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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경 목사
온생명교회 담임목사

(본 설교는 금년 4월 13일에 온생명교회에서 수행되었습니다 - 편집자 주)

우리가 사는 삶에 있어서 먹는 것이 참 중요합니다. 건강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 것 중에 하나도 잘 먹는 것입니다. 잘 먹기만 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현대인들은 다들 건강한 삶을 살 수 있을 듯합니다. 아직까지도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지만 우리는 대부분 잘 먹습니다. 영양실조보다는 비만을 걱정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다른 한편에서 보면 풍요 속의 빈곤이라는 말처럼 우리가 얼마나 실속 없이 부실하게 사는지 모릅니다. 먹거리가 엉망이 되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기나 토지오염이 심해서 먹거리를 믿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제가 어제까지 남서울노회 사절로 일본 개혁파 동부중회를 방문하고 왔는데 갈 때는 참 걱정이 많았습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먹을 것에 대한 걱정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막상 가고 나서는 그것을 까마득하게 잊고 그냥 막 먹었습니다. 너무 잘 먹었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먹거리를 염려하면서도 아무 생각 없이 막 먹습니다.

우리는 오늘 시편에서 바로 이 밥상 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 시인은 악인이 자신에게 던져준 못 먹을 밥상과 잔을 악인들이 도로 받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오늘 시편에는 밥상을 위한 기도가 나오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시편 1편식으로 말하자면 의인과 악인의 먹거리가 무엇인지, 그래서 결국 그들의 거처가 어떻게 될 것인지 노래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의인과 악인의 먹거리와 밥상을 세고 계신다’는 주제로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먼저 의인이 받은 밥상에 관해 살펴보고, 다음으로 악인이 받을 밥상에 관해 살펴 보겠습니다. 그리고 이 밥상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어떤 관련이 있는 것인지 살펴 보겠습니다. 

1. 의인이 받은 밥상 

19절, 20절 말씀을 보면 시인은 자신이 지속적으로 대적들의 비방거리, 조롱거리가 되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나의 비방과 수치와 능욕을 아시나이다. 나의 대적자들이 다 주님 앞에 있나이다. 비방이 나의 마음을 상하게 하여 근심이 충만하니 불쌍히 여길 자를 바라나 없고 긍휼히 여길 자를 바라나 찾지 못하였나이다.” 시인은 자신이 당하는 비방, 수치, 능욕을 하나님 앞에 아뢰고 있습니다. 대적들의 비방으로 인해 그의 마음이 상하고, 근심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런 자신의 처지를 불쌍하게 생각해서 도울 자가 있는지 보아도 그런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시인은 ‘하나님께서 보고 계시지 않습니까?’ 라고 아뢰고 있습니다. 지금 자신이 하나님 앞에 서 있는데 자기를 비방하고 수치를 안겨주고 능욕을 퍼붓는 대적들도 하나님 앞에 서 있다는 것입니다. 시인의 대적들은 하나님을 무시하고 시인을 공격합니다. 마치 하나님이 없는 듯 자신들이 주인노릇 합니다. 시인은 그런 이들조차도 하나님 앞에 있다고 말합니다. 시인은 악인들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도 그들의 한계를 알고 있습니다. 자신이 악인들의 비난과 조롱과 능욕을 피할 수 없듯이, 자기를 대적하는 이들이 하나님을 피할 수 없습니다.

이제 시인은 대적이 자기에게 행한 구체적인 능욕거리를 발설하고 있습니다. 21절입니다. “그들이 쓸개를 나의 음식물로 주며 목마를 때에는 초를 마시게 하였사오니.” 대적들이 먹을 것을 가지고 장난쳤다는 것입니다. 예전에 선정적인 표현이었지만 쓰레기 만두라는 표현도 있었고, 농약콩나물이라는 표현도 있었습니다. 중국 사람들이 먹을 것을 가지고 장난을 많이 친다고 하는데요. 분유에 먹지 못할 것을 넣기도 하고요. 이 21절이 바로 이런 상황입니다. 너무나 배가 고파서 먹을 것을 좀 달라고 하니까 쓸개를 섞은 음식을 던져 줍니다. 주부들은 잘 아시겠지만 생선을 손질하다가 쓸개를 건드려서 터트리면 그 생선을 먹기가 고약하지 않습니까? 쓸개는 조심 조심해서 다루어 잘 제거해야 합니다. 이렇게 악인들이 의인을 향해 못 먹을 것을 주고 있습니다. 쓸개를 교묘히 음식 밑에 숨겨서 그럴듯한 음식처럼 포장해서 먹어 보라고 던져줍니다. 

