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문을 환영합니다.
최종편집
조회 수 1884 추천 수 1 댓글 1

 

 

지난 6월 6일 전국 SFC 동문대회가 열렸다. 그곳에서 좋은 특강이 있었는데, 본보는 특강 강의안을 아래와 같이 게재한다.

 

 

개혁신앙인은 현대과학을 어떻게 볼 것인가?

 

 

 

성영은.jpg

 

 

 

 

 

 

 

 

 

 

 

 

성영은 교수

(서울대학교 화학생물공학부)

 

 

(주: 이 글은 2018년 6월 5-6일 대구 팔공산 맥섬석 유스호스텔에서 열린 2018 SFC 동문가족대회에서 행한 강연의 구두발표를 그대로 옮긴 것이다. 원고로 정리된 글은 SFC 동문잡지인 「개혁신앙」에 실릴 예정이다.)

 

 

 

   2년 전 SFC 어느 대학생 집회에서 언급된 진화 창조론(유신 진화론, 하나님이 진화를 수단이나 과정으로 사용하여 창조하셨다는 주장) 문제를 고신 총회에 질의했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오늘 이 SFC 동문가족대회에서의 신앙과 과학 강의를 준비하면서 그 일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비록 제가 고신을 떠났지만 여전히 고신 교회를 사랑하고 여러 통로로 교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중 하나가 서울대 SFC 지도교수인데 내일도 1학기 종강모임에서 강의하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강의를 형제로서 또 SFC 동문으로서 사랑하는 심정으로 들어주시길 바랍니다.

   저는 한국교회가 ‘신앙과 과학’ 하면 항상 ‘창조와 진화’라는 주제로 좁혀 생각하는 태도를 무척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과학은 얼마나 넓고 깊은지 모릅니다. 신앙과 과학에서 다루어야 할 내용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신앙으로 과학에서 공부 할 일이 엄청나게 우리 앞에 있는데 ‘창조와 진화’라는 특정 주제 하나에 매달려 그것으로 편을 가르는 일은 슬픈 일입니다. 심지어 그것으로 신자와 불신자를 구분하려는 태도를 보이는 것은 도에 지나친 일입니다. 자녀가 진화론을 받아들이거나 그에 대해 우호적으로 이야기하면 마치 신앙에서 떠난 것처럼 생각하곤 합니다. 정말 그럴까요?  

   그래서 저는 강연을 다니면서 이 주제는 잘 다루지 않습니다. 이 주제에 대해서 생각은 많지만 아직 제대로 된 글을 쓰지도 않았습니다. 그런 논쟁에 들어가는 것은 한국교회에서 아직 시기상조이고 불필요한 힘의 낭비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한국교회가 과학에 대한 기초 체력을 먼저 좀 길러야 한다고 생각하여 그에 대한 강의에 힘쓰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우리 자녀들이 이런 논쟁 속에서도 과학시대를 살아갈 교인으로서 과학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가지지 않고 과학을 자신의 소명으로 알고 살아갈 것을 강의하며 다닙니다. 이를 위해 종교개혁이 과학에 미친 영향을 다룬 『케플러 신앙의 빛으로 우주의 신비를 보다』(성약출판사, 2011)라는 책과, 과학의 다양한 주제들을 다룬 간단한 책(『창세기 1장으로 본 과학』(성영은, 베른 S. 포이트레스, 코넬리스 반 담 공저, 성약출판사, 2015)을 쓴 적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어느 강의를 가든 강의가 끝나고 나면 “그런데 교수님은 진화론을 믿습니까?”라는 질문이 나옵니다. 저는 진화론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에 대한 이해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소위 창조과학(창조론)을 받아들이는 것도 아닙니다. 그 주장을 하는 분이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로서 수고하는 것은 잘 알지만 결국 성경을 과학의 위치로 낮추고 성경의 풍부함을 하나님의 창조로 좁히는 점 때문입니다.

   창조와 진화, 이 주제에 대해 결론적으로 말하면 우리는 모릅니다. 하나님의 창조 자체는 믿지만 소위 우리가 알고 있는 창조의 방식이 정말 맞는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과학에서도 진화론에 관한 많은 주장과 증거를 제시하지만 모릅니다. 오래 전 사람이 있기도 전에 있었던 일이라 증거가 변변치 않기 때문입니다. 또 기원이라는 주제 자체가 다분히 과학의 영역을 벗어납니다. 그러니 솔직히 모른다 하고 겸손히 주님께 맡기고 가야 할 일입니다. 아마 주님이 다시 오실 때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창조가 우리가 생각했던 것과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고 모두 부끄러워 할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창조는 깊고 깊으며 우리의 생각을 넘어서는 신비입니다. 하나님의 창조는 창조냐 진화냐 라는 주제로 담기에는 너무 넓고 깊은 주제입니다. 성경에 조금 말씀해 주신 것으로 너무 강하게 확신하는 것은 교만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신자로서 묵상하고, 또 매일 과학의 새로운 발견을 접하는 과학 현장에 있는 저의 답입니다.

