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문을 환영합니다.
최종편집
조회 수 1780 추천 수 0 댓글 0
황대우.jpg



황대우 목사
고신대학교 교수
개혁주의학술원 책임연구원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사회다. 그래서 대한민국의 주인은 백성이다. 그렇다면 교회의 주인은 교인인가? 민주주의를 가장 이상적인 정치형태로 보는 사람들은 아마도 교회 역시 사회 집단이므로 민주적으로 다스려져야 하며 교인이 교회의 주인이라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성경은 교회의 주인이 하나님이시고 그리스도시라고 가르친다. 이것을 잘못 이해한 교회 지도자들은 마치 자신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뜻을 집행하는 대리자인양 교회의 주인 행세를 하려고 한다. 만일 그런 자가 교회에 한 명이라도 있다면 그것은 이미 그 교회의 교황이나 진배없다. 말이야 자신을 ‘하나님의 종’이라고 하지만 실상은 ‘교회의 주인’인 것이다. 아마도 대부분 교회 불화와 분열은 아마도 이와 같은 ‘누가 이 교회의 주인인가?’라는 ‘주인의식’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런 주인의식은 교회를 세속화하는 지름길이다. 이런 의식의 기저에는 교회를 세상 기업과 같은 종류의 것으로 여기는 엄청난 착각이 똬리를 틀고 있다. 주인의식을 강하게 가진 자일수록 자기 교회의 ‘성장은 곧 성공’이라는 등식이 뼛속 깊이 자리 잡게 된다. 그리고 이런 교회성장이란 반드시 숫자로 표기 가능한, 도표화 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교회에서 도표화할 수 있는 것은 크게 두 가지 정도, 즉 헌금과 교인 수다. 그래서 교회의 헌금이 많이 들어오거나 교인 수가 불어나면 성장한 것으로 간주한다. 또한 그 성장에 공헌한 자들은 어떤 형태로건 말이나 물질로 보상을 받는다.

교회 실정이 이렇다보니 어떤 교회는 이것을 공식화하기도 한다. 즉 헌금이나 교인 수가 불어나면 그 공로로 연말에 전별금을 받는다든지 아니면 다음 해 연봉이 인상된다. 세상적인 시각으로는 이런 일이 잘못이기는커녕 오히려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교회는 회사가 아니다. 교회는 회사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집단이다. 회사는 고용주와 피고용자로 구성된 위계적 이익집단이지만 교회는 머리이신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피 값으로 사신 지체들을 불러 모으시는 그분의 몸, 즉 유기적 헌신집단이다.

피고용자들을 통해 이익을 창출하는 것이 고용주가 회사를 설립한 이유이고 목표이지만,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세우신 교회의 설립 이유와 목표는 전혀 다른 것이다. 교회 설립의 이유와 목표는 먼저 머리이신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지체들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나누어주시고, 그런 다음 모든 지체들이 받은 것으로 마치 그리스도께서 자신에게 베푸신 것처럼 서로를 헌신적으로 섬기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회사와 교회는 설립 이유와 목표가 서로 대립적인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회사는 창출된 이익을 직급과 성과에 따라 나누지만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베푸신 은사로 타인을 섬기는 것이다.

개인에게 주어지는 많은 연봉과 성과급은 자기 공로의 결과이니 당연히 자랑거리겠지만 교회의 큰 은사는 주님께로부터 거저 받은 것이니 결코 자랑거리일 수 없다. 오히려 더 큰 은사는 더 큰 희생과 섬김이 요구될 뿐이다. 물론 충성스러운 자에게는 주님의 칭찬이 따를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결코 물질로 환산되지 않는다. 설령 물질로 환산된다 할지라도 결코 자신의 자랑거리로 삼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주인의식에 도취된 수많은 사람들은 자기 교회의 자랑거리가 부지기수다. 자신의 교회가 얼마나 화려한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지, 얼마나 부자인지, 교인들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들인지, 목사가 얼마나 유능한지, 시스템이 얼마나 유익한지 등등. 이런 주인의식과 자부심, 자랑거리는 교회연합을 위한 가장 큰 걸림돌이기도 하다. 자신을 알아주고 대접해주는 곳만 기웃거리기 때문이다.

