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교회의 성장원리

by 개혁정론 posted Apr 11,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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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대우 목사
고신대학교 교수
개혁주의학술원 책임연구원


에베소서 4장 11-16절

11. 그리고 그분께서 몇몇은 사도로, 몇몇은 선지자로, 몇몇은 복음전도자로, 몇몇은 목자와 교사로 주셨습니다. 12. 그렇게 하신 것은 그들이 성도들을 준비시키도록 하기 위해서인데, 즉 그들을 준비시켜[무장시켜] 이 성도들이 봉사의 일을 하고 결국 그리스도의 몸을 건설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13. 이 일은 우리 모두의 믿음이 하나가 되고 하나님의 아들을 아는 지식이 하나가 될 때까지, 즉 우리가 그리스도로 충만한 상태에 이르는 장성한 사람이 될 때까지 계속되어야 합니다. 14. 그렇게 해야 우리는 더 이상 어린아이가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어린아이는 마치 속임수에 넘어가도록 유혹하는 사람들의 가르침에 이리저리로 밀려다니는 파도나 흔들리는 바람과 같습니다. 15. 그러나 우리는 사랑 안에서 진실함으로 모든 면에서 우리의 머리이신 그리스도께 이르도록 성장해야 합니다. 16. 바로 그분에 의해 온 몸은 각 지체 하나하나의 분량에 따라 서로 연합[협동단결] 함으로써 에너지를 전달하는 마디를 통해 몸을 자라게 하는데, 이것은 오직 사랑 안에서 그 자신[몸]을 건설하기 위해서입니다. 



지상교회란 무엇인가? 지상교회는 이 세상 속에 있으나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다. 이 지상교회는 이 세상 속에서 끊임없이 성장을 거듭한다. 즉 지상교회의 정체성은 성장공동체라는 것이다. 성장하지 않는 것은 교회가 아니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머리이신 그리스도에 의해, 그리고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가야 한다. 왜 성장해야 하는가? 그것은 쉽게 세상의 유혹에 넘어가는 어린아이의 모습을 벗어버리기 위해서다. 지상교회는 마치 바다 위에 떠 있는 배와 같아서 세상이라는 바다 위에서 바람이 부는 대로, 풍랑이 이는 대로 밀려다니기 쉽다. 든든한 돛과 닻을 갖춘 배처럼 지상교회가 그리스도를 굳게 붙잡고 그분으로 충만한 상태, 즉 장성한 상태가 되었을 때 세찬 풍랑을 헤치고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상교회의 성장은 거짓과 속임으로 가득한 세상 풍조에 요동하지 않기 위해서 필수적이다. 지상교회는 끊임없는 성숙을 통해 어떤 영적 세파도 뚫고 나가며 결국 세상을 정복하게 된다. 이러한 성숙과 성장을 위해 지상교회가 반드시 갖추어야 할 요소들을 에베소서 4장 본문에서 뽑아낸다면 4가지로 요약할 수 있는데, 그것은 직분과 하나 됨, 진리, 그리고 사랑이다. 

