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기독교적 세상에서 기독교인으로 살아가기
저자: 조엘 비키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 총장)
번역: 박재은 목사 (미국 칼빈 신학교 조직신학 박사과정)
1. 이 세상 속에서 기독교적 가치관을 발전시킬 좋은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한 마디로 표현해서 가장 좋은 방법은 “순종”이다. 사실 이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명령들을 지키며 살아야 할 때 유일한 방법은 순종이다. 골로새서는 여러 모양으로 이에 대해 설명해주고 있다. 골로새서 3:17은 모든 것을 하나님 영광을 위해 해야 한다고 권면한다.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그리스도의 이름을 묵상하며 일을 해보라. 이것은 곧 하나님의 심부름꾼으로서 자신의 일을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을 구하라는 말이다. 또한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근면과 성실로 일을 해야 한다.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골 3:23).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정의를 세워 나가야 한다. “상전들아 의와 공평을 종들에게 베풀지니 너희에게도 하늘에 상전이 계심을 알지어다” (골 4:1). 또한 우리는 우리의 직업을 위해 또한 같이 일하는 동료를 위해서도 기도할 필요가 있다. “기도를 계속하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골 4:2). 그뿐 아니라 말에 있어서 하나님의 진리의 영광이 드러나도록 해야 한다. “외인에게 대해서는 지혜로 행하여 세월을 아끼라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맛을 냄과 같이 하라 그리하면 각 사람에게 마땅히 대답할 것을 알리라” (골 4:5-6). 이 말은 같이 일하는 사람에게 매일 설교를 하라는 말이 아니다. 당신의 직장은 설교강단이 아니다. 이 말은 동료와의 대화 가운데서 지혜롭게 하나님의 말씀이 잘 드러나게 만들어 성령의 도우심으로 영적으로 부족함을 느끼는 사람들의 요구를 해갈시키라는 말이다.
2. 비기독교적 세상에서 기독교인으로 살아갈 때 “안식”은 얼마나 중요한가?
안식은 매우 중요하다. 십계명 중에 쉬는 날은 하나님이 언약 백성을 구원하심에 있어 중요한 요소였다 (출 20:1-2).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고 참된 안식을 할 때 비로소 하나님께서 우리 시간의 주인이 되신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출 20:8-11).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자기들을 의지한 것 아니라 하나님을 인도하심을 의지하면서 살아갔다 (출 16:4-6). 우리도 믿음 안에서 이렇게 살아야 한다. 특히 요즘 같이 물질만능주의에 빠져 있는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은 맘몬주의를 경계하며 하나님이 바로 우리의 구주라는 사실과 어떠한 경제적 욕구와 출세의 욕구에 종노릇 하지 않겠노라고 다짐해야한다 (마 6:24). 하나님 안에서 우리는 영적인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사 58:13-14).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영광의 소망을 묵상할 때 참된 안식을 누릴 수 있게 된다 (히 4:7-10). 이렇게 한번 생각해보자. 결혼 생활을 할 때 배우자를 위해 특별한 시간을 빼어 함께 그 시간을 보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만약 부부끼리 이런 시간을 갖지 않는다면 아마도 부부관계가 점점 시들해질 것이다. 만약 당신의 아내가 당신이 아닌 다른 남자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고 한다면 나중에 어떤 일이 벌어지겠는가? 안식은 하나님과 함께 하는 특별한 시간이다. 만약 다른 이유로 안식의 시간을 놓쳐 버린다면 아마도 우리의 마음은 우리의 욕구가 가고자 하는데로 따라 가고 말 것이다.
3. 가정과 교회의 권위를 지킴에 있어서 성경적인 가이드라인은 무엇일까?
나는 가정과 교회가 마치 적인 것처럼 그 둘 사이에 뚜렷한 선을 긋고 싶지 않다. 사실 가정과 교회는 서로에게 아주 좋은 친구이다. 이 둘은 마치 한 몸에 있는 두 개의 손과 같다. 동일한 목표를 향해 같이 일하는 존재인 것이다. 만약 한 몸에 붙어 있는 각각의 손이 서로 싸운다고 생각해보라. 이것이야 말로 정신 착란 증세가 아니고 무엇인가. 한 몸이 두 개로 나눠지는 것은 실로 비극이 아닐 수 없다. 그 결과는 죽음이기 때문이다. 고전 12:20-21절은 “지체는 많으나 몸은 하나라 눈이 손더러 내가 너를 쓸 데가 없다 하거나 또한 머리가 발더러 내가 너를 쓸 데가 없다 하지 못하리라”라고 말한다. 집 안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자신의 가족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끌어줄 목회자와 교사가 필요하다. 엡 4:11-12에서 목자와 교사는 몸을 세우는데 도움을 주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가르친다. 목회자와 교사는 아버지들과 어머니들이 필요하다. 부모들은 자신의 자녀들을 교회의 참된 구성원들로 키워나가는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기 때문이다. 누구도 부모의 특별한 역할을 대신해줄 수 없다. 그러므로 엡 6:4절은 이렇게 말한다.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4. 가정에서 할아버지, 할머니의 역할은 무엇인가?