   진화론이 유신론을 지지한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진화 창조론(유신 진화론)으로 해결을 하려 하지만,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점은 1996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진화론을 받아들이면서 선포한 “인간의 육체는 진화의 결과이고 영혼은 하나님이 주신 것” 이라는 중세 이후 로마 가톨릭 교회가 주장해온 몸과 영혼을 이원론으로 구분하는 그 이상의 답을 내기가 쉽지 않아 보입니다.

 

인간과 인간의 소명에 대한 신앙 교리와 진화 사이에는 아무런 대립도 없다……인간의 육체가 그 이전의 생물체에 기원을 두고 있다 하더라도 그 영혼은 하느님께서 직접 창조하신 것이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담화, 「생명의 기원과 그 진화에 관한 연구와 교회」(1996))

 

   반대로 진화론을 받아들이면 무신론을 받아들인다거나 하나님의 창조를 부정한다고 바로 말하기도 어렵습니다. 진화론을 받아들이는 크리스천 과학자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진화론으로 하나님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고 고백합니다. 그들의 고백이 거짓이라고 쉽게 말할 수 있을까요? 진화론이 자연과학인지 여전히 논란 중이지만 넓은 의미에서 과학의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과학은 상대적 진리이고 언제든 증거가 나오면 폐기되거나 바뀝니다. 진화론도 과학의 한 이론으로 넓게 이해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특히 과학적 사고로 자란 우리 자녀들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우리 젊은이들을 이런 문제로 교회 밖으로 밀어내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물론 『이기적 유전자』 등으로 유명한 도킨스처럼 진화론을 이용하여 종교적 신념을 주장하는 일은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진화론의 철학적, 신학적 문제에 대해서는 과학 바깥의 도움이 필요할 것입니다. 

   이런 넓은 태도는 개혁신앙을 가진 신자가 가질 수 있는 태도입니다. 개혁신앙의 핵심이 겸손이기 때문입니다. 개혁신앙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합니다. SFC의 하나님 중심, 성경 중심, 교회 중심이 이런 개혁신앙을 잘 표현한 것이 아닙니까? 하나님 중심! 우리가 무엇으로 웨스트민스터 대소교리문답 1문답의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 분을 즐길 수 있나요? 우리는 그런 자격이 없는 존재입니다. 오직 하나님 아버지의 인자와 자비, 즉 언약의 사랑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하나님 중심을 고백한다고 우리를 더 높이거나 자랑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 중심을 말하지만 실은 내가 내 것이 아니고 구주 예수 그리스도 것이라는 고백, 그것이 나의 유일한 위로라는 고백을 할 뿐입니다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1문).

   성경 중심은 어떤가요? 우리가 성경에 대해 아는 것이 무엇인가요? 겨우 성령께서 알려주시는 것 조금 알 뿐입니다. 그것도 말로 알뿐 행할 능력도 없습니다. 오히려 내가 아는 한 가지를 마치 성경이 말하는 전부인 것처럼 착각하고 고집을 피우는 일만 하는 우리들이 아닌가요? 하나들은 말씀으로 남을 판단하는데 익숙한 우리들이 아닌가요? 우리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 얼마나 무지한지 일생 겸손해야 할 뿐입니다. 그것이 성경 중심을 고백하는 바른 태도라 생각합니다.

   교회 중심은 어떤가요? 우리가 무슨 교회 중심을 말할 자격이 있나요? 주님의 몸을 끊임없이 찢고 더럽히는 존재들이 아닌가요? 어디 주님의 교회다운 교회를 세우고 있다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나요? 저는 작년부터 주의 몸을 찢은 교회에서 가난하게 예배드리면서 이 땅에서 개혁신자의 삶은 겸손 또 겸손이라는 것을 절감하며 살고 있습니다. 교회 이야기만 나오면 주님 앞에 부끄럽고 죄송하여 고개를 들 수 없습니다. 어제 밤 강령 제창할 때도 마찬가지 심정이었습니다.

   이런 개혁신자의 태도가 신앙과 과학을 말할 때도 꼭 필요한 태도입니다. 하나님은 창조에 대해 많은 말씀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아는 하나님의 창조의 내용이 얼마나 빈약한가를 알고 겸손해야 합니다. 말씀에서 말한 만큼만 말하고 멈춰야 합니다. 반대로 그러면 우리가 현대과학은 잘 아는가요? 아니 현대과학의 그 풍부한 내용을 알려고 노력하는가요? 자녀들이 과학 수업에서 무엇을 배우는지 아나요? 현대과학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또 여러분이 옛날 학교 다닐 때 배웠던 것보다 더 풍성합니다. 매일매일 더 풍성해지고 있습니다. 과학 앞에서도 우리의 무지를 알고 겸손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와 우리 자녀들이 이 풍부한 과학으로 우리 신앙을 더 풍성하게 만들면 좋겠습니다. 과학시대 신자는 이 과학을 우리 신앙생활 안으로 끌고 들어와야 합니다. 개혁신앙은 과학은 하나님의 선물임을 잘 말해주기에 그것이 가능합니다.