주님께서는 교회를 위해 직분자를 세우셨다

첫 번째로 지상교회가 성장해 가기 위해서는 봉사, 즉 직분을 필요로 한다. 이런 점에서 지상교회는 직분공동체이다. 머리이신 주님께서 자신의 몸이 성장할 수 있도록 교회에 직분자들을 세우셨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교회의 모든 직분이 교회의 머리이신 한 분 그리스도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이다. 즉 직분의 기원은 인간이나 세상이 아니라, 그리스도라는 것이다. 이것은 모든 직분자들이 자신을 과신해서는 안 되는 이유이며, 동시에 주님의 뜻을 묻고 그 뜻을 이루기 위해 자신을 쳐서 주님께 복종시켜야 하는 이유이다. 직분자들을 통한 교회 안의 모든 다스림은 머리이신 그리스도께 속한 것이기 때문에 그분으로부터만 나온다. 즉 그리스도께서 직분자들을 부르신 것은 그들의 타고난 성품이나 재능 때문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영이신 성령을 통해 부어 주시는 선물인 은사 때문이다. 교회 직분자들은 한 분 그리스도를 머리로 모신 교회를 섬기는 봉사자들이다. 그들은 자신의 재능이나 직분 자체의 권위가 아니라 머리이신 그리스도께서 주신 은사와 권위로 그리스도께서 원하시는 방법으로 성도들을 영적으로 무장시키기 위해 성실하게 봉사의 일을 감당해야 한다. 질서를 세우는 교회 직분의 권위는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것이며 그 권위는 오직 직분에 합당한 섬김과 봉사가 뒤따를 때만이 비로소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주님은 직분자들을 세우실 때 그들에게 은사를 주신다. 은사 없는 직분은 존재할 수 없다. 그 은사는 획일적이지 않고 몸 된 교회를 세우기 위해 지체만큼 다양하다. 이러한 다양성은 상호간의 경쟁의식이나 부러움이나 야망을 갖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은사는 일방적이다. 우리가 어떤 좋은 은사를 사모할 수는 있지만 그 은사를 달라고 하나님께 강요할 수는 없다. 은사의 주체는 하나님이시다. 성령 하나님이시다. 성령 하나님께서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시간과 장소와 사람에게 허락하신다. 은사는 하나님께서 주실 때만이 받을 수 있고 거두어 가시면 잃어버리고 만다. 이것이 영적 은사의 특징이다. 구약의 사울 왕이 그와 같은 성령의 은사를 잃어버린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가 하나님의 명령에 거듭 불순종하자 결국 “여호와의 신”이 그에게서 떠났다. 그 순간부터 그는 더 이상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이 아니었다. 그가 앉아 있던 왕의 자리는 껍데기뿐이었다. 이처럼 오늘날 교회 직분자들 가운데서도 처음에는 하나님께서 은사를 주시고 직분자로 세우셨지만 교회를 세우는 일에 헌신하지 않고 오히려 방해거리만 되는 사람들에게서 자신의 은사와 직분을 거두어 가신다. 교회를 세우도록 하기 위해 주어진 은사를 자기 자신을 위해 사용하거나 자신을 만족시키는데 사용한다면 그것은 은사를 오용하는 것이다. 은사는 자신이 아니라, 다른 지체를 위해 그리고 나아가 몸 전체를 세우기 위해 주어진 것이다. 이 목적에 부합하지 않을 때 그 은사는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다른 지체에게 상처를 주며 나아가 몸 전체를 위협하는 치명적인 병이 되어버리고 만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오용되는 은사를 거두어 가신다.

주님께서 원하시면 성령의 은사를 부어주시고 훈련시켜 교회에 필요한 직분을 필요한 만큼 세우신다. 주님의 제자들이 활동하던 사도 시대에도 이미 교회 직분은 은사에 따라 다양했다. 따라서 다양한 은사에 따른 교회 직분은 그 종류나 숫자에 있어서 고정적인 것이 아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교회 직분을 무분별하고 무질서하게 세우시기를 원하지 않으신다. 성령 하나님의 역사와 은사 역시 무분별하거나 무질서하게 나타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 주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시기 때문이다. 이런 교회의 질서에 대해 칼빈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교회는 확실히 모든 경건한 자들의 공동의 어머니인데, 그녀는 왕뿐만 아니라 평민들을 주 안에서 낳고 양육하고 다스린다. 그녀는 그 일을 직분을 통해 행하신다. 그러므로 이 질서를 거부하거나 멸시하는 자들은 스스로 그리스도보다 더 지혜롭기를 원하는 자들이다.” 모든 성도들은 비록 직분자들에게서 인간적인 부족함을 발견할지라도 그 직분을 교회에 허락하신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들을 존경하고 따르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은사와 직분을 받은 당사자들 역시 그것을 부여하신 하나님 앞에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겸손하게 하나님의 교회를 섬기고 세워나가야 한다. 하나님께서 부여한 교회의 질서와 권위를 자신의 유익의 재료로 삼는 자들은 이미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들이다. 그들은 마치 사울 왕처럼 직분자의 위치에 있을지라도 껍데기와 모양만 가지고 있을 뿐이다.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그런 자를 통해 자신의 교회를 세워가지 않으신다. 이런 문제들 때문에 많은 교회 분쟁이 발생하게 된다. 그럴 때 가장 현명한 처신 역시 성경으로부터 배워야 하는데, 그 모델은 차기 왕으로 임명받은 다윗이 사울 왕에 대해 가진 자세에서 찾을 수 있다. 다윗 자신이 사울 왕을 징벌하는 심판자가 되기를 원하지 않고 그 심판을 하나님께 맡긴 것처럼 오늘날 모양만 직분자인 사람들에 대한 심판도 어떤 특정한 사람이나 무리가 집행하기 보다는 하나님이 하시도록 유보하는 것이 지혜롭다. 그렇지 않을 때 진리라는 허울과 미명 아래 교회는 더욱 큰 고통과 분리의 아픔을 맞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의 몸이 찢기고 성도들이 상처받는 것은 결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이 아니다. 우리는 사탄이 온갖 그럴듯한 명분으로 교회를 혼란시키고 분리시키며 성도들의 마음을 빼앗기 위해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는 사실을 항상 명심해야 한다.

