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문을 환영합니다.
최종편집
기획기사

 

 

교회가 중요합니까? 왜 중요합니까? 교회는 세상의 어떤 기관과도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지 못합니다. 교회 내에서도 교회에 대해 회의감이 커져가고 있습니다. 교회가 세상의 조롱을 듣고 있는 상황에서 과연 우리는 교회를 떠나지 않고 머물 수 있을까요? 교회가 세상에 어떤 의미 있는 기여를 할 수 있을까요? 모두들 교회를 염려하는 이때에 우리가 평생 몸담아야 할 교회에 대해 나누어 보고자 합니다. - 편집장 주 -

  

 

신자가 교회를 완전히 떠나도 되는가?

- 소위 ‘가나안 신자’에 대해서

 

 

손재익.jpg

손재익 목사

(한길교회)

 

 

Ⅰ. 교회를 완전히 떠나는 신자들이 생겨나고 있다.

 

교회 가기 싫은 그리스도인?

 

   어느 날 아들이 어머니에게 말했다. “어머니, 저 오늘 교회 가기 싫어요.” 어머니가 놀라서 되물었다. “너 갑자기 왜 그러니?” 아들이 말했다. “아침에 일어나기도 힘들고, 요즘 들어 장로님의 대표기도가 너무 길어서 짜증스럽고, 찬양대의 찬양은 왜 그렇게 화음도 안 맞고 준비도 안한 것 같은지, 그리고 교인들끼리 마음도 서로 안 맞고, 회의만 하면 의견 차가 많고, 도무지 교회 가기가 싫어요.” 이 말을 들은 어머니가 아들을 타이르면서 이렇게 말했다. “얘야~! 그래도 오늘이 주일인데 교회에 가야지. 교회에 가서 성도들과 함께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은 성도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 아니냐?” 그리고 잠시 한 숨을 쉬신 뒤에 한 마디 덧붙였다. “그래도 네가 담임목사인데 교회를 안 가면 되겠냐?”

 

   실제 있었던 이야기인지 아니면 웃자고 꾸며낸 이야기인지 모르지만 충분히 우리 주변에서 생길 수 있는 일이다. 교회는 분명 천국공동체이고, 성도의 안식처가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때때로 교회의 연약함으로 인하여 교회에 대한 불만이 생길 수 있다. 그래서 참으로 거듭나고 회심한 그리스도인이라 하더라도 간혹 이런 마음이 들 수는 있는지 모르겠다. 심지어 목사라고 하더라도.

 

잠시는 몰라도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라면 위와 같은 마음을 잠시 잠깐 품을 수는 있어도 그렇다고 ‘교회’를 완전히 떠나지는 않는다. 교회를 가기 싫어하는 것과 교회를 떠나는 것은 다르다. 일시적인 영적 침체로 인하여 교회당에 가는 일을 잠시 멈추고, 예배드리는 일을 잠시 멈추는 일은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을 수 있지만, 그렇다고 교회를 완전히 떠나는 일은 없다.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라면 말이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교회의 한 부분이다. 교회와 그리스도인은 분리되지 않는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교회 공동체의 한 지체로서 삼위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다. 거듭남과 회심을 경험한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서 친히 세우신 교회의 한 지체로 살아간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교회 ‘밖’이 아니라 교회 ‘안’에 있다.

 

가나안 현상의 등장

 

   그런데 요 근래 요상한 일들이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다. 바로 ‘교회를 떠난 그리스도인들’(?)이 늘고 있다. 다른 교회로 옮긴 것이 아니라 아예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이다. 잠시 잠깐, 몇 주, 몇 개월이 아니라 아예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늘어나는 정도를 넘어 하나의 현상이 되고 있다. 목회사회학의 중요한 주제가 되고 있다. 이른바 ‘가나안 현상’이다.

   여기에서 ‘가나안’이란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목적지로 삼았던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아니다. 어떤 지명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가나안’을 뒤집어 ‘안나가’라는 말에서 나온 표현이다. 바로 교회를 ‘안나가’는 사람들의 증가 현상이다.