   오늘 강의에서 성경의 창조를 믿는 나의 과학이 바른가 한번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과학의 기원 문제를 성경으로 받아들이기에 현재 여러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적어도 시간문제(소위 6천년이냐 150억년이냐)와 35만종의 식물과 150만종이 넘는 동물의 그 다양성 앞에서는 좀 열린 마음이 필요할지 모르겠습니다. 과학은 성경과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점도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 강의를 통해 남을 판단하기 전에 나 자신을 먼저 돌아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심정으로 이 강의를 준비했습니다. 따뜻한 사랑의 마음으로 포용하는 SFC 동문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우리 자녀들이 이 시대를 이기는 주님의 용사들로 설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현대과학의 내용 중 몇 가지를 살펴보겠습니다. 

 

(1) 하나님이 만드신 크고 큰 우주

   우주의 크기를 아시나요? 하늘에 별이 몇 개 있다고 들었습니까? 현재 우리가 사는 은하계에는 약 1천억 개의 별이 있다 합니다. 사람이 셀 수 없고 수학에서나 가능한 수입니다. 요즘은 억이나 심지어 조라는 단위를 우습게 여기지만 1억 개만 해도 얼마나 큰지 1초에 한 개씩 세어 3년을 꼬박 세어야 셀 수 있을 만큼 큰 수입니다.     

   하루에 잠도 자고 밥도 먹어가면서 8시간씩 10초에 한 개를 세면 100년 동안 세어야 1억을 셀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한평생 우리 은하 속의 별의 수도 다 셀 수 없습니다. 인간은 그만큼 제한적인 존재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빛이 150억 년을 달려가야 끝에 도달할 정도로 크고 큰 우주에 별이 1천억 개나 들어 있는 우리 은하와 같은 은하들을 약 1천억 개 이상 만드셨습니다.

   1822년 영국의 멘텔 부부가 공룡화석을 처음 발견했을 때 사람들은 공룡의 그 엄청난 크기와 낯선 모습을 보고 충격에 빠졌습니다. 하나님이 이런 괴물을 만들었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과학(특히 뉴턴의 고전역학)이 이제 잘 확립되어 하나님의 창조를 과학적으로 받아들이기에 아무 문제없던 그 시기에 왜 하나님은 공룡 화석을 발견케 하여 사람들에게 혼란을 주었을까요? 오늘날 현대인에게 이 큰 우주도 마찬가지인 듯합니다. 네덜란드 자유대학교 철학과 페일스 교수의 말을 들어 보겠습니다. 

 

현대과학은 시간적으로 우주는 지금부터 138억 년 전에 만들어졌는데도 인류는 겨우 20만 년 전에 출현했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긴 우주 역사의 0.00145%밖에 차지하지 않는 보잘 것 없는 인간의 역사를 볼 때 인간을 가치 있고 소중히 여기는 하나님이 있다는 주장은 틀렸다는 것이다, 그들은 우주의 역사를 하루, 즉 24시간으로 잡을 경우 인간은 이 우주에 밤11시 59분 48초 정도가 돼서야 출현한 것으로 볼 수 있으며, 이처럼 우주 역사의 대부분을 인간과 무관하게 또 인간을 그렇게 보잘 것 없는 존재로 창조한 것을 보면 하나님이 없다고 주장한다. 또 하나님이 있다면 공간적으로 우리 은하에 1천억 개의 별이 있고, 그런 은하가 최고 2천억 개나 있음에도 인간을 겨우 모퉁이에 있는 하나의 별의 그것도 그 중 하나의 행성에만 있도록 창조했을 리가 없다는 주장이다. 더구나 이 우주의 시공간 대부분은 인간이 살기에 극히 부적합한데 하나님이 존재한다면 어떻게 이런 우주를 만들었겠느냐는 것이다. (페일스·성영은, “현대과학이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는가?”, 월드뷰, 2017년 5월호)

 

   페일스 교수의 말처럼 이 큰 우주는, 이 큰 우주를 밝혀낸 과학은 현대인들에게 하나님의 창조와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가요? 여러분의 자녀들은 또 우리 교회 젊은이들은 이런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 것 같습니까? 마음속으로는 하나님이 왜 150억 광년이나 되는 이 큰 우주를 만들어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시는가는 생각이 들지는 않으십니까? 왜 공룡을 만들어 신앙에 혼란을 주는가 했던 19세기 초 신앙인들의 태도와 비슷한 심정은 없습니까?

