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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대우 목사
고신대학교 교수
개혁주의학술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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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종교개혁은 끝났는가?
(Is The Reformation Over?: An Evangelical Assessment of Contemporary Roman Catholicism)
저자: 마크 놀(Mark A. Noll) & 캐롤린 나이스트롬(Carolyn Nystrom), 이재근 역
출판사: 기독교문서선교회


1. 요약

이 책은 부제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오늘날 로마 가톨릭에 대한 개신교 복음주의 관점의 평가를 다룬다. 즉 복음주의가 19세기까지만 해도 적대시하기만 했던 로마가톨릭교회를 20세기에는 어떻게 평가해왔는지 그 진행과정을 상세하게 제시하고 있다.

이 책에 따르면 개신교 복음주의와 로마 가톨릭 사이에 존재해왔던 오랜 적대 감정이 획기적으로 줄어들게 된 계기는 로마 가톨릭 내부의 변화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는데 그것은 바로 1962-1965년에 개최된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결과다. 왜냐하면 이후로 로마 가톨릭 교회 입장에서 “개신교도는 실제로 역사 속의 모든 기독교 신자의 일부로서 교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여”(148)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의 내용 대부분은 1960년대 이후부터 20세기 말까지 주로 미국이라는 무대를 중심으로 일어난 개신교 복음주의와 로마 가톨릭의 관계 변화를 추적하는 것이다.

제1장 “옛날 같지 않다”에서는 1960년대 이후 복음주의와 로마 가톨릭의 관계가 180도 달라졌다는 점에 대해 흥미로운 예들을 증거로 제시하면서 다음과 같은 소결론을 내린다. “로마 가톨릭교회와 개신교 복음주의 간 상호 적대감은 한때는 너무도 분명해서 영구적으로 세워진 철옹성 같았다. 그러나 그건 이제 과거의 일이다. 1960년 이래 새로운 시대의 여명이 밝아온 것이다”(69). 이 장에서 저자들은 그 관계 변화가 단순히 미국에서만 일어난 것이 아닌, 전 세계적인 사건이라고 평가한다.

제2장 “분열의 역사”에서는 먼저 1960년대 직전까지 개신교와 가톨릭 사이의 적대감정이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두 종류의 발언, 두 가지 사건, 두 권의 책”(71)을 소개함으로 시작했다. 상호 적대적인 감정이 16세기 이후 20세기 초중반까지 지속된 이유를 서로에 대해 치명적인 결점들을 가진 집단으로 보았던 것에서 찾았다. 게다가 개신교 복음주의자들은 사회정치적으로 로마가톨릭을 심각하게 불신했다. “요약하자면, 가톨릭 신앙은 거의 기독교가 아니라고도 말할 수 있는 결점 기독교라는 것이 바로 개신교의 고착된 견해였다. 게다가 미국에서 복음주의 개신교들은 온 맘으로 가톨릭교회가 종교적 위협일 뿐만 아니라 미국의 자유 정치제도를 붕괴시키는 주범이라고 주장했다. 2차 대전 이후에도 반가톨릭 논증은 계속되었다”(89-90). 저자들은 이 장에서 두 집단 사이에 적대감정만 아니라 호의적인 감정도 있었다는 몇몇 긍정적인 사례들을 나열하면서 이것들을 변화 전야의 징조로 해석했다.

제3장 “왜 상황이 변했나?”는 “하나님께서 그 변화를 의도하셨다”(105)라는 대답을 최종 대답으로 상정하면서 그 변화가 로마교 내부에서, 세계기독교 내부에서, 그리고 미국 정치사회 내부와 복음주의 내부에서 일어나게 된 경위를 설명했다. 가톨릭교회 내부의 변화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사건은” 교황 요한 23세가 소집했고 교황 바오로 6세가 폐회했던 “1962-65년에 열린 제2차 바티칸공의회”이다. 이것은 결국 1999년에 루터교와 로마교가 함께 작성하고 발표한 “칭의 교리에 대한 공동선언문”(The Joint Declaration on the Doctrine of Justification)이라는 열매를 맺었다. 세계기독교 내부의 변화는 크게 두 사례로 설명될 수 있는데 하나는 세계기독교의 중심축이 남쪽으로, 즉 아프리카와 아시아와 태평양 지역으로 이동함으로써 유럽기독교에서 유래한 상호 적대감이 완화되었다는 사실이고, 다른 하나는 20세기 은사주의 운동이 복음주의와 로마가톨릭 양 진영 모두에서 일어남으로써 두 집단 사이의 구분선이 점차 모호해졌다는 사실이다.