또한 목이 말라서 물 좀 달라고 했더니 도무지 마실 수 없는 식초를 줍니다. 한번 마셔보라고요. 이때도 줄 때는 식초라고 하지 않고 주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멋모르고 벌컥 들이켰더니 목이 타 들어가는 듯하니까 퉤 하고 뱉을 수밖에 없습니다. 대적들은 그것을 보고는 재미있는 구경거리라고 생각하면서 깔깔거립니다. 시인은 원수들에게 둘러싸여 쓸개와 식초를 먹고 마셔야 했습니다. 시인은 도무지 먹지 못할 것, 마시지 못할 것을 먹고 마셔야 했습니다. 거지에게도 던져주지 않는 음식을 먹고 마셔야 했습니다. 음식이 될 수 없는 것을 먹고 마셔야 했습니다.

쓸개와 식초 이야기를 들으면 어떤 사건이 연상됩니까? 이번 주간이 고난주간인데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당하신 조롱과 수치가 연상되지 않습니까? 마태복음에 보면 누가 그랬는지는 모르겠는데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시기 직전에 쓸개 탄 포도주를 예수님께 마시게 하려 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27장 34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골고다 즉 해골의 곳이라는 곳에 이르러 쓸개 탄 포도주를 예수께 주어 마시게 하려 하였더니 예수께서 맛보시고 마시고자 하니 아니하시더라. 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후에 그 옷을 제비 뽑아 나누고 거기 앉아 지키더라.” 예수님이 쓸개 탄 포도주를 맛보고는 마시려고 하지 않으셨다고 합니다. 왜 그것을 마시려고 하지 않으셨을까요? 너무 쓰니까 마실 수 없었던 것일까요? 도무지 마시지 못할 것을 갖다 드렸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사실 그 쓸개 탄 포도주는 십자가에 못 박히는 죄인을 위해 마지막으로 해 주는 배려였습니다. 

쓸개 탄 포도주는 마취제였습니다. 당시에는 쓸개 탄 포도주를 마취제로 사용했습니다. 십자가의 고통이 너무 극심하니까 그 고통을 조금이나마 잊으라고 쓸개 탄 포도주를 마시게 했습니다. 이것을 아셨을 예수님이 그 쓸개 탄 포도주를 마시지 않으십니다. 왜요? 마취상태에서 십자가 지기를 원치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오기일까요? 온 몸이 구석구석 모든 고통을 다 느껴보겠다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육체적인 고통이 문제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육체도 육체려니와 그의 정신이 온전한 상태에서 모든 비난과 조롱과 능욕을 받고자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지시는 십자가가 인생의 죄를 짊어지는 것임을 아셨기에 의식이 혼미한 상태에서 십자가를 지기를 원치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온 몸과 마음과 영혼으로 온전히 고통받고자 하셨습니다. 그래서 쓸개 탄 포도주를 거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리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매달려 돌아가시기 직전에 ‘내가 목마르다’라고 외치셨습니다. 예수님이 목마르다고 하신 것은 예수님의 몸에서 물과 피가 다 쏟아져 나갔기 때문일 것입니다. 예수님은 못 박힌 손과 옆구리와 발에서 모든 물과 피가 다 빠져나갔을 것입니다. 여름 가뭄에 식물이 바짝바짝 타 들어가고, 논밭이 쩍쩍 갈라지듯이 예수님의 온 몸이 다 타 들어가고 갈라졌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겨우 목을 열어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외치셨을 것입니다. 내가 목마르다고요. 그런데 요한복음 19장 28절 말씀에 보면 예수님이 이렇게 외치신 이유는 바로 이 시편 69편 21절 말씀을 성취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 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루어진 줄 아시고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하사 이르시되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십자가 아래에 있던 군인들이 예수님께 신 포도주를 갖다 줍니다. 그 신 포도주는 질이 낮은 포도주인데 십자가 작업을 하던 이들과 십자가를 지키던 군인들이 목을 축이던 포도주였을 것입니다. 그 포도주를 예수님께 마시라고 내어 밉니다. 이게 예수님을 배려한 것일까요? 아닙니다. 조롱한 것입니다. 자신들이 주는 포도주를 마셔보고 힘을 내어서 자기를 구원해 보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강도나 반역자 취급을 했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어야 할 흉악범, 강력범 취급을 했습니다. 예수님은 도무지 먹을 수 없고 마실 수 없는 밥상을 받으셨습니다. 쓸개 탄 포도주도 그렇고, 이번의 신 포도주도 그렇고 둘 다 실은 조롱의 밥상, 조롱의 포도주였습니다. 예수님은 의도적으로 목마르다고 외치셨습니다. 예수님은 조롱의 포도주를 가져오라고 하십니다. 내가 그 모든 조롱을 다 마시겠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이렇듯 온갖 조롱과 멸시의 밥상과 잔을 받으셨습니다.