 

가나안 신자가 생겨난 이유와 그들의 신앙생활

 

   가나안 현상에 일조하고 있는 이들은 원래부터 교회를 안 다녔던 사람들이 아니다. 교회를 다녔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충실한 교회봉사자로서의 삶을 살았던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교회의 타락, 예배의 변질, 복음의 능력을 상실한 교회, 직분자들의 일탈 등으로 인해 교회에 대해 환멸을 느끼고 아예 교회를 떠난 이들이다. 그렇다고 그들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부인하지도 않는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을 부인하지도 않는다. 성령님의 거듭나게 하심과 거룩하게 하심을 부인하지도 않는다. 다만, 교회를 떠날 뿐이다.

   이들은 각자 집에서, 또는 카페에서 혼자 또는 가족들과 함께 예배드린다. 성경 읽고 찬송을 부르는 등 예배의 기본요소들을 모두 행한다. 설교순서는 성경읽기로 대신하거나 유튜브(youtube)나 교회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설교 동영상을 골라서 듣는다.

   이들은 “교회라는 제도가 과연 필요한가?” 라고 묻는다. 교회라는 제도는 신자들이 혼자서 신앙생활하기 어려우니 만들어낸 것인데, 그 제도가 오히려 신자의 신앙을 해치고 있으니 굳이 그 제도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고 본다. 혼자서 신앙 생활하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본다.

 

 

Ⅱ. ‘가나안’ 신자의 신앙생활, 과연 옳은가?

 

   이러한 ‘가나안’ 현상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가나안 신자로 살아가는 것은 과연 정당한가? 가나안 신자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주장대로 교회는 없어도 되는 기관인가? 신앙생활은 교회를 벗어나면 안 되는가?

 

안타까운 교회 현실

 

   우선, 가나안 신자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현실을 안타깝게 여기고 우리 모두의 아픔으로 여겨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교회를 완전히 떠난 것은 교회의 책임이요 결국 우리 모두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그림자로서 이 세상에 존재해야 하는데, 거룩하신 삼위일체 하나님의 본성을 드러내는 공동체여야 하는데, 삼위일체 하나님의 아름다운 사귐을 반영한 공동체여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결과로 생겨난 것이 가나안 신자들이기 때문이다. 이 일에 우리 모두의 책임이 있다. 교회를 교회답게 세워가지 못하는 책임이 교회의 한 부분인 우리 모두에게 있다.

 

교회를 떠나서는 안 되는 신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위로만 할 수 없다. 그들의 마음을 동정만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신자는 교회를 완전히 떠나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는 것은 죄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은 교회를 떠나서는 안 된다. 교회란 속해도 되고 속하지 않아도 되는 공동체가 아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교회의 한 부분이다. 교회와 그리스도인은 분리되지 않는다. ‘교회에 속하지 않은 그리스도인’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예수님만 믿으면 되지?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 받는다”라는 진리가 간혹 오해를 준다. 가나안 신자들이 이 표현을 가지고 자신들의 상황을 정당화한다. 자신들은 교회만 떠났을 뿐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도 아닌데 뭐 어떻느냐고 주장한다.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구원 받는 것이니, 교회를 떠나도 상관없는 것 아니냐고 항변한다.

   하지만, 예수님만 믿으면 되고 나머지는 상관없는 것이 아니다. 구원을 위해서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십자가 사역을 알아야 하고 그것을 믿어야 한다.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고백해야 한다. 이 모든 것들을 요약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 받는다”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예수님을 믿는데,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사실상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예수님을 믿는데, 삼위일체를 믿지 않는다면 사실상 그가 믿는 예수님은 성경이 말씀하는 예수님이 아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교회에 대한 믿음과 고백도 마찬가지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세우시고 다스리시는 교회의 필수성을 믿는다는 것도 포함한다. 이 믿음에 따라 신자가 되는 것과 함께 교회의 한 지체가 된다.

 

교회;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세우신 기관

 

   가나안 신앙을 정당화하는 사람들은 교회란 단지 구원받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신앙증진을 위해, 혹은 교제를 위해, 혹은 또 다른 유익들을 위해 만들어낸 공동체라고 주장한다. 과연 그럴까?

   성경은 그렇게 가르치지 않는다. 성경이 가르치는 교회는 삼위 하나님께서 친히 세우신 공동체다. 교회는 하나님의 백성이요(벧전 2:9-10), 그리스도의 몸이며(엡 1:22), 성령님의 전(殿)이다(고전 3:16). 부활하신 예수님은 하늘로 올라가신 뒤에 성령님을 보내셨고, 성령님께서는 강림하심과 함께 구원과 교회설립을 하셨다(행 2장).

