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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희찬 목사
마산제일교회 담임목사
예장 고신총회 헌법해설집 발간위원회 위원


고난주간이 오늘부터 시작되었다. 고난주간을 어떻게 보내는 것이 좋을까? 한 끼를 금식해 볼까? 이번 주간에는 새벽기도회에 참석해 볼까? 아니면 예수님의 고난에 대한 성경을 깊이 묵상해 볼까? 이런 생각이 들 수 있다. 한편 어떤 교인은 갈등에 빠진다. 사순절이나 고난주간이 봄의 신비를 만끽할 수 있는 기간과 중복되기 때문이다. 고난주간에는 봄꽃 구경이나 등산을 가는 것이 왠지 모양이 좋지 않아 보인다.
  
과거에는 사순절이나 고난주간을 보내는 동안 몇 끼 정도는 금식을 하든지 적어도 고난주간에는 벚꽃 구경을 가는 것은 삼갔다. 예수님의 고난을 생각하면서 벚꽃 구경을 가는 것은 마음에 부담이 되었다. 설사 고난주간이 아니어도 성도가 무슨 꽃구경이냐고, 그런 건 사치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하기까지 하였다. “기도하고 전도해야지 무슨 꽃구경이냐? 천국을 더 사모해야지 세상의 꽃에 마음이 빼앗겨 그런 것에 시간을 허비하느냐.” 하고 말하였다.

이런 생각은 지금으로부터 오백년 전 당시 유럽에는 팽배하였다. 당시는 기독교 세계였다. 그들은 사순절 기간을 경건하게 보낸다고 하면서 오락과 술을 금지하였다. 단지 그 기간만이 아니었다. 당시 그림을 보면 화가들은 봄이 되어도 봄을 그릴 수 없었다. 그림은 오직 소위 성화를 그려야 했다. 성경 이야기를 다루어야 했다. 예수님과 마리아를 그려야 잘 그린다고 생각하였다. 그렇지 않으면 모두 세상적인 그림이라고 생각하였다. 마리아를 그려도 이상하게 그렸다. 예쁘게 그리고 크게 그리고, 또 마리아의 머리 위에 반짝이는 광채까지 그렸다. 성스럽게 보이기 위해서다. 음악가는 오로지 교회의 음악/성가를 위해서 작곡을 하고 연주하였다. 봄을 노래하는 곡을 만들 수 없었다.

그러나 종교개혁, 지금부터 약 500년 전에 발생한 종교개혁은 세상을 보는 눈을 바꾸었다. 이때부터 화가는 자연이나 사람의 얼굴을 그리기 시작하였다. 예수님을 그릴 때에도 실제적으로 그렸다.  
 
1522년 3월, 스위스의 한 도시 취리히에 소동이 일어났다. 때는 예수님의 고난을 묵상하는 사순절 기간이었다. 이 기간, 40일 동안은 고기를 먹고 싶어도 참아야 했다. 스위스 사람들은 소시지를 아주 좋아한다. 그러나 그렇게 먹고 싶은 소시지라도 사순절에는 먹을 수 없었다. 교회의 오랜 관행이었다. 그런데 바로 이 때 스위스 취리히의 출판업자이면서 명망이 있는 시민인 크리스토퍼 프로사우라는 사람이 소시지를 저녁 식사로 대접하기 위해서 일단의 사람들을 자기 집으로 초대하였다. 이것은 교회의 관행을 깨는 것이었고, 어느 누구도 감히 이런 일을 할 수 없었다. 이 사건은 지금의 모습으로 보면 평범한 식사/평범한 일로 보이나, 사실은 몇 세기 동안 취리히 시 뿐만 아니라 스위스 전역을 바꾸어 놓은 역사적 사건이 되었다.

그로부터 2주 후에 이 도시의 목사 쯔빙글리는 교회에서 다음과 같은 제목의 설교를 전하였다: <음식의 선택과 자유에 대하여>. 쯔빙글리는 설교에서, 사순절에 고기를 먹지 않는 전통은 그리스도의 얼굴에 묻은 오점이라고 하였다. 그는 이 전통이 사람의 사악한 명령에서 나온 것이라고 하며, 우리가 그리스도의 멍에와 짐이 가벼운 것을 느껴야 그리스도가 나에게 소중한 분이 될 것이라고 설교하였다. 이 설교는 즉시 4월에 출판되어서 유럽과 그 외의 지역까지 펴져나가게 되었다. 이로써 스위스에서 종교개혁이 일어나게 되었다. 쯔빙글리가 취리히 시의 교회에 와서 마태복음 1:1부터 신약성경을 설교한 지 3년 만에 일어난 사건이었다.