2. 악인이 받을 밥상

이제 악인의 밥상에서 벌어질 일을 살펴보겠습니다. 시인은 자신을 공격하고 자신에게 도무지 먹지 못할 것을 입에 물려준 악인들에게 악담을 퍼붓습니다. 22절부터 28절까지 길게 이어갑니다. 악인들의 악을 보응해 달라고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분노를 그 악인들에게 쏟아 부어 주십사 기도합니다. 시편에 저주하는 시편이 여럿 되고, 너무나 잔인한 보응을 요구하는 것들도 있습니다. 왜 이렇게 잔인한 보응을 요구합니까? 눈에는 눈, 이에는 이입니까? 그렇습니다. 악인들이 그만큼 잔인했기 때문입니다. 심판과 신원은 함께 갑니다. 시인은 강력하게 악인들을 심판하사 의인들을 신원해 달라고 간구합니다. 악인들의 악행이 과격한만큼 의인의 간구도 과격해집니다.

우선 시인은 악인들의 밥상이 올무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시인은 자신에게 쓸개와 식초를 먹고 마시라고 준 악인들이 먹고 마시고 즐기는 밥상을 저주합니다. 악인들은 의인의 소유를 빼앗아 자신들의 밥상을 온갖 산해진미로 가득 채웠을 것입니다. 그들은 호의호식하며 날마다 잔치를 벌였을 것입니다. 시인은 피로 가득한 그 밥상이 덫이 되게 해 달라고 합니다. 시인은 의인을 넘어뜨렸다고 자축하는 악인들의 그 잔칫상이 짐승이 걸려드는 덫처럼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다니엘서에 등장하는 바벨론 왕 벨사상의 연회를 여기서 머릿속에 떠올릴 수 있습니다. 그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빼앗아 온 성전그릇들로 연회를 베풀며 하나님을 조롱하면서 온갖 우상을 찬양합니다. 그날 밤에 그는 살해당하고 그의 나라는 멸망합니다. 

시인은 악인들의 몸도 겨냥합니다. 악인들의 몸을 대표하여 그들의 눈과 허리를 겨냥합니다. “그들의 눈이 어두워 보지 못하게 하시며, 그들의 허리가 항상 떨리게 하소서.” 시인은 자신이 눈이 침침할 정도로 하나님을 찾았는데 이제 자신을 노리는 악인들의 눈이 마냥 감기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시인은 큰 수렁에 빠져 발 디딜 곳이 없어 허우적거렸는데 악인들의 허리가 그처럼 덜덜 떨리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철저합니다. 정말 눈에는 눈, 이에는 이입니다.

시인은 악인의 장막도 고발합니다. “그들의 거처가 황폐하게 하시며 그들의 장막에 사는 자가 없게 하소서.” 악인의 거처와 장막은 궁궐 같았을 것입니다. 그들의 거처와 장막은 물샐 틈이 없었을 것입니다. 누구도 자기 장막을 넘보지 못하도록 잘 방비했을 것입니다. 이에 시인은 악인의 거처와 장막이 무너져 내려앉게 해 달라고 간구합니다. 악인의 거처와 장막이 황폐하게 해 달라는 것은 그들의 사업이 망하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악인들의 자손이 끊어지게 해 달라는 기도일 것입니다. 이 기도는 의인들의 대가 끊어지는 것이 아니라 악인들의 대가 끊어진다는 믿음이 있기에 나오는 기도입니다. 악인의 씨가 없어질 것입니다.  

