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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주의 신앙고백들 속의 유아세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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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라일 비에르마 (Lyle Bierma, 미국 칼빈 신학교 역사신학 교수 및 박사과정 학장)

번역: 태동열 (미국 칼빈 신학교 조직신학 박사과정 중)

 

 

   침례교 그리스도인들과 개혁교회 그리스도인들은 많은 동일한 교리들을 지지한다. 하지만 그들이 동의하지 않는 한가지 이슈는 ‘믿는 부모를 둔 유아들이 세례를 받아야 하는가’ 이다. 개혁주의 전통에 속한 대부분의 성도들은 그렇다고 말한다. 침례교 형제들과 자매들은 아니라고 말한다.

   이 논쟁의 기원은 거의 오 백 년 전 개신교 종교개혁 기간 동안에 스위스에서 시작된 개혁주의 전통의 초창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1520년대에 개혁파 개신교의 아버지 울리히 쯔윙글리 (Ulrich Zwingli)는 자신의 추종자들 몇 명과 세례에 대한 논쟁에 휩싸이게 되고, 쯔윙글리와 논쟁을 벌였던 그들은 후에 갈라져 나가 분리된 신앙 공동체들을 형성했다. 이 그룹들은 재세례파라고 불리우게 되었는데, 이는 그들이 유아로서 세례를 받은 모든 이들은 그리스도께 대한 자신의 신앙을 고백할 충분한 나이가 되었을 때 다시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북미개혁교회(Christian Reformed Church)의 신앙고백서들 중 두 가지, 벨기에 신앙고백 (1561)과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1563)에서 유아세례를 다루는 방식은 오직 재세례파의 도전이라는 이 역사적 배경을 감안할 때만 이해될 수 있다. 벨기에 신앙고백은 유아세례에 대한 논의를 다음과 같은 강한 확언으로 시작한다: “우리는 한 때 받은 단 한번의 세례로 만족하지 않고 신자들의 자녀들에 대한 세례 역시 비난하는 재세례파의 오류를 배격한다” (34조항).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은 “유아들도 세례를 받아야 합니까” (74문) 라고 묻는데, 이는 대체적으로 오직 신자들만 세례를 받아야 한다는 재세례파의 주장 때문이다. 이제 서술할 부분에서 우리는, 유아세례에 대한 이 두 신앙고백의 진술들에 반영되어 있는, 재세례파 - 개혁파 간 논쟁의 세 가지 면을 자세히 검토하게 될 것이다.

 

 

성례의 본질

 

   첫째, 재세례파 신자들과 개혁파 신자들은 무엇이 정확히 성례인가에 대해 견해를 달리한다. 성례는 근본적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뭔가를 말하는 행위일까 혹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뭔가를 말씀하시는 행위일까? 재세례파는 첫번째 입장을 견지한다. 그들의 관점에서는, 어떤 사람이 회개와 믿음으로 하나님께 의뢰할 때, 세례는 그 헌신에 대한 공적인 표현을 제공하는 일이어야 한다. 세례에서 그 사람은 하나님께 그리고 자신이 이제 가입할 기독교 공동체에 약속들을 한다. 세례는 일종의 격식을 차린 “신앙 고백(profession of faith)”의 역할을 한다.

   하지만, 개혁주의 신앙고백들은 이에 대해 상당히 다르게 생각한다. 성례는 하나님께서 그 가운데서 제1차적인 행위자이시고 화자(話者)이신 무대이다. 그것은 교회에 주시는 하나님의 가시적인 말씀이다. 하나님께서는 언약 공동체에 용서와 새생명에 관한 그분의 약속을 보이시고 인치시기 위해 성례를 제정하셨다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제66문답; 벨기에 신앙고백, 제33조항).

   물론 유아세례에서 부모들과 회중들 역시 자녀들을 신앙 안에서 가르치고 격려할 것을 약속하고, 그 자녀들은 언젠가 그들의 세례에서 하나님께서 하셨던 약속들에 반드시 응답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의 신앙고백들이 세례적 약속들을 언급할 때마다, 그 약속들은 항상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약속들이다 (벨기에 신앙고백, 제34조항;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제69, 71, 74문답). 따라서 어떤 아기의 신앙의 결핍은 재세례파에서 주장하는 세례에의 장애물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세례에서 그 약속하심을 행하시는 것이지 그 아이가 행하는 것이 아니다. 참으로 유아세례는 그 성례의 핵심에 위치한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 의한 (sola gratia, “by grace alone”) 구원의 약속을 아름답게 예시한다: 세례반(盤)에서 하나님은 자신께 나아올 수 없는 연약하고 무력한 죄인들에게 다가오신다.