제4장 “에큐메니컬 대화”는 로마가톨릭의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가톨릭과 개신교의 여러 교파들, 즉 성공회(1966-96), 감리교회(1967-96), 오순절교회(1968-97), 개혁교회(1970-90), 루터교회(1972-99), 그리스도의 제자교회(1977-93), 복음주의자(1977-84), 침례교회(1984-88) 등과의 연합적인 대화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요약했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로마가톨릭교회와 가장 먼저 에큐메니컬 대화를 시도한 개신교회는 성공회인데, 이 양측은 16세기 이후 분열의 원인이었던 신학적 주제들, 예를 들면 성만찬과 교황의 권위와 만인제사장 등을 다룬  공동선언문들에서 “거의 완전한 일치에 도달했다”(134)고 평가될 만큼 서로 가까워진 반면에, 가장 나중에 대화를 시도한 침례교는 “1984년에서 1988년 사이에 다섯 차례”(141)의 대화를 개진했지만 성공회만큼 연합을 위한 구체적이고 두드러진 합의와 진전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저자들이 개신교와 로마교 사이의 대화를 통해 합의에 도달한 것으로 평가하는 주제들은 교회가 구원의 도구인가 아닌가의 문제, 사도전승의 해석문제, 만인제사장 원리의 수용문제, 구원 즉 이신칭의 문제, 성례 규정의 문제, 종교개혁에 대한 입장 차이 문제 등이다. 반면에 합의에 실패한 주제들은 마리아의 위상 문제, 성경과 교회와 전통이라는 세 권위의 문제와 교황의 무오설 문제, 교회의 구조 즉 교회의 구성원이 누구이며 교회의 구성요소는 무엇인가에 대한 이해 차이 문제, 이혼과 산아제한과 여성안수와 같은 여러 가지 실천적인 문제들, 세례에 대한 이해 차이 문제 등이다.

제5장 “가톨릭 <교회 교리서>”는 로마가톨릭이 공식적으로 가르치는 교리가 무엇이며 이것이 복음주의 입장에서 얼마나 동의할 수 있는지의 여부를 밝힌다. 최초의 로마가톨릭 교리서는 1562년 트렌트 공의회를 통해 문답형식으로 작성되어 1566년에 처음으로 출판되었으며 활용 목적에 따라 연구용, 토론용, 암기용 및 설교용으로 구분된다. 이후 400년이 지난 제2차 바티칸공의회도 문답형식의 교리서를 만들었으며 1986년에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역시 새로운 교리서 작성을 위해 추기경과 주교 12명을 선임하여 편집위원회를 구성한 결과 1992년에 새 <가톨릭교회 교리서>가 작성되었고 교황의 서명으로 인준되었다. 놀과 나이스트롬에 의하면 “우리는 복음주의자들이 이 <교회 교리서>에 등장하는 내용의 적어도 3분의 2는 수용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199) 그래서 저자들은 그 교리서를 “동의할 수 있는 내용”과 동의할 수 없는 내용의 “차이 이해”로 구분하여 설명을 시도했다. “차이 이해”에서 다루어진 주제들은 제4장의 “에큐메니컬 대화”에서 다룬 개신교 교파들과 가톨릭 사이에 합의가 이루어지지 못한 교리적 내용과 거의 일치하는데, 즉 성경과 전통과 교회직분의 권위 문제와 마리아를 하나님의 어머니로 이해하는 문제, 그리고 세례와 구원의 관계에 대한 이해 문제가 그것이다. 여기에다 행위구원의 문제, 독신과 성인에 대한 이해 문제, 성례에 대한 이해 문제 등이 추가로 다루어졌다. 놀과 나이스트롬은 이런 문제들이 교회론의 차이, 즉 로마가톨릭의 ‘교회중심’과 개신교의 ‘개인중심’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으로 진단하면서 다음과 같은 해결책을 제안했다.