시인은 그 악인들이 저지른 죄를 죄라고 정확하게 지적하여 주실 것을 구합니다. 27절을 보십시오. 시인이 ‘그들의 죄악에 죄악을 더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죄를 간과하지 않으시고 악인들의 죄를 꼼꼼히 따져주시라는 요구입니다. 마지막으로 시인은 악인들의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워달라고 기도합니다. 그 악인들이 의인들과 더불어 생명책에 기록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 요구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이름이 기록된 책에서 악인들을 제거해 달라는 요구라기보다는 의인들의 목숨을 노리는 악인들의 생명을 앗아가 달라는 절박한 요구일 것입니다. 하나님이 친히 개입하셔서 의인들의 목숨을 노리는 악인들의 목숨을 앗아가 주지 않으시면 의인이 죽게 되겠기 때문입니다.

시인이 간구하는 이 모든 보응이 누구에게 임했을까요? 실제로 그 보응이 임하기는 했을까요? 우리는 조롱과 능욕을 당한 그 모든 실상이 예수님에게 적용이 되었고, 또한 보응을 구하는 기도가 속속들이 그리스도를 대적한 자들에게 적용이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먼저는 예수님을 판 가룟 유다의 비참한 말로가 악인이 되돌려 받은 밥상과 덫의 적용입니다. 사도행전 1장에 보면 베드로가 갑자기 나서서 가룟 유다에 관해 말합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제자들이 성령님이 오실 것을 기다리면서 간절히 기도하던 중이었는데 말입니다. “형제들아, 성령이 다윗의 입을 통하여 예수 잡는 자들의 길잡이가 된 유다를 가리켜 미리 말씀하신 성경이 응하였으니 마땅하도다. 이 사람은 본래 우리 수 가운데 참여하여 이 직분의 한 부분을 맡았던 자라. 이 사람이 불의의 삯으로 밭을 사고 후에 몸이 곤두박질하여 배가 터져 창자가 다 흘러나온지라.” 베드로는 성령께서 다윗의 입을 빌어서 오늘 시편을 말씀하셨다고 말합니다. 예수님 잡는 자들의 길잡이가 된 가룟 유다가 맞을 비참한 결말에 관해서 미리 예언하셨다고 말합니다. 

가룟 유다만큼 안타까운 경우가 있을까요? 구약의 사울왕의 경우처럼 말입니다. 가룟 유다는 다른 제자들과 같이 예수님을 따라다녔지만 그는 결국에는 예수님을 팔아넘깁니다. 가룟 유다가 왜 예수님을 팔아 넘겼을까요? 성경은 예수님이 그에게 돈 주머니를 맡겼다고 하는데 그가 그 돈을 훔쳤다고 합니다. 이런 돈에 대한 욕심 때문에 예수님마저 팔았을까요? 어떤 이들은 가룟 유다가 열심당원이었기 때문에 예수님이 로마를 대항하여 무력충돌을 일으키지 않는 것에 실망하여 예수님을 팔아 넘겼다고 합니다. 문제는 예수님을 판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회개하지 않았다는 것에 있습니다. 베드로는 회개했지만 가룟 유다는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가룟 유다는 자신의 행동을 깊이 후회하기는 했지만 회개하지는 못했습니다. 통곡이 회개가 아닙니다. 후회가 회개가 아닙니다. 결국 베드로의 말대로 가룟 유다의 거처는 황폐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산 자의 땅에서 끊어졌습니다. 그의 이름이 생명책에서 제거되었습니다.

