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문을 환영합니다.
최종편집



침묵과 겸손으로 순례자의 삶을 사셨던 

오병세 목사님을 추억하며

 


 

13480083_1008890425832722_1604753447_n.jpg 

오재경 목사

(조카손자, 향상교회-LA 선한청지기 교회 공동유학목사)

 

 

한 목사님이 이런 말씀하셨습니다. “신구약 성경은 예수라는 꽃 한 송이를 피우기 위해 장구한 세월에 걸쳐 형성되었다제 삶의 나침반과 같은 분이셨으며, 일평생 예수라는 꽃 한 송이를 피우기 위해 하나님 앞에서 침묵과 겸손으로 순례자의 삶을 사셨던 작은 할아버지 고 오병세 목사님을 추억합니다.

 

1. 침묵

우리는 필요 이상의 말들이 넘쳐나는 소음의 시대혹은 소란함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소음과 소란함에 길들여진 우리의 영혼이 침묵을 수용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주위를 둘러보면 하나님을 위해 일한다는 사람은 많지만,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침묵하며 고요히 자기를 비추어 보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과의 고요한 대면은 외면한 채 소란함의 도성으로 달려가고 있는 모습을 우리는 자주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제가 아는 한 목사님은 그런 이 시대의 사람들을 향해 이렇게 일갈하셨습니다.

 

흐르는 물에 얼굴을 비춰볼 수 없는 것처럼, 고요함이 없는 마음에 하늘은 비치지 않는다.”

 

제게는 작은 할아버지 되시는 고 오병세 목사님에 대한 글을 부탁받았을 때 제가 떠올린 첫 단어는 바로 침묵이라는 단어였습니다. 왜냐하면 목사님에게 침묵은 곧 하늘을 담아내는 그릇이었기 때문입니다.

 

많은 분들이 아시듯 목사님은 말씀이 많은 분이 아니셨습니다. 늘 필요할 때, 해야 할 말들만 하시는 분이셨습니다.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목사님은 많은 말과 작은 삶으로 가르치시는 분이 아니라 언제나 적은 말과 많은 삶으로 가르치시던 분이셨습니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목사님이 늘 하나님 앞에 홀로 앉음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분이셨기 때문인데 예수님이 가장 고요한 시간에 홀로 한적한 곳을 찾아가 엎드리셨듯 목사님께서도 늘 침묵하며 하나님 앞에 앉아 자기의 마음을 조율하시던 분입니다. 그래서 그 분은 가족들에게 조차 단 한마디도 허투루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꼭꼭 눌러 담은 밀도 있는 말씀들만 건네셨던 분입니다.

 

저는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목사님을 찾아 갔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목사님은 제게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구체적으로 답을 주신 적이 거의 없습니다. 몇 시간을 듣고만 계셨습니다. 그러다 집을 떠나기 전 목사 손자를 떠나보내며 올려드리는 단 몇 분 동안의 기도 속에 목사님은 자신의 모든 마음을 하나님 앞에서 토해내셨습니다. 그리고 그 기도 속에는 항상 제가 가야할 길이 스며있었습니다.

 

짧은 인생이지만 저의 경험을 뒤돌아보면 하나님 앞에서 침묵의 그릇을 내어놓고 그 곳에 아버지의 마음을 담아내는 사람은 함부로 남에게 정답을 내어던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욥의 세 친구가 그러했듯 그 말은 듣는 사람을 위한 말, 혹은 하나님의 마음을 담은 말이 아니라, 말하는 사람을 위한 말이 되기 쉽기 때문입니다.

 

오병세 목사님은 제가 직면한 고민들에 대해 많은 말로 정답을 내어던지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유익하다며 수도 없이 정보를 쏟아내는 라디오와 같은 인생이 아니라 파르르 떨리는 손끝으로도 늘 한 방향을 가리키는 나침반과 같은 인생을 사셨습니다. 그래서 하늘을 향하고, 하늘을 담아내는 침묵의 나침반으로 광야 한 복판에 서있던 제게 마땅히 가야할 길을 늘 보여주셨습니다. 항상 그랬습니다.

 

그리고 그 때 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작은 할아버지와 같은 목사가 되고 싶다.