   성령님께서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사역을 이어서 구원의 역사를 이어가셨고 그 때마다 교회를 설립하셨다. 성령 강림과 동시에 세워진 예루살렘교회를 비롯하여, 안디옥교회, 빌립보교회(행 16:11-15), 데살로니가교회(행 17:1-9), 고린도교회(행 18:1-17), 에베소교회(행19:1-20) 등의 설립은 철저히 구원의 결과였다. 성령님은 사람을 구원하시는 역사만 하고 교회 설립은 하지 않으신 것이 아니다. 성령님은 사람을 구원하시고 그들을 통해 교회를 세우셨다.

   사람이 교회라는 기관을 조직한 것이 아니다.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우시고 당신의 백성을 그곳으로 불러 모아 주신 것이다.

 

그리스도인과 교회, 교회와 그리스도인

 

   그렇기에 성경은 교회를 그리스도인과 동일시한다. 교회는 그리스도인의 모임이요, 그리스도는 교회의 한 지체다(고전 12:12; 엡 1:23; 롬 12:4-5). 그래서 고린도전서 1:2은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라고 하는데, 이 말씀은 이 편지를 받는 사람들 모두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부름을 받아 거룩하여 진 성도들로서 그들이 곧 교회라고 말씀한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부름 받아 거룩하여진 성도”와 “하나님의 교회”는 동격이라는 말이다. 뿐만 아니라 바울을 비롯한 사도들은 당시의 교회들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신자와 교회를 분리시키지 않는다. 신약의 서신서들을 보면 교회에 속하지 않은 신자라는 것은 없다.

 

신조들의 가르침

 

   성경의 가르침에 근거하여 역사상 있어왔던 신조들은 교회를 믿음의 한 부분으로 고백한다. 대표적인 것이 사도신경이다.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를 믿습니다.” 사도신경은 예수님만 믿는다고 고백하지 않는다. 성령님만 믿는다고 고백하지 않는다. 성령님께서 세우신 교회와 그 교회를 통해 이루어지는 성도의 교제를 믿는다고 고백한다. 이 고백은 성령님을 믿으면 당연히 교회가 따라올 수밖에 없고, 그리스도인은 교회 공동체를 중심으로 교제해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성경과 사도신경의 가르침에 따라 장로교회의 신앙고백인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제25장 제2절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고백한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25장 교회에 관하여

 

2. 보이는 교회 역시 복음시대 아래에서는 보편적이고 우주적인 것으로서(이전의 율법시대와 같이 특별한 한 민족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전 세계에 걸쳐서 참된 종교를 고백하는 모든 사람들과2) 그들의 자녀들로3) 구성된다. 그리고 이 교회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요,4) 하나님의 집이며, 권속이다.5) 이 교회 밖에서는 통상적인 구원의 가능성은 없다out of which there is no ordinary possibility of salvation.6) 

 

2) 시 2:8; 롬 15:9-12; 고전 1:2; 12:12-13; 계 7:9   3) 행 2:39; 창 3:15,17:7; 겔 16:20-21; 롬 11:16; 고전 7:14   4) 사 9:7; 마 13:47   5) 엡 2:19, 3:15   6) 행 2:47

 

   제일 마지막 문장에 따르면 “교회 밖에서는 통상적인 구원의 가능성이 없다.” 이 표현은 특별히 고대 라틴교부인 키프리아누스(Cyprianus)와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 그리고 칼뱅(Institutes, Ⅳ. ⅰ. 1.)이 말한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Salus extra ecclesiam non est)라는 표현에 근거를 두고 있다.

 

   개혁교회의 신조인 벨기에 신앙고백서는 좀 더 자세하고도 구체적으로 고백한다.

 

벨기에 신앙고백서

제28조 교회에 가입해야 할 모든 사람의 의무

 

     우리는 이 거룩한 모임과 회중은 구속받은 자들의 모임이며, 이 모임 밖에는 구원이 없기 때문에1) 신분이나 지위를 막론하고 누구도 이 모임에서 물러나 혼자 있는 것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고 믿습니다. 오히려 모든 사람은 교회에 가입하고 교회와 연합해야 할 의무가 있으며2) 교회의 일치를 유지해야 합니다. 그들은 자기 자신을 교회의 가르침과 권징에 복종시켜야 하고3) 자신의 목을 예수 그리스도의 멍에 아래 숙여야 하며4) 동일한 몸의 지체로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재능에 따라5) 형제자매들을 세우기 위해 봉사해야 합니다.6)

     이것이 좀 더 효과적이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그 교회에 속하지 않는 자들에게서 분리하여7) 하나님이 세우신 곳이면 어디서든지 이 모임에 가입하는 것은8) 모든 신자의 의무입니다. 설령 지배자들과 왕의 칙령이 그 의무에 반대될지라도, 죽음이나 육체적 형벌이 따른다고 할지라도 모든 신자들은 그렇게 해야 합니다.9)

     그러므로 그 교회로부터 떨어져 나오거나 그 교회에 가입하지 않는 자는 모두 하나님의 규례를 거슬러 행하는 것입니다.

