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양하는 은혜 (1)[1]
저자: 아서 미스킨[2]
번역: 김재한[3]
땅은 곧 눈과 같이 녹아지고, 태양은 빛을 잃을지라도
여기 이 낮은 곳에서 나를 부르신 하나님은 영원히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라[4]
여러 세대에 걸쳐 수백만의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불려진 가장 유명한 찬송가,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는 구원에 대한 멋진 노래이다. 죄로부터 의로움으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어둠에서 빛으로, 시간에서 영원으로, 옛 세상의 질서에서 새로운 세상의 질서로의 구원. 죽음과 멸망의 공포는 그리스도인이 가진 소망의 확실성으로 말미암아 뿌리 뽑혔고 대체되었다. 어찌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과 풍성함을 찬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엡 1:6-7)? 이 찬양이 이렇게 가슴 뛰게 하는 것은 현재의 세상은 결국 사라질지라도 나는 영원히 주님의 것으로 남을 것이라는 지식을 그 중심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 흔들리지 않는 소망은 결코 그리스도와의 구원의 교제를 가지지 못한 자의 분깃이 아니다. “세상의 종말”에 대한 어떤 말도 거듭나지 못한 자에게는 식은 땀을 흘리게 하기에 충분할 것이다. 그러나, 이 만일의 사태에 대한 준비 부족에도 불구하고, 심지어 불신자 가운데도 이 주제에 대한 병적인 관심이 존재한다. 몇 년 전에 한 어린 소년이 예배 후에 나에게 다가와서 이렇게 물었다. “목사님, 세상의 종말에 대해서는 언제 설교 하세요?” 나는 속으로 웃으면서 그것에 대해 생각해보겠노라고 대답했다. 일주일 혹은 그보다 좀 더 지난 후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붙어 있는 픽업 트럭을 보게 되었다: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만나기를 준비하라.” 그 구절은 아모스 4장 12절에서 따 온 것으로, 트럭의 옆면에 붙어 있었는데, 심지어 정확하게 그가 돌아갈 정확한 날짜까지 적혀 있었다. 그 일로 인해 내가 “세상의 종말”과 그것에 동반되는 표지들에 대해 매우 무지하다는 사실이 명백하게 다가왔다. 이 찬송시의 작가는 매우 축약적인 단어들로 만물의 종말에 대해서 신자의 관점에서 훌륭하게 요약하여 표현하고 있다. 그는 단지 성경이 이미 말한 것을 진술하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도 아니다. “이제는 약속하여 이르시되 내가 또 한 번 땅만 아니라 하늘도 진동하리라 하셨느니라 이 또 한 번이라 하심은 진동하지 아니하는 것을 영존하게 하기 위하여 진동할 것들 곧 만드신 것들이 변동될 것을 나타내심이라” (히 12:26-27). 감탄하리만치 명료하게 히브리서 저자는 만물의 풀어짐과 더불어서 그런 일들 가운데 신자들은 보전될 것임을 묘사하고 있다.
성경은 세상의 종말과 그에 동반되는 현상들에 대해 많이 말하고 있다. “내가 또 한 번 땅만 아니라 하늘도 진동하리라”는 말씀은 학개서의 말씀에서 가져온 것이다: “조금 있으면 내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진동시킬 것이요 또한 모든 나라를 진동시킬 것이며 모든 나라의 보배가 이르리니 내가 이 성전에 영광이 충만하게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학 2:6-7). “우리는 선지자적인 역사 교훈을 읽고 있는데 이는 언젠가 현재의 피조 세계가 하나님에 의해 흔들리고, 오직 그분께 속한 영원한 것들만이 남겨질 것이라는 점을 상기시켜준다” (리차드 필립스). 이것은 신약성경에도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주제이다. 요한1서는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요1 2:17)라고 기록한다.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바라고 갈구하는 이 세상에 속한 모든 것들은 결국 무로 돌아갈 것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요한은 동일한 구절에서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라고 가르치고 있다.
학개 선지자는 “조금 있으면” (학 2:6)이란 말로 이 종말의 임박함을 강조한다. 히브리서 저자도 마찬가지로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히 10:37) 말한다. 이는 우리가 생각하듯이 반드시 내일이나 혹은 매우 빠른 날을 의미할 필요는 없다. 주님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음을 기억하라 (벧후 3:8). 주님께는 시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올바른 때가 중요하다 (롬 16:20). 하나님의 관점에서 종말은 임박했고 우리가 그분이 나타나실 때에 준비되지 않은 모습으로 드러나지 않기 위해서는 종말이 임박했다고 믿는 것이 낫다 (눅 12:37-38).
기독교인의 세계관이 세상의 다른 세계관과 날카롭게 구별되는 것이 바로 이 지점이다. 살면서 우리는 영구한 가치를 가진 것은 만질 수 있는 것, 물질적인 것, 이 세상에 속한 것이라고 배운다. 중요한 것은 손 안에 있는 현금, 벽돌과 회반죽으로 쌓아 올리고 있는 빌딩들, 학문적인 혹은 다른 어떤 성취들, 사업에서의 성공, 예술에서의 탁월한 진보, 그리고 스포츠 분야에서의 성공 등이다. 영적인 고려사항들은 단지 이차적인 가치를 지닐 뿐이고 절대로 이 세상에서 삶의 냉정한 실재들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타협하지 않는 솔직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은 이 모든 것들을 절대적으로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매도하는데 이는 그 모든 것들은 “또 한 번” 흔들릴 것이고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모든 일의 결국에,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이다. 이 현재의 가시적인 피조물 - “만드신 것들” -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안전을 위한 소망으로 아끼고 집착하던 것들, 즉, 집, 가정, 궁전, 마천루, 투자, 큰 평판과 자질, 위대함의 추구 등과 함께 사라질 것이다. 모든 사람이 만든 제도, 즉, 정치 제도, 정치인, 왕들, 권세자들, 그들의 왕국, 국가와 국가의 부들은 무너질 것이다. 모든 분깃과 측면, 모든 구석진 곳과 갈라진 곳, 모든 높은 이상과 야망, 모든 위대함이나 명성의 추구는 (고전 7:31) 사라지고 알아볼 수 없는 부스러기 더미가 될 것이다. “진동하지 아니하는 것” (히 12:27)만이 남겨질 것이다.
[1] 헤리티지 개혁교단(Heritage Reformed Congregations)에서 발행하는 공식 교단 매거진 The Banner of Sovereign Grace Truth 2018년 3-4월 호에 “Praising Grace”라는 제목으로 실린 내용으로 번역 및 게재 허락을 받고 게시합니다. 저작권은 The Banner of Sovereign Grace Truth와 저자에게 있습니다.
[2] 아서 미스킨 박사 (Dr. Arthur Miskin)는 남아프리카에 있는 무칸요 신학교 (Mukhanyo Theological School)의 교수이다.
[3] 미국 칼빈 신학교에서 조직신학 박사 과정 중에 있다.
[4]이 구절은 존 뉴턴이 작시한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의 제6절을 번역한 것으로 원문은 다음과 같다: “The earth shall soon dissolve like snow, The sun forbear to shine; But God, who called me here below, Will be forever mine.” 한글 찬송가는 1-3, 7절을 찬송가 가사로 번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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