 

성도들이 직면하는 여러 문제들에 대해 많은 말로 정답을 제시하지는 않지만 그저 그 곁에 머무는 것만으로도 하나님의 마음을 전달할 수 있는 나침반과 같은 사람, 천둥 같은 축제의 함성을 지를 줄 알지만 제주 사려니의 깊은 숲처럼 늘 고요한 사람, 성도들을 고치겠다고 성급하게 달려들지 않고 자기 생각을 함부로 강요하지 않는 사람,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이 물체를 만나면 그 존재를 알 수 있듯, 누군가 내 인생을 마주하고 섰을 때 존재만으로도 성령님의 현존을 인식하게 할 수 있는 그런 생명의 사람.

 

이 시대에는 메시지를 잃어버린 메신저들이 참 많습니다. 좋은 말을 못해서, 좋은 글을 못 써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닙니다. 소음과 소란함의 시대 속에서 하나님의 메신저들마저도 그 영혼이 침묵을 수용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고요함이 없는 마음에 하늘이 비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현존 앞에 고요히 침묵의 그릇을 내어드리고 그 곳에 아버지의 마음을 담아내어 주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경험하게 해주셨던 오병세 목사님의 삶, 흔들리는 손끝으로라도 늘 하나님을 향해 서 있던, 그래서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이 말씀하게 하셨던 영적 나침반으로서의 오병세 목사님의 삶이 그립습니다.

 

2. 겸손

침묵의 그릇에 하나님의 마음을 담아내는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삶의 열매는 바로 겸손입니다. 신학교 시절 한 교수님께서 제게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제가 오병세 교수님을 존경하는 이유는 목사님이 가지신 다른 그 무엇 때문이 아닙니다. 무엇보다 교수님이 겸손한 마음으로 제자들을 대해주셨기 때문입니다. 교수님이 학점에는 엄격하셨지만 저는 지금까지 오 교수님이 제자들에게 말을 놓거나, 하대하시는 모습을 본적이 없습니다. 한 결 같이 사역자로써 존중해 주셨습니다.”

 

기억을 되돌려 보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오병세 목사님은 물론이요 목사님의 큰 형님 되시는 오병식 장로님, 둘째 형님 되시는 오병철 장로님도 교회에서 만나는 청년들에게도 늘 말씀을 높이시고 존중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저는 목사님을 찾아 뵐 때 마다 교회와 교단 그리고 목사님들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나누었는데 목사님은 단 한 번도 누군가를 비판하시거나 비난하신 것을 들어 본적이 없습니다. 다소 예민했던 학교와 병원 그리고 교단의 문제를 이야기 하실 때도 늘 잠시 웃고 지나가셨지 단 한 번도 누군가를 향해 비판의 화살을 날리지 않으셨습니다. 그러고서는 늘 겸손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미국에 오기 전 마지막으로 오병세 목사님을 찾아뵈었을 때 목사님은 그 날도 많은 말씀을 들으셨습니다. 그런데 이 번 만남이 마지막 만남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하셨는지 예전에 비해서는 비교적 많은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오병세 목사님은 보통 고향인 봉화이야기로부터 많은 이야기를 시작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봉화에서 대구로 온 가족이 이사 온 그 사건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였기 때문인데 대구에서 온 가족이 하나님을 영접했기 때문입니다.

 

그 날도 봉화 이야기로 말씀을 시작하셨습니다. 할아버지께서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말씀 하시려나보다 직감했습니다.

 

그리고서는 19469월 초, 오 목사님이 신학교에 입학하시기 위해 집을 떠나실 때 병환 중에 계신 아버지(필자의 증조 할아버지)가 자리를 털고 일어나 본인에게 직접 써주셨던 글에 대해 잠시 말씀해 주셨습니다.

 

玉不琢 不成器 人不學 不知義 (옥불탁 불성기 인불학 불지의)

옥은 다듬지 않으면 그릇이 되지 않고 사람은 배우지 않으면 의를 모른다.

勤爲無價之寶 愼是護身之符 (근위무가지보 신시호신지부)

근면은 값을 매길 수 없는 보배가 되고, 신중함은 몸을 보호하는 부호가 된다.”