 

1) 마 16:18-19; 행 2:47; 갈 4:26; 엡 5:25-27; 히 2:11-12; 12:23   2) 대하 30:8; 요 17:21; 골 3:15   3) 히 13:17   4) 마 11:28-30   5) 고전 12:7,27; 엡 4:16   6) 엡 4:12   7) 민 16:23-26; 사 52:11-12; 행 2:40; 롬 16:17; 계 18:4   8) 시 122:1; 사 2:3; 히 10:25   9) 행 4:19-20

 

   위에서 다룬 성경과 신조의 가르침에 의하면 구원받은 자들은 반드시 지역교회의 한 지체가 되어야 한다. 교회로부터 자신을 분리시키면 안 된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반드시 지역교회의 회원이어야 한다.

 

교회를 떠나는 것의 의미

 

   교회를 떠나는 것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단지 교회라는 제도(?)만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교회를 떠나는 것은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의 사역을 헛되게 하는 것이고, 승천하신 예수님께서 약속을 따라 보내신 성령님을 무시하는 일이다. 하나님과 세상 앞에서 “공교회를 믿습니다.”라고 입으로 고백했던 것이 거짓말이었음을 드러내는 일이며, 하나님의 구원 경륜에 따라 세워진 보편 교회의 한 부분으로서의 지역교회를 무시하는 일이다.

   엄밀히 말해 가나안 신자란 존재하지 않는다. 교회를 “안나가!” 하는 순간 신자가 아니다. 신자란 교회에 속하여서 그 교회로부터 말씀을 공급받고, 성찬에 참여하며, 교회의 다스림을 받는 자다.

 

 

Ⅲ.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교회를 떠나는 것이 성경적이 아니라면, 과연 가나안 신자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리고 ‘가나안’하려고 마음을 먹고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자신의 생각과 관점을 점검해야 함

 

   교회를 떠나려고 하기 전, 혹시나 자신의 생각이나 관점이 잘못된 것은 아닌지를 점검해야 한다. 왜냐하면 내가 속한 교회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나의 생각과 관점이 잘못되었을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교회는 문제가 많아.”라고 말한다. 그리고 “한국교회는 문제가 많아.”라고도 말한다. 그런데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문제가 있는 경우가 있다. 자신이 어떤 문제를 갖고 있을 수도 있지만, 자신의 교회관이나 신앙관이 잘못되었을 수도 있다. 예컨대, “우리 목사님은 너무 성경 중심적으로 설교하셔. 나는 이런 교회를 더 이상 다닐 수 없어.”라고 한다면, 그 사람에게 문제가 있다. 그 사람은 교회를 떠나려는 생각을 하기 보다는 자신의 설교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 한다. “우리 교회는 너무 원칙적이야. 교회가 좀 세상의 것도 따라 하고 해야지. 나는 이런 교회를 더 이상 다닐 수 없어.”라고 한다면, 그 사람에게 문제가 있다. 그 사람은 교회를 떠나려는 생각을 하기보다는 자신의 교회관을 바꿔야 한다.

 

교회는 연약할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함

 

   교회를 떠나려고 하기 전, 교회도 연약할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이 세상에 완전한 교회는 없다. 교회는 항상 부족할 수밖에 없다. 과거에도 그러했고 현재도 그러하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하늘 아래 가장 순결한 교회도 연약하다. 이 세상에 완전한 교회란 존재하지도 존재할 수도 없다. 점도 흠도 없는 완전한 공동체는 예수님의 재림 때에나 찾을 수 있다.

