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희찬 목사
마산제일교회 담임목사
예장 고신총회 헌법해설집 발간위원회 위원
칼빈이 만약 지금 한국에 온다면 어느 교단과 어느 교회에서 자기가 꿈을 꾸고 세우려고 한 교회를 알아볼 수 있을까? 어떤 모습에서 알아볼 수 있을까? 칼빈이 어느 교회로 찾아갈까? 5월 27일은 개혁가 요한 칼빈이 죽은 지 450년이 되는 날이다. 칼빈은 1564년 5월 27일에 하나님의 품에 안겼다. 1509년에 출생하였으니 55세를 살았다. 칼빈의 후예라 자처하는 우리가 칼빈을 기념하면서 이 질문을 던지는 것은 당연하리라.
16세기 유럽의 종교개혁은 하나님이 이루신 놀라운 영적 부흥이었다. 하나님의 절대주권의 복음, 은혜의 복음, 이신칭의의 복음이 선포되었다. 이 복음 위에 수많은 교회가 세워지고 만인제사장의 원리를 따라 교인들이 교회생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으며 하나님의 소명이라는 원리를 따라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서 세상과 문화를 변혁시키게 되었다.
이때 특히 칼빈이 쓰임을 받게 되었고, 칼빈은 스위스, 프랑스, 헝가리, 독일, 네덜란드, 체코, 이탈리아, 폴란드, 영국을 포함하는 유럽 전역의 개신교회에 영향을 미쳤다. 요한 녹스(스코틀랜드), 피터 버미글리(이탈리아), 토마스 크랜머(영국), 우르시누스와 올레비아누스(독일) 등은 모두 칼빈의 제자라고 할 수 있다. 17-18세기 영국의 청교도 신학과 영성 역시 칼빈의 영성과 신학을 취하였다. 네덜란드 교회 역시 마찬가지이다. 네덜란드 교회는 17세기에 소위 칼빈주의 5대 교리를 확정하기에 이르렀고(전적 부패/무조건적인 선택/제한 구속/저항할 수 없는 은혜/성도의 궁극적인 견인), 19세기에 와서는 아브라함 카이퍼, 헤르만 바빙크에 의해서 칼빈주의의 전성시대를 맞게 되었다.
19-20세기 북미의 신학을 주도한 학교인 프린스턴 신학교와 핫지 부자, 벤자민 워필드, 코넬리우스 반틸, 루이스 벌코프 등은 모두 칼빈에게서 신학과 영성을 영향 받은 자들이다. 20세기도 마찬가지이다. 칼 바르트와 로이드 존스, 존 스토트, 제임스 패커, 알리스터 맥그래스 등이 모두 칼빈의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의 장로교회 역시 마찬가지이며, 고신교회 역시 예외가 아니다. 고신교회는 처음부터 칼빈주의, 즉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의 확립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출발하였다.
그렇다면 칼빈이 꿈을 꾼 교회, 스위스 제네바 교회를 통하여 시행된 교회, 나아가 칼빈에게 영향을 받은 개혁가들과 교회를 통하여 시행된 교회, 아니 성경이 말하는 교회, 고대 교회에서 시행한 교회는 어떤 교회일까? 어디에서, 어떤 특징에서 칼빈의 교회를 알아볼 수 있을까?
첫째, 복음을 설교하는 교회이다. 너무나 당연한 말 같으나 중세 시대 교회는 설교하는 교회가 되지 못하였다. 즉 참 설교가 없었다. 복음이 순전히 설교되지 못하였다. 다른 복음, 혼합 복음이 설교되었다. 그러나 이제 설교가 교회와 예배의 중심에 오게 되었다. 참 교회를 식별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표지가 바로 복음이 설교되는 교회이다. 참 복음이 설교될 때 거기에 교회가 있다. 칼빈의 교회를 알아볼 수 있는 첫째 특징은 바로 바른 복음을 설교하는 교회이다. 그렇다면 칼빈의 후예를 자처하는 우리 교회와 설교자는 ‘전도(=설교)의 미련한 것’이 오직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구원이며 하나님의 지혜인 것을 믿으며 오직 성경, 모든 성경의 확신과 열정을 가지고 복음을 설교하고 전하고 가르치는 것에 힘쓰고 있는가?
둘째, 일상생활과 사회에 대하여 말하는 교회이다. 이전에는 성속(聖俗)의 이분법으로 사회생활과 일상생활이 신앙과 영성의 영역이 되지 못하였다. 교회는 교회의 신자들이 살아가는 일상생활과 사회에 대하여 할 말이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성경을 통해 복음을 알고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강조하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한 치도 하나님의 손에 벗어난 것이 없다고 고백하며 일상생활에서 하나님의 소명을 강조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은 예배당 담장 밖을 향해서도 할 말이 있다. 즉 교회는 사회를 향해서 말을 하는 곳이다. 칼빈은 제네바의 안전과 사회적 불의에 대하여 정부에 항의하기도 하였다. 교회는 얼굴을 가지고 있으며 의견을 가지고 있다. 좌도 우도 아닌 성경적이고 직접적인 말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칼빈의 교회는 일상생활과 사회의 모든 현상과 문제와 위기에 대해 말을 해왔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문제점 중에 하나는 일상에서, 사회 속에서, 함께 더불어 또는 일상과 사회에 대해 아무런 말을 하지 못하고 또 말의 신뢰를 잃어버린 것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칼빈이 한국교회에서 자기가 꿈 꾼 교회를 알아볼 수 있을까?
