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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모임의 실종1)

 

 

                                              저자: 마크 존스 (Mark Jones, 청교도 신학의 모든 것공저자)

                                              번역: 박재은 목사 (Ph.D. cand., Calvin Theological Seminary)2)

 

 

     목사의 시각에서 볼 때 요즘 그리스도인들이 얼마나 세상적인 일에 많은 에너지를 쏟고 있는지에 대한 우려가 크다. 좋은 피아노 레슨이나 스포츠 수업이 있다고 하면 아무리 먼 지역이라도 아이들을 데려가는데 있어 큰 거리낌이 없는 세상이다. 안타까운 것은 이렇게 세상적인 일에 많은 에너지를 쏟고 있지만 정작 하나님을 위한 일에는 큰 관심이 없다는 점이다. 우리는 매일 매일 우리 자신을 부인해야 하며,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를 쫒아야 한다 (9:23). 또한 우리는 매일 매일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구해야한다 (6:33).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는 시간을 정해서 규칙적으로 기도 모임을 갖는 것이 힘든 것일까? 복음 중심적인 이야기들은 넘쳐나고, 복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책은 서가에 홍수를 이루고 있지만, 왜 기도 모임은 점점 사장의 길로 접어들고 있는 것 일까? 심지어 저녁 예배 참석 횟수보다도 기도 모임 참석 횟수가 더 줄어들고 있는 실정이다. 함께 모여 기도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과연 무엇이 있을까?

 

     나는 기도 모임 구성에 관한 폴 레비 (Paul Levy)의 글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http://www.reformation21.org/blog/2015/04/why-is-a-central-prayergather.php). 성경은 기도 모임의 본질과 필요성에 대해 선명하게 설명하고 있다.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 (1:14). “깨닫고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가니 여러 사람이 거기에 모여 기도하고 있더라” (12:12). 교회 역사는 기도 모임에 관해 많은 좋은 예들을 제공한다 (예를 들면, 제네바의 칼빈). 성경과 교회 역사는 기도 모임에 관해 많은 이야기를 해주고 있음에 불구하고 왜 현대 그리스도인들은 기도 모임을 갖길 꺼려하는가?

 

     아마도 몇 가지 이유를 가정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첫째, 목회자 자신이 기도 모임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지 못하고 있을 수 있다 (개인적인 의견은 목회자는 반드시 기도 모임에 속해 있어야 하는데 설사 목회자 혼자 참석하거나 혹은 목회자 가정만 참석하더라도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둘째, 성경적이면서 열정적인 기도가 쉽지 않다 (그러므로 장로들은 계속해서 성경적인 기도의 예를 가르쳐야 한다)

 

     셋째, 사람들이 너무 바쁘다 (그러나 기억하라. 사람들은 자기가 하길 원하는 것만 하는 경향이 있다)

 

     넷째, 현대인들은 기능적 하이퍼 칼빈주의자들이다 (그들은 목적을 위하여 수단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잘못된 이해를 가지고 있다. 기도는 수단들 중에 하나이다. 만약 우리가 구하지 않으면 받지도 못할 것이다).

 

     그러나 기도 모임이 왜 점차 실종되는지에 대한 개인적인 의견은 다음과 같다. 사람들이 개인적인 기도 시간에 하나님의 선하심과 거룩하심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사람들은 하나님께 충분히 간구하지 않았을수도 있다. 그들은 아마도 기도가 얼마나 영혼에 유익한지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을 수도 있다. 이러한 개인적인 문제는 한 사람을 기도 모임으로 이끄는데 큰 장애물이 된다. 아마도 또 다른 문제는 오늘날 교회에서 벌어지는 개인적인 게으름과 공적인 게으름 사이의 밀접한 관계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한 가지 명심할 것은 기도 모임이 개인 기도시간을 풍성하게 만들어 줄 수 있고 그 반대도 가능하다는 점이다. 공적인 기도 모임과 개인 기도시간은 우리에게 다 필요하다 (6:4-6; 12:12). 왜냐하면 그리스도인들의 삶에는 늘 이 두 가지가 함께 해야 되기 때문이다. 만약 목회자가 기도 모임을 꺼려한다면 왜 그래야만 하는지에 대한 확실한 이유가 필요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하나님을 아버지로 만나 교통하는 사람은 형제자매 가운데서도 그 하나님을 만나고 싶어 한다. 결국 교회는 서로 연합하여 선을 이루는 몸이며 가족이다 (18:20; 1:14).

 

     하나님은 내 인생 전반에 걸쳐서 늘 기도에 응답해 주셨고 때로는 놀라운 방법으로 기도를 들어주시기도 하셨다. 그러므로 나는 내가 간구할 수 있는 것보다도 더 많이 하나님께 간구하길 원한다. 이러한 경험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 된 지체와 나누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다.

