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문을 환영합니다.
최종편집
조회 수 318 추천 수 0 댓글 0

 


아래의 글은 합신 교단지인 "기독교 개혁신보"에 연재된 것임을 알립니다. - 편집자 주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 읽기 1

 

이원평.PNG

 

 

 

 

 

 

 

2021년 12월 5일

이원평 목사

(춘천돋움교회)

 

 

 

(모든 인용은 출판사의 허락을 받고 열린책들판 <죄와 벌>에서 했습니다.)

 

   2021년은 도스토옙스키 탄생 200주년이 되는 해이다. 도스토옙스키 탄생 200주년에 맞이한 이 겨울은 우리에게 <죄와 벌>을 다시 읽을만한 충분한 동기를 제공해 준다.

 

 

저 애욕으로 들끓던 카르타고가 없었다면,

저 음습한 베드퍼드가 없었다면,

저 치욕의 굴락이 없었다면,

저 단절된 시베리아가 없었다면

 

성자 어거스틴도,

영원한 순례자 번연도,

서구를 향한 예언자 솔제니친도,

대문호 도스토옙스키도

없었을 것이다.

 

 

   아, 광활하고 거친 시베리아여, 그대에게 복이 있을지어다! 두려운 신비의 땅, 우리가 아는 진정한 대문호로서의 도스토옙스키는 삶의 단절과 존재의 소외를 낳는 변방 땅 시베리아에서 재탄생했다. 그리고 도스토옙스키는 그곳에서 살인범 라스콜리니코프를 구원으로 이끌었으며 시베리아 죄수들의 ‘어머니’가 된 ‘거룩한 창녀’ 소냐를 탄생시켰다. 시베리아 유형지에서 돌아온 그는 불후의 장편 소설들을 이 세상에 내놓기 시작했는데, 그 시작이 바로 <죄와 벌>이다. 그는 이미 유명한 작가였지만, 러시아 통보지에 <죄와 벌>을 연재하면서부터야 진정한 대문호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이후 그는 <백치>, <악령>, <카라마조프씨네 형제들>과 같은 대작들을 연이어 내놓으며 러시아 문학계를 이끌었다. 도스토옙스키와 시베리아, 대문호와 소냐는 이처럼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다.

 

   시베리아 유형소에서 유일하게 읽기가 허락되었던 신약성경을 통해 사상적이고 종교적으로 갱생한 도스토옙스키는, 지난날 무신론과 혁명적 서구 사상에 휩쓸렸던 자신에 대한 반성과 시대적 성찰을 후기의 대작들 안에 모두 담아냈다. 시베리아 유형 이후, 작가 도스토옙스키는 자신의 종교적 사명도 완수해 나갔던 것이다. 때로는 암시적으로, 때로는 노골적으로!

 

   서구 유럽을 향한 러시아의 갈망은 19세기에 그 절정에 달했고, 특히 모스크바와 페테르부르크 등 대도시의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거대한 사회적 회오리와 변화를 일으키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이 본격적으로 본받고자 했던 서구에는 당시 정치적으로는 나폴레옹 3세, 철학적으로는 헤겔과 같은 자칭 초인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페테르부르크에 거주하던 청년이자 <가난한 사람들>로 화려하게 문단에 등단한 신인작가 도스토옙스키도 당대의 분위기에 휩쓸린 서구주의자였다. 그는 페트라솁스키가 이끄는 모임을 통해 그 가능성을 모색했다. 그러다가 위기감을 느낀 차르 니콜라이 1세의 전횡에 의해 일명 ‘페트라셰프스키 클럽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죄목으로 결국 사형을 선고받았다. 사형대 위에 눈을 가린 채 묶여 있던 그는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극도의 공포감과 생의 초연함이라는 모순된 감정을 동시에 느꼈다. 이 잊지 못할 사건은 그의 영혼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고, 이후의 작품들에 등장하는 여러 캐릭터를 통해 반복적으로 묘사되었다. 그런데 사형 집행 직전에 황제의 특사가 말을 타고 급히 달려오며 외쳤다! “사형 집행 중지!” 사형대 위에 묶여 있던 죄수들은 특사가 외친 감형 선언에 의해 극적으로 풀려났다. 그러나 사실 이 감형은 황제에 의해 세심하게 짜인 작품이었다. 감형을 선고받은 도스토옙스키는 차디찬 바람을 맞으며 (“그러나 기분만은 좋게하는”) 시베리아로 끌려갔다. 시베리아로 이송되던 도중에 그는 한 여인으로부터 “10루블짜리 지폐가 표지에 숨겨진 복음서”를 몰래 건네받아 유형소로 가지고 들어가게 된다. 옴스크에서 유형소 생활을 마친 귀족 소위 도스토옙스키는 이후 일반병사로 강등되어 더 극지인 세미팔라틴스크까지 밀려나 강제 복역을 마쳐야 했다. 도스토옙스키는 시베리아 유형 생활 중 복음서를 집중적으로 읽었다. 이로 인해 유형 생활을 마칠 즈음 그는 이미 서구주의자에서 러시아주의자이자 대지주의자로 그리고 정교회주의자로 확고히 변모해 있었다.