물론 자신이 출석하는 교회를 사랑하고 자부심을 가지는 것은 결코 잘못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자기 교회에 대한 애착심과 자부심은 당연지사다. 하지만 그 애착심과 자부심의 중심은 반드시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여야 한다. 그리스도를 머리로 모신 하나님의 교회라는 이유 때문에 자기 교회를 사랑하고 자랑하는 것이라면 권장할 일이지만, 그리스도 이외의 다른 이유로 자기 교회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자랑하는 것이라면 오히려 조심해야 한다. 교회의 모든 자부심과 자랑은 오직 그리스도 한 분과 관계된 것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모든 교회의 머리시며, 몸인 교회에 필요한 모든 것은 오직 머리이신 그리스도로부터 제공되기 때문이다. 또한 교회에 속한 모든 지체의 최종적인 성장 목표는 다름 아닌 그리스도이기 때문이다.

세상 속에 있으나 세상에 속하지 않는 신자와 교회는 참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제대로 유지하며 살기가 어렵다. 현실적으로 교회는 너무나 유약해서 세상과 짝하거나 세상에서 분리되기 십상이다. 하지만 우리가 참 신자, 참 교회라면 결코 세상에 동화되지도,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분리시키지도 말아야 한다. 양쪽으로 치우치지 않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세상 속에서 교회의 정체성을 잃지 않을 때 비로소 교회는 세상의 빛이요, 소금의 역할을 잘 감당할 것이다.

요즘 매일 같이 신문과 방송이 쏟아내는 쓰레기 같은 목사들과 장로들에 관한 소식 때문에 구역질이 날 지경이다. 어쩌다가 이 지경에 이르게 되었는가. 돈과 성과 권력의 노예가 되어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지 못하는 교회의 지도자들이 지천에 깔렸다. 이들은 거짓과 위선으로 자신을 치장하고서도 너무 쉽게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입에 오르내린다. 이런 자들 때문에 교회는 어느 새 거짓과 위선이 난무하고 성공이 은혜와 사랑의 주인행세를 하게 되었다. 아마도 이런 교회들은 대부분 세상의 허세에 물들어 살아계신 하나님, 심판의 하나님을 잊은 듯하다. 용서의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은 동시에 죄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시며, 거짓과 위선을 가장 싫어하시는 진리의 하나님이심을 왜 모르는지.

목사다운 목사, 장로다운 장로, 신자다운 신자들이 없지는 않겠지만 마치 엘리야 시대처럼 꽁꽁 숨어 있어서 만나기가 어렵다. 세상의 바로미터가 되는 교회를 찾기가 쉽지 않다. 국민의 4-5명 중 1명은 기독교인이라고 하는데 지금 대한민국은 양심 실종과 윤리 실종으로 인한 심각한 부패 사회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적 부패에 맞서 싸우는 집단이어야 할 교회가 그러한 부정부패의 방관자일 뿐만 아니라, 오히려 동반자와 온상이 되어버린 것은 아닌지.

지금 한국교회는 내적이고 양적인 성장에는 너무 민감하다. 교회 성장을 위해서라면 개인이나 교회 성도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은사를 받을 수만 있다면 다른 모든 것은 얼마든지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다. 반면에 성경이 가르치는 하나님의 공의와 그리스도의 겸손과 자기희생을 실천하는 일에는 너무 둔감하다. 이런 현상은 어쩌면 성공과 유익과 우월을 지향하는 세속적인 주인의식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교회의 주인의식이 자기 교회의 성공과 외적 자랑거리와 우월감이라면 이것보다는 차라리 공의와 헌신과 겸손을 지향하는 양자의식이 교회다운 교회를 위해 훨씬 더 유익한 것이 아닐까?

