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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사역[1] (2부)

 

 

 

성령의 사역에 대한 개혁주의적 이해를 위한 5인의 미국 칼빈 신학교 교수들(캘덜먼, 볼트, 쿠퍼, 훌스터, 스미스)의 대담[2]

 

 

번역: 태동열 (미국 칼빈 신학교 조직신학 박사과정 중)

 

 

 

캘덜먼: 좀더 세계적인 관점에서 성령의 권능에 대해 얘기해 보자. 우리 선교사들은 우리가 북미권에서 겪는 것보다 더 극적인 힘 - 그들 자신이 빛과 어두움 사이에서 겪는 - 에 관해 증거하는 것 같다. 적군은 다른 문화에서 다른 방법으로 자신을 드러내고, 하나님도 다른 문화에서 다른 방식으로 그렇게 하시는 걸까?

 

훌스터: 나는 당신의 가정에 동의하지 않는다. 대적의 힘은 세계 모든 곳에서처럼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정말 실제적일 뿐만 아니라 참으로 가시적이다. 나는 상당 기간동안 북미개혁교단(CRC)의 한 교회를 섬겼고, 비록 적군들이 다른 방법으로 자신들을 드러냈었지만 그곳에서 적들의 힘과 어둠의 권세를 잘 인식할 수 있었다. 가정폭력, 강간, 그리고 다양한 종류의 중독 문제들을 취급하게 될 경우, 당신은 실제로 당신에게 소리치는 귀신을 상대하진 않겠지만 적군은 그처럼 현실적이고, 그러한 상황들 가운데서 당신은 인도네시아에서 만큼이나 성령의 권능이 필요하다. 대적들의 힘이 실제적이고 교활하다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 당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은 루이스(C. S. Lewis)의 『스크루테이프의 편지 (The Screwtape Letters)』를 읽는 것이다. 설교를 하는 가운데 내가 깨달은 점들 중 하나는 우리가 지속적으로 청중들에게 대적이 그들 가운데서 역사하고 있는 바로 그 지점에 주의를 기울이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쿠퍼: 훌스터의 주장에 동의한다. 나 또한 북미의 기독교가  [1692년에 있었던] 역사적 살렘 마녀재판 이후엔 천사나 귀신에 관한 부분에는 더 이상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매우 경건한 자세로, “나는 천사를 믿는다”라고 말할 수 있지만, 천사들이 뭔가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샤머니즘이나 원시 종교의 강신술적 배경에서 자란 제 3세계의 사람들은 이런 종류의 일들에 정말 관심이 많다.

  동시에, 그리스도인들이 공언하는 거의 모든 카리스마적 은사들은 샤머니즘이나 강신술에서, 그리고 (그것들이 성령에 관한 어떠한 성경적 표현일 수 있는 이상으로) 샤머니즘적일 수 있는 징후들 가운데서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매우 잘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당신이 그것을 쫓아내기 위하여 이름을 부르고 쫓겨가야 할 곳을 정해줘야 하는 지역적인 귀신이 있다고 생각해보자. 성경에는 그것에 대한 아무런 언급이 없지만, 샤머니즘에서 그것은 일반적인 풍습이다. 샤먼(Shaman)은 그것을 행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는 영적인 세계의 달인이다. 동물소리, 웃음(소리), 영적 권위자가 손을 댓을 때 정신을 잃는 것, 방언, 병고침, 사람을 저주함 – 이런 종류의 일들은 다른 많은 종교에서도 일상적으로 발생한다. 우리는 매우 분별력 있는 마음을 지녀야 한다. 오순절운동과 [오순절운동과 은사주의운동(Charismatic Movement)에 이어 새롭게 성령의 은사를 강조하는 운동인] 제3의 물결 운동(Third Wave Movement)에 관련된 사람들은 이런 모든 위조품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자신들이 영들을 정확히 분별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다. 나는 우리가 이러한 일들에 대해 얼마나 정통한지 궁금하다. 나는 이 점이 우리 동료 교수들인 룻 터크(Ruth Tucker)와 마리아노 아빌라(Mariano Avila)가 그들의 소수파-보고서에서 교단총회에 주의를 주고자 애썼던 것들 중 일부라고 생각한다.

 

 

 

캘덜먼: 이제 성령이 어떻게 예배와 설교에 관련되는 지에 대해 얘기해 보자.

 

훌스터: 오늘날 예배에 대한 많은 경험적 이해가 있다. 만일 음악이 좋고 설교가 좋다면, 성령은 그날 그곳에 있었다. 우리는 때로는 예배가 그리 좋지 못할 지라도 좋았을 경우처럼 성령이 그곳에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성령이 예배당에 있는가 없는가를 판단하는 것은 우리의 경험이 아니다. 그것이 예배에서 일어나는 일이기에 성령은 예배당에 있다. 인간의 경험은 하나님의 임재 (the presence of God) 의 척도가 아니다.