 

제가 목사 손자라는 이유로 오병세 목사님에 대해 몇 번의 글을 쓴 적이 있는데 그 때 들은 적이 있고 인용한 적이 있는 글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아무도 모르던 우리 가정에서 주의 교회를 섬기는 사람들이 이처럼 많이 생겨난 것은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다. 배움의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늘 겸손한 목사 되거라

 

원치 않았지만 이것이 오병세 목사님께서 제게 해주신 마지막 말씀이었는데 그것은 은혜와 겸손 그리고 삶에 태도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그 은혜 앞에서 늘 겸손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대학원에서 제게 고전을 가르치셨던 한 선생님은 이런 말씀하셨습니다.

 

흐르는 물은 선두를 다투지 않고, 산이 가로 막으면 돌아가고, 큰 바위를 만나면 몸을 나누어 지나간다고 합니다. 웅덩이를 만나면 다 채우고 난 다음, 뒷물을 기다려 앞으로 나아가고. 물은 항상 아래로 흐릅니다. 그리고 그 물은 궁극적으로 바다가 되는데 바다는 가장 큰 물이고, 그것은 어떠한 것도 대적할 수 없는 압도적 위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말이 참 인상 깊게 다가왔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 뒤에다가 이렇게 다시 적었습니다. 다투지 않고, 자신의 몸을 찢고, 나누어, 가장 낮은 곳으로 흐르는 물들은 결국 압도적인 위력을 가진 가장 큰 물, 바다가 된다. 그래 그렇다! 아래로 흐르는 약하고 부드러운 물이 강한 것을 이긴다

 

오병세 목사님은 늘 바다를 벗하며 사셨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편지를 평생 가슴에 새기고 사셨고 무엇보다 나의 작음을 알고 그분의 크심을 인정하는 코람데오의 삶을 사셨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의 삶은 매우 겸손했습니다. 그러나 본인을 향해서는 매우 엄격하셨습니다.

 

자신의 지식과 직분을 과시하지 않으셨고, 집에 가도 화려해 보이는 물건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발견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학교 이름이 찍힌 편지봉투하나 개인적으로 사용하지 않으시고 본인의 이름과 주소가 찍힌 편지봉투를 따로 사용하셨는데 거기에도 오병세라는 이름을 한문으로 적어놓으셨지 교수, 총장이라는 직분은 결코 기록해 놓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할머니께서 검소하게 사시며 모아놓으신 전부로 한석장학재단을 설립하셨습니다. 가장 낮은 곳에 있는 바다가 수많은 생명을 품고 있듯 목사님은 수많은 신학생들이 공부할 수 있도록 은퇴 후에도 보이지 않는 가장 낮은 곳에서 맑고 깊은 어장이 되어주신 것입니다.

 

한참이나 부족하지만 저 역시 할아버지께서 주신 말씀과 교훈을 다시 한 번 가슴에 새깁니다. 바다와 같이 겸손하고 생명의 보고(寶庫)가 되는 삶, 초심(初心)이 항심(恒心)되는 삶을 살고자 합니다.

 

3. 순례자의 삶

이 글을 마치려고 합니다. 오병세 목사님은 홍반식, 이근삼 목사님과 함께 고신의 동방박사 세 사람(동방박사가 세 사람이었다고 인식 될 때 이야기입니다) 혹은 고신의 삼박사라고 불렸습니다. 그런데 오병세 목사님이 그 고신의 동방박사, 혹은 고신의 3박사 중 한 사람이 되어 하나님께 올려드린 가장 큰 예물은 무엇이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사람들은 동방박사가 예수님께 올려드린 세 가지 예물 즉 황금과 유향과 몰약에 집중합니다. 그래서 우리도 세상에서 성공하고 부와 명예와 권세를 차지하게 되면 그것이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최고의 예물, 최고의 영광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모든 것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아들께 그것들이 어떤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러고 보니 정말 예수님이 귀하게 받으신 예물은 황금과 유향과 몰약이 아닌 것 같습니다. 예수님이 그들에게 받으신 진정한 예물은 저들이 힘들고 고단한 여정 속에서도 한 결 같이 별을 보며 걸어온 순례자의 발걸음 그 자체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오병세 목사님을 수식하는 많은 직분들이 있습니다. 박사, 교수, 원장, 총장, 총회장 등 귀하고 영광스러운 직분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 받으신 최고의 예물은 그런 직분들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목사님을 통해 받으신 최고의 예물은 아마 신앙의 정통과 생활의 순결을 지키기 위해 올 곧게 그리고 충성스러운 발걸음으로 살아오신 목사님의 삶의 여정, 순례자로서의 여정이 최고의 예물이 되었을 것입니다.