예수님 당시에 바리새인의 유전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에게 말씀이 가려지니까, 말씀으로 위로를 얻지 못한 것처럼, 당시 중세 교회에서도 천주교의 그릇된 유전 때문에 말씀이 가려지니까 당시 성도들은 교회 안에 있는 온갖 그릇된 관행 때문에 무거운 멍에와 짐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였다. 그러나 강단에서 선포되는 진리의 말씀으로 성도들이 위로와 힘을 얻게 되었다. 성경 어느 곳에서도 소시지를 먹지 말라는 말씀을 찾지 못하였다. 말씀은 나의 영혼을 깨부수고 멸하기도 하지만, 나에게 위로를 주고 기쁨을 준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이와 관련하여 쯔빙글리는 다음의 말씀을 좋아하였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이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편히 쉬게 하리라”(마태복음 11장 28절). 이와 같이 종교개혁은 복음의 진리를 설교하므로 성도가 세상을 보는 눈을 바꾸고 나아가 세상을 바꾸었다.

중세는 우리의 삶을 두 영역으로 나누었다. 종교 활동 이외는 모두 세상적인 것이며 거룩하지 못한 것으로 여겼다. 일상의 일은 세상적인 것으로, 그러나 종교적인 활동은 거룩한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러나 개혁자들은 하나님의 주권 아래에는 세상과 종교, 하늘과 땅이 하나로 묶어졌다. 우리가 무슨 일을 하더라도 은혜 아래 있는가? 아니면 죄 아래 있는가? 구분만이 있을 뿐이라고 하였다.

금식을 하더라도 예수님의 고난의 의미를 깊이 생각하면서 내 삶이 더욱 복음과 더불어 고난을 받고자 하는 결심을 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교회를 위하여 내 몸에 채우기를 바라는 결심을 하고 나의 자녀가 복음과 믿음 안에 있기 위하여 애통하는 마음으로 우는 고난주간이 된다면 금식을 하더라도 그 금식이 돋보일 것이다. 봄나들이를 하면서 개나리, 진달래, 벚꽃을 보면서도 예수님의 고난을 생각할 수 있다. 고난주간을 감상적으로 보내지 말자. 이분법으로 보내지 말자. 고난당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면서 우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의 자녀를 위하여 울자.

몇 년 전에 상영된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The Passion of Christ", 그리스도의 고난)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고 예수님의 고난을 더 깊이 알고 큰 감명을 받았다. 예수님이 육체에 당하신 고난을 너무나 현실감 있게 보여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자칫 예수님의 고난을 자칫 오해할 소지를 주었다. 예수님의 상(狀)을 굴절시킬 여지를 주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고난은 육체에 그치지 않고, 영적인 것이기도 하였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당하신 가장 큰 고통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고통이었다.

사실 이 영화는 우리 시대의 포스트모더니즘을 반영하였다. 우리 시대는 언어와 설득과 논리와 토론을 거부하는 시대인데 그래서 이 영화는 대화보다는 자극적인 영상이 더 많다. 현대인들은 충분할 만큼 메시지를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단지 감동받고, 체험하기 위해서 이야기가 필요하지 설득당하기 위해서 이야기가 필요하지 않다. 따라서 그 영화 역시 그리스도를 이러한 현대인들에게 극적으로 경험하여서 감동받도록 구성되었다. 마치 <최후의 유혹>(1988) 영화가 시대정신인 회의와 성을 조화시킨 예수 그리스도를 그려내고, 뮤지컬, <예수 그리스도 슈퍼스타>(1973)가 6-70년대의 권위와 전통을 부인하는 시대정신을 반영하여 히피와 반항자로서 예수님을 묘사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부처나 모하메드와 구별이 가지 않는 인물로 묘사되었다.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와 같은 영화를 볼 수는 있으나 이 영화가 예수님의 고난을 성경에서 말하고 신조와 신학이 말하는 대로 충분하게 그려내고 있는지 살필 필요가 있고 논란이 된 대로 혹시 이 영화가 예수님을 죽인 책임을 지나치게 유대인에게 두고 있지 않은지도 살펴야 한다. 그 영화를 감독한 멜깁슨이 천주교 신자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아는 대로 천주교는 예수님의 고난의 신비에 큰 비중을 두고 있다. 그래서 성당을 보면 고난받는 그리스도에 대한 그림이나 상이 많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우리는 이미 30번, 혹은 그 이상의 봄을 보아왔다. 봄을 맞을 때마다 어떤 생각을 하는가? 봄이 우리에게 있는 것은 신비요, 기적이요, 은혜이다.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 때문이다. 예수님의 십자가 때문에 성도는 하나님과 화목하고 또 이 땅이 하나님과 화목하고 세상의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다. 예수님의 십자가 때문에 봄이 있는 이 땅이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다.
 
이 세상은 하나님의 은혜가 지배하는 하나님의 집이다. 봄을 주신 하늘 아버지의 신실하심과 오래 참으심을 생각하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생각하며 이것을 깨닫게 하신 성령의 은혜를 생각하며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을 경배하라.

봄을 어떻게 보는가? 자연을 어떻게 보는가? 이 세계를, 우리가 디디고 있는 이 땅을 어떻게 보는가? 하나님의 은혜요 하나님의 선물이다. 고난주간에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자. 그때 봄이 다르게 보이고 세상이 다르게 보일 것이다. 복음은 세상을 보는 눈을 바꾸고 세상을 변화시킨다. 예수님 안에서 하늘과 땅이 하나가 되었고, 하늘이나 땅이나 모두 은혜 아래 있게 되었다. 고난주간에 예수님의 십자가를 생각하며 우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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