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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바르트로부터 배우지 못한 것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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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리차드 멀러 (Richard Muller, 전 미국 칼빈 신학교 역사신학 교수)

번역: 태동열 (미국 칼빈 신학교 조직신학 박사과정 중)

 

 

   지난 한 해 (1986년) 동안 칼 바르트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고 20세기 신학에 기여한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수많은 기념행사가 열렸고 찬사가 쏟아졌으며 기사가 쓰였다. 필자도 그와 같은 일을 하고 싶지만, 약간은 낮은 어조로 하고 싶다. 필자는 바르트가 그 시대의 가장 저명한 신학자들 중 한 명이라 인정하지만, 그를 루돌프 불트만보다 더 중요한 인물이라거나 혹은 – 만일 칸트 이후 신학을 전반적으로 고려할 경우 – 프리드리히 슐라이어마허보다 더 중요한 인물이라고 말하기에는 망설여진다. 그리고 필자는 확실히 바르트의 더 소란스러운 추종자들 중 몇 명에 의해 우리에게 강요되는 판단, 즉 그 위대한 바젤 출신 교수가 아타나시우스 이후 가장 중요한 사상가라는 식의 평가는 삼가하고 싶다. 이 주장이 아마 에딘버그 시에서는, 혹은 그 시에 있는 성지인 T&T Clark 출판사의 도보거리 내에서는 수용될 수 있겠지만, 신학적으로든 지리적으로든 뭔가 다른 시각에서는 이 주장이 지나치다. 바르트는 아타나시우스와 매우 대조적인 입장에 서 있고, 이와 관련해서, 어거스틴, 아퀴나스, 루터, 그리고 칼빈과도 매우 대조적인 입장에 서 있다. 거의 이들과 견줄만큼 뛰어나지만, 극히 소수의 참으로 위대한 이 사상가들과는 대조적으로, 본질적으로 비규범적인 신학을 양산한 신학자로서의 바르트는 오리겐, 죤 스코투스 에리제나, 그리고 (필자가 추가하고 싶은) 슐라이어마허와의 조합에 위치한다.

 

   필자의 생각에는 바르트가 성공적으로 필자세대의 많은 신학자들을 성경으로, 교회의 위대한 전통으로, 특히 종교개혁과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 신학의 전통으로 돌아가도록 했다. 바르트 자신의 사상의 유용하고 통찰력 있는 요소들 대부분은 확실히 종교개혁과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 신학에서 유래한다. 필자 자신의 신학 훈련 초창기에, 필자의 교수들이 필자에게 불트만, 노트(독일의 구약학자), 슐라이어마허, 매퀴리, 화이트헤드, 그리고 당연히 바르트로 구성된 꽤 고정된 규정식을 먹였을 때, 필자는 바르트로부터 그 밖의 다른 곳에서 필자의 신학적 토대들을 찾는 법을 배웠다. 그렇다면 이제 필자가 바르트로부터 배우지 못한 것들에 대해 말해 보겠다.

 

   첫째로, 필자는 바르트로부터 어떻게 ‘신학함’을 배우지 못했다. 그리고 필자는 그 누구도 바르트로부터 그것을 배우지 못했을 것이라고 감히 추측해 본다. 바르트의 『교회 교의학』을 정독하면서, 필자는 과도하게 많은 군말과 종결 짓기를 거부하는 관념들을 지속적으로 경험했다. 두뇌가 날카로운 지성이 개념들을 갖고 놀고 그 개념들을 모든 인식가능한 각도에서 혹독하게 검증받게 하는 것은 흥미롭고 때로는 심지어 유익하다. 하지만 인간의 말로 신적 진리를 주장하는 것의 불가능성을 가정하고 따라서 지속적으로 그 주장 자체의 불가능한 공식화들을 부정하고 재진술하는, 바르트의 변증법적 방법은 신학적 주장의 두 극단 사이의 공식화가 갖는 문제점을 단지 쉽게 그리고 더 교훈적으로만 주장할 수 있었다 – 그런 다음 다른 이슈로 옮겨 가서, 마침내 독자에게 서 너 권 분량으로 된 완성된 교의학을 내용의 손실없이 제공했다. 바르트가 그들의 작품들을 존경심을 가지고 읽었던 개신교 스콜라주의자들은, 그들의 명료함과 간결함에 관한 주목할 만한 관용 표현들로, 모든 인간의 신학은 틀림없이 모형적이고 오직 하나님의 선물인 계시의 은혜에 의해서만 신적 원형을 성공적으로 반영하는 하나님에 대한 불완전하고 유한한 진술이라는 점을 인정하였다. 바르트는 필자에게 신학적 공식화에 대한 그런 법칙을 어디서 발견할 수 있는 지를 가르쳐 주었지만, 필자는 그 법칙 자체를 바르트로부터 배웠다고 말할 수 없다.