   이 사실을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25장 제5절은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25장 교회에 관하여

 

     5. 하늘 아래에 있는 가장 순결한 교회들도 혼합과 오류를 범한다.10) 어떤 교회는 매우 타락하여 분명히 그리스도의 교회임을 멈추기도 한다.11)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땅에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그분을 예배하는 교회가 항상 있을 것이다.12)

 

10) 마 13:24-30,47; 고전 13:12; 계2-3장   11) 롬 11:18-22; 계 18:2   12) 시 72:17; 102:28; 마 16:18; 28:19-20

 

교회를 개혁해야 함

 

   교회를 떠나려고 하기 전, 내가 속한 교회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그 교회를 개혁해야 한다. 교회의 문제점에 대해서 당회에 말하고, 제직회나 공동의회 같은 공적인 회의를 통해 바꿔나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혼자의 힘으로 어려우면 다른 성도들에게 그 문제에 대해 나누고 설득하여서 함께 개혁해야 한다. 아무 노력 없이 교회를 떠나려고 하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다. 교회를 향한 사랑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 보아야 한다.

 

마지막 수단으로는 교회를 옮기는 것도 고려해 볼 수 있음

 

   위와 같은 방법을 다 해 보았지만 도무지 안 된다면, 마지막 수단으로 다른 교회로 옮겨 볼 수 있다. 교회를 떠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교회로 자신의 소속을 옮김으로써 원래 섬기던 지역교회는 떠나지만 보편교회로부터는 분리되지 않는 방식을 택하는 것이 최선이다. 이 때 성경적이고 건전한 교회를 찾아서 이동해야 한다.

   이러한 권면에 대해 “아무리 찾아봐도 건전한 교회가 없다.”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바람직하지 않다. 분명히 있다. 없을 수가 없다. 당장 내가 사는 지역에 없어도 조금만 이동하면 찾을 수 있다. 현대와 같이 교통이 발달한 시대에는 자가용이나 대중교통으로 30-40분 이동해서 갈 수 있는 거리 안에 분명 건전한 교회가 있다. 없을 리가 없다. 노력을 다하지 못해서 그렇다.

   그렇게 해서 찾았는데 너무 멀다? 그렇다면 이사를 해서라도 그 교회에 속해야 한다. 종교개혁 당시 많은 참 신자들은 로마가톨릭이 아닌 개혁교회에 속하기 위해서 먼 거리를 이사하였다. 오늘날처럼 이주가 잦은 시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참 교회를 찾아 먼 거리를 이사하였다.

   내가 이사할 만 한 거리에도 없다? 그런 생각은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교회를 보존하시는 성령님을 부인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와 성령님께서는 분명 이 땅 가운데 참된 교회를 남겨두셨다.

   이 사실을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25장 제5절은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25장 교회에 관하여

 

     5. 하늘 아래에 있는 가장 순결한 교회들도 혼합과 오류를 범한다.10) 어떤 교회는 매우 타락하여 분명히 그리스도의 교회임을 멈추기도 한다.11)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땅에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그분을 예배하는 교회가 항상 있을 것이다.12)

 

10) 마 13:24-30,47; 고전 13:12; 계2-3장   11) 롬 11:18-22; 계 18:2   12) 시 72:17; 102:28; 마 16:18; 28:19-20

 

   이렇게 옮길 교회를 찾을 때에도 내가 교회를 선택한다는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선하신 인도하심을 기다려야 하며, 지역교회 간의 우열은 없다는 사실을 생각하면서 신중해야 할 것이다.

 

 

결론

 

   교회에 대해 실망할 때, 교회를 아예 떠나버리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처럼 보인다. 교회를 아예 떠나면 더 이상 교회 때문에 힘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떠난다.

   하지만, 교회를 떠나면 시간이 지나 더욱 힘들게 될 것이다. 선포되는 말씀도, 주께서 베푸시는 성찬도, 성령님으로 말미암는 교제도 없는 신앙생활은 결국 은혜 없는 신앙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혹 교회를 떠나려는 마음을 갖고 있다면, 위와 같은 방법들을 사용해 보길 바란다. 혹 이미 교회를 떠났다면 그래서 자신이 가나안 신자라면, 가장 빠른 시일 내에 성경적이고 건전한 지역교회를 찾아 신앙생활하길 바란다.

   참된 신자의 신앙과 생활의 원리는 “하나님 중심, 성경 중심, 교회 중심”이다. 이 중에 어느 것 하나도 벗어나서는 안 된다.

 

 

< 저작권자 ⓒ 개혁정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1. notice

    [기독교인과 선거 5] 네덜란드 교회 교인은 어떻게 정치에 참여할까?