< 저작권자 ⓒ 개혁정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1. 교회에서 네덜란드 국가를 부르지 말자

    ***역자는 교회에서 애국가를 제창하는 것에 대해 약간의 거부감을 가졌다. 그 이유를 특정할 수 없었으나, 역자가 처음으로 네덜란드 교회에서 예배 후 네덜란드 국가를 제창하는 것을 경험한 후 거부감의 이유를 깨달았다. 예배를 통해 역자는 출석하는 교...
    Date2016.07.13 By개혁정론 Views2101
    Read More
  2. [해외칼럼] 종교의 위험: 예레미야의 경고 (렘 7:1-15)

    종교의 위험: 예레미야의 경고 (렘 7:1-15)[1] 저자: 마이클 바렛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 학장 및 구약학 교수) 번역: 태동열 (미국 칼빈 신학교 조직신학 박사과정 중) 종교는 가장 기만적일 수 있다. 거짓됨을 드러내는 것은 예레미야의 ...
    Date2016.07.11 By개혁정론 Views1604
    Read More
  3. [해외칼럼] 분리측은 암스테르담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 현재 해방파 교회의 신학교인 캄펜신학대학과 기독개혁교회의 신학교인 아펠도른신학대학은 합병을 위해 분주하다. 2017년 9월부터 ‘개혁주의신학대학교 (de Gereformeerde Theologische Univesiteit)’라는 이름으로 합병된 신학대학교가 개교한다. 합병...
    Date2016.07.08 By개혁정론 Views1181
    Read More
  4. [해외칼럼] 신학을 위한 새로운 질문들

    암스테르담 자유대학교 신학부가 ‘헤르만 바빙크 센터’를 설립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자유대학교 신학부 조직신학 교수인 판 더르 코이의 ND 기사를 번역하였다 신학을 위한 새로운 질문들 2016-06-16, ND Kees van der Kooi 번역: 이충만 우리는 살아계신 하...
    Date2016.07.04 By개혁정론 Views1044
    Read More
  5. [해외칼럼] 신앙고백들의 장단점

    [해외칼럼] 개혁주의 신앙고백들: 그 역사적 배경과 성격 이 칼럼은 아래와 같은 순서로 게재될 예정입니다. 1회: 벨기에 신앙고백: 박해받는 교회의 증언 – 존 볼트 (미국 칼빈 신학교 조직신학 교수) 2회: 마음을 끄는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 라일 비에르...
    Date2016.06.09 By개혁정론 Views2465
    Read More
  6. [해외칼럼] 도르트 신경과 칼빈주의 5대 교리

    [해외칼럼] 개혁주의 신앙고백들: 그 역사적 배경과 성격 이 칼럼은 아래와 같은 순서로 게재될 예정입니다. 1회: 벨기에 신앙고백: 박해받는 교회의 증언 – 존 볼트 (미국 칼빈 신학교 조직신학 교수) 2회: 마음을 끄는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 라일 비에르...
    Date2016.05.25 By개혁정론 Views6824
    Read More
  7. [해외칼럼] 마음을 끄는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해외칼럼] 개혁주의 신앙고백들: 그 역사적 배경과 성격 이 칼럼은 아래와 같은 순서로 게재될 예정입니다. 1회: 벨기에 신앙고백: 박해받는 교회의 증언 – 존 볼트 (미국 칼빈 신학교 조직신학 교수) 2회: 마음을 끄는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 라일 비에르...
    Date2016.05.06 By개혁정론 Views2129
    Read More
  8. [해외칼럼] 벨기에 신앙고백 (1561) – 박해받는 교회의 증언

    [해외칼럼] 개혁주의 신앙고백들: 그 역사적 배경과 성격 이 칼럼은 아래와 같은 순서로 게재될 예정입니다. 1회: 벨기에 신앙고백: 박해받는 교회의 증언 – 존 볼트 (미국 칼빈 신학교 조직신학 교수) 2회: 마음을 끄는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 라일 비에르...
    Date2016.04.27 By개혁정론 Views1083
    Read More
  9. [해외칼럼]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상처

