고, 곤혹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심방의 시간이 꼭 필요하다. 세상에서도 밥상머리교육이라는 것이 유행하고 있는데 언약의 가정은 더더욱 온 가족이 함께 하는 시간을 가져야 하지 않겠는가? 심방이 바로 이렇게 언약가정을 격려하는 자리라는 것을 알아야 하겠다.

 


3. 심방의 주제를 정하는 것이 좋겠다.

심방은 해마다 반복되기 때문에 형식적이 되기 쉽다. 신앙생활에서도 반복이 중요하기 때문에 반복 자체가 문제되는 것은 아니다. 끊임없는 돌아봄 속에 우리의 믿음이 굳세어진다. 심방이 반복되어야 할 또 다른 이유는 우리의 삶이 끊임없이 바뀌기 때문이다. 우리 주위의 환경이 수시로 바뀌기 때문에 신자의 삶은 항상 요동치고 있다. 그렇기에 신자의 삶을 끊임없이 돌아보는 것이 필요하다. 교역자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개인적인, 그리고 가정의 경건생활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물어야 한다. 교회가 신자 가정의 필요를 어떻게 도와주어야 할지를 물어야 한다. 심방이 교인들의 민원을 들어주는 자리라는 뜻이 아니다. 교회에 대해 불평불만을 늘어놓는 자기가 되어서는 안된다. 도리어, 신자들이 교회에서 어떻게 예배하고 교제하며 생활할지를 물어야 할 것이다.

   심방은 1시간 이상, 2시간 정도동안 충분히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필요하다. 요즘 어떻게 사는지, 어떤 힘든 일이 있는지 자유롭게 나누는 것이 좋다.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교회라면 여전도사가 심방을 많이 한다. 요즘은 맞벌이 부부가 많지만 그래도 전업주부가 많이 있기 때문에 여전도사가 주부들을 심방한다. 여전도사가 심방할 때 교회의 문제를 가지고 평가하는 시간이 되는 것을 조심해야 하겠다. 교인들의 흉허물을 논하는 자리가 되어서는 안된다. 그리고 심방은 개인적인 하소연을 들어주는 자리가 아니다. 상담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해서도 안된다. 공적인 심방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가정심방이기에 가정에서 어떻게 경건생활을 하는지 물어보아야 한다. 아마 이것이 가장 곤혹스러울 것이다. 부모가 자녀와 함께 기도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이런 심방시간을 통해 자녀들과 함께 말씀보고 기도하기를 격려 받는 자리가 되는 것이 얼마나 복된 일인가. 사람은 결심해도 쉽게 바꾸기 않기 때문에 소위 말하는 가정예배를 지속하기가 쉽지 않다. 부모가 자녀들에게 ‘성경이야기’를 읽어주는 것이 쉽지 않다. 이에 심방을 통해 다시 한번 더 가정에서 함께 기도하는 것을 격려 받는다. 이것이 심방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다. 가정이 말 그대로 언약의 가정이 되기를 격려 받는 것 말이다. 아무리 바쁘고 힘들더라도 가족이 함께 기도하고, 함께 말씀을 나누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상기하게 된다.

   심방이 식상해지지 않기 위해서는 경건생활에 대해 나누어야 할 뿐만 아니라 심방의 주제를 정하는 것이 좋다. 심방주제는 교인들의 구체적인 삶을 돌아보는 것이어야 한다. 예를 들어 올해 온생명교회는 심방주제를 ‘경건생활과 신자의 고난’으로 정했다. 1년 가까이 베드로전서 말씀을 주일낮예배시간에 설교했기 때문에 베드로전서의 주제인 ‘고난받는 삶’에 관해 나누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신자가 고난을 당할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를 나누는 것이 합당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작년에는 종교개혁500주년을 맞은 해였기 때문에 ‘종교개혁의 5대 오직’을 주제로 정하여 오늘날 종교개혁의 정신을 어떻게 구현할 수 있을지를 나누었다. 이렇게 심방의 주제를 정하고 그 주제에 관해 생각하는 기회를 주고 이 주제를 같이 나누면 온 교회가 한 몸처럼 설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될 수 있다.

 


4. 성경 한 구절 읽고 기도하고 마치면 된다.

심방이 또 한 번의 예배가 아니라 삶을 진솔하게 나누는 시간이라고 하면 상담시간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심방에는 분명히 상담의 역할이 있다는 것을 부인하기 힘들다. 교인의 하소연을 들어주어야 한다. 몇 시간이라도 들어주어야 한다. 시간을 정해 놓는 것이 좋겠지만 시간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 하지만 심방은 교역자가, 그리고 장로가 실제적인 문제에 대해 상담을 해 주는 시간이 아니다. 개인적인 경험, 인간적인 경험을 들려주는 시간이 아니다. 자신의 경험으로 어설픈 위로를 하려고 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교회에서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고 지시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된다. 심방은 공적인 방문이기에 그 심방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나타나야 한다.

