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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설교는 세월호 참사 관련, 2014년 5월 11일 명덕교회에서 행한 설교입니다. - 편집자


장희종 목사
대구 명덕교회 담임목사
개혁정론 자문위원

본문: 마 19:16-22

한 부자 청년이 예수께 달려와서 영생에 대해서 질문을 했습니다.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그런데 영생의 의미는 단순한 것이 아닙니다. 문자대로 하면 영생은 영원한 생명입니다. 그러나 실제적인 의미에서의 영생이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것을 영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위로 자기를 지으신 하나님을 바로 알고 경외하면서 섬기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사람을 바로 알고, 이해하고, 사랑하고, 도우며, 자기 선 자리에서 특수한 사명을 느끼면서 충성하는 삶을 영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현실적인 문제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이 내세적인 생명만을 가르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사람의 죽음 이후의 생명 문제를 분명히 비중 있게 가르칩니다. 그러나 오늘 이 세상에서의 삶을 아무렇게나 살라고 결코 말하지 않습니다. 미래의 영원한 삶을 소망하는 자는 오늘의 이 세상의 삶을 성실하게 바르게 살아야 한다고 교회는 가르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영생에 관해서 질문한 청년에게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고 대답해 주셨습니다. 그 청년이 어느 계명을 지켜야 하느냐고 다시 물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 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고 대답해 주셨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점은 영생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입니다. 예수님은 영생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 인간관계의 문제로 대답하신 것입니다. 영생과 인간관계의 문제가 따로 분리된 별개의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국의 그리스도인은 영생과 인간관계를 마치 별개인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1) 우리 한국 그리스도인의 신앙형성 과정을 먼저 살펴보고,
2) 영생의 신앙이란 무엇인가,
3) 인간관계의 모델로서 부모 자녀관계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4) 그리고 본문으로 돌아가서 영생에 대한 주님의 교훈을 다시 살펴보려고 합니다. 

한국 그리스도인들의 신앙 형성 과정

먼저 우리 한국 그리스도인들의 신앙 형성 과정을 한번 되돌아봅시다. 초기 선교사들의 신앙성향은 균형 잡힌 기독교의 진리를 강조했습니다. 1890년대의 세례 받을 때 소리 내어 고백하던 그 내용을 보면,

1) 지존자 하나님은 신령들을 영화롭게 하고 제사하는 것을 미워하시므로 조상의 영혼에 제사 드리는 습관을 따르지 말고 오직 하나님 한 분 만을 경배하고 그를 따르라.
2) 주일은 안식의 날이요, 하나님께서 지정한 성일이니 이 날에 사람이나 가축을 막론하고 일하지 말되 일용품의 구입도 하지 말고, 절대적으로 필요한 일밖에는 아무 일도 하지 아니하여야 한다. 엿새 동안에 부지런히 일하고 주일만은 엄중하게 지켜야 한다.
3) 부모를 효도로 받들라하심은 하나님의 명령이니 부모 생존 시에 지성으로 효도하고 전력을 다하여 부모에게 효도하되 하나님의 명령으로 알고 행하여야 한다.
4) 하나님께서 한 남자에게 한 여자를 정하여 주셨으니 피차에 버리지 못할 것이며, 여자는 아내만 되고 첩이 되지 못할 것이요, 남자는 한 아내의 남편만 되고 축첩 파륜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5) 거룩한 도를 신봉함은 제일차적인 임무니 신자마다 식구들을 시켜서 찬송과 기도를 하게 하며 또한 일심으로 주를 의지하고 순종하게 하여야 한다.
6)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일하라고 명령하셨으니 누구든지 일하지 아니하면서 먹고 입어서는 안 된다. 게으르지 말고, 거짓말하지 말고, 탐내지 말고, 도둑질하지 말고 힘을 다하여 올바르게 살고, 힘써 일하여 너와 네 식구를 살려야한다.
7) 성경은 음주와 도박을 금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말다툼과 싸움과 살인과 상해의 장본인이 되니 그러한 행동을 금한다. 또한 아편은 만들거나 먹지나 팔지도 말고, 집에 도박장을 벌리지 말고, 남의 행위를 타락시키지 말아야 한다.
(백낙준, 한국개신교사, 236쪽)