    제22대 총선이 다가왔습니다. 국회(의원)는 민의를 대변하는 입법부 역할을 하기에 참으로 중요합니다. 기독교 정당을 표방하는 곳도 선거에 나섭니다. 기독교인이라고 하면서 선거승리를 위해 불법에 가담해서는 안되겠고, 교회도 선거법을 제대로 지켜야 하...
    Date2024.03.20 By개혁정론 Views79
    read more
  2. notice

    [기독교인과 선거 4] 설교학적 관점에서 생각해 보는 정치 설교하기

    제22대 총선이 다가왔습니다. 국회(의원)는 민의를 대변하는 입법부 역할을 하기에 참으로 중요합니다. 기독교 정당을 표방하는 곳도 선거에 나섭니다. 기독교인이라고 하면서 선거승리를 위해 불법에 가담해서는 안되겠고, 교회도 선거법을 제대로 지켜야 하...
    Date2024.03.18 By개혁정론 Views102
    read more
  3. [기획-그리스도인의 일] 소명을 찾아가는 여정(진로와 직업 선택)

    이번 기획기사는 '기독교인의 일'입니다. 우리는 일하지 않고 살아갈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의 말대로 항상 사랑을 할 수도 없고, 항상 잠만 잘 수도 없지만 우리는 항상 일하며 삽니다. 이렇게 항상 세상속에서 일해야 하는 우리가 의외로 일하기를...
    Date2019.02.10 By개혁정론 Views871
    Read More
  4. [기획-기독교인의 일] 청년의 취(이)직과 교회와의 상호 책임

    이번 기획기사는 '기독교인의 일'입니다. 우리는 일하지 않고 살아갈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의 말대로 항상 사랑을 할 수도 없고, 항상 잠만 잘 수도 없지만 우리는 항상 일하며 삽니다. 이렇게 항상 세상속에서 일해야 하는 우리가 의외로 일하기를...
    Date2019.01.30 By개혁정론 Views649
    Read More
  5. [기획-기독교인의 일] 종교개혁가 루터가 말하는 일(work)과 소명(vocation)

    이번 기획기사는 '기독교인의 일'입니다. 우리는 일하지 않고 살아갈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의 말대로 항상 사랑을 할 수도 없고, 항상 잠만 잘 수도 없지만 우리는 항상 일하며 삽니다. 이렇게 항상 세상속에서 일해야 하는 우리가 의외로 일하기를...
    Date2019.01.28 By개혁정론 Views1027
    Read More
  6. [기획-기독교인의 일] 일(직업)에 대한 성경적 관점

    이번 기획기사는 '기독교인의 일'입니다. 우리는 일하지 않고 살아갈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의 말대로 항상 사랑을 할 수도 없고, 항상 잠만 잘 수도 없지만 우리는 항상 일하며 삽니다. 이렇게 항상 세상속에서 일해야 하는 우리가 의외로 일하기를...
    Date2019.01.25 By개혁정론 Views1098
    Read More
  7. [우리가 세우려는 교회] 우리가 세우려는 교회는 과연 ‘특별하고 새로운’ 교회인가?

    우리가 세우려는 교회는 과연 ‘특별하고 새로운’ 교회인가? 성희찬 목사 1. 우리가 세우려는 교회는 ‘특별하고 새로운’ 교회가 아니라 믿음의 선진들이 대대로 걸어 온 ‘개혁신앙’ 노선에 있는 교회라고 할 수 있다 우리...
    Date2019.01.16 By개혁정론 Views382
    Read More
  8. [68회 총회 상정안건 분석] “후보자격을 위한 임직 연한을 줄여 달라!”는 청원에 대하여

    이번 기획기사는 '제68회 총회상정안건분석'입니다. 총회는 교회의 가장 넓은 치리회인데 총회회의야말로 교회의 자태를 잘 드러냅니다. 총회에 상정된 안건 하나 하나가 현 교회의 모습과 우리 시대의 도전을 잘 담고 있습니다. 총회를 통해 교회의 ...
    Date2018.09.07 By개혁정론 Views586
    Read More
  9. [68회 총회 상정안건분석] 주일날 임직식에 관하여