 

   러시아의 표트르 대제는 18세기 초반 서구를 향한 러시아의 오래된 갈망을 실현시키고자 그 초석을 놓았다. 표트르 대제는 네바 강변의 습지 위에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기 위한 세심한 계획을 세우고, 나무 등으로 기둥을 박아 상트 페테르부르크를 건설하여 러시아의 '유럽을 향한 창'을 힘차게 열어젖혔다.

 

   우리의 초인인 라스콜니코프의 등장과 끔찍한 ‘도끼 살인’으로 인한 영혼의 고통이 시작된 곳도 바로 상트 페테르부르크다. 라스콜리니코프의 구원도 페테르부르크 시내 중심가인 센나야 광장의 네거리에서 시작되었다. 그 거리는 작가 도스토옙스키도 매일 거닐던 곳이었다. ‘창녀 구원자’로 등장한 소냐는 그 네거리에 가서 공개적으로 죄를 고백할 것을 라스콜니코프에게 요구했다. 센나야 광장의 그 네거리는 곧 십자로인데, 십자로는 독자들에게 죄인들의 구원이 이루어진 골고다의 십자가를 연상시킨다. 기독교(러시아정교회)에서 죄인의 구원은 무엇보다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아가 자기의 숨겨진 죄를 고백할 때 이루어진다. 소냐는 ‘은밀한 살인자’ 라스콜니코프에게 바로 그 네거리 십자로 위에서 ‘공개적인 죄의 고백’을 촉구했다.

 

"일어나세요…… 지금 즉시 나가서, 네거리에 서서 먼저 당신이 더럽힌 대지에 절을 하고 입을 맞추세요. 그다음 온 세상을 향해 절을 하고 소리를 내어 모든 사람들에게 말하세요. '내가 죽였습니다!'라고. 그러면 하나님께서 또다시 당신에게 생명을 보내 주실 거예요. 가실 건가요? 가실 거예요?"

 

"당신 지금 감옥에 대해서 말하는 거야, 소냐? 자수를 하라는 말이야?"

 

"고통을 받아들이고, 그것으로 속죄하세요. 그래야만 해요."

 

   열여덟에 불과한 소녀, 그것도 사회적으로 가장 약자인 창녀의 도전에 저항을 하던 강자 라스콜리니코프는 결국 그의 마음을 돌렸다. 자기만의 세계에 고립되었던 초인이 비로소 인간성의 연대감을 되찾는 순간이다! 경찰서로 들어선 이 초인은 자수를 했다. 무법한 ‘초인’은 이제 법 아래 사는 ‘범인’(凡人)으로 되돌아왔다. 그리하여 세계 문학사에서 가장 아름다우면서도 숭고한 결말을 우리에게 들여주게 된다.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그 자신도 알 수 없었지만, 불현듯 무언가 그를 사로잡아서 그녀의 발에 몸을 던지게 한 것 같았다. 그는 울면서 그녀의 무릎을 안았다…… 처음 순간 그녀는 무섭도록 놀라서…… 그러나 곧, 바로 그 순간에 그녀는 모든 것을 이해했다.

   그들은 말을 하고 싶었지만, 할 수가 없었다. 눈물이 그들의 눈앞을 가렸다. 두 사람 모두 창백하고 여위어 있었다. 그러나 이 병들어 창백한 얼굴에서는 이미 새로워진 미래의 아침노을, 새로운 삶을 향한 완전한 부활의 서광이 빛나고 있었다. 그들을 부활시킨 것은 사랑이었고, 한 사람의 마음속에 다른 사람의 마음을 위한 삶의 무한한 원천이 간직되어 있었다."