할아버지, 할머니가 자신들의 다 큰 자식들 혹은 손자, 손녀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바로 그들을 사랑하는 것이다. 자신을 부정하고 그들을 섬길 필요가 있다. 아이들과 시간을 함께 보내고, 그들에게 책을 읽어주며, 좋은 이야기들을 들려주고, 자신이 살면서 경험했던 좋은 영적인 경험들을 공유하며, 아버지, 어머니가 얼마나 훌륭한 사람이라는 것을 손자, 손녀들에게 가르칠 필요가 있다. 자녀들에게 먼저 자주 전화를 해보라. 그들이 전화를 먼저 하지 않는다고 해서 너무 상심할 필요는 없다. 당신이 젊었을 때 얼마나 바쁘게 살았는지 기억하지 않는가. 특별히 이런 점은 염두 해 둘 필요가 있다. (1) 신중하게 조언하라. 자녀가 결혼을 하면 그들은 부모를 떠나 새로운 가정을 꾸리게 된다 (창 2:24). 그러므로 결혼 한 자녀들에게 계속해서 주인 노릇을 하면 안 된다. 물론 자녀들이 열린 마음을 갖고 있다면 그들에게 지속적으로 성경적 지혜와 원리들을 지혜롭게 가르쳐야 함은 당연하다. (2) 가족 모임 등에서 영적인 부분을 신경 써야 한다. 가족 식사가 있을 때 먼저 성경을 펴고 같이 묵상하며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기 위해 서로를 위해 기도할 필요가 있다. (3) 자녀들이 손자, 손녀들을 봐주길 원하면 기꺼이 그들을 돌봐 주어라. 매일 매일 온 시간을 다 쏟아서 아이들을 보살필 필요는 없다. 마음이 가는 것보다 좀 더 한다는 생각으로 아이들을 돌봐주면 된다. (4) 하늘의 소망을 가진 모델이 되어라. 자녀들과 이야기할 때 너무 자신이 가지고 있는 고통, 경제적 문제, 고민만을 이야기하지 말라. 먼저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하늘의 소망을 가지도록 하라. (5) 기도에 힘 쏟으라. 가족들과 함께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전심을 다해 기도할 때 선한 영향력이 자녀들에게 미치게 될 것이다.
5. 아직 싱글인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첫째, 먼저 그들을 집에 초대하여 환대를 베풀라. 사람들을 초청해 같이 식사하기 위해 뭔가 특별한 영적인 능력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 이것은 모든 기독교인들이 해야 하는 거룩한 의무이다. 벧전 4:9절은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고”라고 권면한다. 싱글들뿐 아니라 배우자를 잃은 사람들이 느끼는 가장 큰 고통은 바로 외로움이다. 둘째, 그들에게 교회를 소개시켜주어라. 그들을 위해 기도할 때 마치 그들을 뭔가 모자란 사람으로 묘사하며 기도하지 마라. 그들을 바라 볼 때 하나님의 온전한 자녀로 바라보고 교회에 꼭 필요한 일꾼으로 여기라.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엡 4:16). 교회 안에서는 그 누구도 쓸모없는 사람은 없다. 그들에게 교회가 필요한 도움들을 요청하라. 셋째, 혼자 사는 싱글 기독교인들도 당신만큼 바쁘게 산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 그들에겐 배우자가 없으므로 모든 일을 혼자 처리해야 한다는 사실을 유념하라.
6. 기독교인으로서 특별히 오늘날의 비기독교적 세상에서 살아갈 때 경험할 수 있는 장애물은 무엇인가?
어떤 세대든 자신이 살고 있는 그 사회가 가장 최악의 사회라고 생각할 뿐 아니라 그 사회를 살아감에 있어 그 어떤 이전의 사회보다 더 많은 장애물이 도사리고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전도서 1:9-10절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지라 해 아래에는 새 것이 없나니 무엇을 가리켜 이르기를 보라 이것이 새 것이라 할 것이 있으랴 우리가 있기 오래 전 세대들에도 이미 있었느니라.” 이 말은 지금 현재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이 시대의 특징적인 유혹을 경계할 필요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이 시대의 특징적인 유혹들은 사실 우리에게 그렇게 새로운 유혹은 아니라고 전도서 기자는 말해주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전 10:13절 말씀을 붙잡을 필요가 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7.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살아감과 비기독교적 세상과의 관계성은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야 한다고 가르치신다 (마 5:13-16). 소금의 맛을 내기 위해서는 우리는 반드시 특별한 맛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산상수훈에서 예수님은 소금의 맛은 내는 것은 중요하고 선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가르치신다. 하나님 나라의 특징은 겸손과, 자비, 거룩함으로 특징화될 수 있고, 이러한 하나님 나라에 사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도덕적 법에 순종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만약 우리가 소금의 맛을 잃게 된다면, 우리는 불필요한 자가 되어 세상 속에서 특별함을 잃게 될 것이다. 소금은 부패를 막는다. 우리의 거룩함은 이 죄악 된 세상에서 우리가 부패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차단한다. 빛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말은 곧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야 한다는 뜻이다 (사 60:1-3). 우리는 세상 속에서 선한 일을 함으로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낸다. 만약 우리가 선한 일을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마치 빛이 가리개에 가려져 어둠을 밝힐 수 없는 것처럼 불필요한 사람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만약 선한 일들을 행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함과 선하심을 보게 될 것이고, 그로 인해 하나님께 경배를 드리게 될 것이다. 정리하자면, 하나님의 백성들은 세상적 가치관과는 반드시 구별되어야 한다. 세상적 흐름에 거스르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렇게 살 때 우리는 이 세상을 보존할 수 있게 되고 이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드러나게 될 것이다.
* 헤리티지 개혁교단 (Heritage Reformed Congregations)에서 발행하는 공식 교단 매거진 The Banner of Sovereign Grace Truth, vol.23, no.7 (September 2015): 184-185 에 실린 내용으로 번역 및 게재 허락을 맡고 게시 합니다 저작권은 The Banner of Sovereign Grace Truth와 저자에게 있습니다.
< 저작권자 ⓒ 개혁정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