셋째, 국가와 정부의 권세로부터 독립하는 교회이다. 이전에는 교회가 국가의 권력에 의지한 일이 허다하였다. 이단에 속한 자를 국가의 권력을 힘입어 화형에 처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칼빈과 교회는 교회에 고유한 법이 있어야 한다, 교회는 오직 영적인 일을 담당한다고 주장하였다. 바로 이 일을 위하여 장로를 세우고 당회를 세웠다. 그리고 칼빈은 바로 이 때문에 제네바 교회에서 추방당하게 된다. 엄격한 권징과 성찬 참여의 제한 때문이다. 제네바 시의회는 엄격한 권징과 성찬 참여 제한을 반대하였고 여기에 개입하기에 되었던 것이다. 칼빈은 추방당하기까지 세상 권세로부터 독립한 교회를 세우려고 하였는데 오늘날 우리 교회는 어떠한가? 혹시 권력을 등에 업으려고 하거나 숫자와 돈의 힘을 가지고 권력을 이용하려고 한다면, 각종 인허가 등에 관련하여 권력을 입으려고 한다면 이는 칼빈이 세우려고 하는 교회 모습이 결코 아니다. 교회정치 원리에서 말한 대로 교회는 국가로부터 특혜를 바라지 않고 그저 국가가 모든 종교에 대해 동등하게 대해 주기를 바랄 뿐이고 종교의 안전을 보장해 주며 종교의 일에 개입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 한국교회는 어떠한가? 얼마나 국가의 권력과 결탁되어 있는가?
넷째, 찾는 교회이다. 찾는 교회는 곧 가정 심방과 전도와 선교, 사회봉사라는 오랜 전통을 유산으로 주었다. 가정 심방을 통해 영혼을 찾는 이 일은 특히 장로와 집사의 직무라 할 수 있다. 장로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한 영혼을 얻기 위해 사람을 찾는 직무를 가진 직분이며, 집사는 곤궁에 처한 자를 찾아 도와주는 직무를 가졌다. 그러나 이전에 교회는 찾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올 때까지 기다린 교회였다. 오늘날 심방이 사라지고, 특히 영적 감독과 목양을 위한 심방이 거의 전무한 현실을 볼 때 과연 칼빈이 한국교회에 와서 자기의 교회를 알아볼 수 있을까,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다섯째, 어머니로서 돌보는 교회이다. 어릴 때 어머니를 잃은 칼빈은 어머니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다. 어머니는 출산과 양육을 한다. 교회가 청소년에게 교리문답 교육을 시행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또 돌보는 교회는 권징(勸懲)을 시행하는 교회다. 권징은 벌을 주는 것 이상이다. 즉 권징은 사람들을 주님의 길, 좋은 길에 머물도록 돌보는 것을 가리킨다. 이러한 전통을 가지고 칼빈의 교회는 교회 안팎의 이웃을 항상 돌아보았다. 우리 교회는 어떠한가? 어머니로서 돌보는 교회인가? 외형 성장에만 관심을 가진 교회는 어머니의 가슴을 가질 수 없다. 어머니의 가슴을 가지고 권징을 시행하고 있는가?
여섯째, 항상 개혁되는 교회이다. 칼빈은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유기체이기에 유연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기 위하여 그리고 성경으로 돌아가기 위하여 지금의 관습을 철폐할 수 있어야 한다.
일곱째, 찬송하는 교회이다. 이전에는 교회에 찬송이 없었다. 교회에서 회중은 입을 닫고 있었다. 회중 찬송이 전무하였다. 그래서 개혁가들은 특히 성경의 시편을 찬송으로 만들고 회중 찬송으로 불렀다. 시편이 시대마다 성도와 교회의 노래와 찬송이었기 때문이다. 시편은 영혼을 해부한 책과 같기에 시편을 통해 그들은 찬송을 풍성하게 불렀다. 그래서 칼빈의 교회는 시편 찬송을 통해 고난 중에도 하나님을 찬송하며 또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인내하며 찬송하고, 깊은 곳에서도 부르짖으며 찬송하며 또 손에 두 날을 가진 칼을 가지고 찬송하는 것을 배울 수 있다. 오늘 우리 교회에는 찬송에 얼마나 깊이가 있고 넓이도 있으며 풍성한가? 찬송의 소리는 시끄러울 만큼 들리는데 과연 회중의 모임에서도 침상에서도 고난의 때에도 즐거울 때에도 찬송이 그치지 않는 교회인가?
칼빈이 만약 한국에 온다면 어느 교회에서 어느 교단에서 자기의 교회를 알아볼 수 있을까? 어느 교회를 찾아갈까? 칼빈 서거 450년을 맞아 이 질문을 깊이 생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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