 

   세상에, 창녀가, 그것도 이토록 연약한 한 소녀가 초인이자 살인자를 일깨워 구원하다니! 19세기 중엽, 아직 극히 보수적이었던 제정 러시아에서 창녀는 가장 힘없고 소외된 사회적 부류였다. 처음에 무허가 창녀였던 소냐도 시에 등록돼 ‘황색 감찰’을 받게 되자 어쩔 수 없이 집을 나가 독거해야만 했다. 그녀가 얻은 방이라는 것도 그저 남의 셋방을 막아 공간을 마련한 정도였다. 외로운 소냐는 가장 약자였고 게다가 지독히도 가난했다. 그 시대 러시아의 여성은 정상적인 일을 해서는 도무지 먹고 살 길이 없었다! 하지만 이 약자 창녀가 강자 초인을 구원한 것이다. 지극히 다행스럽게도 강자 라스콜니코프가 약자 소냐의 말을 들었던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죄인(초인)들의 구원은 이처럼 '스캔들' 중의 스캔들이다. 그러나 여전히 죄인들(스스로 강한 자들)이 구원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십자가에 달리신 힘없는 약자이신 메시아의 말을 들을 때이다!

 

   소냐에 반해 이 초인, 살인범 라스콜니코프는 어떤가? 초인은 사상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최강자의 위치에 오른 자다. 라스콜니코프는 세상의 모든 규율과 법까지 스스로 초월한 강자였다. 그래서 "한 마리 이"에 불과했던 전당포 노파, 아무짝에도 쓸모없던 구두쇠 노파의 머리를 도끼로 내리찍었던 것이다. 그는 법과 규율, 윤리마저 초월한 초인이자 괴물이었다. <죄와 벌>의 두 주인공인 소냐와 라스콜리니코프는 이처럼 극과 극의 사회적, 종교적 위치에 있다.

 

   초인 라스콜리니코프가 사용한 살인 도구는 공교롭게도 도끼였다. 도끼의 사용처 또한 극과 극이다. 러시아의 민초들에게 도끼는 숲과 나무로 뒤덮인 곳에서 생존을 이어가기 위한 필수 도구다. 동시에 도끼는 그들의 종교 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거룩한 도구이기도 하다. 러시아의 농부들은 도끼로 땔감을 구하고 거룩한 이콘도 만들어 그 앞에서 하나님께 기도를 드린다.

 

   창녀 구원자와 초인 살인자, 아무런 목격자와 증거물도 남지 않은 은밀한 살인 현장과 네거리에서의 공개적인 죄 고백, 살인 도구가 된 도끼와 거룩한 이콘을 다듬는 러시아인의 도끼는 이처럼 <죄와 벌>의 핵심 사상과 긴장감을 끝까지 유지시키는 극과 극의 역할을 하고 있다.

 

   모든 인간 안에는 극과 극의 가능성이 항시 존재한다. 약자 소냐와 강자 라스콜리니코프, 창녀와 초인, 땔감과 이콘과 같은 극과 극의 요소는 모든 인간 안에 상존한다. 인간에게는 죄인으로서의 일생과 의인으로서의 일생, 시민으로서의 일생과 초인으로서의 일생을 살 가능성이 주어진다. 그것은 한 사람의 일생이 끝나기까지 그 안에서 함께 간다.

 

   <죄와 벌>에서 강자이자 초인으로 등장하는 라스콜니코프의 살인은 이미 작품 초반에 벌어진다. 그러나 고백한 죄인과 범인(凡人)으로서의 그의 모습은 마지막에 가서야 극적으로 드러난다. 이처럼 한 인간 안에서 죄와 선, 벌과 구원의 거리는 가깝고도 멀다. 그것은 극과 극이어서 한 인간 안에서 가능인 동시에 불능이 되기도 한다!