   우주의 크기에 대해서는 논란은 있지만 대체로 빛이 150억년은 달려야 할 정도로 크다 합니다. 중세나 근세 때는 우주의 끝이 이 태양계 내의 토성이었습니다. 이 세상이 그렇게 크지 않으니 우주 바깥의 하나님이 계신 하늘도 이해하기가 쉬웠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주는 150억 광년 크기입니다. 하나님은 이 우주 바깥에 계시는 것일까요? 만일 그렇다면 우리와 너무 멀리 떨어져 계시는 것이 아닌가요? 아니면 하나님이 계신 하늘은 어디에 있을까요? 우리가 매주 드리는 예배와 또 성찬식의 성찬 자리가 하나님 앞이라는 것을 어떻게 생생히 느낄 수 있을까요? 이런 모든 질문을 던지게 하는 이 큰 우주는 하나님이 마치 욥의 입을 막으시듯이 신자들의 교만을 막으시고 겸손케 하시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2) 하나님이 만드신 작고 작은 세상

   하나님은 원자라는 작고 작은 레고 조각으로 이 세상을 이루도록 하셨습니다. 원자의 크기가 얼마나 작은지 모릅니다. 우리가 마시는 물 한 모금 속에 물 입자(분자, 수소 원자 2개와 산소 원자 1개) 수가 이 우주 속의 별들 숫자보다 많습니다. 이 물 한 모금 속에 있는 원자의 수는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의 모래 알갱이 수와 비슷합니다. 하나님께는 이 우주를 만드신 일이 어려우셨을까요, 아니면 이 작고 작은 원자의 세계를 만드신 일이 어려우셨을까요?

   우리는 지금 이 순간 예수님이 이 땅에서 숨 쉬셨던 그 공기 원자들 몇 십 개씩을 매번 들이키며 살고 있습니다. 사람으로 오신 예수님이 호흡하셨던 그 공기 원자들 말입니다. 또 예수님의 몸을 이루셨던 그 원자 몇 개가 지금 우리의 몸을 이루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이 좀 더 생생하게 느껴지지 않나요? 온 인류, 온 자연 생태계가 처음 창조 때부터 이 원자를 낭비 없이 서로 공유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원자는 나이를 먹지 않습니다. 원자로 이루어진 분자나 물질은 다 나이를 먹지만 원자는 아닙니다. 우리 몸도 나이 들면 죽어 다 썩고 심지어 변하지 않을 것 같은 돌멩이도 세월이 흐르면 다 부스러져 다시 원자로 돌아갑니다. 원자는 처음 만들어질 때 그대로로 또 다른 생명체나 물질을 이룹니다. 그리고 원자보다 작은 빛도 나이를 먹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피조물 가운데 원자와 빛만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시간과 공간도 다 변합니다. 신기하지 않나요?

   현대과학은 우리가 사는 3차원 공간, 과거에서 현재를 거쳐 미래로 흐르는 시간까지 합쳐 4차원보다 더 큰 고차원 세상은 그 크기가 이 원자와 같은 ‘작은’ 세상이라 말합니다. 사실상 거리 개념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인터스텔라’라는 영화를 보면 지구와 멀리 떨어진 블랙홀 바깥의 5차원 세상에 있는 주인공이 지구에 있는 딸의 방 바로 옆에 있는 것으로 그려집니다. 5차원에서는 멀고 가깝다는 공간의 거리 개념이 없어진 것입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이 우주 초기에는 이 세상 전부가 원자보다 더 작은 한 점에 모여 있었다는 빅뱅이론을 주장합니다. 반대로 세상 끝에는 이 크고 큰 우주가 작고 작은 한 점으로 다시 모아질 블랙홀을 말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죽은 스티븐 호킹이 이 큰 우주와 이 작은 빅뱅이나 블랙홀이 결국 하나라는 생각 하에 하나의 과학 이론으로 설명해 보려 했던 사람입니다. 현대과학은 크다, 작다의 우리의 개념을 뒤흔들고 있습니다. 걸리버 여행기가 연상되지 않습니까? 우리는 흔히 크고 큰 우주를 보고 하나님의 위대함을 말합니다. 대신 작은 것은 왜소하다고 깔보고 무시합니다. 그러나 현대과학으로 이 작고 작은 세상을 보면 작은 것이 또한 하나님의 위대함을 말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왜소한 인간이기에 큰 우주가 위대해 보이고 작은 것은 우습게 보이지만 하나님께는 아닙니다. 맞는 것 같나요?

