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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칼럼] 개혁주의 신앙고백들: 그 역사적 배경과 성격

    이 칼럼은 아래와 같은 순서로 게재될 예정입니다.

1: 벨기에 신앙고백: 박해받는 교회의 증언  존 볼트 (미국 칼빈 신학교 조직신학 교수)

2: 마음을 끄는 하이델베르크 리문답  라일 비에르마 (미국 칼빈 신학교 역사신학 교수)

3: 도르트 신경  리차드 멀러 (전 미국 칼빈 신학교 역사신학 교수)

4: 신앙고백이 갖는 장단점  존 쿠퍼 (미국 칼빈 신학교 철학신학 교수)


 



신앙고백들의 장단점[1]



John-W-Cooper.jpg

저자: 존 쿠퍼 (John Cooper, 미국 칼빈 신학교 철학신학 교수)[2]

번역: 태동열 (미국 칼빈 신학교 조직신학 박사과정 중)



 

북미 기독개혁교단(Christian Reformed Church in North America, 약칭으로 CRCNA)은 의도적으로 신앙고백적인 교단이다. 임직 서약(the Covenant of Officebearers)과 벨하 신앙고백(the Belhar Confession)[3]에 대한 최근 교단의 논의들과 총회의 결정들은 하나 되는 고백서들(The Three Forms of Unity) –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벨기에 신앙고백, 그리고 도르트 신경 관한 우리의 약속을 강하게 재확인해 주었다. 고백서들 각각은 자체의 구조와 언어를 가지고 있고 그것들 어느 것도 성경이 가르치는 모든 것을 포착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고백서는 기독교 신앙과 삶에 토대가 되는 기본적 관점과 특별한 교리들의 복음중심적 요약들이다. 그것들은 함께 개혁 신앙에 관한 건전한 개관을 보여준다. 교리적 표준들로서의 고백서들은 우리의 영적 선조들이 무엇을 고백했는가를 말해줄 아니라 우리가 무엇을 믿어야 지를 말해준다. 우리는 여전히 고백서들이 성경에 충실하고 주님과 함께 동행하는 우리의 발걸음을 고양시킨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다른 배경에서 자라 우리 교단에 가입하는 많은 이들은 고백들이 성경적 진리의 귀중한 보물들임을 발견한다.

하지만 최근의 논의들은 또한 신앙고백들에 대한 우려를 제기했다. 어떤 이들은 우리가 교리를 지나치게 강조함으로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을 단순한 머리 지식(head-knowledge) 혼동하고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을 경시하며 복음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실패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아해한다. 다른 이들은 세기가 지난 신앙의 진술들에 우리가 전념하는 것이 성경에의 개방성을 질식시키고, 성령을 실망시키며, 신학적 갱신을 방해하고, 서구의 주지주의를 반영하며, 다른 그리스도인들로부터 우리를 고립시키고, 복음을 오늘날의 세상에 적용시키는 우리의 능력을 손상시키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워 한다. 선한 개혁파 사람들이 이러한 우려들을 제기한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함께 이러한 물음들과 씨름해야 한다.

 

교리적 표준들은 우리의 신앙과 삶을 손상시키는가?

 

교리적 정통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은 율법주의적이고 분리주의적인 것이 있고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을 신학적 지식과 혼동하도록 착각하게 있다. 만일 우리가 성경, 기도, 순종하는 , 그리스도 안에서의 교제, 그리고 복음전파에 대한 관심보다 고백서들에 많은 관심을 둔다면, 그것은 영적으로 죽어 가는 것이라 있다.

하지만 고백서들을 긍정하고 지지하는 것이 반드시 그런 왜곡으로 인도하는 것은 아니다. 북미 개혁교단 내에서 누가 그런 식으로 그것들을 옹호하고 그렇게 살아 가고 있겠는가? 만약 일찍이 교조주의(doctrinalism) 문제였다면, 그것은 십년 전의 일이다. 1970년대 이후로 교리문답설교, 교리교육, 그리고 개혁주의 신앙고백들에 대한 교인들의 지식은 꾸준히 감퇴해 왔다. 이단에 대한 두려움이 방문자들에 대한 우리의 환대의 결핍 이면에 있는가? 유기(reprobation) 관한 교리가 복음화를 방해하는가? 우리의 영적인 결점들에 대한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신앙고백적 정통성을 향한 과도한 열정에 잘못이 있지 않음은 분명하다. 사실 나는 교리에 대한 관심의 부족이 문제의 일부가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그러나 만약에 신앙고백들이 심지어 우리에게 해를 끼치는 경우가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그것들을 보유해야 할까? 단순히 성경과 사도신경 같은 기본적 신앙진술만을 지지하고 다른 교리들을 개인들, 회중들, 그리고 학자들에게 남겨두지 않을까?