 

 

성경의 본질

 

   둘째, 유아세례에 대한 재세례파와 개혁파의 입장차이는 성경을 해석함에 있어, 특히 구약과 신약의 관계성에 대해, 근본적으로 다른 접근법에 원인이 있었다. 재세례파는 구약과 신약 사이에 근본적 불연속성이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그들의 견해에 따르면 그리스도의 시대 이후 교회의 근본적 권위는 신약성경의 사도적 가르침에 있었다. 구약성경은 오직 그 가르침들과 의식(儀式)들이 신약성경에서 확증된 경우에 한해서만 규범적인 것으로 남았다. 따라서, 신약성경에 신자의 세례에 대한 분명한 증거는 있고 유아세례에 대한 분명한 증거는 없기에, 기독교 교회의 세례의식이 어떠해야 하는지는 분명하다.  

   하지만, 개혁주의 신앙고백들은 구약과 신약 사이의 관계성에 대해 매우 다른 접근법을 취했다. 재세례파가 구약과 신약 사이에 근본적 불연속성이 있다고 여긴 반면, 그 신앙고백들은 둘 사이의 근본적인 통일성을 인지했다. 이 관점에서 보면, 구약의 가르침들과 의식들은 그것들이 신약에서 대체되거나 성취되지 않는 한 지속적으로 유효하다.

   성경의 이 통일성은 심지어 벨기에 신앙고백과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이 세례를 다루기 전에도 그것들 속에서 암시된다. 예를 들어, 그리스도께 속하는 하나의 교회는 단지 신약적 현상만이 아니라 “태초부터 존재해왔고 세상 끝날까지 지속될 것이다…” (벨기에 신앙고백, 제27조항). 복음 또한 단지 신약에서 예수님과 사도들의 입술에만 있던 기쁜 소식이 아니다. 하나님은 이미 아담과 이브의 타락 후 낙원에서 복음을 계시하셨고, 족장들과 구약의 선지자들을 통해 그것을 선포하셨으며, 심지어 “희생제물들과 다른 율법의 의식들을 통해 그것을 극적으로 표현하셨다”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제19문답).

   하지만, 신구약의 통일성에 대한 가장 분명한 증거들 중 하나는 창세기 17장에 나오는 하나님에 의해 세워진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과의 영원한 언약이다. 바로 그 출발점부터, 믿는 부모들의 자녀들은 “하나님의 언약 안에” 있었고 “그분의 백성”이었으며, 이 사실은 결코 변치 않았다. 이와 같이, “그들은, 어른들 못지않게, 죄용서와 … 믿음을 일으키시는 성령님에 대한 약속을 받는다”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제74문답). 그리고 할례와 세례 둘 다 이 언약의 약속들을 가리키기 때문에, “구약의 이스라엘에서 어린 자녀들이 신약시대를 사는 우리의 어린 자녀들에게 주어진 동일한 약속들에 기초해서 할례를 받았던 것처럼, 우리의 자녀들은 세례를 받아야 하고 언약의 표징들로 인쳐져야 한다” (벨기에 신앙고백, 제34조항).

   여기서 그 함의는 누군가가 신약의 침묵에 기초해서 유아세례를 거부할 수 없다는 것이다. 구약성경은 언약의 표징을 유아들에게 적용시키는 그 명령에 있어 의심의 여지가 없고, 그 명령은 결코 폐지되지 않았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신약성경 어디에 유아세례에 대한 명령이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은 개혁파 신자들의 의무가 아니다. 반면 신약성경 어디에서 구약에서 수립된 언약의 구조들이 뒤집혔는지를 보여주는 것은 재세례파 신자들의 의무이다.

 

 

교회의 본질

 

   논쟁의 세 번째 면은 가시적 교회에서의 어린이들의 위상과 관계가 있었다. 벨기에 신앙고백에 따르면, 세례를 받는 모든 이들은 “하나님의 교회에 받아들여 지고 다른 모든 사람들과 이방 종교들로부터 구별된다” (제34조항).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은 “언약의 표징인 세례로 말미암아 유아들이 교회로 받아들여져야 하며 불신자들의 자녀들로부터 구별되어야 한다”고 선언한다 (제74문답).