이상의 내용을 다시 요약해보면 인간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목적이 무엇인지 명쾌하게 가르쳐준 것입니다. 오직 한 분 하나님만을 섬길 것을 가르쳐 준 것입니다. 부모 효도의 실제적인 방법과 가정과 부부의 존엄성을 성경적으로 가르쳐 준 것입니다. 그리고 당시 사회의 병폐인 음주, 도박, 마약 등을 엄격히 금지시키면서 사회정의의 문제를 가르쳐준 것입니다. 

그런데 해방이 되고 민족 전쟁 직후 50-60년대는 교회의 신앙이 내세 지향적으로 흐르게 되었습니다. 사상 유례가 없는 민족적 참화를 경험한 한국 교회는 내세적이고, 현실 부정적이면서도 경험적이고 감각적인 성향으로 흐르게 되었습니다. 이때 박태선 장로의 감람나무교회(한국 예수교 전도관 부흥협회)는 불길처럼 확대되어 갔습니다. 문선명의 세계통일 신령협회(통일교)도 이때에 퍼져 나갔습니다. 나운몽 장로의 용문산 기도원을 대표로 기도원이 우후죽순처럼 번져갔습니다. 이들은 지금 한국교회 이단들의 원조들입니다. 이때에 몰몬교를 비롯해서 외국으로부터 새로운 교파들이 비집고 들어옵니다. 그래서 한국교회는 그 신학적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혼란에 빠져든 것입니다. 신학이 부재한 한국교회는 내세적이고 현실 부정적이며 감각적인 성향으로 기울어지게 됩니다. 이 기간 한국 교회는 신학적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혼란에 빠져든 시대입니다.

그러다가 70년대 들어오면서 교회의 신앙은 현세 번영주의로 선회하게 되었습니다. 정부의 새마을 운동과 호흡을 하면서 우리도 잘 살아보자, 우리도 잘 살 수 있다는 신념과 맞물려 3박자 신앙이 나오고 일만 교회 운동이 일어나고 정초가 되면 축복 대성회를 알리는 현수막이 교회마다 골목마다 걸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신앙 성향은 이 나라 대다수 그리스도인들의 의식 속에 자리잡게 된 것입니다.

내세 지향적 천당신앙과 현세 지향적 번영신앙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윤리와 정의가 없는 인간 자기중심적인 신앙입니다. 이웃에 대한 책임의식이 없는 신앙입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하는 우주적 하나님 개념이 실종되고 나에게 복을 주시는 나의 아버지라고 하는 이기적이고 독단적인 하나님 개념으로 바뀌어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나라 그리스도인들은 사회적 책임이나 윤리적 책임이 없는 신앙성향을 띠게 되었습니다. 더불어 사는 정의 의식은 실종되어 버린 것입니다. 아예 그런 것은 별개의 것으로 생각하게 되어버린 것입니다. 신앙이 좋으면 그런 것은 저절로 되는 것으로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영생의 신앙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영생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봐야 합니다.