주님께서 직분자들을 주신 목적은 성도들을 영적으로 무장시키는 일이다. 그러나 그들이 성도들을 영적으로 무장시키는 것 자체가 최종 목적은 아니다. 그들이 성도들을 무장시키는 최종 목적은 성도들이 봉사의 일을 하는 것과 그리스도의 몸을 건설하는 것이다. 즉 직분자들을 통해 성도들이 영적으로 잘 무장될 때 그들은 교회의 새로운 봉사자(=직분자)가 되고, 이런 과정을 통해 그리스도의 몸이 세워져 가는 것이다. 주님께서 세우신 직분자들이 없다면 성도들이 영적으로 잘 무장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닐 것이다. 칼빈은 교회 봉사자들인 직분자들의 무용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경고하고 있다. “이와 같은 자들 즉 스스로 성령의 비밀스러운 계시를 조작해 내는 자들은 광신자들이요, 성경을 개인적으로 읽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자들은 교만한 자들인데, 그들은 교회의 공동 직분이 필요 없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교회에 직분자들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의 지시에 잘 따라야 한다. 이렇게 할 때 교회는 질서가 잡히게 되는데, 이런 점에서 사회의 어느 단체 못지않게 교회는 질서가 존중되어야 하는 질서공동체이다. 이런 교회의 질서란 상명하복의 세상적인 법칙에 따른 질서가 아니라, 세움을 받은 직분자는 우리 주님께서 교회를 사랑하시듯 성도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겸손하게 섬기고, 성도들은 교회가 주님께 하듯 감사와 존경심으로 그들에게 기꺼이 순종하는 천상적인 법칙에 따른 질서이다. 즉 교회의 질서는 강제적인 것이 아니라 자발적인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교회 직분과 섬김의 본을 보이시고 그 직분과 섬김을 받은 그의 제자들이 교회 성도들을 섬김으로 교회에 새로운 직분자들을 세우는 과정이 곧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건설되는 길이다.

직분자들은 섬김의 본을 보이고 성도들은 그 섬김을 본받을 때 새로운 섬김의 자리에 서게 된다. 즉 교회의 새로운 봉사자가 되는 것이다. 교회는 섬김과 봉사를 가르치고 배우는 곳이다. 이 섬김과 봉사는 교회를 든든히 세우는 원동력이다. 교회를 건설하지 못하는 섬김과 봉사는 분명 어디엔가 심각한 문제가 있다. 아마도 그것은 섬김과 봉사의 모양만 있을 뿐, 주님처럼 자신을 희생하는 진정한 섬김과 봉사가 아닐 것이다. 진정한 섬김과 봉사는 본전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인간적인 눈으로 볼 때 본전은 고사하고 끝까지 손해 보는 장사가 바로 교회 봉사이다. 죄 없으신 우리 주님께서 죄인인 우리를 그와 같은 방법으로 섬기셨다. 신랑 되신 그리스도께서 신부인 자기 백성을 아무런 조건이나 대가 없이 그저 사랑하고 섬기심으로 교회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그의 사랑을 가장 가까이에서 가장 많이 받았던 사람들을 주님께서는 사도로, 선지자로, 복음전도자로, 목사와 교사로 세우시고 친히 그들을 교회에 주셨다. 주님께서는 아무런 인간의 도움 없이도 직접 교회를 세울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계셨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시고 그 일을 위해 자신에게 배운 제자들을 들어 사용하셨다. 주님께서는 먼저 그들에게 자신의 영이신 성령을 부어주셨다. 자신에게서 배우고 자신의 영인 성령에 사로잡힌 자들을 초대교회 첫 직분자들로 세우셨다. 그러나 그들만 직분자로서 교회를 세우도록 한 것이 아니다. 그들이 그리스도의 부활의 증인이 되어 성령의 능력으로 그리스도의 도를 가르쳤을 때, 그들을 통해 또 다른 직분자들이 지속적으로 탄생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사도행전의 역사이다. 