 

   이미 도스토옙스키 자신 안에 그런 요소가 있었고, 그는 체험으로도 이 사실을 잘 알았다. <죄와 벌>에서의 소냐, <백치>에서의 미쉬킨 공작, <카라마조프씨네 형제들>에서의 알료샤라는 지극히 선한 인물을 창조해 냈던 이 작가는 결코 성자가 아니었다. 그는 여러 여인들을 사랑했고, 때로는 거의 불륜에 가까운 치정극도 벌였으며, 한때는 사랑하는 부인마저 저버릴 구제불능의 도박중독자였다. 게다가 질투심도 많은 사나이였다! 이러한 도스토옙스키가 <죄와 벌>에서 소냐와 라스콜니코프라는 극과 극의 캐릭터를 통해 자신 안에 있던 그것을 우리에게 강렬하고 리얼하게 보여주었다.

 
 
< 저작권자 ⓒ 개혁정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1. 직분자 임직식에서 성도의 역할

    직분자 임직식에서 성도의 역할 임모세 목사 (남울산장로교회) 1. 예식에의 참여 교회는 예식을 행합니다. 가장 중요한 예식은 예배 그리고 예수님께서 직접 제정하신 예식인 성례입니다. 성례는 두 가지인데 세례와 성찬입니다. 그리고 성례는 아니지만 중요...
    Date2024.02.03 By개혁정론 Views574
    Read More
  2. 죽음을 어떻게 맞을까를 잠시 생각하며

    죽음을 어떻게 맞을까를 잠시 생각하며 성희찬 목사 (작은빛 교회) 며칠 전 동기 목사의 장례가 있었다. 성탄절을 하루 앞둔 주일 저녁에 단톡방에 난데없이 부고가 올라왔다.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아니 믿을 수가 없었다. 아프다는 이야기는 몇 개월 전에 ...
    Date2024.01.30 By개혁정론 Views113
    Read More
  3. 제73회 총회가 남긴 몇 가지 과제

    제73회 총회(2023년 9월 19-21일)가 남긴 몇 가지 과제 성희찬 목사 (작은빛 교회) 고신 교회 제73총회가 얼마 전에 있었다. 총회는 장로교회에서 1년마다 열리는 최고 치리회(治理會)다. 개체교회의 당회, 지역 단위의 노회와 함께 그리스도의 치리를 대신하...
    Date2023.10.12 By개혁정론 Views286
    Read More
  4. 전임목사는 시찰위원으로 선정될 수 없는가?

    전임목사는 시찰위원으로 선정될 수 없는가? 성희찬 목사 (작은빛교회 담임) 이번 주간에 정기노회가 열렸다. 그런데 여러 노회에서 시찰위원 선정을 두고 논란이 있었다. 시찰위원 선정을 할 때 이번에 공포된 개정헌법이 이전과 다른 기준을 제시하기 때문...
    Date2023.10.11 By개혁정론 Views361
    Read More
  5. 고신교회와 고재수 교수; 우리가 왜 그를 기억하며 그리워하는가?

    본 글은 월간고신 생명나무 2023년 10월호에 기고한 것을 허락을 얻어 게재함을 밝힌다. - 편집자 주 고신교회와 고재수 교수(1948-2023) - 우리가 왜 그를 기억하며 그리워하는가? - 성희찬 목사 (작은빛교회 담임) 고신교회의 신학교인 고려신학대학원(고려...
    Date2023.10.06 By개혁정론 Views264
    Read More
  6. 왜 고재수는 네덜란드에서 고려신학대학원 교수로 왔나?

    왜 고재수(N. H. Gootjes)는 네덜란드에서 고려신학대학원 교수로 왔나? 임경근 목사 (다우리교회 담임) 들어가며 2023년 8월 20일 고재수는 향년 75세로 캐나다에서 하나님의 품에 안겼다. 어떤 사람은 그의 이름을 보고 한국 사람으로 알지만, 네덜란드인이...
    Date2023.10.06 By개혁정론 Views455
    Read More
  7. 제73회 총회를 스케치하다

    제73회 총회를 스케치하다 안재경 목사 (온생명교회 담임) 고신교회 제73회 총회가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롬 12:11)는 표제하에 2023년 9월 19일(화)부터 21일(목)까지 열렸다. 코로나 이후 지난 3년 동안 온라인이나 여러 장소에서 회집하...
    Date2023.09.26 By개혁정론 Views535
    Read More
  8. 신학생 보내기 운동에 대한 진지한 성찰

