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덴에 있었던 동산은 성전이었다

by 개혁정론 posted May 25,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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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덴에 있었던 동산은 성전이었다

 

 

손재익 프로필 사진(2022년5월).png

손재익 목사

(한길교회 담임)

 

 

하나님께서 창설하신 동산은 어떤 장소였나?

 

   하나님께서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시고 동방에 에덴 동산을 창설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사람을 두셨습니다(창 2:8). 이 동산에는 사람이 있었고(창 2:8)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있었으며(창 2:9), 강이 흘렀습니다(창 2:10). 하나님은 사람으로 하여금 그 동산을 ‘경작하게 하셨습니다(창 2:15; 개역개정판).

   이 동산에 대해 사람들은 흔히 ‘에덴 동산’이라고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동산의 이름이 곧 ‘에덴’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이 동산을 마치 식물원이나 동물원 정도로 생각합니다. 아니면 단순히 살기 좋은 낙원이라고 생각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에덴은 동산의 이름이 아닌 동산이 위치한 지역의 이름

 

   우리는 흔히 아담이 처음 살았던 곳을 가리켜 ‘에덴 동산’이라고 부릅니다. 실제로 창세기 2:15에 보시면 “....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어 ....”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에덴 동산’이라고 불러도 됩니다. 그런데 좀 더 엄밀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창세기 2:8을 자세히 보시면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에 의하면 하나님이 창조하신 ‘온 세상’ 중에 ‘동방’이 있고, 그 ‘동방’에 ‘에덴’이라는 곳이 있고, 그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신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에덴 동산’이라고 부르지만 에덴이 좀 더 넓은 지역이고 그 에덴의 일부 장소가 ‘동산’입니다. 그래서 엄밀히 말해 ‘에덴’은 ‘동산’의 이름이 아니라 ‘동산이 있는 지역’의 이름입니다. 마치 모리아산과 같지요(창 22:2).

   창세기 2:10을 보면 더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강이 에덴에서 흘러 나와 동산을 적시고 .....” 이 말씀에 의하면 ‘동산’이 곧 ‘에덴’이 아닙니다. 강이 에덴에서 흘러서 동산으로 향합니다. ‘에덴 동산’이 아닙니다. ‘에덴’이 있고, ‘동산’이 있습니다. ‘에덴’과 ‘동산’은 다른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가 흔히 ‘에덴 동산’이라고 부르지만, 엄밀하게 표현하면 ‘에덴에 있는 동산’입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 중에 동방 지역의 에덴이라는 곳에 동산을 두셨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사람을 두셨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창세기 2:15을 보면 하나님은 그 사람으로 하여금 동산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왜 동산을 지으셨을까요? 그냥 세상만 만들면 되지 않습니까? 왜 하나님은 하필이면 사람을 동방 중에서도 에덴, 에덴 중에서도 동산에 두셨습니까? 다른 곳에 두셔도 되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왜 사람을 그냥 두지 않으시고 동산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셨습니까?

 

동산=성소

 

   ‘에덴에 있는 동산’은 성소(聖所, Holy Place)를 의미합니다.[1] 동산은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거룩한 장소입니다. 그 이유는 크게 6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동산이 성소인 6가지 이유[2]

 

   첫째, 동산에 흐르는 의 이미지 때문입니다. 창세기 2:10을 보시면 “강이 에덴에서 흘러나와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라고 말씀합니다. 왜 강이 흘러 동산을 적셨을까? 단순하게 생각하면 사람이 살기 위한 조건입니다만, 이 이미지(창 2:10-14)는 성경 전체에 근거해 볼 때 성소의 이미지입니다.[3]

   시편 46:4을 보시면, “한 시내가 있어 나뉘어 흘러 하나님의 성 곧 지존하신 이의 성소를 기쁘게 하도다”라고 해서 성소에 시내(물)가 있고 그것이 나뉘어 흐르고 있음을 말하는데 이 이미지는 ‘에덴에 있는 동산’의 이미지와 비슷합니다.

   에스겔 47:1-12을 보시면, 성전에서 물이 흘러 나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1절을 보시면 “그가 나를 데리고 성전 문에 이르시니 성전의 앞면이 동쪽을 향하였는데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 동쪽으로 흐르다가 성전 오른쪽 제단 남쪽으로 흘러 내리더라”라고 말씀하고, 8절에 보면 물이 흘러나오는 성전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가진 성경의 경우 에스겔 47장의 제목이 ‘성전에서 나오는 물’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물이 흐르는 성소의 이미지가 에덴에 있는 동산의 이미지와 같습니다.