교회는 하나 됨을 통해 성장한다

두 번째로 지상교회는 하나 됨을 통해 성장해 간다. 지상교회는 지역과 시대마다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으나, 그것이 교회의 통일성을 깨뜨리거나 배제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다양성은 성령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교회의 통일성을 해치기보다는 교회를 하나 되게 하시는 성령의 통일성을 수용할 뿐만 아니라, 그 통일성을 더욱 부요하게 한다. 지상교회의 성장은 신앙의 통일성, 즉 성도들의 믿음이 하나 될 때까지 그리고 지식의 통일성, 즉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하나 될 때까지 멈출 수 없고 멈추어서도 안 된다. 믿음이 동일하고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동일할 때, 즉 그리스도로 충만한 상태가 될 때 교회는 비로소 장성한 사람과 같은 상태가 되는 것이다. 교회는 그와 같이 동일한 신앙에 도달한 성숙한 사람이 될 때까지 끊임없이 성장을 계속해 나가야 한다. 믿음의 통일성과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의 통일성은 교회 성장의 최고 목표이며 최종 목표이다. 지상교회는 지속적으로 그와 같은 통일성을 추구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우리에게 있는 불신앙과 무지가 사라지게 된다. 이 세상에서 아무도 완전한 믿음과 지식을 가질 수 없다. 그러므로 성도들 간에는 서로 상대방의 믿음과 지식을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여기서 믿음과 지식은 사실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다. 그리스도에 대한 바른 지식이 없는 믿음은 맹목적이요 신비주의적이요 광신적인 것이다. 반면에 믿음 없는 지식은 죽은 것이다. 이 믿음과 지식의 대상은 오직 그리스도뿐이라고 칼빈은 말한다. “왜냐하면 믿음은 오직 그분만을 바라보고, 그분께 속해 있고, 그분 안에서 쉼을 얻고 종결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만일 그 이상의 것을 제공하려고 한다면 믿음은 사라져버릴 것이다. 즉 그것은 더 이상 믿음이 아니라 사기다. 그러므로 참된 믿음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므로 그리스도 이외의 것을 알거나 알려고 노력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하나 됨 즉 교회의 통일성을 위한 노력은 교회가 “장성한 사람”이 될 때까지 지속되어야 한다. 교회가 장성한 사람이 된다는 것은 그리스도로 충만한 상태를 의미한다. 몸인 교회가 그리스도로 충만할 때 더 이상 어린아이와 같은 유치한 행동을 하지 않게 될 것이다. 여기서 어린아이란 유혹에 쉽게 넘어가는 상태를 말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난 성도들은 어린아이와 같은 이해력을 가진 상태를 벗어나 장성해 가야 한다. 즉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굳게 붙잡고 그분의 가르침을 철저하게 배우고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럴 때 세상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된다. 사탄은 교회를 넘어뜨리기 위해 끊임없이 “거짓”과 “속임수”로 공격하고 있다. 그는 세상의 모든 좋아 보이는 것들과 그럴듯한 것들을 사용하여 교회를 무너뜨리려고 유혹한다. 교회가 이러한 사탄의 모든 공격에도 흔들림 없이 버틸 수 있으려면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한 믿음을 가져야 한다. 말씀에 기초한 믿음은 “오직 그리스도”만을 교회의 최고 최종 권위로 인정하는 것이다. 교회는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고 바른 것을 배우고 가르쳐야 한다. 교회 속에 세상적이고 인간적인 것이 점차 사라지고 대신에 그리스도께서 주인이 되시고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충실하게 믿고 알 때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갈 수 있다. 교회의 성장 원인뿐만 아니라 성장의 최종 목표도 그리스도 한 분 뿐이다.

