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로부터 교회를 생각함
필자: Dr. Arnold Huijgen(아펄도른 신학교 조직신학 조교수)
번역: 이충만 목사/해외필진(네덜란드)
4월의 세 번째 주, 영국 신학자들의 대표적인 모임인 SST (Society for the Study of Theology)가 개최되었다. 올해의 주제는 "오늘의 교회를 생각함" 이었다. SST는 이 주제로 신학의 시대정신을 잘 파악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교회라는 주제는 현재도 많은 논의가 진행되는 중요한 주제이기 때문이다. 교회가 위축되고, 교회의 사회적 역할이 사회의 주변부로 밀려나는 요즈음 더욱 그러하다. 이러한 시대 상황은 한때 세계제국의 국교회였던 영국국교회에게 더욱 뼈아프다.
‘당신은 교회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다양한 대답을 제시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질문이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으로부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곧 ‘신학적’으로- 다루어져야 한다는 것만은 본질적이다. 그렇지 않을 때 교회를 오해하게 된다. 우리는 교회를 성급하게 마치 임의로 결성된 협회 정도로 생각한다. 또한 ‘모든 신자들이 곧 제사장이다’라는 모토를 마치 교회의 민주화된 모습으로 이해한다. 혹은 선교적인 열정이 마케팅에 대한 열심으로 변한다. 부지중에 교회론은 신학적으로 다루어지기보다 특정 집단에 대한 차별과 외국인 혐오와 같은 사회적 문제를 반영한 이론이 된다. 이로써 교회론이 교회를 다루고 있는지, 혹은 임의로 결성된 사회조직이나 사교모임을 다루고 있는지 불분명하게 된다. 그러나 교회는 본질적으로 ‘신학적’으로 이해되어져야 한다.
교회론에 대한 ‘신학적’이해가 사회・문화적 요소를 등한히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당연히 사회・문화적 요소들도 교회론이 다루어야 한다. 하지만 그것은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이 가르쳐주는 관점을 따라서 고려되어야 한다. 요리문답은 "교회에 대해 무엇을 믿는가?"라는 질문(제21주일, 54문답)에 대한 대답에서 ‘교회’를 주어로 사용하지 않는다. 주어가 대체된다. 주어는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하나님의 아들’ 그 분이 모으시고, 보호하시고 보존하신다. ‘하나님의 아들’ 그분께서 교회가 무엇인지를 규정하신다.
질문: "거룩한 보편적 교회"에 관하여 당신은 무엇을 믿습니까?
답: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의 처음부터 마지막 날까지 모든 인류 가운데서 영생을 위하여 선택하신 교회를 참된 믿음으로 하나가 되도록 그의 말씀과 성신으로 자신을 위하여 불러 모으시고 보하고 보존하심을 믿습니다. 나도 이 교회의 살아있는 지체이며 영원히 그러할 것을 믿습니다.
요리문답의 가르침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예를 들어 보자. 교회를 방문한 내・외국인 방문자들을 환영해야 한다. 이들을 환영하는 것은 당연히 주님의 복음을 따르는 일이다. 그런데 우리가 이들을 어떻게 환영하는지를 곰곰이 생각해 보면, 미묘한 점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는 방문자들을 환대해야 함을 강조한 나머지 이들이 우리와 다르다는 것을 강조하게 되고, 이들을 특정한 손님의 위치로 밀어 붙인다. 곧 은연중 우리는 이들을 억누르고 동시에 은근히 배제한다 (저자는 화란어 성경 출애굽기 22:20절을 염두에 두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구체적인 문제다. 그런데 우리가 이 문제를 그리스도의 관점에서 새롭게 반성하지 않는다면, 신학적으로 논의하는 듯 하나 손님을 환영하는 것에 대한 세속적인 관점을 제시하게 된다. 이럴 때 교회는 그저 사회적 조직이나 사교 모임이 된다.
‘신학적’ 관점에서 교회를 찾아온 자들에 대한 환영과 환대를 논의한다는 것은 환영하는 자와 손님 사이의 긴장을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보게 한다. 그리스도 그분께서 우리와 손님들 모두를 환영하신다는 것이 본질적으로 중요하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교회를 찾아온 자들을 환영할 때, 우리 자신이 먼저 그리스도의 손님이다. 그러기에 우리가 먼저 그리스도의 손님으로서 그리스도의 은혜를 맛보는 그 만큼, 찾아온 손님들을 환대할 수 있는 힘을 얻는다. 이렇게 ‘신학적’으로 이해된 교회가 ‘우리와 같은 인간들의’ 모임이기도 하다.
방금 필자가 이야기 한 것은 하나의 예이다. 또한 우리가 이 문제를 ‘신학적’으로 고려한다고 하여 타인을 은밀하게 배척하는 태도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교회는 우리의 프로젝트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소유라는 점이다. 그러기에 교회는 ‘신학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바로 이 사실, 교회가 ‘신학적’이라는 것 -곧 교회는 그리스도의 소유라는 것- 은 무엇보다 큰 은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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