   심방하면서 또 한 번의 예배를 할 필요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방은 하나님의 말씀과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심방은 주일의 설교와 연결되어 있다. 심방은 매 주일마다 선포되는 설교가 신자의 삶에서 어떻게 구현되고 있는지를 돌아보는 것이다. 심방은 일상의 삶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적용되는 것을 돌아보는 시간이다. 그렇다면 지난 주일 설교가 무엇이었는지, 그 설교를 어떻게 묵상했는지, 그 설교를 가지고 어떻게 살았는지를 묻는 것도 포함되어야 한다. 이렇게 장로가 심방하고 나서 당회로 모여서 교인들이 말씀을 어떻게 받고 있는지를 나누고, 교인들에게 더 필요한 말씀이 어떤 것인지를 나누고서 목사가 설교를 준비한다. 심방은 설교로부터 동력을 받아 시작되고, 심방의 결과 다시 새로운 설교로 이어진다.

   1시간 이상 충분히 이야기를 나누고 난 다음에 목사는 성경구절을 한 구절 읽고 기도하므로 마치면 좋겠다. 이 성경구절은 심방주제에 맞는 성경구절을 정해 놓는 것이 좋겠다. 이것은 설교가 아니다. 유럽의 개혁교회에서는 공예배의 설교와 달리 이렇게 심방 등에서 하는 목사의 말을 ‘권면하는 말’이라고 규정한다. 특정한 성경구절에 대한 간단한 해설과 적용이라고 보면 되겠다. 권면하는 말이 사사로운 말씀이라는 뜻이 아니다. 온 회중을 향한 말씀이 아니라 개개인, 그리고 개별 가정의 형편에 맞는 권면의 말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이 말씀을 무시해서는 안된다. 목사는 짧게 전하는 말씀이라도, 그 말씀을 잘 준비해야 한다. 그 가정에 적확한 권면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목사는 한 해 동안 심방하면서 모든 가정에 동일한 성경구절을 가지고 마지막 권면을 할 수 있다. 매 가정마다 다른 성경구절을 가지고 권면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 심방을 통해 충분히 이야기를 나눈 내용을 바탕으로 하여서 동일한 말씀을 가지고 권면해도 된다. 한편, 심방의 적실성을 위해서는 미리 권면할 성경구절을 정해 놓지 않을 수도 있다. 심방시 대화하다가 그 가정에 꼭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말씀이 떠오르면 그 성경구절을 읽고 간단하게 권면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이런 방식을 취하려면 평상시에 말씀을 많이 묵상하고 있어야 적실성있는 권면이 가능할 것이다. 이런 방식에는 위험도 따른다. 미리 준비한 말씀이 아니기에 즉흥성에 좌우되기 때문이다.


   * ‘심방예배, 꼭 드려야 하나?’라는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심방예배를 꼭 드릴 필요는 없다. 특히, 교역자가 또 한 번의 설교를 할 필요가 없다. 성경말씀으로 권면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 아니다. 심방은 사사로운 방문이 아니라 직분자의 공적인 방문이기에 엄중한 시간이다. 그 공적인 방문에서 사사로운 인간의 말들만 오고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공적으로 나타나야 한다. 하지만 굳이 예배나 설교일 이유는 없다. 심방은 소규모 예배와 설교가 아니라 예배와 설교의 구체적이고 생생한 적용이다. 이제는 심방의 방식이 달라져야 한다. 심방이 고리타분한 모습에서 벗어나 생생하고 실질적이어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 가정을 방문하셔서 우리를 위로하시고, 우리에게 권면하셨다고 하는 말을 들을 수 있어야 하겠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직분자가 왜 자기 가정을 방문하는가를 아는 것이다. 직분자의 심방은 하나님의 방문이다. 이것을 알지 못하면 직분자의 심방을 받지 않겠다고 하기 쉽다. 교회행사의 하나로 생각하기 쉽다. 아니다. 심방은 하나님께서 직분자를 통해 자기 백성을 찾아오시는 것이다. 하나님이 자기를 찾아오시고 돌아보기를 원하는 신자는 직분자의 심방을 받아야 한다. 하나님은 공중에서 음성을 들려주는 방식으로 자기 백성을 찾아오시는 것이 아니다. 직분자의 심방이 곧 하나님의 찾아오심이다. 이렇게 직분자의 심방을 하나님의 찾아오심으로 받는 이들이 복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직분자들의 심방을 통해 자기 백성을 친히 찾아가신다. 네덜란드의 끌라스 스킬더라는 유명한 신학자는 『그리스도와 문화』라는 책에서 장로의 심방이 세상을 변혁시키는 가장 실제적이고 효과적인 길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사도바울이 죄수의 몸으로 로마에 들어갔을 때 지중해 전체가 변화되는 시작이었듯이 말씀에 붙들린 직분자가 신자의 가정을 찾아가는 것이야말로 이 세상을 새롭게 하는 길이 될 것이다. 신자가 세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기에 심방을 통해 말씀이 어떻게 열매 맺는지를 살펴보는 것이야말로 세상을 변혁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길이 된다. 심방 잘하는 직분자가 복된 신자를 만든다. 심방은 신자의 가정 뿐만 아니라 세상을 새롭게 하는 가장 복된 방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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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국가적 비상상황과 공예배에 대한 신학적⦁목회적 성찰 -고려신학대학원 교수회