 

길은 처음부터 거기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먼저 걸어가고, 그를 따르고 같은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생기는 것입니다. 오병세 목사님 아니 작은 할아버지가 걸어가신 그 발걸음을 부족하나마 저도 걸어가고 싶습니다. 그래서 우리 신앙의 선배들이 만들어 놓으신 그 길을 조금이라도 넓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고요한 침묵의 그릇에 하나님의 마음을 담아내시던 할아버지가 그립습니다.




저작권자 ⓒ 개혁정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1.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 읽기 4

    아래의 글은 합신 교단지인 "기독교 개혁신보"에 연재된 것임을 알립니다. - 편집자 주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 읽기 4 이원평 목사 (춘천돋움교회) (모든 인용은 출판사의 허락을 받고 열린책들판 <죄와 벌>에서 했습니다.) *** 내가 만난, 내게 다가온 도...
    Date2022.01.18 By개혁정론 Views205
    Read More
  2.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 읽기 3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 읽기 3 이원평 목사 (춘천돋움교회) (모든 인용은 출판사의 허락을 받고 열린책들판 <죄와 벌>에서 했습니다.) 도스토옙스키는 리얼리스트다. 그의 리얼리즘은 존재의 근원이신 자존자를 등진 채 유리하는 인간 실존의 불안을 적나...
    Date2022.01.11 By개혁정론 Views195
    Read More
  3.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 읽기 2

    아래의 글은 합신 교단지인 "기독교 개혁신보"에 연재된 것임을 알립니다. - 편집자 주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 읽기 2 이원평 목사 (춘천돋움교회) (모든 인용은 출판사의 허락을 받고 열린책들판 <죄와 벌>에서 했습니다.) 인생의 첫걸음을 떼는 시기 도...
    Date2022.01.06 By개혁정론 Views190
    Read More
  4.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 읽기 1 (이원평 목사)

    아래의 글은 합신 교단지인 "기독교 개혁신보"에 연재된 것임을 알립니다. - 편집자 주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 읽기 1 2021년 12월 5일 이원평 목사 (춘천돋움교회) (모든 인용은 출판사의 허락을 받고 열린책들판 <죄와 벌>에서 했습니다.) 2021년은 도스...
    Date2021.12.29 By개혁정론 Views318
    Read More
  5. 믿음이 싹트고 자라며 열매 맺는 은혜의 시간, 가정예배

    아래 글은 월간 생명나무 (월간 고신) 2022년 1월호에 실린 글로 필자의 허락을 받아 이곳에 올립니다. - 편집장 주 삼형제네 가정예배 이야기 1 믿음이 싹트고 자라며 열매 맺는 은혜의 시간, 가정예배 채충원 목사 (한밭교회 부목사) 저는 결혼한 지 20년이...
    Date2021.12.24 By개혁정론 Views516
    Read More
  6. 케임브리지와 바젤에서 바라본 로테르담의 에라스무스

    케임브리지와 바젤에서 바라본 로테르담의 에라스무스 : 그의 두 성경을 중심으로 김헌수 (독립개신교회 신학교 교장) 2021년 10월 31일 종교개혁기념일 케임브리지의 틴데일하우스는 영국의 개혁자 윌리엄 틴데일(William Tyndale. 1494경-1536)의 이름을 딴...
    Date2021.11.04 By개혁정론 Views497
    Read More
  7. 고신은 개혁할 것들이 보이지 않는가?