    그동안 해외칼럼의 번역으로 수고해 주신 박재은 목사가 박사학위 취득 후 귀국함에 따라 칼빈신학교에서 박사과정 중에 있는 태동렬 목사가 새로이 해외칼럼을 맡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좋은 글을 발굴하여 번역해 주신 박재은 목사께 감사를 드리며, 새롭게...
    Date2016.04.18 By개혁정론 Views1156
    Read More
  10. [해외칼럼] 하이델베르크 스타일 리더십

    하이델베르크 스타일 리더십 저자: 데이빗 슈링가 (크로스로드 성경 협회 전 회장) 번역: 박재은 목사 (총신 신학대학원 조직신학 강사) 요즘 한창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음식은 유기농 음식이다. 이에 편승해 교회 리더십을 유기농 개념으로 설명하는 것 또...
    Date2016.03.18 By개혁정론 Views916
    Read More
  11. [해외칼럼] 네덜란드 개혁교회의 학교 II

    네덜란드 개혁교회의 학교 II Huib van Leeuwen[1] 번역: 이충만 3. 학교, 가정, 그리고 교회의 연계성 그렇다면 개혁교회의 학교교육과 가정, 그리고 교회의 연계성은 어떠한가? 가정과 교회에서 학생들은 동일한 개혁주의 정체성을 배운다. 학교에서 마찬가...
    Date2016.02.11 By개혁정론 Views1352
    Read More
  12. [해외칼럼] 네덜란드 개혁교회의 학교 I

    네덜란드 개혁교회의 학교 I 글: Huib van Leeuwen[1]_ 번역: 이충만 1. 개혁교회의 학교[2] 네덜란드는 교육의 자유를 중시한다. 이는 기독교 교육을 실현하기에 큰 이점으로 작용한다. 이와 같은 교육의 자유는 약 100년간 지속되고 있다. 1917년 이후 부모...
    Date2016.02.05 By개혁정론 Views1954
    Read More
  13. 개혁주의 신학의 토착화를 위한 캄펜신학교의 노력

    개혁주의 신학의 토착화를 위한 캄펜신학교의 노력 - 개혁주의 신학의 간문화적 연구 - Jos Colijn[1] 번역: 이충만 개혁주의 신학의 간문화적 연구 현재 캄펜신학교(네덜란드 개혁교회 해방파)에는 개혁주의 유산에 깊은 관심을 가진 국제학생들이 공부하고 ...
    Date2016.01.25 By개혁정론 Views1896
    Read More
  14. [해외칼럼] 목회자의 결혼에 관하여 (2부)

    이 칼럼은 아래와 같은 순서로 게재될 예정입니다. 1회: 목회자의 결혼에 관하여 (1부) 2회: 목회자의 결혼에 관하여 (2부) 3회: 신자와 불신자의 결혼, 목사로서 어떻게 결혼 예식을 집례 해야 하는가? 목회자의 결혼에 관하여 (2부)[1] 저자: 로날드 카멩가...
    Date2016.01.19 By개혁정론 Views1728
    Read More
  15. [해외칼럼] 목회자의 결혼에 관하여 (1부)

    이 칼럼은 아래와 같은 순서로 게재될 예정입니다. 1회: 목회자의 결혼에 관하여 (1부) 2회: 목회자의 결혼에 관하여 (2부) 3회: 신자와 불신자의 결혼, 목사로서 어떻게 결혼 예식을 집례 해야 하는가? 목회자의 결혼에 관하여 (1부)[1] 저자: 로날드 카멩가...
    Date2016.01.15 By개혁정론 Views3341
    Read More
  16. [해외칼럼] 비기독교적 세상에서 기독교인으로 살아가기

    비기독교적 세상에서 기독교인으로 살아가기 저자: 조엘 비키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 총장) 번역: 박재은 목사 (미국 칼빈 신학교 조직신학 박사과정) 1. 이 세상 속에서 기독교적 가치관을 발전시킬 좋은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한 마디로 ...
    Date2015.12.23 By개혁정론 Views1604
    Read More
  17. [해외칼럼] 집으로 가는 메뚜기: 초기 근대의 노인학 개념 중 시의적절한 사례 하나