가톨릭 신자에게는 교회가 중심이고, 삶의 모든 순간은 그 축 위에서 돌아간다. 독립을 사랑하고 ‘개인 신앙’을 강조하는 우리 복음주의자들은 <교회 교리서>가 제시하는 교회에 대한 높은 이상을 심사숙고해 볼 필요가 있다. 이런 이상은 하나님 안에서 살아가는 복음주의자들이 즐거워하는 소망도 아주 잘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가톨릭 <교회 교리서>에서 몇 쪽을 빌려옴으로써 우리의 복음주의적 영적 건강을 더 좋아지게 할 수 있다(250).

제6장 “복음주의-가톨릭연대(ECT)”은 복음주의자들과 로마가톨릭주의자들 사이에 진행된 연합모임의 결과물로서 출판된 4개의 문서를 주로 다루었다. 이 공동 문서를 연대순으로 나열하면 첫째는 “세 번째 밀레니엄의 기독교 선교”(1994), 둘째는 “구원의 선물”(1996), 셋째는 “당신의 말씀은 진리니이다”(2002), 넷째는 “성도의 교제”(2003)이다. 첫 공동 문서에 서명한 대표적인 복음주의자들은 CCC 총재 빌 브라이트(Bill Bright), 남침례교 출신인 래리 루이스(Larry Lewis)와 리처드 랜드(Richard Land), 개혁주의 신학자 제임스 패커(James I. Packer)이다. 이 합의 문서를 반대하고 비판한 복음주의 개혁파 진영의 두 조직이 있었는데, 하나는 “마이클 호튼(Michael Horton)이 대표로 있는 종교개혁을 위한 그리스도인연합(CURE, Christians United for Reformation)”이고, 다른 하나는 “제임스 몽고메리 보이스(James Montgomery Boice)가 회장인 고백적복음주의자연맹(ACE, Alliance of Confessing Evangelicals)”이다. 이런 비판으로 야기된 수많은 논쟁의 결과물로써 두 번째 공동 문서 “구원의 선물”이 작성되었다. “오직”(alone)이라는 단어가 빠졌다는 것이 비판과 논쟁의 핵심이었기 때문에 두 번째 문서에서는 그 단어가 삽입되었다. “복음주의자는 구원을 사건으로 보는 경향이 있고, 가톨릭 신자는 구원을 과정으로 보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ECT II는 은혜 안에서의 일평생 성장, 또는 성화 주제도 다룬다”(267). 세 번째 공동 문서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전체로서의 교회에 말씀하시는가, 개인에게 말씀하시는가, 아니면 둘 다에게 말씀하시는가? 또한 어느 정도로 말씀하시는가?”(269)의 문제가 핵심이었고 몇 가지 점에서 합의에 도달했지만, 궁극적으로 성경과 전통과 교회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한 것인지의 문제, 즉 최종 권위의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했다. 따라서 네 번째 공동 문서에서는 이러한 개신교와 가톨릭 사이의 교회론적 차이점을 해소하지 못하여 결국 연합이 실패했음을 인정했다. 이 연합활동과 결과에 대한 저자들의 평가는 다음과 같다. “지금까지 나온 네 ECT 문서는 중요한 분야들을 연구하고 연합전선, 전도, 이신칭의, 성경 같은 중요한 이슈들에 대한 공통의 기반을 만들어 냈다. ECT 과정은 차이점이 무엇인지 분명히 드러내는 데도, 상호 존중을 증진시키는 데도 도움이 되었다... 의심할 여지없이, 앞으로도 진행될 것이다”(305-6).