교회의 통일성은 성령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교회는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킬 때 가능하게 된다. 교회의 통일성의 근거는 하나님이시다. 그 하나님은 한 분 하나님, 즉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하여 계시고 만유 가운데 계신 하나님이시다. 성부 하나님은 자신의 성령을 통해 만물을 운행하신다. 그 성령 하나님께서 교회에 한 믿음을 주신다. 주님이 한 분이신 것처럼 믿음도 하나이다. 따라서 이 믿음에 근거한 세례 역시 하나이다. 이 하나의 세례를 통해 지상교회의 모든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몸에 붙어 있는 지체가 된다. 머리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성령을 통해 자신의 백성들을 자신에게로 부르신다. 이 부르심 역시 하나이다. 성령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동일한 신앙고백을 통해 서로 형제자매임을 알게 하시고 서로를 하나로 묶어주신다. 따라서 지체는 서로를 인정하고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다른 지체를 위해서, 즉 몸 전체를 위해서 자신에게 부여된 은사와 사명에 따라 최선을 다할 때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성장해가는 것이다. 

교회의 하나 됨은 진리 안에서

교회의 통일성 즉 교회 일치의 기준은 무엇인가? 어떻게 동일한 믿음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가? 한 형제자매 된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여기서 교회 성장의 세 번째 요소인 진리의 역할이 중요하다. 교회가 사탄의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기 위해서는 진리로 무장해야 한다. 지상교회가 하나님의 진리를 고수할 때 머리이신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갈 수 있다. 진리는 사탄의 궤계로부터 우리를 보호하는 하나님의 견고한 성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진리를 교회를 통해 지켜나가기를 원하신다. 이런 점에서 하나님의 교회는 진리의 기둥과 터이다.(딤전 3:15) 지상교회가 무너지면 진리도 무너진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지상교회를 통해 자신의 진리를 보존하기를 원하신다. 이 진리 속에는 하나님의 영광과 인간의 구원이 들어 있다. 이 진리 없이는 하나님께 정당한 영광을 돌릴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구원받을 수도 없다. 이것이 바로 천사들의 찬양처럼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구세주로 오신 목적이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눅 2:14) 진리는 죄로 말미암아 발생한 모든 잘못된 일들을 원상복구시킨다. 먼저 죄가 세상에 들어온 이후 하나님께 돌아가야 할 모든 영광을 인간이 가로채는 일을 바로잡고 또한 타락 이후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 사이에 생겨난 불신과 갈등과 반목이라는 장애물을 제거하는 것이 바로 진리이다. 진리가 살아 있는 곳에는 하나님의 영광뿐만 아니라, 모든 시기와 질투와 분쟁과 반목을 종식시키는 평화 즉 구원이 경험된다. 따라서 교회는 하나님의 영광과 인간의 구원을 보존하고 나누어주는 진리의 기둥과 터이다. 지상교회는 이 진리를 통해 속임과 위선으로 가득한 이 세상을 정복해 나갈 수 있고 정복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 이 진리가 바로 교회일치, 즉 교회연합운동의 가장 중요한 기준이다. 이 진리를 공유하고 함께 고백하는 사람들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요 자매인 것이다.

이 진리는 하나님의 진리이다. 여기에 인간적인 것은 조금도 첨가될 수 없다. 교회는 인간적이고 세상적인 것에 의해 그 진리의 일점일획도 가감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교회는 이 진리를 순수하게 고수하여 오고 오는 세대에 계속 전수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진리는 순수한 복음 전파를 통해 유지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교회가 순수한 복음 선포의 기능을 상실할 때 더 이상 진리의 기둥과 터로서 교회의 역할을 제대로 감당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교회의 표지에 대한 종교개혁가들의 주장은 성경적이다. 그들은 그 표지가 없는 곳에는 하나님의 교회도 없다고 보았는데, 순수한 복음 전파 즉 말씀 선포는 그들에게 교회의 첫 번째 표지였다. 대부분의 종교개혁가들은 순수한 말씀 선포를 참 교회와 거짓 교회를 구분하는 가장 중요한 표지 즉 잣대라고 생각했다. 순수한 복음 전파 즉 순수한 말씀 선포를 통해서만이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는 정상적으로 성장해 갈 수 있다. 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될 때 모든 인간은 진리의 빛 앞에 죄인으로 드러난다. 말씀의 빛 앞에 드러난 자신이 너무나도 이기적이기 때문에 자신의 힘으로는 아무 것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을 행할 수 없는 죄인이라는 사실을 철저하게 깨닫지 못한다면 그는 결코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하거나 그분께 정당한 영광을 돌려드리지 못할 것이다. 또한 죄인 됨과 자신의 무능력에 대한 인식 없이는 자신의 구원에 대한 감격, 즉 그것이 죄인의 죄값을 의로우신 하나님이 대신 치르시고 그 혜택만 그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거저 주시는 너무나도 엄청난 은혜임을 경험할 수 없다. 하나님의 교회가 바로 이와 같은 은혜를 한번 체험한 것에서 그치지 않고 말씀의 진리를 대할 때마다 새롭게 거듭 체험할 뿐만 아니라 또한 마치 샘이 넘쳐흐르듯이 그 은혜가 한 곳에 머물지 않고 온 세상을 향해 넘쳐흐를 때 그 교회는 살아 있고 성장하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