    개혁신학의 과제 III 캄펜신학교 프랑크 판 더르 폴 (Frank van der Pol) 교수 (교회사) 은퇴강연 집으로 가는 메뚜기: 초기 근대의 노인학 개념 중 시의적절한 사례 하나[1] 저자 : 프랑크 판 더르 폴 (Frank van der Pol) 교수 번역: 구본승[2] 1. 탐구영역...
    Date2015.12.21 By개혁정론 Views1328
    Read More
  18. [해외칼럼] 선명하게 빛나는 신비

    선명하게 빛나는 신비 저자: 타드 빌링스 (J. Todd Billings, 웨스턴 신학대학원 교수) 번역: 박재은 목사 (미국 칼빈 신학교 조직신학 박사과정 중) 시편 102편의 기도는 곧 나의 기도였다. “그가 내 힘을 중도에 쇠약하게 하시며 내 날을 짧게 하셨도다” (...
    Date2015.12.11 By개혁정론 Views772
    Read More
  19. [해외칼럼] 살아있는 교회: 조직과 공동체 사이에서

    살아있는 교회: 조직과 공동체 사이에서 작성자: 마리너스 더 용[1] 번역: 이충만 지난 10월 9일, 네덜란드 캄펜신학교에서는 “살아있는 교회: 조직과 공동체 사이에서”라는 제목의 심포지움이 개최되었다. 아펄도른신학교와 캄펜신학교가 공동으로 진행하는 ...
    Date2015.11.26 By개혁정론 Views1051
    Read More
  20. [해외칼럼] 교회 갱신을 위한 설교

    교회 갱신을 위한 설교 저자: 케이스 돈보스 (Keith Doornbos, 갱신 연구소 프로그램 디렉터) 번역: 박재은 목사 (미국 칼빈 신학교 조직신학 박사 과정 중) 21년 전 문제에 직면한 한 교회로부터 설교 요청을 받았다. 교회 내의 평신도 지도자 그룹과 더불어...
    Date2015.11.20 By개혁정론 Views1186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Next
/ 8
사설
[사설] 성찬상을 모독하지 마라
[사설] 제7차 개정헌법 헌의안, 총...
[사설] 총회장은 교단의 수장이 아...
[사설] 명예집사와 명예권사, 허용...
[사설] 총회가 계파정치에 함몰되지...
[사설] 최근에 일어난 고려신학대학...
세계로교회 예배당 폐쇄 조치를 접하며 3
[사설] 총회(노회)가 모일 때 온라...
총회가 졸속으로 진행되지 않으려면
[사설] 누가 고신교회의 질서와 성...
칼럼
왕처럼 살고 싶습니까? 왕처럼 나누...
푸틴의 머릿속에 있는 그림
백신 의무 접종과 교회 (3부)
백신 의무 접종과 교회(2부); 교회...
백신 의무 접종과 교회 (1부)
우리 악수할까요?
두려움으로부터의 해방 (Peter Holt...
관심을 가지고 보십시오.
동성애 문제에 대한 두 교단의 서로...
하나님께서는 역사의 잘못을 통해서...
기고
직분자 임직식에서 성도의 역할
죽음을 어떻게 맞을까를 잠시 생각하며
제73회 총회가 남긴 몇 가지 과제
전임목사는 시찰위원으로 선정될 수...
고신교회와 고재수 교수; 우리가 왜...
왜 고재수는 네덜란드에서 고려신학...
제73회 총회를 스케치하다
신학생 보내기 운동에 대한 진지한 ...
명예 직분 허용이 가져다 줄 위험한...
[고신 70주년에 즈음하여 9] 고신교...
논문
송상석 목사에 대한 교회사적 평가 ...
송상석 목사와 고신 교단 (나삼진 ...
송상석 목사의 목회와 설교 (신재철...
네덜란드 개혁교회 예식서에 있어서...
제7차 헌법개정초안(2022년 6월) 분...
제7차 헌법개정초안(2022년 6월) 분...
제7차 헌법개정초안 예배지침 부분...
제7차 헌법개정초안(2022년 6월) 분...
SFC 강령의 “전통적 웨스트민스터 ...
지역교회의 적정 규모(規模 size)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