제7장 “반응: 적대에서 개종으로”는 로마가톨릭에 대한 복음주의자의 태도가 적대, 비판, 협력, 개종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는 것을 지적했다. 먼저 적대적인 태도의 대표적인 예로는 ECT에 대한 스프라울(R. C. Sproul)의 다음과 같은 평가이다. “나는 종교개혁자들과 마찬가지로 이신칭의가 복음의 본질이라 믿는데, 로마는 분명히 그것을 거부한다고 확신한다”(310). 두 번째 태도인 비판의 예는 ECT의 첫 공동 문서가 출판되었을 때 고백적복음주의자연맹이 1996년에 발표한 “캠브리지 선언”이다. 100여 명의 복음주의 지도자들이 서명한 이 선언문은 종교개혁의 원리로 잘 알려진 다섯 가지 “오직”(sola)을 강조했는데, 그것은 오직 성경(sola scriptura), 오직 그리스도(solus Christus), 오직 은혜(sola gratia), 오직 믿음만으로(sola fide), 오직 하나님께 영광(soli deo Gloria)이다. 이런 비판의 결과로 1997년에 ECT의 두 번째 문서인 “구원의 선물”이 출간될 수 있었다. 물론 이 공동 문서도 일부 복음주의자들에겐 비판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이런 비판을 비판한 복음주의자들도 있었는데 “코르넬리어스 프란팅가(Cornelius Plantinga Jr.), 존 스택하우스(John G. Stackhouse Jr.), 니콜라스 월터스토프(Nicholas Wolterstorff)”(315)가 그들이다. 세 번째 태도인 양측의 협력을 지지하는 복음주의자들로는 ECT에서 활동한 복음주의자들 외에도 남침례교 출신 신학자인 티모시 조지(Timothy George), 도덕적 문제를 위해서는 상호 협력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한 칼 헨리(Carl F. H. Henry), “크리스채너티 투데이” 편집장인 데이비드 네프(David Neff) 등이 있고, 또한 협력의 근거로는 복음주의자든 가톨릭 신자든 루이스(C. S. Lewis)가 쓴 『순전한 기독교』(Mere Christianity)를 인정하고 공유하는 현상, 양측 모두 소중히 여기는 기독교 역사의 뿌리인 교부들의 저술과 『그리스도를 본받아』와 같은 신앙고전들을 공유하는 점, 선교를 위한 구체적인 협력 사례들, 그리고 경건 훈련을 위한 상호 교류 등이 있다. 마지막으로 복음주의자가 로마 가톨릭으로 개종한 예는 수많은 목사와 선교사를 배출한 복음주의 가문 출신인 고든컬리지의 영어교수 토머스 하워드(Thomas Howard)와 네덜란드 개혁교회 출신인 보스턴컬리지의 철학교수 피터 크리프트(Peter Kreeft), 그리고 장로교 가정에서 성장한 남편 스캇 한(Scott Hahn)과 견고한 복음주의 가정에서 양육된 부인 킴벌리 한(Kimberly Hahn) 부부이고, 반대로 개종한 예는 메노나이트가 된 로욜라대학(Loyola College)의 역사신학 부교수 데니스 마틴(Dennis Martin)이다. 그리고 확성성, 역사, 통일성, 권위 등과 같은 요소들이 개신교에서 로마교로 개종한 사람들에게서 발견되는 어느 정도 공통적인 원인으로 작용했다고 놀과 나이스트롬은 지적했다.

제8장 “미국사와 가톨릭교회”는 미국에서 복음주의자와 가톨릭 신자 사이의 전통적인 적대관계가 누그러들고 오히려 우호적이고 협력적인 관계로 변화하게 된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를 정치적 관계 변화로 보고 그 변화 역사를 조명했다. 놀과 나이스트롬은 둘 사이의 결정적인 관계 변화가 20세기 중반 이후에 일어난 것으로 보았다. 그들은 그 첫 번째 변화를 “가톨릭 교회 자체 안에”(366), 즉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서 찾았고, 두 번째 변화를 “미국 법과 규정에서 개인 자유의 범위가 계속 더 확장되어, 개신교인이 한 때 그들 신앙의 정치적 표현으로 인정하고 수용했던 범위를 훨씬 뛰어 넘었다는”(367) 사실에서 찾았으며, 세 번째 변화를 “이런 새로운 상황에 대한 복음주의의 반응”(368)에서 찾았다. 이 장에 대한 놀과 나이스트롬의 의도는 다음과 같다. “가톨릭-복음주의 만남의 현장에 늘 시민 정치가 끼어들었다는 것, 첫 세기 및 미국 역사의 절반 정도 되는 시기에는 정치 문제가 복음주의자와 가톨릭 신자 간의 갈등을 부추겼던 반면, 지난 반 세기에는 정치 문제가 좀 더 우호적인 관계로 가는 길을 닦아주었다는 것이 이 장에서 우리가 보여주고자 했던 그림이다”(378).