   얼핏보면, 다른 사람들과 다른 종교들로부터 그리고 불신자들의 자녀들로부터 구별된다는 이 표현이 엘리트주의적이고 거만하게 들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유아세례에 대한 재세례파의 도전이라는 역사적 배경과 함께 고려될 때, 그런 표현을 사용한 이유는 더욱 분명해진다. 그것은 재세례파의 교회론에 대한 염려를 반영한다. 재세례파 신자들은 교회가 신자들의 자발적 회집이고, 교회 회원 자격은 자신들의 신앙을 고백하고 세례를 받은 이들에게만 국한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신자들의 어린 자녀들의 지위에 대한 질문을 야기시켰다. 재세례파의 가르침은 신자들의 자녀들이 교회의 구성원들이 아니라는 의미인가? 그렇다면, 그 자녀들은 불신자들로 취급되어야 하는가? 혹은 그들이 어떤 다른 부류에 속하는가?

   이것들은 구별됨에 관한 그 두 신앙고백의 표현이 짚고 넘어가고자 했던 골치 아픈 질문들이다. 신자의 자녀들의 구별됨에 관한 그 표현이 반영하는 바는 신구약성경 어디에도 언약의 자녀들이 가시적 교회의 온전한 회원과 다른 무엇으로 간주되지 않는다는 확신이다. 신자의 자녀들은 불신자들이나 가시적 교회 밖에 있는 이들의 자녀들과 똑같지 않다. 오히려, 세례로 말미암아 그들은 공식적으로 “하나님의 교회로 받아들여 진다.” 그들은, 자신들의 부모들처럼, 하나님께서 자비롭게 역사하시기로 그리고 여러 대 동안 내내 구원의 복락을 베푸시기로 약속하신 그 특별한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간주된다.

 

 

중요성

 

   세례에 대한 이 두 관점의 차이는 얼마나 중요할까? 북미개혁교회(Christian Reformed Church)에게 있어 이 질문은 단지 이론적 질문이 아니다. 2007년에 우리 총회는 북미개혁교회 내에서 “증가하는 유아봉헌 의식(과 신자세례)를 연구하자는” 건의를 받았다. 이에 대해 총회는 유아봉헌 의식에 찬성하지 않음과, 유아세례를 교회가 충실히 실행해야 함을 재확인함과, 신앙 형성 위원회 (Faith Formation Committee)에 유아봉헌을 요구하고 있는 회원들이 속해 있는 교회의 회중들에게 목회적 지침을 제공해 줄 것을 요청함으로 응답했다 (2007년 총회 결의서, 659쪽). (이 위원회는 어린이들과 성찬에 대한 문제와 관련해서 5년 동안 북미개혁교회를 지도하기 위해 2007년에 구성되었다.)

   세례에 관한 이 두 차이점들과 계속해서 씨름할 때 우리는 우선 그 차이점들의 중요성을 과장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두 입장이 다른 만큼이나 그 차이점들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에 관계하지 않는다. 유아세례는 우리가 소위 말하는 “구원과 관계되는 문제” (어떤 사람의 구원을 위험에 빠뜨리거나 결정짓는 문제)가 아니다. 그러므로 종교개혁시대에 유럽에 살았던 우리의 일부 선조들이 재세례파를 거짓교회로 간주했던 것과 심지어 그들 중 몇 몇을 다시 세례를 받아야 한다는 그들의 주장에 대한 잔인한 놀림감으로 익사(溺死)시킨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만약 우리가 이 차이점들을 과장하지 말아야 한다면, 우리의 신앙고백들은 우리가 그것들을 과소평가 하지도 말아야한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여기서의 이슈는 단지 예배 의식에 있어서의 중요하지 않은 변화가 아니라, 성례와 신-구약의 관계성과 교회의 본질에 대해 근본적으로 다른 견해들에 뿌리를 둔 세례에 관한 두 접근법이다. 교리와 의식에서의 이 차이점들은 우리가 어떻게 우리 자녀들을 바라볼 지, 우리가 어떻게 그들의 신앙 형성에 접근할 지,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교회 생활을 함께 정립해갈 지에 대한 함의들을 가진다. 유아세례가 핵심적인 기독교 가르침은 아니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것은 오 백 년 동안 신앙고백적 개혁주의 기독교신앙을 형성함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1] 미국 칼빈 신학교 Forum 2008년 가을 호에 “Infant Baptism in Our Reformed Confessions”라는 제목으로 실린 내용으로 번역 및 게재의 허락을 받고 게재합니다. 저작권은 Forum과 저자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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