 

볼트: 계획된 즉흥성은 주의 깊게 준비된 기도나 설교보다 성령의 임재에 관한 더 좋은 사례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훌스터: 모든 설교자는 최선이 아닌 설교를 한 경험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주방의 햄버거 헬퍼(Hamburger Helper: 제너럴 밀스라는 미국 식품그룹에서 생산하는 인스턴트 파스타)이다. 그것은 그 역할을 할 것이지만, 필레미뇽(filet mignon: 값 비싼 뼈가 없는 소고기 부위로 안심이나 등심부위를 나타내는 프랑스 조리용어)은 아니다. 당신은 설교단에 서서 그것으로 전력을 다한다. 끝에 당신은 부끄러워서 강대상 뒤쪽에서 조금 고개를 숙일 것이고, 설교 후엔 변함없이 누군가 다가와서 “와~ 하나님께서 당신의 설교를 통해 오늘 정말 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라고 말한다. 당신은 자신의 겸손이 잘 자리 잡혔는지 확인해줄 뿐만 아니라 그것이 설교자로서의 당신에 관한 일이 아니고 다른 무엇인가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는 설교자로서의 그런 경험을 충분히 가지고 있다.

 

캘덜먼: 나는 잔디밭 축제에 나타난 스컹크가 되는 것이 정말 싫지만…. 나는 이 자리에서 얘기된 어떠한 것도 틀렸다 생각하지 않지만, 북미개혁교단(CRC)을 떠나는 상당 수의 사람들이 있다는 현실을 우리는 직면하고 있다. 우리는 이 사람들을 [책임을 져야 할] 희생양으로 삼아 그들이 스스로의 신앙유산의 부유함을 모르고 있다고 성급하게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적절한 대응이 아니다. 내가 사람들에게 “왜 당신은 떠났나요?” 라고 물을 때, 그들의 대답을 관통하는 주제는 종종 이렇다: “있잖아요, 저는 하나님의 권능을 보고 싶어 정말 견딜 수 없었어요. 하지만 제가 매 주일마다 다녔던 교회에서는 그걸 볼 수 없었어요. 목회자와 찬양인도자와 전체 회중들 중 그 누구도 참으로 하나님의 권능을 깊이 믿는 것 같지 않았어요. 시늉만 많았지요.” 사람들은, 특히 젊은이들은 북미개혁교단(CRC)을 떠나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의 권능을 보길 갈망하고 있다.

 

훌스터: 나는 우리가 증거하는 일에 취약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의 삶 가운데 행하시는 일을 분명히 말할 줄 모른다. 우리는 그것에 대해 어떻게 서로 이야기해야 할 지 모른다. 증거(testimony)는 당신 삶에서의 하나님의 권능을 증언하는 것이다. 내 생각에 우리가 예배와 회중들의 삶을 소생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증거의 능력을 구체화하는 것이다.

 

스미스: 아마 그것은 우리가 주님으로부터 말씀을 청하는 일에 있어 더 많이 개방되도록 할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성령의 특별한 은사들이라고 부르게 될 수도 있는 바를 향해 나아가는 다른 전통에서의 관행이다. 봉헌 증거에서부터 “누가 오늘 아침에 주님으로부터 말씀을 받았는가?”로 이동하는 것은 그리 큰 발전은 아니고 발전을 위한 좋은 예가 될 순 있겠다.

 

쿠퍼: 분명히 우리는 북미개혁교단(CRC)을 떠나는 이 사람들을 희생양으로 삼을 순 없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오랫동안 열심히 지켜봐야 한다. 나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보면, 육체적 건강과 영적인 건강 사이의 비교가 알려 주는 바가 있다. 나는 스스로의 건강을 당연하게 여기고 내가 원하는 대로 먹을 수 있다. 아니면 나는 스스로에게 주어진 건강이란 선물을 강화하기 위해 먹는 것을 조절하고 운동을 할 수 있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본질적 표지들 중 하나는 자기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에서 자라가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들 중 많은 이들은 그 선물을 받고도 그것을 양성하고 있지 않는 현상황의 기독교에 만족하고 있다. 내 생각엔 사람들이 교회를 떠날 때 그들이 찾기 원하는 바는 생명력과 성숙이다. 그들이 갈구하는 것은 성령의 특별한 카리스마적 증거라기 보다는 중생의 일반적 열매들이다. 내 생각엔 우리 중 많은 이들은, 아마 어떤 교회에서는 대다수가, 영적 게으름뱅이 구경꾼이다.  