마지막 제9장은 이 책의 제목처럼 “종교개혁은 끝났는가”를 다룬다. 이 장에서 저자들은 만일 종교개혁이 단순히 이신칭의 교리 하나만의 문제라면 이신칭의에 대해 개신교 복음주의 교회와 로마 가톨릭 교회가 이미 합의에 도달했기 때문에 종교개혁은 “끝난 것”이라고 결론 내릴 수 있겠지만 종교개혁이 칭의 교리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아직 끝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이유는 양측이 이해하는 교회의 본질이 다르기 때문이다. 즉 “복음주의와 가톨릭 세계를 지속적으로 나누는 핵심 차이는, 물론 우리가 다룬 여러 다른 주제들의 차이 안에 핵심 차이가 반영되고는 있겠지만, 성경도, 이신칭의도, 교황도, 마리아도, 성례도, 성직자 독신제도도 아니다. 핵심은 교회의 본질이 무엇이냐에 대한 이해의 차이다.”(391-2) 놀과 나이스트롬은 교회 이해에 대한 이런 근본적인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이미 역사를 통해 “네 가지 아주 독특한 유형의 기독교가 존재하고, 각 유형이 기독교 신앙과 실천을 각자가 처한 특별한 역사적 상황에 적응하며 긍정적으로 잘 발전시켰음(또는 구현했음)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한다”(399)고 보았다. 이 네 유형의 기독교란 동방정교회, 로마 가톨릭교회, 복음주의 개신교, 오순절주의이다. 이 네 유형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다음과 같다.

이 네 주요 기독교 유형 각각에서 우리는 씨 에스 루이스(C. S. Lewis)가 이름 붙인 “순전한 기독교인”(mere Christians)의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즉 이들은 성경의 영감과 권위, 삼위일체, 인간의 구원을 위한 그리스도의 사역의 중심성, 이 세상에서 거룩한 삶을 살기 위한 동력으로서의 성령의 능력에 대해 본질적으로 유사한 것을 믿는 이들이다. 그러나 동시에, 각 전통이 이 공통 요소들을 강조하는 독특한 방식이 있다.
- 정교회는 하나님의 불가사의한 신비를 강조한다.
- 가톨릭교회는 그의 도시를 세우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강조한다.
- 복음주의는 각 개인의 변화와, 그 개인들을 통한 시민 사회의 형성을 강조한다.
- 오순절주의는 성령의 직접적인 능력주심을 강조한다(402-3).

이것을 근거로 놀과 나이스트롬은 오늘날 개신교 복음주의와 로마교의 관계를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엔트족(ents)과 호빗족(hobbits)의 우호적 관계로 묘사하면서 아직까지는 각자가 사용하는 언어 차이 때문에 서로를 분명하게 이해하기가 어렵지만 대화가 불가능하지 않고 서로를 열린 자세로 수용한다면 얼마든지 서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라는 희망적인 결론에 도달한다.

가톨릭 신자와 복음주의자가 자신의 상대를 오크와 엘프(orcs and elfs)로 취급하며, 엘프 말과 오크 말로 할 수 있는 한 서로 저주를 퍼붓던 때가 바로 얼마 전이었다. 오늘날, 이들의 관계는 이제 엔트와 호빗(ents and hobbits)의 관계에 더 가깝다. 물론 이들은 아직 같은 언어를 사용하지 않으며, 분명히 상대가 말하는 것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다. 그러나 대화는 꽤 잘 이어지고, 상대 언어의 분명한 개성을 통해 실제로 배운다. 하나님은 더 큰 일을 하실 수 있다. 둘러보고, 들으라(415).

2. 평가

“종교개혁이 끝났는가?”라는 질문을 던진 놀과 나이스트롬은 이 책에서 자신들이 생각하는 대답을 직접적으로 제시하지는 않는다. 다만 개신교 복음주의와 로마가톨릭 신앙이 열린 마음으로 서로에게서 배우고자 한다면 상보관계의 개혁이 오늘날에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에큐메니컬 차원의 간접적인 대답으로 대신한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주장하는 것이다. “미국의 현 상황은 복음주의-가톨릭 상호 관계에 전례 없는 위기일 뿐 아니라 전례 없는 기회이기도 하다”(408). 이 책은 이런 주장의 근거가 무엇인지 수많은 자료들을 통해 매우 논리정연하게 잘 설명해 주고 있다.