 

   둘째로, 필자는 바르트로부터 어떻게 성경해석을 하는지에 대해 배우지 못했다. 필자가 공부했던 바르트의 첫 소논문은 『로마서주석』이었다. 신학교 시절을 회상할 때, 필자는 거기서 시작했는데 이는 필자가 바르트를 읽어야 한다고 믿었지만, 필자는 『교회 교의학』을 필자의 서재를 위한 도서예산의 한도를 능가하는 완전한 통일체로서의 전집 작품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필자는 바르트의 『로마서주석』으로부터 그 당시 성경해석의 차갑고 역사비평적이며 본질적으로 비신학적인 내용에 대한 필자의 이제 막 시작된 반감들이 어느정도 타당한 반감들이었음을 배웠다. 그리고 바르트의 서문이 필자를 종교개혁자들의 주석적이고 해석학적인 접근방법들로 안내했을 때, 필자는 오늘날 교회의 삶을 위한 성경본문의 신학적 의미로의 진입로를 발견했다. 하지만 필자가 바르트 자신의 주석을 더욱 읽어감에 따라, 그 주석의 급진적으로 실존주의적 접근법이 바르트의 사상에 바울의 영향보다 키에르케고르의 영향이 더 컸다는 것을 필자에게 가르쳐 주고 있음을 깨달았다. 로마서 본문과의 참된 접촉은 바르트의 논문에서 극미하다.

   이와 유사하게, 필자가 마침내 『교회 교의학』을 공부하고 거기서 다양한 성경 본문들에서 유추한 바르트 신학의 기독론적 원리를 목격하기 시작했을 때, 필자는 빈번히 어떻게 그 본문 자체가 바르트에 의해 그 원리를 위해 선택된 방향으로 향하는지를 보느라 당황스러웠다. 가룟 유다의 이야기에 대한 바르트의 독해는 한 가지 좋은 예이다. 대부분의 주석가들은 이 본문들(마 27:1-10과 행 1:16-20)에서 돌이킬 수 없는 유죄판결을 본다: 사도행전에서 그 본문은 저주 시편의 예리한 인용으로 끝을 맺는다. 하지만 바르트는, 그리스도가 유일하게 선택되고 유일하게 유기된 인간이라는 자신의 교리적 가정에 입각해서, 유다의 운명에 어떤 희망을 찾는다. 이 경우의 성경해석적 우둔함은 예외적인 것이 아니다: 바르트는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에 그 자체로서는 분명한 관련성이 없는 본문들을 열기 위한 발견학습적 (heuristic) 열쇠로서 그의 지배적인 기독론적 원리를 빈번히 사용한다. 그 결과는, 그런 해석이 “기독론적”이고 “신학적”이라는 모호한 주장에 의해서만 정당화되는, 신뢰할 수 없을 정도로 임의적이고 교리적인 성경해석이다. 필자는 바르트로부터 어떻게 성경해석을 하는지에 대해 배우지 못했다.

 