진리는 사랑 안에서 고수되어야 한다

교회 성장의 네 번째 요소는 사랑이다. 하나님의 진리는 고집스러운 방식으로 고수되는 것이 아니라 사랑 안에서 지켜져야 한다. 진리가 사랑 안에서 고수될 때만이 비로소 교회는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갈 수 있다. 또한 그 진리는 뛰어난 지체 하나가 지켜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온 몸이 함께 연합함으로 지켜가야 한다. 그리고 몸의 모든 지체는 오직 한 머리인 그리스도로부터 영양분을 공급받는다. 몸에 필요한 모든 자양분은 마치 수도관을 통하는 것처럼 머리로부터 지체를 통해 전달된다. 교회 성장의 알파와 오메가는 그리스도뿐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모든 것을 공급하시며 우리를 안전하게 지켜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가 아니면 우리는 구원받을 수 없다. 그 이유는 마치 나무 전체가 뿌리에서부터 양분을 빨아올리는 것처럼 우리가 자라는 데 필요한 모든 힘과 양분은 그리스도에게서 나오기 때문이다”(칼빈). 또한 이 사실로부터 칼빈은 “모든 생명이나 건강이 머리 되신 그리스도에게서 나온 지체들을 통하여 확산되는 것이므로 지체들은 다만 조력자에 불과하다”는 것과 “각 사람에게 제한된 은사들이 각기 주어졌기 때문에 피차 교통이 있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피차간의 사랑이 없이는 몸이 건강할 수가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몸에 붙어 있는 지체 가운데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는 쓸모없는 지체는 하나도 없다. 하나님께서는 아무리 연약한 지체라 할지라도 그가 지체인 한 그 지체에게 가장 합당한 은사, 가장 좋은 은사를 주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낙심하거나 다른 지체를 부러워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지체 가운데 아무리 중요한 역할을 하는 지체라 해도 그 지체 하나만으로는 온 몸이 유지될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다른 지체의 도움을 전혀 받지 않고도 자신의 역할을 충분히 수행할 수 있을 만큼 모든 은사를 부족함 없이 그에게 주시지 않기 때문이다. 중요한 역할을 맡은 지체라 해도 연약한 지체의 도움 없이 혼자의 힘만으로는 결코 온 몸을 건강하게 유지해 갈 수 없고 성장시킬 수 없다. 그러므로 몸의 중요한 역할을 맡은 지체는 자신의 은사와 직분을 자신의 자랑거리로 삼거나 교만의 도구로 삼을 이유가 전혀 없다. 모든 지체가 서로 연합하고 상합할 때 몸은 균형 있게 유지되고 성장해 갈 수 있다.