영생의 신앙

그러면 진정한 영생의 신앙이란 무엇인가? 영생은 하나님 나라와의 관계 문제요, 나와 이웃과의 관계문제입니다. 영생은 죽고 난 다음에 저 세상에 가서야 누리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이 세상의 구체적인 삶 속에서 누려야 하는 삶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또 영생은 무엇을 알고 있느냐 하는 지식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지금 하나님과 이웃에게 어떤 관계를 맺고 어떻게 행동하고 있느냐 하는 실제적인 삶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영생을 소유한 그리스도인들은 불안한 세상에 있는 사람들에게 평화가 무엇인지를 삶으로 보여주어야 합니다. 미움과 질투로 가득 한 세상에 어떻게 사랑과 협조를 할 수 있는지를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합니다. 절망적이고 암담한 현실에서 빛과 희망을 삶의 증거로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불신과 부정이 가득한 이 세상에서 양심적으로 바르게 산다는 것이 무엇이며, 그러한 삶이 주는 안식과 기쁨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절망적인 죽음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평화와 여유로 소망을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세월호에 갇혀 죽음을 바라보면서 김시연 양이 “우리 반 아이들 잘 있겠죠? 선상에 있는 애들이 무척이나 걱정됩니다. 진심입니다. 부디 한명도 빠짐없이 안전하게 갔다 올 수 있도록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이라고 기도한 음성이 담긴 스마트폰이 인양되어 9일 9시 뉴스(JTBC)를 통해서 방영됐습니다. 참으로 절박하고 절망적인 순간에 다른 친구들의 비명소리를 들으면서도 지극히 평온한 음성으로 기도한 것입니다. 어떻게 그런 순간에 그런 평온한 마음을 가질 수 있을까요? 그것은 죽음을 이기신 부활의 주님이 그와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약속하였습니다.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히13:5).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28:20). 이 약속은 땅위의 평화로운 삶에서 뿐 아니라 죽음을 바라보는 절박한 순간에도 함께 해 주신다는 약속입니다. 그 약속대로 주님은 김시연 양의 죽음의 순간에도 함께 해주셨습니다.

영생을 소유한 자는 자기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남의 인권과 생명을 개의치 않는 이 세상에서 다른 사람의 생명을 아끼고 위하는 자로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영생을 소유한 사람의 아름다운 인간관계입니다. 아름다운 인간관계를 한마디로 설명해 본다고 하면 언제나 사랑하고 아껴 주며, 돕고 세워주는 그런 관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아름다운 인간관계는 언제나 함께 있어 주기를 바라는 관계입니다. 아름다운 관계는 서로 경계하며 피하는 관계가 아닙니다. 서로 마음을 닫고 만나야 하는 피곤한 관계가 아닙니다. 서로 더 가까이 가고 싶고, 서로 더 얘기하고 싶고, 더 사랑하고 싶은 관계입니다. 서로 떠나 있으면 외로움과 고통을 느끼는 관계, 그것이 아름다운 관계입니다.

성도들이여! 이런 아름다운 관계의 모델을 어디서 찾을 수 있는가? 그것은 부모와 자식의 관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관계는 살과 피로 맺어진 관계이기에 이웃과의 관계와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그래서 이웃과의 관계를 부모 자식처럼 가지라고 하는 것은 무리한 요구일 것입니다. 다만 이 아름다운 인간관계를 하나의 모델로 말할 수는 있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인간관계의 모델

인간관계의 모델로서 부모 자식의 관계를 생각해 봅시다. 우리의 어버이에게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인간관계가 무엇일까? 첫째로 부모 자식관계는 비난하고 헐뜯는 관계가 아니라 자랑하며 칭찬하는 관계입니다. 부모는 자식의 결점이나 못난 점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않습니다. 또 자식이 자기 부모의 결점과 약점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않습니다. 부모 자식 관계는 서로의 흉허물을 말하고 다니지 않습니다. 서로 덮어 주고 서로 약점을 잊어버리는 관계입니다. 자기의 부모의 흉허물을 말하고 다니는 자식이 있다면 사람들은 그를 못난 자식이라고 멸시하게 되는 것입니다. 부모와 자식은 진실로 서로 자랑하고, 좋아하고, 칭찬하는 관계입니다. 어느 부모라도 자기자식의 장하고 훌륭한 점을 말하고 자랑하고 싶어합니다. 어느 자식치고 자기 부모 자랑하지 않는 자식이 없습니다. 자기 부모 자랑하는 자식의 소리, 자기 자식 자랑하는 부모의 소리를 우리는 아름답게 들어줍니다. 못나고 잘못해도 잘나고 잘했다고 하는 소리를 들을 때 사람들은 비난하지 않습니다. 지나친 자랑을 허물로 보지 않습니다. 그냥 들어주고, 봐주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인간관계는 바로 이런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흉허물을 말하지 않는 관계입니다. 다른 사람의 좋은 점을 말해주는 관계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메시지는 부모가 자식에 대하여 가지는 그 아름다운 마음씨를 인간관계의 표준으로 삼으라는 것입니다. 그 마음씨를 우리 각자의 것으로 하여 우리들의 인간관계에 적용해 보라는 것입니다. 어버이의 마음으로 그의 허물을 가려주고, 어버이의 정신으로 그와의 관계를 계속하고 사랑해 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런 아름다운 관계의 모델을 우리의 인간관계에서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까요? 내 입으로는 형제자매에 대해서 다른 사람에게 비난이나 비판의 말을 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좋은 점은 찾아서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알려주고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말자는 것입니다. 이것이 어버이 주일에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메시지입니다.