 

   둘째, 동산의 입구가 동쪽이기 때문입니다. 방금 보았던 에스겔 47:1을 보면 성전의 앞면이 동쪽을 향하고 있습니다. 즉 성전의 입구가 동쪽입니다. 그리고 성막도 동쪽이 입구입니다.[4] 동쪽에서 서쪽 방향으로 성막 뜰, 성소, 지성소로 이어집니다.

   그런데 창세기 3:24을 보시면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이후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동산에서 쫓아내시고 동산의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화염검)을 두셔서 지키게 하십니다. 바로 에덴에 있는 동산의 입구가 동쪽입니다.[5] 그래서 ‘에덴의 동쪽’이라는 영화(映畫)제목도 있지요?

   이처럼 동쪽을 입구로 하는 성소의 이미지가 에덴에 있는 동산의 이미지와 같습니다.

   한 가지 덧붙이면, ‘그룹들’은 천사지요?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그룹들 위에 앉아 계신다는 표현이 많이 나옵니다(민 7:89; 삼하 6:2; 시 80:1; 99:1).[6] 시편 99:1에 “여호와께서 다스리시니 만민이 떨 것이요 여호와께서 그룹 사이에 좌정하시니 땅이 흔들릴 것이로다”라고 말씀합니다.[7] 동산은 그룹이 있고,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곳입니다.

 

   셋째, 동산에 나오는 보석의 이미지 때문입니다. 창세기 2:11을 보시면 “.... 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라는 표현이 나오고 12절에는 “그 땅의 순금이요 그곳에는 베델리엄호마노도 있으며”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먼저 ‘금’이 있습니다. 다음으로 ‘베델리엄’이라고 번역된 말을 보시면 개역개정판 난외주에 “진주”라고 표현되어 있으니 보석입니다.[8] ‘호마노’ 역시 보석입니다. 이렇게 동산에는 보석들이 있었는데, 이 보석들은 성소에도 있었던 보석들입니다.

   출애굽기 25:1-9에 보면 성소를 짓는 내용이 나오는데, 성소를 무엇으로 짓습니까? 3절에 ‘금’이 나옵니다. 7절에 ‘호마노’가 나옵니다. 동산에 있었던 보석인 금과 호마노는 성막과 성전을 장식하는데도 사용됩니다(출 25:7; 28:9, 20; 35:9, 27; 39:6, 13).

   이처럼 성소를 장식하였던 보석과 동일한 보석들이 에덴에 있는 동산을 장식하고 있습니다.

 

   넷째,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들의 이미지 때문입니다. 창세기 2:9을 보시면 동산에는 아름답고 먹기 좋은 나무가 많았고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 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있었습니다. 동산 가운데 있는 두 나무는 다른 나무들과 달리 상징적인 나무였습니다.[9] 각각 생명과 선악을 상징하는 나무입니다. 게다가 이 나무는 함부로 접근해서는 안 되었으니(17), 이 나무들의 성격은 마치 지성소에 있는 언약궤와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함부로 들어갈 수 없는 성소의 이미지가 에덴에 있는 동산 가운데의 이미지와 같습니다.

 

   다섯째, 동산에 나오는 하나님의 거니심 혹은 임재하심의 이미지 때문입니다. 창세기 3:8을 보시면 “....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거니시는”이라는 표현은 히브리어로 ‘미트할렉’(מִתְהַלֵּ֥ךְ)인데, 이 단어의 원형은 ‘걷다’라는 뜻의 하라크(הָלַךְ)로서, 미트할렉은 분사형(hithpael)으로 반복적이고 습관적인 행동을 나타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늘 동산에서 거닐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에게 발이 있습니까? 그런데 동산을 거니셨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신인동형론적 표현이라고 하지요. 하나님에게는 손이 없지만, ‘하나님의 손이 우리를 일으켜 세우신다’라고 표현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늘 거니셨다는 것은 비록 하나님에게 발이 없지만, 임재를 의미합니다.[10] 항상 거니시니 곧 임재인 것입니다.

   출애굽기 25:8을 보면 성소는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으로서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장소인데, 에덴에 있는 동산 역시 하나님의 임재가 있던 곳이었으니 동산은 곧 성소였습니다.

