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5년 1월28일, 캄펜신학교 (해방파) 개교 160주년 기념행사로써 일본인 지휘자겸 오르가니스트인 마사키 스즈키(Masaaki Suzuki)의 명예학사 학위 수여식이 있었습니다. 마사키 스즈키는 해방파교회의 자매교회인 일본 기독개혁파교회 소속 교인으로 바흐 음악의 대가입니다. 이번 명예박사 학위는 그가 창단한 Bach Collegium Japan 이 20년에 걸쳐 완성한 바흐 칸타타 전곡 녹음의 가치와 공헌을 인정하여 수여되었습니다. 이번 명예박사 학위 수여는 캄펜신학교가 개교 이래 최초로 수여하는 명예박사 학위였습니다. 아래의 글은 마사키 스즈키의 명예박사 학위수락 연설의 요약본입니다.
저자: 마사키 스즈키(캄펀신학교)
번역: 이충만 목사1)/해외필진(네덜란드)
===========================================================
바흐의 기적이 비기독교 국가인 일본에
지난 20년간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의 칸타타는 놀라운 복을 일본에 선물했습니다. 그 중의 일부를 저는 일본인으로서, 기독교인으로서, 지휘자로서, 그리고 오늘부터 신학박사로서 이 시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저는 1983년 암스테르담의 Sweelinck Conservatorium을 졸업한 후 고국 일본으로 돌아갔습니다. 고베시의 Shoin 여자대학교에서 가르치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갓지어진 훌륭한 대학부속 예배실과 오르간을 이용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예배당에서 열릴 연주회 시리즈를 계획했습니다.
저는 소규모의 합창단을 구성하였고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의 칸타타를 시리즈로 연주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그 시리즈에는 칸타타뿐만 아니라 바흐의 성악곡과 오르간 연주곡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7 년 후 1990년에 오사카에 소재한 연주 홀을 사용 할 수 있게 되면서 음악단원을 모집하였습니다. 이것이 일본 바흐 콜레기움(Bach Collegium Japan)입니다.
지진 그리고 5년후
1995년에 고베시에 끔찍한 지진이 발생했습니다. 이때 일본 바흐 콜레기움은 스웨덴 음반사인 BIS와 계약을 맺었고 앞서 말씀드린 Shoin 대학부속 예배실에서 바흐의 교회 칸타타를 처음으로 녹음하였습니다. 그러기에 올해(2015년)는 일본 바흐콜레기움이 바흐의 칸타타를 녹음하기 시작한지 2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녹음을 시작한 첫 몇 년간 상당한 어려움과 시련이 있었습니다. 일본의 음악인들이 바흐 음악을 연주한다는 것이 그리 단순한 일이 아니며, 특히 젊은 성악가들에게는 더욱그렇습니다. 녹음 도중 어떤 성악가는 힘에 부쳐 울기도 했고, 연주단원들이 모든 힘을 다 쏟아낸 바람에 더 이상 연주를 진행 할 수 없었던 적도 있습니다. 프로듀서들과의 불화도 물론 있었습니다. 한창 진행되던 녹음이 폭우소리에 중단된 적도 종종 있었습니다. 여름에는 매미 울음 소리가 녹음을 더 이상 진행 할 수 없을 정도로 방해가 된 적도 있습니다.
당시 중요한 원전악기들-예를 들어 바로크 트롬본과 오보다카치아-은일본에서 찾을 수 없었고, 이런 악기들을 연주할 수 있는 연주자를 찾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 자신이 오보다카치아를 구입해야 했고, 이 악기 연주에도 전해 보고자 하는 일본인 오보이스트를 찾았습니다. 그러나 실제 연주를 위해서는 이러한 원전악기들을 능숙하게 다룰 수 있는 유럽의 연주자들이 필요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단원들 중 어느 누구도 바흐칸타타와 같은 대곡을 녹음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습니다. 1분이 채 되지 않는 길이의 단순한 4성부 합창을 정확한 억양과 발음으로 녹음하는 데 때론 두 시간이 소요되었습니다.
비용
게다가 음악가들에게는 녹음한 CD가 실제로 판매되었을 때에 수입이 생깁니다. 그런데 바흐음악 녹음 프로젝트를 막상 시작하니, 녹음한 CD가 판매되기도 전에 지출해야 할 비용은 늘어났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곧 더 이상 프로젝트를 유지할 수 없게 되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당시 일본이 일시적이었으나 심각한 경제위기에 직면해 있었다는 것도 원인 중의 하나였습니다. 그제야 후원자가 없이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 시도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이러한 어려움들 속에서 보살펴 주시지 않고 인도해 주시지 않으셨다면 이 프로젝트가 중단될 수 밖에 없었음을 확신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것들을 보호해 주시고 인도해 주셨습니다. 단원들 중에 누군가가 아프거나 노래할 수 없는 상황이면, 대체할 수 있는 다른 누군가가 언제나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여전히 확실한 정기후원자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적시에 필요를 채울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은혜로운 사건들로 인해 우리는 이 프로젝트를 지속할 수 있었습니다.