 

건전한 교리는 성경이 요구한다

 

기독 교회들은 교리적 진술들을 채택해 왔는데 이는 성경이 우리에게 그것이 가르치는 바를 인정하고 믿고 실천하도록 명하기 때문이다. 스탠 매스트(Stan Mast, 미국 칼빈 신학교 설교학 겸임교수) 박사의 기사 - “가려운 귀들의 시절에 건전한 교리 설교하기[4] - 는 인상적으로 이 점을 밝혀준다. 교리는 단순히 기독교에 관한 인간적 진술들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성경에서 가르치시는 바에 대한 주의 깊은 확인이다. 그것은 단순한 머리 지식(head-knowledge)이 아니라 하나님, 창조, 우리의 죄,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 성령의 사역, 교회,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나라와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기록된 하나님의 계시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성경에서 가르치시는 모든 것들을 듣고 순종해야 한다. 건전한 교리의 결핍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데 실패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백성의 믿음, 소망, 사랑, 예배, , 그리고 사역의 토대를 침식하는 것이다. 신앙고백들이 성경에 있는 모든 것을 포착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들은 다른 것들이 의존하고 바르게 이해되도록 하는 핵심 가르침들을 구성한다.

 

역사는 신앙고백의 중요성을 가르친다

 

교회 역사는 신앙고백들의 중요성을 확증한다. 사도신경, 니케아신경, 그리고 아타나시우스신경은 그 당시 지식인들이 명제들에 대해 토론하기 원했기 때문이 아니라, 주로 초기 교회들의 삶과 예배의 중요한 이슈들 때문에 작성되었다. 이 신경들은 보편적 성격을 지녔고 지금까지 동방 정교회, 로마 카톨릭, 그리고 신앙고백적 개신교회들에 의해 지지되어 왔다. 하나 되는 세 고백서들은 종교개혁 이후 루터파, 개혁파, 로마카톨릭, 그리고 어떤 재세례파 교회들이 각기 기독교 신앙을 그들 자신의 관점을 반영하는 요리문답들과 신앙고백들로 요약할 때 작성되었다. 기독교가 서구 문명에서 지배적이었던 수 세기 동안 교단들은 그들의 교리적 차이들을 강조했다 종종 배척, 고립, 그리고 적개심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그런 유감스러운 태도들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존재한다. 하지만 교단의 신앙고백들은 성경, 하나님의 본질, 삼위일체,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 초자연적 기적들, 속죄, 부활, 그리스도인의 삶, 그리고 내생과 같은 신앙에 관한 근본 교리에 있어서는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 300년 동안 서구 사회에서의 기독교 신앙은 이신론(Deism), 계몽주의적 합리주의, 낭만주의적 인본주의, 과학적 자연주의, 그리고 포스트모던적 다원주의에 의해 도전을 받아왔다. 이 기간 동안 기독 교회들 사이의 주된 분열은 성경적 교리에 대한 그들의 역사적 신앙고백들에 충실해온 교회들과 근대와 근대후기의 지적 윤리적 원리들에 기독교를 순응시켜온 교회들 사이에 있어 왔다. 신앙고백들의 현대적 중요성은 성경적 기독교와의 연속성을 유지하고, 근대주의자들과 후기근대주의자들의 일탈들과 종교다원주의에 대한 경계심과의 연속성을 유지하는 것이다. 신앙고백적 개신교인들은 종종 신앙의 기본 교리들에 있어서 그들 자신들의 교단들의 자유주의적이고 진보주의적 구성원들보다 정교회와 카톨릭의 신앙고백적 그리스도인들에게 더 친밀함을 느낀다.

 

이 신앙고백들은 시간-제한적인가?

 

어떤 이들은 이 신앙고백들이 시간-제한적이고 시대에 뒤떨어져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들은 시간-제한적(time-bound)이라기보다 시간-특정적(time-specific)이라고 말하는 것이 더 옳다. 이 신앙고백들은 16, 17세기에 작성되었고, 따라서 그것들은 분명히 그 시대의 방법으로 그 이슈들을 다루었다. 하지만 그것들이 주장하는 교리들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이유로 그 시기에 제한되지 않는다: (1) 그것들은 보편적이다; (2) 그 이슈들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널리 영향을 미치고 있다.

첫째, 이 신앙고백들은, 초기교회 이후 그 효력이 지속되어 오고 여전히 전 세계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성경적 정통성의 경계를 정해주는 보편적 신경들 사도신경, 니케아신경, 칼세돈신경, 아타나시우스신경 의 교리들을 재확인한다. 그것들의 진술 내용이 영원하지는 않지만, 그것들은 세월을 견딘다. 이 신앙고백들은 16세기 박물관의 작품들이 아니다.