둘째로 부모 자식 관계는 이기적으로 이용하는 관계가 아니라 돕고 희생하는 관계입니다. 어버이는 어떤 경우에서든지 그 자식을 돕고자 하는 마음을 본능적으로 가진 자입니다. 우리는 어느 시대 어느 부모 치고 자식 돕는 일에 인색했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합니다. 물론 비정상적인 예는 있지만 정상적인 부모 치고 자식을 돕는 일에 인색하지 않습니다. 어머니의 모성은 자식을 돕는 것으로 드러납니다. 자식의 성공과 출세를 위해서 최대의 성의를 다하는 자가 있다면 그는 어머니입니다. 우리 인간 사회에 이런 어머니 정신이 스며들 수만 있다면 우리의 인간관계는 불행이 없을 것입니다.

사람의 윤리나 도덕의 표준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그가 얼마나 다른 사람을 협조하느냐 그가 얼마나 다른 사람이 잘되기 위해서 진심으로 생각하고 애쓰느냐 거기에 윤리의 척도가 있고 도덕의 수준이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 있어서 인색할 때 그는 윤리, 도덕도 없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메시지가 무엇입니까? 어버이의 정신으로 그와의 관계를 계속하고 사랑해 보라는 것입니다. 어버이의 마음으로 그의 허물을 가려줄 뿐 아니라 그를 도와주라는 것입니다. 그가 하나님 앞과 사람 앞에 잘되기를 위해 진심으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우리의 인간관계는 신선하고 따뜻하게 될 것이며 새로운 의욕과 희망이 있고 사랑과 신뢰가 있는 살맛나는 사회가 될 것입니다.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이제 오늘 본문으로 들어가서 정리하겠습니다.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라는 질문에 예수님의 답변은 분명했습니다.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켜라.” 청년은 어느 계명을 지켜야 하는지를 다시 묻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구체적으로 계명들을 나열해 주셨습니다.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 증거 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이러한 계명들은 모두가 올바른 인간관계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남의 생명을 존중이 여기고 살해하지 않는 것입니다. 남의 가정과 인격을 존중히 여겨서 욕정으로 침범하지 않는 것은 것입니다. 자기 자식, 자기 소유가 귀하면 남의 자식, 남의 소유도 귀한 줄 알아야 합니다. 부모를 공경해야 하고 이웃을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라고 구체적으로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 계명들은 우리 사회를 아름답게 하는 인간관계에 대한 계명입니다. 영생의 길을 묻는 질문에 예수님은 인간관계의 계명으로 대답해 주셨습니다. 누구든지 이런 인간관계에서 실패하고 있다면 그에게 영생은 아직 거리가 멀다는 뜻입니다.

영생을 질문한 이 청년은 이런 계명을 다 지켰다고 자신 있게 대답합니다. “그 청년이 이르되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온데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20절). 아주 당당하게 예수님에게 다시 묻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 청년에게 계명을 지킨다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설명해 주신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마19:21). 하나님의 계명은 실천을 요구합니다. 머릿속으로 깨닫는 것이 계명을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계명의 말씀을 이해하는 것이 계명을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구체적으로 삶의 현장에서 실천하는 것이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 청년은 실천을 요구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예수님에게서 떠나갔습니다. 그 청년은 영생을 포기하고 떠나가 버립니다.