 

     요즘 신학적 흐름 가운데서 만약 심적으로 옳다고 여겨지지 않으면 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흐름이 있다. 이들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만약 원하지도 않는데 뭔가를 했다면 그것이야말로 위선적인 행동이다. 뭔가를 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당신의 마음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러한 생각이 기도 생활 하는 것에 그대로 적용되어지는 것을 금하셨다. 청교도들을 한번 떠올려보라. 그들의 글들 가운데서 인간이 얼마나 죽기보다 기도하길 꺼려하는지에 대해 잘 나와 있지 않는가. 내 개인적인 경험만 해도 때때로 혼자 기도하는 것 뿐 아니라 함께 기도하는 것조차도 하고 싶지 않을 때가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기도하는 것은 기독교인이 해야 할 의무이다. 때때로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이 거룩한 의무는 기쁨으로 바뀔 수가 있다. 그러나 의무 자체의 무게가 가벼워지기까지 항상 의무가 기쁨이 되는 것은 아니다.

 

     때때로 달리기를 하고 싶지 않을 때도 있지만, 10분 정도 몸을 데우고 달리기를 시작해서 목표점에 다다랐을 때 훨씬 더 기분이 좋아질 때가 있다. 기도도 마찬가지다. 어떤 상황이든지, 우리에겐 기도가 필요하고 다른 사람을 위해 혹은 다른 사람과 함께 하는 기도가 필요하다.

 

     나는 우리 교회의 젊은 청년들이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기도하는 순간을 기대한다. 나이 지긋한 분들이 하나님을 온 땅의 구주로 선포하는 기도 소리를 듣길 기대한다. 우리 교회의 장로님들이 참된 기도의 예와 모범을 보이길 기대한다. 또한 나 스스로도 교인들에게 기도의 모범이 되길 소망한다 (벧전 5:1-3). 기도 모임을 통해서 서로에게 중보 기도하는 축복은 헤아릴 수 없는 큰 은혜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은혜가 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모여 하나님 앞에서 기도할 때 그의 나라와 그 영광이 더 앞당겨 우리에게 임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더욱 더 함께 모여 기도해야한다 (2:42).

 

     사단은 개인 기도를 혐오한다. 그러나 아마도 사단은 개인 기도보다 함께 모여서 하는 기도 모임을 더 혐오할 것이다. 기도만이 교회를 향한 사단의 공격으로부터 강해질 수 있다.

 

     기도가 많이 필요했던 험난하고 어려운 시절보다 지금의 미국의 삶은 살기 더 편해졌다. 편한 삶은 기도의 시간을 빼앗았고 결국 남는 시간과 에너지를 SNS에 쏟고 있다. 사회적 위기들 (예를 들면, 낙태, 동성 결혼 등)은 더해 가는데 기도에 쏟는 시간은 점점 줄어들고 있는 실정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축복해주시길 원하시는데 우리는 마치 그런 축복이 필요 없는 양 행동하고 있으니 얼마나 슬픈 일인가! 하나님과 그리스도는 천국 문을 열고 기도하는 자들에게 축복을 내려주시길 고대하고 계신데 우리는 구할 생각조차도 없다. 더 중요하게는 그리스도의 몸 된 자들로서 우리는 그의 영광과 능력과 권세를 위해 기도해야 하지 않겠는가?

 

     헨리 스큐더의 말은 귀감이 된다.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는 기도는 그의 약속이므로 기도를 함으로써 하나님의 권세와 진리 소유에 동참하게 된다. 이러한 기도를 통해 결국 하나님은 더 전지전능해지시는 것이다.” 상상해보라. 하나님을 통한 기도는 전능한 힘을 가진다!

 

     존 오웬은 교회의 좌석은 목회자의 좋은 설교나 성례전 의식으로 채워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가능케 되기 위해서는 전능하신 하나님 존전에서 은밀히 무릎 꿇고 기도하는 목회자라야 가능하다라고 말한다. 오웬의 말에 이렇게 한번 덧붙여보자. “교회는 아마도 언젠가 채워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교회는 하나님 앞에서 함께 무릎을 꿇는 교인들과 목회자가 있을 때 가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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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The Banner of Sovereign Grace Truth 20157-8월호에 실린 내용으로 번역 및 게재 허락을 맡고 게시 합니다 저작권은 The Banner of Sovereign Grace Truth와 저자에게 있습니다.

 

2) 박재은 목사는 현재 미국 미시건 그랜드래피즈에 위치한 칼빈 신학교에서 조직신학으로 박사논문 작성 중에 있습니다.

 

 

< 저작권자 개혁정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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