    고신은 개혁할 것들이 보이지 않는가? 황원하 목사 (산성교회 담임) 고신은 개혁신학에 기반한 교단이다. ‘개혁’이란 교리적 개혁과 윤리적 개혁을 포괄한다. 우리는 종교개혁을 통해서 교리를 회복 혹은 정립했다. 그러나 우리는 윤리적 개혁을 ...
    Date2021.10.18 By개혁정론 Views750
    Read More
  8. [고신교회 70주년에 즈음하여 7] 고신 교회 70년에 나타난 목사의 법적 지위와 권한(1)

    고신 교회 70년에 나타난 목사의 법적 지위와 권한(1) 성희찬 목사 (작은빛교회) 우리 헌법 <교회정치>는 다른 직분에 비해 목사에게 상대적으로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목사는 <교회정치> 제5장 39조에서 62조까지 총 23개 조항에 걸쳐 다루는 것에 비...
    Date2021.09.06 By개혁정론 Views679
    Read More
  9. [고신교회 70주년에 즈음하여 6] 고신 교회 70년과 고신 전통(혹은 고신 정신)의 계승

    고신 교회 70년과 고신 전통(혹은 고신 정신)의 계승 성희찬 목사 (작은빛교회) 고신 교회는 개혁주의라는 <진리 운동>과 함께, 일제 강점기 동안 목숨을 바쳐서라도 “나 외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 “다른 형상을 만들지 말라”는 제1...
    Date2021.09.01 By개혁정론 Views786
    Read More
  10. [고신교회 70주년에 즈음하여 5]  고신 교회 70년 역사에 나타난 ‘교인의 의무와 교인의 권리’

    고신 교회 70년 역사에 나타난 ‘교인의 의무와 교인의 권리’ 성희찬 목사 (작은빛교회) 16세기 종교개혁을 통해 회복한 이신칭의(以信稱義) 복음은 바른 교훈의 회복을 넘어 교회정치에서 교인 한 사람 한 사람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각성시켰다. ...
    Date2021.08.09 By개혁정론 Views533
    Read More
  11. [고신교회 70주년에 즈음하여 4] 고신 교회 70년과 교리표준

    고신 교회 70년과 교리표준 성희찬 목사 (작은빛교회 담임) 고신 교회는 믿음과 교리와 교회 생활에 표준이 되는 표준문서를 헌법에 담고 있다. 표준문서는 다시 교리표준과 관리표준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1) 교리표준으로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대교...
    Date2021.08.02 By개혁정론 Views928
    Read More
  12. 청년 사역자의 눈으로 본 교회 청년

    아래 글은 월간 생명나무 (월간 고신) 7월호에 실린 글로 고신언론사의 허락을 받아 이곳에 올립니다. - 편집장 주 청년 사역자의 눈으로 본 교회 청년 채충원 목사 (한밭교회) 들어가면서: 청년 사역자의 삶의 자리에서 청년 사역자들-이하 사역자들-도 청년...
    Date2021.07.23 By개혁정론 Views691
    Read More
  13. [고신교회 70주년에 즈음하여 3] 고신 교회는 지난 70년 동안 어떤 미래를 어떻게 준비해왔는가?

    고신 교회는 지난 70년 동안 어떤 미래를 어떻게 준비해왔는가? - 70년 고신교회의 ‘교단발전연구위원회’와 ‘미래정책연구위원회’의 활동 평가 성희찬 목사 (작은빛 교회) 고신 교회가 내년 2021년이면 설립 70년을 맞는다. 지난 70...
    Date2021.07.21 By개혁정론 Views490
    Read More
  14. [고신교회 70주년에 즈음하여 2] 총회 통계로 보는 고신 교회(교단) 70년

    총회 통계로 보는 고신 교회(교단) 70년1) 성희찬 목사 (작은빛 교회) 1. 들어가는 말 고신 교회가 내년 2021년이면 설립 70년을 맞는다. 지난 70년이라는 교회 역사를 살필 때 흩어진 많은 자료가 그 근거가 될 수 있겠지만, 그중 하나는 총회록에 공적으로 ...
    Date2021.07.07 By개혁정론 Views696
    Read More
  15. 예수님께서 바닥에 쓰신 글

    예수님께서 바닥에 쓰신 글 고덕길 목사 (이슬라마바드 한인교회 담임) 음행 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와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고발할 조건을 얻고자 하여 시험하는 질문을 합니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
    Date2021.07.03 By개혁정론 Views2260
    Read More
  16. 교리교육 교수 선교사로 살기로 하다!