 

   여섯째, 동산에 있던 아담은 제사장의 이미지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2:15을 보면, 하나님께서 사람으로 하여금 동산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셨다고 말씀합니다. 경작하다(עָבַד)와 지키다(שָׁמַר)라는 말이 함께 있어서 뭔가 어색한데요. 개역개정 성경은 많은 면에서 좋지만, 가끔씩 안타까운 번역이 있습니다. 바로 이 부분입니다. 오히려 이전 번역인 ‘개역한글 성경’에 보면 ‘경작하며’ 대신에 “다스리며”[11]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경작하며”라는 번역보다는 “다스리며”라는 번역이 좀 더 낫습니다만, 그럼에도 좀 더 분명하게 번역하면 “섬기며”라고 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 “섬기다”라는 표현은 제사장이 성소에서 봉사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섬기다”라는 표현이 더 바람직한 이유는 바로 이어지는 “지키게 하시고”라는 표현을 통해서 더욱 분명해 집니다. 15절에 사용된 ‘지키다’(שָׁמַר)라는 말은 “섬기다”라는 말과 함께 성막에서 봉사하던 ‘제사장’의 사역에 대해 사용된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민수기 1:53에 “.... 레위인은 증거의 성막에 대한 책임을 지킬지니라(שָׁמַר)하셨음이라”라고 되어 있는데 여기에 ‘지킬지니라’라는 말이 창세기 2:15의 아담이 맡았던 사명과 같습니다. 민수기 3:7-8에 “그들이 회막 앞에서 아론의 직무와 온 회중의 직무를 위하여 회막에서 시무하되(עֲבֹדָה) 곧 회막의 모든 기구를 맡아 지키며(שָׁמַר) 이스라엘 자손의 직무를 위하여 성막에서 시무할지니(עֲבֹדָה)”라고 되어 있는데, 여기에 ‘시무하되’(עֲבֹדָה)라는 말이 ‘경작하며’(עָבַד)라는 말과 같고, ‘지키다’는 말이 ‘지키다’(שָׁמַר)라는 말과 같습니다.[12]

   이처럼 첫 사람 아담은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상징적인 장소인 동산이라는 성소를 섬기며 지키는 제사장이었습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여러 이유들 때문에 성경을 연구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에덴에 있는 동산’은 곧 ‘성소’를 상징하는 곳이라고 보았습니다.

 

 

동산이라는 성전의 제사장이었던 아담

 

   하나님은 사람을 지으신 뒤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거기에 두셨으니, 동산은 하나님께서 거하시고 임재하시는 ‘성소’요, 하나님은 동산을 통해서 사람과 늘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하게 하셨습니다.[13]

   아담은 동산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뿐만 아니라, 그 임재를 확장시켜 하나님의 영광을 더욱 드러내는 자여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땅끝까지 미치게 해야 했습니다.[14] 동산이라는 거룩한 성소를 악으로부터 지키고 보호해야 했습니다.[15]

 

 

결론

 

   우리가 흔히 ‘에덴 동산’이라고 부르는 것은 엄밀히 말해 ‘에덴에 있는 동산’으로서 ‘에덴’은 ‘동산’의 이름이 아니라 ‘동산’이 있었던 지역의 이름이며, 에덴에 있던 ‘동산’은 ‘성소’를 상징하는 장소였으니, 하나님은 이 세상을 창조하신 뒤에 동방의 에덴이라는 곳에 성소적 의미가 있는 동산을 창설하셨습니다. 그리고 거룩한 성소로서의 동산을 섬기며 지키는 제사장으로서 아담을 두셨습니다. 이 사실을 바르게 이해할 때 성경전체의 흐름을 바르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위 글과 관련해서는 다음 영상을 통해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1] 에덴동산은 ‘하나님의 동산’이라고 칭한다(창 13:10; 사 51:3; 겔 28:13; 31:9). Geerhardus Vos, Biblical Theology: Old and New Testament (Grand Rapids: Eerdmans, 1948), 이승구 역, 『성경신학』(서울: CLC, 1985, 19992), 49; Victor P. Hamilton, The Book of Genesis: Chapters 1-17, NICOT (Grand Rapids: Eerdmans, 1990), 161; 기동연, 『창조부터 바벨까지』(서울: 생명의 양식, 2009), 92; Kenneth Mathews, Genesis 1-11:26, NAC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 1996), 200.