성령 하나님
바흐의 칸타타에는 기쁨이나 슬픔과 같은 인간적인 감정이 표현되어 있지만, 그것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면, ‘성령’이라는 단어입니다. 사실 바흐가 사용하는 ‘성령’이라는 단어를 이해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성령을 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칸타타 ‘Erschallet, ihr Lieder (BWV 172)’ 의 테너 아리아를 듣는 사람은 창조의 순간에 불어오신 성령이 영혼의 동산에도 숨을 쉬고 계신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직관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칸타타‘Herr Jesu Christ, wahr’ Mensch und Gott (BWV 127)’ 의 소프라노 아리아는 다른 어떤 것과 비견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데, 이를 들을 때, 우리는 죄의 영향력을 이해하고, 죽음이 시간의 흐름 속에서 피할 수 없도록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바흐의 칸타타를 실황으로 연주하는 것은 우리 연주자들과 청중들 모두에게 독특한 경험이 됩니다. 지난 20년간 칸타타 연주는 항상 연주회 형식으로 이루어졌고 교회 예전의 형태로 행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바흐의 모든 칸타타들은 당연히 루터파의 예전을 위해 작곡되었습니다. 하지만 독일어가 일상어가 아닌 일본에서 바흐의 칸타타를 교회 예전의 일부로 연주한다는 것은 당연히 불가능합니다. 처음에는 이러한 상황을 애석하게 생각하였습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곧 연주회 형식으로 연주되는 바흐음악이 또 하나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곧 바흐의 음악은 연주회 자체를 예배로 만듭니다.
마음의 깔때기
칼빈은 음악을 마음의 깔대기2)로 비유하였습니다. 이러한 칼빈의 표현은 제 자신의 경험과 일치합니다. 바흐의 칸타타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영혼에 깊이 각인 되도록 하고 우리의 전인격을 관통하게 만듭니다. 이를 지난 20년 동안 바흐의 칸타타를 녹음하면서 경험 하였습니다. 이 바흐 칸타타 프로젝트는 하나의 기적과 같은 것입니다. 그것은 무엇보다 일본이라는 나라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세속화 된 나라, 비기독교적인 민족, 바흐의 독일과는 너무나 먼나라에서 바흐의 작품이 열정적으로 연주되고 들려질 수 있다는 것을 누가 상상 할 수 있었을까요? 여전히 일본의 기독교인 수는 극히 소수입니다. 또한 여전히 일본에는 대대적인 회개의 분위기나 교회 수의 급진적인 증가의 여지는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성경의 말씀과 복음이 느리지만 분명하게 일본인들의 마음을 두드리고 있음은 분명합니다.
▲ 마사키 스즈키 ⓒ 개혁정론
향수
올해는 그 의미가 깊은 한 해 입니다. Bach Collegium Japan의 설립 25주년이며, 대지진이 고베시에 발생한지 20년이 되는 해입니다. 당시에 우리들은 바흐 칸타타 전곡 녹음 프로젝트를 시작했었지요. 하지만 올해가 가지는 더욱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은 일본이 세계 2차 대전의 패전국이 된지 70년이 되는 해입니다. 그런데 저는 애석하게도 일본 사회가 더욱 하나님의 뜻에 반하고 있음을 느낍니다. 특히 일본 정부의 보수화 성향이 눈에 띕니다. 많은 사람들은 작금의 사회적 분위기를 전쟁에 대한 향수라 표현하기도 합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저는 음악의 필요성을 더욱 실감합니다. 음악은 힘이 있어 우리로 하여금 올바른 태도를 회복하고 우리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끕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저는, 비록 바흐 칸타타 녹음 프로젝트의 긴 여정은 막을 내렸습니다만,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의 칸타타가 수행해야 할 임무는 결코 끝나지 않았다고 확신합니다.
=====================================================
1) 이충만 목사(네덜란드)는 현재 네덜란드 개혁교회(해방파)에서 세운 캄펀(Kampen)신학교에서 박사과정 유학 중에 있다.
2) 칼빈에게 예전에서 사용되는 노래는 선포된 말씀과 동일하게 중요하다. 그런데 이때 음악은 텍스트와 멜로디의 조합이다. 칼빈은 멜로디를 포도주를 포도주통에 담을 때에 사용하는 깔대기로 비유하였는데, 이는 멜로디가 텍스트를 사람의 마음과 인격 깊숙이 다다를 수 있도록 돕기 때문이다.
< 저작권자 ⓒ 개혁정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