 

(3) 하나님이 만드신 신비한 생명

   21세기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컴퓨터 덕분으로 이전과 전혀 다른 세상이 되었습니다. 인류가 지금까지 축적한 정보량이 매년 2배씩 늘어나고 있다 합니다. 물론 그 정보의 가치나 질적 수준은 다 다르겠지요. 아무튼 이제 빅데이터를 활용한 자율 주행차, 인공두뇌, 제조업까지 인간 없이 생산되는 4차 산업혁명 등이 우리 눈앞까지 와있습니다. 인간이 컴퓨터에게 밀려나는 형국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현대과학이 밝힌 DNA는 하나님이 인간 생명을 컴퓨터처럼 만드셨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컴퓨터는 0과 1의 두 수의 이진법으로 정보를 저장하고 활용하는데 반해 생명체의 DNA는 4진법(A, C, G, T라는 네 개의 분자 배열)을 사용하여 훨씬 더 고차원의 정보 저장 및 활용이 가능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인간의 몸 안의 각 세포마다 약 2m쯤 되는 이 DNA를 가지고 있는데, 우리 몸을 이루는 총 40~100조 개의 세포가 가진 DNA 총 길이는 1천 6백억 km쯤으로 지구와 태양을 500번 왕복하는 거리입니다. 이 길고 긴 DNA에 들어있는 정보로 우리가 생명 활동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DNA는 살아 있는 존재가 아니라 화학 물질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이 화학 물질이 어떤 명령에 의해 우리의 생명을 유지시키는 것입니다. 이는 놀라운 신비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몸의 어떤 세포에게 어떤 명령을 해 본적 있습니까? 우리가 각 세포에게 무엇을 하라고 명령하지도 않는데, 우리 몸의 모든 세포는 한순간도 쉬지 않고 세포 속 유전자를 사용하여 생명 활동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DNA에 의한 생명 활동은 미생물, 식물, 동물, 그리고 인간에 이르기까지 동일합니다. 이것이 무엇을 말할까요? 과학에서 말하는 이 생명과 성경에서 말하는 생명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현대과학은 셀 수 없이 다양한 미생물과 식물, 그리고 동물들을 체계적으로 분류하여 전부 그 이름을 붙이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약 35만 종의 식물과 150만 종의 동물을 체계적으로 분류하고 이들 각각에 이름까지 다 붙였습니다. 심지어 지구상에 사라진 공룡들조차 종별로 다 분류하여 그 이름을 붙이고 있습니다. 현대과학에서는 아직 이름을 못 붙인 생명체의 종까지 다 합치면 생명체의 종류는 약 500만종은 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습니다. 생명체의 다양성은 하나님의 창조에서 볼 수 있는 큰 특징입니다. 높고 크신 하나님을 알면 그분이 창조하신 생명의 방대함과 그 다양성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많은 종류의 식물과 동물을 하나님께서 태초에 일시에 만드셨을까요? 혹시 우리가 아직 이해를 못하기에 마음을 좀 열어야 할 어떤 것은 없을까요?

 

(4) 하나님이 만드신 시간

   현대과학의 상대성 이론은 우리의 환경에 따라 시간이 변한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무거운 물체 가까이 있거나 아주 빠르게 움직이면 시간은 느리게 흐릅니다. 즉 지상에 가까이 살수록, 그리고 부지런히 움직일수록 아주 작지만 더 오래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현재 GPS(티맵과 같은 휴대폰 길안내나 네이버지도 등)에서는 이 변하는 시간을 계속 고쳐가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시간이 변하는 것은 고대로부터 아우구스티누스(어거스틴) 등이 말한 시간은 하나님의 피조물이라는 사실을 잘 알게 해줍니다. ‘인터스텔라’라는 영화에 보면 중력이 강한 어느 별에 몇 시간 다녀왔는데 지구 시간으로 수십 년이 흐른 장면이 나옵니다. 중력이 아주 강하게 당기면 시간조차도 당겨져(실제로는 공간이 당겨져) 시간이 아주 느리게 흐르는 것은 영화 속 이야기가 아니고 사실입니다.

   MIT에서 가르치다가 현재 이스라엘 와이즈만 연구소에 있는 슈뢰더 박사는 이 상대성 이론에 기초해서 창세기 1장의 날들을 설명합니다. 그는 빅뱅 이론을 지지하면서 또 유대인으로서 창세기 1장을 믿기에 창세기 1장의 첫째 날은 우리 시간으로 80억 년, 둘째 날은 40억 년, 셋째 날은 20억 년이라 주장합니다(이정배 역, 『신의 과학』, 범양사, 2000). 우주 초기에 모든 우주가 한 점에 모여 있었기에 중력이 엄청나게 커서 시간이 그렇게 아주 느리게 흘렀다는 것입니다. 요지는 시간의 간격이 환경에 따라 달라지기에 창세기 1장의 하루를 꼭 지금의 24시간으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럴듯한가요? 여담이지만 그럴 듯한 것을 쉽게 믿는 것도 좋은 태도가 아닙니다. 과학의 오랜 시간과 창세기 1장의 날들을 조화롭게 설명해 보려는 시도는 아주 많습니다. 그런 주장들을 한번쯤 귀담아 들어보는 것은 유익할 것입니다.