둘째, 그리스도인들이 논의하는 교리들에 대한 개혁주의의 입장은 후기종교개혁 시대에 제한되지 않는다. 이 이슈들 대부분은 초기교회 시대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논의되어 왔다.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의지; 선택과 심판; 은혜, 믿음, 그리고 행위의 관계성; 성경의 본질; 성경에서의 계시와 자연에서의 계시; 교회의 본질과 사명; 성례들;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방식과 세상과의 관계 이 모든 주제들과 그 이상의 것들은 초기교회 이후부터 논의되어 왔다. 대부분의 이슈들은 선택의 여지가 거의 없다: 하나님은 완전히 주권적이시든지 그렇지 않으시든지 둘 중 하나이다; 세례는 오직 신자들을 위해서만 베풀어지든지 혹은 그렇지 않든지 둘 중 하나이다. 성례들에 관해서 단지 몇 가지 가능한 이해들만 있고 교회정치에는 몇 가지 종류들만 있다. 그것들을 찬성하거나 반대하는 서로 다른 입장들과 이슈들은 수 세기 동안 논의되어 왔다. 성경에 대한 전적으로 새로운 입장들과 해석들은 (후기-계몽주의 관점들이 채택되지 않는다면) 있을 것 같지 않다. 개혁주의 신앙고백들은 개혁파 교회들이 믿고 있는 입장이 가장 성경적이라고 진술한다. 어떤 사람은 개혁주의 신앙고백들이 틀리거나 지나치게 한정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들은 시간-제한적이지는 않다.

 

오늘날 우리는 어떻게 이 신앙고백들을 해석해야 할까?

 

이 신앙고백들에 대한 두 가지 상반되는 오해들이 있다. 어떤 이는 그것들을 역사적으로 상대적이고 오늘날 직접적 적용과는 무관한 것으로 취급한다. 다른 이는 근본주의자로서 이 고백서들에 있는 모든 내용들을 정확히 그것이 수 세기 전에 이해되었던 방식 그대로 적용한다. 나의 견해로는, 우리가 성경과 관련해서 사용하는 해석방법을 똑같이 사용하는 것이 바른 접근이다.

성경에 대한 개혁주의적 접근은 우리가 오늘날 우리의 삶에 성경을 제대로 적용할 수 있기 위해 그것이 기록되었을 때 그것이 무엇을 의미했는 지를 이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성경은 모든 시간과 장소에 지속적으로 적용되는 하나님, 인간, 구원, 그리고 우리의 삶을 향한 하나님의 뜻에 관한 많은 진리들을 가르친다. 성경은 또한 제한된 시간과 장소에서 의도되었던 것들 구약의 희생제사들, 정결 음식법 (kosher laws), 그리고 교회에서 모자를 쓰는 것과 노예를 소유하는 것에 관한 신약의 규율들 - 을 가르친다. 마찬가지로 인간에 대해서, 우리의 기본적 본성은 똑같이 유지되지만 우리의 지식, 문화, 기술, 그리고 사회 형태들은 변한다고 가르친다. 성경은 대부분의 이슈들에 대해 분명하지만, 교회는 때때로 명료함을 얻기 위해 숙고하고 기도해야 한다.

유사하게, 이 신앙고백들은 그것들이 진술하는 대부분의 이슈들에 대해 분명하다. 만약 그것들이 성경에 비추어 잘못되었거나 지나치게 편협하다고 생각된다면, 교회는 그것들을 교정하는 일에 전념한다. 하지만 때로는 그것들이 오늘날 무엇을 의미하거나 암시하는 지가 분명하지 않다.

수 세기 동안, 개혁파 총회들, 교육자들, 그리고 문화적 지도자들은 이 고백서들을 그들의 시대의 이슈들과 관련해서 해석하고 적용해왔다. 우리도 오늘날 그렇게 하고 있다. 이러한 모습들은 왜 신앙고백적 정통파의 관행이 오래되고 죽어버린 과거에 대한 사라져가는 메아리가 아니라, 살아있고 당면한 문제와 관련된 전통인지를 잘 보여준다.

