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경 목사
온생명교회 담임목사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근 한 달이 다 되어가고 있다. 그 동안 우리는 우리 사회, 특별히 공직자와 기업과 종교계와 언론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대충 짐작만 하고 있던 것을 민낯 그대로 보게 되었다. ‘설마 그 정도일까’ 하던 생각이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는 것을 보고 있다. 한국이라는 나라와 사회에는 최소한의 공공성도 없다는 사실을 한 달 가까이 온 세계 앞에 생방송하고 있다. 사고가 난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 사고를 풀려고 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사건을 계속해서 만들어 내고 있다. 한국이라는 사회는 한 생명이라도 살려보려는 노력보다는 어떻게 해서든지 자신의 신상에만 문제가 없으면 된다고 하는 멸공봉사(滅公奉私)의 정신이 장악하고 있다는 것이 드러났다. 우리 사회의 괄목할 만한 성장은 약자들의 희생 위에 서 있다는 사실 또한 만 천하에 드러났다. 과장된 표현이겠지만 일본사회는 후쿠시마 원전사고 전후로 나뉘고, 한국사회는 세월호 참사 전후로 나뉘어질 듯하다.
세월호에는 선장이 없었다. 세월호 뿐만이겠는가? 과연 한국사회에는 제대로 된 선장이 있는 것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참사 초기에 대통령이 진도 팽목항으로 내려가 참사의 책임자는 엄벌하겠다는 발언을 하므로 이 참사는 해결의 기회를 놓쳤다는 말이 회자되고 있다. 대통령이 모든 것을 책임지겠으니 한 생명도 남김없이 다 살려내라고 말해도 부족했을 것인데 대통령의 그 말 한마디에 다들 자기 몸보신만 생각하다보니 한 생명도 살려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번 참사를 통해 우리는 각 영역을 책임지고 있는 지도자들이 너무나 무능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능력에 걸맞지 않게 너무나 과도한 특권만 누리고 있었다. 우리 사회의 지도자들은 무능력한 것은 둘째 치고 참으로 파렴치하기까지 했다. 우리는 우리의 작은 왕국에서 오직 자신만을 위해 살아왔던 것이다.
종교지도자라고 예외겠는가? 한 종교지도자의 그릇된 욕망이 채 피어나지도 못한 우리 자녀들의 생명을 그 어둡고 차가운 바다 속으로 밀어 넣었다고 말하면 억척일까? 이게 맘몬신에게 자기 자식마저 제물로 바친 고대인들의 모습과 무엇이 다르다고 할 것인가? 자신을 위해 자기 자식을 제물로 바친 것이 고대에만 있었던 일이 아니다. 남의 자식마저 바쳐 자신의 생명을 연장하고 풍요롭게 하려고 했으니 이것을 교회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고 세월호 참사의 주범이 소위 말하는 ‘구원파’라는 지적에는 동의하기 힘들다. 그들도 몇몇 탐욕에 사로잡힌 종교지도자들에게 이용당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여기서 우리는 한국 기독교의 민낯을 고스란히 보는 것은 아닐까? 한국의 수많은 교회들이 구원파처럼 교회를 하나의 기업처럼 운영하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우리는 그 동안 하나님을 섬겼던 것이 아니라 맘몬을 섬기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몇몇 대형교회만의 문제가 아니라 작은 교회들이 더 심한 거대병을 앓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십일조 많이 하는 것이 하나님께 복 받은 증거라고 했던 말에 우리는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세월호 참사는 우리 사회가 얼마나 허술한지 뿐만 아니라 한국의 종교가 얼마나 얄팍하고 허망한 것인지 돌아보게 한다. 종교가 무엇인가? 사람의 영혼을 위로하는 것이 아닌가? 사람의 영혼만이 아니라 사람의 전인을 살려주겠다는 것이 아닌가? 예수님이 말씀하셨듯이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는 말씀을 우리는 귓전으로 흘려 들었다. 지금이 말세인 이유는 자본주의의 과도한 탐욕 때문이 아니라 종교조차도 사람의 영혼을 돈으로 환산하고 있다는 것에 있을 것이다. 교회가 하나님의 복을 세상적인 성공과 동일시하고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말세 중에 말세라는 증거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하나님의 심판은 교회에서부터 먼저 시작된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다.
세월호 참사가 자라나는 우리 자녀들에게 준 가장 반교육적인 행태는 어른들의 말은 절대로 믿어서는 안되겠다는 것이었다. 어른들의 말을 듣고 순종한 아이들은 다 죽었기 때문이다. 어른의 말을 듣지 않은 이들만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는 우리 자녀들에게 어른의 말을 들을 필요가 없다는 사인을 제대로 준 것이다. 이제 우리 자녀들은 부모와 어른들의 말의 진위를 따지기 시작할 것이다. 그들은 기성 세대의 말을 끈질기게 물고 늘어질 것이다. 그 말의 배경에는 ‘너희들은 어떻게 되든지 상관없고 나만 살겠다’고 하는 것이 깔려 있는 것이 아니냐고 말이다. 기분 나빠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제부터 우리는 어른의 말을 결코 들으려고 하지 않는 젊은이들을 대해야 한다.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이 없지만 소 잃고 외양간을 고쳐야 한다. 이게 타락한 인생의 현실이다. 비분강개하는 것으로는 어떤 해결책도 만들어내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역사를 통해 제대로 배운 것이 하나도 없다. 우리도 예외 없이 우리 자녀들을 맘몬에게 제물로 바치고 있지 않는지 돌아보아야 하겠다. 그런데 모두의 책임이라고 말하면 문제의 본질을 흐리는 것이 될 수 있다. 우스운 이야기일 수 있지만 종교가 이번 참사에 대해 쏟아내는 잘못된 메시지 중 하나는 모든 이들이 죄인일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모든 이들이 다 죄인이라는 말은 그 어떤 사람도 책임질 필요가 없다는 면죄부가 되기 쉽다. 도토리도 키재기를 해야 한다. 우리는 철저하게 책임을 묻되 그 책임을 영구히 같이 져 나가야 할 것이다. 교회조차 앞다투어서 ‘미안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현수막을 내걸고 있는 이때 정말 미안하지만, 그래서 정말 이 참사를 잊지 말아야 하겠지만 이제부터는 ‘우리가 새 생명을 품겠습니다’라는 현수막을 우리 마음에 조용히 달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