   빛은 나이를 먹지 않습니다. 오늘밤 북쪽 하늘을 보면 470광년 떨어져 있는 북극성에서 조선시대인 지금으로부터 470년 전에 출발한 빛이 이제야 도착해서 북극성의 존재를 알려줄 것입니다. 오늘밤 보는 북극성은 470년 전의 북극성입니다. 빛이 470년 전의 정보를 가지고 도착했지만 470년 전의 그 빛 그대로입니다. 470년을 달려오는 동안 변하지 않습니다. 같은 논리로 150억 광년 떨어진 우주의 끝 가장 먼별에서 온 빛은 150억 년 전의 빛입니다. 그런데 이 빛이 진짜 150억 년 전에 출발했는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그 별 빛이 지구로 오고 있는 상태로 창조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과학은 그 사실을 알 길이 없기에 가장 긴 시간인 150억년을 말 할 뿐입니다. 이런 점에서 과학과 우리 신앙의 대화 가능성은 충분히 있을 것입니다.

 시간에 대해 오늘 못한 이야기도 많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영원이란 무엇일까요? 끝없이 긴 시간일까요? 수학에서 말하는 시간의 무한대가 영원일까요? 시간이 피조물이라면 영원하신 하나님이 어떻게 피조물인 시간 속의 우리와 교제하실까요?

 

   강의를 마무리하겠습니다. 오늘 강의를 통해 현대과학을 조금이라도 맛보았었기를 바랍니다. 과학은 하나님이 없다거나 성경이 틀렸다는 증거를 절대 제시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그런 일 하라고 과학을 주시지 않았고 실제로 과학은 그렇게 할 수도 없습니다. 과학의 기원론이 결코 성경을 무너뜨릴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그런 믿음이 꼭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 강의를 통해 신앙과 과학은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점도 늘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과학이 사용하는 세상(우주), 물질, 생명, 시간, 공간은 성경에서 말하는 세상, 생명, 영원, 하늘과 다른 언어입니다. 이런 이해들이 있으면 우리는 현대과학을 좀 더 여유롭게 바라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 자녀들에게 신앙으로 과학을 할 것을 적극 권할 수 있을 것입니다. 현대과학을 바라볼 때 우리의 신앙인 개혁신앙이 꼭 필요합니다.

 

 

 

< 저작권자 ⓒ 개혁정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 ?
    우병훈 2018.06.21 11:23
    귀한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요즘 창조에 대한 입장들을 정리해 보고 있습니다.
    겸손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느낍니다....

  1. 하나님의 테러(?)

    하나님의 테러(?) 고덕길 목사 (이슬라마바드 한인교회 담임) 1993년 7월 27일 김포공항을 출발하여 30 시간이 넘는 지루하고 초조한 비행 후에 텔아비브 국제공항에 도착하였습니다. 지루한건 당연히 장시간의 비행 때문이었는데 나리타를 거쳐 방콕과 아테...
    Date2021.03.27 By개혁정론 Views267
    Read More
  2.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지킨 비결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지킨 비결 고덕길 목사 (이슬라마바드 한인교회 담임)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에서 400여년간 종살이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들은 그곳에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지킬 수 있었을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의 선민의...
    Date2021.03.22 By개혁정론 Views488
    Read More
  3. 집사를 세우기까지

    집사를 세우기까지 정중현 목사 (광교장로교회) “… 대한 예수교 장로회 광교장로교회 집사 된 것을 내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공포하노라!” 2021년 3월 첫 주일, 이 공포로 광교장로교회 역사상 첫 세 명의 집사가 세워졌습니다...
    Date2021.03.18 By개혁정론 Views1049
    Read More
  4. 성경의 지명은 어떻게 번역해야 할까?

    성경의 지명은 어떻게 번역해야 할까? 고덕길 목사 (이슬라마바드 한인교회 담임) 파키스탄의 수도 이슬라마바드는 ‘이슬람’과 ‘아바드’라는 두 개의 단어가 합쳐진 말입니다. 이슬람은 복종의 의미를 갖는 종교 이슬람을 뜻하는 아...
    Date2021.02.16 By개혁정론 Views924
    Read More
  5. 이스라엘의 토라교육 현장

    이스라엘의 토라교육 현장 고덕길 목사 (이슬라마바드 한인교회 담임) 우리 애들은 이스라엘의 공립 초, 중, 고등학교를 나왔습니다. 큰 아들은 초등학교 4학년부터 고등학교 2학년까지 다녔고, 작은 아들은 유치원부터 초등학교 5학년까지 다녔습니다. 오늘...
    Date2021.02.02 By개혁정론 Views602
    Read More
  6. 정인아! 정인아!