    신학생 보내기 운동에 대한 진지한 성찰 손재익 목사 (한길교회 담임) 문제와 해결책 “언 발에 오줌 누기”라는 속담이 있다.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내놓은 급한 대책이 잠시 효과가 있을지 모르나 오히려 나중에는 더 악화될 수 있는 해결책...
    Date2023.06.22 By개혁정론 Views1128
    Read More
  9. 명예 직분 허용이 가져다 줄 위험한 미래

    명예 직분 허용이 가져다 줄 위험한 미래 - 헌법 개정안 정치 36조 2항의 문제점 손재익 목사 (한길교회 담임) 개정은 개선만 아니라 개악도 있다 고신 총회 헌법 개정안 일부가 72회(2022년) 총회에서 통과됐다. 예상대로 총대들은 자세한 내용을 살피지 않...
    Date2023.03.09 By개혁정론 Views1585
    Read More
  10. [고신 70주년에 즈음하여 9] 고신교회70년과 교회직원(장로, 집사, 권사)

    고신교회70년과 교회직원(장로, 집사, 권사) 성희찬 목사 (작은빛교회 담임) 지난 고신교회 70년 동안 총회는 교회직원 중에서 장로, 집사, 서리집사, 권사에 관해 어떤 결정을 내렸을까? 이를 살피며 지나온 고신교회 70년을 돌아보고 평가하며 앞으로 나아...
    Date2022.12.26 By개혁정론 Views679
    Read More
  11. No Image

    성경 원어의 묘미

    성경 원어의 묘미 고덕길 목사 (이슬라마바드 한인교회 담임) 성경 번역자들에게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히브리어의 언어유희나 이중 의미를 지닌 헬라어 단어를 영어나 다른 언어로 번역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번역어는 필연적으로 원문...
    Date2022.12.21 By개혁정론 Views483
    Read More
  12. 고신대학교, 정말 위기인가?

    고신대학교, 정말 위기인가? 황대우 교수 (고신대 개혁주의 학술원) 지금 고신대학교가 정말 위기인지 묻는다면 그 대답은 ‘예’가 아닐 수 없어 보인다. 어쩌면 그것은 진정한 지도자의 부재로 인한 위기일지도 모른다. 고신대학교는 대한예수교...
    Date2022.12.14 By개혁정론 Views1353
    Read More
  13. [고신 70주년에 즈음하여 8] 고신교회 70년에 나타난 목사의 지위와 권한(2)

    고신교회 70년에 나타난 목사의 지위와 권한(2) 성희찬 목사 (작은빛교회) 고신교회 70년 동안 목사의 지위와 권한은 실제로 어떠했을까? 그리고 우리는 이를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또 이는 다음 70년을 내다보고 나아가는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주는 것일까...
    Date2022.12.12 By개혁정론 Views455
    Read More
  14. 가정예배로 신앙의 명문 가문을 세웁시다

    아래 글은 월간 생명나무 (월간 고신) 2022년 12월호에 실린 글로 필자의 허락을 받아 이곳에 올립니다. - 편집장 주 가정예배로 신앙의 명문 가문을 세웁시다 채충원 목사 (한밭교회 부목사) 가문(家門)은 문중(門中)이나 종중(宗中)과 유사한 용어로서, 부...
    Date2022.11.18 By개혁정론 Views374
    Read More
  15. 이 시대에 교인을 어떻게 양육할 수 있는가?

    이 시대에 교인을 어떻게 양육할 수 있는가? 황원하 목사 (산성교회 담임) 저는 저희교회 교역자들과 함께 11월 15일(화) 김해북교회에서 열린 ‘하나님 나라 제자훈련’(킹덤처치연구소) 세미나에 참석했습니다. 이 세미나에서 큰 감명을 받았기에...
    Date2022.11.16 By개혁정론 Views811
    Read More
  16. 고신총회설립 70주년 총회, 무엇을 남겼나?

    고신총회설립 70주년 총회, 무엇을 남겼나? 안재경 목사 (온생명교회 담임) 제72회 고신총회(9/20-22)가 ‘사랑으로’(갈 5:6)라는 표제로 열렸다. 올해 총회는 독노회 설립으로부터 출발하여 70년을 맞이하는 총회였다. 바벨론 포로 생활 70년과 ...
    Date2022.09.24 By개혁정론 Views861
    Read More
  17. 2022년 총회에 대한 우려...