   셋째로, 그리고 결론적으로, 필자는 바르트로부터 기독교 전통의 통찰들을 오늘날 사용하기 위해 어떻게 적합화시키는 지를 배우지 못했다. 『교회 교의학』은 의심의 여지없이 기독교 교리사에서 유래한 자료들의 금광이다 – 하지만 바르트는 아주 빈번하게, 이 수집된 자료들의 토대위에서 실제적으로 건축한다기 보다는, 그 자신의 공식화를 위한 포장으로 그것들을 사용하고 그 자료들 자체의 의미나 방향을 전달하는 데는 실패한다. 이 문제의 한 예로서, 필자는 바르트의 가장 통찰력 있는 역사적 논점에 관한 해설들 중 실제적인 것 하나를 지적하고 싶은데, 그것은 예정(predestination)에 대한 논의이다 (『교회 교의학』(영문판), II/2권, 60-88, 106-115쪽). 그 체계 속에서는 모든 교리가 어쨌든 하나님의 작정으로부터 추론되는 예정론적 체계를 개혁주의 정통 신학자들이 결코 제시하지 않았음을 바르트도 인정하고 필자도 옳게 믿는다. 하지만, 바르트는 작정 교리에 대한 상당히 경직된 표현이 ‘완전히 부재(不在)하거나 숨겨진 하나님(Deus nudus absconditus)’의 문제를 제기한다는 것에 주목한다. 바르트는 아만두스 폴라누스 (Amandus Polanus)의 다음과 같은 주장에서 자신의 해결책의 단서를 발견한다: 선택이 세 위격 모두에 해당되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공동의 사역이기 때문에 성부 하나님은 성부로서가 아닌 하나님으로서 선택하시고, 따라서 성자 하나님은 우리에 대한 선택에 있어서 선택하시면서도 성취하신다. 이 단서로부터, 바르트는 “선택하고 선택받은 예수 그리스도” 라는 그 자신의 교리를 통해 ‘완전히 부재하거나 숨겨진 하나님(Deus nudus absconditus)’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나아간다. 바르트가 주목하지 않은 점은 본질적이고 따라서 하나님의 삼위일체적 행위로서의 작정의 개념이, “그리스도 안에서” 발생하는 것으로서의 선택의 정의와 더불어, 16세기와 17세기의 개혁주의 신학의 전형적인 특징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예전의 신학에서 우리는 어디서도 ‘완전히 부재하거나 숨겨진 하나님(Deus nudus absconditus)’의 문제를 만나지 않는다. 더욱이, 선택하고 선택받은 중보자는 또한 유일하게 택함받고 유일하게 버림받은 인간이라고 하기 위한, 그리스도에로의 선택 (election into Christ) 사상에서의 바르트의 (교리적) 붕괴는 그가 논평했고 자신이 제시했던 교리 문제에 대한 자신의 해결책의 단서를 그것으로부터 취하는 그 신학적 자료와는 어떠한 실제적 관계성도 가지지 않는다.

   필자는 선택교리에 대한 예전 개혁신학의 개념들에 관한 바르트의 고찰가운데서 어떤 일이 실제적으로 일어났는지에 대해 단지 역사적 가정을 제공할 수 있다. ‘완전히 부재하거나 숨겨진 하나님’의 문제는 그 예전의 신학의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바르트 자신의 사상의 칸트-철학적 배경에서 기인한 문제이다: 초월적이고 도달할 수 없는 물자체(noumenon)로서, 현상의 질서의 배후에 계신 하나님은 현상의 질서에 그분의 위치가 어떻게든 정해질 수 없는 한, 우리가 접근할 수 없는 혹은 인식할 수 없는 분이다. 그리스도는 바르트에게 이 위치를 제공하고, 따라서 하나님과 하나님의 행위들에 대한 지식의 유일한 초점을 제공한다. 그리스도의 선택에 바르트가 초점을 맞춤은, 슐라이어마허가 예수그리스도를 하나님께 대한 자신의 완전한 의존성을 지속적으로 일관성있게 의식하는 단 한 사람으로 여기는 것처럼, 하나님의 선택 교리와 관련된 칸트-철학적 장애물을 다루고 있는 것이다 – 하지만 그것은 개혁주의 전통에 관한 고찰에서부터 유래하지 않는다. 바르트는 역사적 자료들이 그것들 자체의 목소리를 발하도록 하기 보다, 오히려 그 자료들을 자신의 해설을 위한 포장으로 사용한다. 이러한 논거 방식은 『교회 교의학』의 다른 많은 곳에서도 증명될 수 있다 – 예를 들어, 『교회 교의학』의 첫 두 권 반에 걸쳐 나오는, 개신교 정통주의 신학서론에 대한 바르트의 여러 해설들에서.   