    정인아! 정인아! 노상규 (상내백교회 담임목사) 정인이 사건이 알려지며 온 국민이 아프다. 나도 많이 아프다. 그냥 아픔을 삭이며 하나님 앞에 토하려다가 몰아치는 생각들을 정리하기 위해 컴퓨터 앞에 앉는다. ✯ 거대한 물결 지금 대한민국에는 거대한 분...
    Date2021.01.06 By개혁정론 Views670
    Read More
  7. 송구영신예배와 신년예배를 어떻게 지킬 것인가?

    송구영신예배와 신년예배를 어떻게 지킬 것인가? 안재경 목사 (온생명교회) 송구영신예배가 문제라는데요? 한국교회는 대부분 송구영신예배를 합니다. 신자들이 동해로 몰려가 일출을 맞는다든지, 제야(除夜)의 종소리를 듣기 위해 시내에 나가는 것보다는 예...
    Date2020.12.31 By개혁정론 Views3062
    Read More
  8. 성탄절, 꼭 지켜야 하는가?

    성탄절, 꼭 지켜야 하는가? 안재경 목사 (온생명교회 담임) “이제 마리아의 처녀성과 그녀의 출산은, 주의 죽음이 역시 감추어졌듯이 이 세대의 통치자들로부터 숨겨졌습니다. 하나님의 침묵 속에서 성취되었지만, 이러한 것들은 크게 선포되어야 할 세...
    Date2020.12.23 By개혁정론 Views1520
    Read More
  9. 목사 생활비 호봉제 제안

    목사 생활비 호봉제 제안 황원하 목사 (대구산성교회) 우리 교단 목사의 생활비는 시무하는 개체 교회가 결정해서 집행한다. 따라서 목사 생활비는 그가 시무하는 교회의 형편에 따라 다르다. 어떤 목사는 생활비를 많이 받지만, 어떤 목사는 적게 받는다. 목...
    Date2020.12.09 By개혁정론 Views1806
    Read More
  10. 총회재판국 판결에 나타난 절차적 문제

    총회재판국 판결에 나타난 절차적 문제 황대우 교수 (고신대 개혁주의학술원) 최근 경기서부노회는 부천C교회에 관한 사건에 대해 기소위원회를 조직하여 사건을 세밀하게 조사하였으나 노회재판부원의 자격에 따른 장로 자격자 미비로 재판부를 조직할 수가 ...
    Date2020.09.16 By개혁정론 Views2710
    Read More
  11. 정부의 교회 소모임 금지명령은 정당한가?

    정부의 교회 소모임 금지명령은 정당한가? 황대우 교수 (고신대 개혁주의학술원) 지난 7월 8일 정부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즉 중대본을 통해 예배 이외의 소모임을 금지하는 명령을 발동했다. 지금까지 정부의 기조는 코로나 19 방역규정을 준수할 것을 교...
    Date2020.07.10 By개혁정론 Views518
    Read More
  12. 코로나 19 사태와 이에 따른 목회환경에 대한 합신 교단의 대응 방안에 대한 제언

    코로나 19가 장기화 되는 가운데, 각 교회가 어떻게 교회의 사명을 감당할 지 고민에 빠졌다. 백신과 치료제가 나오기 전까지는 비상상황 가운데 적절한 방식을 따라 일상을 살아가야 한다. 이에 예장 합신 총회 임원회는 총회신학연구위에 교회가 어떻게 해...
    Date2020.06.22 By개혁정론 Views517
    Read More
  13. 코로나 사태, 교회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코로나 사태, 교회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이성호 교수 (고려신학대학원) 코로나 19 바이러스로 인해 고통 중에 있는 모든 성도들께 삼위 하나님의 평강이 넘치기를 원합니다. 한두 달 정도면 마무리 될 줄 알았던 코로나 사태...
    Date2020.05.27 By개혁정론 Views3471
    Read More
  14. “인터넷 성찬”이 가능한가?

    “인터넷 성찬”이 가능한가? 우병훈 교수 (고신대 신학과) 1. 들어가며 “인터넷 예배”에 대한 논쟁이 한창인 가운데, 이제 “인터넷 성찬”에 대한 논쟁까지 발전하고 있다. 이 글은 성경적 원리와 신학적 원리에서 봤을 때...
    Date2020.04.06 By개혁정론 Views4897
    Read More
  15. 코로나19에 대해 전문가에게 묻다

    코로나 19와 관련해 전문가에게 물었습니다. 고신대학교 복음병원 호흡기내과 옥철호 교수께서 답해 주셨습니다. 1. 코로나는 얼마나 전염력이 강하고 얼마나 심각한가요? ☞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는 기존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10배에서 50배정도로 전염력이...
    Date2020.03.30 By개혁정론 Views359
    Read More
  16. 그 무엇도 방해하지 못하는 복음