    교리교육 교수 선교사로 살기로 하다! 정두성 목사 (교리교육 교수 선교사) 하양시민교회(하영호 목사)로부터 “교리교육 교수 선교사”로 파송 받았다. “교리교육 교수 선교사”라는 공식 직함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직함은 내...
    Date2021.06.16 By개혁정론 Views835
    Read More
  17. [고신교회 70주년에 즈음하여 1] 교단 설립일 기산(起算)과 교단 설립 기념행사에 대해

    교단 설립일 기산(起算)과 교단 설립 기념행사에 대해 성희찬 목사 (작은빛교회 담임) 제62회 총회(2012년 9월)에 부산서부노회(노회장 서병수 목사)에서 상정한 안건이 하나 제출되었다. 1952년(1952년 9월 11일 총노회가 조직된 날)을 고신 역사 기점으로 ...
    Date2021.06.14 By개혁정론 Views509
    Read More
  18. 코로나 19시대에 필요한 마음의 성벽!

    코로나 19시대에 필요한 마음의 성벽! 고덕길 목사 (이슬라마바드 한인교회 담임) 사사기 5:7의 세 가지 서로 다른 번역을 살펴보겠습니다. "이스라엘에는 마을 사람들이 그쳤으니 나 드보라가 일어나 이스라엘의 어머니가 되기까지 그쳤도다" (개역개정) "나...
    Date2021.05.03 By개혁정론 Views228
    Read More
  19. 목사 청빙 투표가 부결되었을 때

    목사 청빙 투표가 부결되었을 때 이성호 신학교수 (고려신학대학원) 최근에 목사 청빙 투표가 부결되었다는 소식을 자주 접하게 된다. 개체 교회에서 목사가 차지하는 역할을 고려해 볼 때 목사 청빙 투표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
    Date2021.04.02 By개혁정론 Views2459
    Read More
  20. 미달의 시대, 어떻게 헤쳐나갈 것인가?

    미달의 시대, 어떻게 헤쳐나갈 것인가? 이성호 신학교수 (고려신학대학원) 누구나 다 예상했던 바이지만 이번 입시에서 기독교 대학의 신학과의 지원자 수가 대부분 입학정원에 미달되었다. 고신대학도 이와 같은 큰 흐름을 피할 수 없었다. 앞으로도 이 흐름...
    Date2021.03.29 By개혁정론 Views1148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Next
/ 9
사설
[사설] 성찬상을 모독하지 마라
[사설] 제7차 개정헌법 헌의안, 총...
[사설] 총회장은 교단의 수장이 아...
[사설] 명예집사와 명예권사, 허용...
[사설] 총회가 계파정치에 함몰되지...
[사설] 최근에 일어난 고려신학대학...
세계로교회 예배당 폐쇄 조치를 접하며 3
[사설] 총회(노회)가 모일 때 온라...
총회가 졸속으로 진행되지 않으려면
[사설] 누가 고신교회의 질서와 성...
칼럼
왕처럼 살고 싶습니까? 왕처럼 나누...
푸틴의 머릿속에 있는 그림
백신 의무 접종과 교회 (3부)
백신 의무 접종과 교회(2부); 교회...
백신 의무 접종과 교회 (1부)
우리 악수할까요?
두려움으로부터의 해방 (Peter Holt...
관심을 가지고 보십시오.
동성애 문제에 대한 두 교단의 서로...
하나님께서는 역사의 잘못을 통해서...
기고
직분자 임직식에서 성도의 역할
죽음을 어떻게 맞을까를 잠시 생각하며
제73회 총회가 남긴 몇 가지 과제
전임목사는 시찰위원으로 선정될 수...
고신교회와 고재수 교수; 우리가 왜...
왜 고재수는 네덜란드에서 고려신학...
제73회 총회를 스케치하다
신학생 보내기 운동에 대한 진지한 ...
명예 직분 허용이 가져다 줄 위험한...
[고신 70주년에 즈음하여 9] 고신교...
논문
송상석 목사에 대한 교회사적 평가 ...
송상석 목사와 고신 교단 (나삼진 ...
송상석 목사의 목회와 설교 (신재철...
네덜란드 개혁교회 예식서에 있어서...
제7차 헌법개정초안(2022년 6월) 분...
제7차 헌법개정초안(2022년 6월) 분...
제7차 헌법개정초안 예배지침 부분...
제7차 헌법개정초안(2022년 6월) 분...
SFC 강령의 “전통적 웨스트민스터 ...
지역교회의 적정 규모(規模 size)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