    2022년 총회에 대한 우려... 사라져버린 고신정신... 황대우 교수 (고신대학교 개혁주의학술원) 추석 연휴가 끝난 다음 주가 총회 주간이다. 고신교회의 설립기념일인 9월 20일을 전후하여 개최된다. 총회를 설립기념일 전후로 소집하는 관행은 최소한 고신교...
    Date2022.09.13 By개혁정론 Views712
    Read More
  18. 힘들 때 함께 기도할 수 있어야 가족입니다

    아래 글은 월간 생명나무 (월간 고신) 2022년 9월호에 실린 글로 필자의 허락을 받아 이곳에 올립니다. - 편집장 주 힘들 때 함께 기도할 수 있어야 가족입니다 채충원 목사 (한밭교회 부목사) 살다 보면 정말 예배할 기분이 아닐 때가 있습니다. 특히 주일 ...
    Date2022.09.01 By개혁정론 Views325
    Read More
  19. 고신 교회 제7차 헌법 개정안 초안에 나타난 ‘교회론’

    개혁정론이 주최한 '제7차 고신 개정헌법, 어떻게 볼 것인가?'에서 성희찬 목사가 발제한 교회정치와 권징조례에 관한 내용을 아래와 같이 싣습니다. - 편집자 주 고신 교회 제7차 헌법 개정안 초안에 나타난 ‘교회론’ -교회정치, 권징조...
    Date2022.08.26 By개혁정론 Views461
    Read More
  20. 제7차 헌법개정에 나타난 교리와 예배 (교리표준과 예배지침을 중심으로): 안재경 목사

    개혁정론이 주최한 '제7차 고신 개정헌법, 어떻게 볼 것인가?'에서 안재경 목사가 발제한 교리표준과 예배지침에 관한 내용을 아래와 같이 싣습니다. - 편집자 주 제7차 헌법개정에 나타난 교리와 예배 (교리표준과 예배지침을 중심으로) 안재경 (온...
    Date2022.08.24 By개혁정론 Views353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Next
/ 9
사설
[사설] 성찬상을 모독하지 마라
[사설] 제7차 개정헌법 헌의안, 총...
[사설] 총회장은 교단의 수장이 아...
[사설] 명예집사와 명예권사, 허용...
[사설] 총회가 계파정치에 함몰되지...
[사설] 최근에 일어난 고려신학대학...
세계로교회 예배당 폐쇄 조치를 접하며 3
[사설] 총회(노회)가 모일 때 온라...
총회가 졸속으로 진행되지 않으려면
[사설] 누가 고신교회의 질서와 성...
칼럼
왕처럼 살고 싶습니까? 왕처럼 나누...
푸틴의 머릿속에 있는 그림
백신 의무 접종과 교회 (3부)
백신 의무 접종과 교회(2부); 교회...
백신 의무 접종과 교회 (1부)
우리 악수할까요?
두려움으로부터의 해방 (Peter Holt...
관심을 가지고 보십시오.
동성애 문제에 대한 두 교단의 서로...
하나님께서는 역사의 잘못을 통해서...
기고
직분자 임직식에서 성도의 역할
죽음을 어떻게 맞을까를 잠시 생각하며
제73회 총회가 남긴 몇 가지 과제
전임목사는 시찰위원으로 선정될 수...
고신교회와 고재수 교수; 우리가 왜...
왜 고재수는 네덜란드에서 고려신학...
제73회 총회를 스케치하다
신학생 보내기 운동에 대한 진지한 ...
명예 직분 허용이 가져다 줄 위험한...
[고신 70주년에 즈음하여 9] 고신교...
논문
송상석 목사에 대한 교회사적 평가 ...
송상석 목사와 고신 교단 (나삼진 ...
송상석 목사의 목회와 설교 (신재철...
네덜란드 개혁교회 예식서에 있어서...
제7차 헌법개정초안(2022년 6월) 분...
제7차 헌법개정초안(2022년 6월) 분...
제7차 헌법개정초안 예배지침 부분...
제7차 헌법개정초안(2022년 6월) 분...
SFC 강령의 “전통적 웨스트민스터 ...
지역교회의 적정 규모(規模 size)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