이 신앙고백들을 사용하는 것은 입법부의 결정으로부터 2백 년이 지난 후 대법원이 헌법을 해석하는 것과 같다. 판사들은 반드시 본래적 원리들을 입법자들이 상상하지 못했던 복잡한 상황들에 적용해야 한다. 또 다른 비유는 그려진 지도가 없는 땅을 측량하는 경우이다. 측량자들은 고정된 출발점을 취하고 정확하게 지정된 표시물들을 세우며 새로운 지점으로 이동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원래의 경로들을 따르고 있는 한에서 발걸음을 유지한다. 만약 성경이 우리의 출발점이고 이 신앙고백들이 우리의 역사적 표시물들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그 성경적-신앙고백적 경로들 내에서 미래를 도모해야 한다. 우리는 그 경계들 내에 있는 많은 새로운 생각들과 그 경계들 밖에 있는 많은 것들을 발견할 것이다.  

 

결론

 

이런 방법으로 이 신앙고백들에 접근하게 되면, 우리는 그것들이 새로움과 개혁을 방해함으로 하나님의 성령을 실망시키는 낡아 빠진 속박물이 아님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그것들은 하나님께서 어느 곳에서 우리에게 기회를 주시든지, 복음을 표현하고 맥락화할 수 있는 신앙과 삶에 관한 성경적 진리들의 살아있고 신뢰할 만한 요약들로 남아 있는다.




[1] 미국 칼빈 신학교 Forum 2013년 겨울 호에 The Pros and Cons of Confessions라는 제목으로 실린 내용으로 번역 및 게재의 허락을 받고 게재합니다. 저작권은 Forum과 저자에게 있습니다.

[2] 존 쿠퍼 교수는 토론토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1978년에서 1985년까지 칼빈 대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쳤으며, 1985년부터 지금까지 칼빈 신학교에서 철학신학을 가르치고 있다. 그의 저서로는 Body, Soul, and Life Everlasting: Biblical Anthropology and the Monism – Dualism Debate (2000, c1989), Our Father in Heaven: Christian Faith and Inclusive Language for God (1998), Panentheism - The Other God of the Philosophers: From Plato to the Present (2006) 등이 있다.

[3]벨하 고백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있었던 인종차별에 대항하여 투쟁하던 갈등 속에서 뿌리가 자라기 시작했다. 신앙의 부르짖음신실성과 회개로의 요청1982년에 알란 보삭(Allan Boesak) 박사의 지도력 아래 화란개혁선교교회(Dutch Reformed Mission Church [DRMC])에 의해 처음 초안되었다…. 화란개혁선교교회는 1986년에 공식적으로 벨하 고백서를 신앙고백문서로 채택하였다. 이 신앙고백서는 새롭게 결성된 남아공연합개혁교회(Uniting Reformed Church of Southern Africa [URCSA])교회 일치를 위한 표준문서들가운데 하나다. 벨하 신앙고백서는 인종차별주의라는 죄에 신학적으로 도전하면서 남아공의 여러 개혁교회들이 서로 화해하는데 커다란 공헌을 하였으며 남아프리카공화국 안에 민족적 화해가 이루어 가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류호준 교수의 무지개성서교실,’ 인터넷 홈페이지 글에서 인용). 현재 미국의 RCA (Reformed Church of America, 미국개혁교단)에서 벨하 신앙고백을 그들의 신앙고백으로 공식적으로 채택하였으며, 여러 개혁교단과 장로교단에서 이것을 그들의 공식적인 신앙고백으로 채택할 것인가를 논의하고 있다.

[4] 스탠 매스트 교수의 이 제목의 글은 존 쿠퍼 교수의 글과 함께 미국 칼빈 신학교 Forum 2013년 겨울 호에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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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 갱신을 위한 설교 저자: 케이스 돈보스 (Keith Doornbos, 갱신 연구소 프로그램 디렉터) 번역: 박재은 목사 (미국 칼빈 신학교 조직신학 박사 과정 중) 21년 전 문제에 직면한 한 교회로부터 설교 요청을 받았다. 교회 내의 평신도 지도자 그룹과 더불어...
    Date2015.11.20 By개혁정론 Views1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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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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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로교회 예배당 폐쇄 조치를 접하며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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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왕처럼 살고 싶습니까? 왕처럼 나누...
푸틴의 머릿속에 있는 그림
백신 의무 접종과 교회 (3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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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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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어떻게 맞을까를 잠시 생각하며
제73회 총회가 남긴 몇 가지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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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3회 총회를 스케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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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 직분 허용이 가져다 줄 위험한...
[고신 70주년에 즈음하여 9] 고신교...
논문
송상석 목사에 대한 교회사적 평가 ...
송상석 목사와 고신 교단 (나삼진 ...
송상석 목사의 목회와 설교 (신재철...
네덜란드 개혁교회 예식서에 있어서...
제7차 헌법개정초안(2022년 6월)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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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차 헌법개정초안 예배지침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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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C 강령의 “전통적 웨스트민스터 ...
지역교회의 적정 규모(規模 size)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