 

훌스터: 많은 사람들이 영적 게으름뱅이 구경꾼으로서 예배에 참석한다. “제가 불이 붙고 변화되는 건 예배 인도자인 당신에게 달렸어요.” 하지만 예배는 이런 생각이나 말을 하는 사람들의 일이기도 하다. 우리는 건강한 예배가 되도록 하기 위해 우리 모두가 뭔가 해야한다는 각오를 하고 예배에 참석할 필요가 있다. 당신의 교회가 매주 크게 한 건 하지 못하는 설교자를 두고 있을 때, 어떻게 당신은 하나님의 임재를 갈망하며 적극적으로 설교를 들을 수 있을까? 예배 음악이 당신의 기호에 맞지 않을 경우, 당신은 어떻게 능동적으로 예배드릴 수 있을까? 그것은 “당신이 예배로부터 무엇을 얻었는가”의 문제일까 아니면 “당신이 예배 속으로 무엇을 가지고 왔는가”의 문제일까? 우리는 예배를 통한 스스로의 영적 성장에 대해 책임감을 가질 필요가 있다.

 

볼트: 우리는 또한 겸손히 성령을 의지하는 데 있어 분명하지 못한, 잘못을 범하고 있는 듯 하다. 우리는 칼빈주의자들이지만 미국의 “할 수 있다-주의 (can do-ism)”의 배경에서 우리는 “할 수 있다 (can do)”의 사람들이다.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 가운데 역사함이 없이는 죽은 교회이다 라는 인상을 우리가 늘 주고 있는 건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캘덜먼: 이제 성령과 기도에 관해 잠시 얘기해 보자.

 

훌스터: 나는 최근 그들의 당회장이 당회에서 얼마나 효율적으로 자신들을 이끄는 가에 대해 얘기하는 어떤 장로와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나는 그들이 당회 때 얼마나 많은 시간 기도하는지에 대해 물었다. 그는 “시작할 때와 마칠 때” 라고 대답했다. 나는 다시 “그러면 당신들은 교회에서 일어나는 일과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힘든 일에 대해 얼마나 오래 얘기하는가?” 라고 물었다. 그는 “글쎄, 우린 정말 그런 얘기는 하지 않는다” 라고 말했다. 나는 “아마 당신들의 효율성이 당신들의 영적 리더십을 이기고 있는 것 같다” 라고 대답했다. 만일 우리가 기도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지 않고 교인들의 영적 지도자로서 그들의 필요를 직면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들을 제대로 인도할 수 있을까? 만약 우리가 기도와 열정의 사람인 영적 지도자들을 길러내지 못한다면, 우리는 스스로에게 요구되는 만큼 성령에 민감해 질 수 없을 것이다.

 

캘덜먼: 우리는 기도를 교회 내에서의 또 다른 프로그램으로 한정시키지 않으면서 더 깊고 더 충만한 기도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서로에게 도전을 줄 필요가 있다. 이 일은 (생명력 있는 기도생활을 위한 조직신학적 가르침과 실천과 책무 등의) 기도를 위한 프로그램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어렵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교인들 가운데 매우 깊은 기도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이들이 대개 오래 전부터 그런 기도의 삶을 살아왔고 교인들을 보다 잘 기도하도록 돕기 위한 특별한 프로그램 이후에도 오랫동안 그런 기도의 삶을 살아갈 것이라고 주의 깊게 인정해야 한다. 나는 기도 갱신을 위한 프로그램을 평가절하 하길 원치 않는다. 나는 또한 참으로 기도 가운데 하나님과 동행하면서도 그런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각 교회마다 있는 수십 여명의 성도들을 간과하기도 원치 않는다.

 

스미스: 다시금 그 주제가 떠오른다: ‘일상적인 일이 얼마나 특별한가, 또는 우리의 삶 전체에 걸친 성령의 특별한 역사가 얼마나 일상적인가!’

 

 

 
 

 

[1] 미국 칼빈 신학교 Forum 2007년 가을 호에 “The Work of the Holy Spirit” 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내용으로 번역 및 게재의 허락을 받고 게재합니다. 저작권은 Forum에 있습니다.

 

[2] 듀엔 캘덜먼(Duane Kelderman)은 전 칼빈 신학교 부총장, 존 볼트(John Bolt)는 칼빈 신학교 조직신학 교수, 존 쿠퍼(John Cooper)는 철학신학 교수, 메리 훌스터(Mary Hulst)는 전 설교학 교수, 그리고 케이티 스미스(Kathy Smith)는 교회정치 조교수이다.     

 

 

< 저작권자 ⓒ 개혁정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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