    이번 기획기사는 '제68회 총회상정안건분석'입니다. 총회는 교회의 가장 넓은 치리회인데 총회회의야말로 교회의 자태를 잘 드러냅니다. 총회에 상정된 안건 하나 하나가 현 교회의 모습과 우리 시대의 도전을 잘 담고 있습니다. 총회를 통해 교회의 ...
    Date2018.09.06 By개혁정론 Views1841
    Read More
  10. [68회 총회 상정안건분석] 결혼, 잔치지만 가벼워서도 안 되는 거룩한 예식

    이번 기획기사는 '제68회 총회상정안건분석'입니다. 총회는 교회의 가장 넓은 치리회인데 총회회의야말로 교회의 자태를 잘 드러냅니다. 총회에 상정된 안건 하나 하나가 현 교회의 모습과 우리 시대의 도전을 잘 담고 있습니다. 총회를 통해 교회의 ...
    Date2018.09.04 By개혁정론 Views3157
    Read More
  11. 68회 고신총회 상정안건 분석

    이번 기획기사는 '제68회 총회상정안건분석'입니다. 총회는 교회의 가장 넓은 치리회인데 총회회의야말로 교회의 자태를 잘 드러냅니다. 총회에 상정된 안건 하나 하나가 현 교회의 모습과 우리 시대의 도전을 잘 담고 있습니다. 총회를 통해 교회의 ...
    Date2018.09.03 By개혁정론 Views846
    Read More
  12. [그리스도인의 데이트] 갈등,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이번 기획기사는 '데이트'입니다. 청년들이 데이트를 통해 결혼에까지 이르는 과정은 파란만장할 것입니다. 아슬아슬한 데이트, 데이트과정과 그것을 끝장내면서 평생 씻기 힘든 상처를 주고 받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요. 당사자만이 아니라 지켜보는 ...
    Date2018.09.03 By개혁정론 Views449
    Read More
  13. [그리스도인의 데이트] 이성교제의 꽃이 꺾여 버린 기독 청년에게

    이번 기획기사는 '데이트'입니다. 청년들이 데이트를 통해 결혼에까지 이르는 과정은 파란만장할 것입니다. 아슬아슬한 데이트, 데이트과정과 그것을 끝장내면서 평생 씻기 힘든 상처를 주고 받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요. 당사자만이 아니라 지켜보는 ...
    Date2018.08.16 By개혁정론 Views1358
    Read More
  14. [그리스도인의 데이트] 누구와 데이트 할 것인가?

    이번 기획기사는 '데이트'입니다. 청년들이 데이트를 통해 결혼에까지 이르는 과정은 파란만장할 것입니다. 아슬아슬한 데이트, 데이트과정과 그것을 끝장내면서 평생 씻기 힘든 상처를 주고 받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요. 당사자만이 아니라 지켜보는 ...
    Date2018.08.06 By개혁정론 Views653
    Read More
  15. [그리스도인의 데이트] 공동체 내에서의 이성교제

    이번 기획기사는 '데이트'입니다. 청년들이 데이트를 통해 결혼에까지 이르는 과정은 파란만장할 것입니다. 아슬아슬한 데이트, 데이트과정과 그것을 끝장내면서 평생 씻기 힘든 상처를 주고 받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요. 당사자만이 아니라 지켜보는 ...
    Date2018.07.30 By개혁정론 Views1051
    Read More
  16. [그리스도인의 데이트] 결혼 결심, 무엇을 고려해야 하나?

    이번 기획기사는 '데이트'입니다. 청년들이 데이트를 통해 결혼에까지 이르는 과정은 파란만장할 것입니다. 아슬아슬한 데이트, 데이트과정과 그것을 끝장내면서 평생 씻기 힘든 상처를 주고 받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요. 당사자만이 아니라 지켜보는 ...
    Date2018.07.25 By개혁정론 Views1087
    Read More
  17. [그리스도인의 데이트] 그리스도인의 데이트, 무엇이 다른가?

    이번 기획기사는 '데이트'입니다. 청년들이 데이트를 통해 결혼에까지 이르는 과정은 파란만장할 것입니다. 아슬아슬한 데이트, 데이트과정과 그것을 끝장내면서 평생 씻기 힘든 상처를 주고 받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요. 당사자만이 아니라 지켜보는 ...
    Date2018.07.23 By개혁정론 Views1275
    Read More
  18. [우리가 세우려는 교회] 개혁교회는 세상을 위한 교회