    <본 글은 고신총회 신학위원장의 요청으로 고려신학대학원 교수회가 작성하였습니다> 국가적 비상상황과 공예배에 대한 신학적⦁목회적 성찰 고려신학대학원 교수회 1. 코로나 19 바이러스의 빠른 전파로 인해 한국 사회 전체가 큰 고통을 받고 있다. 특히 성...
    Date2020.02.27 By개혁정론 Views215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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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성경이 나를 읽어내고, 나의 삶으로 성경을 읽어내는 데까지 나아가야 (강영안 교수 인터뷰)

    성경이 나를 읽어내고, 나의 삶으로 성경을 읽어내는 데까지 나아가야 개혁정론이 강영안 교수(미국 칼빈신학교)와의 대담을 진행했다. 미국에서 교수 중인 강 교수가 겨울을 맞아 우리들교회(김양재 목사)와 교회를 위한 신학 포럼에서 강의를 진행했다. 이...
    Date2020.02.14 By개혁정론 Views2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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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네덜란드 자매교회 총회를 참석하고

    네덜란드 자매교회 총회를 참석하고 김재윤 교수 (고려신학대학원 교수) 우리는 고신교회 사절로 자매교단인 네덜란드 개혁교회(해방)의 2020년 총회의 첫 주간을 함께 하였다. 우리 교단 총회는 매년 한 차례, 한 주간만을 모이는 반면에 자매교단 총회는 3...
    Date2020.01.23 By개혁정론 Views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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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노회는 장로회교회의 꽃이다

    2019년 12월 17일(화) 오후 2시 신촌강서교회(황신기 목사 시무)당에서 수도권노회 임원초청 ‘제9회 서울포럼’(위원장 유상현목사) 소포럼이 열렸다. 당일 발표된 김중락 교수의 논문을 아래에 싣는다. - 편집자 주 <2019년 12월 17일 수도권노회...
    Date2020.01.09 By개혁정론 Views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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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사설] 제7차 개정헌법 헌의안, 총...
[사설] 총회장은 교단의 수장이 아...
[사설] 명예집사와 명예권사, 허용...
[사설] 총회가 계파정치에 함몰되지...
[사설] 최근에 일어난 고려신학대학...
세계로교회 예배당 폐쇄 조치를 접하며 3
[사설] 총회(노회)가 모일 때 온라...
총회가 졸속으로 진행되지 않으려면
[사설] 누가 고신교회의 질서와 성...
공적 금식과 공적 기도를 선포하자
칼럼
왕처럼 살고 싶습니까? 왕처럼 나누...
푸틴의 머릿속에 있는 그림
백신 의무 접종과 교회 (3부)
백신 의무 접종과 교회(2부); 교회...
백신 의무 접종과 교회 (1부)
우리 악수할까요?
두려움으로부터의 해방 (Peter Holt...
관심을 가지고 보십시오.
동성애 문제에 대한 두 교단의 서로...
하나님께서는 역사의 잘못을 통해서...
기고
직분자 임직식에서 성도의 역할
죽음을 어떻게 맞을까를 잠시 생각하며
제73회 총회가 남긴 몇 가지 과제
전임목사는 시찰위원으로 선정될 수...
고신교회와 고재수 교수; 우리가 왜...
왜 고재수는 네덜란드에서 고려신학...
제73회 총회를 스케치하다
신학생 보내기 운동에 대한 진지한 ...
명예 직분 허용이 가져다 줄 위험한...
[고신 70주년에 즈음하여 9] 고신교...
논문
송상석 목사에 대한 교회사적 평가 ...
송상석 목사와 고신 교단 (나삼진 ...
송상석 목사의 목회와 설교 (신재철...
네덜란드 개혁교회 예식서에 있어서...
제7차 헌법개정초안(2022년 6월) 분...
제7차 헌법개정초안(2022년 6월) 분...
제7차 헌법개정초안 예배지침 부분...
제7차 헌법개정초안(2022년 6월) 분...
SFC 강령의 “전통적 웨스트민스터 ...
지역교회의 적정 규모(規模 size)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