 

    그의 방법론과 성경해석과 역사 사용에서, 바르트는 그의 독자들을 그 자신의 개인적인 신학적 씨름들을 넘어서는 곳으로 향하게 하는데 있어 일관성 있게 실패한다. 그의 주장들은 자주 눈부시다. 그것들은 바르트 자신이 나왔던 자유주의 신학의 많은 소중한 개념들을 무력화시키는 데 성공한다. 그의 주장들은 또한, “종교학”의 상대화시키는 접근법이 자주 신학적 견해에 대한 학문적 토론을 지배하려고 으르대는 시대에, 기독교의 고유성에 대해 우리에게 강하게 상기시킨다. 바르트의 신학의 대단한 가치는 그것이 우리 자신들의 신학의 뿌리로 우리를 향하게 한다는 것이다. 바르트의 신학의 대단히 역설적인 점은 일단 한 번 그것이 우리를 성경과 전통으로 돌아가도록 하고 나면, 그것은 현재를 위해 성경과 전통을 해석함에 있어 매우 작은 도움만 우리에게 준다는 것이다. 어거스틴, 아퀴나스, 루터, 그리고 칼빈을 공부하면서, 필자는 이들 각 저자는 성경과 전통을 묵상할 의무뿐만 아니라 성경과 전통 둘 다를 그들 자신의 시대에 그리고 교회의 다음 세대에 전달할 의무를 의식하고 있었음을 지속적으로 깨닫는다. 이 저자들은 항상 그들 자신의 작품을 넘어 더 위대한 교회의 과업을 가리킨다. 그리고 그들은, (1) 모방될 수 있는 방법들을 채택함으로, (2) 성경을 현재적으로 여는 성경해석적 논거들을 제시함으로, (3) 성경본문을 존중하고 그 본문을 어떤 지배적인 발견학습적 원리들에 부합되게 하려고 굴복시키지 않으므로, (4) 그들 자신의 견해들을 위한 포장으로서가 아니라 신학적 이슈의 의미를 분별하는데 있어 통로와 안내서로서 과거의 신학적 고찰의 전통을 다룸으로, 그렇게 한다. 필자는 칼 바르트로부터 이러한 접근법을 배우지 못했다. 하지만 필자에게 그것을 배울 수 있는 곳을 가리켜준 것에 대해 필자는 항상 그에게 감사할 것이다.         

 


[1] The Reformed Journal 37호(1987년)에 “What I Haven’t Learned from Barth”라는 제목으로 실린 내용으로 번역 및 게재의 허락을 받고 게재합니다. 저작권은 The Reformed Journal과 저자에게 있습니다.

 

 

< 저작권자 ⓒ 개혁정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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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성호 2016.11.07 13:34
    이 글은 같은 저널에 한 해 전(1986년 5월)에 실린 Elizabeth Achtemeier 교수의 "What I Learned from Karl Barth"(내가 칼 바르트에게서 배운 것)"에 대한 비평적 글입니다.
  • ?
    우병훈 2016.11.07 23:10
    정말 멀러 교수의 재치가 잘 드러나는 글이로군요. 멀러 교수는 수업 시간에 여러 차례 바르트를 신학계의 "별종(sui generis)"이라고 불렀지요. ^^ 저 역시도 바르트가 고대 자료를 사용하는 방식에 있어서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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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교회 소모임 금지명령은 정...
코로나 19 사태와 이에 따른 목회환...
코로나 사태, 교회의 체질을 근본적...
“인터넷 성찬”이 가능한가?
코로나19에 대해 전문가에게 묻다
그 무엇도 방해하지 못하는 복음
국가적 비상상황과 공예배에 대한 ...
성경이 나를 읽어내고, 나의 삶으로...
네덜란드 자매교회 총회를 참석하고
논문
장로교 정치원리 하에서의 각종 단...
목사와 장로, 그 역할과 관계와 갈...
성경적 장로교 정치원리 (서울포럼 ...
[논문] 작은 교회 성도들은 행복한가?
한국 장로제도의 반성과 개혁
스코틀랜드 종교개혁의 유산과 한국...
장로회정치원리에 비추어 본 노회 실태
고령화 시대, 선교현장을 섬기는 교...
개혁주의 교회설립에 대한 새로운 비전
KPM선교의 내일을 향한 준비 (김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