    개혁교회 건설 두 번째 기획기사는 ‘우리가 세우려는 개혁교회’입니다. 요즘 시대는 교회론의 혼란이 극심한 시대입니다. 교회에 대한 다양한 실험들을 하고 있고요. 개혁한 교회는 삼위 하나님께서 택하신 주의 백성들을 말씀과 성령으로 불러 ...
    Date2018.07.09 By개혁정론 Views918
    Read More
  19. [우리가 세우려는 교회] 교회의 4가지 속성

    개혁교회 건설 두 번째 기획기사는 ‘우리가 세우려는 개혁교회’입니다. 요즘 시대는 교회론의 혼란이 극심한 시대입니다. 교회에 대한 다양한 실험들을 하고 있고요. 개혁한 교회는 삼위 하나님께서 택하신 주의 백성들을 말씀과 성령으로 불러 ...
    Date2018.07.06 By개혁정론 Views2550
    Read More
  20. [우리가 세우려는 교회] 교회 세우기, 어떻게

    개혁교회 건설 두 번째 기획기사는 ‘우리가 세우려는 개혁교회’입니다. 요즘 시대는 교회론의 혼란이 극심한 시대입니다. 교회에 대한 다양한 실험들을 하고 있고요. 개혁한 교회는 삼위 하나님께서 택하신 주의 백성들을 말씀과 성령으로 불러 ...
    Date2018.07.02 By개혁정론 Views889
    Read More
  21. [그리스도인의 혼인] 혼인과 교회

    혼인과 교회 : 혼인하는 청년들을 위한 교회의 역할 조재필 목사 (부산 연합교회) 오늘날 혼인은 다분히 사적인 문제로 여겨집니다. 혼인을 결정하는데 개인과 개인의 의사가 거의 유일한 토대입니다. 과거에는 혼인이 집안과 집안의 만남이라는 전통적 사고...
    Date2018.05.28 By개혁정론 Views1103
    Read More
  22. [기획-교회개척프로세스] 교회개척사례

    이번 기획기사는 교회개척 프로세스입니다. 지금도 교회개척이 필요하냐고 말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이제 더 이상 교회를 개척할 필요가 없다고요. 있는 교회도 정리해야 할 판이니 말입니다. 하지만 교회는 여전히 필요합니다. 이제는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
    Date2018.05.17 By개혁정론 Views3359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 4 5 6 7 8 9 10 11 12 13 ... 24 Next
/ 24

기획기사

사설
[사설] 제7차 개정헌법 헌의안, 총...
[사설] 총회장은 교단의 수장이 아...
[사설] 명예집사와 명예권사, 허용...
[사설] 총회가 계파정치에 함몰되지...
[사설] 최근에 일어난 고려신학대학...
세계로교회 예배당 폐쇄 조치를 접하며 3
[사설] 총회(노회)가 모일 때 온라...
총회가 졸속으로 진행되지 않으려면
[사설] 누가 고신교회의 질서와 성...
공적 금식과 공적 기도를 선포하자
칼럼
왕처럼 살고 싶습니까? 왕처럼 나누...
푸틴의 머릿속에 있는 그림
백신 의무 접종과 교회 (3부)
백신 의무 접종과 교회(2부); 교회...
백신 의무 접종과 교회 (1부)
우리 악수할까요?
두려움으로부터의 해방 (Peter Holt...
관심을 가지고 보십시오.
동성애 문제에 대한 두 교단의 서로...
하나님께서는 역사의 잘못을 통해서...
기고
직분자 임직식에서 성도의 역할
죽음을 어떻게 맞을까를 잠시 생각하며
제73회 총회가 남긴 몇 가지 과제
전임목사는 시찰위원으로 선정될 수...
고신교회와 고재수 교수; 우리가 왜...
왜 고재수는 네덜란드에서 고려신학...
제73회 총회를 스케치하다
신학생 보내기 운동에 대한 진지한 ...
명예 직분 허용이 가져다 줄 위험한...
[고신 70주년에 즈음하여 9] 고신교...
논문
송상석 목사에 대한 교회사적 평가 ...
송상석 목사와 고신 교단 (나삼진 ...
송상석 목사의 목회와 설교 (신재철...
네덜란드 개혁교회 예식서에 있어서...
제7차 헌법개정초안(2022년 6월) 분...
제7차 헌법개정초안(2022년 6월) 분...
제7차 헌법개정초안 예배지침 부분...
제7차 헌법개정초안(2022년 6월) 분...
SFC 강령의 “전통적 웨스트민스터 ...
지역교회의 적정 규모(規模 size)는?