사도 바울도 오늘 시편의 보응기도를 인용합니다. 로마서 11장 9, 10절 말씀에 보면 사도 바울이 악인이 받게 될 보응을 그대로 인용합니다. 바울은 믿지 않는 유대인들에게 오늘 시편의 보응이 그대로 임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말씀에 근거하여 기독교인들이 유대교인들을 그렇게 핍박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바울은 자기 동족 유대인들의 강퍅함을 통렬하게 지적합니다. 바울은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난 다음에 벌인 자축의 밥상이 그들을 죽음의 길로 접어들게 한 덫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이제 유대 종교지도자들의 거처와 가문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악인들에게 진노가 임하게 해 달라는 것은 사사로운 복수와 앙갚음의 요구가 아니라 마지막 날에 임할 하나님의 진노를 가리킵니다. 악인들에게 보응해 달라는 것은 하나님 나라를 대적한 이들이 당연히 받게 될 보응을 가리킵니다. 우리가 성경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 16장에 보면 일곱 대접 재앙이 이 땅에 쏟아지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대접이 하나씩 쏟아질 때마다 온갖 종류의 재난이 일어납니다. 대접은 땅에, 바다에, 강에, 해에, 짐승의 보좌에, 큰 강 유브라데에, 공기 가운데 쏟아집니다. 바다와 강에 대접이 쏟아지니 그 모든 물들이 피로 변합니다. 그때 물을 차지한 천사가 하는 말이 있습니다. “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신 거룩하신 이여, 이렇게 심판하시니 의로우시도다. 그들이 성도들과 선지자들의 피를 흘렸으므로 그들에게 피를 마시게 하신 것이 합당하니이다.” 하나님은 공의로운 분입니다. 하나님은 행한 대로 갚으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악행을 갚으시는 분입니다. 피에는 피로 갚으십니다.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를 믿지 않는 자는 자신의 피를 씻을 길이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의 시인은 먹지 못할 밥상을 받았습니다. 지금 일본 사람들이 그렇게 먹지 못할 밥상을 받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상황이 나을까요? 우리도 조금 늦다 뿐이지 동일한 밥상을 받을지 모를 일입니다. 오늘 본문은 단순히 밥상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늘 본문은 의인과 악인의 먹을거리가 무엇인지 노래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먹을거리가 무엇이었는지 노래하고 있습니다. 오늘이 종려주일입니다. 기분이 좋습니까? 종려주일이 승리입니까? 아닙니다. 승리에 들떠서는 안됩니다. 승리에 들뜬 제자들은 주님이 십자가 질 때 모두 다 주님을 떠났습니다. 종려주일은 십자가의 시작입니다. 자신을 가장 낮추신 겸손의 시위입니다. 예수님은 이제부터 끔찍한 고난을 당하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가장 끔찍한 밥상과 잔을 받으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비방과 수치와 능욕을 다 당하실 것입니다.
 