    그 무엇도 방해하지 못하는 복음 고덕길 목사 (이슬라마바드 한인교회 담임) 복음을 전하는데 장애 요인이 많은 곳에서 사는 자들은 항상 형언할 수 없는 뭔가 답답한 마음을 간직한 채 살아갈 수밖에 없는 괴로움이 있습니다. 하물며 복음을 전하다 감옥에 ...
    Date2020.03.25 By개혁정론 Views748
    Read More
  17. 국가적 비상상황과 공예배에 대한 신학적⦁목회적 성찰 -고려신학대학원 교수회

    <본 글은 고신총회 신학위원장의 요청으로 고려신학대학원 교수회가 작성하였습니다> 국가적 비상상황과 공예배에 대한 신학적⦁목회적 성찰 고려신학대학원 교수회 1. 코로나 19 바이러스의 빠른 전파로 인해 한국 사회 전체가 큰 고통을 받고 있다. 특히 성...
    Date2020.02.27 By개혁정론 Views21584
    Read More
  18. 성경이 나를 읽어내고, 나의 삶으로 성경을 읽어내는 데까지 나아가야 (강영안 교수 인터뷰)

    성경이 나를 읽어내고, 나의 삶으로 성경을 읽어내는 데까지 나아가야 개혁정론이 강영안 교수(미국 칼빈신학교)와의 대담을 진행했다. 미국에서 교수 중인 강 교수가 겨울을 맞아 우리들교회(김양재 목사)와 교회를 위한 신학 포럼에서 강의를 진행했다. 이...
    Date2020.02.14 By개혁정론 Views2526
    Read More
  19. 네덜란드 자매교회 총회를 참석하고

    네덜란드 자매교회 총회를 참석하고 김재윤 교수 (고려신학대학원 교수) 우리는 고신교회 사절로 자매교단인 네덜란드 개혁교회(해방)의 2020년 총회의 첫 주간을 함께 하였다. 우리 교단 총회는 매년 한 차례, 한 주간만을 모이는 반면에 자매교단 총회는 3...
    Date2020.01.23 By개혁정론 Views572
    Read More
  20. 노회는 장로회교회의 꽃이다

    2019년 12월 17일(화) 오후 2시 신촌강서교회(황신기 목사 시무)당에서 수도권노회 임원초청 ‘제9회 서울포럼’(위원장 유상현목사) 소포럼이 열렸다. 당일 발표된 김중락 교수의 논문을 아래에 싣는다. - 편집자 주 <2019년 12월 17일 수도권노회...
    Date2020.01.09 By개혁정론 Views1037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Next
/ 9
사설
[사설] 성찬상을 모독하지 마라
[사설] 제7차 개정헌법 헌의안, 총...
[사설] 총회장은 교단의 수장이 아...
[사설] 명예집사와 명예권사, 허용...
[사설] 총회가 계파정치에 함몰되지...
[사설] 최근에 일어난 고려신학대학...
세계로교회 예배당 폐쇄 조치를 접하며 3
[사설] 총회(노회)가 모일 때 온라...
총회가 졸속으로 진행되지 않으려면
[사설] 누가 고신교회의 질서와 성...
칼럼
왕처럼 살고 싶습니까? 왕처럼 나누...
푸틴의 머릿속에 있는 그림
백신 의무 접종과 교회 (3부)
백신 의무 접종과 교회(2부); 교회...
백신 의무 접종과 교회 (1부)
우리 악수할까요?
두려움으로부터의 해방 (Peter Holt...
관심을 가지고 보십시오.
동성애 문제에 대한 두 교단의 서로...
하나님께서는 역사의 잘못을 통해서...
기고
직분자 임직식에서 성도의 역할
죽음을 어떻게 맞을까를 잠시 생각하며
제73회 총회가 남긴 몇 가지 과제
전임목사는 시찰위원으로 선정될 수...
고신교회와 고재수 교수; 우리가 왜...
왜 고재수는 네덜란드에서 고려신학...
제73회 총회를 스케치하다
신학생 보내기 운동에 대한 진지한 ...
명예 직분 허용이 가져다 줄 위험한...
[고신 70주년에 즈음하여 9] 고신교...
논문
송상석 목사에 대한 교회사적 평가 ...
송상석 목사와 고신 교단 (나삼진 ...
송상석 목사의 목회와 설교 (신재철...
네덜란드 개혁교회 예식서에 있어서...
제7차 헌법개정초안(2022년 6월) 분...
제7차 헌법개정초안(2022년 6월) 분...
제7차 헌법개정초안 예배지침 부분...
제7차 헌법개정초안(2022년 6월) 분...
SFC 강령의 “전통적 웨스트민스터 ...
지역교회의 적정 규모(規模 size)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