모든 지체가 서로 연합하지 않으면 지체 하나 하나뿐만 아니라 몸 전체가 균형 있게 유지되고 성장하기란 불가능하다. 몸은 모든 지체가 서로를 위해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감당하고 연합할 때 비로소 살아 있고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다. 각 지체는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잠재력이나 능력을 소유한 것이 아니다. 심지어 몸 전체도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니다. 몸을 성장시키는 힘은 오직 머리로부터 나온다. 왜냐하면 자라게 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분뿐이시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거할 때 지상교회는 반드시 성장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으로 여겨지기를 원한다면 아무도 자기 자신을 위해서는 어떤 것도 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사랑을 통해 이루어지는데, 이 사랑이 지배하지 않는 곳에는 교회 건설이란 없으며 흩어짐만 있을 뿐이다”(칼빈).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건설과 성장은 오직 사랑 안에서만 이루어진다. 성령께서 하나 되게 하시는 사랑의 교통이 없는 지상교회는 이 땅에서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고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성령의 전이 아니라, 시기와 질투와 분쟁으로 가득한 사탄의 놀이터일 것이다. 모든 지체는 머리이신 그리스도로부터 자양분을 공급받을 때 성장한다. 그 자양분은 머리로부터 몸의 지체를 통해 전달되는데, 그 전달의 주체는 성령 하나님이시며 매개체는 사랑이다. 사랑이야말로 지상교회가 성장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이다. 성령 하나님께서는 사랑 안에서 진리를 지키시며, 사랑 안에서 서로가 필요한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시며, 사랑 안에서 모든 지체의 연합을 통해 그리스도의 교회를 건설해 나가시는 것이다. 이 사랑은 교회 안에만 머물러 있을 수 없다. 하나님의 사랑은 교회를 채우는데 그치지 않는다. 그 사랑은 교회를 가득 채우고 흘러넘쳐 세상을 향한 구원의 길을 만드는 것이다. 지상교회가 하나님의 사랑으로 가득할 때, 그리스도의 자기희생을 사모하고 실천할 때, 그리고 성령의 무한한 능력을 의지하고 힘입을 때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 하나님께서 사랑으로 이 세상을 구원하신 것처럼 지상교회 역시 그 사랑으로 세상을 정복할 때 하나님 나라는 이 지상에 견고하게 세워지고 보다 넓게 확장되어 갈 것이다.

마치며: 진정한 교회 성장은 그리스도를 통해 성장하는 것

결론적으로 지상교회가 성장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갖추어야 할 4가지 요소인 직분과 일치와 진리와 사랑은 우리 자신에게서 나오는 지상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직 위로부터 내려오는 천상적인 것이다. 즉 교회 성장은 삼위 하나님, 성부와 성자와 성령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 왜냐하면 교회는 사람이 세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교회의 직분도, 교회의 일치를 도모하는 것도, 진리를 고수하는 것도, 사랑을 베푸는 것도 모두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된다. 교회의 유일한 교사이신 그리스도께서 직분자를 세우시지 않으면 교회는 성장할 수 없다. 성령 하나님께서 질서에 따라 하나 되게 하시는 역사가 없다면 지상교회는 극도의 혼란과 분쟁 속에 좌충우돌하게 될 것이다. 진리의 성령께서 하나님의 진리를 지키시지 않으면 교회는 결코 진리의 터와 기둥이 될 수 없을 것이다. 독생자도 아끼지 않으신 성부 하나님의 헌신적인 내리 사랑이 없다면 교회는 세상의 이기적인 단체와 다를 것이 전혀 없다. 그리스도께서 지신 순종과 자기희생의 십자가를 지니지 않은 교회는 그리스도의 교회가 아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지상교회만이 참된 하나님의 교회이며 이 세상 속에서 진정한 성장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교회의 머리는 오직 그리스도 한분뿐이시다. 그리스도가 없는 교회, 즉 그리스도를 머리로 모시지 않는 교회, 그리스도께서 다스리시지 않는 교회는 가시적인 살찜을 경험할 수는 있으나 몸의 정상적인 성장을 경험할 수는 없다. 지상교회는 살찌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성장하기 위해 존재한다. 이 성장은 오직 그리스도로부터 시작되고 그리스도에 의해 진행되며 그리스도에게까지 이르는 것이다. 이 성장을 통해 지상교회는 자신이 이 세상 속에 있지만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재확인할 수 있다.

이상의 내용을 가지로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생각해 볼 수 있다.

1. 에베소서의 말씀에 비추어 볼 때 한국교회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왜 그렇게 생각하며 그 해결책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2. “교회성장”에 대한 우리의 생각과 에베소서의 가르침 사이에는 어떤 차이점이 있습니까?

3. 사회 요직과 교회 직분 사이의 공통점과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4. 교회연합운동의 원리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교회연합운동의 가장 큰 장애물은 무엇이며 그 해결책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