웃기는 말이겠지만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먹은 것 없이, 마신 것 없이 배불렀을 것입니다. 욕을 너무 많이 얻어먹어서 말입니다. 온갖 능욕을 다 당해서 말입니다. 생수의 근원이신 예수님이 목마르다고 외치셨습니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 나오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예수님이 ‘내가 목마르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육체는 우리 인생의 모든 갈증과 갈망을 다 짊어지셨습니다. 예수님의 영혼은 하나님의 처소에서마저 쫓겨났습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버리셨습니다. 예수님은 몸과 영혼으로 여러분의 모든 갈증과 갈망, 여러분의 모든 소속감과 소외감을 다 짊어지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모든 조롱의 밥상을 받았고, 산 자의 땅에서 끊어졌습니다. 어린이를 위한 질문 3번 문장처럼 ‘예수님이 (조롱)의 밥상을 받으셨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상에서 먹고 마시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모든 조롱의 잔을 다 마셔 주셨기에 우리는 진노의 잔을 마시지 않아도 됩니다. 예수님이 조롱의 밥상을 받으시고 산 자의 땅에서 끊어졌기에 우리는 더 이상 하나님의 땅에서 끊어질 수 없습니다. 이번 한 주간동안 예수 그리스도의 이 고난을 깊이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구원입니다. 예수님이 받으신 밥상이 우리의 구원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버려지심이 우리의 구원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저희는 먹을 것을 통해 생명을 유지하는 인생들입니다. 무언가 먹을 수밖에 없는 인생들입니다. 저희들의 밥상은 어떠한지요? 저희들은 밥상을 위해 어떤 기도를 드리고 있는지요? 이 세상은 악인들이 의인의 입에 먹지 못할 것을 채워주고 있는 시대입니다. 먹지 못하는 것도 고통이겠거니와 도무지 먹지 못할 것을 꾸역꾸역 먹어야 하는 고통도 큽니다. 그런 저희들에게 도무지 마시지 못할 조롱의 잔, 도무지 먹지 못할 능욕의 밥상을 받으실 분을 보내어 주시니 감사합니다. 저희들이 받아야 할 조롱의 잔이었고, 저희들이 받아야 할 능욕의 밥상이었습니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이 잔을, 이 밥상을 받아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번 한 주간 동안 주님이 받으신 것이 단지 육체의 고통만이 아니라 영혼 깊숙이 조롱과 저주와 하나님께 끊어지는 고통을 당하셨음을, 그리하여 저희들이 하나님께 온전히 받아들여지고, 서로를 온전히 받을 수 있게 되었음을 깊이 묵상하게 하옵소서. 조롱과 능욕의 밥상을 받아 저희들을 하늘의 신령한 잔칫상으로 초대해 주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말씀 묵상하고 나누기
1. 자신의 대적이 주 앞에 있다고 고백한 시인의 확신이 무엇일까요? 
2. 악인이 시인에게 쓸개와 식초를 준 이유가 무엇입니까?
3. 무리들이 예수님에게 마시게 한 포도주는 어떤 포도주입니까? 
4. 시인은 악인의 밥상이 어떻게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까? 
5. 시인이 악인들의 눈과 허리, 그들의 장막에 관해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6. 악인들이 당할 보응을 예수님을 대적하는 이들에게 적용해 보세요.
7. 예수님이 받으신 밥상과 쫓겨난 거처가 여러분의 구원이 된 것을 묵상해 보세요.

어린이를 위한 질문
1. 악인은 의인에게 먹지 못할 것을 주었다, 맞습니까? 
2. 악인은 의인에게 행한 대로 보응받을 것이다, 맞습니까? 
3. 예수님이 (    )의 밥상을 받으셨기에 우리는 (     )의 상에서 먹고 마시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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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본 설교는 세월호 참사 관련, 2014년 4월 27일 명덕교회에서 행한 설교입니다. - 편집자 장희종 목사 대구 명덕교회 담임목사 개혁정론 자문위원 본문: 눅 24:17-20, 31 부활하신 주님은 승천하시기 전에 40일 동안 제자들에게 11번 나타나셨습니다. 부활하...
    Date2014.05.28 By개혁정론 Views17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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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밥상을 위한 기도(시 69:19-29)

    안재경 목사 온생명교회 담임목사 (본 설교는 금년 4월 13일에 온생명교회에서 수행되었습니다 - 편집자 주) 우리가 사는 삶에 있어서 먹는 것이 참 중요합니다. 건강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 것 중에 하나도 잘 먹는 것입니다. 잘 먹기만 하면 아무런 문제가 ...
    Date2014.05.04 By개혁정론 Views18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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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주를 위해 받은 욕(시 69:7-18)

    안재경 목사 온생명교회 담임목사 명예를 무엇보다 존중하는 사회에서는 사람들의 비방이 큰 문제가 됩니다. 십계명에 9계명에서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증거하지 말라’고 한 것도 바로 이런 사회분위기를 반영하는 것이었습니다. 한 사람에 대한 잘못된 풍문...
    Date2014.04.30 By개혁정론 Views17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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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버림받은 자의 기도(시 69:1-12)

    안재경 목사 온생명교회 담임목사 사순절과 고난주간에 교회가 흔히 묵상하는 시편이 시편 22편입니다. 시편 22편은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고난 당하시면서 내내 묵상하셨던 시편입니다. 우리가 잘 알듯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
    Date2014.04.29 By개혁정론 Views2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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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총회장은 교단의 수장이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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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분자 임직식에서 성도의 역할
죽음을 어떻게 맞을까를 잠시 생각하며
제73회 총회가 남긴 몇 가지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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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신 70주년에 즈음하여 9] 고신교...
논문
송상석 목사에 대한 교회사적 평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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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상석 목사의 목회와 설교 (신재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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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차 헌법개정초안(2022년 6월)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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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교회의 적정 규모(規模 size)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