그러고 보니 이 청년은 계명을 지켰다고 했으나 잘못 지킨 것입니다. 이 청년은 계명을 지키되 종교적인 형식으로, 자기 표준으로 지킨 것입니다. 자기 세계에서, 자기중심으로, 자기를 위해서 계명을 지킨 것입니다. 그는 계명을 주신 하나님의 정신으로 그의 삶 속에서 구체적으로 지킨 것이 아닙니다. 가난한 자를 돌봐야 하는 것은 가진 자들의 의무인 것입니다. 연로하신 부모님을 돌보는 것은 자식들의 의무입니다. 여러분에게 물질을 주신 것은 여러분이 해야 할 의무를 감당하도록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그 점을 그 청년에게 지적해준 것입니다. 그런데 그 청년은 실천적인 의무를 요구하는 예수님의 말씀을 거부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영생을 등지고 떠나 가버린 것입니다.
 
성도들이여! 오늘 우리 시대의 문제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인간관계를 아름답게 꾸며 보려고 하는 마음의 의지가 메말라 버린데 있습니다. 또 아름다운 인간관계를 이루는데 마땅히 투자되어야 하고, 희생되어져야 할 것들을 내어놓지 못한데 있다고 감히 말씀드립니다. 이제 우리 모두는 우리 시대 하나님 나라 건설을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몫을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 말없이 먼저 내게 있는 것을 내어놓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각자가 할 수 있는 희생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영생을 묻는 사람에게 주신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영생의 주이신, 예수님의 말씀을 외면하면 영생과는 상관없는 자입니다.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말씀을 맺겠습니다. 영생을 묻는 청년에게 예수님은 인간관계의 계명으로 대답해 주셨습니다. 그 계명을 지켰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그 청년에게 예수님은 계명을 지킨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다시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계명을 마음으로만 지키는 것은 부족합니다. 하나님의 계명에 온전하고자 한다면 삶의 현장에서 실천적으로 지켜야 합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마19:21).

오늘 하나님이 우리 모두에게 주신 우리들의 어버이 정신으로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어버이 정신을 우리 마음에 아름다운 인간관계의 모델로 간직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남의 약점과 허물을 선전하며 비난하지 않는 마음, 남을 돕고 협조하며, 진심으로 잘되기를 바라는 어버이 정신을 우리 마음에 가득 품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뿐 아니라 그 어버이 정신을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실천적으로 행동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이 땅에서도 하늘나라를 맛보게 될 것입니다. 그런 자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모두에게 어버이를 주신 하나님의 큰 뜻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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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는 역사의 잘못을 통해서...
기고
직분자 임직식에서 성도의 역할
죽음을 어떻게 맞을까를 잠시 생각하며
제73회 총회가 남긴 몇 가지 과제
전임목사는 시찰위원으로 선정될 수...
고신교회와 고재수 교수; 우리가 왜...
왜 고재수는 네덜란드에서 고려신학...
제73회 총회를 스케치하다
신학생 보내기 운동에 대한 진지한 ...
명예 직분 허용이 가져다 줄 위험한...
[고신 70주년에 즈음하여 9] 고신교...
논문
송상석 목사에 대한 교회사적 평가 ...
송상석 목사와 고신 교단 (나삼진 ...
송상석 목사의 목회와 설교 (신재철...
네덜란드 개혁교회 예식서에 있어서...
제7차 헌법개정초안(2022년 6월) 분...
제7차 헌법개정초안(2022년 6월) 분...
제7차 헌법개정초안 예배지침 부분...
제7차 헌법개정초안(2022년 6월) 분...
SFC 강령의 “전통적 웨스트민스터 ...
지역교회의 적정 규모(規模 size)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