저자들은 그 두 집단 사이가 여러 가지 사건과 계기를 통해 이전의 적대적인 관계에서 지금은 우호적인 관계로 변했지만 아직도 서로를 온전히 인정하거나 수용할 수 없는 장애물들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적시하면서 이러한 장애물들을 제거하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역설한다. 또한 한 쪽에서 다른 한 쪽을 동화시키기보다는 오히려 서로의 독특성을 인정하면서 둘 사이에 놓인 장애물들을 제거하려고 해야 한다는 것이고 이러한 제거 노력을 다름 아닌 “종교개혁”이라는 용어로 정의하고 싶어 한다. 이렇게 보면 아직 제거해야 할 장애물이 남아 있기 때문에 종교개혁은 끝나지 않았다고 결론 내릴 수 있다. 이것이 저자들의 입장이기도 하다. 그래서 복음주의자들이 아직 끝나지 않은 종교개혁을 제대로 수행해 나가기 위해서는 여전히 익숙하지 않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상대의 언어를 배우려고 노력하는 진지하고도 열린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상호 적대적인 관계였을 때의 심각한 장애물들 가운데 몇 개는 이미 허물어졌고 남아 있는 것들도 서로에게서 배우려는 태도만 지속된다면 얼마든지 허물어질 희망적인 가능성을 암시한다. 허물어진 것, 즉 서로가 합의한 내용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종교개혁의 단초였던 “이신칭의” 개념이다. 합의한 것으로만 본다면 “이신칭의” 문제는 20세기에 들어서 비로소 해결된 것이 아니라, 16세기 로마가톨릭 신학자들 종교개혁가들이 회합했던 보름스(Worms) 회의로부터 레겐스부르크(Regensburg = Ratisbon)회의에 이르기까지 1540년 전후로 이미 해결되었다. 만일 16세기 종교개혁이 칭의만의 문제였다면 그 종교개혁은 이미 이 때 끝났을 것이다.

16세기 종교개혁가들과 로마가톨릭 교도들 사이의 대화에서도 한 치의 양보 없이 서로 극렬하게 대립했던 문제, 그래서 결국 양측의 화해를 불가능하게 만들었던 주제는 역시 “교회론”이었다. 놀과 나이스트롬이 이 책에서 제시한 것처럼 20세기에도 제거되지 않은 심각한 장애물들 대부분은 교회론에 속한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어떻게 진단해야 할까? 20세기에 복음주의와 로마가톨릭이 대화를 통해 연합을 도모한 결과와 16세기 종교개혁의 결과가 비슷하다. 물론 합의 내용을 세부적으로 비교하면 16세기의 합의와는 20세기의 합의는 차이가 나는 것은 사실이고 20세기의 대화에서는 상호 적대 감정이 16세기와 그 이후에 비해 상당한 폭으로 감소했다는 것도 사실이다. 우호적인 감정을 가지고 대화에 임했음에도 불구하고 나타난 최종 결과는 16세기와 크게 다르지 않은 양상이다.

저자들은 20세기 복음주의 신앙선언문으로 간주하는 1974년의 로잔 언약(Lausanne Covenant of 1974)을 예로 들어 “교회론을 중심 주제로 삼지 않은 것이 복음주의의 특징”(392)이라고 주장하면서 교회론적 장애물이 제거될 가능성과 희망을 암시한다. 로마가톨릭은 신자 개개인의 구원 보다 구원의 기관으로서의 가시적 교회 자체를 중시하는 반면에 복음주의는 구원의 기관인 가시적 교회 보다는 신자 개개인의 구원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톨릭 신앙에서는 교회가 신자를 만든다는 것이고, 복음주의에서는 신자가 교회를 만든다는 것이다. 가톨릭 신앙에서는 개인 신자가 교회를 위해 존재하는 기능이지만, 복음주의에서는 교회가 개인을 위해 존재하는 기능이다”(394).

저자들의 주장에 의하면 개인구원을 중시하는 복음주의자들에게는 구원론이 강한 반면에 로마가톨릭의 강점인 교회론이 상대적으로 약하다. 따라서 만일 복음주의자들이 이런 점을 적시하고 인정한다면 로마가톨릭교회의 미심쩍은 교리적 약점들에도 불구하고 강점인 교회의 중요성을 로마교로부터 배울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복음주의자들이 로마가톨릭을 하나님의 교회라는 범주 밖에 있는 것으로 보고 적대시하기보다는 오히려 그 범주 속에 함께 속한 것으로 여기고 복음주의의 부족한 교회론을 보완할 수 있는 동반자로 인정하자는 것이 저자들의 소망이요 제안이다. 그렇다면 종교개혁은 아직도 복음주의자들이 로마가톨릭을 향해 강력하게 추진할 수 있고 추진해야 하는 현재진행형이라는 것이다.