[2] Gordon J. Wenham, Genesis 1-15, Word Biblical Commentary 1. (Waco: Word, 1987), 박영호 역, 『창세기 1-15』(서울: 솔로몬, 2006), 175, 211; William J. Dumbrell, Covenant and Creation: A Theology of Old Testament Covenants (Nashville: Thomas Nelson, 1984), 최우성 역, 『언약과 창조: 구약 언약의 신학』(서울: 크리스챤서적, 2001), 55; Tremper Longman Ⅲ, Immanuel in our place: Seeing Christ in Israels worship (Phillipsburg: P&R, 2001), 권대영 역, 『우리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서울: CLC, 2003), 15, 20; Meredith G. Kline, The Structure of Biblical Authority (Grand Rapids: Eerdmans, 1981), 김의원 옮김, 『성경의 권위의 구조』(서울: 크리스챤다이제스트, 1994), 79; 기동연, 『창조부터 바벨까지』, 92; 기동연, 『성전과 제사에서 그리스도를 만나다』(서울: UCN, 2006), 12; Meredith G. Kline, Kingdom Prologue: Genesis Foundations for a Covenantal Worldview (Kansas: Two age Press, 2000), 김구원 역, 『하나님 나라의 서막』(서울: P&R, 2007), 81; 김의원, 『창세기 연구: 문예접근법에 따른 창세기 연구』(서울: CLC, 2004, 20132), 109; J. Daniel Hays(J. 대니얼 헤이즈), The Temple and the Tabernacle: A Study of God’s Dwelling Places from Genesis to Revelation (Grand Rapids: Baker, 2016), 홍수연 옮김, 『하나님의 임재와 구원: 구속사로 본 성막과 성전』(서울: 새물결플러스, 2020), 32-35; J. V. Fesko, Last Things First (Fearn: Christian Focus, 2007), 김희정 옮김, 『태초의 첫째 아담에서 종말의 둘째 아담 그리스도까지』(서울: 부흥과개혁사, 2012), 72-81; 오광만, “창조와 구속: 구속과 새창조의 패러다임으로서 ‘에덴’”, 『진리와 학문의 세계』, 17호 (대구: 달구벌기독학술연구회, 2007), 211-287.

[3] Wenham, 『창세기 1-15』, 180; Kline, 『하나님 나라의 서막』, 81; 기동연, 『창조부터 바벨까지』, 94; Mathews, Genesis 1-11:26, 208.

[4] Wenham, 『창세기 1-15』, 211, 216.

[5] 그룹들이 동산 동쪽을 지키기 시작했다는 말은 에덴의 입구가 동쪽이라는 의미이다. Peter J. Leithart, A House For My Name: A Survey of the Old Testament (Moscow: Canon, 2000), 53. 그리고 야곱의 해골이 묻힐 때에 동쪽으로 들어갔다(창 50:13).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으로 입성할 때에도 동쪽의 여리고성에서 서쪽방향으로 들어간다.

[6] 성경에 나타난 그룹들을 도표화 한 것으로 다음을 보라. Hays, 『하나님의 임재와 구원』, 159-161.

[7] Hays, 『하나님의 임재와 구원』, 55, 152.

[8] Wenham은 베델리엄을 민수기 11:7에서 언급하는 만나와 비교한다. Wenham, 『창세기 1-15』, 180.

[9] 성경에서 ‘나무’는 하나님의 생명을 상징하는 것으로 간주된다(시 1:3; 렘 17:8). Wenham, 『창세기 1-15』, 176.

[10] Mathews, Genesis 1-11:26, 239.

[11] 이 단어는 ‘일하다, 경작하다, 섬기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BDB, 712.

[12] Wenham, 『창세기 1-15』, 183; 기동연, 『창조부터 바벨까지』, 97; Mathews, Genesis 1-11:26, 209. 이 외에도 민수기 8:26; 18:5-6 등에 같은 표현이 나온다.

[13] T. Desmond Alexander(데스몬드 알렉산더), From Eden to the New Jerusalem (Nottingham: IVP, 2008), 배용덕 옮김, 『에덴에서 새 예루살렘까지』(서울: 부흥과개혁사, 2012), 16; J. Daniel Hays(J. 대니얼 헤이즈), The Temple and the Tabernacle: A Study of God’s Dwelling Places from Genesis to Revelation (Grand Rapids: Baker, 2016), 홍수연 옮김, 『하나님의 임재와 구원: 구속사로 본 성막과 성전』(서울: 새물결플러스, 2020), 31, 35; Benjamin L. Gladd(벤저민 글래드), From Adam and Israel to the Church, ESBT (Downers Grove: IVP, 2019), 전광규 옮김, 『하나님 백성 성경신학: 아담, 이스라엘, 그리스도, 교회』(서울: 부흥과개혁사, 2021), 22; J. Richard Middleton, The Liberating Image: The Imago Dei in Genesis 1 (Grand Rapids: Brazos, 2005), 81-82(이 책은 『해방의 형상』(성기문 역, SFC 출판부)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있다).

[14] Gladd, 『하나님 백성 성경신학』, 36, 41; 기동연, 『창조부터 바벨까지』, 99; Kline, 『하나님 나라의 서막』, 125, 128.

[15] 기동연, 『창조부터 바벨까지』, 98; Leithart, A House For My Name, 54; Kline, 『하나님 나라의 서막』, 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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