교회연합이라는 주제를 다루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단순히 분열된 교회의 기나긴 역사 때문만이 아니라 그 역사 속에서 분열된 다양한 교회들 상호 간에 형성된 어지럽도록 복잡하고 미묘한 관계 때문이기도 하다. 이 책이 제시하는 것처럼 오늘날 로마가톨릭교회에 대한 복음주의자들의 적대적 태도는 많이 완화되었고 대신에 호의적인 분위기가 형성된 것만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 기류가 무엇을 만나 어떻게 변하고 어디로 흘러갈지는 미지수다. 그러한 호의적인 분위기를 근거 없이 비아냥거림으로써 일부러 찬물을 끼얹을 필요는 없지만 얼마나 교리적, 신앙적으로 건전한가 하는 점은 반드시 따져보아야 한다. 그렇다고 미리 자신이 원하는 결론을 정해 놓고 시작하는 편향된 자세는 결코 옳다고 볼 수 없다.

역사적 개혁주의를 포함할 만큼 폭넓은 미국의 복음주의가 이 책의 저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교회론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다면 복음주의가 왜 그런 약점을 가지게 되었는지 진지하게 질문할 필요가 있는데, 이 책에서는 그런 질문을 다루진 않는다. 다만 그 약점을 전제할 뿐이다. 정말 복음주의는 가시적 교회를 중시하지 않는가? 그래서 셀 수 없는 교회 분열을 경험하고도 교회론적인 반성을 하지 않는 것일까? 확실히 개신교 복음주의의 핵분열이 가시적 교회의 중요성을 약화시킨 것만은 사실이다. 깨어진 것을 다시 원상복구 하는 일은 사실상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역사가 증언한다. 복음주의가 성경적이라면 복음주의 교회는 결코 구원의 기관인 가시적 교회의 기능을 희생시켜서는 안 된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분열의 역사가 복음주의를 그렇게 만들고 말았다. 이제라도 교회의 핵분열을 안타깝게 생각한다면 교회분열을 쉽게 생각하는 버릇부터 고치는 것이 교회연합에 선행되어야 할 과제가 아닐까? 우리가 속한 교회를 하나님의 교회요, 그리스도께서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몸으로 확신하는 일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지만 ‘우리 교회만이 참 하나님의 교회!’라는 배타적 인식은 속히 청산되어야 할 위험천만한 위선과 자만의 극치다. 그것은 어쩌면 ‘내 신앙만이 참 신앙!’이라는 편협하고 왜곡된 확신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겸손한 자세로 진리 위에 우리 자신과 우리가 속한 교회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과 다른 교회도 함께 세워가기를 소망하는 것이 우리가 고백하는 사도신경의 ‘우주적인 하나의 교회’를 추구하는 자세일 것이다.

칼빈(Calvin)은 교회분열이 그리스도의 몸을 찢는 최악의 신성모독죄라고 지적한다. 이런 점에서 교회분열을 복음에 대한 선한 경쟁의 결과라고 간주하는 것은 반개혁적일뿐만 아니라, 반성경적인 기만과 위선적인 변명에 불과하다. 하나뿐인 우주적 교회, 즉 그리스도의 몸과 상관없는 지체는 존재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몸인 가시적 교회가 얼마나 중요한가! 그 교회는 하나님께서 이 땅에 구원을 베푸시는 유일무이한 구원의 기관이다.

우리와 우리가 속한 교회들과 교단들이 이 중요한 사실을 결코 약화시키거나 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 책은 복음주의를 자처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바로 이와 같은 점을 각인시키기에 충분한 자료들로 가득한다. 이 책은 복음주의자들의 약점, 즉 로마가톨릭교회로부터 배워야 할 것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보여준다. 이것이야말로 복음주의자들이 자기 자신들뿐만 아니라 로마가톨릭교회를 위해서도 고군분투해야 할 종교개혁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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